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장 이독제독(以毒制毒), 이적공적(以敵攻敵)
-1
①
동굴 안.
이백오십여 명의 군웅들은 조심스럽게 통로를 지났다. 동굴 안은
생각 밖으로 넓은 편으로 적어도 열 명 정도는 어깨를 나란히 하
고 지날 수가 있었다. 더우기 군웅들 중에서 몇 명이 화섭자(火攝
子)를 밝혀 통로를 환히 살피며 지날 수 있었다.
그들 중 오십여 명은 극심한 상처를 입고 있어 서로 부축을 하며
걷기도 했다.
군웅들은 모두 침중한 안색으로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모두가
조금 전의 대혈전을 생각하며 내심 치를 떨고 있었다.
그들은 인공(人工)으로 축조된 통로를 지나며 결국 똑같은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 동굴만 벗어나면 수라궁 밖이다. 수라궁 놈들, 두고 보자! 오
늘의 이 원한은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위전풍과 나란히 걷던 무영종은 그를 돌아보며 물었다.
"위단주, 이 통로는 확실히 수라궁 밖으로 통하는 것이오?"
위전풍은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틀림없소."
무영종은 한 가지 생각이 떠올라 고개를 끄덕였다.
'음, 하기야 위형은 오래 전부터 이곳에 열 명의 첩자를 잠입시켜
놓았으니 확실하겠구나.'
통로는 차츰 좁아지기 시작했다. 약 한 마장쯤 지나자 통로는 반
으로 좁아져 다섯 명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지날 정도가 되었다.
군웅들은 할 수 없이 대열을 길게 늘여 통로를 걸어야 했다.
우... 우... 우... 웅!
갑자기 군웅들의 후미 쪽으로부터 괴이한 실음이 들려온 것은 그
때였다. 그 음향은 맨 선두에 있던 무영종이 제일 먼저 들었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군웅들도 뒤이어 모두 그 음향을 들었다. 자세히 귀를 기울여 보
니 날개 달린 괴충(怪蟲)이 허공을 가득 메우며 내는 소리같았다.
군웅들의 얼굴에는 모두 불안과 의혹의 표정이 떠올랐다. 이때 혈
의마검 공손패가 안색이 변해 외쳤다.
"저것은... 오독살충(五毒殺蟲)이오!"
그 말에 옆에 있던 조천명이 의아하여 물었다.
"공손곡주, 그게 무슨 말이오?"
공손패는 공포에 젖은 음성으로 대답했다.
"이, 이것은 오독비마 구우령이 키우는 것으로 다섯 가지 극렬한
독충(毒蟲)들이 내는 소리요."
"아!"
"극독의 침을 가지고 있는 독벌(毒蜂), 묘강의 무서운 독파리인
혈승(血蠅), 한 번 쏘이면 즉사하고 마는 모기인 마문(魔蚊), 날
아다니 뱀 비음사(飛陰蛇), 무서운 독나비인 귀접(鬼蝶)을 말하
는 것이오."
군웅들은 그 말에 모두 안색이 대변했고 공손패는 치를 떨었다.
"구우령은 이 오독살충으로 우리를 동굴 안에서 모조리 죽일 작정
인가 보오."
조천명도 이를 갈며 분성을 터뜨렸다.
"으... 으....... 지독한 놈들! 이제 보니 이 동굴도 놈들이 마련
한 계략 중 하나였군."
그러자 모두들 약속이나 한 듯 일제히 위전풍을 노려보았고 위전
풍은 그만 안색이 창백해지고 말았다.
흑고가 참지 못한 듯 그를 다그쳤다.
"위전풍, 이 일을 어떻게 설명하겠느냐?"
위전풍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굳어져 버렸다. 무영종이 그 사
이에 나섰다.
"여러분, 위단주의 본심은 이미 밖에 봐서 충분히 알 수가 있지 않
소? 그의 형제들인 오상공자 중 둘이 희생되기까지 했소이다.
그러니 위단주는 절대 고의적으로 우리를 사지(死地)에 몰아넣을
사람이 아니오."
무영종은 잠시 말을 끊었다가 다시 이었다.
"단지 이 통로 속에 이같은 함정이 있는 것 만은 그도 예상치 못
했나 보오이다."
그는 어두운 시선으로 전도(前道)를 응시하고 있었으나 그가 한
말의 효력은 대단했다. 군웅들은 그의 말에 따라 금새 위전풍에
대한 의심을 거두어 버리는 듯했고 위전풍은 무영종을 감격에 찬
눈으로 바라보았다.
우... 우... 우... 웅!
오독살충의 날갯소리는 통로의 공기를 진동시키며 점점 더 가까워
졌다. 조천명이 외쳐 물었다.
