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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태산 수행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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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름길 법문 [지름길법문 18] 둘이 아닌 내정정 외정정
나우 추천 0 조회 24 22.06.24 14:03 댓글 16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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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2.07.06 22:51

    첫댓글 내정정(內定靜)은, 일이 없을 때에 염불과 좌선 등으로 마음의 번뇌를 쉬어서 우리의 온전한 근본 정신을 기르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마음을 텅 비고 고요하게 지킴으로써 분별 주착이 없는 성품의 본래자리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정전 일상수행의 요법에 있는 것처럼 ‘원래 요란함과 어리석음과 그름이 없는’ 심지를 되찾는 것입니다.
    출처 : 한울안신문(http://www.hanulan.or.kr)

    심지를 되찾으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있겠습니까마는 무의식적인 생활태도와 습관으로 혼혼불각 자행자지의 습에 착해 삽니다.
    그럴 때

    ○ 정력(定力)을 얻을 때까지 마음을 멈추자.
    (수호<守護> = 검문소 설치)
    ○ 혜력(慧力)을 얻을 때까지 생각을 궁글리자.
    (사색<思索> = 탁마(琢磨)한 광석(鑛石)
    ○ 계력(戒力)을 얻을 때까지 취사하자.
    (실천 = 부도 안 난 수표)
    출처 : 원불교신문(http://www.wonnews.co.kr)

    이러한 삼대력 공부로 이미 잃어버린 본래 심지를 되찾길 꽤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혜능 대사의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만 가치있는 게 아니라 신수대사의 시시근불식時時勤拂拭
    도 그 역할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 작성자 22.07.07 11:55


    大山님의 定力 慧力 戒力 설법은
    우리의 번뇌 망상 분별 주착을
    끊임없는 잽을 날려서 KO 시키라는 말씀이고

    일원상의 수행, 일원상 법어, 무시선법은
    강펀치 한 방을 제대로 날리면 KO 시킨다는 말씀입니다.

  • 작성자 22.07.07 11:57

    https://m.youtube.com/watch?v=XJ0z9S9VGXM

  • 작성자 22.07.07 11:58

    매주 토요일 3시에 열리는
    [원불교 재가 공부인 대회] 동영상입니다

    유튜브에서 [원불교 재가 공부인 대회]를 검색하면
    1회부터 5회까지 모두 볼 수 있습니다.

    https://m.youtube.com/results?sp=mAEA&search_query=원불교+재가+공부인+대회

  • 작성자 22.07.07 12:02

    위 동영상에 들어가 보시면
    무시선법 수행자들에게 어떤 결과가 있었는지를 들어볼 수 있습니다.

  • 22.07.09 15:37

    잽잽잽.. 어퍼컷!
    저것이 아직도 쌩쌩하네
    다시 잽잽잽...
    이런 거지요. ㅎㅎ...

    재가 공부인 대회에 참가한 분들, 대단합디다. 가히 절구통 정무님이라 할 만합니다.
    두세시간 동안 좌정하기를 취미삼아들 하시니 말입니다.

    정산종사는 "대저, 이 삼학을 증득하고 보면 억지로 요란하려 해도 요란해지지 않고, 어리석으려 해도 어리석어지지 않고, 그르려 해도 글러지지가 않나니…'(<정산종사법설> 불교정전의해 10)라고 했다.
    '로서'로 이해하여 요란해지지 않이하게 하는 공부는 자성문정혜가 되고 '로써'로 이해하여 요란해진 그 마음을 없게 하는 공부는 수상문 정혜라 하겠다.
    출처 : 원불교신문(http://www.wonnews.co.kr)
    봉산 원무님글입니다.

    http://www.wo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2469

    아래 수심결을 해득하려고 낑낑대다가 참고 자료 찾으니 봉산님의 글이 안내되더만요.잽과 어퍼컷의 관계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될까 하여 올려봤습니다. 종법사님의 여러 근기를 다 인도해야 하는 입장을 살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 22.07.09 09:28

