제 69 장. 用兵有言(용병유언)
- 백서본 제34장
남 : 병법에 나타난 도덕의 응용
장 : 용병에는 이런 말이 있다
주 : 자애로운 자가 전쟁의 승자가 된다
톨 : 적이 없으면 전쟁도 없다
오 : 오히려 한 자 정도 물러서야 – 방어전의 불가피성
김 : 물리적 완력을 쓰지 않고 적을 물리 친다
여운 : 전쟁은 내 안의 침팬지가 가진 공격적 본능
남 : 남회근(1918~2012) 근래 20~30년 대만에서 국사 대접을 받은 분으로 장개석과 장경국의 국사
장 : 장치청(1959~) 중국 고전 연구의 권위자. 북경중역국학원 원장. 북경중의약대학 경영대학원 원장.
주 : 주춘재(1957~) 화가, 작가. 중국문화보급과 전세계 대중화에 앞장섬.
톨 : 레프 톨스토이(1828~1910) 러시아 소설과, 사상가.
오 : 오강남(1941~) 캐나다 리지아나대학교 명예교수, 종교학자.
김 : 도올 김용옥(1948~) 철학자, 사상가.
여운 이준호 : 야매 한학자, 인간동물학자, 빅히스토리 연구가.
69. 用兵有言: 吾不敢爲主而爲客, 不敢進寸而退尺. 是謂行無行, 攘無臂, 扔無敵, 執無兵. 禍莫大於輕敵, 輕敵幾喪吾寶. 故抗兵相加, 哀者勝矣.
병법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用兵有言): 내가(吾) 함부로 주체가 되어 다스리려 하지 않으므로(不敢爲主而) 객이 다스리도록 배려하고(爲客), 감히 한 치라도 나가려 하지 않으므로(不敢進寸而) 물러날 때는 한 자만큼 물러서는 것이다(退尺). 이를 일러(是謂) 진군하지 않음에도 진군한 것 같고(行無行), 팔뚝이 없어도 휘두르는 것 같고(攘無臂), 적이 없는데도 깨부순 것 같고(扔無敵), 병기 없이도 이겨 다스릴 수 있다 한다(執無兵). 재앙이란(禍) 적을 가벼이 여기는 것보다(於輕敵) 큰 것은 없고(莫大), 적을 가벼이 여기면(輕敵) 내가 가진 보배를 거의 다 잃게 된다(幾喪吾寶). 도리어(故) 대항하는 병사가(抗兵) 서로 비등할 때는(相加), 애통해하는 쪽이(哀者) 승자라 할 수 있도다(勝矣).
A master of the art of war has said, 'I do not dare to be the host (to commence the war); I prefer to be the guest (to act on the defensive).
I do not dare to advance an inch; I prefer to retire a foot.'
This is called marshaling the ranks where there are no ranks; baring the arms (to fight) where there are no arms to bare; grasping the weapon where there is no weapon to grasp; advancing against the enemy where there is no enemy.
There is no calamity greater than lightly engaging in war. To do that is near losing (the gentleness) which is so precious.
Thus it is that when opposing weapons are (actually) crossed, he who deplores (the situation) conquers.
用兵有言(용병유언); 吾不敢爲主而爲客(오불감위주이위객), 不敢進寸而退尺(불감진촌퇴척).
남 : 병법에 이런 말이 있다. “내가 감히 주인이 되지 않고 손님이 되고, 감히 한 치를 나아가지 않고 한 자를 물러난다.”
장 : 용병에는 이런 말이 있다. 나는 감히 주인이 되지 않고 손님이 되며, 감히 한 치를 나아가기보다 한 자 물러선다.
주 : 병법에 이런 말이 있다. 능동적으로 공격에 나서기 보다 수동적으로 방어에 주력하라.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기 보다 몇 걸음 뒤로 물러서라.
톨 : ‘병법’에 말하기를, 전쟁에서는 결코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말고, 소극적으로 움직여라. 앞으로 나아가지 말고, 뒤로 한 걸음 물러나라.
오 : 전쟁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이 있습니다. “내 편에서 주인 노릇하는 게 아니라 손님 노릇을 하고, 한 치 전진하려 하지 말고 오히려 한 자 정도 물러서라”는 것입니다.
김 : 병가의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나는 감히 주인이 될 생각을 아니하며 손님이 될 뿐이요, 나아갈 때는 ‘촌寸’으로 나아감도 삼가고, 물러날 때는 ‘척尺’으로 물러난다.
여운 : 병법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用兵有言): 내가(吾) 함부로 주체가 되어 다스리려 하지 않으므로(不敢爲主而) 객이 다스릴 수 있도록 열어주고(爲客), 감히 한 보라도 나가려 하지 말고(不敢進寸而) 물러날 때는 열 보만큼
물러서는 것이다(退尺).
用(쓸 용) - 쓰다, 부리다, 일하다, 다스리다, 나무통, 용도, 작용, 재물, 비용, 그릇, 도구.
兵(병사 병) - 병사, 병졸, 군사, 무기, 병기, 싸움, 재앙, 원수, 상하다, 다치다, 치다, 죽이다.
有(있을 유) - 있다, 존재하다, 가지다, 독차지하다, 많다, 넉넉하다, 소유.
言(말씀 언) - 말씀, 말, 견해, 의견.
吾(나 오) - 나, 그대, 우리, 막다, 친하지 않다.
敢(감히 감) - 감히, 구태여, 함부로, 감행하다, 굳세다, 용맹스럽다, 결단성이 있다.
爲(위할 위) - 하다, 위하다, 다스리다, 되다, 생각하다, 길들이다, 삼다, 속하다.
主(주인 주) - 주인, 임자, 임금, 우두머리, 상전, 주체, 하느님, 당사자.
客(손 객) - 손, 손님, 사람, 과거, 여행, 상대, 객쩍은, 붙이다, 쓸데없다, 객쩍다.
進(나아갈 진) - 나아가다, 오르다, 다가오다, 힘쓰다, 더하다, 선사, 선물.
寸(마디 촌) - 마디, 치, 촌수, 마음, 손목까지, 근소, 조금, 작다, 적다, 헤아리다, 한마디.
退(물러날 퇴) - 물러나다, 물리치다, 바래다, 겸양하다, 사양하다, 쇠하다, 떨어뜨리다, 닿다.
