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는 솔(率)나무 또는 솔이라 칭한다. 솔은 나무 중의 우두머리라는 뜻이다. 세계적으로 백여 종이 있다. 상록 침엽수로 금강송을 비롯하여 여러 품종이 있고 수명이 길다. 끈적끈적한 수액인 송진이 나와 벌레가 잘 먹지 않는다. 전통적으로 건재나 정원수로 널리 쓰인다.
예전에는 수입 수종인 향나무를 정원수로 선호했으나 지금은 대부분 소나무로 대치되었다. 대로 위 교차로에 싱싱하게 자라는 소나무는 어느 관상수보다 뛰어나다. 약리적인 효과로 피톤치드, 옥시팔미틴(oxypalmitine) 같은 물질을 발산하여 건강에 도움을 주기 때문에 산림욕장에는 필수적인 수목이다. 소나무가 발산하는 물질은 곰팡이를 비롯한 균류의 번식을 억제한다. 예로부터 송편을 찔 때 오래 저장할 수 있도록 솔잎을 까는 데서도 우리 조상들의 과학적 지혜를 엿볼 수 있다.
나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산골에서 나고 자랐다. 수확한 곡식은 일제가 공출로 수탈해 갔다. 할당량을 제때 내지 않으면 온 집안을 뒤졌다. 먹고살 양식이라 애원해도 매정하게 가져가는 걸 보고 어린 나는 겁에 질려 숨기도 했다. 허기진 어느 봄날, 할머니가 뒷산에서 꺾어온 소나무 가지의 겉껍질을 벗기고 속껍질을 먹여주셨다. 쫀득쫀득한 맛이 일품이었다. 송기(松肌)라 하여 산골 아이들에게 좋은 간식거리가 되었다. 친구들과 어울려 놀다가 출출하면 산에 올라가 송기를 먹고 배를 채웠다,
마을 뒷산 어귀에서 놀다가 아버지가 인부를 써서 소나무 판자를 캐고 있는 걸 보았다. 어디에 쓰는 판자냐고 여쭈었더니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이 판자로 집을 지어 저승으로 모실 거라고 했다.
“참 좋은 소나무 널이다. 어데 이런 좋은 소나무가 있었노!”
판자를 캐는 인부가 연거푸 감탄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선친은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쓸 널을 마련하려는 뜻을 두고 마을 인근 우리 소유의 소나무 한 그루를 미리 점찍어 두신 것 같았다. 그 후, 비를 맞지 않고 통풍이 잘되도록 널판자를 지극정성으로 간수 하셨다. 6・25 전쟁으로 가끔 공비가 출몰하여, 소개(疏開)를 할 때도 이 널판자부터 옮긴 후 세간을 옮겼다.
“니 아범이 이래 좋은 널로 내가 저승 갈 때 집을 지어준다니 참으로 효자다.”
할머니는 판자를 보고 늘 흐뭇해하셨다. 할머니께 쓸 널판자는 다섯 개 정도면 충분한데 아버지는 열 개의 널판자를 준비해 두셨다.
교사로 첫 발령이 나 집을 나설 때, 할머니가 제일 기뻐하셨다
“니는 이제 무논이랑 밭에서 사시장철 옷에 흙 안 묻히고 살겠다. 내 생전에 손발에 흙 칠갑하지 않는 직업을 가진 손자를 봤으니,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
먼 임지에서 근무하던 어느 날, 할머니의 부음을 받았다. 허둥지둥 집으로 가는 길에 흐르는 눈물이 앞을 가렸다. 소나무 널에 누워 계신 할머니가 참으로 평화로워 보였다. 구성진 상엿소리를 들으며 고된 일에 파묻혀 살았던 일생을 뒤로하고 소나무 판잣집에 누워 멀고 먼 나라로 가셨다.
아버지는 살아생전 당신이 누울 소나무집의 규격까지 말씀하셨다.
“내가 이승을 하직할 때 소나무 널 두께가 5전(5cm)은 되어야 부끄럽지 않은 집이지.”
그렇게 하라는 명령이자 유언 같았다. 부모님은 더 살아 계셨으면 하는 자식들의 간절한 소망을 뒤로한 채, 같은 해에 석 달 간격으로 자연의 품으로 가셨다. 생전에 한 말씀을 받들어 좋은 소나무 널을 마련하여 양지바른 선산의 유택(幽宅)에 두 분을 모셨다. 효자 노릇 제대로 못 한 송구함을 조금이나마 했던 것 같다.
이제 내 나이보다 많은 친척이나 웃어른은 다 떠나셨다. 아무리 둘러봐도 이제 내 차례인 듯하다. 내가 저승으로 갈 때는 멋진 영구차에 승차하여 자연의 품으로 갈 것인데 소나무집이 아닌들 어떠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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