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목련(木蓮)이 필 때면
강미란
나무에 피는 연꽃이라고 하던가. 난초꽃과 비슷하여 목란(木蘭)이라고도 하였던가. 연꽃이든 목란이든 목련을 두고 말하기는 마찬가지니 나는 어찌 부르던 무슨 상관이 있겠나 싶다. 다만 내겐, 어머니가 좋아하셨던 하얀 목련(木蓮)이었기에 그리움의 꽃으로 가슴에 새겨 있을 뿐이다.
사월은 생명의 기운들이 넘쳐나는 설렘의 계절이다. 나는 해마다 그 시공간 속에서 하얀 목련 봉우리가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는 순간의 향연을 기다린다. 목련은 고요한 자태 안에 차가운 열정을 감추고 있다. 그 연유는 하얀 빛을 내밀기 위해 냉기를 머금고 차디찬 겨울을 견디었기 때문이다. 그뿐인가. 인고의 줄기에서 순결한 의지로 피었기에 그 자태가 더욱더 고귀하지 않는가. 더구나 향기조차 은은하고 기품이 있으니 봄이면 더욱 기다려지는 꽃이다.
우윳빛 고고한 꽃 빛깔과 단아한 자태의 백목련이 순종의 화신이듯 피어오른다. 한 아름 뭉쳐진 경이로운 아름다움을 하늘을 향해 토해내며 오롯이 위를 향해 합장한다. 천사의 옷자락 색이 저러할까. 순결하고 우아한 모습에 범접犯接할 수 없는 기품이 있어 ‘이루어 질수 없는 사랑’이라는 꽃말을 갖게 되었나 보다. 그러나 목련은 고결하고 소담한 꽃을 피워내고 여지없이 그 수명을 다하고 만다. 한꺼번에 피었다 한순간에 자취를 감추어 버리는 것이 목련의 일생이 아니던가. 목련은 내게 귀한 시절은 빨리 지나가 버린다는 철리(哲理)를 깨우치게 한다.
목련은 고매한 인품의 덕을 지닌 온유한 여인의 모습이다. 내 기억 속에 남겨진 어머니도 그런 여인의 모습으로 그려져 되새김 되고 있다. 꽃을 피워내고 이내 생을 마감하는 것이 목련이다. 목련꽃처럼 어머니가 내 삶 속에 있으셨던 시간도 찰나의 순간이었다. 위암 수술을 받은 어머니는 이생에서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짐작하신 것인지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가시길 간절히 원하셨다.
어머니는 안방 창문 넘어 어렴풋이 비치는 목련 나무가 보이는 곳에 누워계셨다. 홀로 어둠 속에 누워 창가에 비친 목련이 꽃망울을 터트리기를 기다리며, 허허로움을 달래고 긴 밤을 지새우셨을 어머니. 목련은 금방이라도 벌어질 듯 입술을 오므리고 있다, 봉오리마다 꽃잎이 열리는 밤이면 흰 살결로 어머니의 병상을 환하게 촛불 켜 주었다. 목련은 어머니에게 딸자식보다 더 위로되었을 터이니, 병상에 계신 어머니의 벗이요. 삶의 끈이었으리라.
하얀 목련이 필 때면 내 가슴에 그리움이 뭉클뭉클 피어올라 눈물봉오리가 맺히고 만다. 어머니 돌아가실 적 나이로 점점 다가서고 있건만 갈수록 짙어지는 어머니의 모습, 어머니의 빈자리로 서러운 감정이 불쑥 올라온다. 어머님은 철없는 딸이 받을 충격을 염려하여 병세를 비밀로 하라 당부하셨다. 어머니의 고통은 육체적 고통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막내딸 시집가는 모습을 눈에 담아 가지 못한 한스러움에, 저승에서도 가슴에 응어리로 남은 채 사실지 모른다.
목련은 피어날 때와 그만 돌아가야 할 때를 아는 꽃이다. 오랜 기다림 끝에 피어나고도 금세 호흡을 거두고 이내 돌아간다. 지난밤 낙화된 꽃잎들이 저마다 검붉은 상처를 안고 땅 위에 널브러져 있다. 호흡을 거두지 않는 생명체가 어디에 있으랴. 연이어 피어날 봄꽃들에 자신이 받던 사랑을 양보하고 떠날 줄 아는 겸손한 꽃일 뿐이다.
목련꽃의 떨어짐은 느리고도 무겁다. 죽음을 요구하는 모든 고통을 다 바치고 나서야 비로소 떨어지는 의연함을 보인다. 어머니도 그렇게 세상사 염려를 모두 내려 두시고 의연하게 봄바람에 실려 흙이 데리고 가셨다. 으스름한 저녁이었던 기억이다. 목련도 어머니도 소멸하는 시간의 모습으로 종적을 감추어 버렸다. 그래서일까. 순식간에 피었다 스러지는 꽃의 향기라도 붙잡아 두고 싶어서 나는 하얀 목련꽃 필 때를 놓치지 않는다.
목련은 기도하는 꽃이다. 지난가을의 찬란한 소멸은 거룩한 봄을 맞으려는 간절한 기도였으리라. 하얀 목련이 필 때면 순백의 등불을 켜 들고 막내딸이 살아가는 세상에 혹여 어둠이라도 있는지 왔다 가시는 것일까. 두 손을 합장하여 기도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어머니 목소리다.
“소멸하는 것은 다시 부활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늘 네 곁에 당신이 함께하고 있노라고…….
올케언니는 어머니의 당부 말씀을 잊지 않고 아직도 친정엄마 이상의 사랑을 주고 있다. 하지만 나이가 더해지고 자식들이 커갈수록 어머니의 빈자리가 더욱 커지기만 한다. 때때로 버릇없이 구는 나를 나무라시던 어머니 목소리, 또박또박 말대꾸하다 맞았던 어머니의 회초리 한 번만이라도 맞아 보고 싶다.
피천득 선생님은 수필 ‘인연’에서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고 했다. 누구나 그리움보다 만남이 더 아름답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어머니와 나의 전생의 인연은 가슴 속에 묻어 두리라. 마음속에 어머니가 영원히 살아계셔서 그리움이란 꽃으로 피어나기 때문이다.
올해는 텃밭 원두막 옆에 목련꽃 한 그루 심어야겠다. 그래서 먼 후일 하얀 목련이 필때면 목련꽃 그늘 아래서 어머니와 못 다한 이야기를 글로서 담아 전해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