尺(자 척) - 자, 길이, 법, 법도, 증명서, 재다, 짧다, 작다, 조금.
도덕경 전체에서 전쟁에 관하여 서술하는 장은 모두 7개 장으로 30장, 31장, 36장, 46장, 67장, 68장, 69장이다. 69장인 이 장에서는 예로부터 나오는 병법을 예로 들면서 전쟁에 임하는 자세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노자의 전쟁에 관한 일관된 주장은 부쟁론(不爭論)이다. 전쟁하지 않는 것이 최상이고 다음은 싸우지 않고 승리하는 것이다. 그러나 공격해 들어오는 적을 가만히 맞이하라는 얘기는 아니다. 먼저 공격하지 않아도 방어는 최선의 지혜를 다한다.
30장에서 “전쟁으로써(以兵) 천하를(天下) 강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不強). 전쟁하는 것을(其事) 좋아하면(好) 그 대가를 치르는 법이다(還).”
31장에서는 “대저(夫) 아무리 훌륭한 병기라도(佳兵者) 그것은 상서롭지 못한 도구이니(不祥之器), 만물이(物) 모두(或) 불길하게(惡之) 여기므로(故) 도를 터득한 자는(有道者) 거기에 머물지 않는다(不處).”
36장에서는 “장차(將) 축소하려면(欲歙之), 반드시(必) 먼저 확장해야 한다(固張之). 장차(將) 쇠퇴시키려면(欲弱之), 반드시(必) 먼저 강해져야 한다(固強之). 소멸시키려 한다면(將欲廢之), 반드시(必) 먼저 흥하게 해준다(固興之). 장차(將) 취하고자 하려 한다면(欲取之), 반드시(必) 먼저 내어준다(固與之). 이를 일러(是謂) 미명이라(微明) 한다. 부드럽고 약한 것이(柔弱) 단단하고 강한 것을 이기는 법이다(勝剛强).”
46장에서는 “재앙은(禍) 만족할 줄 모르는 것(不知足)보다 더 큰 것은 없고(莫大於), 허물은(咎) 더 얻으려 탐욕을 부리는 것(欲得)보다 더 큰 것은 없다(莫大於).”
67장에서는 “대저(夫) 자비로움으로써(慈以) 전쟁에 임하면(戰) 반드시 이기는 법이고(則勝), 자비로움으로써 지키고자 한다면(以守) 굳건해지는 법이다(則固). 하늘의(天) 도움으로 이끄니(將救之), 자비로움으로써(以慈) 능히 지켜낼 수 있는 것이니라(衛之).”
68장에서는 “도에 통달하여 다스리는(善爲) 무사는(士者) 무예를 과시하지 않으며(不武), 도에 통달하여 전쟁에 임한다는 것은(善戰者) 흥분하지 않는 것이다(不怒). 도에 통달하여 적에게 승리를 거둔다 함은(善勝敵者) 겨루지 않는 것이다(不與). 도에 통달하여 사람을 부린다 함은(善用人者) 자신을 낮추어 다스림이다(爲之下). 이를 일러(是謂) 다툼이 없는 부쟁의 미덕이라 한다(不爭之德).”
69장에서 전쟁에 임하는 자세는 “병법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用兵有言): 내가(吾) 함부로 주체가 되어 다스리려 하지 않으므로(不敢爲主而) 객이 다스릴 수 있도록 열어주고(爲客), 감히 한 보라도 나가려 하지 말고(不敢進寸而) 물러날 때는 열 보만큼 물러서는 것이다(退尺).”
세상에 완벽한 승리는 없다. 전쟁은 피하면 피할수록 좋은 것이다. 의미 없는 희생은 또다시 재앙으로 돌아오는 법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주는 교훈이 무엇인지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과연 누구를 위한 전쟁인가? 침팬지는 자기 집단을 결속시키고 좋은 먹이를 차지하기 위하여 정기적으로 남의 무리를 침략한다. 대한민국이 보수라는 이름으로 권력을 잡으면 반드시 북한과 적대적으로 긴장 상태를 유발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긴장과 전쟁에 대한 공포는 ‘System 1’의 뇌를 가진 집토끼를 결집해 주는 정치적인 효과가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의 본질은 집토끼의 결집에 있고 미국과 중국 중심의 세계 질서에서 헤게모니를 거머쥐고자 하는 푸틴이 가진 야망에 있다. 우크라이나와 역사적 배경은 명분이고 핑계다. 침팬지 알파 수컷이 되고픈 System 1의 욕망에 지나지 않는다. 한완상 선생은 즉자적(卽自的) 민중과 대자적(對自的) 민중으로 구분하였다. 직관적이고 감정적인 System 1의 민중과 도덕적이고 이성적인 System 2의 민중으로 구분한 것이다. 전 세계를 통틀어 대한민국은 도덕적이고 이성적인 뇌를 사용하는 System 2를 사용하는 민중이 가장 많이 분포하는 나라이다. 집단지성과 공공선의 지속적 우상향만이 전 세계를 다스리려 하지 않아도 다스릴 수 있다고 우리에게 나침판을 제시해 준다.
是謂行無行(시위행무행), 攘無臂(양무비), 扔無敵(잉무적), 執無兵(집무병)。
남 : 이것을 일러 행렬 없는 행군, 팔 없는 휘두름, 무기 없는 잡음, 적군 없는 나아감이라고 말한다.
장 : 이것을 이른바 진법이 없는 듯 진을 치고, 팔이 없는 듯 팔을 휘두르고,적이 없는 듯 적을 치고, 병기가 없는 듯 병기를 잡는다고 한다.
주 : 이를 가리켜 행군을 해도 행군하지 않는 듯하고, 휘두를 팔이 없는 듯하고, 쳐들어 갈 적이 없는 듯하고, 무기를 잡아도 손에 쥐지 않은 듯하다고 한다.
톨 : 이것은 저항하지 않고 적에게 논쟁거리를 주는 것을 의미한다. 적이 없으면 전쟁도 없다.
오 : 이를 일러 나아감이 없이 나아감, 팔이 없이 소매를 걷음, 적이 없이 쳐부숨, 무기 없이 무기 잡음이라 합니다.
김 : 이것을 일컬어 : 감이 없이 가고, 팔 없는 팔을 걷어붙이고, 적대함이 없이 적을 제압한다고 한다.