"무대협. 좋은 방도가 없겠소? 이 소리로 보아 잠시 후면 오독살
충이 당도할 것 같소."
그 말에 대답하는 자는 호불범이었다.
"구우령의 오독살충이 만드는 오독절마진을 막는 법은 단 두 가지
뿐입니다."
군웅들의 이목은 모두 그에게 집중되었고 무영종이 고개를 끄덕이
며 그를 도왔다.
"그렇소. 그것은 화(火)와 독(毒)이오."
"화와 독?"
조천명의 반문에 호불범은 탄식했다.
"이곳에 백독마군(百毒魔君)이 있다면 막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
러나......."
호불범이 힘없이 말을 흐리자 조천명이 그 뒷말을 대신했다.
"그들은 이미 죽었소이다."
우... 웅... 우웅!
오독살충의 진동음은 그 사이 더욱더 커졌고 무영종은 안색이 침
중해졌다.
"소첩이 한 번 막아보겠어요."
어디선가에서 차가우면서도 아름다운 음성이 들렸는데 음성의 주
인공은 흑의미부, 바로 위전풍의 아내인 빙혈미인 고설한이었다.
그녀는 지금 안색이 무척 창백해져 있었으나 그녀의 타고난 미
(美)는 여전히 중인들의 눈길을 끌고 있었다.
"아니, 고여협이 어떻게?"
군웅들이 모두 의아한 표정을 짓자 그녀는 품 속에서 하나의 백옥
갑을 꺼냈다. 그리고 그녀가 뚜껑을 여니 그 안에서 투명한 빛을
발하는 두 마리의 주먹만 한 은빛 거미가 튀어 나왔다.
"이 거미는 설산(雪山) 특산의 은망귀주(銀網鬼蛛)예요."
고설한은 중인들에게 말했다.
"여러분, 잠시만 물러나 주세요."
군웅들은 모두 비켜 서 주었다. 고설한은 군웅들의 후위에서 은망
귀주를 풀었다.
쓰쓰... 쓰쓰.......
두 마리의 은망귀주는 괴이한 음향을 내며 통로에 거미줄을 치기
시작했다. 그들이 몇 번 좌로 우로 왔다갔다 하는 동안 통로에는
치밀한 거미줄이 완성되었다. 그 거미줄은 투명한 은색이었다.
고설한은 군웅들에게 설명했다.
"이 거미줄에는 어떤 물건이든 닿기만 하면 그 즉시 녹아버려요.
오독살충이 아무리 무섭다고 해도 이 은망이면 몇 각 동안은 버틸
수 있을 거예요."
고설한은 아름다운 눈을 깜빡이며 중인들을 재촉했다.
"자, 우리는 그동안 이곳을 벗어나야 해요."
무영종은 고개를 끄덕이며 중인들을 영도했다.
"여러분! 고여협의 말대로 빨리 행동합시다."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군웅들은 다투어 앞으로 이동했으나 워낙
통로가 좁고 인원이 많아서 이동은 그다지 용이치 않았다.
우... 우... 우... 웅!
오독살충의 진동음은 마침내 지척까지 닥쳤다. 군웅들은 앞으로
나가며 힐끗 뒤를 돌아보았다.
"헉!"
그들은 경악성을 발했다.
"저, 저럴 수가!"
실로 엄청난 숫자의 독충들이었다. 통로를 꽉 메우다시피한 독봉,
혈승, 마문, 비음사, 귀접 등이 은망에 걸려 광란하고 있었다.
우... 우... 웅! 쓰... 쓰... 쓰.......
소름끼치도록 괴이한 음향이 군웅들의 귀청을 울렸다.
"으으!"
맨 뒤에 처진 군웅들은 그 공포스런 광경에 완전히 질리고 말았
다. 이때 무영종이 침착하게 그들을 독려했다.
"자, 여러분. 얼마 동안은 안전하니 어서 앞으로 나갑시다."
군웅들은 조용하고 신속하게 앞으로 이동했다.
태양신군(太陽神君) 황보숭양. 그는 맨 뒤에 처져 있던 인물 중
한 명으로 앞을 향해 몸을 날리다 말고 힐끗 은망을 살펴 보았다.
투... 투... 투... 툭!
그의 눈에 독충들의 무게에 눌려 은망의 한 귀퉁이가 뜯어지는 것
이 보였다.
황보숭양은 자신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었다.
'저 정도라면 길게 잡아야 일 각... 은망은 오래가지 못하고 제
거 될 것이다.'
갑자기 그의 얼굴에는 비장한 표정이 어렸다. 그는 다시 고개를
돌려 군웅들 쪽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의 눈에 군웅들 속에 섞여 앞으로 빠져나가는 그의 아들
과 딸인 황보무룡과 황보문연이 보였다. 이미 전신이 피로 얼룩지
고 부상을 입어 처참한 몰골인 그의 혈육들이었다.
