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 장 ------ 中 原 七 絶!
중원칠절.
중원에는 지난 백년 이래로 부터 천하에 막대한 위명을 뿌리고 있
는 십오인의 초극강 고수들이 있다.
이름하여...... 천하십오대고수가 바로 그들인데...... 천하십오
대고수의 분포를 살펴본다면 다음과 같았다.
일황, 이신, 삼정, 사기, 오성!
그 중에서 일황은 현 천하제일가의 가주인 무황 옥사황을 일컫는
말이고...... 이신 중에 일인은 바로 역시 천하제일가의 대장로인
검신 나공평이며, 삼정이란...... 바로 율리극과 사도의 신인 사천
대제를 상대로 조금의 꿀림도 없이 단봉중옥을 빼앗기 위한 쟁탈전
을 벌였던 중원삼정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들을 제외하고 천하사기와 중원오성이 천하십오대고수라는 찬
란한 명호를 가슴에 안고 있는데......
오오! 천하제일가!
놀랍게도 그들은 천하십오대고수들 중에서도 서열 일뤼부터 서열
삼위까지의 절정 고수들을 모조리 거느리고 있는 셈이다.
허나 강하기로만 따지자면 결코 이들에게 하등 뒤질 이유가 없는
칠인의 초극강 고수들이 존재했으니 이들이 바로 중원칠절이었다.
중원칠절!
이들은 강호에서 가장 신비한 인물들로 손꼽힌다.
출신과 사문은 물론 무공의 수위조차 전혀 알려진 것이 없는 신
비인들, 이들은 낭인처럼 천하를 주유하며 강자를 찾아 비무를 벌
이는 것을 생의 유일한 낙으로 삼았으며, 또한 그들은 가는 곳마다
승리했다.
그들은 각기 한가지 방면에 있어서는 거의 신화경에 이른 무림의
절대고수들이었다.
절편------ 소리극,
절극------ 장허도,
절검------ 적룡기,
절도------ 혁력극,
절궁------ 팽천위,
절간------ 천자흠,
절부------ 신백,
백년전만 하더라도 이들의 이름은 강자의 대명사였으며...... 이
들은 가는 곳마다 위대한 승리의 신화를 중원 곳곳에서 창조하였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천하인들 중에서는 이들의 진정한 무학의 수위
를 짐작조차 못했다.
생각해보라!
이들과 비무를 벌인 사람들은 모조리 죽어버렸는데 어찌 이들의
무공수위가 세상에 알려질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중원칠절!
이들은 자신의 상대에게 일초 이상을 시전해 본적이 없는 무적의
초인들이었다. 백년 전의 중원은 이들로 인해 엄청난 혈겁을 맞았
었다.
헌데 이들은 모두 백년 전에 홀연히 강호에서 사라졌었다.
당시...... 중원무림에서 제법 명성을 얻고 있던 무림의 패자들
은 이들의 실종에 내심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한편으로는
구구한 억측이 난무했었다.
사람들은...... 이들이 사라진 이유를 더 이상 비무를 벌일 상대
를 찾지 못해 낙심하여 은거를 했다고도 했고..... 혹은 이들이 파
천고수들을 만나 비무를 벌이다가 모두 죽음을 당했다고도 했다.
허나 근거없는 소문이란 대개가 그렇듯이 누구 하나 자신의 주장
을 증명할 만한 확증을 잡은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헌데 경악할 일이 아닌가?
이 무림의 전설로까지 불리던 초인들이 모두 죽음의 절지인 불귀
도에서 생존을 하고 있었다니...... 한결같이 처참한 불구가 된 채
로 말이다.
또한 이들은 이곳에서 금천풍호에게 무황 옥사황을 꺽기 위한 무
공을 전수하고 있었다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허허! 이놈 조심하거라! 노부의 만상칠칠극법은 아직 녹슬지 않
았다."
호탕한 일갈이 동굴을 쩌렁쩌렁 울리는 가운데,
휘우우우우------ 우우웅------!
허공을 자욱히 덮는 수영이 공간을 차단하며 금천풍호의 전신을
폭우처럼 쏟아져 들어갔다.
지금 금천풍호를 향해 공격을 펼치고 있는 노인, 마른 대나무를
연상하듯 비쩍 마른 몸매에 칠척에 달하는 큰키를 지닌 노인이었다.
