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압지 서쪽에 위치한 신라 왕궁의 별궁터이다. 다른 부속건물들과 함께 왕자가 거처하는 동궁으로 사용되면서 나라의 경사가 있을 때나 귀한 손님을 맞을 때 이곳에서 연회를 베풀었다고 한다. 신라 경순왕이 견훤의 침입을 받은 뒤, 931년에 왕건을 초청하여 위급한 상황을 호소하며 잔치를 베풀었던 곳이기도 하다. 이 못이 처음 만들어진 신라 문무왕 14년(647)에는 안압지란 이름은 없었으며, 조선초 김시습(1465~1471, 경주 체재 시기)은 이곳
을 「안하지(安夏池)」라 했고, 신증동국여지승람(중종 25년, 1530)에 와서 비로소 안압지라 불렸다.
신라는 삼국을 통일한 후 문무왕 14년(674)에 큰 연못을 파고 못 가운데에 3개의 섬과 못의 북·동쪽으로 12봉우리의 산을 만들었으며, 여기에 아름다운 꽃과 나무를 심고 진귀한 새와 짐승을 길렀다고 전해진다.
문헌으로 전해지는 다수의 기록은 다음과 같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문무왕(文武王) 14年 2月조
宮內 穿池造山 種花草 養珍禽奇獸.
궁내에 못을 파고 산을 만들어 화초를 심고 진기한 새와 기이한 짐승을 길렀다.
효소왕(孝昭王) 6年 9月조
宴群臣於臨海殿.
군신들을 임해전(臨海殿)에 모아 잔치를 베풀었다.
혜공왕(惠恭王) 5年 3月조
燕群臣於臨海殿.
임해전에서 군신과 연회를 베풀었다.
소성왕(昭聖王) 2年 4月조
暴風折木蜚瓦. 瑞蘭殿簾飛不知處, 臨海·仁化二門壊.
폭풍이 불어 나무가 부러지고 기와가 날아갔다. 서난전(瑞蘭殿)의 발[簾]이 날아가 간 곳을 알 수 없고, 임해문(臨海門)과 인화문(仁化門) 두 문이 무너졌다.
애장왕(哀莊王) 5年 7月조
... 重修臨海殿, 新作東宫萬壽房. ...
... 임해전(臨海殿)을 중수(重修)하고 동궁만수방(東宮萬壽房)을 새로 지었다. ...
문성왕(文聖王) 9年 2月조
重修平議·臨海二殿.
평의전(平議殿)과 임해전(臨海殿)을 두 전각을 다시 수리하였다.
헌안왕(憲安王) 4年 9月조
王㑹羣臣於臨海殿, ...
왕이 임해전(臨海殿)에 여러 신하를 모이게 하였다. ...
경문왕(景文王) 7年 1月조
重修臨海殿.
임해전(臨海殿)을 다시 수리하였다.
헌강왕(憲康王) 7年 3月조
燕羣臣於臨海殿. 酒酣, 上皷琴, 左右各進歌詞, 極歡而罷.
왕이 임해전(臨海殿)에서 여러 신하에게 잔치를 베풀었다. 술이 무르익자 왕이 거문고를 튕기고 좌우에서는 각각 노래와 시를 지어 올리면서 마음껏 즐기고서 파하였다.
경순왕(敬順王) 5年 2月조
太祖率五十餘騎, 至京畿逋謁. 王與百官郊迎, 入宫相對, 曲盡情禮. 置宴於臨海殿, 酒酣, 王言曰, “吾以不天, 寖致禍亂, 甄萱恣行不義, 喪我國家, 何痛如之.” 因泫然涕泣. ...
태조가 50여 명의 기병을 거느리고 경기(京畿)에 이르러 만나 뵙기를 청하였다. 왕이 백관(百官)과 교외에서 맞아 궁으로 들어와 상대하는데 간곡하게 정성과 예의를 다하였다. 임해전(臨海殿)에서 잔치를 벌였는데 잔치가 무르익자 왕이 말하기를, “나는 하늘의 도움을 받지 못하여 점점 화란(禍亂)에 이르고 있고, 견훤(甄萱)은 의롭지 못한 일을 마음대로 하면서 우리 나라를 멸망시키려 하니, 어떠한 원통함이 이와 같겠습니까?”라고 하며 눈물을 줄줄 흘리며 울었다.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21, 경상도(慶尙道) 경주부(慶州府)
天柱寺。在月城西北。俗傳炤智王射琴匣而倒,乃是寺僧也。其北有雁鴨池。
천주사 - 월성 서북쪽에 있다. 세간에 전하기를 “소지왕이 거문고의 갑을 쏘아 넘어뜨렸더니 그 속에 있던 자가 바로 이 절의 승려였다.”고 한다. 그 북쪽에 안압지가 있다.
雁鴨池。在天柱寺北。文武王於宮內爲池,積石爲山,象巫山十二峯,種花卉,養珍禽。其西有臨海殿基,礎砌猶在田畝間。
안압지-천주사 북쪽에 있다. 문무왕이 궁궐 안에 못을 파고 돌을 쌓아 산을 만들었는데 무산십이봉(巫山十二峯)을 본떴으며, 화초를 심고 진기한 새들을 길렀다. 그 서쪽에 임해전(臨海殿) 터가 있는데, 주춧돌과 섬돌이 아직도 밭이랑 사이에 남아 있다.
