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2.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3.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4. 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 물으니
5. 이르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 바
6.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7. 이에 헤롯이 가만히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
8.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
9.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새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서 있는지라
10. 그들이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11.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우리는 아무리 나는 믿는다 나는 믿는다 해도 세상에 보이는 것, 행동 하는 것, 내가 가지고 있던 가치관, 문화에 어느던 영향을 받아 때가 묻어 있는 우리를 본다.
경건의 모양은 갖고 있으나 경건의 능력을 소멸 시킨 우리는 마치 메소포타미아 지방의 동방박사들이 별을 보았고 알고있으나 아직 내 품에 들어오지 않은 마음과 인식이 드는 삶을 사는 것이다.
지식적으로 알고는 있지만, 들어오지 않은 상태 이것이 얼마나 힘든 삶인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문서적으로는 나도 그분을 알았고 그분이 나를 현재 알지만 과거에 알았던 것 가지고는 현재를 채울 수 없을 만큼 우리는 목이 마르다.
동방박사들은 머리로 알았으나 오감으로 마음으로 더 가까이 가고 싶어 찾고 찾고 찾았다
그들이 찾기 시작할 때 부터 예배는 이미 시작된것이다. 성령이 이끄시는 여정이 예배이다.
개역개정 예레미야 29장
13.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온 마음으로 전심으로. 만나고자 하는 것 그것이 예배다. 그들은 먼곳에서 예루살렘에 왔을 때 은밀히 오지 않았다. 그들이 생각한 그 왕은 높고 높은 궁에. 황금빛 옷을 입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그 왕은 반드시 상아궁전의 요람에 누워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것은 사람의 생각이었다.
궁에 가서 예수님을 찾아도 없었다.
선지자의 글에 작은 마을 베들레헴에서. 난다는 이야기를 듣고 바삐 그곳을 찾아가며
자신들의 선입견이 깨어짐을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쫓아가는 것, 나침반은 오직,큰 별하나였기에
그 별을 쫓아 그 위대한 "유대인으로서 나신이"를 한번 보리라는 놀라운 기대로 가득찼을 것이다.
박사들은 서로를 위로하며 한마음으로 별을 보는데 그 별이 어느 숙박시설에 머물렀던 것이다.
개역개정 이사야 55장
8.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 생각이, 내 잘남이 깨지는 것이 예배다.
동방의 박사들은 놀랐겠지만 별이 멈춘곳을 보고 기뻐한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가 보니 너무도 초라한 말구유에 아기 예수가 평안한 모습으로 누워있었다. 화려해서가 아니라 초라하지만 이곳이 유대인의 왕의 처소라고 하니 동방박사들은 경외감으로 인해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개역개정 누가복음 2장
7.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그들은 자신들의 높아진 그 무엇이 위대한 아기예수 앞에 또 인도하신 성령하나님과 지켜보시는 성부로 인해 부끄럽고 치유되는 느낌이 들었을것이다. 오 멀리있고 높이 있었던 그 큰별과 같은 존재가 실제가 되어 동방박사들 마음에 밝게 빛이 났을 것이다
무엇이라도 드리고 싶었고 준비했던 예물을 기꺼이 기쁘게 드렸다.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엡2:12)
유대인의 왕이 나의 왕이 되다니...그들은 기쁨에 감격했을 것이다.
예수님을 만난 이들은 감격의 예배를 마치고 이제 성령의 음성을 더 깊이 듣게 된다.
헤롯에게로 갔던 무지함을 벗어버리고 헤롯을 피해 돌아가라는 음성을 듣는다.
