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2016년1월 한국-필리핀 논스톱항해
2015년 겨울이었다. 50대 중반인 철없는 사내들은 한국에서 필리핀까지 요트로 항해하기로 한다. 처음부터 필리핀으로 갈 생각은 아니었다. 목적지는 팔라우였다. 2013년에 이미 필리핀 항해를 해보았기 때문에 이번에는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는 의미에서 그렇게 계획했던 것이다. 그러나 팔라우는 참가자가 귀국하거나 다음 참가자가 찾아올때 항공편 예약이 쉽지 않았다. 그리고 2차로 팔라우에서 필리핀까지 항해를 시작 할 때까지 배를 장기간 안전하게 정박해 둘 장소도 적당치 않았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항공 스케줄 편리한 필리핀으로 코스를 변경하여 다시 한 번 필리핀 항해를 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번항해는 일본과 대만의 여러 항구를 들렀던 먼저 항해와 달랐다. 필리핀 수빅까지 아무 곳에도 들리지 않고 단 한 번에 가는 것이다. 이번 항해에 사용할 배는 43피트(13미터) 레이싱 요트이다. 항해장비로는 레이더, AIS, 네비게이션, 무전기, 오토파일럿이 설치되어 있다.
이번 항해는 통영에서 출발하여 제주 동안을 통과할 것이다. 이어 남남서쪽으로 항로를 잡고 동지나해를 지나 일본 최남단 이시카키섬과 대만 사이를 통과한다.그리고 쿠루시오 해류를 거슬러 필리핀 서부해안을 따라 남하하여 필리핀 수빅까지 달려 갈 것이다. 수빅에서 입항수속을 하고, 다시 180마일을 더 항해하여 최종목적지인 부수앙가에 도착하게 되는 1550마일의 항해이다.
2016년 1월, 겨울 중에서도 가장 추운 시기이다. 그러나 겨울철 일본열도를 따라 말레이시아 동부해안까지 불어주는 북동계절풍을 타고 내려가면 최소한 세일러들이 가장 싫어하는 맞바람은 없을 터이기 때문에 조금은 마음이 가볍다.
한 달 이상 되는 참가자모집 사전 공지기간동안 많은 분들이 참가를 타진해왔지만 장기간 항해를 하는 특성과 험난한 바다를 나아가는 만큼 서로간의 팀웍과 바다 경험 등을 고려해 세 사람을 선발하게 되었다.
그 세분은 바로 전호표씨, 임우철씨, 황윤구씨다. 북경에서 사업을 하는 전호표씨는 한려수도3박4일의 항해에 참가한 적이 있고, 경북 후포에서 오신 황윤구씨는 오사카에서 통영까지의 항해에 참가한 경험이 있다. 그리고 포항에서 사업을 하는 임우철씨는 오까야마에서 부산, 후쿠오카에서 부산, 후쿠오카에서 통영 등 항해경험을 통해서 조금씩 항해술 쌓여가는 세일러이다. 그러므로 다들 나와는 구면인 하고지비세일러들이다.
현재 운영하는 ‘한산요트장’ 을 장기간 비워두어야 하는 염려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언제나 항해를 우선에 두면 계획을 추진할 수 있게 된다. 나도 그러하지만 생업이 있는 참가자분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뭔가 흔적을 남길만한 일을 한다는 것' 그것은 또 다른 소중한 부분을 포기할 수 있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이기적이고 가치 있는 추억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항해에 함께한 우리 네 사람은 용감한 사람 즉 용사임에 틀림이 없다.
객관적인 항해는 6일부터 시작되지만 사실은 항해를 계획하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어쩌면 출발을 앞둔 그 기다림의 시간이 가장 설레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2016년 1월 5일 이번 항해를 함께할 요트 ‘스프릿오브코리아’호를 한산요트장으로 찾아온 전호표씨와 함께 통영 금호마리나 앞으로 옮겼다. 그리고 잠시 후 포항에서 함께 버스를 타고 온 임우철씨 와 황윤구씨가 합류했다.
일단 세관으로 가서 내국적 레저선박인 선박의 자격을 국내선인 내항선에서 외항선으로 자격변경을 했다. 그런 다음 출항신고서, 선원명부, 선용품목록, 선원휴대품목록을 제출하여 배의 출항신고를 한다. 보통은 신고가 바로 접수되고 출항허가서가 바로 나오기 마련인데 별다른 부족사항이 없는데도 시간을 끌게 되어 나중에 배에서 이 출항증명서를 기다리느라 장시간 대기하게 되었다.
다음은 검역소로 가서 검역절차를 밟고 마지막으로 출입국관리소에 가서 출국신고를 한다. 여권에 스템프를 ‘꽝’하고 받고나면 우리는 출국을 할수 있게 된다. 그리곤 대형마트에 들러 2주간 먹을 식료품을 구입하여 우리가 타고 갈 ‘스프릿오브코리아’호에 선적을 마치니 벌써 어둑어둑해진다. 기상대 예보로는 오늘이 올해 들어 최고로 추운 날씨라고 한다. 그래도 염려보다는 따뜻한 남국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
<드디어, 출발>
허파 속으로 들어오는 공기가 방금 문을 연 냉동실의 허연 서리 김처럼 차가운 날씨지만 오늘 만큼은 글래디에이터와 같은 심장이 뛴다. 그래서 누구에게서도 움추려지는 기색은 조금이라도 찾아볼 수 없다.
8시경 배에 모여 항해에 대한 브리핑을 시작했다. 제일먼저 기상이다. 우리가 내려가는 동안 어떤 바다를 만날 것인가 또 그 기상에 대비해서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항해에 임할 것인가를 제일 먼저 함께 논의했다. 최근 몇 일간 훈훈했던 날씨가 어제부터 불기 시작한 북서풍 때문에 심기를 불편케 할 수도 있지만 남쪽으로 내려가야 하는 우리들에게는 좋은 바람이 아닐 수 없다. 기상예보로는 출발과 함께 시작된 북풍은 삼일정도 계속되다가 대만부근에서 이틀정도 약해진 후 다시 대만남단에서 필리핀까지 순풍이 계속된다고 한다. 바람이 꽤 강해 2미터이상의 파도가 평균이고 30노트이상의 바람에는 3-4미터의 높은 파도가 예상되어 몸이 불편해질수있지만 딱 그만큼 속도가 잘나서 항해시간이 줄어들기 때문에 나쁜 일만은 아닌 것이다.
그리고 안전에 대해서도 각별히 신경을 써서 얘기를 나누었다. 수온이 낮은 만큼 낙수사고 시 저체온 증 때문에 대처할 수 있는 상당히 긴박해 구조가 어려울 수 있으며, 파도와 함께 날뛰는 배위에서는 순간적인 실수로 큰 부상을 당할 수도 있다. 배의 장비들에 대해서도 간단히 설명을 해주었다.
