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이를 이기는 심리학
「나이를 이기는 심리학」 이 책은 인생 후반과 노후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 같다. “전반전에 열심히 뛰었다고 해서 후반전은 벤치에 앉아 경기가 끝나기만을 기다릴 수는 없고, 젊어서 열심히 일했으니 노후에는 쉬어야 한다는 것도 항상 맞는 것이 아니다. 노후를 ‘쉬는 기간’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저자가 한 말이다. 저자 한소원은 서울대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일리노이주립대학에서 인지심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10년간 오클라호마주립대학에서 교수를 지내다가 현재는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참고로 이 책은 2022년 10월 31일 출간된 것이다.
2020년 기준으로 우리 국민 4명 중 1명은 60대 이상이다.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30세까지 직업을 준비하고 그 이후 30년간 열심히 일하면 노후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 후에 이어지는 30년을 또 준비해야 한다. 그전에는 노후 준비라는 것이 나이 들어 먹고 살 수 있는 경제적인 준비를 해 놓는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이제 노후의 기간이 평생 열심히 일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그 기간보다도 훨씬 더 길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길어진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전에 없었던 구체적인 문제가 생긴 것이다.
20대, 30대에는 스스로를 발전시키려고 노력했지만, 40대만 넘어가면 자기를 발전시키는 노력보다 안정을 추구하는 경향이 더 커진다. 은퇴 후 경제적으로 안정될 만큼 준비를 해 놓고 그런 다음에 쉰다는 패러다임이 맞는 것일까? 65세에 은퇴하고 100세까지 산다면 35년이라는 기간 동안을 쉬기만 하는 것이 정말 좋은 인생일까? 인생은 결코 미리 결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도전, 새로운 배움에서 삶의 활력이 커진다. 나이가 들어서 뇌가 굳어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경험을 하지 않아서 뇌가 굳어지는 것이다.
힘든 일이 있을 때 우리는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명언을 생각하곤 한다. 또 그런 마음을 가지려고 한다. 삶이 영원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은 어려운 시간만 아니라 행복한 시간도 순식간에 지나간다는 뜻이다. 현재의 고통도 잠시뿐이라고 생각하면 이것은 큰 위로와 희망이 된다. 삶에 한계가 있음을 인정하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지금 시간의 소중함을 더 확실하게 알게 해주는 일이다.
노인 세대는 젊은 사람들보다 정서적으로 복잡한 경험을 하는 경향이 있다. 즐거운 일이 있다고 마냥 즐겁기만 한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가족과 함께하지 못한다는 생각을 떠올리기도 하고, 기쁨 뒤에 찾아올 슬픔을 생각하기도 한다. 나를 힘들게 한 사람을 미워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안쓰럽게 생각하기도 한다.
나이 들수록 고립되어 외로워진다는 선입견이 있지만, 내면의 고요함과 평온함을 느낄 수 있다면 혼자 있는 시간도 얼마든지 의미 있고 행복하게 보낼 수 있다. 경험을 통해 얻은 지혜는 나이 먹으면서 늘어가는 소중한 재산이다. 지혜는 인터넷 검색으로 찾을 수 있는 지식이 아니라 실제 경험을 통해 얻어진 성숙이며 나를 관리하고 인생의 중요한 의미를 찾을 수 있는 능력이기도 하다. 그러나 모든 노인이 성숙한 것도 아니고, 정서적으로 행복한 것도 아니다. 우울증도 상당하고 빈곤이나 사회적 소외감도 무척 많이 느낀다. 나이 들수록 개인적인 격차가 커지기도 한다. 그런데 많은 연구에서 젊은 사람보다 노인들이 상대적으로 행복감이 높다는 통계가 있다. 이는 젊은 시절이 결코 쉬운 시절도 아니었고 지금보다 더 행복했던 시절도 아니었음을 알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지금보다 조금 더 젊기를 희망하는 이유는 현재 중심의 관점에서 삶을 보기 때문이다.
