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순례‘라는 한 작가의 여행기에서 읽은 대목이다. 그의 여행목적은 미술관을 찾아 발걸음을 붙잡아 두는 그림을 발견하거나 오페라등을 감상하는 것이라고 한다.
어떻든 뭔가를 목적하지 않으면 여행은 지루하고 싱거워져 버린다는 것을 알기에 ...하다못해 그들이 사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들여다보거나 동네를 무심히 거닐어보겠다는 것도 여행목적이 될 수 있을 터.
2011 2월 10일 목요일
규슈국립박물관에서는 때마침 고흐전이 열리고 있었다. 마감일을 하루 앞둔 탓인지 관람객들로 발디딜틈이 없었다. 고흐전의 영문 타이틀은 ‘Van Gogh : The Adventure of becoming an artist' 다. 고흐의 ‘회색 모자를 쓴 자화상’이 A4용지 고흐전 팸플릿 전면을 차지하고 있어 그대로 액자에 끼워 둘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어쨌거나 그 자화상속의 고흐의 눈빛은 예사롭지 않았다. “두 눈을 중심으로 하여 방사상으로 퍼지는 굵은 터치로 그려져 있어서 보는 사람의 시선을 무서운 힘으로 잡아 끌고 있었다.” 초기 고흐가 유명화가의 그림을 그대로 모방한 작품들이 원래 화가의 그림과 나란히 전시되어 있었는데 그의 부단한 노력이 전해졌다. 전시실을 다 둘러 본 후에는 고흐의 삶과 예술이란 주제로 약 10여분간 상영되는 영상물을 보았는데 매우 감동적이었다.
* 다자이후역에서 다자이후 텐만구 방향으로 가는 길목에 즉석에서 구워낸 우메가이모치와 차를 파는 아담하고 예쁜 집이 하나 있는데, 40-50대 아주머니들이 둘 혹은 혼자서 차 한잔과 모찌를 먹으며 담소하는 모습이 너무 좋아보였다.
차집 안쪽 뜰
텐진에 있다는 후쿠오카 현립 미술관, 리버레인 센터에 있는 후쿠오카 아시아 미술관은 여행일정에 들어 있었으나 시간도 부족했고 일본땅이 처음이어서 헤매고 다니느라 놓치고 말았다.
2011 2월 11일 금요일
북큐슈 레일 패스로 쿠마모토로.. 3일권 북큐슈 레일 패스를 처음 이용하여 탑승한 구마모토행 Relay Tsubame 43. 열차바닥이 나무로 되어있다. 편안하다. 옆자리에 50대 중반 쯤 되보이는 일본인이 중간 정차역에서 비어있던 내 옆자리에 앉는다. 통로를 두고 앉아있던 재잘거리는 나의 아이들. 우리가 한국인임을 알고는 있는건지. 얼마후 그가 쇼핑백에서 우리나라의 한라봉처럼 생긴 것을 하나 꺼내 먹으라고 건넨다. 그가 그 과일의 이름을 열심히 말해주었는데 나중에야 일본 상점에서 그 과일이 '데코퐁' 이란 걸 알게 되었다. 그도 나도 서로의 언어를 전혀 구사할 수 없었으므로 ( 그가 한 영어는 패밀리 하나) 정말 100% 몸짓, 손짓을 이용한 소통이었는데. 그 데코퐁은 자기가 집에서 키웠다는 것 ..지금 가족을 만나러 가고시마로 가는 중이라는 것... 그리고 그 선한 인상의 일본인 아저씨는 나또한 그랬지만 더 많은 말을 하고 싶어했는데 더 이어갈 수 없었다. 그저 우린 구마모토로 갑니다. 정말 맜있네요. .....여행을 하면서 난 내내 지나간 역사의 편견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었던 것 같다. 그저 그들은 가까운 이웃이었을 뿐이다. 여행중 서양인을 외국인으로 지칭하고 있는데 일본인도 내겐 외국인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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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마모토역에서 전차를 타고 구마모토 성으로 향한다. 난 솔직히 구마모토성를 보고 일본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일본이 더 가깝게 느껴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들 나름의 독특한 무엇인가가 있다는게 그냥 반가웠다. 단단한 돌들을 가지고 수직으로 높게 쌓아올린 성벽이 지금도 눈에 선명하게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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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마모토 성 천수각에서 니노마루 광장을 가로지르면 바로 앞에 구마모토현립미술관이 보인다. 이 미술관에 유명 서양화가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부러웠다. 좋은 그림들을 소장할 수 있는 자금력이. 지금 한국에서 전시하고 있는 샤갈의 그림들이 10여점, 피카소의 나부 1점, 자화상 1점등 이 있었다. 무엇보다 르노와르의 그림이 눈길을 끌었다. 기억나지 않은 화가의 그림 한 점과 함께.