화장실 사용법 설명은 협박과 함께 진행된다. 만약 잘못되어 자기가 본 용변을 다른 사람이 치워주어야 하는 일이 생기면 정말 입장곤란한 일이 되니 절대로 사용한 휴지는 변기 속에 넣지 말아달라고 힘주어 당부한다. 나머지는 가는 동안 시간이 많으니 그때 더 상세히 배워보기로 한다.
9시경 출발을 기념하는 사진을 찍고 우리는 필리핀을 향해 돛을 올렸다. 한국에서 필리핀으로 기항 없이 가는 요트항해는 처음인 것으로 안다. 이번 항해가 우리들이 무의식중에 가지고 있는 한국과 대만 그리고 필리핀까지의 요트항해거리를 훨씬 가깝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언제든 한 10일 정도면 필리핀까지 내려갈 수 있는 그럼 마음이 들게 만들어 주는 그런 항해 말이다.
막연하게 느껴지던 항해를 실현가능한 구체적인 사실로 많은 사람들에게 인식시켜주는 그런 선구적인 항해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나 역시 이번 항해를 통해서 대만, 필리핀, 말레이시아, 태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지역이 이전보다 훨씬 가깝게 느껴지게 될 것이다. 쉽게 표현하자면 생각속의 ‘나와바리’가 넓어지는 것이다. 생각이 넓어지면 곧 세계, 즉 마음속의 지구가 조금씩 좁아지는 그런 기분을 느끼게 된다.
통영항으로 나와 1단 축범된(바람의 세기에 따라 3단까지 돛을 축범 할 수 있다) 메인세일(주돛)을 끌어올렸다. 북풍계열을 바람이어서 육지가까이에서와는 달리 먼 바다로 나가면 바람이 세어 질것이다. 앞쪽 보조 돛도 활짝 열어 한산도와 미륵도 사이의 통영수로를 4노트속력으로 내려간다. 차가운 북풍이지만 바람을 등지고 가니 그다지 추위를 느끼지 못한다.
잠시 후 용초도와 비진도를 지나 바다가 넓어지니 바람이 돛에 올라타며 배가 물위를 미끄러지듯 달리기 시작한다. 속도를 보니 6노트를 넘어선다. 이맘때쯤 포항에서 온 임우철씨가 지역 특산물로 가져온 과메기를 꺼내 놓는다. 기다란 과메기를 초장에 찍은 다음 배추에 사서 입으로 가져간다. 소주 한잔에 안전항해의 염원을 담고 건배를 한다. 참 이번항해에 준비한 술은 소주 됫병2개다. 내가 술을 안마시다보니 (35년간 애주하다 40일째 금주 중) 술을 준비하는데 적극적이지 못했는데 다른 분들도 그다지 알콜에 애착을 갖는 사람이 없다.
12시경, 좌사리도를 지나 남남서쪽으로 항로를 잡았다. 제주를 30마일쯤 동쪽으로 비켜가고 대만을 서쪽에 두고 나아갈 수 있도록 방향을 잡았다. 기온은 9도이다. 바닷물 온도의 영향인지 육지보다는 기온이 높다.
15시경, 임우철씨가 오이양파무침과 계란찜등 야심차게 점심을 준비했다. 세 사람 중에서는 그래도 바다 경험이 제일 많아서 보란 듯이 선발로 나섰는데 요리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바람에 멀미 기운을 느끼는 것 같다. 조리된 식사를 다들 제대로 못한다. 배에서의 요리는 빨리 만들고 그리고 들고 먹을 때 편한 메뉴가 좋다. 상선 경험이 있는 황윤구씨는 지난번 오사카 항해 때 멀미로 고생을 한 경험 때문에 멀미약을 붙이고 나와서인지 식사를 한다. 전호표씨도 상태가 심상치않다.
저녁 무렵 예보와는 달리 홀연히 바람이 사라졌다. 앞전 바람이 만들어 놓은 파도 때문에 배가 쉴 새 없이 요동친다. 한 시간 정도 바람을 기다리며 엔진을 가동한다. 저녁에 첫 야간 견시는 임우철씨가 맡았다. 요리할 때 덮쳐온 멀미 기운 때문에 얼굴빛이 좋지않다.
20시, 속도는 7노트고 파고는 1.5미터 기온은 10도이다. 왼쪽 쓰시마쪽 저 멀리 갈치잡이배 인지 오징어잡이 배인지 불빛들이 환하다. 1시 방향에 제주도가 있지만 보이지 않는다.
21시, 바람이 거세져서 메인세일을 3단으로 축범을 시도했다. 바람이 약하면 돛을 넓게 펼치고 바람이 강하면 돛의 면적을 줄이는 것이 범선 항해의 기본이다. 그런 과정에서 보니 메인세일과 마스트를 연결한 슬라이드가 몇 개 부서져있다. 강풍속이라 수리하는 것을 포기하고 메인세일을 전부 내려 버렸다. 짚 세일만으로 항해를 하는데 선속이 7노트를 오버한다. 전호표씨는 멀미기운 때문에 선실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추위에 노출된 체 자기 당직이 아닌 시간을 보내고 있다. 당직인 황윤구씨 멍하니 있다가 갑자기 전광석화처럼 몸이 튕겨나가며 선체 밖으로 머리를 내민다. 난 반사적으로 그의 다리를 잡았다. 그의 몸 전체가 고함소리와 함께 몇 번인가 덜썩 거린다. 그리곤 언제 그랬냐는 듯 또 다시 견시를 계속한다. 멀미가 계속되자 더 이상 나올게 없는 상태에서 위장만 쥐어 짜게 되니 포효하는 소리만 점점 더 커진다. 그런 소리를 들을 때면 나도 모르게 얼굴이 쪼여 오는듯한 인상이 되고 만다. 가련한 황윤구씨의 멀미증세는 애석하게도 시간이 흘러야 나아질것이다. 그것도 삼일. 그 삼일을 잘 버텨주길 바랄뿐 그를 위해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없다.
바람25-30노트, 파고가 3미터를 넘어선다. 사방에는 백파로 가득한데 그나마 밤이라 않으니 차라리 낫다.
03시경. 황윤구씨가 급히 부르는 소리에 콕핏으로 올라가 확인하니 중국 어선 한 척이 좌후현으로부터 접근한 뒤 10미터 근접항해를 하여 우리 앞쪽으로 가로 질러 갔다. 상당히 위협적이었다.
'아니 왜 이런 상황이 될 때까지 미리 말 안했어요?'
목소리가 높아졌다.
‘다음부터는 조금만 이상해도 알려주세요, 지금 내가 여기에 있는 이유는 바로 이런 상황을 같이 판단하여고 있는 거 아닙니까?’
정색을 하고 이야기를 해서 분위기가 서먹하게 되지만 충돌에 관한 것은 우리 모두의 목숨과 연관된 일이어서 신경이 곤두서는 것이다.
