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조>
그럼, 시조의 윤리란 무엇인가?
시와 시조에 대한 윤리를 묻는 것은 시인의 윤리를 가늠하는
일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것은 이제 당신이 이해하셨을 것 같
습니다. 물론 동시대의 여러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그 문제에
관해 사유하는 것은 시인의 삶에도 중요한 것입니다. 다만, 시인의
윤리가 곧바로 시의 윤리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문학작품
중 특히 시조의 윤리는 어디에서 발생할까요?
비로소 시조라는 특수성, 시조에만 존재하는 정형성’을 언급
할 때가 왔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시조의 정형성을 지키는 것
과 그것에게서 벗어나려는 욕망과 긴장, 그 긴장 자체가 곧바로
시조의 힘이자, 시조의 윤리하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조의
‘시조다움’이 점점 흐려지고 있습니다. 이는 개별 창작자들의 의식
문제이기도 하지만, 더 정확히 말하면 시대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이 시대가 ‘시조다움’을 용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에 좀 더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자유시는 ‘몽타주’의 방
식으로 시대의 모습과 징후들을 단편적으로 보여줍니다. 장면과
장면의 중첩과 충돌에서 특별한 사건이 발생하고 특이한 목소리
가 출현합니다. 하나의 대상을 보고 언술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언술이 하나의 대상이라고 간주하는 모자이크 조각을 하나씩
하나씩 맞춰가고 있는 것이 현대문학이고 현대의 시대정신입니다.
이에 반해, 시조는 마치 20세기 김동인의 단편소설처럼 하나
의 단면을 보여줌으로써 전체를 환기시키려고 합니다. 예컨대, 김
동인은 인생의 작은 단면이자 하나의 사건인 ‘감자’를 둘러싼 복녀
이 투재을 통해 인간 본질의 문제를 다룹니다. 이처럼 시조는 각
음보와 각 장과 각 구처럼, 부분의 합이 전체라고 생각하는 믿음이
여전히 존재합니다. 짧은 시행으로 이 세계 전체를, 우리 삶의 문
제를 다루고자 하는 거죠. 쌀 한 통에 우주가 담겨 있다는 말처럼
말입니다.
따라서 시조가 정형이라는 ‘오래된’ 형식을 통해 ‘새로운’ 세계
를 보여주고 있는지, 이 세계를 담고 있는지가 곧 시조의 윤리가
됩니다. 시조가 자유시의 윤리와 비슷한 면모를 보이지만, 다른 점
은, 그래서 시조인 것은, 바로 이 지점입니다. 정형이라는 긴장을
끝내 놓지 않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낼
수 있는지에 대한 가능성. 시대는 정형을 용납하지 않지만, 시조시
인은 정형 안에서 항상 새롭게, 치열하게 싸워야 합니다.
그동안 우리는 시대와 욕망의 리듬을 좇아가기 위해 바빴고,
이제 지쳤습니다. 이제부터 시조는 시대의 새로운 리듬을 만들고
보여줘야 합니다.
현대시조 입문서, ‘오늘부터 쓰시조 김남규, 헤겔의 휴일
6. 시조는 도덕이 아니라 작품이다. 82~83쪽 중에서
첫댓글
변화하고 진화하는
시조의 윤리
감사합니다
무공 김낙범 선생님
댓글 주심에 고맙습니다.
오늘도 변함없이 무한 건필하시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