한쪽만 남은 눈알이 시퍼런 청광을 뿌리고 있어 더욱 괴이롭게 느
껴지는 이 노인,
절극 장허도,
한자루의 극만 손에 쥐어지면 천신도 두려워 하지 않는다는 극의
달인이 바로 이 노인일진데......
만상칠칠극법------ 백년전 적수를 인정하지 않았던 장허도의 상
징같은 것이었다.
휘우우우우웅......
산악을 함몰시킬 듯한 극패의 수강이 빛을 차단한 채 사위를 암
암하게 물들이며 금천풍호의 몸을 휘감았다.
완벽했다. 사방의 피할 곳이라고는 존재치 않았다. 말 그대로 바
늘 끝만한 헛점도 찾아볼수 없는 완벽한 공세! 피한다거나 막은다
는 것은 꿈도 꿀수 없는 엄청난 공세인데......
아아! 여기서 부터..... 우리는 진정으로 믿을수 없는 광경을 목
격하게 된다. 심지어는 후세의 사가들이 있을수 없는 일이라고까지
극찬을 했던......
스읏!
금천풍호의 어깨가 가볍게 흔들리는가 싶자, 한가닥 실날같은 열
기로 화하는가 싶더니, 그대로 유령처럼 미끄러지며 장허도의 공격
권에서 멀찌감치 벗어나는 것이 아닌가?
아니 벗어났다고 느끼는 순간,
"하하! 노야의 만상칠칠극법이라면 오래 전부터 달달 외워 온 저
풍입니다."
금천풍호의 입에서 용의 울부짖음같은 호탕한 일갈이 터져나오는
가 싶더니,
"조심하십시요. 어르신! 이 싸움은 양보할수 없는 것이기에 할수
없이 실례를 범하겠습니다."
동시에,
스읏!
금천풍호의 손이 기묘한 각도로 꺽이며 돌연 장허도의 옆구리를
번개처럼 찍어가는 것이 아닌가?
"헉!"
장허도의 한쪽 뿐인 외눈알이 터질듯한 경악의 빛을 띄우고 그의
신형이 급속히 뒤로 제껴지며 황급히 금천풍호의 손을 피했다.
딴에는 전력을 다해 피했다고 했으나 완벽하게 피할수는 없었다.
찌이------ 익------!
어느새 그의 어깨쭉지 옷자락이 금천풍호의 손에 의해 찢어져 나
가고 있었으므로......
아아! 빨랐다. 진정으로 빠른 공수의 변화였다.
설명하자니 길었지만...... 금천풍호가 장허도의 공세를 피하고
재차 반격을 해 그의 옷자락을 찢어낸 것은 실로 눈한번 깜짝할 사
이에 일어난 공수의 변화였다.
장허도,
간발의 차이로 금천풍호의 옷자락을 찢어뜨리는 수모를 겪어야했
전 그, 그의 입에서 터질듯한 경악성이 나온 것은 훨씬 뒤의 일이
다.
"칠십이천간조법! 천늙은이의 것을 네가 이미 십이성이나 터득하
고 있었다니......!"
칠십이천간조법------!
한자루의 낚시대를 이용한 절간 천차흠의 독문비기!
문제는 어느모로보나 금천풍호가 방금 전에 보여준 이 한수가 당
사자인 천자흠의 그것을 능가하리 만큼 완벽한 것이었다는데 있다.
(저, 저럴수가..... 저 녀석이...... 매일처럼 연공은 하지 않고
빈둥거리기만 해 속을 태웠던 저 녀석이..... 벌써 칠십이천간조법
을 완벽하게 터득하고 있었다니......!)
천자흠!
칠십이천간조법의 창안자인 그는 이 순간 어깨를 잔물결처럼 떨
어야 했다.
기왕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이지만...... 중원칠절이 이곳 불귀
도에서 금천풍호에게 무학을 전수해 온지 어언 십여 년...... 그동
안 그들은 한편으로 온사황을 꺽기위한 무공을 창안하면서도, 또한
편으로는 혼신의 힘을 다해 자신들의 비기를 금천풍호에게 전수하
혀고 무진 애를 썼었다.
허나 왠일인지 금천풍호는 그들의 무공에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
다. 기껏해야 한두번 무공구결을 암기하고 몇번 연습을 하는 흉내
만 낼 뿐이었다.
