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수지에 빠졌던 검은 염소를 업고
노파가 방죽을 걸어가고 있다
등에 흠뻑 젖어들고 있다
가끔 고개를 돌려 염소와 눈을 맞추며
자장가까지 흥얼거렸다
누군가가 업어준다는 것은
희고 눈부신 그의 숨결을 듣는다는 것
그의 감춰진 울음이 몸에 스며든다는 것
서로를 찌르지 않고 받아준다는 것
쿵쿵거리는 거의 심장에
등줄기가 청진기처럼 닿는다는 것
누군가를 업어준다는 것은
약국의 흐릿한 창문을 닦듯
서로의 눈동자 속에 낀 슬픔을 닦아주는 일
흩어진 영혼을 자루에 담아주는 일
사람이 짐승을 업고 긴 방죽을 걸어가고 있다
한없이 가벼워진 몸이
젖어 더욱 무거워진 몸을 업어주고 있다
울음이 불룩한 무덤에 스며드는 것 같다
― 박서영, 〈업어준다는 것〉 전문
물에 빠진 염소를 건져 등에 업고 ‘노파’가 가고 있다. 놀랐을 염소를 달래려 “가끔 고개를 돌려 염소와 눈을 맞추며/ 자장가까지 흥얼거”리며, 등은 흠뻑 젖은 채. 눈물겨운 풍경이다.
업는다는 것은 따뜻하고 슬픈 일. 그것은 무방비의 내 뒤쪽을 다 허락하는 일이며, 다 내준다는 뜻이다. 타자의 온 무게를 지고 그의 다리가 되어 대신 걸어주는 일이다. 또한 그의 가슴과 아랫도리를, 숨결과 감춰진 울음을 내 등으로 읽고 감당하는 일. 그리하여 마주 안는 것보다 더 깊고 눈물겹게 한 몸이 되는 일이다.
‘업어주기’에 대한 2, 3연의 통찰 또한 따뜻하다. 어찌 “울음이 불룩한 무덤에 스며드는 것 같”지 않으랴. 늙은 할매와 어린 염소의 업고 업힘, 이 따뜻한 비애의 풍경에 축복 있기를! (한 가지, 시인은 왜 ‘노파’라는 문어투 번역투의 어휘를 택했을까. 감상적이 될까 두려워한 것일까.) < ‘시를 어루만지다(김사인, 도서출판 b, 2017)’에서 옮겨 적음. (2020.03.22. 화룡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