03시 이후부터는 멀미가 시달리고 있는 전호표씨가 견시를 자청하고 나섰다. 취약시간인데 괜찮을까 걱정이다. 3명의 크루들이 2시간씩 3교대로 당직근무를 서고 조금만 수상한 기미가 보이면 선장인 내가 같이 확인하는 스타일로 항해를 하고 있다. 중간 중간 어선들이 많이 나타나서 일어나서 같이 배를 확인해가면 항해했다.
2016년1월7일(항해 둘째 날)
09시 출발한지 24시간 꼭 하루가 흘렀다. 하루 동안 146마일을 내려왔다.
11시경 좌현 저 멀리 상당한 수의 어선군단이 보였다. 기온은 10도, 속력은 6노트, 먹구름이 가득한 우울한 날씨다. 점심은 소불고기 덮밥을 먹었다. 멀미 기운이 있는 황윤구씨와 전호표씨는 여전히 잘 먹지 못한다.
저녁 무렵 수백 아니 수천척의 어선들을 나타났다. 그 어선들 사이를 골목길을 지나가듯이 요리조리 피해간다. 임우철씨 근무시간이었는데 내가 머리를 내밀고 앞을 확인하며 피해갈 각도를 불러주면 임우철씨가 오토파일럿의 방향을 조정하며 나아간다. 10마일 원안에 최소 수십 척의 배들이 있다.
바람이 강해지면 오토파일럿이 힘을 못 쓰는 일이 있었는데 중심을 잡아주는 센스를 잘 조정하고 나니 정상적으로 작동되었다. 원드베인으로 항해를 하면 전기를 소모하지 않아 좋지만 장애물이 너무 많은 곳이어서 상대적으로 침로를 변경하기 용이한 오토파일럿으로 교체한 것이다. 오토파일럿은 모니터의 버튼을 눌러 좌우로 각도만 틀어주면 된다. 1도, 또는 10도씩 변침할 수 있는데 늘 뒤바람이 부는 상황을 생각해서 배가 와일드자이빙(의도하지 않게 바람방향이 바뀌게 되는 메인세일이 붐이 넘어와 트러블을 일으킴)되어 붐이 생각지 않게 반대편으로 넘어가지 않게 되도록 주의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AIS(항해정보자동송수신시스템)상에 배들이 엄청나게 나타나 있다. 이곳은 AIS가 없으면 항해가 상당히 힘들 수 있는 아주 복잡한 곳이다. 제주에서 남동쪽 3-40마일쯤 떨어진 곳이다. 어선들은 항해등이 아닌 작업등을 환하게 밝히고 3-8노트 속도로 이동하고 있다. 같은 모양의 배로 같은 곳을 향해 끌고 있는 것을 보니 쌍끌이 어선인 것 같다. 계기를 통해 가까이 나타난 배가 어떤 상황인지 정보를 얻기도 하고 머리를 내밀어 직접 확인도 해가면서 그 사이를 빠져 나온다. 가끔은 그런 배 사이를 피해 수 마일씩 돌아가는 상황에 놓이기도 한다. 작업선들은 항해표시등 보다는 작업등을 주로 환하게 밝히고 달리기 때문에 도대체 어디 쪽으로 향하고 있는지 분간을 할 수 없다. 자기들은 익숙하겠지만 처음 만나는 우리는 수 시간 그런 상황에 시달리고 나니 울화통이 치밀어 오른다.
21시쯤 되어서 어선들이 뜸해졌다. 그리고 다시 평온한 항해가 시작되었다. 파고 2.5미터 속도6.5노트 기온은 12도이다. 한국은 맹추위가 덮쳤다고 한다. 갑자기 AIS상에 표시물들이 많이 나타났는데 대부분은 선박이 아니고 그물을 내려놓은 부이였다. 속력이 빨라지니 중립상태에 있던 프로펠라가 돌아가기 시작해서 ‘웅웅’거리는 소음이 들렸다. 기어를 후진으로 물려놓아 소음을 잡았다.
다시 엄청난 수의 배와 부이들이 나타났다. 피해 나갈 장애물이 너무 많아 갑작스런 변침에 대비해서 엔진을 시동을 걸어두었다. 잠시 뒤 오른쪽에서 다가오는 배를 피해가다 엔진이 멎어버렸다. 기어도 물렸는지 꼼짝 하지 않는다. 지금은 파도가 높아 내 몸 하나 가누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감기로 인해 컨디션도 좋지 않다. 바람이 좀 잦아들면 확인해봐야겠다.
08일(항해 셋째 날)
멀미 증상이 좀 호전되었다고 판단한 황윤구씨가 아침으로 밥과 된장국을 준비하다 다시 덮친 멀미에 다운되었다. 멀미라는 것은 바로 옆에 대기하고 있다가 조금만 빈틈을 보이면 어느새 들어와 있다. 자신의 한계를 알고 미리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조금 호전되었다고 느끼다가도 불현듯 머리가 띵하고 어지러워지며 속이 매슥거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09시, 하루 동안 144마일을 달렸다. 이틀간 총 290마일을 달린 것이다. 풍속 20노트, 파고 2.5미터, 선속6노트, 기온 12도 구름량은 90%정도이다.
김치찌개를 끓여 아침을 해결했다. 메인슬라이드를 수리했다. 그리고 메일세일을 올렸다. 엔진수리를 시도했지만 쉽지 않다. 좀 더 두고 보기로 했다. 기어는 물려서 꼼짝하지 않는다.
오후가 되어 날씨가 따듯해지고 바람이 잦아져서 배를 세우고 물속으로 들어가 확인해보기로 했다. 파도는 1.5미터로 조금 약해졌지만 배가 파도위로 들렸다 내려가길 반복하면서 좌우로 심하게 흔들려서 작업하기가 만만치 않다. 임우철씨가 들어가 보겠다고 자청한다. 수영을 잘하느냐고 물으니 고개를 끄떡이며 그렇다고 한다.
배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선장의 입장에서 이런 상황에서 여러 가지 고민을 하게 된다.
‘최선의 방법이 뭘까?’
선저의 트러블을 해결해야 엔진을 사용해야 할 일이 생길 때 바로 대처할 수 있다. 하지만 그 트러블을 해결하려고 사람이 다치거나 더 큰 문제가 생기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래도 경험이 많은 내가 들어가는 것이 나을 것 같지만 배 아래쪽에서 작업을 하다가 사람이 배에서 분리되어 떠내려간다든지 하는 사고가 발생하면 그기에 대처해야 한다. 더우기 감기에 몸 상태가 좋지 않은 상태라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고민스럽다.
해상상태가 좋지 않을 땐 잠수 실력도 중요하지만 수영을 잘해야 하고 그것도 거친 바다에서의 경험이 많아야 한다. 임우철씨가 몸에 로프를 묶고 들어간다. 로프가 선저 어떤 곳에 걸리게 되어 못나오면 칼로 끊고 탈출해야 한다고 일러준다. 조금이라도 힘들면 나오라고 얘기한다.
