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신성(物神性)과 '연금 고갈론'에 대하여 [펌]
- 물신성을 벗어나야 '연금문제'를 근본 해결할 수 있다 -
사상의거처/ 2024. 5.31
소위 '연금 고갈론'의 사기성을 폭로하는 다음 기사는 주목할 만하다.
"일부 언론은 소위 국민연금 기금 고갈론을 유포하며, 미래세대는 연금을 못 받을 것이라 한다. 이 주장은 국민연금 기금 규모가 곧 재정 안정임을 전제한다. 국민연금의 목적이 적정 수준의 노후보장임에도, 보장성 강화는 불가능한 것으로 치부한다. 연금 지출 증가는 더 많은 기금 적립을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는 국민연금을 다람쥐가 구덩이에 도토리를 모으듯이 보험료를 오래도록 적립해 놓았다가 연금을 받는 제도로 보는 착각에서 비롯한 것이다. 국민연금 제도는 그렇게 작동하지 않는다. 미래 연금지출 증가에 대비하여 연기금을 미리 많이 쌓아놓는 대응은 연금재정 안정에 특별한 효용이 없다. 기금이 쌓여 있든 아니든, 결국 공적연금 재정 안정은 연금 지출 시점 노동세대의 생산성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만약 국민연금 기금이 덩치는 크지만 성장은 정체되어 있다면, 기금이 미래세대 부담을 덜어줄 수 없다. 주식, 채권, 부동산 등 다양한 연기금 자산이 시장에서 제값에 팔릴 때 비로소 연금을 지급할 수 있으며, 연금자산 구매력은 해당 시기 그 사회의 경제력에서 나온다. 연기금을 쌓아 놓아도, 미래세대가 부의 상당 부분을 연금에 할당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폰지사기? 국민연금은 그렇게 작동하지 않는다. 사회연대에 기초한 100년 넘은 제도…시장화된 노후보장으로 복지국가 불가능, 주은선 기자, 오마이뉴스, 23.03.30.)
국민연금은 “다람쥐가 구덩이에 도토리를 모으듯이 보험료를 오래도록 적립해 놓았다가 연금을 받는 제도로 보는” 것은 “착각”이라는 것이다. 이런 착각 대신에, 실제로는 “기금이 쌓여 있든 아니든, 결국 공적연금 재정 안정은 연금 지출시점 노동세대의 생산성에 달려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금처럼 현재의 생산인구가 낸 연금을 적립식으로 쌓아두고 있다가 나중에 정년 이후에 연금을 받고, 이때 적립한 기금이 소진되면 당대 생산인구가 낸 보험료로 연금을 내주게 설계되어 있는 ‘부분 적립식’이기도 하다. 대신 이 부과식은 건강보험처럼, 그 해 걷어 그 해 지급하고 부족분은 국가재정을 투입해서 채우게 되는 방식이다.
지금과 같은 적립식에서는 부과식보다 더 “착각”이 더하게 된다. 그런데 실은 국민연금은 “연금 지출시점 노동세대의 생산성에 달려있”는데, 적립한 기금이 아무리 많아도 연금이 지급되는 당대 노동세대의 생산성이 낮다면 제대로 연금을 지급할 수 없게 된다. 이는 반대로 적립한 기금이 부족해도, 연금 지급시점의 생산성이 높으면 연금을 제대로 지급할 수 있다는 말이다.
생산성은 특정 시간 동안에 '얼마나 많은 사용가치를 만들어 내는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이 말은 곧, 생산성이 놓으면 특정한 시간 동안에 많은 생산물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말이다. 현재 자본주의에서는 날이 갈수록 생산성이 높아지고 있다. 점점 더 기계화 되고 자동화 되면서, 적은 노동력 투입으로 더 많은 생산물을 만들어 낸다.