    묻되 「깨친 뒤 닦는 문 가운데 정과 혜를 평등하게 가진다는 뜻을 실로 밝게 알지 못하오니 다시 베풀어 말씀하시와 자세히 보이어 미한 소견을 열으사 하여금 해탈의 문에 들게 하소서.」 대답하되 「만일 법의를 베풀어 말할진대 성리에 드는 문이 많으나 정과 혜 아님이 없고 그 강요를 취하건대 다만 자성상의 체와 용 두 가지 뿐이니 앞에 말한 공적 영지가 이것이라 정은 이 체요 혜는 이 용이니 체에 나아가 용이 있는 고로 혜가 정을 여의지 아니하고 용에 나아가 체가 있는 고로 정이 혜를 여의지 아니하며 정이 곧 혜인 고로 고요한 가운데에도 항상 신령하게 아는 지혜가 있고 혜가 곧 정인 고로 신령하게 알면서도 항상 고요한지라 그러므로 육조 대사께서 이르시되 "심지가 요란하지 아니함이 자성의 정이요 심지가 어리석지 아니함이 자성의 혜라" 하시니, 만일 이와 같음을 깨쳐서 공적 영지를 임의로 운전하며 막히고 밝음이 둘이 아닌즉 이것이 곧 돈오 문에 정과 혜를 쌍으로 닦는 것이니라.」
    만일 말하되 "먼저 적적함으로써 분별 망상을 다스리고 뒤에 성성함으로써 혼침에 떨어짐을 다스린다" 하여 선후로 대치하여 혼침과 산란을 고르게 골라서 써 정(靜)에 드는 이는 이 점수문

  • 22.07.09 09:30

    중에 하열한 근기의 행하는 바라 비록 성성하고 적적함을 평등하게 갖는다 하나 고요함을 취하여 수행을 삼음을 면하지 못할지니 어찌 성품을 요달한 사람들의 본래 고요하고 본래 아는 자리를 여의지 아니하고 정과 혜를 임의로 운전하여 쌍으로 닦는 이가 되리오. 그런고로 육조대사께서 이르시되 "스스로 깨쳐 수행함은 다툼에 있지 아니하나니 만일 선후를 다투면 곧 이 미한 사람이라" 하시니라.
    곧 통달한 사람의 분상에 정과 혜를 평등하게 가지는 뜻은 공부하는 데 별로 딴 공력을 쓰지 아니하는지라 원래에 스스로 함이 없어서 다시 특별한 처소와 시절이 없을새 빛을 볼 때와 소리를 들을 때에도 다만 이러하며 옷 입고 밥 먹을 때에도 다만 이러하며 대소변 볼 때에도 다만 이러하며 사람을 대하여 말할 때에도 다만 이러하며 행하고 머물고 앉고 누울 때와 혹 말하고 혹 묵묵하고 혹 기뻐하고 혹 성내는 데에 이르기까지 일체 시중에 낱낱이 이와 같이 하되 마치 빈배를 물결에 멍에하매 높은 것을 따르고 낮은 것을 따르는 것과 같으며 물이 산을 끼고 돌매 굽은 곳을 만나면 굽은대로 가고 곧은 곳을 만나면 곧은대로 가는 것과 같아서 마음 마음이 분별이 없나니 오늘에도 헌거롭게 임의로

  • 22.07.09 09:31

    운전하고 내일에도 헌거롭게 임의로 운전하여 모든 인연을 따라 순하되 막히고 걸림이 없으며 선을 닦되 닦는 상이 없고 악을 끊되 끊는 상이 없어서 순박하고 곧아서 거짓됨이 없고 보고 듣는 것이 심상한지라 한 티끌도 상대되는 것이 없거니 어찌 방탕한 생각을 보내려고 하는 공력을 수고로이 하며 한 생각의 정욕도 내지 않는지라 망녕된 인연을 잊으려고 하는 힘을 빌릴 것이 없나니라.
    그러나, 업장이 두텁고 습관이 무거우며 법을 관하는 힘이 약하고 마음이 떠서 무명의 힘은 크고 반야의 힘은 작으므로 선악 경계에 동정이 서로 번갈아 번뇌를 일어냄을 면치 못하여 마음이 편하고 담담하지 못한 이는 인연을 잊고 방탕을 없애는 공부가 없지 못할지니 저 이르되 "육근이 경계를 대하되 마음이 경계에 끌리지 아니하는 것을 정이라 하고 마음과 경계가 한가지로 공하여 비추어 보는 것이 미혹됨이 없는 것을 혜라"하니 이 비록 수상문 정혜라 점수문 가운데 하열한 근기의 행하는 바이나 망연을 대치하는 문 가운데에는 가히 없지 못할지니라. 만일 산란심이 불같이 일어난즉 먼저 정으로써 자성 본리에 맞추어 흩어진 마음을 거두어 들여 마음이 망녕된 인연을 따르지 아니하여 본래 고요한 자리에

