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대교구 영광순교자기념성당
영광 출신 순교자의 순교 정신 기려
장태섭 토마 광주 Se. 명예기자
영광은 천주교 광주대교구의 신앙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곳이다. 한국 천주교회는 1784년 이승훈이 베드로라는 이름으로 중국 북경에서 구베아 신부에게 세례를 받고 들어오면서 시작되었다.
전라도의 경우 한국 천주교회 창설 직후에 전주의 유항검(柳恒儉 아우구스티노)과 진산의 윤지충(尹持忠 바오로), 무장의 최여겸(崔汝謙 마티아)이 천주교를 받아들이고 신앙공동체를 형성한 뒤 전라도 각지로 복음을 전파해 나갔다. 이런 과정에서 영광에는 일찍부터 천주교가 전래 되었으며 이화백, 오 씨, 이우집, 최일안, 이종집, 남조이, 김득겸, 윤종백 등이 신앙생활을 하던 중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났다.
이 박해로 최여겸으로부터 교리와 세례를 받은 월산리의 이화백과 복산 거주 양반 오 씨는 영광에서, 월산리에 살던 유관검의 친사돈 이우집과 최여겸의 조카 최일안은 전주에서 참수되었으며, 유항검의 사돈 이종집과 남조이(김득겸의 아내)는 황해도 문화와 은율로 각각 귀양을 가게 되고, 조선 천주교회의 최초의 여회장이었던 강완숙의 딸 홍순회는 영광으로 유배를 온다. 그 후 병인박해 시기인 1867년에 영광 뜸밭 출신 김치명이 공주에서 교수형으로 치명되고, 영광 신어실에 거주했던 유문보 바오로는 1872년 나주에서 심한 고문의 후유증으로 옥사, 치명하게 된다.
이화백과 오 씨가 영광에서 참수된 순교 터는 수 차례 고증과 학술회의를 통해 현재 도동리 석장승 남쪽 우시장 자리, 지금의 영광성당 정문 앞으로 추정되었다. 1832년(순조 32년) 도동리에 조선시대에 잡귀, 액, 살 등 부정한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는 석장승을 세운 것과 죄인의 참수 후에 칼을 씻었던 개천으로 추정되는 지금의 도동리 홍교와 군중이 모이는 우시장은 죄수들이나 천주교 신도들이 참수된 순교 터로 추정할 수 있는 근거가 되었다.
순교 정신을 기리는 순교자기념성당과 기념관
광주대교구는 순교 터와 접한 영광성당을 1801년 신유박해 시기 영광에서 순교한 이화백과 오 씨와 그 밖에 영광 출신 및 거주했던 순교자 네 분의 순교 정신을 기리기 위해 2010년 9월 10일 순교자기념성당으로 지정하였다. 2014년 6월 28일 영광순교자기념성당을 신축하여 축성식을 가졌고, 2017년 5월 13일 영광성당 설립 80주년(1937-2017)을 맞아 영광순교자기념관을 건립하여 순교자들의 거룩한 순교 정신을 기리고 있다.
영광순교자기념관 본관에는 영광의 순교자 여섯 분과 유배자 세 분, 그리고 당대의 신자 두 분을 스테인드글라스 대작에 담고 있다.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성화(주중직심도)가 조선시대의 생활용품과 함께 전시되어 있고, 영광 순교자의 기도상과 이화백, 오 씨 두 분 모습이 청동 부조로 작품화되어 있으며, 영광 순교자와 유배자들, 그분들과 연관된 유항검, 강완숙, 최여겸 세 분의 복자 초상화도 볼 수 있다. 그리고 한국 최초의 사제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를 비롯한 여섯 분의 성인 유해가 모셔져 있다.
입구에는 광주대교구 순교성지 세 곳(영광, 나주, 곡성)과 한국 천주교회사와 영광의 역사와 문화(4대 종교)가 소개되고 있고, 초기 교회 서적들과 순교자들 관련 고서 및 박해시대로 추정되는 성물들이 진열되어 있으며, 영광성당 80년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본당 역사실이 있다.
영광순교자기념관은 영광의 순교자와 유배자들, 당대의 신자 두 분을 기억하는 추모관이며,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을 비롯한 여섯 분 순교성인의 유해가 모셔져 있어 교회의 순교 역사와 순교 정신을 배우는 성지이다. 무엇보다 순교자 유해가 모셔진 곳은 성스러운 장소인 만큼 순례자들의 경건한 마음과 겸손하게 성인들의 전구를 청하는 기도의 자세가 필요하다고 하겠다. 진리를 향하여 목숨을 바치는 순교 정신이야말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추구해야 삶의 가치이다.
영광성당의 80년 역사
1784년 한국천주교회 설립 초기에 유항검, 유관검, 최여겸 등에 의해 영광에 복음이 전해져, 양반 이화백과 오 씨 등이 신앙공동체를 형성했으나 1801년 신유박해로 와해되었다. 그 뒤 1920년대에 나주 노안본당의 서 미카엘 가족들이 백수읍 대신리로 이주해 오자, 노안본당의 카다스 신부가 방문해 그 손자 4명에게 세례를 주면서 영광공소가 설립되었다. 이후 영광공소는 1937년 영광본당으로 승격되어 멀컨 신부가 부임했다.
이후 13대 맥뮬란 신부 때까지 주로 골롬반 외방선교회 신부가 부임하여, 현 본당의 터전을 마련해 성당과 사제관을 짓고, 수녀원을 건립해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 수녀회를 초빙하고, 한센인 신앙공동체인 영민농원을 설립하고, 군남·홍농·염산·백수공소를 설립하는 등 본당을 안정 궤도에 올려놓았다.
이어 1992년 14대 박재완 신부 이후 차례로 부임한 젊은 한국인 사제들이 남다른 애정과 열정으로 성당의 모습을 새롭게 탈바꿈시키고, 자주적인 사목 활동으로 반핵 등 대사회적 활동에 적극 참여하면서, 신자들의 의식도 더불어 성장했다. 특히 문병구, 최상준, 송홍철 세 신부의 노력으로 2010년 신유박해 순교자와 순교 터가 규명되고, 2014년 순교자기념성당이 신축되고, 2017년 순교자기념관이 조성되어 순교성지로 거듭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