임우철씨가 두 번 정도 그물을 잡고 프로펠라로 접근해보지만 해상 상태가 좋지 않으니 몸을 가누기도 힘들고 물속으로 들어가면 두려움이 찾아오기 때문에 10초를 견디지를 못하게 된다. 바다 상태가 좀 호전되면 다시 시도해보기로 하고 일단 철수한다.
저녁때가 되어 황윤구씨가 라면을 끓였다. 조금 멀미증상이 나아진듯하다. 출발할 때 걸린 감기 때문에 나는 오히려 상태가 좋지 않다. 코는 막히고 머리는 아프고 조금만 움직여도 멀미 기운이 느껴진다. 약을 먹어도 좀 체로 두통을 잡을 수가 없다. 저녁부터는 바람이 약해지서 속도가 5노트대로 떨어졌다. 기온은 여전이 12도이다. 또 하룻밤이 무사히 지나간다.
9일(항해 4일째)
아침식사로 황윤구씨가 된장찌개를 끓였다. 멀미기운만 없다면 정말 부지런할 사람이다. 배위를 이동하고 다닐 때 파도가 높으니 추락위험이 있다. 파도가 2-3미터이고 바람도 강하기 때문에 일단 사람이 추락하게 되면 구조하기가 쉽지 않다. 모든 크루가 동원되어 라이프라인에 가는 끈으로 네트를 만들었다.
배에서 떨어지더라고 노끈으로 배와 연결만 되어 있으면 금방 구조된다. 하지만 만약 혼자서 항해를 한다면 이마저도 믿어서는 안 된다. 달리는 배에서 물에 떨어지면 설사 로프로 연결되어 있다하더라도 배위로 올라갈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그래서 배위를 걸어다닐 때는 최대한 자세를 낮추고 한순간도 손이 지지할 수 있는 물체에서 떨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 최고다. 나도 다소 덜렁거리는 성격이지만 이 원칙만은 항상 고수한다. 생명에는 하나 더 여유가 없는 것이다.
10시 30분경, 북위 28도24분, 동경125도08분 위치에서 우리나라 칼치잡이 어선을 만났다. 이곳에는 대부분이 중국 어선들이었는데 한국어선을 만나니 무척 반가웠다. 무전으로 연결되어 얘기를 나누었는데 첫마디가 고기 좀 줄테니 가져가라는 것이었다. 참으로 인정스러운 민족성임에 틀림없다. 프로펠라에 그물이 걸린 상태라 고기를 받으러 갈 수는 없지만 받은 것 같은 기분이라고 말해주며 배는 남쪽으로 달려 그 배와 점점 멀어진다.
50피트쯤 되는 어선이었는데 놀랍게도 혼자 작업을 한다고 한다. 주변에 선단으로 나온 선박이 2척 더 있다고는 하는데 시야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주변에 배들이 없어 무전기를 16번 비상주파수(모든 선박은 이 주파수대에 대기한다.)에 그대로 두고 했기 때문에 무전이 듣기는 반경 안에 있었다면 그들도 우리의 대화를 들었을 것이다. 작업을 다 마치고 홈포터인 서귀포까지 돌아가는데 만도 이틀이 걸린다고 한다. 생선이 많이 잡혀 돈벌이가 많이 되길 진심으로 빌어준다.
만3일이 지나고 4일째 항해가 시작된다. 황윤구씨 전호표씨 임우철씨 3분 모두 상태가 상당히 호전되었다. 어제는 110마일 밖에 내려가지 못했다. 총 항해거리는 400마일이다. 바람이 약해져서 제네커(제노아세일과 스피네커의 장점을 반씩 이용한 세일)를 끌어 올렸지만 속도가 잘나지 않는다.
14시경, 기다렸던 다랑어 한 마리를 황윤구씨가 낚아 올렸다. 임우철씨가 잽싸게 낚아채어 반은 포를 떠서 회를 치고 반은 구워서 점심 반찬으로 먹었다. 속도가 점점 더 떨어져서 엔진 가동을 위해 그물을 제거할 필요성을 느낀다. 야간에 바람이 줄어들게 되면 어두워서 작업을 하지 못하고 돛만 펄럭이며 괴로운 밤을 보낼 것이 틀림없다. 더우기 돌아가는 비행기 표를 이미 예매해둔 상태이기 때문에 넉넉하게 여유를 즐길 수만은 없다. 이번에는 북경에서 오신 전호표씨가 들어가 보겠다고 한다. 참으로 대단한 용기이다. 하지만 내 마음은 편치만은 않다. 연습이 아니라 실전이고 자칫하면 생명을 잃을 수 있는 그런 일이기 때문이다. 파도는 여전히 1.5미터정도로 녹녹하지 않다.
그래도 이렇게 출렁이는 한 바다에서 들어간다고 하니 어쩌면 숨겨놓은 실력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입수할 수 있도록 밧줄이며 칼 등을 챙겨준다. 성큼 성큼 겁 없이 들어가는 것을 보니 다소 안심이 된다. 하지만 처음 입수로 머리가 긁히면서 머리카락 사이로 두 줄기의 붉은 선혈이 보인다. 그래도 괜찮다며 다시 배 밑바닥으로 들어가 보지만 파도로 배가 크게 일렁이니 자기 몸도 가누기도 쉽지 않다. 전호표씨가 포기하고 아쉬운듯 배위로 올라온다. 그 순간에도 나는 어떤 것이 바른 판단인가를 쉴 새 없이 생각한다. 그냥 가볼까 하는 생각도 있지만 전체적인 스케줄상 속도가 떨어지면 모든 것이 엉망이 되고 만다는 생각이 더 크다. 작업을 못한 상태에서 밤이 되어 바람이 없어지면 이만 저만 괴로운 일이 아니다. 결국은 내가 들어가 보기로 한다. 감기몸살기운과 두통이 있어 미루었지만 더 이상은 피할 곳이 없는 것이다. 챙겨간 슈트를 입고 선미쪽으로 가서 물속으로 뛰어 들었다. 30분쯤 들락거리며 프로펠라부터 샤프트 몸체까지 둘둘 말고 있는 그물을 제거했다. 부표가 많은 곳을 통과할 때 특이하게도 부이색깔이 하나는 붉은색이고 하나는 녹색이었는데 지금생각해보면 그 사이가 그물이 있는 것 같다. 그곳을 통과할 때 걸린 것이 분명하다. 물속에선 긴장해서 잘 몰랐는데 계속해서 크게 일렁이는 파도 때문에 바닷물도 조금 마시고 힘을 몰아서 썼더니 머리가 더 아프다.