여운 : 이를 일러(是謂) 진군하지 않음에도 진군한 것 같고(行無行), 팔뚝이 없어도 휘두른 듯하고(攘無臂), 겨루지 않고도 깨부순 듯하고(扔無敵),병기가 없어도 이겨 다스릴 수 있다 하는 것이다(執無兵).
行(다닐 행/항) - 다니다, 가다, 행하다, 보다, 돌다, 유행하다, 길, 도로, 고행, 항렬, 대열.
攘(물리칠 양) - 물리치다, 내쫓다, 제거하다, 훔치다, 가로채다, 침탈하다, 사양하다. 어지럽다
臂(팔 비) - 팔, 팔뚝, 쇠뇌 자루.
扔(당길 잉) - 당기다, 끌어당기다, 부수다, 깨뜨리다, 내버리다, 버리다.
敵(대적할 적) - 대적하다, 겨루다, 대등하다, 필적하다, 맞서다, 거역하다, 원수.
執(잡을 집) - 잡다, 가지다, 맡아 다스리다, 처리하다, 죗값을 치르다, 두려워하다, 사귀다.
깨어 있는 시민 의식은 집단지성과 공공선에 있다고 노무현은 일찍이 깨달았다. 사람 사는 세상 한 번 만들어 보고 싶다며, 양지보다 음지를 편함보다는 불편함을 고속도로보다는 시골 오솔길을 선택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깨달았다. 사람이라고 다 같은 사람이 아님을 말이다. 월드컵의 열기가 한창이던 2002년 여름과 그해 12월 19일을 노무현이 그 어려운 역경을 겪고 대통령에 당선되던 날과 2009년 5월 23일을 그의 마지막 선택을 나는 잊지 못한다. 내 인생에 가장 기쁜 날과 가장 원통하고 분하고 슬퍼했던 날이기 때문이다. 난 내 부친이 돌아가셨을 때도 눈물 한 방울을 안 흘렸다. 그러나 그가 극단적인 선택한 날부터 3개월을 펑펑 울었고 지금도 노무현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한 맺힌 뜨거운 분노와 슬픔의 눈물이 난다. 왜 그러했는지 이유를 몰랐다. 지금에야 그 이유를 알겠다. 그가 바로 노자였기 때문이다.
“이를 일러(是謂) 진군하지 않음에도 진군한 것 같고(行無行), 팔뚝이 없어도 휘두른 것 같고(攘無臂), 겨루지 않고도 깨부순 듯하고(扔無敵), 병기가 없어도 이겨 다스릴 수 있다 하는 것이다(執無兵).” 노무현을 잃은 이후로 우리는 천하의 대도(大盜) 이명박, 천하의 양푼이 꼭두각시인 박근혜를 겪었다. 그리고 광화문 광장에서 대자적인 민중은 두 번 다시는 속지 않을 것을 맹세했다. 침팬지의 속마음을 가진 인면수심의 즉자적인 지도자에게 말이다. 그리고 그들을 감옥에 보냈다. 그러나 현실은 다시 냉혹해졌다. 이런들 어떠리 저런들 어떠리 중간에 어중간하게 자리한 사람들인 극중주의를 선호하는 사람들의 선택에 의해서다. 침팬지와 인간의 중간에 선다고 중립이 아니다. 그것은 서구의 보수와 진보라는 정치학이 구분한 일직선 위에 놓고의 좌와 우에 대한 해석이다. 이기적이고 공격적인 침팬지와 성인, 군자를 일직선 위에 놓고 가운데가 중립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 계급의 의미의 Class와 인간의 격을 이르는 Grade를 구분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사용한 결과이다. 소인과 군자는 Grade를 구별하여 나눠 차별하는 것이 노자와 공자의 가르침이다.
禍莫大於輕敵(화막대어경적), 輕敵幾喪吾寶(경적비상오보). 故抗兵相加(고항변상가), 哀者勝矣(애자승의).
남 : 재앙은 적군을 가벼이 여김보다 큰 것이 없으니, 적군을 가벼이 여기면 아마도 나의 보배를 잃을 것이다. 그러므로 무기를 들고 서로 싸우면 슬퍼하는 자가 이기게 된다.
장 : 적을 가볍게 여기는 것보다 큰 재앙은 없으니, 적을 가볍게 여기면 나의 보배를 잃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군대가 서로 맞서 비슷할 때는 자비로운 쪽이 이긴다.
주 : 전쟁에서 적을 얕잡아보는 것보다 더 큰 재앙은 없다. 경솔하게 대적하다가는 자신의 삼보三寶만 잃는다. 따라서 양군이 대등할 때는 상대를 가엾게 여기는 자애로운 마음을 지니는 쪽이 최후의 승자가 된다.
톨 : 적을 경멸하는 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없다. 적을 경멸하는 것은 어쨌든 아무 의미 없이 부를 버리는 것과 같다. 자신의 군대가 증가하는 것을 슬퍼하는 자는 항상 승자가 될 것이다.
오 : 모든 화 중에 적을 가볍게 여기는 것보다 더 큰 것은 없습니다. 적을 가볍게 여기다가는 내 편의 보물을 거의 다 잃고 맙니다. 그러므로 군사를 일으켜 서로 맞서 싸울 때에는 슬퍼하는 쪽에서 이기는 법이다.
김 : 적을 가벼이 여기는 것보다 더 큰 화는 없다. 적을 가벼이 여기면 나의 세 보배를 다 잃을지니. 그러므로 접전하는 군대가 서로 비등할 땐 애통해하는 자가 이기니느라.
여운 : 재앙이란(禍) 적을 얕잡아 보는 것보다(於輕敵) 더 큰 것은 없고(莫大), 적을 얕잡아 보면(輕敵) 내가 가진 보배를 거의 다 잃게 된다(幾喪吾寶). 그러므로(故) 대항하는 병사가(抗兵) 서로 비등할 때는(相加), 애통해할 줄 아는 쪽이(哀者) 승자라 할 수 있을 뿐이다(勝矣).
禍(재앙 화) - 재앙, 재화, 사고, 허물, 죄, 화를 입히다, 해치다.
莫(없을 막/모/멱) - 없다, 말다, 불가하다, 조용하다, 드넓다, 장막, 저물다, 어둡다, 덮다.
輕(가벼울 경) - 가볍다, 가벼이 여기다, 업신여기다, 천하다, 빠르다, 가벼이.
