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드 모네(Claude Monet). (1840 – 1926)
인상파를 주도한 프랑스의 화가
1년 중 낮이 가장 긴 6월이면
연못 위로 수련이 하나둘 피기 시작한다.
수련을 보면 절로 떠오르는 미술 작품이 있다.
프랑스 화가 클로드 모네의 <수련> 연작이다.
프랑스 파리의 오랑주리 미술관에 가면
모네가 그린 수련을 볼 수 있다.
그런데 그의 작품 속 수련은 대부분의 사람이 아는
수련의 색과 많이 다르다. 왜일까?
모네에겐 '보라색 너머'라는 뜻을 가진 울트라바이올렛,
즉 자외선을 보는 능력이 있었다.
타고난 것이 아니라 82세에 받은 백내장 수술로
수정체가 손상되며 생긴 후유증이었다.
그 덕에 그는 자외선을 반사하는 수련을
신비한 색으로 보고 그릴 수 있었다.
대부분의 인간은 무지개색으로 알려진
가시광선만 볼 수 있다.
그래서 인간은 오랜 세월 다른 동물 역시
자외선을 볼 수 없을 거라고 여겼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1880년대, 영국의 은행가이자 수학자인 존 리벅은
빛을 굴절, 분산시키는 광학 도구인 프리즘을 들고
개미들이 모인 곳으로 향했다.
그가 프리즘을 비추자 개미들은 갑자기 들이닥친
무지갯빛에 화들짝 놀라 사방으로 도망쳤다.
흥미로운 점은 무지갯빛이 닿지 않는
구역의 개미들까지 허둥대며 달아났다는 것이다.
리벅의 눈에 그곳은
그저 어둡기만 한 구역이었는데 말이다.
그 이유는 자외선 때문이었다.
개미는 인간이 보지 못하는 자외선을 볼 수 있다.
그 뒤로도 물고기, 새, 순록, 개, 돼지, 파충류 등
생각보다 더 많은 동물이
자외선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클로드 모네의 ‘파랑과 보라의 조화를 이룬 수련들’
자외선을 볼 수 없어 자존심이 상한 인간은 궁금해 했다.
자외선을 볼 수 있는 능력이
동물들의 삶에 어떤 이점이 있는지.
몸집이 작은 설치류는 자외선을 통해
천적인 새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다.
날아다니는 새들의 형상이 하늘에 퍼진 자외선을 통해
도드라져 쉽게 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끼를 좋아하는 순록은 자외선을 반사시키는
눈 더미 틈에서 반사하지 않는 이끼를 금방 알아보고 섭취한다.
자외선으로 이득을 취하는 건 동물뿐만이 아니다.
꽃은 벌이 알아보고 내려앉을 수 있도록
자외선으로 꽃잎에 특정한 무늬를 수놓는다.
해바라기나 금잔화의 경우 인간의 눈에는 그저 노란색이지만
자외선을 식별할 수 있는 벌의 눈에는 다른 색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 꽃은 수분을 보다 원활히 할 수 있다.
이를 역이용해 벌을 잡아먹는 동물도 있다.
바로 게거미다.
인간은 꽃잎의 색과 비슷한
게거미를 위장의 달인이라고 생각해 왔지만,
사실 게거미는 제 몸으로 자외선을 반사한다.
그로 인해 멀리 있는 벌에게는 게거미가 붙어 있는
꽃이 그렇지 않은 꽃보다 더 눈에 띈다.
그쪽으로 다가간 벌은 숨어 있던 게거미에게 잡아먹히고 만다.
알고 보면 새의 깃털에도 자외선 패턴이 있다.
제비처럼 우리가 잘 안다고 여기는 새라도
암수를 구별하기란 쉽지 않은데,
자외선으로 보면 차이가 확연하다.
옆구리와 꼬리지느러미에 자외선을 반사하는
무늬를 가진 물고기도 있다.
주로 수컷이 이 무늬를 가지고 있는데,
건강할수록 무늬가 진해 자손을 남길 확률이 높다.
모네 덕분에 우리는 자외선으로 보는
세상을 간접 체험할 수 있다.
자외선도 어찌 보면 색의 한 종류다.
대부분의 인간이 보지 못할 뿐.
그렇다면 모네의 그림 속 수련이
실제 수련과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사람에 따라 색이 다르게 보인다면
수련의 진짜 색은 무엇일까?
이어지는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깨닫게 된다.
내가 본 것도,
당신이 본 것도 모두 옳다는 것을.
수련은 그것을 본 사람과
동물의 수만큼 다양한 색을 지니고 있음을.
이지유 | 작가
이지유 님은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과학 이야기를 쓰고
좋은 책을 찾아 우리말로 옮긴다.
《이지유의 이지 사이언스》 《별똥별 아줌마가 들려주는 과학 이야기》
《처음 읽는 우주의 역사》 등을 썼다.
이 코너에서는 과학의 눈으로 본 세상 이야기를 나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