뿐인가? 겨우겨우 무공수련 시간을 떼우고는 틈만 나면 바닷가의
절벽 위에서 무엇을 생각하는지 망연히 서 있기가 예사였다.
부글부글 끓는 속을 가까스로 억누르고 그 이유를 물어보면......
무슨 대자연의 무도를 완성한다는 이상한 말만 주절주절 늘어 놓기
가 예사였는데......
문제는 대자연의 무도라는 것이 이론적으로만 성립이 될뿐......
인간의 오의와 자질로서는 조저히 익힐수 없는 위대한 무도라는 데
에 있었던 것이다.
생각해보라.
인간의 두뇌로서 어찌 삼라만상의 현묘한 이치와 대자연의 뜻을
헤아릴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더우기 그 대자연의 무도를 한편으로
인정하는 그들이었으나...... 그것도 차근차근 기본적인 무공부터
수련을 하면서 익혀야 완전히 습득을 할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들이
었기에 이 고민은 실로 심각한 것이 아닐수 없었다.
헌데,
(녀석은 이미 대자연의 무도에 한발 가까이 다가섰다. 녀석이 지
금 펼친 한 수에는 본래의 칠십이천간조법의 이치를 능가하는 위대
한 무엇인가가 담겨져 있었다. 나는 느낄수 있다. 그것이 바로 대
자연의 이치를 무학에 응용시킨 것임을......)
천자흠!
자신의 무학이었기에 그것을 확신하고 있는 그의 눈에는 더 할수
없는 격동의 빛이 스쳐지나가고 있었다. 아니, 그것은 비단 그만의
생각 뿐이 아니라 이 순간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칠인의 공통적
인 생각이었다.
헌데 바로 그때였다.
"허허! 이 녀석 이제보니 제법 믿는 구석이 있었구나...... 어디
노부와도 한번 어울려 놀아보자꾸나."
돌연, 우렁우렁한 음성이 동굴 안에 가득 메아리치는가 싶더니,
번쩍! 돌연 한가닥 인영이 번개처럼 금천풍호를 향해 덮쳐갔다.
금천풍호는 대번에 그가 누군지를 알수 있었다.
(절검. 적노야......!)
절검------ 적룡기!
중원칠적의 대형격인 바로 그였다.
느끼는 순간, 이미 적룡기의 우수는 수검의 형상을 한채 벼락처
럼 금천풍호를 쪼개 들어왔다.
(위험......!)
언제나 그랬지만...... 생각보다 행동이 빠른 것이 바로 금천풍
호였다.
그것을 느끼는 순간 이미 그의 신형은 옆으로 스르르 미끄러져나
갔고 미끄러져 나갔다고 한 순간, 이미 그의 손은 수검의 형상으로
비스듬히 후려치고 있었다.
헛손질을 했다고 느낀 순간, 적룡기의 눈에 언뜻 이채가 섬전처
럼 스쳐지나갔다. 이어 그는 몸을 비스듬히 수평으로 굽힌 채 옆으
로 날아가며 벼락처럼 금천풍호의 허리를 쓸어갔다.
"하하! 좋다. 좋아......!"
우르르르르릉......!
콰우우우우우------!
버------ 언------ 쩍------!
하늘을 자욱히 뒤덮는 수영...... 무섭게 소용돌이 치는 기류......
무시무시했다.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록 생명을 노리는 살수는 아
니었으되..... 자칫 실수로 서로간의 수검에 스치기라도 하는 날이
면 갈비대 몇 대는 부러져야 할만큼 이 싸움의 형세는 치열하기 이
를데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금천풍호.
중원칠절의 실질적인 대형격인 절검 적룡기를 맞아 조금치도 꿀
리는 기색없이 당당히 맞서고 있는 그, 그의 신위는 그 속에서 더
욱 하늘을 찌를듯 높아져 가고 있었으니......
보라!
그의 손이 움직일 때마다 폭포수처럼 쏟어져 나오는 저 가공무비
할 절학들을......
절도 혁련극의 상징이라고 할수 있는 삼절도법인가 했더니......
이내 그것은 급변하여 절부 신백의 사인부법으로 변하는가 싶더니,
아예 내침 김이라는듯....... 절검 적룡기가 생명처럼 아끼는 무종
칠검의 마지막 초식인 잔류무혼까지 쏟아져 나오는 것이 아닌가?