16시부터 엔진을 가동하고 5노트가 조금 넘는 속도로 내려간다. 저 멀리 태평양 쪽에서 동풍이 불어오면서 기온이 15도로 올라갔다. 저녁9시경 황윤구씨 견시 시간동안 칼치잡이로 보이는 한 무리의 선단을 비켜 내려갔다. 칼치잡이배들은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긴장이 좀 덜 되는 편이다.
1월10일 일요일(항해 다섯째 날)
새벽 1시경 쌍끌이 선단을 비켜 옆으로 크게 돌아갔다. 새벽 4시 엔진이 꺼졌다. 기름이 떨어졌다. 그럴 리가 없는데 이상하다 하고 보았더니 '오마이갓!' 출발전 직원이 물통에 연료를 가득 넣었던 것이다. 기름이 물보다 가벼워서 처음에 물을 쓰면서도 전혀 그런 사실을 몰랐다. 임우철씨와 함께 연료를 보충하고 에어뻬기를 했다. 연료필터를 풀기 쉽지 않았지만 임우철씨가 로프를 이용해 쉽게 풀었다. 손재주가 좋은 사람이다. 이 일를 계기로 사람들이 세 사람중 경험이 많은 임우철씨를 부선장으로 호칭하기 시작했다. 그만큼 임우철씨는 배에 일어나는 자질구레한 트러블을 잘 해결했다.
새벽5시 한 시간쯤 엔진으로 가다 바람이 살아나면서 엔진을 중지하고 메일세일을 전부 올려 5노트 속도로 나아간다.
08시경 아침식사로 전호표씨가 미역국을 끓였다. 황윤구씨가 다랑어를 두 마리 잡아 라이프라인에 널어두었다. 곧이어 80센티급 만세기도 한 마리 잡았지만 부선장인 임우철씨가 맛이 없는 생선이니 버리라고 하자 실망한 표정으로 바다로 돌려보내었다.
곧 바람이 강해진다고 예보되기 때문에 바닥에 고인 빌지를 닦아내고 넘어질 만한 물건들을 정리했다. 속도는 5.7노트, 구름80%, 대만 북단까지 150마일쯤 남은 곳이다. 기온은 21도로 치솟았다. 4일째 항해는 117마일을 달려 총 항해거리는 517마일이 되었다.
아침부터 바람이 좋아 메인세일 만으로 선속이 8노트를 넘나든다. 동풍이 불어 기온이 더 상승된 것 같다. 태평양쪽에서 불어오는 따뜻한 바람 때문일 것이다. 배가 파도를 타고 미끄러질 때는 속도가 상당히 빨라진다.
16시경 어둡기 전에 메인세일을 3단 축범을 해두었다. 짚세일과 함께 여전히 8노트 전후로 배가 잘도 달린다. 임우철시가 샌드위치를 만들어 저녁을 준비했다. 21시 불현듯 바람이 사라졌다. 먼저 불었던 강풍 때문에 일어나 있는 파도가 있고 바람이 없어지니 배가 기분 나쁘게 흔들린다.
엔진시동을 걸었지만 기어가 들어가지 않아 애를 먹었다. 다들 저녁을 안 먹는다고 했지만 약을 먹기 위해서 칼국수 하나를 끓여 먹었다. 감기약과 두통약을 계속 먹지만 호전 되지 않는다. 밤인데도 선실안의 온도가 25도로 올라 조금만 움직여도 후덥지근하다.
11일(6일째 항해 )
어제 저녁 9시부터 아침 7시까지 바람이 없어 기주를 했다. 4.5노트다. 출발할 때 검색했던 기상정보와 대체로 일치한다. 아침은 전호표씨가 땡초를 넣고 꽁치김치찌게를 끓였다. 어제 하루 동안 132마일을 내려와 총 항해거리는 660마일이 되었다.
아침을 먹고나니 바람이 불기 시작해서 다시 범주를 시작했다. 점심때는 임우철씨가 샌드위치를 준비했다. 저녁 무렵 북풍이 20노트를 넘어선다. 파고는 3미터, 속도는 9노트전후로 과속수준이다. 파도위로 배가 올라타서 아래로 미끄러져 날아갈 때 15노트를 오버한다. 대만동부를 통과하여 남단을 향해 나아간다. 높아진 파도에도 다들 마음 편하게 여기는 것 같다. 거의 적응이 된 상태이다. 난 출발할 때 걸린 감기 때문에 계속 두통에 시달리고 있다. 지금 이배에서 컨디션이 가장 나쁜 사람은 나일지도 모른다. 저녁에는 많이 달렸지만 새벽에는 바람이 약해 속도가 떨어졌다.
12일 (7일째항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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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동안 무려 170마일이나 달렸다. 기온은 25도, 파고는 3-4미터, 바람은 25노트, 바람을 왼쪽 뒤편에서 받다가 다시 오른쪽 뒤편에서 오게 하기 위해 자이빙을 반복하며 항해하다 짚과 메인을 각각 다름 방향으로 펼쳐 버터플라이를 만들었다. 스핀폴을 이용해서 짚세일이 펄럭거리지 못하게 세팅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크루징하는 요트는 짧은 스핀폴을 하나 준비해서 사용하기도 하는데 긴 폴대를 세팅하느라 진땀을 흘렸다. 특히 배가 쉴 새 없이 좌우로 흔들리기 때문에 더 힘들었다. 그래도 작업한 보람으로 짚세일의 펄럭임이 없으니 마음이 편하다. 평균 7노트의 속력으로 남하한다.
아침은 전호표씨가 준비한다. 황윤구씨가 직접 농사 지어 가져온 돼지감자로 된장찌개를 끓였다. 높은 파도에 배가 2-30도씩 드러누운 상태에서 앞뒤로 배가 파도에 올라탔다 쳐 박기를 반복하는 그런 상태에서 식사를 준비한다는 것은 결코 호락호락한 일이 아니다. 전호표씨는 출발할 때 잠시 멀미기운이 있었지만 그 후 험한 파도에도 잘 적응하고 있다. 옷도 자주 갈아입고 양치도하며 육지에서의 일상생활과 비슷하게 한다.
콕핏에서 견시를 할 때는 속이 괜찮다가도 선실 안에서 식사를 준비하거나 다른 일을 해야 할 때는 금방 속이 나빠지게 마련인데 잘 적응하고 있다. 선미에서 바닷물로 샤워를 했다. 거의 일주일 동안 우리는 몸에 물기를 뭍이지 않았다. 전호표씨 임우철씨가 먼저하고 다음 내가 했다. 물이 따뜻했다. 그러나 바람을 맞으면 여전히 차가웠다.