추억거리가 많다.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행복한 기억은 되살리고 힘들었던 기억은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볼 수 있는 여유, 이미 삶에서 이루어 놓은 것이 많다는 생각도 나이 들수록 행복을 느끼는 비결일 수 있다. 여기서 ‘이루어 놓은 것’은 경제적인 성공이나 업적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인생에서 얻어지는 경험은 그 자체로서 큰 의미가 있는 것이다.
사람은 기억의 동물이다. 좋은 일, 나쁜 일들을 기억한다는 것이 희로애락 그 자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머릿속에 정보를 차곡차곡 저장하는 것을 ‘기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우리 뇌는 기억한 내용을 저장하는 장소가 따로 없다. 뇌를 구성하는 세포들의 역할은 그저 불을 켜고 끄는 것밖에 하지 않는다. 기억은 과거에 이루어진 연결망의 패턴을 현재에 되돌려내는 것이다. 똑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읽는 것이 연결망을 강화시키는 결과라고 생각하지만, 특이하게도 뇌는 똑같은 자극이 되풀이되면 반응을 줄이는 특성이 있다. 다양한 각도에서 읽고, 쓰고, 말하고, 적용하는 활동이 오히려 효과적이다.
어떻게 하면 기억력을 강화시킬 수 있을까? 무엇을 반복하기보다 인출연습도 꾸준히 해야 한다. 학생들이 효율적으로 공부하기 위해서는 공부 자체도 중요하기는 하나 실제로 시험을 자주 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기억력은 순서대로 재생되는 비디오 같은 것이 아니다. 과거의 특정한 사건을 기억할 때 뇌 곳곳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각각의 시스템, 인지 시스템에서 여러 가지 패턴을 다시 소환하게 되는데, 이때 단편적인 기억의 조각들은 다시 뇌에서 경험하는 과정에 물리적 위치와 장소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기억을 떠올리려면 배경이 되는 공간이 항상 떠오르는 이유다. 공간에 나의 시각을 기준으로 다른 내용들을 채워 넣는 것이다. 자전적인 기억은 자아 형성에도 중요하며 기억이 없이 자아가 있을 수 없다. 그런 기억의 중심에 공간이 있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 새로운 것을 배우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다. 뇌의 노화로 인해 신경세포를 잃은 이유도 있겠고, 정보 처리 속도가 느려진 탓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쉽게 한 공부보다 어렵게 한 공부가 더 오래 지속된다. 오래 걸린다고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없는 것이 아니다. 오래 걸려도 새로 학습할 수 있다면 우리 뇌가 계속 기능하고 있다는 증거다. 기억력 때문에 스트레스받을 필요는 없다. 변화하는 것들을 받아들이고 선택해서 적응해 가면 되는 것이다.
젊어서 한참 공부할 때는 엉덩이를 오래 붙이고 있어야 제대로 공부하고 기억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이 상황은 오히려 반대다. ‘엉덩이가 가벼워야’머리가 퇴화하지 않는다. 튼튼한 허벅지가 장수의 비결이라 일컬는 이유기도 하다. 신체의 움직임이 인지기능과 직접적인 연관을 보이듯이 몸을 움직여야 뇌가 퇴화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이 들면 운동이 점점 어려워진다. 하루 30분 정도 유산소운동을 하면 좋겠지만 굳이 운동이라고 하지 말고 생활체육이라고 해도 좋다. 유산소운동의 효과를 보려면 요구되는 양상이 여러 가지로 다양하다.
반려동물과 산책하는 사람이 부쩍 늘어 부러울 수도 있다. 굳이 운동의 강도를 구별하자면 운동하면서 동시에 노래를 부를 수 있다면 이는 낮은 강도의 운동, 운동하며 말은 할 수 있지만 노래를 부르는 것까지는 힘들다면 이는 중강도의 운동, 외마디 대답은 가능하지만 문장으로 말할 수 없다면 이것은 고강도 운동이 된다. 유산소운동이 효과가 있으려면 중강도 이상 운동이 요구되나 무리한 운동은 금물이다. 뇌의 발달과 인지기능 향상을 위해서는 운동이 꼭 필요하다는 연구는 꾸준히 쏟아지고 있다.