오오! 일컬어 중원칠절들의 독문절기들이 모조리 그의 한몸을 빌
어 쏟아져 나오고 있는 형상이 아니고 무엇이랴!
지금..... 금천풍호와 한참 드잡이질을 하고 있는 적룡기는 제쳐
두더라도...... 나머지 중원칠절 중 육인의 놀라움은 이순간 그 극
을 향해 치달리고 있었다.
(저, 저럴수가 저것은 나조차 연성하지 못한 구룡편법의 마지막
초식인 적룡탈주가 아닌가? 헌데..... 어느새 저 아이가 저것을 완
벽하게 연성했다는 말인가?)
이것은 자신의 절기를 자신보다 완벽하게 시전하고 있는 금천풍
호를 바라보며 내심으로 놀라고 있는 절편 소리극의 내심이었고,
(미, 믿을수 없다. 삼절도법은 본문에서도 십성이상 완벽하게 연
성한 자가 없는 것인데......!)
이것은 입을 다물지 못하고 멍하니 싸움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절도 장허도의 생각이었다.
그렇다. 어찌 믿을수 있겠는가?
백년이 넘도록 수련을 해왔어도 그 극성까지 연성하지 못했던 자
신들의 비전절기, 그것은 단 십년도 안되는 짧은 기간에 일인이 완
벽하게 연성을 했다는 이 사실을......
그렇다.
금천풍호. 그는 이미 이 순간에 무림사에 전무후무할 하나의 신
화를 창조하고 있는 것이다. 후세의 사가들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까지 기록했던 엄청난 신화를......
(으음! 아직 멀었는가......?)
절검 적룡기와 벌써 오백초 이상을 겨룬 그, 이 순간 그는 차츰
숨이 가빠져 오는 것을 느꼈다.
그렇다!
아무리 자신이 중원칠절의 비전비기들을 완벽하게 연성했다고는
하나...... 상대는 이미 백년 전에 무적으로 군림하던 초강자인 적
룡기였다. 내공의 격차는 제쳐두더라도..... 하나의 초식을 실전에
응용하는 노련함을 그는 따라 잡을수가 없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상상 외로 자신들의 무학을 정교하게 구사하는 금천풍
호에게 놀라 당황하던 적룡기였으나...... 초식이 거듭될수록 그는
어느새 노련하게 상대를 요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허나 아는가?
자신의 처지가 위급하면 위급할수록 더욱 더 불굴의 투지력이 솟
아나는 사람이 바로 금천풍호라는 사실을......
다른 사람이라면 벌써 열번은 주저 앉았어도 주저앉았을 만큼 지
친 금천풍호.
허나,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다. 내가 지는 것은 상관이 없으나 그
렇게 된다면 소저가 죽게 된다!)
자신이 한번 맹세한 것은 하늘이 두쪽이 나도 지키고 마는 금천
풍호. 그것을 생각하자 그는 전신에 맹렬한 투지가 끓어오르는 것
을 느꼈다.
"타------ 앗------!"
그의 입에서 재차 엄청난 대갈일성이 터지고......
쿠우우우우......!
그의 공세가 이제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으리만큼 강하게 변했
다.
"음!"
적룡기는 갑작스럽게 맹렬하게 변한 금천풍호의 공세에 한 걸음
주춤 물러났다.
허나, 그는 역시 누가 뭐래도 적룡기였다. 한걸음 물러섰다고 싶
은 순간, 이미 그의 신형은 재차 무섭도록 빠르게 금천풍호의 전신
요혈을 노리고 쏘아져 나가고 있었다.
처절한 격투!
다시 오십초가 지났다.
이제...... 싸움의 양상은 확연히 드러났다.
금천풍호. 이미 전신의 기력이 다한듯 놀리는 팔다리가 어지러워
지고 있었다. 허나 그에 반해 적룡기는 시종일관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한순간, 금천풍호의 옆구리가 벌에 쏘인듯 뜨끔해지
는 것을 느꼈다. 동시에 그의 몸이 석상처럼 굳어지는 것을 느꼈다.
(당했다.)
순간 그의 얼굴 가득히 절망의 빛이 떠올랐다.
(아직은 멀었다는 말인가......?)
사정없는 수치와 모멸감이 그의 전신을 휩쓸고 지나갔다.
그때였다. 어느새 그의 일장 앞에 조용히 서 있는 적룡기가 그런
금천풍호를 바라보며 나직한 미소를 떠올렸다.