幾(몇 기) - 몇, 얼마, 그, 거의, 어찌, 자주, 조용히, 바라건대, 언저리, 낌새, 기틀, 기회.
喪(잃을 상) - 잃다, 죽다, 상복을 입다, 망하다, 달아나다, 초상, 곡소리.
寶(보배 보) - 보배, 보물, 옥새, 돈, 전폐, 높임말, 도, 진귀한, 보배로 여기다.
抗(겨룰 항) - 겨루다, 대항하다, 대적하다, 들다, 막다, 저지하다, 높다, 오르다, 감추다.
相(서로 상) - 서로, 바탕, 도움, 모양, 다스리다, 따르다, 이끌다.
加(더할 가) - 더하다, 보태다, 올리다, 포개다, 가입하다, 입다, 치다, 맛있다, 힘쓰다.
哀(슬플 애) - 슬프다, 가엾다, 가련하다, 불쌍히 여기다, 슬퍼하다, 마음을 아파하다, 슬픔.
勝(이길 승) - 이기다, 훌륭하다, 경치가 좋다, 낫다.
矣(어조사 의) - 어조사, ~었다, ~리라, ~이다, ~뿐이다, ~도다.
도덕적이고 이성적인 대자적인 민중은 직관적이고 감정적인 즉자적 민중에 대해 너무 모른다. 그 이유는 한 번도 그런 사고를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애덤 스미스가 『도덕 감정론』에서 강조했듯이 인간은 동정심에 의해 도덕심이 생긴다. 동정(同情)은 같은 감정을 느낄 줄 아는 공감(共感) 능력이다. 영어로는 sympathy, empathy이다. 침팬지들의 연맹은 자기 이익이다. 내게 이익이 있을 때만 협력한다. 이익은 생존에 절대 유리함이다. 단, 이익은 평등하지 않다. 평등의 기원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사피엔스가 아프리카 초원에서 20만 년 전 획득한 도덕심에서 나온다. 여담이지만 요즘 유시민 작가가 온 방송에 출연해 침팬지와 보노보를 비교하면서 인간의 정치 행위에 관해 설명해주어서 내가 좀 편해졌다. 몇 년 전까지 침팬지와 인간을 비교해서 얘기하면 미친놈 취급을 받았기 때문이다. 뜬금없는 소리를 한다고 말이다. 진화생물학이란 학문이 있는지도 모르기에 일부 생물학 전공자들만 알아듣고 공감하는 얘기였다. 그런 연유에 내 여식은 아버지를 통해 침팬지 전문가가 되었다. 어렸을 때부터 침팬지 행동학에 대해 들었기에 직장 생활하면서 직장 동료들에게 침팬지를 비유해서 인간 행동의 원인에 대해 설명해주면 이제 많은 사람이 공감하고 이해해 준다고 한다. 감정이란 느끼는 능력을 말한다. 화가 나는 상황에서 같이 화를 내는 것을 우리는 공분(公憤)이라고 한다. 기쁠 때 같이 기뻐하고 슬플 때 같이 슬퍼하는 능력을 우리는 공감 또는 동정이라고 개념화한다. 사이코패스는 공감 능력이 없다. 세월호 침몰로 내 자식 같은 꽃다운 청춘의 아이들이 죽어도 아무 느낌을 받지 못하는 것은 공감 능력이 없는 사이코패스 성향이기 때문이다. (공감 제로 - 사이먼 배런-코헨) 문제는 정치권에 사이코패스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그러니 맨날 핵 타령이나 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비판하고 바른길로 즉자적 민중들을 인도해야 할 언론 역시 사이코패스들이 지배하고 있다.
전쟁을 즐기는 자는 살인을 즐기는 놈이라고 노자는 말한다. “전쟁에서 이겼더라도(勝而) 찬미하지 마라(不美)! 그것을(而) 찬미하려는(美之) 놈은(者) 무릇(是) 살인을 즐기는 놈이다(樂殺人).”
고사성어에는 사이코패스나 이기적인 인간을 지칭하는 단어가 많다. 사람의 얼굴이나 마음이나 행동이 몹시 흉악한 인면수심(人面獸心), 자기에게만 이롭게 한다는 아전인수(我田引水), 도둑이 도리어 매를 든다는 적반하장(賊反荷杖), 탐욕적이고 사리사욕을 나타내는 탐부순재(貪夫徇財), 눈 아래에 사람이 없다는 뜻의 안하무인(眼下無人), 낯짝이 두꺼워서 부끄러움을 못 느끼는 후안무치(厚顔無恥), 아부와 아첨으로 줄을 잘 서야 성공한다는 아유추종(阿諛追從),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 된다는 행재낙화(幸災樂禍) 같은 말이 수천 년 동안 만들어진 말이다.
노자의 언어로 정치 지도자인 위정자를 구분하면 알파 수컷과 같은 침팬지의 지배 본능을 가진 지배자와 선한 도덕심을 획득한 인간의 본성인 성인의 섬김의 정치로 크게 양극단으로 구분할 수 있다.
지배하고자 하는 놈은 반드시 복종을 요구하기에 서열과 의전을 강조한다. 그러나 도덕심과 이타심 평등심과 자비심을 획득한 성인의 정치는 다스리려 하지 않아도 다스려지기에 백성들을 섬기고 편안하게 하는 것이다. 노자는 최상의 군주는 다스리는 자가 누군지도 모르는 상황이라고 했다. 편안하니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가 없다.
전쟁을 즐기고 인류를 전쟁의 공포에 떨게 하는 지도자는 침팬지의 공격적 본능을 지닌 사람이 아닌 동물이다.
한글비교역주 참고 문헌
남회근 노자타설(老子他說) 상·하 – 번역 설순남
남회근(Nan Huai-Chin, 南懷瑾, 1918~2012) 선생을 소개한다. 본문에는 [남 : ~ ]으로 표기되었다. 부·키 출판사에서 2012년 초판 출판되었다. 1987년 남회근 선생의 『노자타설(老子他說) 상·하』본으로 ‘남회근 저작선 5’의 시리즈물이다.