뇌의 기능은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기기(器機)라고 할 수 있다. 뇌의 문제해결 능력은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적응하고, 번성하기 위한 것이다. 뇌의 기능 가운데 운동이 중요하고 명백한 이유는 운동으로 인해 피에 산소를 공급할 수 있다는 것인데, 혈액 속 헤모글로빈이 운반하는 산소와 결합한 포도당이 에너지를 공급하여 뇌를 작동시키기 때문이다. 이것은 뇌에 끼치는 전반적이고 단기적인 효과다. 단순히 산소를 공급한다고 해서 뇌의 특정한 기능이 향상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뇌는 환경을 헤치고 그 안에서 살아남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문제해결을 위한 도전을 받을 때마다 가장 활발하게 기능한다는 점을 알아두어야 한다.
이상 뇌의 기능에 대해 알아본 것이었다면, 인간의 생체리듬, 호기심, 감정, 자아 등은 왜 생기는지 알아보자. “나는 특별한 재능이 없다. 단지 열정적인 호기심이 있을 뿐이다”알버트 아인슈타인의 말이다. 언제부턴가 흔히 ‘아침형 인간’또는 ‘저녁형 인간’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사람에 따라서 신체 시계가 다른 것은 사실이다. 아침형 인간이 더 성공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사실과 다르다. 생체시계의 변화는 식사 시간과 수면에서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60세가 넘어가면서 기억, 공간, 지능, 추론, 운동 등 다양한 심리 테스트에서 시간에 따른 차이를 보인다. 오전에 시험을 치면 정상으로 나오지만, 오후 늦게 시험을 치면 결과가 떨어진다. 이 차이는 70세가 넘어가면 더 커진다.
건강한 수면과 생체리듬을 위해서는 일정한 시간에 잠자리에 드는 것이 중요하다. 불규칙하게 잠자리에 들면 생체주기가 떨어져서 수면의 질이 떨어진다. 식습관도 수면에 중요하다. 잠자리 들기 전에는 음식물, 특히 고지방을 섭취하면 생체리듬이 뒤로 미루어지게 되면서 늦게까지 깨어 있게 된다. 잠자리에 들기 전 알코올 섭취도 수면을 방해하는 요인이 된다.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하루 만보걷기와 ‘만보기’에는 문제가 없을까? 건강한 노후를 위해서는 활발한 신체활동이 필수이긴 하지만, 이를 전문적인 운동과 동일시할 필요는 없다. 달리기도 좋지만 걷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걷기가 힘들어지면 보행을 위한 보조도구를 사용해도 된다. 집주변을 편안한 속도로 걷거나, 계란이나 대파를 사기 위해 마트까지 걸어서 다녀오는 것도 현명한 방법이다.
《뉴욕타임즈》는 최근 장수를 위하여 하루 7000∼8000보 정도를 걷고, 30∼45분 정도 자전거, 수영, 조깅, 배드민턴 등 운동을 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했다. 70대 여성이 하루에 5000보 이상 걸었을 때 조기 사망률이 크게 감소했으며, 7500보 걸었을 때 가장 효과가 컸다고 했다. 9000보를 걷는 경우 사망 위험률이 70%까지 낮아졌지만 1만보 이상 걷는다고 해서 추가적인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하루 7000∼8000보 정도 걸음이 조기 사망률을 낮추는데 가장 효과적이라는 결과다.
그런데 스마트워치나 웨이러블 기기들은 보통 1만보 걷기를 목표량으로 잡는데 왜일까? 이유는 만보기를 제조한 업체의 상술과 무관하지 않다. 하루 만보걷기는 1960년대 일본에서 유행했는데 1964년 도쿄 올림픽 이후 운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야마사라는 시계부품 제조업체가 걸음 수를 측정하는 기기를 만들고 ‘만보 메타’라고 이름붙였는데, 이를 각인시키기 위해 만보를 걷는 것이 건강을 증진시킨다고 광고하기에 이른 것에서 이후 만보걷기는 마치 건강의 대명사로 알려지게 된 것이다.