"허허! 놈. 나에게 패배했다고 해서 하나도 수치스러워 할 것은
없다. 네 놈은 노부와 육백칠십초 만에 패했다. 당금 무림에서 노
부와 그 정도를 겨룰수 있는 자는 단 십인을 넘지 않을 테니까......!"
그렇다.
백년 전에도 무적으로 군림하던 적룡기가 아니던가?
"허허! 네 녀석은 무림사상 가장 뛰어난 기재다. 아마 무황 옥사
황이라 할지라도 네 나이에는 너만한 수준에 이르지 못했을 것이다."
이어, 적룡기는 금천풍호를 향해 흡족한 미소를 던졌다.
"네 녀석이 우리의 눈을 속이고 그만한 무학을 감춰왔다는 것은
괘심한 일이다. 허나 그 모든 것을 떠나 노부는 기쁘다. 자신의 삼
푼을 항상 감출수 있다는 것은 진정으로 강한 자가 될수 있는 훌륭
한 요건이 될수 있으니까......!"
허나, 정작 그 소리를 듣고 있는 금천풍호의 안색은 기이할 정도
로 굳어져 있었다. 그는 바위라도 녹일듯한 눈빛으로 적룡기를 바
라보며 바위처럼 무겁게 입을 열었다.
"적노야는 그녀를 꼭 죽이실 작정입니까?"
적룡기는 지체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다. 그녀를 살려두기에는 전설이 너무 무섭다."
"적노야는 그녀를 죽이면 반드시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음! 무슨 뜻이냐. 설마하니 그녀를 대신해 우리에게 복수를 하
겠다는 말이냐?"
금천풍호의 눈빛이 더 한층 강렬해졌다.
"이제까지 제게 생명의 소중함을 가르쳐 오신 노야들이십니다."
"음......!"
"헌데 그녀를 노야들의 손으로 죽인다면 그것은 노야들 스스로의
신조를 깨뜨리는 것! 제 마음에는 이제껏 노야들에게 품고 있던 존
경심 대신 불신감만 가득차게 될 것입니다."
적룡기를 비롯한 불귀칠자의 안색이 돌처럼 굳어졌다.
실로, 준엄하기 이를 데 없는 꾸짖음이 아닌가?
허나 적룡기는 이내 고개를 저으며 칼로 자르듯이 단호한 음성으
로 말했다.
"허나 그렇다고 해도 어쩔수 없다. 그리고 나는 아직도 젊다. 세
상을 모르는...... 젊음이란 좋은 것이기도 하지만 지나친 혈기로
인해 판단력이 흐려지는 결점을 가지고 있지......"
"......!"
"오늘 노부들이 한 판단이 옳고 그름은 후세의 사가들이 판단해
서 적을 것이다. 그리고...... 후일 네가 우리만큼 나이를 먹고 세
상의 연륜을 쌓았을 때, 그때까지 오늘 우리의 행동이 잘못되었다
고 생각을 한다면...... 그때는 우리를 원망해도 좋다."
"적노야......!"
"이미 내려진 결정이다."
헌데 바로 그때였다.
"흥! 못된 늙은이 같으니라고......"
돌연, 싸늘하기 이를데 없는 여인의 옥음이 동굴 안을 가득히 울
리는가 싶더니,
번쩍!
일순 동굴의 입구에서 시뻘건 홍영이 어른거리며 누군가가 동굴
안에 모습을 드러냈다.
나타난 여인. 이제 삼십을 막 넘겼을까? 일신에 걸친 것은 타는
듯한 홍의궁장, 백설처럼 흰 피부를 두고 설부라고 한다면 이 여인
의 피부를 이르는 말일 것이고, 아름다운 여인의 눈썹을 두고 유엽
미라는미사여구를 쓴다면 천하에 오직 이 여인만이 지닐 자격이 있
는 언어이리라!
보요라고 말할수 밖에 없는 허리에, 팔등신으로 미끈하게 빠져내
린 몸매는 마치 전신으로 사내의 허리를 부르는 듯 화사하고 미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었다.
헌데, 대체 누구란 말인가?
갑자기 나타난 이 여인은......?
더구나, 이 여인은 전설적인 초강자들인 중원칠절을 눈앞에 두고
도 두려워 하는 표정은 커녕, 오히려 입가에 싸늘한 조소까지 떠올
리고 있었으니......
대체......?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