  • 22.07.09 09:32

    계합하게 하고 만일 혼침이 많은즉 혜로써 법을 택하고 공을 관하여, 비추어 보는 것이 미혹됨이 없어서 근본 지혜에 계합하게 할지니 정으로써 난상을 다스리고 혜로써 무기를 다스려 동정의 상이 없어지고 대치하는 공이 다한즉 경계를 대하여도 생각 생각이 근본에 돌아오고 인연을 만나도 마음 마음이 도에 계합하여 자유로이 운전하고 쌍으로 닦아 곧 일 없는 사람이 될 것이니 만일 이와 같이 하면 참으로 정과 혜를 평등하게 가져 밝게 불성을 본 이라 할 것이니라.
    묻되 「그대의 판단한 바에 의지할진대 깨친 후에 닦는 문 가운데에 정과 혜를 평등하게 가지는 뜻이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자성 정혜요 둘은 수상 정혜라 자성문 정혜는 가로되 "본래 고요하고 본래 아는 것을 임의로 운전하여 원래에 스스로 함이 없어서 한 티끌도 상대되는 것이 없거니 어찌 방탕한 생각을 보내려고 하는 공력을 수고로이 하며 일념의 정욕도 내지 아니하는지라 망녕된 인연을 잊으려 할 것이 없다." 하여, 판단해 말하되 "이것이 돈오문 가운데 자성을 떠나지 아니하고 정과 혜를 평등하게 가지는 것이라" 하고, 수상문 정혜는 가로되 "자성에 맞추어 흩어진 마음을 거두며 법을 택하고 공을 관하되 혼침과

  • 22.07.09 09:34

    산란을 고르게 골라 써 함이 없는 데에 들어 간다." 하여, 판단해 말하되 "이것이 점수문 가운데 하열한 근기의 행하는 바라" 하니 이 정 혜 두 문에 나아가 의심이 없지 아니하옵니다.」
    만일 한 사람이 행할 바라 할진대 먼저 자성문에 의지하여 정과 혜를 쌍으로 닦은 연후에 다시 수상문 대치의 공을 쓰나이까. 그렇지 아니하면 먼저 수상문에 의지하여 혼침과 산란을 고르게 고른 연후에 자성문에 들어가나이까. 만일 먼저 자성문 정혜에 의지한즉 공적 영지를 임의로 운전하여 다시 대치하는 공력이 없거니 어찌 모름지기 다시 수상문 정혜를 취하리오. 결백한 옥을 가져 문채를 아로새겨 덕을 상함과 같고, 만일 먼저 수상문 정혜로써 대치의 공을 이룬 연후에 자성문에 나아간즉 완연히 이 점수문 중에 하열한 근기의 깨치기 전에 점점 훈습하여 닦는 것이니 어찌 돈오문 가운데 먼저 깨치고 뒤에 닦아 공 없는 공을 쓰는 것이라 할 것이며,
    만일 한 때라 전후가 없은 즉 두 문의 정혜에 돈과 점이 다름이 있나니 어찌 한 때에 아울러 행하리오. 곧 돈오문에는 자성문을 의지하여 공적 영지를 임의로 운전하여 공용이 없는 것이요 점수문에 하열한 근기는 수상문에 나아가 대치하는 공력을

  • 22.07.09 09:36

    수고롭게 하는 것이니 두 문의 근기가 돈점이 다르고 우열이 명백하거늘 어찌 먼저 깨치고 뒤에 닦는 문 가운데에 두가지를 같이 해석하나이까. 청컨대 나를 위하여 알려 주시와 하여금 의심을 끊게 하소서.」 대답하되 「해석이 명백하거늘 네가 스스로 의심을 내는도다. 말을 따라 사량을 내면 점점 의혹이 날 것이요 뜻을 얻고 말을 잊으면 힐난할 것이 없나니라. 만일 돈오와 점수 두 문에 나아가 각각 행하는 바를 판단할진대 자성문 정혜를 닦는 이는 이것이 이 돈오문에 공 없는 공을 닦아 아울러 운전하고 쌍으로 고요하여 스스로 자성을 닦아 스스로 불도를 이루는 것이요,
    수상문 정혜를 닦는 이는 이 깨치기 전 점수문의 하열한 근기가 대치하는 공력을 써서 마음 마음이 미혹을 끊어 고요함을 취하여 수행을 삼는 것이니 이 두 문의 행하는 바가 돈과 점이 각각 다른지라 가히 섞어 어지럽게 말지어다. 그러나 깨친 뒤에 닦는 문 가운데 수상문 대치를 겸해 말하는 것은 온전히 점수문 가운데 하열한 근기의 행하는 바를 취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방편을 취하여 길을 빌려서 익힐 따름이니, 어찌한 연고인고 이 돈오문 중에서도 또한 근기가 승한 이도 있고 근기가 하열한 이도 있어서