'저 아이들은 장차 태양장을 이을 혈맥(血脈)들이다.'
이어 황보숭양은 무슨 생각에서인지 슬쩍 대열에서 빠졌다. 그러
나 그 사실을 눈치 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군웅들은 앞으로 달
려나가는 데만 정신이 팔려 있었던 것이다. 삽시간에 황보숭양은
군웅들에게서 멀어졌다.
투툭... 툭... 투툭!
은망(銀網)은 하나 하나 끊어지고 있었다.
우... 우... 웅! 쓰... 쓰... 치치... 칙!
오독살충은 발광을 일으켰다. 그 앞에서 태양신군 황보숭양은 우
뚝 서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추호의 흔들림이 없는 모종의 결심
과 각오가 어려 있었다.
그는 내심 중얼거렸다.
'태양신공(太陽神功)을 극성으로 끌어올리면 태양열화천강(太陽熱
火天 )에 이른다. 그것은 천지 간에서 가장 극양한 기운이다. 전
력을 다해 펼치면 전신에서 화염이 근 반 시진 동안 작렬하여 방
원 십 장을 불바다로 만들 것이다. 그것이면 충분히 오독살충을
불태울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내 목숨은 끝이다.'
황보숭양의 얼굴에는 비장한 기운이 가득 찼다. 마침내 그는 눈을
지그시 감더니 그 자리에 정좌(正坐)했다.
'설사 한 줌의 재로 화할지언정 대의(大義)를 위한 일이라면 내
한 목숨 무엇이 아까우랴?'
황보숭양은 마치 유언이라도 하듯 중얼거렸다.
"용아(龍兒)야, 태양장의 운명은 이제 너에게 달렸다."
그는 눈을 부릅떴다. 그의 눈에 은망에 달라붙은 수천만 마리의
독충이 보였다.
'모조리 태워 죽이리라!'
투... 툭... 툭!
드디어 은망이 크게 찢어지면서 무수한 독충이 먹구름처럼 쏟아져
나왔다. 황보숭양의 두 눈에서 무서운 화광이 뻗었다. 그의 몸이
찬란한 백광(白光)에 휩싸이는가 싶더니 엄청난 불길이 사방으로
작렬했다.
화르르르릉.......
엄청난 화염의 소용돌이가 일었다. 수천만 마리의 오독살충들은
물론 통로 전체가 가공할 화염으로 뒤덮이고 말았다. 심지어는 황
보숭양 자신마저도.......
②
군웅들은 계속 앞을 향해 이동했다.
호불범(戶不凡). 무공을 익히지 않은 유일한 인물인 그는 거듭되
는 격변으로 인해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그는 안색이 창백해진 채 걸음걸이마저 헝클어졌다. 그런데 그를
부축하는 손길이 있었다. 무영종이었다.
호불범은 그를 향해 미소 지었다.
"고맙습니다. 무대협."
그러는 사이 군웅들 속에 있던 황보문연이 안색이 변해 외쳤다.
"오빠, 아버님이 보이지 않아요!"
그녀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던 황보무룡은 흠칫 놀라 주위를 살
폈다. 과연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근처에 있었던 부친 황보숭양이
보이지 않았다. 황보무룡의 얼굴에는 삽시에 불안의 그림자가 떠
올랐다.
황보문연은 걱정이 가득 차 그에게 물었다.
"어디 계실까요?"
황보무룡은 입술을 지그시 물며 군웅들의 앞을 바라보았다.
"아마 선두로 가신 모양이니 너무 걱정마라. 아버님의 무공으로
보아 무슨 일이야 있겠느냐?"
황보문연은 저으기 안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으나 막상 그녀를 달
래던 황보무룡은 얼굴이 펴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설마하니 황보숭양이 군
웅들을 살리기 위해 홀로 뒤에 남아 희생되었을 줄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한편 무영종은 호불범을 부축하고 앞으로 걸으며 그가 매우 가볍
고 가냘프다는 것에 진한 연민을 느꼈다.
'정말 대단한 소녀다. 얼마 남지 않은 생명임에도 이토록 군웅들
을 위해 안간힘을 쓰다니.......'
그는 부드럽게 입을 열었다.
"호소협."
호불범은 고개를 돌려 아름다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아, 아니오."
무영종은 급히 말을 흐렸다. 그의 표정은 웬지 어색해져 있었다.
그 모습에 호불범은 은연중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설마... 이 분이 눈치를 챈 것이 아닐까?'
이때 위전풍이 그들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소. 앞으로 일 각만 더 가면 수라궁 밖이
오."
"음......."