동무라는 우리말이 있음에도 친구로 굳어진 요즘 아이들에게 ‘친구’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나랑 같이 노는 사람, 나에게 나누어 주는 사람, 나를 때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했다고 한다. 아이들이 크면서 좀 더 관계적이고 추상적으로 변하긴 하겠지만, 그만큼 같이 논다는 것이 스트레스를 해소에도 좋다는 이야기다. 미국의 스튜어드 브라운이 사형수들을 대상으로 어릴 적에 어떤 놀이를 했는지 조사했는데 특이하게도 그들은 놀이를 해 본 적이 없다는 대답이 많았다고 한다. 또 동물들에게 놀이를 못하게 했더니 점점 난폭해졌다는 연구도 있다. 많이 노는 것이 건강의 비결이고 관계를 정상화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치매의 원인과 종류는 다양하지만 ‘개인의 성격’때문에 치매 걸리기 쉬운 성격이 있다고 한다. 어떤 성격이 치매에 잘 걸릴까? 심리학에서는 성격을 외향성, 신경성, 개방성, 친화성, 성실성 등 다섯 가지로 설명하고 있는데 이중 신경성이 높은 사람은 치매 위험이 높고, 개방성과 성실성이 높은 사람은 치매 위험이 낮다고 한다. 신경성이란 걱정이나 불안 등과 관련된 성향으로 심리적 문제와 가장 많이 연관되어 있고, 개방성은 새로운 것에 오픈된 차원으로 새로운 지식에 대한 호기심, 문화 예술에 대한 관심과 새로운 것을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성향이고, 성실성은 규칙을 존중하고 맡은 일에 시작과 끝 동기가 분명한 사람을 말한다. 신경증 수치가 높은 상위 25%와 성실성의 수치가 높은 하위 25%에 해당하는 사람들에게서 치매 위험이 세 배 높았다고 하는데, 이 결과는 우울증과 자기 훈련이 치매와 상관관계가 싶다는 것을 반영하는 것으로 호기심이 많은 성격일수록 치매 위험이 적고, 새로운 경험을 자주 하고 학습한다는 것은 뇌에 새로운 연결망을 형성해 미엘린(신경섬유의 축색을 둘러싼 흰색의 초자 세포)을 늘인다고 한다. 하지만 똑같이 되풀이되는 자극에 우리의 뇌는 점점 반응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아두어야 한다.
“질병보다 외로움이 더 위험하다”는 것은 흔히 듣는 소리다. 외로움은 단순히 주변에 친구들이 있거나 배우자가 있다는 것과는 다른 차원이다. 대중 속에 끼어 있어도 외로울 수 있고 배우자와 자녀가 있더라도 외로울 수 있다. 애정이 없고 갈등이 많은 결혼생활은 이혼한 것보다 건강에 훨씬 더 해롭다. 나이 든 훗날에 행복하게 살 수 있는지를 예측할 수 있는 인자는 콜레스테롤 레벨도, 경제적 수준도 아니다. 50세 무렵에 사회적 관계가 만족스러웠다면 80세에도 건강했다고 한다. 행복하고 건강한 삶을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젊은 세대는 경제적인 성공이나 명성이라고 대답하겠지만 이 목표는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도달하지 못하도록 계속해 높아질 뿐이다.
이전까지 많은 장수 연구들은 결혼한 사람들이 혼자 사는 사람들보다 장수한다는 통계를 보여주었다. 그런데 하버드 ‘성인발달연구소’에서는 두 번 결혼한 사람도 첫 번째 결혼을 유지한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행복한 결혼생활을 이어가는 경우가 많았음을 확인시켰다. 1938년 설립되어 85년간 연구를 계속하고 있는 연구소에 따르면 부모의 사회적 지위나 계층, 지능지수, 경제적 소득은 수명과 행복을 예측하는 요인이 아니었다. 어떤 사람은 “나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없어서 외로움을 느끼기도 한다”고 한다. 외로움은 단순히 친구의 수나 사회적 네트워크의 양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사람들 틈에 있다고 해서 외롭지 않은 것도 아니다. 외로움은 내가 나의 사회적인 세계에 대해 스스로 느끼는 바에 따라 결정된다. 지극히 내성적이고 혼자 있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이라면 혼자 있다고 해서 외롭진 않을 것이고, 반대로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지만 말처럼 되지 않을 때 외로움이 클 것이다.
