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황홀한 모독 [36]
7. 방화범들(4)
아내가 없어졌다.
며칠이 지나도록 아내는 돌아오지 않았다.
자정이 지나도록 아내가 들어오지 않는 것을 보면서 새벽녘이나 돼야 들어올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툭하면 그러곤 했으므로 만성이 된 셈이었다.
하지만 새벽녘의 귀가 예측은 빗나가고 말았다.
다음날, 늦게 잠들었던 탓에 오전 열 시나 되어서야 눈을 떴다. 눈을 뜨는 대로 집안을 살펴보았지만 아내는 그제도록 들어오지 않았고 들어왔다가 다시 나간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다시 적어도 저녁이나 밤에는 들어오겠지 하고 가급적이면 편안하게 생각하려고 애썼다. 그것은 만성이 되어버린 일과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일어나는 불안과 분노와 그 어떤 낙담 사이의 갈등에서 내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기 위한 방편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런 생각도 빗나갔고, 다시 다음날에는 들어오겠지 하고 생각했지만 역시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제야 아내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해 보았다. 연결이 되지 않았다. 몇 번 계속해봤지만 번번이 불통이었다.
아내가 사용하는 화장대 옆에는 충전기가 그대로 놓여 있었다. 핸드폰을 꺼 놓았거나 배터리가 다 방전되었을 것이다. 아니, 꺼 놓은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배터리의 방전이라면 웬만한 곳에서는 충전할 수 있을 테니까. 얘기인즉 배터리 방전이었다면 다음번에는 충전을 시켜 연결이 가능했어야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내는 어디를 갔으며 왜 핸드폰까지 꺼 놓은 채 아무런 연락도 없는 것일까?
혹시나 싶은 마음에 상허 선생에게 전화를 넣어보았다. 상허 선생은 지난번 병원에 다녀온 이후부터 건강이 썩 좋지 않았다. 노인들은 내내 괜찮았다가도 하루아침에 급격히 쇠약해지곤 하는 것이 아닌가 말이다. 하찮은 감기몸살이었지만 그게 치명적일 수도 있었다. 아무튼 그 감기몸살 이후로 그전 같지 않으니 아내가 거기 가서 상허 선생을 돌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물론 직접적으로 아내가 거기 있느냐는 식으로 묻지는 않았다. 안부를 여쭙는 것처럼 하면서 그쪽의 동태를 살폈다. 하지만 아내는 거기 갔었던 것 같지도 않았고 거기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렇게 동태만을 살피고서 전화를 끊으며 나는 다시 한 번 상허 선생의 안부를 묻고 곧 찾아뵙겠노라고 말했다. 상허 선생은 괜찮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했지만 왠지 마음을 놓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하긴 이제 고령이었다. 지난번의 그 감기몸살이 아니었어도 그 나이이면 멀쩡하다가도 갑자기 변이 생길 수가 있는 것이다.
무엇을 어째야 되는지도 모르고, 그저 허허롭기만 하여 거리로 나섰다. 어느덧 이 월로 들어선 지도 꽤 되었는데 날씨는 몹시 차갑고 진눈깨비마저 날렸다. 거의 열흘 가까이는 겨울답지 않게 포근한 날씨가 이어졌었다. 그리하여 이대로 겨울이 끝나버리고 봄이 오는 게 아닌가 했었다. 그런데 겨울은 끈질기게 남아 물러날 기미가 없어보였고, 엊그제부터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고 차가운 바람이 휘몰아쳐대곤 했었다. 바로 아내가 들어오지 않기 시작한 날이었다. 그렇게 차가운 날씨가 며칠 계속되며 수상쩍더니 이제 진눈깨비마저 날리고 있는 것이었다. 날씨도 수상쩍고 아내도 수상쩍었다.
“이거, 계절이 거꾸로 가는 것 아니야?”
사람들의 마음이 성급했던 것일까? 두 남녀가 외투 깃을 세우고는 어깨를 잔뜩 움츠린 채 걸어가며 저들끼리 주고받았다.
날이 저물어가면서 진눈깨비는 점차 눈발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눈발은 물기를 잔뜩 머금은 습설(濕雪)이었고, 지면에 쌓이면서 질척거렸다. 아마 밤이 깊어지면서 기온의 하강이 이대로 계속된다면 그대로 얼어붙어 빙판을 이루게 될 것이었다.
막상 거리로 나섰지만 나는 어디로 가야 될지 몰랐다. 왠지 아내를 서둘러 찾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 하강하는 기온과 지면을 덮은 눈발이 마음의 조급성을 더하는지도 몰랐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오성택이 했던 이야기도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아내는 왜 그 카페에서 넋 나간 사람처럼 앉아서 눈물을 지었던 것일까. 뭔가 일을 저지를 사람 같아 보였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거기 나타났던 조은식은 왜 아내를 홀로 남겨둔 채 나갔던 것인가?
아내가 갈만한 곳을 생각해 보았지만 이렇다하게 떠오르는 곳은 없었다. 그리고 아내가 가까이 지내고 자주 만나는 사람도 떠오르지 않았다. 몇 사람 생각나는 이름이 있었으나 그들의 전화번호나 어디 사는지는 알지 못했다. 혹시나 싶어 아내의 화장대 서랍 등을 뒤적여보았지만 수첩 같은 건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아내는 전화번호나 주소 등은 꼼꼼하게 적어놓는 편이었다. 하지만 그런 수첩은 핸드백 속에 넣어가지고 다니는 모양이었다.
아내가 갈만한 곳도 생각나지 않고 아내와 가까이 지내는 사람도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은 뭔지 모르게 나를 절망케 했다. 어쩌면 나는 아내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는 것 아닌가. 그와 함께 아내가 했던 ‘요조숙녀와 개’에 관한 이야기도 다시금 떠올랐다.