무영종은 침음성을 발했다. 그는 희망을 갖기보다는 오히려 가슴
한 쪽이 무거워지고 있었다.
'오독비마의 오독살충이 이 통로에 전개된 것을 보면 앞으로 또다
른 함정이 있을 수도 있다. 과연.......'
그들이 앞으로 나가는 방향의 끝에서 한 줄기 빛이 보였다.
'웬 빛이?'
군웅들은 가슴이 섬뜩함을 느꼈다. 그들의 얼굴에는 불안이 어둡
게 깔렸다. 그러나 아무도 입을 열거나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통로는 다시 넓어졌다. 이어 하나의 커다란 광장에 당도하자 군웅
들의 입에서는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아니!"
군웅들은 모두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광장에는 실로 괴기한
광경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광장에는 시커먼 색의 흑관(黑棺)들이 즐비하게 놓여 있었는데 모
두 백팔 개(百八個)였다.
실로 공포스럽고 음산한 광경이었다. 광장의 사방 벽에는 푸른 인
화가 밝혀져 있었는가 하면 백팔 개의 흑관은 사실상 기이한 진세
(陣勢)로 군웅들의 앞 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무영종은 안색이 변했다.
'이것은 또 무엇인가?'
그는 곧 중인들에게 말했다.
"여러분, 모두 조심하시오!"
무영종은 앞장서 조심스럽게 전진했고 군웅들도 그의 뒤를 따라
흑관 사이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무영종은 그들을 인솔하여 진(陣)의 형세를 살펴 생문(生門), 휴
문(休門)을 통해 천천히 진입하고 있었다.
군웅들이 막 흑관의 중심부를 지날 때였다.
끼... 끼... 익!
섬ㅉ한 음향이 사방에서 들렸다. 군웅들은 그 소리에 모두 머리
끝이 쭈뼛서는 공포를 느꼈다.
끼... 익! 덜... 컹!
여기저기서 관뚜껑이 열리기 시작하더니 관 속에서 무엇인가가 벌
떡벌떡 일어났다. 그러나 그것을 본 군웅들은 자신들의 눈을 의심
해야 했다.
관 속에서 일어난 것은 전신에 실오라기 한 올 걸치지 않은 전라
의 미녀들이었던 것이었다.
도합 백팔 명의 나체미녀, 그것도 모두가 한결같이 눈부신 미모의
젊은 여인들로 희한하게도 머리칼은 금발이었고 눈동자는 벽안(璧
眼)이었다.
게다가 빙결처럼 새하얀 피부와 잘록한 허리, 깜짝 놀랄 만큼 풍
만한 두 개의 육봉과 커다란 둔부, 그리고 기름진 아랫배와 유난
히 길게 뻗은 두 다리는 아찔할 정도의 색기를 발산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여인들의 비림(秘林)은 폭발
적인 유혹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야말로 숨이 콱 막힐 듯 뇌쇄적인 풍경이었다. 관 속에서 일어
난 나체미녀들을 본 순간 군웅들은 하나같이 가슴이 울렁거리고
말았다.
게다가 백팔 명의 풍만한 나체미녀들에게서는 코를 찌르는 육향
(育香)이 풍겨 군웅들은 단전 아래가 뜨겁게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비교적 나이가 어린 청년들은 금방 호흡이 거칠어졌고 심지어는
무림고인들도 혈관이 부푸는 것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이때였다.
소림의 현광대사가 웅후한 불호성을 터뜨렸다.
"아미타불...! 모두들 조심하시오, 저 여인들은 인간(人間)이 아
니라 모두 죽은 지 오래된 시체들이오. 저들은 백골사마(白骨邪
魔)가 연성한 마의 대법인 백팔구유강시녀(白八九幽彊屍女)들이
오!"
그 말에 군웅들은 정신이 번쩍 들며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과
연 자세히 보니 나체 여인들의 푸른 눈에는 움직임이 전혀 없었으
며 마치 혼(魂)빠진 시귀(屍鬼)들과 같았다.
이때 가벼운 음향이 그들 사이를 울렸다.
사사사... 삭.......
그것은 바로 강시녀들이 맨발로 군웅들에게 좁혀드는 소리였다.
나체의 강시녀들은 군웅들을 향해 차츰 다가오고 있었다.
실로 충격적인 모습이었다. 터질 듯이 부푼 젖가슴과 연분홍빛의
유두(乳頭), 그리고 두 다리가 벌어질 때마다 살짝살짝 드러나곤
하는 여인의 비역(秘域).......
너무나도 적나라한 광경에 군웅들은 감히 손을 쓰지 못하고 주춤
주춤 뒤로 물러나기만 했다. 그러나 군웅들의 귓전에 무영종의 냉
엄한 외침이 들렸다.
