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땅에 헤딩.
요즘 ‘잘 나가는’ 직업으로 꼽히는 푸드스타일리스트 김경미(31)씨의 시작은 그랬다. 푸드스타일리스트는 방송프로그램이나 영화·잡지·광고 등에서 음식을 연출하는 직업이다. 예컨대 케이블 요리전문 푸드채널의 <최유라의 오늘은 뭘 먹지>에서 최씨가 소개하는 요리들은 사실 김씨가 기획하고 차려낸 것들이다. 국내에 100여명 남짓한 푸드스타일리스트 가운데 손꼽히는 활약을 보이기까지 김씨가 걸어온 길은 험했다.
“26살에야 대학 조리학과에 들어갔어요. 호텔에 실습을 나갔는데, 호텔 조리사들을 보니 나 자신이 경쟁력이 없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여성이라고 무시도 당하고…. 뭔가 차별성을 찾고 싶었어요.”
그는 푸드스타일리스트가 되기 위해 자격증도 따고, 음식에 대해 공부하고, 외국잡지를 보며 미적감각도 키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따로 있었다.
“현장경험이죠. 한 푸드스타일리스트를 찾아가 1년 남짓 혹독하게 일을 배웠어요.” 그 뒤 이력서를 들고 일을 구하러 다닐 때 현장경험은 든든한 바탕이 됐다. 김씨는 “푸드스타일리스트는 아기자기해 보여도 거의 매일 새벽시장에 나가 장을 보고, 밤샘촬영도 밥먹듯 해야 하는 터프한 직업”이라면서도 “한 번도 후회한 적 없다”고 말했다.
취업의 문은 좁다. 올해 실업률은 2%대 수준이지만 청년층(20~29살)의 실업률은 7%대에 이른다. 내년 취업전망도 불투명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여성한테는 문이 더 좁다. 지난 10월 인터넷 채용정보업체 잡링크는 대졸이상 남녀 1864명를 대상으로 신입취업여부를 조사한 결과 여성은 28.5%, 남성은 39.1%가 취업에 성공했다는 조사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좁더라도 문은 문이다. 어떻게 여느냐가 중요하다.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안미혜(38)씨는 대학 전공을 선택할 때부터 ‘여성으로서의 제약’이 상대적으로 적은 비서학과를 선택했다.
“전문비서는 남성과의 경쟁에서 유리한데다, 입사와 동시에 경영을 배울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일단 취업시장에 진출한 뒤 틈새를 보다보니 전직 기회가 찾아오더군요.”
안씨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대학원에 진학해 커뮤니케이션을 공부했다. 그리고 기회를 노렸다. 업무상 만난 호텔 마케팅 담당자의 눈에 띄어 스카웃됐고, 그는 외국계 회사들이 몰려들고 있지만 마케팅 인력은 부족한 시장의 변화를 빠르게 알아차렸다. 일단 한 번 쌓은 경력은 계속 더 나은 직장을 선택할 수 있는 바탕이 됐다. 안씨는 하얏트 호텔, 루이비통 코리아 등 외국 기업을 옮겨다니며 마케팅 전문가로 활약하다 현재는 회사를 차려 일하고 있다.
경험자 또는 전문가들은 여성들한테 ‘유망’한 직업이 생각보다 다양하다고 말한다. 지난달 27일 이화여대에서 열린 ‘21세기 여성 유망직종 설명회’에서는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와 부동산 자산관리사, 국제회의 기획자, 마케팅 여론조사 전문가 등이 소개됐다.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는 포괄적으론 광고·홍보담당자로 불리지만, 마케팅이 소비자·스포츠·문화마케팅 등으로 세분화하면서 웬만한 기업들은 담당자를 따로 두고 있다. 부동산 자산관리사는 매입에서 매각, 건물관리까지 마케팅을 통해 건물의 가치를 극대화하는 직업이다. 한 마디로 건물의 몸값을 올려주는 역할이다. 마케팅 여론조사 전문가는 국민 또는 고객을 상대로 시장 여론조사 계획을 세우고, 분석·통계를 내는 직업이다. 이 직업들은 모두 섬세하고 꼼꼼한 의사소통 능력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여성들한테 더 적합한 직업으로 분석됐다. 아직까진 생소한 부동산 자산관리사를 빼면 여성들이 더 많이 근무하는 직종들이기도 하다.
전문가들은 여성들의 취업이 어려운 것은 시장에서 차별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여성들의 선호 직업이 매우 제한돼 있는 탓도 크다고 말한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진미석 박사는 “남학생들은 직업에 대해 경제적·기능적 측면을 중시하는데 견줘 여학생들은 낭만적·비현실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크고, 선호하는 분야도 교직·공무원·외국계회사 등 일부에 쏠려 있다”며 “다양한 직종에 대해 알아야 다양한 선택도 가능하며, 전통적·고정적인 직업관념을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문을 여는 열쇠는 어디에 있을까. 진 박사는 “신규채용만 고집할 게 아니라, 인턴이나 아르바이트를 통해 현장경험을 쌓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화여대 전문직업개발원 최애경 교수도 “취업이 잘 안 돼 대학원에 진학하는 학생들이 늘고 있지만, 시장에서 고학력 여성을 꺼리는 탓에 오히려 취업에 장애가 되는 경우가 많다”며 “대학원을 나왔을 때 더 경쟁력이 있는 직종을 빼고는 인턴 등 어떤 형태로라도 일을 하면서 경험을 쌓으면서 인맥네트워크를 만드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