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심덕.... 그대 진정 가는가....
지금 으로부터 꼭 80년전....8월3일 저녁 11시 시모노세키에서 부산으로 가는 관부 연락선 덕수환(두쿠슈마루)호에 두 남녀가 탑승을한다... 그로부터 몆시간이 흐른 4일 새벽 4시 배는 물살이 빠르기로 유명한 오키노시마 섬을 지나갈즈음에 두 남녀가 차거운 물살위로 몸을 던진다 바로 김우진과 윤심덕..... 세상 모든 복잡한 관계를 한순간에 정리를 하고쟈 한듯 물속에 잠들어 버린다 배는 멈추고 수색을 하였지만 끝끝내 흔적을 찾지 못하고.....
두사람은 무척이나 복잡한 지난날들 때문에 고뇌 하였어리라..... 김우진.... 자식을 둔 유부남으로서 목포에서도 내노라 하는 상명 종합상사 사장 이기도 하고 와세다 대학 영문과를 나온 수재 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당시 이땅에 일본의 영향을 받지 않고 영국 맥밀런사의 원서를 직접 받는 최초의 한국인으로서 연극계에도 많은 영향을 준 김우진이다 윤심덕과의 첫조우도 바로 연극 동호회에서 이루어 진것이다
윤심덕...... 평양에서 기독교 집안의 둘째딸로 테어나 그당시로서는 앞선 신여성의길로 간다 한국 최초의 국비 장학생 최초의 여성 성악가 최초의 대중음악가 그리고 여성 방송인.... 당시 최다 음반 판매....등등 이루 말할수 없는 수식어 따라붙는 윤심덕.... 하기에...한살위인 나혜석의 강력한 비판과 비아냥도 같이 듣는.... 어쩌면 그시대 신여성의 헤게모니 쟁탈전이라 할까.... 일엽의 회고에는 좋은 회상이 남아있는듯도 하지만...
그러나 윤심덕도 재물복은 없었는 모양이다 어머니의 힘든 바라지로 학교를 마치고 유학을 가고 하였지만 막상 동생 윤기성의 유학자금 마련에는 어쩔수 없이 장안의 부호 이용문의 도움을 받는다 그의 끈질긴 휴혹...??과 접촉으로 거금의 수표를 받아든 윤심덕.... 말없이 돌아서서 옷을 벗었다는 후문도 있고.... 어머니의 혼사 제촉으로 부호 김홍기와도 선을 보고 그는 윤심덕이 움직이는데 그림자처름 따라 다녔다.....
김홍기,,이용문....김우진...모두다 당대의 부호들이고 어떠한 형태이로던 윤심덕은 그들의 도움과 후원으로 장안의 화제를 뿌리고 다녓다 훤칠한키....뚜렷한 이목구비 그리고 활달한 성격 그다가 연극을 한다고 콧대를 세우는 성형 수술까지 하엿다니....과연 윤심덕 이었다
김우진.... 이렇게 자신의 울타리 안에 상주하지 못하는 윤심덕이 얼마나 미웠을까... 절교를 선언 하였다는 말도 있고.... 훗날 몸을던진 이유중에 하나라고 .....산새는 생각한다....영원한 소유를 위한
다시 김우진은 동경으로 들어가고... 어찌 어찌 수소문 하여 윤심덕도 동생과 함께 일본으로 들어간다 오사카의 오카하루 여관에 묵어면서 그의 마지막 녹음이 니토 축음기 주식회사에서 시작된다... 원래 25곡 예정이던걸 한곡 더한게 사의 찬미이다... 그당시 원제는 죽음의 찬미이기도 하고 그리하여.... 30살의 한참 피어오른 두남녀의 발걸음은.... 돌아오지 않는 현해탄을 택하였는지도....돈도 명예도 사랑도?? ....다싫다 하면서
김우진 과 윤심덕1897~~1926/8/4일
전남 무안에 잇는 김우진의 묘
김우진의 자녀들과 다정햇던 한때.... |
출처: 산새의집 원문보기 글쓴이: 산새
첫댓글 오요한 음악이네요....산새님~ 종종 들어오셔서,,,,멋진 선곡 부탁드립니다~~
잘보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