점심은 라면을 끓여 밥과 함께 먹었다. 점심 겸 저녁이었다. 낮 동안은 바람이 많이 누그러졌다. 저녁 무렵부터 바람이 강해져서 황윤구씨가 다시 멀미에 시달리고 있다. 중간에 멀미기운이 조금 가셨을 때 이젠 끝났다라고 생각하고 너무 무리한 탓일까 선실에 들어가서 계속 잠을 잔다. 건강이 썩 좋지 않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에 슬슬 걱정이 된다. 한밤중에 황윤구씨가 나를 찾았다. 노랗게 변한 얼굴로 콕핏으로 나와서 더 이상은 못 견디겠다면서 가까운 곳으로 내려주면 좋겠다고 한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이 된다. 대만 남단으로부터 이미 40마일쯤 내려온 상태라 바람을 거슬러 올라가기는 실제적으로 힘들고 대만과 필리핀사이에 섬들이 있지만 그곳에 내려주었다가는 본토까지 혼자서 올수 있을까 걱정이 된다. 필리핀 본토의 개항지 까지는 적어도 하루나 이틀을 더 가야 하는데 큰일이다. 일단 알겠다고 안심시키고 경과를 두고 보기로 했다. 그런 요청이 있고 난 다음부터는 가능한 세일을 편하게 세팅해서 배가 덜 요동치게 만들었다. 속도보다는 지금은 한사람을 회복시키는 게 우선인 것이다. 자정 무렵 엄청난 비가 내리기 시작해서 3시간동안 계속되었다. 그러다가 비가 그치자 다시 바람이 슬슬 일어난다.
13일(항해 8일째)
어제는 142마일을 항해했다. 972마일을 항해하여 첫 기항지인 수빅까지 384마일이 남았다. 속도는 5.8노트 기온 25도이다. 아침은 전호표씨가 김치밥국을 끓였다. 반갑게도 황윤구씨가 컨디션을 조금 회복해서 같이 식사를 했다. 어젯밤에는 너무 걱정이 된 나머지 자는 사람의 발을 흔들어 생사여부를 확인하기도 했었다.
배는 계속 양쪽으로 날개를 펴고 잘 나아간다. 아침동안 파란하늘, 적당한 바람, 높지 않은 파도, 진짜 남국의 쾌청한 날씨다. 사진을 찍으며 한껏 기분을 업 시킨다. 필리핀 북단의 육지까지 거리가 불과 90마일이다. 저녁이면 등대가 보일지도 모른다.
오후3시경, 어묵과 떡국, 햄을 넣고 떡복기를 만들고 고구마를 삶아먹었다. 밤 무렵에는 필리핀 본토에 접근했는데 영해 밖으로 많은 어선들의 불빛이 보였다. 중국 배 일거라는 생각이 든다. 밤에는 수많은 별들이 아래로 내려앉았다. 날씨가 너무 좋기 때문에 별이 그만큼 가까이 느껴지는 것이다. 육지 불빛도 기상에 따라 멀게 보이기도 하고 가깝게 보이기도 한다. 그것 때문에 가끔 판단 미스를 하기도 한다.
황윤구씨 자신은 별로 아는 게 없다고 하는데 막상 이야기가 시작되면 연예계든 여행이든 박식하기가 이를 때가 없다. 티벳 오지를 혼자서 여행한 적이 있다고 한다. 별에 대해서도 아는 게 많다. 카시오페아 별 이야기를 잠시 들었다. 이야기를 하면 멀미 기운을 잊게 된다. 그의 멀미 호전을 위해서 맛 장구 치며 열심히 들었다.
바람이 20-25노트로 분다. 파도는 3미터 정도인데 너울파도가 크게 일어난다. 뒤에서 파도가 따라올 때는 3층높이 쯤 되어보이는 거대한 벽이 올라섰다가 배 바로 앞에서 쏟아진다. 배의 속도가 같이 나주면 파도로부터 도망을 가게 되지만 그렇지 못할 때 파도가 콕핏 안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뽀송뽀송하게 말려놓은 콕핏 바닥도 젖고 발도 젖는다. 차갑지는 않지만 발이 젖으면 기분까지 젖는 느낌이다.
14일 목요일(항해 9일째)
‘우웃!’ 어제는 180마일이나 달렸다. 최고 기록이다. 남은 거리 190마일 기온은 27도이고 하늘은 맑았다. 임우철씨가 정성을 다해 물 국수를 만들었다. 콕핏에서 그릇에 나누는데 아무래도 4명이 먹기에 적어 보인다. 그래도 4등분해서 허기라도 면해 볼 요량으로 분배를 하는데 그 때 마침 뒤따라오던 파도가 콕핏을 덮쳤다.
'질투인가?'
먼저 퍼놓은 국수 한 그릇이 쏟아지며 콕핏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는다. 밧줄과 국수의 엉킴을 보고 있노라니 기분이 좋지 않다. 배가 흔들리면 조심해도 국수를 밟게 된다. 한 그릇이 사라져서 양이 더욱 작아져 두 사람이 먼저 먹고 다시 좀 더 끓여 두 사람이 뒤에 먹기로 한다. 배가 한참 고플 땐 질이 조금 떨어지는 것은 참을 수 있지만 양이 적은 것은 참기 힘들다. 하늘은 파랗고 군데군데 하얀 구름이 떠 다닌다.
어제 저녁에 일어난 파도가 3-4미터로 높게 이는데 바람이 약해서 배가 속력을 못 내기 때문에 파도에 따라잡히는 일이 잦아져서 바닷물이 콕핏으로 넘쳐들어 오는 일이 자주 일어난다. 그래도 선속은 7노트 정도를 유지한다.
낮 동안 최고의 날씨를 경험한다. 그 바다를 배경으로 한국 필리핀 항해의 성공을 기념하는 한발 빠른 기분을 만끽한다. 한국에서 필리핀까지 논스톱 항해 참가한 분들도 그렇지만 나도 기분이 상당히 좋다. 경험이 풍부하지 않은 크루들과 항해하는 것도 걱정되는 부분 중에 하나였는데 기대 이상으로 다들 잘 적응해주었다. 장거리 항해 때에는 잔잔한 테크닉보다는 크루들 간에 화합과 분위기. 그리고 얼마만큼 일상적인 행동을 할 수 있느냐가 더 관건이 되는 것이다. 그래야 각자 맡은 임무도 할 수 있고 다른 크루의 힘을 빌리지 않고 자신의 일을 처리할 수 있는 것이다.
다들 선수로 나가 세일그늘에서 상큼한 기분으로 견시를 한다. 밤에는 바람이 없어져서 엔진사용을 시작했다. 필리핀 연안으로 붙게 됨으로서 바람이 점점 약해진다.
15일(항해 10일째)
컨디션이 많이 회복된 황윤구씨가 된장국을 끓여 아침식사를 했다. 몇 일간 멀미로 자기 일을 하지 못한 것을 미안해한다. 일주일전 쯤에 잡아 말려놓은 다랑어를 구웠지만 상태가 썩 좋지 않아 버렸다.