이들은 고향으로 돌아가서 분명 주님의 사명자로 그렇게 살아갔을 것이다
할렐루야 가장 낮은 곳에 오신 주님의 은혜를 잊지말게 하소서, 오 주님을 찬양합니다
※ 참고
유대 베들레헴. 이 베들레헴은 ‘유대’(in Judea 그런데 이곳은 예루살렘 남방 8 km 지점에 위치한 작은 마을로서 메시아가 탄생할 곳으로 예언된 장소이자(미 5:2) 유대의 실질적인 건국(foundation of a nation)을 이룬 다윗 왕의 고향이기도 하다(삼상 16:1-18). 여기서 히브리어 지명 베들레헴은 ‘떡 집’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이는 아마 그 지역이 곡식과 과실이 풍성한 비옥한 곡창(穀倉)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지명과 걸맞게 온 인류에게 풍족한 생명의 양식을 주시기 위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이곳에서 출생하신 것이다(눅 2:4
동방: “동방으로부터”의 헬라어 ‘ἀπὸ ἀνατολῶν 아포 아나톨론’은 ‘떠오르는’ 이란 뜻의 ‘ἀνατολή 아나톨레’에서 유래한 말로써 문자적으로 “해가 떠오르는 곳으로부터”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에 근거하여 ‘동방’을 예루살렘 동쪽에 위치한 특정한 땅, 곧 페르시아(Vincent), 바벨론, 메데(Carr), 아라비아, 또는 동쪽에 위치한 모든 곳(Bruce)이라고 보는 학자들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문자적 해석 이외에 문화가 발달한 지역일 것이라는 관점에서 소아시아, 애굽, 인도, 그리스 등지로 보는 학자도 있다
이 같은 견해들 중 ‘동방’이 바벨론이었다는 견해를 주장하는 이들은, 바벨론에는 유대인 포로들이 정착하고 있었기 때문에 박사들이 그들을 통하여 메시아에 관한 구약 예언을 사전(事前)에 깊이 알고 있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박사들은 유대인과 긴밀한 관계에 있었던 자들이라는 주장이다(Wycliffe, D.A. Carson)
아기 예수는 최소한 40일 동안 베들레헴과 예루살렘 성전에 머물렀을 것이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남자 아이를 낳으면 8일 만에 할례를 베풀고, 33일(여자는 66일) 후에 결례 의식을 행했기 때문이다(레 12:4). 따라서 여행을 할 수 있으려면 최소한 최소한 40일이 지나야 한다. 결례 후에는 더 이상 불편한 베들레헴에 머물 필요가 없으므로 떠날 예정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박사들은 예수께서 탄생하신 후 40일 안에 예루살렘에 도착했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그들은 너무 멀리서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동방 박사: 동방 박사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박사는 헬라어로 ‘μάγοι 마고이’(magoi)이다. 이 말에서 영어의 “요술사” 혹은 “마술사”(magi)라는 말이 나왔지만 동방 박사는 그런 마술사나 점성술사가 아니었다. 그들은 꿈을 해석하는 신통력을 지닌 메대, 바사, 또는 바벨론의 제사장을 언급할 때에 주로 사용되었다(단 2:2, 48, 4:6, 7). 특별히 이 용어는 이때로부터 600년 전에 바벨론의 모든 박수와 술객과 갈대아 술사와 점쟁이의 어른으로 높임 받았던 다니엘에게 적용되기도 했다(단 5:7, 11). 그리고 훗날 그리스에서는 이 용어를 마술사와 박수 등의 의미로 사용하였다(행 8:9, 13:8). 한편 테르툴리아누스(Tertullian, A.D. 255년경 사망) 당시의 초대교회 전승에 의하면 ‘마고이’가 왕들이었다고 한다. 아마도 이것은 왕들이 와서 메시아를 경배할 것이라는 구약 예언들(시 68:29, 31, 72:10, 11, 사 49:7, 60:1-6)의 영향을 받아 발전된 듯하다. 여하튼 박사들이 (1) 별을 보고 베들레헴을 향해 온 것, (2) 다니엘의 예언 및 메시아에 관한 구약의 각종 예언을 깊이 이해하고 있었다는 점 등을 볼 때 바벨론 출신의 천문학과 철학, 점성학에 해박한 지식을 지녔고, 학식이 높고 고상한 인품을 소유한 존귀한 자들로 볼 수 있다
동방 박사들의 수: 동방 박사들의 수에 대하여 성경은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이 드린 예물이 세 가지였다는 사실 때문에 3명의 박사들이 왔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성경 밖의 여러 문헌들에 나타나는 동방 박사들에 관한 전설들에는 몇 가지 상이한 점들이 있다. 첫째는 그 박사들 일행의 인원에 대한 것이다. 그들이 당시에 지체가 매우 높은 사람들이었음을 고려할 때, 그들을 수행하는 사람들이 꽤 여럿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수행원들의 수에 관해서는 특별히 밝힌 문서가 없다. 둘째는 박사들의 수이다. 가장 일반적인 생각은 그들이 3명이었다는 것이고, 3명이 아니라 4명이었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가지며, 8명이었다는 설도 있지만 이것을 지지하는 사람은 매우 적다
4명의 박사들이 왔었다는 설에 대해서는 아름다운 전설이 얽혀 있다. 애초에 이란의 하마단(Hamadan) 근방의 고향에서 4명의 박사들이 각기 예물을 하나씩 가지고 예루살렘까지 왔다. 그들이 가지고 온 예물들은 황금, 유향, 몰약, 그리고 진주였다. 그들이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왕궁을 찾아다니는 동안에 그 거창한 의상을 입고 온 외국인들을 바라보던 아이들과 걸인들이 그들을 따라다니면서 구걸하자, 진주를 가지고 온 박사가 그들의 모습을 보고 측은하게 여긴 나머지 그가 가지고 온 진주를 팔아서 그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께 세 가지 예물만 드리고 떠났다고 한다.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이라도 하는 듯, 이란의 동방 박사의 고향으로 알려진 마을에 가면 동방 박사 기념교회가 있고, 그 교회당의 반지하실에 들어가면 동방 박사들이 아기 예수를 방문하는 그림이 걸려 있는데, 거기에 그려진 동방 박사는 4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