외로운 사람이 감기에 더 잘 걸리고 큰 병에도 더 취약하다. 외로움과 사회적 고립은 뇌의 노화까지를 촉진시킨다. 사회적 관계는 절친이라야 가능한 것도 아니고,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끼리여야 가능한 것도 아니다. 자신이 속한 커뮤니티에서 얼마든지 의미와 관계를 찾을 수 있다. 동아리 활동, 함께 배우는 모임, 봉사활동, 종교적 모임도 좋다. 열린 마음으로 사회적인 연결을 만들고 유지하는 것은 건강한 뇌를 만들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데 필수조건이다. 가십*처럼 말이다.
*가십(godsibb) : 고대에는 하느님 안에 관련된 ‘형제자매나 친지’를 뜻했으나 중세에는 ‘친한 친구 등 다른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같이 나누는 사람’으로 사용되다가 ‘만담, 잡담’이라는 뜻으로 ‘남의 이야기를 하는 것’또는 ‘구미가 당기는 재미있는 소문’으로 통용되었다. 그 자리에 없는 사람의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확대되기도 하였으며, 신문에는 ‘가십란’이란 게 있다.
이제 부부가 결혼해서 두 아이가 함께 사는 4인 가족의 모습이 평균적 삶의 모습이 아니다. 서울의 경우 1인 가구 비율이 34%고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이다. 부부가 아이 낳고 살더라도 아이들이 성장해 떠난 후에 둘이 함께 사는 날이 아이와 함께 산 날보다 훨씬 더 길어졌다. 어떻게 사는 것이 정답이라고 제시하던 시대는 그 시각도, 가치도 변해 버렸다. 나이 들어서 친한 친구 몇 명이 모여 사는 경우를 흔히 볼 수가 있는데, 마음 맞은 사람들과 모여 주변에 이웃을 이루고 사는 모습이 보기 좋기도 하다. 부부가 나이 들어도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것은 아름답기까지 하다. 그러나 모든 사람의 인생이 그렇게 보기 좋은 모습만 펼쳐지지는 않는다. 평균적으로 여자들이 남자보다 5년에서 10년 정도 더 생존한다는 통계고 보면 결혼한 여자들이 혼자 살 가능성이 훨씬 더 높다. ‘화려한 솔로, 돌아온 솔로, 언젠가 솔로’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젊어서 많이 일하고 일찍 은퇴해 즐기면서 살면 되지 않느냐고 하기도 한다. 그러나 경쟁에서 이겨야만 성공하는 삶이라고 여기는 데는 불행한 사회를 만들 수밖에 없다. 세계 무대에서 보면 한국 사람들은 분명히 똑똑하고 성실하지만, 비례해 과학과 문화와 기업에서 그 분야를 이끄는 리더가 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남과 비교하고 그러기를 좋아하는 사회는 각자 다른 가능성을 가지는 개인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한다. 한국은 경쟁만 부추기는 사회가 되어 마땅히 개인이 누려야 할 행복을 막는 것은 아닐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주변을 보면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모두 요양원에 가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함께 사는 자녀가 있는 것도 아니다. ‘내가 살아오던 곳에서 지속적으로 삶을 이어가기 위해’(Aging in Place-에이징인풀레이스)서는 신체적, 지각적, 심리적, 사회적 변화를 고려해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환경에 나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내가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는 얘기다. 나이 들면 주의집중 능력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시끄러운 소리에 집중하지 못하기도, 여러 사람이 떠들면 대화를 따라가기도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조용하고 자극이 없는 환경만 찾아다닐 수 없다. 뇌는 이런 환경에서 더 빨리 늙는다. 복잡한 신체활동과 다체로운 감각을 경험케 하는 활동이 필요하다. 새로운 경험을 해 보고 싶은데 단지 나이들어 체력이 안 된다는 이유로, 경제적인 부담을 이유로 그런 욕구를 억제하기만 한다면 뇌의 활동은 쇠퇴한다. 건강과 행복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서는 몸을 움직이고 새로운 감각을 풍성히 경험하는 일은 필수다.
