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50개국에서 선거… 글로벌 정치·경제 ‘새 판’ 짜여진다
대만·러·인도·이란·유럽 줄줄이
박빙 미 대선에 전 세계가 주목
경제에도 큰 영향 미칠 가능성
2024년은 글로벌 정치의 새 판이 만들어지는 대격동의 해로 기록될 전망이다. 미국을 비롯해 약 50개 국가에서 연쇄적으로 대통령 선거나 총선이 치러지면서 세계 권력 지형도가 새로 그려지게 되기 때문이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이 같은 상황을 ‘전례없는 투표 축제’로 규정한 뒤 미국 최대 스포츠 이벤트인 슈퍼볼에 빗대 ‘민주주의 슈퍼볼’이라고 소개했다.
▲12월 23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린 대만 제1야당 국민당의 유세 현장. 대만의 총통 선거 결과는 대만의 친중-친미 노선을 가를 중요한 변수다. (EPA=연합뉴스) |
●‘바이든 vs 트럼프’… 11월 미국 대선, 리턴 매치 = 미국 공화당은 1월 15일 아이오와 코커스(당원대회)에 이어 23일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예비선거)를 시작으로 경선전에 들어간다. 민주당은 2월 3일 사우스 캐롤라이나 프라이머리를 첫 경선으로 공식 결정했다.
양당 후보들의 경쟁은 가장 많은 주에서 동시에 경선이 실시되는 오는 3월 5일 ‘슈퍼 화요일’을 거치며 대세가 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주별로 대선 후보 경선을 마치면 공화당은 오는 7월 중순 위스콘신주 밀워키에서, 민주당은 8월 중순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각각 전당대회를 열고 당 대선 후보를 최종 선출한다. 본격적인 대선 레이스의 막이 오르게 되는 셈이다.
예상대로 민주당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공화당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각각 후보로 확정된다면 두 사람은 지난 2020년 대선에 이어 리턴 매치를 벌이게 된다. 이렇게 되면 지난 1956년 당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과 애들레이 스티븐슨 전 대통령의 대결에 이어 68년 만에 전·현직 대통령이 맞붙게 된다.
정치전문매체 더힐이 최근 전국단위 504개 여론조사를 평균한 결과, 양자 가상 대결 시 트럼프 전 대통령이 45.5% 지지율로 바이든 대통령(43.0%)을 2.5%포인트 앞섰다.
미국 대선은 주별로 후보 득표율에 따라 선거인단을 선출하고, 이들 538명의 선거인단이 다시 대통령 후보에게 투표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또 대부분의 주에서 한 표라도 더 많이 득표한 후보가 그 주의 선거인단을 모두 차지하는 승자독식제를 택하고 있어 선거 때마다 표심이 요동치는 경합주(스윙스테이트)의 선택이 선거승패를 결정할 전망이다.
최근 경합주만을 대상으로 한 가상대결 여론조사에서도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바이든 대통령을 오차범위를 넘나들며 앞서고 있어 바이든 대통령 측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의미 있는 득표력을 지닌 제3후보가 등장할 경우 두 사람의 대결구도도 요동칠 것으로 예상돼 제3세력의 움직임도 주목된다. 무소속 출마를 선언한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 등이 관심을 모은다.
●트럼프 당선 시 동맹보다 미 이익 우선 = ‘마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선거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우고 있는 트럼프 전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과 확연히 다른 정책노선을 제시하고 있어 당선될 경우 전 분야에 걸친 지각 변동을 예고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재집권할 경우 ‘첫 날만 독재자가 되겠다’고 여러 차례 공언하면서 민주적인 제도와 법도 초월할 수 있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어 안팎의 우려를 사고 있다.
최근엔 유세에서 “이민자가 미국의 피를 오염시키고 있다”는 혐오 발언을 쏟아내며 공격적인 불법 이민자 정책을 펼칠 것임을 호언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에서 이어지고 있는 두 개의 전쟁에 대한 미국의 노선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그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 전 세계 ‘스트롱맨’들에 대해 우호적 입장을 취해왔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다시 집권한다면 미국의 한반도 정책에도 상당한 변화가 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외교 정책에서 동맹을 중시해온 바이든 대통령과 달리 트럼프 전 대통령은 ‘아메리카 퍼스트(미국우선주의)’를 내세워 동맹보다 미국의 이익을 우선할 것이며 이런 경향을 한반도 정책에서도 관철하려 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바이든 대통령은 재선에 성공할 경우 현재와 같이 한미일 3각 공조에 기반한 안정적인 한반도 정책을 인도·태평양 전략의 근간으로 삼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부상하는 최대 위협으로 중국을 정조준하고 있는 만큼, 이에 대응하는 과정에 대중 수출 통제 및 제재 등을 강화해 한국 경제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미중간 패권 경쟁이 가속하는 상황에서 정도와 방식에 차이는 있겠지만 중국 압박에 있어서는 누가 되더라도 큰 차이가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대만부터 러시아·인도·유럽 ·아프리카… 줄 잇는 선거 = 2024년에는 약 50개 국가, 인구 20억 명 이상이 선거를 치르면서 세계경제의 불안정성도 가중될 것이라고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가 보도했다. NYT는 이를 ‘선거 올릭픽“으로 표현하면서 올해 선거에 참여하는 국가들의 투표 참가자 규모가 세계 경제 생산량의 60%를 차지하는 수준이라고 보도했다.
