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줄리아 로스
원제 : My Name Is Julia Ross
1945년 미국영화
감독 : 조셉 H 루이스
출연 : 니나 포치, 메이 위티, 조지 맥크레디
롤랜드 바노, 아니타 샤프 볼스터, 도리스 로이드
조이 해링턴
오늘은 영국을 배경으로 한 1940년대 고전 스릴러 한 편을 소개합니다. 다만 배경이 영국일 뿐, 가짜 영국영화입니다. 감독은 미국인이며 제작도 미국입니다. 여주인공 니나 포치는 네덜란드 출신이지만 미국에서 활동했고, '파리의 아메리카인' '십계' '스카라무슈' '스팔타카스' 등 제법 유명한 영화에 그다지 존재감 없는 조연으로 등장했습니다. 그 영화들보다 훨씬 일찍 출연한 영화가 오늘 소개하는 '내 이름은 줄리아 로스' 이고 저예산 B급 스릴러 소품입니다.
줄리아 로스는 여주인공 이름입니다. 제목만 보면 무슨 사회성 있는 노조영화나 투쟁영화 같은 느낌이지만 말 그대로 범죄 스릴러 입니다. 당시 필름 느와르 시대였으니 이런 영화들이 가장 많이 만들어지는 장르이긴 했지만 워낙 필름 느와르 장르가 후덜덜한 걸작들이 많으니 이 정도 레벨 영화는 그냥 싱거워 보입니다. 전체 필름 느와르 중에서는 중하급 이라고 볼 수 있지요.
실직하고 새로 직업을 구하려고 애쓰는 주인공 줄리아 로스(니나 포치), 당장 직업을 못 구하면 하숙비도 못 낼 상황입니다. 그러던 그녀에게 생소한 직업 소개소에서 뜻밖의 제안이 들어옵니다. 비서 겸 집사로 일하는 건데 조건은 가족이 없어야 하고 애인도 없어야 하는 것. 가족이 없는 것은 조건에 맞지만 같은 건물에 하숙하는 데니스라는 변호사에게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선 직업을 구하는 게 중요한 것. 구직을 낸 노부인 휴즈 여사(메이 위티)도 줄리아를 마음에 들어하며 선금까지 줍니다. 휴즈 여사는 아들 랄프와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새로 일자리를 얻게 된 줄리아는 당장 짐을 싸들고 이들의 집에 머물게 됩니다. 하룻밤 자고 눈을 떴는데.... 이때부터 반전이에요.
줄리아가 눈을 뜬 곳은 영국 해안가 콘월 지방의 외딴 저택이었습니다. 그녀의 모든 소지품은 사라졌고, 휴즈 여사는 그녀를 마리온이라고 부르고 마리온은 랄프의 아내였습니다. 졸지에 줄리아 로스 라는 이름 대신에 마리온이라고 불리우며 랄프의 아내 신분이 된 줄리아, 그녀는 이런 장난에 분개하며 발버둥치지만 사실상 감금되다시피 한 상태가 되어 어쩔 수 없습니다. 더구나 탈출이 어려운 거대한 저택이고 감시의 눈길도 있고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줄리아가 미친 것으로 생각합니다. 대체 어찌된 영문일까요? 줄리아는 휴즈 부인과 랄프가 친 덫에 단단히 걸린 것입니다. 직업 소개소 등도 모두 그들이 꾸민 가짜였습니다.
상당히 흥미로운 내용이지요. 전반부의 재미는 상당하고 진행도 시원시원하게 빠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후반부는 엉망입니다. 미스테리 스릴러가 재미가 있으려면 초반에 벌려놓은 일이 후반에 퍼즐이 맞추어지듯이 기막히게, 짜임새있게 전개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흥미진진하게 벌려놓은 초반부의 재미를 후반부에 감당하지 못하는 느낌입니다. 마치 이야기를 생각해냈지만 후반에 더 이어가지 못하는 느낌.
휴즈 부인과 랄프가 음모를 꾸며 줄리아를 납치한 것은 당연하지만 그 당위성과 드러난 진실이 너무 허무맹랑합니다. 아니, 죽은 아내와 꼭 닮은 여자가 하늘에서 그렇게 쉽게 떨어진답니까? 그리고 재산을 노리고 벌이는 범죄가 그렇게 허술한가요?
후반부가 엉성한 것도 단점이지만 너무 허겁지겁 서두르듯 이야기를 끝내는 것도 큰 단점입니다. 초반부가 제법 흥미롭네...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이미 절반이나 지난 상황이었고, 1시간 30분 정도로 만들어야 알찬 내용일텐데 1시간 조금 넘으면 벌써 끝나버려요. 그러니 후반부는 쫓기는 허겁지겁 처리되지요. 특히 활약의 대상이 되어야 할 데니스의 등장은 너무 밋밋하고 더구나 줄리아의 방에 있는 비밀 통로의 역할은 그냥 헛웃음도 안 나옵니다. 비밀 통로란 게 뭐에요? 방문을 열고 나가는 곳과 전혀 다른 곳으로 나가는 문이어야 비밀 통로잖아요. 그런데 이 방의 비밀 통로는 어차피 거실로 나가게 되어 있어요. 그냥 문이 나란히 두 개인 것과 다를 게 없습니다. 이런 황당할수가~
이런 엉성한 뒷심이 대체 누구의 허락하에 영화화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스릴러 영화는 지루한 초반부가 있어도 후반에 결정적이고 기막힌 반전이 나오면 걸작처럼 여겨기는 장점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지루한 전개가 이어지는 '유주얼 서스펙트'가 그렇죠. 후반부 상당한 반전이 이 영화를 반전걸작의 위치에 올려놓았습니다. 알프레드 히치콕의 '사이코'는 원래 너무 잘 만든 영화지만 후반부의 깜짝 반전에 레전드 오브 레전드 영화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내 이름은 줄리아 로스' 는 완전 반대에요. 후반부로 갈수록 엉성해지고 영화는 쫓기듯 초초해집니다.
제목도 무슨 사회운동이나 노조영화 같아요. 걸작이 우수수한 40-50년대 필름 느와르와 비교해보면 그냥 습작 같은 느낌입니다. 어떻게 보면 미완성 영화같은 느낌이고요. 다만 워낙 영화가 짧고 전반부 30분이 흥미진진해서 지루할 틈이 없습니다. 오히려 너무 대충 빨리 끝난게 아쉽지요. 과거 베스트 극장 하나 보는 느낌입나다. 그래서 마치 반쪽짜리 영화처럼 느껴지는 20% 부족한 작품입니다.
평점 : ★★☆ (4개 만점)
ps1 : 콘월 지방은 다른 영화에서도 가끔 언급되는 영국의 아주 경치좋은 해안가 휴양지입니다. 런던에서 꽤 멀리 떨어진 곳이라고 하네요.
ps2 : 감독 조셉 H 루이스는 필름 느와르의 걸작 중 한 편인 '건 크레이지'를 5년뒤에 연출합니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보니와 클라이드)'의 원조격 영화인데 저는 두 영화 중 '건 크레이지'가 훨씬 더 재미있습니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는 다소 과대평가 받은 영화라고 생각되네요.
[출처] 내 이름은 줄리아 로스 (My Name Is Julia Ross, 45년) 후반부가 아쉬운 스릴러|작성자 이규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