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희은
중후한 성량, 노년 여성의 이상적 전형이라 할 수 있는 음색을 가졌다. 여기에 본인의 곡들도 가사 하나 하나가 연륜을 담고 있어 청자들의 감성을 금방 끌어낼 수 있는 가수.
특히 노래로 구슬픈 감정을 표현하는 능력은 대한민국에서 따라올 가수가 없다.
엄마의 입장으로 부르는 노래도 몇 곡 가지고 있으며, 워낙 음색이 노래의 감수성과 잘 맞아떨어져서 방송에 출연해 "엄마가 딸에게"를 불렀을 땐 객석을 눈물바다로 만들기도 했다.
특징으로는 친한 손윗남자들을 '형'이라고 부른다는 것.
사실 1990년대 초반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대학에서 여자 후배가 남자 선배에게 '형'이라고 부르는 것은 종종, 운동권의 경우에는 흔하게 있었던 일이었다.
사실상 운동권에서 유행시킨 말. 사실 한국어에서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님', '어머님', '언니', '형', '누나', '오빠'와 같은 친족 단어들은 원래 실제 혈연 친족 관계에서만 사용되었다.
그러나 20세기 초반부터 하나씩 비혈연 관계에도 사용되기 시작한다. 20세기 초반에 '할아버지', '할머니'가 빠져나온 게 시작이었고, '오빠'가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쯤 가장 나중에 빠져나왔다.
그래서 지금도 50~60년대 출생자들 중, 여자가 나이 많은 남자친구에게 '오빠'하고 부르는 걸 "자기 오빠도 아닌데 왜 오빠라고 부르냐"며 싫어하는 경우도 있다.
1952년 8월 13일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났다. 청소년 시절에 서울 YMCA가 운영하던 청소년 쉼터 "청개구리"를 다녔는데 그곳에서 만난 사람이 바로 양희은의 음악인생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인 김민기였다.
김민기가 없었다면 현재의 양희은은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아버지가 육군 대령이었으나, 39세의 나이로 일찍 사망하고 어머니가 보증을 잘못 선데다가 어머니의 가게인 양장점이 홀라당 타버리는 바람에 집안이 기울어 대학시절 끼니는 물론이고 교통비조차 없어서 걸어다녔다고 한다.
이 때문에 먹고 살기 위해 노래를 해야만했고 무대에 올려 달라고 부탁했던 사람이 바로 송창식이었다고 한다.
송창식은 자신이 노래를 부르던 명동의 맥주집에 데리고 가서 자신의 공연시간 10분을 떼주면서 일을 할 수 있게 해주었다고 한다.
놀러와 설날 특집 세시봉 콘서트때 양희은이 직접 언급. 송창식에게 '형 저 노래 하고 싶어요' 라고 하자 송창식이 '노래 하고 싶어?' 라고 묻고는 자신이 공연하던 맥주집에 데려가서 자기 공연시간의 일부를 때줘 무대에 세워줬다.
받아준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인데 양희은은 맹랑하게 사장에게 가불을 부탁했고 4만원을 받아냈다. 당시 국립대학교 한학기 등록금이 7천원이었다.
사장이 엄청난 대인배였던 셈. 물론 송창식을 믿고 내준 게 더 컸겠지만. 사람 추천 안하기로 유명한 송창식이 추천한 사람은 양희은이 최초라고 한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가수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71년 9월에 발매된 양희은의 첫 정규앨범 "양희은 고운노래 모음"을 냈는데 여기에 수록된 김민기의 "아침 이슬"과 "세노야"는 양희은 하면 떠오르는 대표곡이 되었다.
하지만 아침 이슬이 금지곡이 되면서 그녀의 노래들도 덩달아서 금지곡이 되는 슬픔을 겪어야 했다.
그녀의 대표곡인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왜 사랑이 못 이루어지냐라는 황당한 이유로 금지곡이 되었고, "작은 연못"의 경우는 김종필과 이후락의 권력다툼을 비꼬았다라는 이유로 금지곡이 돼버렸다.
무려 30여곡의 노래가 금지곡이 돼버렸으니... 이때는 별 이유 같지도 않은 이유로 금지를 먹이는게 허다했다.
송창식의 "왜 불러"만 해도 사용된 영화에서 청년 둘이 장발 단속을 피해 튀는 장면에서 나와서 공권력을 조롱한다는 이유로 금지를 먹었던 시대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는 1975년에 정부에서 수여하는 대한민국 가수상을 수상했다.
70년대 후반에 이주원과의 공동작업으로 나온 "한 사람", "들길 따라서", "네 꿈을 펼쳐라" 등은 주옥같은 곡들로 평가받는다.
1981년에 한국을 떠나서 1년여간 미국과 유럽 등을 여행하고 돌아왔지만 이듬해인 1982년에 그녀는 난소암 진단을 받고 인생의 중대 기로에 서게 되었다.
2번에 걸쳐 암수술을 받았고 투병 생활을 하는 등 인생의 굴곡이 많았다. 여동생인 양희경은 직접 옆에서 병간호를 했으며, 병고로 겨우 신음소리만 내는 그녀의 모습에 "정말로 언니가 죽는 줄 알았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이 일로 자식을 가질 수 없게 되었지만, 남편과 강아지들을 자식 삼아 키우며 긍정적으로 살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그런 와중에도 1985년에 발표한 하덕규 작곡의 "한계령"은 뛰어난 곡으로 평가를 받았다. 발표 당시에는 너무 무거운 분위기라 음반사가 홍보를 포기해버렸지만 1990년에 다시 발표했을때 큰 찬사를 받았다고 한다.