대만에서는 1월 13일 총통 선거가 예정돼 있다. 이번 선거는 중국의 흡수통일 압박에 직면한 대만의 앞날에 중요한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 최근 여론 조사상으로는 집권 민주진보당 후보와 친중 제1야당인 국민당 후보가 팽팽한 접전을 이어가고 있다. 독립 성향이 강한 집권 민진당이 다시 집권한다면 대만에 대한 중국의 위협이 한층 더 거세게 전개될 수 있다. 반면 국민당 후보가 당선되면 미국은 중국의 대대만 영향력을 차단하기 위해 더 적극적인 대응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도 내년 대선이 예정돼 있다. 푸틴 대통령이 이미 5선 도전을 선언했고, 서구 언론에서는 이는 선거라기보다는 ‘대관식’에 가깝다는 비판이 나온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내년 봄 5년 임기가 끝나지만, 계엄령에 따라 선거 절차는 중단된 상황이다.
세계 최대 인구대국인 인도에서도 봄에 총선이 열린다.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3선을 노리는 가운데 야권 28개 정당 연합인 인도국민개발포괄동맹(INDIA)이 이를 좌절시킬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이란에서는 2020년 이후 4년만인 3월 1일 총선이 실시된다. 야당 후보자 중 25% 이상이 이미 자격을 상실했고 많은 유권자가 투표를 보이콧할 수 있어 여러모로 민주주의와는 동떨어진 선거가 될 가능성이 크며, 국민적 저항에 직면하게 될지 세계 여론이 주목하고 있다.
유럽에서는 오스트리아와 벨기에, 크로아티아, 핀란드에서 각각 선거가 있고, 6월에는 유럽의회 선거가 열린다. 아프리카에서는 알제리, 튀니지, 가나, 르완다, 세네갈, 남수단 등에서 선거가 치러진다.
●‘변수’ 속출할 가능성… 세계경제 불확실성 증폭 = 두 개의 전쟁이 진행되는 가운데 이처럼 지구촌의 여러 국가에서 선거가 진행되면서 세계 경제에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NYT는 분석했다. 이런 경제 상황을 두고 수많은 경제학자들이 마치 1970년대와 비교하기도 했지만 영국 케임브리지대 공공정책 교수인 다이앤 코일은 1930년대를 떠올렸다고 NYT는 전했다. 각국 선거에서 분노한 포퓰리스트들이 승리를 따내면 정부를 상대로 무역 규제, 외국인 투자 통제, 이민 장벽 등을 강화하게 할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우리가 알던 것과는 아주 다른 세상’으로 세계 경제를 몰아넣는다는 것이다.
그는 “무역이 줄어드는 세상은 소득이 줄어드는 세상이 될 것”이라며 1930년대 정치 격변, 금융 불균형이 ‘포퓰리즘·무역 감소·극단적 정치’로 이어졌던 상황과 내년이 비교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실제로 내년 치러지는 선거에서 유권자 규모는 세계 경제 생산량의 60%를 차지한다. 규모 면에서 인구 대국인 인도를 포함해 대만, 인도네시아, 남아공, 유럽의회 등에서 크고 작은 선거가 이어진다.
이처럼 세계가 불안한 동맹, 경쟁 구도로 분열되면서 안보 우려가 경제 결정에서 훨씬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될 것으로 점쳐졌다. 불확실성이 심화하면 기업은 투자, 확장, 고용에 관망하는 태도를 취하는 경향을 보이는 등 경제에 부정적 영향으로 이어진다고 NYT는 짚었다. 이 매체는 “계속되는 군사 갈등, 점점 악화하는 기상 이변, 동시다발 선거로 2024년에는 더 많은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외신 종합/정리=이용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