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에서 나를 키운다
어깨를 부딪히고 걸어가면
오늘 하루를 배우고
다시 밤의 시간이 오면
손 내밀어 서로를 익힌다
결혼 후 분가하여 살다가 본가로 들어간 후 가장 큰 어려움은 청국장을 먹는 것이었다.
어쩌면 청국장 그 자체보다 청국장만큼이나 낯설고 이질적인 환경이었을 것이다.
두 동생들과 부모님 함께 핵가족으로 살던 나는 장남의 맏며느리라는 새롭고 어색한 역할이 남의 옷을 걸친 것처럼 편치않았다.
시어머니는 매년 가을 가마솥에 메주콩을 삶아 청국장을 띄우셨다.
청국장은 늘 안방 아랫목을 차지하고 이상한 냄새를 집안 가득 피웠다.
몇 일 지나 냄새가 빠져나가는가 싶으면 부엌에서 청국장 끓이는 냄새가 또 다시 진동하였다.
어려서부터 입이 짧아 친정엄마의 특별 대우를 받던 나는 이제 새경을 받는 머슴의 심정으로 식탁에 앉곤 하였다.
다행이도 우리 아이들 남매는 식성이 좋아 할머니가 주는 반찬은 김치를 비롯하여 무엇이든지 잘 먹었다.
겨우내 김장 김치도 청국장과 함께 항아리를 비워내고 어느덧 꽃샘 바람이 불어오던 날 천안에 사시는 고모님이 오셨다.
고모님은 대문을 들어서며 우리 아이들을 보자마자 반색을 하셨다.
-아니, 얘들은 무엇을 먹였기에 이렇게 토실토실 한가
어머니는 아무렇지도 않게 겨우내 청국장 먹였지요, 하자 우리 손주들은 같은 나이 또래인데도 얘들 보다 훨씬 작은데
천안으로 내려가면 당장 청국장을 만들어야겠네-하셨다.
그 후로 우리 집안에는 청국장 열풍이 불었다.
나도 덩달아 청국장 마니아가 되어갔다.
우리 아이들은 어느덧 중학생이 되었고 어머니도 미국 작은 집으로 떠나신 후 우리집에서 청국장 냄새는 서서히 사라져 가고 우리도 캐나다로 이민을 왔다.
디아스포라의 삶은 하루하루 종종거리기에 충분하였고 청국장 냄새도 거의 잊혀져 가던 어느 날 성당 모임에서 한 자매를 만났다.
-혹시 인스턴트 팟 아세요?
-아니요. 처음 들어요
-글쎄요, 그게 요구르트 기능으로 청국장을 만들어준대요. 신기하지 않아요?
그 말을 듣자 나의 가슴으로 아련하게 피어오르는 그 냄새, 바로 청국장이었다.
우리 아이들 어렸을 적 그 포동포동하던 얼굴이 그리움처럼 다가왔다.
창 밖에는 첫눈이 내리고 로키의 눈바람이 불어온다.
이제 청국장을 띄울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첫댓글 동감합니다
저도 청국장 처음에 접했을 때 죽기보다 싫었는데 이젠 저혼자 먹는
기호 식품이 됐답니다
건안하신지요 명선생님
@신금재 美思 네~선생님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토속 음식 중 가장 중독성이 강한 청국장이지요.
파는 데도 잘 없지만 가끔 사먹으러 가기도 하고요.
그러시군요
저희는 인스턴트 팟 덕분에 가끔 해먹는답니다
고향의 어머니 손맛
그 구수한 청국장
그립습니다
캐나다 보냅니다
아네~~감사합니다
어둠과 밤의 자식이군요!
청국장 먹어본 지 오래되었네요^^
시집살이 하던 낮과 밤의 시간이 마치 청국장 시간 같아서요
오늘 저녁 메뉴로 당첨^^
어릴적 시골 할머니댁에서
마주한 풍경이 고스란히
펼쳐져서 회상에 잠겼습니다.
그리움에 뭉클하네요.
당첨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