남회근 선생은 중국의 승려, 종교학자, 작가이다. 현대 중국에서 존경받는 영적 스승인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중국 불교 부흥의 주요 세력으로 여겨졌다. 1918년 절강성 온주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서당 교육울 받으며 사서오경을 읽었다. 17세에 중국 항주 국술원에 들어가 각 문파 고수들로부터 무예를 배우는 한편 문학, 서예, 의약, 천문 등을 익혔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사천(四川)으로 내려가 장개석이 교장으로 있던 중앙군관학교에서 교관을 맡으며 사회복지학을 공부하였다. 교관으로 일하던 시절 선생에게 영향을 준 스승 원환선(袁換仙, 1887~1966)을 만나 삶의 일대 전환을 맞는다.
1942년 25세에 원환선이 만든 ‘유마정사’에 합류하여 수석 제자가 되었고, 스승을 따라 근대 중국 불교계 중흥조로 알려진 허운(虛雲, 1840~1959) 선사(先師)의 가르침을 배웠다. 불법을 더 깊이 공부하기 위해 중국 불교 성지 아미산에서 폐관 수행하면서 대장경을 독파하였고, 이후 티베트로 가서 여러 종파 스승으로부터 밀교의 정수를 전수 받고 수행경지를 인증받았다. 1947년 고향으로 돌아가 절강성 성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던 문연각 사고전서와 백과사전인 고금도서집성을 열람하고, 이후 여산 천지사 곁에 오두막을 짓고 수행에 전념하였다. 전쟁이 끝난 후 1949년 봄 대만으로 건너가 문화대학, 보인대학 등과 사회단체에서 강의하면서 수련과 저술에 몰두하였다.
1985년 미국으로 건너가 동서학원을 창립하였고, 1988년 홍콩을 거주지를 옮겨 칠 일간 참선을 행하는 선칠 모임을 이끌며 교화사업을 하였다. 1950년대 대만으로 건너간 후부터 일반인과 전문가를 대상으로 유불도가 경전을 강의하며 수많은 제자를 길렀고, 강의 내용을 바탕으로 40여 권이 넘는 책을 출간하여 동서양 많은 독자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선생의 강의는 유불도를 비롯한 동양사상과 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 깊은 수행 체험에서 우러나오는 엄중한 가르침, 철저히 현실에 기초한 삶의 자세, 사람을 끌어당기는 유머를 두루 갖춘 것으로 정평이 있다. 2006년 이후 중국 강소성 오강시에 태호대학당을 만들어 교육사업에 힘을 쏟다가 2012년 9월 29일 9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부키 – 2013년 1월 8일 초판
번역 - 설순남
서울대학교 중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북경사회과학원에서 방문학자 자격으로 수학했으며 서울대학교, 가톨릭대학교, 성결대학교 등에서 강의하였다. 저서로 『황준헌 시선』이 있고, 옮긴 책으로 『대학 강의』 『맹자와 공손추』 『노자타설』 『맹자와 양혜왕』 『약사경 강의』 등이 있다.
2. 장치청 『도덕경 완전해석』 - 번역 오수현
두 번째로 소개할 장치청(張其成장기성, Zhang-Qicheng, 1959~) 교수로 본문에는 [장 : ~ ]으로 표기되었다. 중국 고전 연구의 권위자이자 역학과 중의학 분야의 석학이자 대중적인 양생 전문가로도 유명하다. 북경중역국학원 원장과 북경중의약대학 경영대학원 원장으로 있으면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북경대학·청화대학 특별 초빙교수로 강의하고 있으며, 중국 관영 방송 CCTV, 북경 TV 등에서 각종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학문의 대중화 작업에도 힘쓰고 있다.
국가급 무형문화 유산 명의 ‘북송의 장일첩(張一帖, 1130~1200)’ 가문의 제15대 계승자로, 훈고학의 대가 베이징중의학대학 교수 첸차오천(錢超塵, 1036~2022)과 역학의 대가 베이징대학 철학과 주보쿤(朱伯崑, 1923~) 교수에게 사사했다. 1992년 중국 최초로 『역학대사전』, 『역경응용대백과』 등을 편찬했고, 《역도주간》을 창간하여 유교, 도교, 불교, 의학과의 융합적인 차원에서 ‘역(易)’에 접근하고자 했다. 2003년부터 북경대학에서 기업인들을 대상으로 고전 강의를 시작했으며, 멘토제 서원을 세워 ‘중국학의 지혜를 적용한 경영모델’ ‘오행을 통한 인재관리 시스템’을 제시했다. 국가급 석사 교재 『중국전통문화개론』을 편찬하는 등 현재까지도 국학 5대 경전 『주역』, 『논어』, 『도덕경』, 『육조단경』,『황제내경』을 강연하는 ‘고전멘토’로 활동 중이다. 2009년에는 “현대 국학의 선두 주자” 중 하나로 선정되어 “국학 연구의 일인자”로 칭송받기도 했다.
주요 저서로는 『주역 완전 해석』, 『황제내경, 인간의 몸을 읽다』, 『논어 완전 해석』, 『육조단경 완전 해석』, 『황제내경 완전 해석』, 『역경 양생 대도』, 『유가 양생대도』, 『불가 양생대도』, 『도가 양생대도』, 『주역 인생 지혜』 등 다수가 있다. (yes 24 작가소개)
판미동 - 2022년 2월 7일 1판 1쇄 찍음
옮긴이 - 오수현
숙명여대 중어중문과를 졸업하고, 중국 산동과기 직업전문대학 한국어과 교사, ㈜효성, KELLEY ASSOCIATES를 거쳐 현재는 바른번역 소속 출판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주역 완전해석』, 『황제내경, 인간의 몸을 읽다』, 『자치통감: 천년의 이치를 담아낸 제왕의 책』, 『주역에서 경영을 만나다』, 『나의 최소주의 생활』, 『나는 왜 작은 일에도 상처받을까』, 『시의 격려』, 『세포가 팽팽해지면 병은 저절로 낫습니다』, 『오늘, 뺄셈』, 『중국은 무엇으로 세계를 움직이는가』, 『비즈니스 삼국지』 , 『똑똑한 리더의 공자 지혜』, 『똑똑한 리더의 노자 지혜』 외에도 다수가 있다.