"여러분, 모두 정신 차리시오! 저들은 인간이 아닌 살인괴물들이
오. 여기서 정신이 흩어지면 살아남지 못할 것이오."
무영종의 경고는 군웅들에게 새로운 경각심을 불러 일으켰다. 제
일 먼저 통천마군 흑고가 대갈일성을 터뜨렸다.
"빌어먹을 계집들, 죽어라!"
꽈르릉---!
그의 무서운 통천마장(通天魔掌)이 한 강시녀의 젖가슴을 격중시
켰다.
"카... 악!"
강시녀는 섬ㅉ한 짐승의 울부짖음같은 비명을 지르며 뒤로 삼 장
가량이나 나가 떨어졌다. 두 다리를 뻗으며 떨어진 강시녀의 모습
은 실로 괴이했다.
그러나 강시녀는 놀랍게도 펄쩍 뛰어 오르더니 허공을 한 바퀴 회
전한 후 바닥에 내려섰다
"크... 크악!"
강시녀의 입에서는 인간도 짐승도 아닌 기괴한 음성이 터져 나왔
다.
"저... 저럴 수가!"
흑고는 그 광경에 대경실색했다. 자신의 통천마장은 적어도 삼천
근의 힘이 실려 있어 단단한 청석으로 된 비석조차 단숨에 쪼갤
수 있었다. 그런데 골육(骨肉)으로 된 강시녀가 끄떡없이 일어서
는 것을 본 그는 도시 믿을 수가 없다는 듯 멍해졌다.
이윽고 백팔구유강시녀는 군웅들을 일제히 공격하기 시작했다.
"으아악!"
여기저기서 처절한 비명소리가 터졌다. 강시녀들의 공격에 단번에
십여 명의 군웅들이 거꾸러졌다.
군웅들의 분노는 마침내 폭발하고 말았다.
"요귀들! 죽어랏!"
펑! 퍼엉! 쾅---!
군웅들의 장력은 강시녀들을 무차별 공격했다. 일단 군웅들이 죽
는 것을 보게 되자 그들은 더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전
라의 강시녀들의 모습에 당황했으나 차츰 독한 마음을 먹게 된 것
이었다.
그들은 무차별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금기로 여기던 여
인의 소중한 부위를 공격하는 것마저 마다하지 않았다.
펑!
막중한 장력이 강시녀의 터질 듯이 부푼 젖가슴에 격중되었다. 그
러나 강시녀들은 괴성을 지르며 저만치 날아갔다가는 다시 야차처
럼 덤벼들었다.
"카... 아!"
군웅들은 차츰 당황하기 시작했다.
"크윽!"
다시 십여 명의 군웅들이 강시녀의 공격에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즉사했다.
강시녀의 옥수(玉手)는 도검(刀劍)보다 더 날카로왔다. 그녀들의
쫙 벌린 손가락은 군웅들의 병기를 여지없이 부러뜨렸으며 머리통
을 으깨는가 하면 가슴과 복부를 꿰뚫었다.
여기저기서 터지는 참혹한 비명으로 인해 장내는 삽시에 피의 아
수라장으로 화했다.
한편 호불범의 안색이 갑자기 창백하게 변했다. 그는 이마에서 식
은 땀을 흘리며 두 눈은 촛점을 잃기 시작했다. 그를 부축하고 있
던 무영종은 흠칫하며 물었다.
"호소협, 왜 그러시오?"
"고... 고질병이 시작......"
호불범은 몸을 사시나무처럼 떨며 간신히 이같이 말했다.
"야... 약(藥)을......."
그는 안간힘을 쓰며 품속에 손을 넣었다. 그러나 기력(氣力)이
쇠진한 듯 약을 꺼내지 못했다. 무영종이 침음성을 발하더니 말했
다.
"내가 대신 꺼내 드리겠소."
그는 호불범의 가슴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비록 천으로 감쌌지
만 뭉클한 여인의 젖가슴의 감촉을 손으로 느낄 수가 있었다. 그
러나 그는 내색치 않았다.
호불범은 그의 손길이 소중한 젖가슴을 건드리자 안색이 붉어졌
다. 무영종은 무심한 표정으로 재빨리 옥병 속에서 세 알의 흰 알
약을 꺼내서 호불범에게 먹였다.
잠시 후 호불범의 창백하던 얼굴에는 화색(和色)이 되살아 났다.
기운을 차리자 호불범은 가장 먼저 무영종에게 대한 의혹으로 눈
을 반짝였다.
'정말 이 분은 내가 여자임을 눈치 채지 못했단 말인가?'
남장 여인 호불범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이 분은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단지 모른 척 하실
뿐.......'
호불범은 안타까운 기색이 어린 얼굴로 나직히 한숨을 쉬었다.