『삼국사기』에는 임해전에 대한 기록만 나오고 안압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는데, 조선시대 『동국여지승람』에서 “안압지의 서에는 임해전이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현재의 자리를 안압지로 추정하고 있다. 1975~6년 대대적인 안압지 발굴로 안압지가 월지(月池)라는 사실이 확인되었고, 이후 공식 명칭도 월지로 바뀌었고, 월지는 동궁 안의 연못이며, 동궁은 월지궁(月池宮)으로 불렸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는, 월지 관칭 관부들이 동궁 소속
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에 근거하고 있는데, 이는 다소 논란이 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태자궁(太子宮)인 동궁관(東宮官)에는 동궁아(東宮衙)·어룡성(御龍省)·세택(洗宅)·급장전(給帳典)·월지전(月池典)·승방전(僧房典)·포전(庖典)·월지악전(月池嶽典)·용왕전 등 9개의 작은 관아가 소속되어 있었고, 그 중 용왕전은 내성 예하의 동궁 관련 업무가 소관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한편, 『삼국사기』 헌덕왕14년조에 “正月에 母弟 秀宗을 副君으로 삼아 月池宮에 入居케 하였다”라는 기록에서 월지라는 연못 이름이 등장하고, 1975년 발굴조사 시 ‘月池’라는 명문이 새겨진 토기편도 출토되어 명칭이 일괄 변경되었다. 또한, 용왕에게 제사지내는 모든 일을 관장한 것으로 추정되며, 소속관원으로는 대사(大舍) 2인과 사(史) 2인을 두었다고 하고, 동궁(?)의 용왕전에서 제기(祭器)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용왕신심(龍王辛審)’ 또는 ‘신심용왕(辛審龍王)’ 등의 명문이 새겨진 토기들이 안압지에서 출토된 바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중종 25년, 1530)과 동경잡기(헌종 10년, 1669)에 안압지에 관한 기록이 있고, 경주의 유학자 이수인(李樹仁, 1739~1822)의 「동호서사기(東湖書社記)」에서, 동호(東湖, 안압지)는 “기러기와 오리가 많이 날아오는 까닭으로 안압지라 이름지었다[多有鴈鴨之翔集 故名之]‘는 기록이 나오며, 일성록 ‘정조 4년(1780)’의 기록에 “안압지에 넓이가 반석(盤石)같은 흙덩이가 있고, 그 위에 덩굴풀이 나 있으며, 이것이 바람을 따라 왔다갔다 한다[雁鴨池浮土 廣如盤石 上有蔓草 隨風往來]”는 내용이 있다. 안하지(安夏池)로 불렸고, 또 줄여서는 안지(雁池, 鴈池), 압지(鴨池)로 불렸으며, 경주 도심의 동쪽에 있다고 하여 동호(東湖)로도 불렸다.
발굴 결과, 일제시대에 철도가 지나가는 등 많은 훼손을 입었던 임해전 터의 못 주변에는 회랑지를 비롯해서 크고 작은 건물터 26곳이 확인되었고, 그 중 1980년에 임해전으로 추정되는 곳을 포함하여 서쪽 못가의 신라 건물터로 보이는 5개 건물터 중 3곳과 안압지를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곳에서는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었는데, 그 중 보상화무늬가 새겨진 벽돌에는 ‘조로 2년(調露 二年, 680)’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어 임해전이 문무왕 때 만들어진 것임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대접이나 접시도 많이 나왔는데, 이것은 신라무덤에서 출토되는 것과는 달리 실제 생활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임해전은 별궁에 속해 있던 건물이지만 그 비중이 매우 컸던 것으로 보이며 안압지는 신라 원지(苑池)를 대표하는 유적이다.
조선초 경주에 체재하던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 1435~1493)은 세조의 왕위찬탈 소식을 듣고 출가한 이후, 10년간 전국을 방랑하다가 31세 때인 1465년(세조 11)에 경주에 와서 금오산실을 짓고 7년간 살다가 37세 때인 1471년(성종 2) 봄에 상경하였다. 그가 경주 체재기에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안하구지(安夏池舊址)」라는 시는 안압지를 노래한 제영시 가운데 가장 오래된 작품이다.
安夏池舊址
안하지 옛 터에서
鑿池爲海長魚螺。引水龍喉勢岌峨。
못을 파내어 만든 바다에 물고기, 소라를 키웠다는데, 끌어온 물길이 용의 목구멍과도 같네.
此是新羅亡國事。而今春水長嘉禾。
이는 곧 신라 망국때 일이었으니, 이 봄 물가에는 벼 이삭만 여문다네.
대산(臺山) 김매순(金邁淳(1776~1840)이 경주 부윤(1833년 8월~1834년 7월)으로 재직하던 중 지은 '술을 앞에 두고 운엄(雲广) 김태화(金太和)에게 화운하다.'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對酒和雲广
술잔을 두고 운엄(雲广) 김태화(金太和)의 시에 화운하다
休將衰白問羣仙 對酒聊歡此日筵
늙어 백발되었다 신선에게 묻지마오, 술잔 마주하는 이 날 술자리가 기쁘기 그지없네.
海殿池荒無鴈集 竹陵碑臥有牛眠
황량한 임해전 연못엔 기러기 한 마리 없고, 쓰러진 죽릉(竹陵) 비석엔 소가 자고 있네.
英雄百戰悲沉㦸 文物千年惜斷篇
슬프구나, 전장 속 영웅의 창이 여기 묻혔네. 애석하구나, 천년 문물이 끊어져 버렸네.
聞說郞徒多羽客 尙疑笙鶴在寥天
화랑 중엔 신선도 많다던데, 오히려 쓸쓸이 하늘에 떠있던 선학(仙鶴)이었던가 하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