물론 딱 한 명 확실하게 떠오르는 사람은 있었다. 그것은 조은식이었다. 그는 아마도 아내에 대해 뭔가를 알고 있을 것이 거의 확실했다. 더군다나 오성택의 이야기로 미루어 보아도 내가 알고 있는 한 아내가 없어지기 전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를 만난다는 것은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다른 일도 아닌 아내의 일로는 더욱 그랬다. 더더군다나 나는 그의 전화번호도 주소도 몰랐으므로 그를 만나려면 하진수를 통해야 할 것이었다. 작사가 협회 같은 게 있다면 쉽게 연락처를 알아낼 수 있겠지만 그런 협회가 있는지 없는지조차 나는 알지 못했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아니, 그의 연락처를 알아낸다고 하더라도 내가 먼저 연락을 취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게 알량한 자존심에 지나지 않을 것이지만.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게 그저 걸음을 옮겨놓기만 했다. 날은 서서히 저물어가고 있었다. 내쏘기 시작한 차량들의 불빛들이 내 안면을 자주 훑으며 지나가곤 했다. 아직도 물기를 잔뜩 머금은 눈발과 바람은 계속되었고, 사람들은 뒤늦은 추위에 종종걸음을 쳤다.
그 속에서 내 걸음은 마치 술 취한 사람의 그것처럼 자주 헛놓이곤 했다. 사람들은 종종걸음을 치면서도 그런 내 모습을 흘끗거리곤 했다.
아내가 갈만한 곳도 만날만한 사람도 쉽게 짚어내지 못한다는 것은 역시도 절망스러운 일이었다. 아내에게가 아니라 내 자신에게 그러했다.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무엇으로 아내에 대해 말할 수 있을 것인가. 내가 아내를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 역시도 아내가 말한 ‘요조숙녀와 개’에 관한 이야기에 포함되는 것 아닌가. 어쩌면 나는 아내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지도 모른다. 도대체 무엇으로 아내를 설명할 수 있으며 무엇으로 아내라는 그림을 그릴 수 있는가.
저 아래 전철 역사로 들어가는 지하도 입구가 아가리를 쩍 벌리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몇몇 사람들이 띄엄띄엄 빨려들 듯 그리로 들어가고, 잠시 뒤에는 전동열차가 도착했다가 떠나갔는지 한 무리의 사람들이 토해져 나왔다.
문득 그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전동열차를 타고 어디로든 가 봐야 될 것 같았다. 그게 아내의 행방을 찾는데 직접적으로 어떤 계기가 되거나 무슨 효과를 보이는 것은 아니겠지만 답답한 마음이다 보니 그 행위만으로도 텔레파시가 전해져 그 사이에 아내가 집에 들어와 도리어 나를 기다리고 있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망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망상이 들어맞기를 바라는 심정이었다.
그러나 지하도 입구에 다다라서 마악 계단을 내려서려다가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그 바람에 뒤를 바짝 따라오던 한 남자가 나와 부딪칠 뻔했다가 멈칫 비껴 지나가면서 흘끗 쳐다보았다. 갑자기 그 남자의 면상을 향해 주먹이라도 날리고 싶었다. 누구에게든 무엇에든 화풀이를 하고 싶었다.
불특정 다수를 향한 분풀이 같은 것. 왜 고런 눈깔로 쳐다보냐 짜식아! 시비를 걸고, 그리하여 아무 죄도 없는 사람과 코피가 터지도록 치고받는 것들.
개처럼 으르렁거리고, 개처럼 물어뜯고……. 개, 개, 개…….
요조숙녀는 죽고 개만 남는 것들…….
아무 곳에서나 오줌 싸고, 뒹굴고, 교미 붙고, 또 교미 붙고…….
부르르 떨리는 손을 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 그러지 않으면 정말로 누군가를 향해 주먹을 날릴 것만 같았다. 주머니 속에서 담뱃갑이 잡혀 나왔다. 나는 담배를 한 개비 뽑아 입에 물고는 돌아서서 라이터를 켰다. 손바닥으로 가렸음에도 제멋대로 불어대는 바람에 라이터 불은 자꾸만 꺼졌다. 몇 차례를 시도한 끝에야 겨우 불을 붙일 수가 있었다. 첫 모금을 깊게 빨아들였다가 길게 토해내자 그제야 가슴 속에서 들끓던 뭔가가 좀 가라앉는 것 같았다.
건물과 건물 사이를 휘돌고 도로를 따라 불어대는 바람과 흩어져 날리는 습한 눈발들 속에서 담배를 빨아대고 있으려니 가슴 속이 가라앉은 대신 이제는 머릿속이 먹먹해지는 기분이었다. 귓속에 물이 들어찬 것처럼 바람 소리도 차량들 소리도 웅웅거리기만 하는 것 같았다.
도로를 달려가는 차량들의 불빛을 바라보며 담배 한 대를 다 피웠다. 그리고는 인도에서 차도 쪽으로 내려섰다. 마침 택시 한 대가 미끄러져 오더니 내 앞에 멈추어 서고 뚱뚱한 여자 하나가 뒤룩거리며 내려섰다. 내리는 데에도 한참이나 걸리는 그 여자가 빠져나오기를 기다렸다가 택시에 올라탔다.
습한 눈들을 얹고 있던 내 몸은 물이 뚝뚝 흐르도록 젖어 있었다. 택시가 도로 위를 달리기 시작했을 때에야 내가 아내를 찾는다면서도 왜 차를 끌고 나오지 않았는지 생각해 보았지만 내 자신에게도 그 이유를 설명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온 몸이 젖도록 진눈깨비가 쏟아져 날리고 있었음에도 우산을 들고 나오거나 방수 코트를 챙겨 입지 않은 것 역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