저출산을 우려하는데, 이는 노동생산 인구가 줄어드는 현상을 의미한다. 그런데 자본주의에서는 산업예비군, 즉 실업은 상대적 과잉인구다. 인구가 절대적으로 줄어든다는 의미보다는 자본의 축적규모에 비해 자동화, 합리화 등으로 생산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고용되는 노동자들이 상대적으로 줄어드는 상대적 과잉인구다.
현재 생산력 하에서 노동시간이 대폭 단축되면, 상대적 과잉인구는 없어지게 된다. 출산인구가 0이 되지 않는 한, 현재의 노동인구의 점차적인 감소 추세에 비춰 생산성이 이 보다 더 높아지기 때문에, 저출산에 대한 자본가들의 공포와 비명소리에도 불구하고 생산을 하는데 있어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저출산 아우성에도 불구하고 만성적인 청년 실업이 공존하는 현상을 보아도 이를 알 수 있다.
따라서 현재의 생산성이 그대로 혹은 더 발전한 상태가 지속된다면 “기금이 미래세대”에게 부담이 될 수는 없다. 심지어 지금 생산물의 과잉생산 상태로 보아 설령 일부 “성장이 정체되”거나 후퇴된다 하더라도 당대 생산인구와 연금수급 인구가 소비할 수 있는 생산물과 서비스가 공급된다고 하면 문제가 될 수 없다.
연금 수급자에게 지급되는 연금형태는 화폐형태이다. 연금 수급자가 궁극적으로 필요로 하는 것은 화폐형태로 지급받은 연금으로 생활수단을 사고 서비스를 공급받는 것이다. 여기서 미래 세대의 성장과 생산을 언급하는 이유는, 천재지변이 오거나 생산이 극심하게 후퇴되지 않는 한, 당대 노동인구와 연금수급 인구가 임금이나 연금 형태로 지급받은 화폐로 생산물과 서비스를 공급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퇴직금과 유사하게 연금은 현재 지불되어야 하는 임금을 공제하여, 퇴직 이후에 후불임금의 형태로 지급된다. 다만 퇴직금은 일시금으로 받고 연금은 여러 번 나눠서 받는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현재 적립식에서 “주식, 채권, 부동산” 등에 투자되어 연금이 막대한 자본공급 수단의 역할을 하는데, 자본가들은 현재 지급해야 할 임금을 후불제 형태의 연금으로 돌려 자본을 축적하는 것이다.
연금이 고갈된다는 것은 미래 연금 지급을 위해 “주식, 채권, 부동산” 형태로 나눠져 있는 자본을 투자에서 일시 수거하게 되는데, 연금 고갈에 대한 공포는 바로 이를 의미할 뿐이다. 연금 수급자가 생산물과 서비스만 공급받을 수 있다면 문제가 될 게 없다. 사실 과거에 일정기간 생산에 복무했다는 연금 증명서만 있으면 된다. 현물로 지급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에서는 화폐 물신성, 상품 물신성이 지배함으로써 이러한 사실이 은폐된다. 화폐 물신성은 상품교환의 산물인 화폐 자체에 신비한 힘을 부여하고 있으며, 화폐가 더 증식된 화폐를 낳는다는 것인데 이는 자본 물신성과도 관련이 있다.
자본은 노동자의 과거 노동의 산물인데, 자본주의에서는 그 자본이 노동자들을 지배하는 힘이 된다. 노동자의 생산한 생산물, 서비스의 일부를 임금형태로 지급하고 나머지 잉여노동은 자본가가 이윤으로 착취해가면서도 임금을 줬다는 것을 근거로 착취가 눈에 보이지 않게 만든다.
상품물신성은 인간과 인간끼리 생산을 하면서 착취자와 피착취자가 맺는 관계가 사라지게 하고, 과거 노동자들의 집단적 노동과 서비스의 결과로 만들어진 자본이 인간, 노동자를 지배하고 착취하면서 깊어지게 된다.