일본 작가의 그림 : 제목은 calm
구마모토성 주위를 흐르는 쓰보이강가를 따라 20여분을 걸어내려가면 구마모토 시청을 지나 번화한 거리에 현대식 건물안에 위치한 구마모토시 현대미술관이 있다. 미술관이 들어선 건물안에 백화점, 스타벅스 커피점 등이 위치해 있어서 접근성이 좋았다. 현립미술관도 그랬거니와 외관과 내부 모두 너무도 훌륭하단 느낌이 든다. 그림 이전에.
이 미술관은 늦은 시간인 저녁 7시 30분까지 문을 연다. 덕분에 home gallery 란 도서관같은 방에서 편안한 소파에 앉아 음악을 들으며 잠깐 졸기도 했다. (이때 아들은 거의 깊은 잠에 떨어졌다.) 70-80석 정도되는 넓은 공간인데 10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드문 드문 앉아 책을 읽거나 그저 쉬는 듯한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이 미술관이 표방하는 mission 에 너무도 잘 맞아떨어지는 분위기다. Mission statement를 일부 소개하면 ‘ The contemporary Art Kumamoto is open to all people. ......We strive to become a museum where people feel a warm sense of "home" and are able to catch their breath as they recover from the hustle bustle of daily life............' (입장료 무료 ) 우리나라에도 이런 미술관이 도심 한복판에 있던가?
갤러리 전면에 커다란 그림이 한 점 설치되어 있고 그 옆으로 피아노 한 대가 놓여 있었는데 저녁 7시 쯤엔 한 여자 피아니스트가 피아노 연주를 하고 조용히 나가기도 했다.
사진 오른 쪽에 피아니스트
현대미술관이란 타이틀에 맞게 전시되고 있는 작품들은 젊은 현대작가의 작품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Attitude 2002 by Tatsuo Miyajima 박물관 안의 기둥에 수직으로 설치되어 있는 작품이다.
2011 2월 12일 토요일
구마모토에서 아소로
아소역은 작은 시골간이역이다. 아소산니시역으로 가려는 관광객들이 잠시 머무는 역. 역 근처에 인포메이션센터는 제법 규모가 커서 대청마루 같이 넓은 방도 있고 산지에서 난 다채로운 농산물을 포함한 먹거리등을 마트 형태로 판매하고 있다.
아소역 철로변에서
구마모토에서 출발할 때부터 내리던 눈발이 아소에서 더 심해져서 쿠사센리는 아예 눈천지다. 발이 푹푹 빠져 걷기도 힘들고 바람이 세차서 몹시 추웠다. 아소산의 나무들은 하얗게 눈꽃을 피워 아름다운 설경을 만들어냈다. 로프웨이도 운행을 중단했다는데 쿠사센리에서 하차하지 않고 산위를 더 올라가는 외국인 관광객 무리들이 있었다. 그 위쪽은 더 좋았을까. 눈속을 운행하는 버스와 운전기사가 신기할 따름이다. 쿠사센리에서 아소역으로 하행하는 버스엔 우리 가족 셋과 영국인인 듯한 가족( 부부와 딸 하나)이 전부였다. 버스를 기다리면서 춥고 거친 눈보라를 마주하며 왜 이 고생을 여기까지 와서 하는거람하는 후회가 잠깐 들기도 했다. 그만큼 추위에 떨었고 걱정이 되었던 거다. 혹시나 버스가 올라오지 못하는 건 아닐까. 중간 중간 체인이 없어 산 중턱에 멈춰버린 차들이 있었다. 눈은 세상을 눈부시게 아름답게 만들기도 하지만 공포로 하얗게 질리게도 하는 것 같다. 아들녀석은 그 와중에도 동영상을 찍어대며 설쳤는데, 딸은 아소역에 내릴 때까지 내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미술관의 그림들처럼 쿠사센리는 이 여행중에 얻은 설국을 배경으로 한 한 장의 잊지못할 그림으로 머릿속에 남아 있다.
아소에서 벳푸로
벳푸역에서 내릴 때쯤 우리 모두는 허기져있었다. 검침대를 지나기전에 역안에 덮밥을 파는 간이식당이 있다. 메뉴도 몇가지 안되고 저렴했는데 아들은 모처럼 입맛에 맞는지 맛나게 먹는다. 유니폼을 입은 벳푸역 역무원 둘이 옆자리에 앉아 조용히 식사를 하고 나간다. 아들은 벌써 일본인들이 젓가락만을 이용해 밥을 먹는 법을 터득해 이젠 제법 젓가락으로 능숙하게 먹어치운다. 덮밥집 옆에는 모락모락 김이나는 대나무판에 야채밥을 쪄내 파는 아주머니들이 있다. 모찌떡처럼 생겼는데 안에는 고구마와 팥이 들어있는 것도 있다. 시골스럽고 푸근하다.
벳푸역에서 걸어서 7분 정도 되는 곳에 위치한 민슈큐 고카케가 오늘 우리가 묵을 집이다.
옛시계 등 골동품이 많은 곳이란 말은 들었는데 거기서 몇 점의 예사롭지 않은 그림들 발견하게 된다.
무엇보다 집안에 온천을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이 있어서 좋았다. 벳푸가 온천의 고장임을 실감할 수 있었던 대목이다.