우리는 남이 가지 않은 길을 걸어가는 마음으로 오늘을 살아야 한다. 한국에도 잘 알려진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 1874∼1963)의 〈가지 않은 길〉이란 시다.
노란 숲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그 길에는 풀이 더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어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던 게지요.
그 길을 걸으므로 그 길도 거의 같아질 것이지만
그날 아침 두 길에는
낙엽을 밟은 자취는 없었습니다.
아, 나는 다음 날을 위하여 한 길은 남겨 두었습니다.
길은 길에 연하여 끝없으므로
내가 다시 돌아올 것을 의심하면서….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시인이 말한 ‘가지 않은 길’을 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매 순간 선택해야 하고, 그중 한 길을 택해야만 한다. 훗날 후회를 하더라도 선택할 수밖에 없다. 가지 않은 다른 길이 더 좋았을지는 미지로 남을 뿐이다. 우리는 각자의 길을 가고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빛을 비추어주고 길을 만들어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청력감퇴는 시력감퇴보다 사회적 고립을 더 심하게 경험하게 만든다. 대화를 알아듣지 못하면 자신을 의도적으로 따돌리거나 괴롭히려 한다는 피해망상이 생기고 심리적으로 고통스러워지고 실제로도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빼놓고 대화하는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성인 다섯 명 중 한 명이 이명을 경험하고, 65세 이상 3분의 1, 75세 이상은 두 명 중 한 명이 청력감퇴를 겪는다고 한다. 불편하더라도 더 늦기 전에 보청기를 사용할 것을 전문가들은 권한다. 정상적 청각은 인지 저하를 막고 치매를 예방할 뿐 아니라 사회적인 고립을 막는데 매우 중요하다. 요즘 보청기는 단순히 청력을 높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어떤 특정 주파수를 증폭시키는 등 맞춤형이다.
우리 생활을 송두리째 바꾼 스마트폰이 처음 출시된 것은 2007년이다. 오래되지 않은 것 같은데, 이제 스마트폰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는 판이 되었다. 심지어 거의 하루 종일 그것을 붙잡고 사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가족과 친구들 모임을 할 때도 수다보다는 각자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상황이 낯설지 않다. 소셜 미디어가 외로움을 늘리고 심리적 안정감을 낮춘다는 연구도 있기는 하지만, 결과는 참여자의 연령에 따라 많은 차이가 난다. 심지어 심리적으로 삶의 질을 높이는 측면과 낮추는 측면이 있다는 연구도 있는데, 결론은 소셜 미디어가 삶의 질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제로’라는 것이다.
이 책의 결론은 제11장 「세계의 웰 에이징」이라는 단원인지 모른다. ‘The best is yet to come’이 말은 가수이자 영화배우였던 프랑크 시나트라의 노래 제목으로 “최고의 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이다.
나이와 삶의 질에 대한 관계에서는 미래 시간에 대한 관점과 목표 우선순위 그리고 사회적 환경요인이 매우 중요하다.
“당신의 미래에 많은 기대가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당신은 앞으로 남은 시간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이런 질문은 미래의 시간에 대한 관점을 측정하기 위한 것으로 나이가 많을수록 남아 있는 시간이 짧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미래 남은 시간이 많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는 긍정적인 정서지만, 남은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삶의 질을 높인다는 것은 매우 긍정적이다.
일본은 장수국가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오키나와에는 100세 이상 건강하게 사는 사람들이 일본의 다른 지역과 비교하여도 두 배 이상 많다. 왜일까? 청정지역이라는 자연환경 때문만은 아니다. 연구에 따르면 1) 건강한 식생활 2) 삶의 목적과 의미를 갖고 산다 3) 열정적으로 좋아하는 일을 계속한다 4) 사회적인 지지기반을 만든다 5) 서두르지 않는 생활방식 6) 정신적이고 영적인 생활태도 등을 꼽는다. 그들이 생선을 많이 먹는 식습관 때문이라는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다. 건강하게 나이 드는 것은 한 두 가지 요인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키나와 사람들의 생활태도 중 한 가지 기억해 두고 싶은 것이 있다면 일본말 “하라 하치 부”다. 이는 음식을 먹을 때 80% 정도만 먹는다는 말이다. -2023.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