점심때는 계란, 햄, 김치를 넣어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수빅만으로 방향을 돌려 선수를 내만으로 향한다. 드디어 왔다. 수상비행기가 날아다니고 잠수함이 우리 옆으로 지나간다. 다들 우리를 반겨주는 것 만 같다. 좌현으로 한진 중공업이 보인다. 수빅에 입항하는 건 나로서는 세 번째이다.
항로를 따라 수빅 요트클럽 쪽으로 향한다. 무전으로 입항보고를 하고 16시경 요트클럽에 도착한다. 기어 케이블계통에 고장이 있어 후진기어를 넣을 수 없어 조심해서 접안한다. 수빅에서 수속하는데 150불이 든다. 그것은 관리들이 뜯어가는 돈이다. 우리나라도 예전에는 그런 적이 있다. 우리 나이대의 사람들은 관리에게 돈 안주어 본 사람이 드물 것이다. 이해하고 포기하고 넘어가자며 우리자신을 이해시킨다.
기어수리를 의뢰해보니 잠깐 만에 수리되는 조건으로 만 페소를 요구한다. 만 페소!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해보니 25만원이다. 생각해보고 연락한다고 했다. 나중에 가만히 생각해보니 영어소통에 문제가 잇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아무려면 그렇게 비쌀려고!’
항만사용료와 계류비로 60달러 해서 총 210달러가 들었다.
일단 뜨거워진 몸을 식히기 위해 마리나 수영장에서 20분쯤 몸을 담구었다. 시내로 나가 숙소를 잡고 육지에서 하룻밤을 보낸다.
16일(금요일 항해 11일째)
숙소에서 자고 10분 거리에 있는 하버로 돌아오면서 한국 식료품가게에 들러 돼지고기 조금과 두부한모를 샀다. 연료를 구했는데 리터당 21페소였다. 우리나라 돈으로 한 오백원정도이다. 아침 9시, 170마일쯤 떨어진 부수앙가를 향해 다시 출발했다. 메인세일을 올리고 항을 빠져나가는데 후끈거리는 열기로 일사병에 걸릴 지경이다. 더위를 먹을 뻔했다. 황윤구씨가 라면을 끓였다. 그동안 멀미로 동료에게 신세를 졌다고 생각해서 인지 식사준비며 배의 갖은 일들은 자청해서 한다. 수빅만을 빠져나와 먼 바다로 나오니 더위가 한결 가신다.
11시쯤 참치 한 마리를 낚아 구웠다. 임우철씨가 만들어 놓은 돼지김치두루치기도 있었지만 다들 식사를 하지 않는다. 전호표씨만 한 그릇을 비운다. 안 먹어도 이제 곧 종착지에 도착한다는 기쁨으로 포만감이 든다.
산들바람에 엔진을 같이 켜고 6노트로 항해한다. 육지로부터 2-30마일 떨어진 곳에서도 인터넷을 잘 되었다. 수빅에서 약60마일쯤 떨어진 루방섬을 해질 무렵에 통과해 내려간다. 일부러 루방본섬과 카브라 섬 사이를 지나갔다. 좁은 수로지만 행여 원주민들에게 오징어나 과일을 구매할 수 있을까 해서였는데 거의 밤이 되어 통과하게 되었다.
‘아침에 과일이라도 좀 넉넉히 사서 실어두었더라면 좋으련만 뭐가 바쁘다고!’
열대과일을 만끽해가며 항해하는 생각을 할수록 후회는 깊어진다.
마지막 밤 항해는 날씨가 좋았다. 다들 마지막 근무 조 순서를 정하느라 분주하다. 밤새 견시를 해도 하나도 힘이 안들 것 같다고 한다. 배는 없고 별은 무수히 맣다. 항해는 끝나가고 기분은 좋다.
17일(항해 12일째)
평온한 항해를 한 밤이었다. 다들 마지막 견시를 서는 그런 분위기를 만끽한다. 힘든 항해를 마치고서 맞이하는 마지막 밤 항해는 특별히 의미를 주지 않더라고 뿌듯한 마음이 가슴을 가득 채운다. 밤사이 동풍이 불어 속도를 많이 줄였다. 부수앙가 본섬을 25마일쯤 남겨두고 일출이 시작되었다.
아침은 샌드위치 빵과 딸기 쨈으로 해결했다. 황윤구씨가 준비했다. 잠시 동안 바람이 없어 엔진으로 달리다 10시가 넘어가면서 바람이 터져 다시 돛 달리기를 시작했다.
황윤구씨가 점심식사로 칼국수를 만들었다. 너무 열심히 식사를 준비해 그런 그에게 우리는 요리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전호표씨는 견시를 잘해 견시왕, 부선장이 된 임우철씨는 수리를 잘해 수리왕이 되었다.
오후4시경 마리나가 있는 곳으로 가기위해 접근했다. 해도 상에 더 빠른 길도 있었지만 초행길이어서 조금 더 깊어 보이는 곳을 선택했다. 입구에서 마리나가 있다는 곳을 보았지만 마스트가 보이지는 않았다. 해도 상으로 구불구불한 길이어서 조심스럽게 안쪽으로 들어갔다. 양쪽으로는 산호초지역으로 수심이 낮은 곳이 눈으로 확인될 정도였다.
임우철씨가 앞쪽으로 나가서 수심을 확인하고 전호표씨는 엔진을 조작하기 위해(전후진기어가 들어가지 않음) 각자의 포지션에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가며 조금씩 안쪽으로 나아갔다. 그렇지만 해도와는 달리 수심이 낮은 지역을 통과하게 되면서 킬이 바닥에 쓸렸다. 그곳에서 돌아 나와 다른 쪽으로 향하다 다시 산호지역으로 들어가면서 배가 수심이 낮은 지역에 갇혀버리고 말았다. 곧 상륙해서 육지에서 파티를 기대하던 우리는 믿기 어려운 현실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방카를 타고 지나가던 현지인들에게 물어보니 밤10시쯤 되면 만조가 되어 물이 좀 들어올 것이라고 한다. 그들에게 부탁해 우리의 앵커를 50미터쯤 밖의 수심이 깊은 쪽에 빠뜨려놓고 우리는 물이 들기만을 기다린다. 다행히 기상이 좋아 배가 엉덩방아를 찍는 고통은 당하지 않는다.
내가 가진 해도 시스템에서 나오는 조수간만의 차이는 불과 50센티 밖에 되지 않은데 과연 오늘 밤 배를 뽑아 낼 수 있을 것인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아까 현지인들이 말한 조수 간만의 차는 2미터이다. 그들이 맞기를 바란다. 사실 이곳을 찾아 온 것은 이곳을 요트를 타고 방문한 적이 있는 지인의 정보를 받아서 온 것이다. 그가 이곳을 다녀간 지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보내준 해도상의 지점으로 한 치의 의심 없이 찾아온 것이 실수가 되고 말았다. 요트하버는 이곳에 없다고 한다.