  • 22.07.09 09:38

    가히 한 예로 그 행리(行李)를 판단하지 못할지니,
    만일 번뇌가 담박하고 몸과 마음이 가볍고 편안하여 선을 닦되 닦는 상을 떠나고 악을 끊되 끊는 상을 떠나서 팔풍(八風=利·衰·毁·譽·稱·譏·苦·樂)에 동하지 아니하고 삼수(三受=苦受·樂受·捨受)가 고요한 이는 자성의 정혜를 의지하여 공적 영지를 임의로 운전하고 쌍으로 닦아서 천진하여 짓는 바가 없고 동과 정이 항상 선(禪)인지라 자연의 이치를 성취하거니 어찌 수상문의 대치하는 법을 빌리리오. 병이 없으면 약을 구하지 않나니라. 비록 먼저 문득 깨쳤으나 번뇌가 농후하고 습기가 굳고 무거워서 경계를 대하매 생각 생각이 망정(妄情)을 내고 모든 인연을 만나매 마음 마음이 상대를 지어서 혼침과 산란의 부림을 입어 공적 영지의 떳떳함을 매각한 이는 곧 수상문 정혜를 빌려 대치하는 공부를 잊지 말고 혼침과 산란을 고르게 골라 써 함이 없는 데에 들어가는 것이 곧 마땅한 일이니 비록 대치하는 공부를 빌려 잠간 동안 습기를 조복받으나 먼저 문득 심성이 본래 청정하고 번뇌가 원래 공한 자리를 깨쳤는 고로 곧 점수문 가운데 하열한 근기의 오염수에 떨어지지 아니하나니,

  • 22.07.09 09:49

    왜냐 하면 깨치지 못하고 닦는 것은 비록 공력을 써서 잊지 아니하여 생각 생각이 훈습해 닦으나 닿는 곳 마다 의심을 내어 마음 가운데 걸려 있음이 마치 한 물건이 가슴 가운데 걸려 있음과 같아서 편안하지 못한 모양이 항상 앞에 나타나 있다가 일구 월심하여 대치하는 공력이 순숙한즉 신심 객진이 가볍고 편안해짐과 흡사하리니 비록 또한 가볍고 편안하다 하나 의심 뿌리를 끊지 못함이 돌로 풀을 누르는 것과 같아서 오히려 생사 경계에 자유함을 얻지 못할새 그런 고로 이르시되 "깨지 못하고 닦는 것은 참으로 닦는 것이 아니라" 하시니라. 깨친 사람의 분상에는 비록 대치하는 방편이 있으나 생각 생각이 의심이 없어서 오염수에 떨어지지 아니하나니 일구 월심하면 자연히 천진 묘성에 계합하여 공적 영지를 임의로 운전하여 생각 생각이 일체 경계를 반연하되 마음 마음이 길이 모든 번뇌를 끊으며 자성을 여의지 아니하고 정과 혜를 평등히 가져 무상 보리를 성취하되 앞에 근기가 승한 이로 더불어 다시 차별이 없나니 곧 수상문 정혜가 비록 이 점수문에 하열한 근기의 행하는 바나 통달한 사람의 분상에는 가히 이르되 쇠를 단련하여 금을 이룸이라 만일 이와 같음을 안즉 어찌 두 문 정혜로써

  • 22.07.09 09:40

    선후 차제의 두 가지 소견을 내는 의심이 있으리오.」
    원컨대 모든 도 닦는 사람은 이 말을 잘 연구하고 맛을 붙여 다시 의심하여 스스로 퇴굴심을 내지 말지어다. 만일 장부의 뜻을 갖추어 무상 보리를 구하는 이 일진대 이것을 놓고 무엇을 하리오. 간절히 문자에만 집착하지 말고 바로 진실한 자리를 요달하여 낱낱이 자기의 본성에 나아가 본 종지에 계합하면 곧 스승없는 지혜가 자연히 앞에 나타나고 천진의 성리가 뚜렷이 매하지 아니하여 혜신(慧身)을 성취하되 다른 사람의 깨침을 말미암지 아니하리라. 이 묘한 의지가 비록 모든 사람에게 다 있으나 만일 일찌기 반야 종지를 심은 대승 근기가 아니면 능히 한 생각에 정신을 내지 못하리니, 어찌 한갓 믿지만 아니하리오 또한 이에 비방하여 도리어 무간 지옥을 부르는 이가 종종 있나니라. 비록 믿어 받지는 아니할지라도 한 번 귀에 지내어 잠시라도 인연을 맺으면 그 공과 그 덕을 가히 칭량하지 못할지니 그러므로 저 유심결에 이르되 "듣고 믿지 아니할지라도 오히려 불성 종자의 인을 맺고 배워서 이루지 못할지라도 오히려 인천의 복이 덮인다" 하였나니 성불할 정인(正因)을 잃지 않거든 하물며 들어 믿으며 배워 이루어서 항상 수호하여

  • 22.07.09 10:32

    잊지 아니하는 이야 그 공덕을 어찌 능히 헤아리리오.
    <수심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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