"으아악!"
처절한 비명은 계속 들려오고 있었고 무영종은 사방을 둘러보았
다. 특히 부상당해 있던 군웅들이 강시녀들의 공격에 의해 처참하
게 쓰러지고 있었다.
"저 요괴들!"
무영종의 얼굴에 무서운 격분이 떠올랐다. 그런 표정은 실로 드물
게 나타난 것이었다. 아니, 무영종으로선 처음이었다. 그는 근처
에 있던 관동삼괴에게 말했다.
"삼괴, 호소협을 호송해라!"
무영종의 몸은 분노에 찬 장소성과 함께 이미 날아가고 있었다.
"우우----!"
그의 손에 쥐여진 은월도가 허공에서 찬란한 무지개를 환출했다.
드디어 불영구검의 절세검법이 다시 전개된 것이었다.
쐐--- 애--- 액!
가공할 검광과 검영이 한꺼번에 일곱 명의 강시녀를 휘감았다. 은
월도는 정확히 강시녀들의 목을 향해 한 바퀴 맴돌았다.
"크... 아... 악!"
강시녀들은 처절한 괴성을 지르며 모두 목을 감싸쥐고 날아갔다.
그러나 바닥에 쓰러진 강시녀들은 다시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목은 세 치 깊이로 갈라져 있었다. 분명 그 정도면 즉사를 하고도
남을 일이었다. 그런데 강시녀들은 목을 덜렁거리면서도 다시 그
를 공격해 오는 것이었다.
'이, 이럴 수가! 대체 이것들은... 불사지체(不死之體)란 말인
가?'
무영종이 아연실색해 하는 사이 호불범이 두 눈에 이채를 띄며 그
에게 말했다.
"무대협, 그 강시녀들의 기(氣)의 원천(源泉)은 회음혈(會陰穴)입
니다. 회음혈을 공격하면 물리칠 수가 있습니다."
호불범은 그렇게 말하며 스스로 얼굴을 붉혔고 무영종 역시 얼굴
이 붉어졌다. 회음혈. 그것은 바로 인체(人體)의 은밀한 곳으로
두 다리 사이에 있지 아니한가?
특히 여인으로 말하면 바로 은밀한 부위의 바로 아래에 해당되는
곳이었다.
'하지만 회음혈을 어떻게......?'
그가 난색을 지으며 주춤하고 있을 때였다.
"으악!"
바로 그의 곁에서 한 군웅이 강시녀의 공격에 머리가 부숴지며 죽
었다. 그러자 무영종의 가슴에 다시금 무서운 분노가 일어났다.
그는 즉시 몸을 휙 날리며 그 강시녀에게 접근하더니 원앙각퇴의
일식으로 나체 강시녀의 가랑이 사이 회음혈을 여지없이 강타했
다.
"끄아아악!"
강시녀는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날아갔다. 입에서 시커먼 피를 토
하며 날아간 강시녀는 바닥에 쳐박혀 나신을 부르르 떨더니 축 늘
어졌다. 비로소 완전히 죽은 것이었다.
③
무영종은 이를 악물며 외쳤다.
"여러분, 모두 강시녀들의 회음혈을 공격하시오! 그곳이 치명적인
급소요."
그 말은 곧 군웅들에게 활기를 불어넣었다. 군웅들은 이미 분노가
극에 달해 있었다. 쳐도 쳐도 죽지 않는 강시녀들로 인해 진력이
탈진되었음은 물론 이미 절반 가까운 인원이 희생되었기 때문이었
다.
"죽어라! 차... 앗!"
군웅들은 모두 강시녀들의 치부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사
실 기막히고도 해괴한 광경이었다. 그러나 그 효과는 확실했다.
"카--- 악!"
강시녀들은 순식간에 십여 명이 검은 피를 토하고 날아갔다. 물론
그것도 쉽지 만은 않았다. 일부 절정고수를 제외하고는 강시녀에
게 바짝 접근하여 회음혈을 공격하기가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더우기 정파인물들, 특히 소림의 현광과 십팔나한들은 차마 여인
의 비소를 공격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아미타불......."
보다 못한 현광이 차라리 먼저 선장을 휘둘러 한 강시녀의 치부를
찔렀다.
"크악!"
강시녀는 뒤로 뻗었고 그에 간신히 용기를 얻은 십팔나한도 눈을
질끈 감으며 공격했다. 그러나 혈전은 좀체로 결말이 나지 않았
다. 강시녀들의 무공도 가공할 만큼 높았기 때문이었다.
연달아 다섯 명의 강시녀들을 죽인 무영종은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이 강시녀들은 모두 동공이 없다. 그것은 앞을 볼 수 없다는 뜻
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공격을 할 수 있겠는가? 혹시.......'