저녁이 되어 물이 들어차기만을 기다렸지만 배가 점점 드러누웠다. 처음에는 5도에서 시작하여 나중에는 25도까지 기울어져서 안에서 잠을 자기 위해서는 침상의 각도를 조절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우리는 행여나 하는 마음에 밤10시경 다시 배의 탈출을 시도했다. 이번에는 붐과 스피네커 폴을 이용한다. 붐 끝에 연료통5개를 걸어 무게를 실었다. 스핀네커 폴도 같은 방향으로 돌려 사람이 붐 끝에 매달릴 때 버팀이 될수 있도록 했다.
원주민들의 이야기와는 반대로 물이 빠졌고 그렇게 되길 바라지 않았지만 나비오닉스해도에 나오는 물때와 정확히 맞아 떨어졌다. 조수 높이가 80센티쯤 되었을 때 우리가 걸렸고 지금은 40센티로 물높이가 낮아졌다. 수심은 2미터가 채 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배의 깊이는 2.5미터이다.
한 시간 쯤 실강이를 했지만 탈출할 수 없었다. 저 멀리 마을에서는 음악소리가 이곳까지 들렸다. 우리도 그 장단에 맞추어 기울어진 배위에서 춤을 추었다. 산호에 걸린 배위에서 춤을 출 수 있다니 대단한 낭만이다. 파도가 밀려와 배를 흔드는 것도 아니고 단지 조금 누워서 쉬고 있을 뿐이다. 산호위에 좌초되어 있는데도 그렇게 불안하지 않다.
18일(항해13일째 마지막 날)
아침 일찍 일어나 다시 탈출을 시도했다. 물속으로 들어가 배의 상태도 확인했다. 바닷물속의 산호를 밧줄로 걸어 메인시트를 이용해 기울어진 우현 쪽으로 묶어 올렸다. 하지만 산호의 무게가 생각보다 훨씬 가벼워서 쌀가마니 두 개짜리정도 크기의 산호도 크게 무게가 나가지 않았다.
오늘 저녁에는 물이 90센티까지 올라간다고 나온다. 좌초된 시점이 80센티쯤 될 때였는데 오늘 오후5시가 되면 90센티까지 든다고 한다. 만약 이런 사실을 어제 저녁에 알았더라면 좌초될 당시에 바로 배를 기울려 탈출을 시도 했을 텐데 현지인의 한마디에 휘둘려 물을 들기만 기다리다 결국 꼬박 하루를 기다려야만 하게 되었다. 바람이 없어 파도가 일어나지 않아서 다행이지 그렇지 않다면 파도가 배를 들어 올려 내려찍기를 반복하게 되어 큰 손상을 입게 되었을 것이다.
우리는 지나가는 방카를 불러 어젯밤 노래 소리가 들렸던 해변의 레스토랑으로 갔다. 그곳에서 아침과 점심을 먹었다. 요트 마리나가 어디에 있는지 물었더니 바로 아래의 만 안쪽에 있다고 한다. 그곳에서 오토바이를 빌려 그곳으로 가보았다.
불과 10분 거리에 요트클럽이 있었는데 아주 고급빌라와 함께 있는 곳이었다. 한참을 이야기 하다 보니 그곳 바로 안쪽에 보트 엥커리지를 담당하는 리조트가 있다고 한다. 그곳으로 가서 엥커 가부를 타진했다. 1달 계류하는데 6000페소라고 한다. 우리나라 돈으로 15만원 정도이다. 일단 배를 묶어놓을 장소를 확인해두고 다시 팀원들이 있는 레스토랑으로 돌아왔다.
14시경, 방카를 타고 배로 돌아갔다. 아직 배가 10도 이상 기운 상태였지만 우현 저 멀리로 돌려놓은 붐 위로 전원이 올라타고 필리핀 원주민 3명까지 합세하니 배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바로 옆쪽에 수심이 깊은 것으로 확인되었기 때문에 바로 배를 세우고 산호를 떨어뜨리고 밧줄을 풀어 탈출하려했지만 다시 산호에 배가 올라타면서 일이 어렵게 되었다. 돌아가려던 원주민들을 불러서 다시 시도했지만 처음보다 어려웠다.
1시간 정도 배를 기울여 가면서 씨름하는 동안에 수위도 점점 올라가 다행히 배를 깊은 곳으로 뽑아 나갈 수 있었다. 그곳에서 조심조심 빠져나와 깊은 곳으로 나온듯해서 속도를 내다가 다시 한 번 산호에 올라탔다. 겨우 그곳에서 빠져나온 뒤 또 한 번 산호와 충돌한다. 도처에 산호지대가 있고 해도에는 아예 나와 있지 않으니 정말 신경이 곤두선다. 지뢰밭이란 말이 딱 맞다. 특히 배가 후진이 들어가지 않으니 충돌하는 이외에 방법이 없다. 한참을 저속으로 나와 깊은 곳으로 나와 계류장이 있는 델솔 리조트 요트클럽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배를 묶고 지나가는 방카를 불러 타고 육지로 나올 수 있었다. 큰 트러블 없이 항해가 끝나나 했는데 도착하는 시점에 아주 큰 경험을 했다.
2016년1월6일 한국 통영을 출발해서 9일 8시간 만에 필리핀 수빅에 도착했고 그곳에서 입국수속을 하고 다시 하루하고도 7시간 항해를 했다. 만 하루 동안 좌초되어 있다가 다시 2시간정도 항해했으니 총 항해 시간은 10일 17시간이다.
이번항해는 매서운 겨울바람을 경험하고 중간에서 봄가을 날씨였다가 결국 여름이 되는 사계절을 경험할 수 있는 그런 항해였다. 근거리 항해에서는 절대로 경험해볼 수 없는 대양항해는 자기 자신이 나중에 장거리 항해를 할 수 있을 런지를 테스트해보는 일이 될 수 있다.
막연하게 가지고 있던 자신감이 항해를 통해서 사라질 수도 있고 어렵게만 생각했던 험난한 바다의 경험이 그렇게 큰 난관이 아닌 것을 알기도 한다. 이것은 순전히 그 사람 타고난 개인의 능력에 따라 다르다.
어떤 사람은 멀미에 약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외로움에서 잘 견디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배에 있는 자체를 못 견뎌 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항해에 참가한 3분들은 보기 드물어 바다에 잘 적응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특히 힘들고 귀찮은 일을 서로 먼저 하겠다고 자청하니 배안의 분위기가 늘 훈훈했다. 세분 다 또 다른 요트항해를 꿈꾸고 있어 더욱 값진 시간이 되었을 것이다.
나 또한 이번에 참가한 세 사람과 항해한 것이 참으로 값지고 귀한 시간이었다. 한국 통영에서 필리핀 부수앙가까지 1520마일 항해 추억을 함께한 임우철씨, 황윤구씨, 전호표씨에게 이 자리를 빌어 감사 인사를 드리며 앞으로 남은 인생, 요트여행을 통해 찐한 추억 많이 남기시기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