3. 주춘재 『만화 도덕경』 - 번역 박영재
세 번째로 소개할 분은 저우춘차이(周春才 1957- ) 선생이다. 본문에는 [주 : ~]
1957년 중국 베이징에서 출생한 화가이자 작가로 오랫동안 중국문화의 연구와 대중화에 전념해왔다. 서양 문화와 비교를 통해 과학과 철학을 포함한 방법론적인 측면에서 새롭고 참신한 해석을 전개해 내외의 주목을 모았다. 만화를 넘어서는 풍부한 내용과 생동감 있는 작품 이미지로 광범위한 전문가와 독자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십여 개의 언어로 작품이 번역 출판되었다. 대표작으로는 《예기 : 모두들 알지만 아무도 안 본 사서오경》, 《만화 주역》, 《만화 논어》, 《만화 노자》, 《만화 장자》, 《화설 황제내경》 등이 있다. (yes 24 작가소개)
가갸날 - 2021년 8월 10일 초판
번역 박영재
고려대학교와 타이완 정치대학교 동아시아대학원 석사과정을 졸업하였다.
4. 러시아 최초의 완역본 『톨스토이가 번역한 노자 도덕경』 - 최재목 역주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러시아어: Лев Николаевич Толстой, 영어: Lev Nikolayevitch Tolstoy, 1828~1910) 러시아 소설가이자 시인, 개혁가, 사상가이다. 본문에는 [톨 : ~ ]로 표기. 러시아의 소설가이자 시인이자 사상가이다. 도스토옙스키와 함께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대문호로 손꼽힌다.
1828년 9월 9일, 러시아 남부의 야스나야 폴랴나에서 톨스토이 백작 집안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2살과 9살 때 각각 모친과 부친을 여의고, 이후 고모를 후견인으로 성장했다. 어린 시절에는 집에서 교육을 받았고, 16세가 되던 1844년에 까잔 대학교 동양어 대학 아랍·터키어과에 입학하였으나 사교계를 출입하며 방탕한 생활을 일삼다 곧 자퇴해 1847년 고향으로 돌아갔다. 진보적인 지주로서 새로운 농업 경영과 농노 계몽을 위해 일하려 했으나 실패로 끝나고 이후 3년간 방탕하게 생활했다. 1851년 맏형이 있는 카프카스에서 군인으로 복무했다.
1852년 문학지 [동시대인]에 처녀작인 자전소설 중편 「유년 시절」을 발표하여 투르게네프로부터 문학성을 인정받기도 하였다. 1853년에는 『소년 시절』을, 1856년에는 『청년 시절』을 썼다. 1853년 크림전쟁이 발발하여 전쟁에 참여했다. 당시 전쟁 경험은 훗날 그의 비폭력주의에 영향을 끼쳤다. 크림전쟁에 참전한 경험을 토대로 『세바스토폴 이야기』(1855~1856)를 써서 작가로서의 명성을 확고히 했다.
이듬해 잡지 『소브레멘니크』에 익명으로 연재를 시작하면서 작가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작품 집필과 함께 농업 경영에 힘을 쏟는 한편, 농민의 열악한 교육 상태에 관심을 갖게 되어 학교를 세우고 1861년 교육 잡지 [야스나야 폴랴나]를 간행했다. 1862년 결혼한 후 문학에 전념해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등 대작을 집필, 작가로서의 명성을 누렸다. 1859년에 고향인 야스나야 폴랴나에 농민학교를 세우는 등 농촌 계몽에도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였으며 농민학교를 세웠다.
34세가 되던 1862년에 소피야 안드레예브나와 결혼하여 슬하에 모두 13명의 자녀를 두었다. 볼가스텝 지역에 있는 영지를 경영하며 농민들을 위한 교육사업을 계속해 나갔다. 1869년 5년에 걸쳐 집필한 대표작 『전쟁과 평화』를 발표하면서 세계적인 작가로서의 명성을 얻었다. 1873년에는 『안나 카레니나』의 집필을 시작해 1877년에 완성했으며, 1880년대는 톨스토이가 가장 왕성한 창작활동을 했던 시기로 알려져 있는데,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크로이체르 소나타』, 『이반 일리이치의 죽음』 등의 작품이 쓰인 시기도 바로 이때이다.
그러나 이 무렵 삶에 대한 회의에 시달리며 정신적 위기를 겪었다. 그리하여 1880년 이후 원시 기독교 사상에 몰두하면서 사유재산 제도와 러시아 정교에 비판을 가하고 『교의신학 비판』, 『고백』 등을 통해 ‘톨스토이즘’이라 불리는 자신의 사상을 체계화했다. 사십대 후반 정신적 위기를 겪으며 삶과 죽음 그리고 종교 문제를 천착하면서 작품세계의 분수령이 되는 『참회록』(1879)을 내놓았고, 정치, 사회, 종교, 사상적 문제들에 관해 계속해서 저술하고 활동했다. 또한 술과 담배를 끊고 손수 밭일을 하는 등 금욕적인 생활을 지향하며, 빈민 구제 활동도 했다. 1899년 종교적인 전향 이후의 대표작 『부활』을 완성했고, 중편 『이반 일리치의 죽음』(1886)과 『크로이처 소나타』(1889)를 통해 깊은 문학적 성취를 보여주었으며, 말년까지도 『예술이란 무엇인가』(1898)와 『부활』(1899) 등을 발표하며 세계적인 작가로서의 면모를 과시했다. 수익은 당국의 탄압을 받던 두호보르 교도를 캐나다로 이주시키는 데 쓰였다. 그 자신은 백작의 지위를 가진 귀족이었으나, 『바보 이반과 그의 두 형제 이야기』,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람에게 땅이 많이 필요한가?』, 『세 가지 질문』 등의 집필을 통해 러시아 귀족들이 너무 많은 재산을 갖고 있기 때문에 대다수의 민중들이 가난하게 살고 있음을 비판하는 문학 활동을 하여, 러시아 귀족들의 압력으로 『참회록』과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의 출판 금지를 당했다.
하지만 독자들은 필사본이나 등사본으로 책을 만들어서 몰래 읽었고, 유럽, 미국, 아시아에 있는 출판사들이 그의 작품을 출판하여 외국에서는 그의 작품이 유명한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 극단적인 도덕가가 되어 1880년 이후에 낸 일련의 저술에서 국가와 교회를 부정하고, 육체의 나약함과 사유재산을 비난하는 의견을 발표했다. 저작물에서 개인의 이득을 취하는 것이 부도덕하다는 생각으로 자신의 저작권을 포기하는 선언을 했고(1891), 1899년 종교적인 전향 이후의 대표작 『부활』을 완성했다. 이 작품은 러시아에서 출간되자마자 독일, 영국, 프랑스 등에서도 번역되었으며, 출판으로 인한 수익은 당국의 탄압을 받던 두호보르 교도를 캐나다로 이주시키는 데 쓰였다.