그는 즉시 자신을 향해 덤벼드는 한 강시녀의 공격을 피하며 호흡
을 멈추어 보았다. 그랬더니 강시녀는 몸을 멈칫하고는 주위를 두
리번거리는 것이 아닌가?
'과연 나의 추측이 맞았구나.'
그는 군웅들에게 크게 외쳤다.
"여러분! 모두 호흡을 멈추고 공격을 중단하시오."
그 말에 군웅들은 모두 어리둥절했다. 그러나 이미 무영종을 신
(神)처럼 믿고 있는 그들은 즉시 호흡을 멈추며 몸을 세웠다. 그
러자 괴이한 광경이 벌어졌다.
모든 강시녀들이 일제히 나신을 기우뚱하더니 어리둥절하는 기색
으로 동작을 멈추는 것이었다. 강시녀들은 일시에 방향감각을 잃
은 듯 멍청히 굳어지고 말았다.
무영종은 만면에 희색을 떠올렸다.
'그렇구나. 이 강시녀들은 단지 청각만으로 호흡과 공기의 진동
을 감지하여 공격하는구나. 호흡과 동작을 정지시키면 따라서 강
시녀들은 목표를 잃고 공격을 멈추게 된다.'
무영종은 즉시 군웅들에게 말했다.
"여러분! 조용히 있다가 강시녀들을 급습하시오."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한 강시녀가 소리를 듣고 무영종을 덮쳤다.
그러나 그의 몸이 핑그르르 도는 순간 그의 발끝이 강시녀의 회음
혈을 걷어찼다.
"카악!"
강시녀가 피를 토하며 날아갔다.
조천명은 눈 앞에 멍청히 서 있는 강시녀를 향해 진천마도를 아래
서 위로 갈랐다.
"요망한 계집들! 모조리 도륙하겠다."
위--- 잉!
"카아... 악!"
진천마도는 강시녀를 가랑이부터 머리까 완전히 양단시키고 말았
다. 실로 끔찍한 광경이었으나 군웅들은 똑같은 방법으로 강시녀
들을 급습했다.
"카악! 칵!"
강시녀들의 숫자는 삽시에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그런데 바로 이
때였다.
우... 우... 우... 웅!
갑자기 통로의 후미진 곳에서 공기의 진동음이 들려오는 것이 아
닌가?
"아뿔사! 오독살충이다! 저것들이 벌써!"
군웅들이 대경하며 우왕좌왕했고 그 바람에 그들은 다시 강시녀들
의 공격을 받게 되었다.
다시 십여 명의 군웅들이 쓰러지자 무영종은 그들에게 외쳤다.
"여러분, 모두 침착히 대응하시오. 숨을 멈추고 조금씩 강시녀들
사이를 빠져 앞으로 전진하시오!"
그 말에 군웅들은 비로소 마음을 안정시켰다. 그들은 호흡을 끊고
옷자락 소리 하나 내지 않은 채 강시녀들 사이를 뚫고 앞으로 이
동하기 시작했다.
무영종은 곁에 있는 위전풍에게 전음으로 말했다.
(위단주, 소생은 이곳에 남아 잠시 할 일이 있소이다. 대신 군웅
들을 밖으로 인도해 주시기 바라오.)
위전풍은 흠칫하더니 그도 역시 전음으로 말했다.
(아니, 무대협. 어찌 하실 작정이오? 혼자 남겠다니.......)
(저 강시들과 오독살충을 서로 싸우게 하겠소이다.)
위전풍은 안색이 변했다.
(그것은 무척 위험한 짓이오!)
무영종은 담담히 웃었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군웅들이 이곳을 벗어날 수 없소이다. 소생
의 한 생명을 걸고라도 군웅들을 구해야 하오이다.)
위전풍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의 얼굴에는 온통 감동과 존경의
빛이 떠올랐다. 무영종은 이어 전음으로 부드럽게 말했다.
(위형!)
갑자기 달라진 칭호에 위전풍은 어리둥절해졌다.
(소제를 모르시겠소? 소제는 바로 하후성이오.)
위전풍의 안색이 대뜸 홱 변했다. 그는 너무나 놀란 나머지 전음
술을 펼친다는 것을 잊은 채 부르짖었다.
"다... 당신이......."
무영종은 몸을 돌렸다.
(위형, 부탁합니다.)
(하, 하후형!)
위전풍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러나 이미 하후성, 즉 무영종은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그를 바라보는 위전풍의 두 눈에 진득한
물기가 어렸다.
(하후형! 부디... 조심하시오!)
그의 격정에 떨리는 전음성에 무영종의 담담한 대답이 전해졌다.
(하하... 위형, 또 뵙게 될 것입니다.)