여관의 아주머니가 식탁위에 올려놓은 꽃. 꽃밭침은 아주머니가 직접 짰겠지...
서로 소통이 안돼서 고통스럽다.
2011 2월 13일 일요일
벳푸 카톨릭 교회
이른 아침 온천욕을 하고 아이들을 서둘러 깨워 근처에 있는 성당으로 향했다. 고카게 주인 아주머니는 아주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처럼 길을 가르쳐주었는데, 가다가 두서너번 더 길을 물어야했다. 성당이 거기에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들도 있었고. 9시 미사에 늦지 않으려고 이른 일요일 아침의 정갈하고 조용한 주택가를 우리 셋이서 휘젓고 다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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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실한 신자여서는 아니었다. 벳푸 카톨릭 교회. 프랑스 루르드 대성당을 모델로 건축되었고 파이프 오르간 음색이 무척 아름답다고 한다. 9시 미사에 참여했다. 미사를 집도한 신부는 서양인이었다. 아주 오래전 다녔던 어릴적 성당의 모습을 많이 닮아 있었다. 신도들 대부분이 나이 든 노인들이었던 것 같다. 일본어로 미사가 거행되었는데 거의 다 이해할 수 있었다. 신부님의 강론만 빼고. 하지만 집중해서 들었고 열심히 기도했다.
다카사키야마 자연동물원
시간을 낭비했다고 투덜대는 아들. 아들이 기대하고 있던 원숭이 자연동물원으로 향하다. 연신 원숭이들에 대해 해설을 해대는 여자직원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으면 더 재미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동물원의 그 예쁜 여자 해설사는 원숭이들과 거의 소통하고 있었다. 사람과 똑같은 짓을 하는 그들이 하도 신기하고 재미있어서 사실은 아이들보다 내가 더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있었다.
우미지옥(Blue Hell)에서 족욕을 즐기다.
일정상 B-con plaza 와 Traditional Bamboo crafts center 가 남아 있어, 8개의 Hell 중에서 우미지옥만 둘러보았다. 원래 대나무세공전통회관은 여행일정에 들어 있지 않았는데 여행을 하면서 일본에서 나무가 많이 쓰이고 있음을 보고 특히 대나무에 대한 관심을 더 갖게 되었다. 우리가 이용한 Relay Tsubame 43, Sonic 48, Sonic 808 Express, Trans-Kyushu LTD EXP 열차 뿐만 아니라 구마모토 전차의 바닥재가 모두 나무로 되어 있었고, 특히 스기노이 호텔 온천 대욕장의 천정이 대나무재질의 나무로 되어 있었는데 수증기가 천정에 하나도 스미지 않아서 무척 놀라웠다. 온천 실내 바닥은 우리나라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대나무 돗자리가 깔려 있다. 벳푸에서 묵었던 고카게 방바닥도 대나무가 깔려 있었고. 몇 군데 둘러 본 미술관들의 외관이나 내부가 모두 나무 재질로 이루어진 것도 우연은 아닐 듯 싶다.
B-con plaza
100m 높이의 global tower에 올라 벳푸 전체를 조망하다. 뒤로 온천에서 솟아나는 연기로 가득한 산과 앞엔 시원하게 펼쳐진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온다. 정말 아름다운 도시 벳푸다.
여행 마지막날 출국을 위해 공항으로 출발하려던 순간, 내 머릿속엔 다음 여행 일정이 떠올랐을 정도다.
(비수기 6개월 전 항공권을 미리 사둔다. 여행지는 벳푸. 벳푸 스기노이 호텔 1개월 전 예약시 50% 할인 티켓 구입, 스기노이 호텔에서 이틀을 머문다 또는 그것이 안될 경우 제 2안으로 벳푸 스테이션 호텔에 숙소를 정하고 호텔 온천만을 이용한다. 100m 높이의 B-con 플라자 타워에서 본 벳푸 시내의 전경을 떠올리며 벳푸항구쪽 마을을 무작정 돌아본다. 또 하루의 여유가 있다면 벳푸에 잘 알려지지 않은 시골 마을을 찾아 거닐어본다.)
첫댓글 개인배낭여행은 처음이었을텐데..... 그래도 잘 다녀오셨네요? 우린 말들이 풀을 뜯는 초록의 구사센리를 보았는데 지금은 "설국" 이네요? 거기 화산박물관이 볼만한데!!!! 회차 시간때문에 못 보셨나 보네요? 하기사 내려올 일이 걱정이니.... 벳푸 고카케 민슈쿠를 보니 저도 옛 생각이 납니다. 구마모토성은 가또 기요마사가 쌓았는 데, 부산에서 울산 가다보면 진하 바닷가에 서생왜성이라고 임진왜란시에 그가 쌓았던 성이 있는데 둘은 쌍둥이에다가 벚꽃이 참 좋습니다. 그가 서울로 입성한 남대문은 후일 총독부가 조상의 역사를 평가해 철거하지 않고 보물1호로 삼았지요! 50년대에 우린 일제가 정해준 보물을 국보로 이름만 바꾸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