현재 공적연금에는 노령연금, 유족연금, 장애연금이 있는데 이는 퇴직 후, 노동을 하면서 사망하거나 장애를 겪고 노동능력을 상실한 노동자에게 지급하는 사회보장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는 사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경쟁이 지배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산물이 아니라, 무상복지 체제를 도입한 사회주의 체제나 이를 지향하며 투쟁한 노동자 민중의 성과로, 자본이 도입한 사회주의적 조치의 일환이기도 하다.
구소련 “사회주의사회에서는 노동자와 직원의 사회보험은 의무적인 것이고, 그 전부가 국가와 사회의 자금 및 기업수입으로부터 공제금에 의해 조달되고 노동자와 직원의 임금으로부터는 조금도 공제되지 않” 았다. (정치경제학4 ㅡ사회주의 경제학의 본질과 제문제ㅡ김윤환/편역, 도서출판 인간사)
미제국주의 포위에도 굴하지 않고 기본적인 주택, 의료, 교육, 육아 등 무상체제를 유지하고 있고 세금이 사라진 조선(북)에서는 여전히 보편적 사회복지와, 퇴직 이후에는 연금이 노후 생활수단이 되고 있다.
앞에 말했듯, 사회보장과 국민연금은 계급투쟁의 산물로 자본가계급의 양보로 이뤄졌다. 자본주의 체제를 위협할 정도로 노동자 투쟁이 거세게 진행될 때, 자본가계급은 사회보장과 연금보장을 양보했다. 작금 일련의 연금개악은 계급투쟁이 약화된 결과다.
특히 맑스주의의 (혁명적) 원칙이 후퇴하고 수정주의가 득세한 후에 서방의 노동자계급이 혁명적 전망을 상실하고 계급투쟁이 약화된 이후, 특히 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의 해체 이후에 복지체제는 전반적으로 무너지게 되고 서방 사회는 '신자유주의'가 판치는 사회로 변모해 왔다.
이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노동자들을 평생 죽도록 착취하고 노년에는 쓸모가 없어 버려져야 할 '폐기물'로 취급한다. 이 자본주의 체제는 노년에 누려야할 사회적 존경과 존엄한 삶은 고사하고 연금 개악으로 노년의 삶을 위협하고, 그것도 모자라 노인들은 사회에 기생해서 살아가는 '기생충'으로 취급된다.
“분열해서 통치한다”는 자본주의 통치계급의 모토는 노년과 청년들을 갈라치기 하는 것으로, '연금개악'을 정당화하는 사회적 이데올로기가 되고 있다. 노년의 삶은 물질적으로 궁핍하고 정신적으로도 박탈감과 소외감, 상실감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사회복지의 일환인 연금이 혁명과 계급투쟁의 산물이라는 점은 우리가 연금 개악에 있어서도 사회주의적 전망을 가지고 투쟁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보편적인 사회보장을 확장하고, 쥐꼬리만한 연금이 아니라 안정적인 노후생활이 보장되는 연금 대폭확충 투쟁에 나서야 한다.
청년들도 생물학적으로 노년이 될 수밖에 없는 자연적 현실을 환기시키고 노년의 복지가 곧 자신의 부모, 형제·자매들, 친인척들의 권리이며 결국은 자신과 미래 자신의 자식들 권리가 될 수밖에 없다는 사회적 현실을 인식시켜야 한다. 연금고갈론 협박을 내세워 연금 생활자들이 누려야할 당당한 권리를 무차별적으로 침해하는 강도들에 맞서 공세적으로 싸워야 한다.
연금은 실제로는 '노동자들이 생산한 총생산물의 일부'라는 점을 분명히 하여, 그에 따라 자본과 국가가 전적으로 부담하게 하거나 지급 비중을 결정적으로 높이는 투쟁을 해야 한다. 국민연금이 고소득, 장기가입자가 받는 혜택이 늘어나서 역진성이 강화되는 수단이 아니라, 저소득자와 불안정 노동자층이 더 높은 혜택을 받음으로써 누진성이 강화되도록 투쟁해야 할 것이다.
출처;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blogId=marxleninkr&logNo=223464473704&navType=b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