1901년 『부활』에 러시아 정교를 모독하는 표현이 들어 있다는 이유로 종무원(宗務院)으로부터 파문을 당했다. 노년에 접어들어서도 왕성한 집필 활동을 통해 『이반 일리이치의 죽음』(1886), 『크로이처 소나타』(1889), 『예술이란 무엇인가』(1897), 『부활』(1899) 등을 계속해서 발표했다. 사유재산과 저작권 포기 문제로 시작된 아내와의 불화 등으로 고민하던 중 1910년 집을 떠나 폐렴을 앓다가 현재 톨스토이 역이 되어 있는 아스타포보 역장의 관사에서 82세의 나이로 영면했다. 임종 때 아내를 보기를 거부한 톨스토이의 마지막 말은 “진리를…… 나는 영원히 사랑한다…… 왜 사람들은……”이었다.
귀족의 아들이었으나 왜곡된 사상과 이질적인 현실에 회의를 느껴 실천하는 지식인의 삶을 추구했다. 그는 고귀한 인생 성찰을 통해 러시아 문학과 정치, 종교관에 놀라운 영향을 끼쳤고, 인간 내면과 삶의 참 진리를 담은 수많은 걸작을 남겨 지금까지도 러시아를 넘어 세계적인 대문호로 존경받고 있다. 인간과 진리를 사랑했던 대문호 톨스토이. 그는 세계 문학의 역사를 바꾼 걸작들을 남긴 소설가이자 인도 마하트마 간디의 비폭력 사상에까지 영향을 준 ‘무소유, 무저항’의 철학을 남긴 사상가였다. 톨스토이의 작품만이 지닌 문체와 서사적 힘은 지금 보아도 여전하다. 특히 소설 속 아름다운 풍경 묘사와 이야기의 서사성, 섬세한 인물 심리 묘사 등이 돋보이며, 오늘날까지도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세계적 문호로 인정받고 있다. (yes 24 작가소개)
그러나 그가 『노자, 도덕경』에 관심이 많았고, 또한 최초로 러시아어 완역서『노자, 도덕경』을 남겼다는 것을 아는 이들은 거의 없다. 톨스토이는 말년에 부처와 불교, 노자와 공자에 심취하였다. 특히 그는 『노자, 도덕경』의 ‘도道’와 ‘무위(無爲)’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무위사상은 바로 그의 무저항, 박애, 비폭력 평화주의와 공명하는 것이었다.
톨스토이는 러시아어로 된 『노자, 도덕경』 완역본을 희망한지라 여러 차례 번역을 시도하였다. 마침 모스코바 대학에 유학 와 있던 일본인 고니시 마스터로를, 그의 지도교수인 그로트(톨스토이 친구)를 통해서 만나, 1892년 11월부터 1893년 3월에 걸쳐서 『노자, 도덕경』의 러시아 역을 완성한다. 이것이 러시아 최초 완역 『노자 도덕경』이다. (본문 중)
21세기문화원 - 2021년 1월 20일 1쇄 인쇄
역주 - 최재목
영남대 철학과 교수. 일본 츠쿠바筑波대학원에서 문학석사·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동안 하버드대 · 도쿄대 · 베이징대 · 라이덴대 등에서 연구하였다.
‘한국양명학회장’ 및 ‘한국일본사상사학회장’을 지냈다. 전공은 동아시아 양명학 비교(동아시아사상사비교)이며, 저·역서와 감수한 책으로는 『톨스토이가 번역한 노자, 도덕경』, 『근대 일본의 양명학』, 『나는 나대로 살았다 어쩔래』(제8시집), 『풍수 환경학』, 『불교 도상학』 등 50여 권이 있다.
5. 『오강남 풀이 도덕경』
종교학자 오강남(1941~) 교수님이시다. 82세의 연세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활발히 활동하고 계신 존경하는 스승이시기도 하다. 본문에는 [오 : ~ ]로 표기.
현재 캐나다 리자이나 대학교(University of Regina) 비교종교학 명예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북미와 한국을 오가며 집필과 강연을 하고 있다. 더불어 ‘종교너머, 아하!’의 이사장을 맡고 있다.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캐나다 맥매스터(McMaster) 대학교에서 「화엄華嚴 법계연기法界緣起 사상에 관한 연구」로 종교학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그동안 북미 여러 대학과 서울대·서강대 등에서 객원교수, 북미한인종교학회 회장, 미국종교학회(AAR) 한국종교분과 공동의장을 역임했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노장사상을 풀이한 『도덕경』, 『장자』, 종교의 이해와 분석을 담은 『예수는 없다』, 『세계종교 둘러보기』 『불교, 이웃 종교로 읽다』, 『종교 너머, 아하!』가 있으며, 최근 인생과 종교에서의 깨달음을 담은 『움켜쥔 손을 펴라』, 『오강남의 그리스도교 이야기』를 펴냈다. 번역서로서는 『종교다원주의와 세계종교』, 『살아계신 붓다, 살아계신 그리스도』, 『귀향』, 『예언자』, 『예수 하버드에 오다』, 등이 있다.
현암사 – 개정판 2010년 3월 15일
6. 도올 김용옥 역주 『노자가 옳았다』
도올 김용옥(金容沃, 1948~)선생은 대한민국의 철학자, 종교학자, 사상가, 한의사, 대학 교수이다. 본관은 광산. 호는 도올(檮杌)이다. 본문 [김 : ]으로 표시
도올 김용옥 선생은 천안 대흥동에서 광제의원을 운영한 집안의 6남매 중 막내로 자랐다. 초등학교를 천안에서 졸업하고, 보성중·고등학교에서 수학하였다. 고려대학교에서 생물학을 전공하였고, 한국신학대학교 신학과에서 수학한 후 고려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였다. 1972년 9월 중화민국으로 가서 국립 타이완 대학 철학연구소에서 2년간 수학하면서 〈노자 "자연" 철학에서의 "무위" 의 기능(老子「自然」哲學中「無爲」之功能)〉이라는 논문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74년 일본으로 가서 1977년까지 도쿄 대학 대학원 중국철학과에서 수학하며 〈왕선산의 동론(王船山の動論)〉이라는 논문을 발표하며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1977년에 미국으로 가서 펜실베니아 대학교 동방학과 대학원과 하버드 대학교 동아시아어문학과 대학원에서 수학하였는데, 하버드에서 〈왕부지王夫之의 철학, The Philosophy of Wang Fu-zhi(1616~1692)〉이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1990년에 원광대학교 한의과대학 한의학과에 입학하여 한의학사학위도 취득하였다.