연작 소설 원미동 사람들의 마지막 편인 "한계령"이 바로 이 노래에서 제목을 따왔다.
1987년 민주화 이후에 양희은의 금지곡들은 모두 해금조치 되었고 뛰어난 뮤지션으로 재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2002년에는 데뷔 30주년을 맞아 30주년 기념음반과 콘서트를 가졌고 2011년에는 데뷔 40주년을 맞아 그동안의 인생을 되돌아보는 뮤지컬 "어디만큼 왔나"를 2011년 8월 중순까지 공연하였다.
1집 '양희은 고운노래 모음'과 20주년 기념앨범 '양희은 1991'은 각각 85위와 80위로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 선정되었다.
포크 가수로 유명한 편이지만 의외로 신중현과 협업하면서 사이키델릭 포크를 시도하기도 했다. 평은 좋지만 너무 시대를 앞서갔는지 묻혔다. 리뷰 2010년 시점으로도 이 음반은 60만원을 호가하는 희귀 음반이다.
가수 경력 뿐만 아니라 라디오 DJ로서도 전설적이다. 젊은 시절부터 CBS, TBC 등에서 팝 음악방송 DJ를 했을만큼 방송 경험도 풍부한 편이다.
1992년에 다시 CBS로 돌아와 "양희은의 정보시대"를 진행했고 SBS에서 "두시의 친구 양희은입니다"를 1998년까지 진행했으며 손숙의 뒤를 이어서 1999년부터 2023년 현재까지 MBC 표준FM 여성시대를 진행 중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의 이런 경력에도 불구하고 MBC 라디오에서는 타 방송사의 경력을 인정해주지 않아 MBC 라디오 명예의 전당인 골든마우스에서 2019년이 돼서야 골든마우스 시상을 하였다.
아직도 목소리에 힘이 가득하기로 유명하다. 젊었을 때나 지금이나 목소리가 매우 힘차고 또렷해서 듣기만 해도 양희은임을 알아챌 수 있다.
다만 동생도 목소리가 매우 비슷해 속기 쉽다. 물론 양희경이 좀더 나긋나긋하지만 양희경이 작정하고 따라하면 친척도, 지인도 구분이 어렵다. 심지어 둘의 모친도 목소리가 둘과 같아서 가족들과 모친의 지인들이 많이 속는다고 한다.
2014년 윤종신과의 <배낭여행> 작업을 시작으로 '뜻밖의 만남'이라는 후배 음악인들과의 프로듀싱 음반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적, 이상순, 성시경 등 현재까지 9번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새로운 변화를 성공적으로 시도했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음반 목록
1971년 - 양희은 고운노래 모음 <아침이슬 / 세노야 세노야>
1972년 - Bool Namu
1972년 - 양희은 고운노래 모음 제2집 <아름다운 것들 / 서울로 가는 길 / 백구 / 작은 연못>
1973년 - 양희은 고운노래 모음 3집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17] / 행복의 나라 >
1974년 - 내 님의 사랑은... <내 님의 사랑은>
1975년 - 한 사람 <한 사람 / 세월이 가면>
1976년 - 양희은 Best <들길 따라서>
1978년 - Yang Hee Eun <산장의 여인 / 부모>
1979년 - 거치른 들판에 푸르른 솔잎처럼 <거치른 들판에 푸르른 솔잎처럼 / 고무줄놀이 / 늙은 군인의 노래 / 천릿길>
1980년 - 양희은 <이름 모를 소녀 / 빗속을 둘이서>
1981년 - 양희은 새노래 <어디만큼 왔니 / 누구나 다 있지>
1983년 - 양희은 신곡집 <하얀 목련 /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1985년 - 양희은의 새노래 모음 <한계령 / 찔레꽃 피면 / 우리가 오를 봉우리는>
1988년 - 양희은의 새노래 모음 <이별 이후 / 숲>
1991년 - 양희은 1991 <그 해, 겨울 /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 가을 아침>
1995년 - 양희은 1995 <못다한 노래 / 내 나이 마흔 살에는>
1998년 - 양희은 1998 <저 하늘 구름 따라 / 연인들>
1999년 - 양희은 하나, 둘 (베스트 앨범)
1999년 - 양희은 셋, 사랑의 노래 (베스트 앨범, 리메이크 앨범) <사랑한 후에 / 내 사랑 내 곁에>
2001년 - 30 Years Anniversary <그대가 있음에 / 사랑, 당신을 위한 기도>
데뷔 30주년 앨범이지만, 양희은이 진행하는 여성시대 라디오에서 그 동안 양희은 진행하며 가장 기억에 남았던 청취자 추희숙 씨를 위해 만든 추모 앨범이다.
당시 말기암으로 제대로 몸도 못가누던 추희숙 씨가 4일에 걸쳐 보내온 편지를 보며 엄청난 감정을 느꼈던 듯 하다.
데뷔 30주년 앨범을 추모 성격의 앨범으로 제작하려고 했을 때 주위에서 걱정의 목소리도 있었지만 양희은의 강한 주장으로 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2002년 - 30 Live (양희은 30주년 기념 라이브 앨범) <일곱 송이 수선화 / 사랑, 당신을 위한 기도>
2006년 - 양희은 35 (양희은 35주년 앨범) <인생의 선물 / 당신만 있어준다면>
2014년 - 2014 양희은 <나영이네 냉장고 / 당신 생각 / 내 생에 가장 아름다운 말>
https://youtu.be/41EoGQ7qxP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