대학교수, 철학자, 사상가, 언론인, 한의사, 연출가, 시나리오 작가, 희곡 작가, 극단의 단원 등 다양한 정체성으로 활동하였다. 동, 서양 철학과 종교사상까지 다양한 학문적 탐구와 저작 활동을 벌였다. 1982년 9월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철학과 부교수가 되고 1985년 9월에는 동 대학의 정교수가 되었다. 1986년 양심선언(‘한국의 오늘을 사는 한 지성인의 양심선언’)을 하며 고려대학교 교수직을 사퇴한 후 여러 대학에서 철학과 문학 등을 강의했다. 1988년 무렵부터 방송 강연에 출강하였다.
그는 문화계에서도 몇 가지 활동을 했다. 악서고회(樂書孤會)라는 모임을 만들어 국악을 콘템포러리 뮤직으로 승화시키는 다양한 기초작업을 하였다. (1984년 3월~1987년 12월). 한국의 전통음악을 이끄는 대표적 주자, 백대웅, 김혜숙, 박범훈, 송방송, 이성천, 권오성, 최종민, 이보형, 양승희 등이 참여했다. 이후 한대수와 록 콘서트를 가지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도도회(檮濤會)라는 모임을 만들어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한국화 교수들과 그 대학 출신 화가들(이종상, 김병종, 김호득, 장상의, 심현희, 장혜용, 이민주 등)과 정기적인 활동을 했다. (1988년 6월~1999년 6월)
영화와 연극 활동도 했는데 대중의 사랑을 받는 마당극으로 유명한 극단 ‘미추’를 손진책, 김성녀와 함께 창단(1986년 8월)하여 전통과 현대를 접목시키는 많은 연극 작업을 했다. 《시간의 그림자》, 《그 불》 등을 직접 연출하기도 했다. 1987년에는 잠시 영화인 심포지움을 만들어 유현목, 김수용, 임권택, 이장호, 김호선, 하명중, 정지영, 박광수, 이두용, 황기성 등과 활동했다. 이후 임권택의 《장군의 아들》, 《개벽》, 《취화선》의 대본을 썼고, 특히 《취화선》은 2002년 55회 깐느영화제 감독상을 획득하였으며 《개벽》에서 타이틀롤을 맡은 이덕화는 본인(김용옥)이 진행자로 활동 중인 KBS 2TV 《도올학당 수다승철》에 게스트로 출연했다. 《취화선》과 《왕의 남자》의 자막은 직접 영역했다.
유기화학자 친형 김용준과 함께 신과학운동 세미나를 주도하고, 대우재단지원 과학사상연구회(科學思想硏究會)를 설립했다. (1984년 3월~1990년 2월) 한국의 대표적인 과학자, 과학사상가들(조순탁, 이성범, 장회익, 김두철, 서정선, 신중섭, 이봉재 등)이 참여했으며 이후 꾸준히 과학과 철학이라는 학술지를 출간했다.
1989년에는 한국사상사연구소(Korean Institute of Classical Studies)를 세워 한국고전 최초의 일자색인인 《삼국유사인득》을 출간했다. 이 작업은 후에 제자 김현 교수의 방대한 《조선왕조실록》 전체 한글번역 프로그램인 CD-ROM작업으로 이어져 한국학의 신기원을 세웠을 뿐 아니라, 한류의 원류인 사극 드라마들의 희곡작업의 근간을 이루었다.
1993년에는 도올서원을 세워 15기에 걸쳐 3,000여 명의 학생을 배출해 한학의 배경을 가진 우수한 인재들이 이 사회에서 활약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민족문화추진회의 한국고전국역사업을 지원하였고, 그 기관은 이후 한국고전번역원으로 승격되었다.
1989년에는 태권도철학세미나를 개최하여 무술의 본질과 태권도 문화의 세계화를 논하였다. 유병관, 양진방, 김영선, 김용범, 최의정, 임신자, 바비 클레이튼(Bobby Clayton), 스티븐 카프너(Steven D. Capener) 등이 참여했고 이 세미나의 결과물로 《태권도철학의 구성원리》를 집필, 출간했다. 이 작업의 정신과 성과는 이후 무주 태권도공원으로 이어졌다.
한의대 졸업 후 ‘도올한의원’을 개원하여 2년간 활동하기도 하였다. 또 언론인으로 활동하기도 했는데 중앙일보에는 《도올고함(檮杌孤喊)》이라는 칼럼을, 중앙선데이에는 《도올의 도마복음 이야기》(신발굴 성서자료)를 연재하였다. (위키피아)
통나무 – 2020년 10월 9일 출간
마지막으로 영어 번역본을 실었다. 아마도 그의 번역본을 영국의 위대한 철학자인 화이트헤드와 그의 제자인 노벨 문학상 수상자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 1872~1970)이 읽었다. 러셀은 1920년 북경대학에서 1년간 철학을 가르치기도 했다. 그리고 독일의 실존철학자 카를 야스퍼스(1883~1969), 마르틴 하이데거(1889~1976) 등이 읽었다. 아마 수많은 서양의 지식인들이 작은 분량의 동양고전을 접하고 충격에 휩싸였을 것이다.
청나라 말에 선교사로 왔다가 중국 고전의 깊은 뜻에 놀라 일부 청나라인들의 도움을 받아 중국 고전을 영문으로 번역한 제임스 레게의 영문본을 찾아 옮겨 보았다.
제임스 레게(James Legge, 1815~1897)는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난 영국의 언어학자, 선교사, 생물학자, 번역가이다. 그는 중국 고전 텍스트를 영어로 번역한 초기 번역가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Legge는 말라카와 홍콩에서 런던 선교사 협회 (1876-1897)의 대표로 봉사했으며 영국 옥스퍼드대학 최초의 중국학과 교수 (1875-1879)였다. Max Müller와 함께 그는 기념비적인 동양의 신성한 책 시리즈를 썼다. (위키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