위전풍은 사나이들 만의 거센 감동이 가슴 속에서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그는 곧 몸을 돌리더니 군웅들을 영도하여 그 자
리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대세를 위해서는 어쩔수 없는 일이었
다.
이윽고 무영종은 광장에 홀로 남게 되었다.
전라의 강시녀들은 꼭 오십 명이었고 푸르스름한 인화는 강시녀들
의 뇌쇄적인 나체를 비추어 괴기스러운 느낌을 주었다.
무영종은 귀식대법으로 호흡을 멈추고 몸도 움직이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강시녀들도 그 자리에 굳어 있었다. 바닥에는 근 백여 구
에 달하는 군웅들의 시체가 짓이겨진 채 참혹한 광경을 드러내고
있었다.
무영종은 내심 탄식했다.
'들어올 때는 오백 명에 달하던 군웅들이었건만 이제 남은 사람은
백 오십여 명에 불과하겠구나.'
우... 우... 우... 웅!
오독살충의 몰려오는 소리는 더욱 가까워졌다. 무영종의 안색이
굳어지는 찰나, 군웅들이 사라졌던 곳으로부터 한 사람이 돌아오
는 것이 보였다. 뜻밖에도 그는 선기묘인 사도유였다.
무영종은 흠칫 놀라 전음으로 물었다.
(아니, 사도형! 왜 돌아오셨소?)
사도유는 익살스럽게 웃었다. 그도 역시 전음으로 말했다.
(후후후... 무형, 무형은 어떤 좋은 방법이 있어 홀로 남은 것이
오?)
무영종은 흠칫하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후후... 내 그럴 줄 알았소. 마침 내게 좋은 방법이 있소.)
(무슨 방법이오?)
(후후... 이른바 이독제독(以毒制毒), 이적공적(以敵攻敵)! 즉 독
(毒)으로 독을 제압하고 적(敵)으로 적을 치는 수법이오.)
(본인도 그렇게 생각하오만 다만 그 방법이.......)
무영종이 의아해 하는 가운데 사도유는 품 속에서 하나의 손가락
만한 붉은 옥병을 꺼냈다. 뚜껑을 열자 그 안에는 붉은 가루가 들
어 있었다.
무영종은 대뜸 기이한 향기를 느낄 수 있었다. 사도유는 허리에
찬 호로병을 끌러냈다. 그 속에는 술이 가득 들어 있었다. 사도유
는 가루약을 술 속에 탔다.
(이것은 대막(大漠)에서만 자라는 혈독천갈(血毒天蝎)이 서로 교
미(交尾)할 때 나온 분비물이오. 여기서 나는 향기는 천하의 독충
(毒蟲)들이 모두 좋아하는 것이오. 대막에서는 이것으로 각종 독
충을 유인해 잡는데 쓰이고 있소.)
무영종은 비로소 무엇인가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사도유는 호로병을 기울여 꿀꺽꿀꺽 술을 마셔 큰 호로병의 술은
순식간에 동이 나고 말았다.
"푸우---!"
그가 입을 내밀고 내뿜자 즉시 붉은 안개가 퍼져 나갔다. 그것은
미세한 주기(酒氣)로, 그 붉은 주기는 곧 사방으로 퍼져 강시녀들
의 몸에 붙었다.
무영종과 사도유는 호신강기를 일으켜 주기를 물리쳤으므로 그들
을 제외하고 광장은 온통 붉은 안개에 싸이게 되었다.
사도유는 낄낄거렸다.
(클클... 이제 구유강시녀가 아무리 무섭다해도 오독살충에 의해
뼈만 남게 될 걸? 컬컬컬.......)
(놀랍소. 사도형.)
(저 혈독천갈마무는 최소한 이 각 동안 퍼져 있을 것이오. 오독살
충이 저것에 걸리면 낄낄... 아마 서로 죽도록 신나게 싸우겠지.
흐흐흐.......)
우우우... 우웅.......
마침내 오독살충은 광장에 당도했다. 시커먼 구름처럼 몰려오며
내는 소음은 귀청을 찢을 것만 같았다.
사도유는 그 광경에 혀를 내둘렀다.
(정말 어마어마하군!)
무영종은 그를 재촉했다.
(사도형, 우리도 어서 물러납시다.)
사도유는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뺐다. 뒤이어 오독살충은 붉은 기
류에 휩쓸렸다.
"크아---- 악!"
강시녀들이 처절한 비명을 질렀다. 독봉, 혈승, 마문, 비음사, 귀
접 등이 새까맣게 몸에 달라붙었기 때문이었다.
실로 무시무시한 광경이었다. 두 사람이 보는 앞에서 순식간에 몇
강시녀가 해골로 화했다.
(우헤헤헤... 싸워라, 싸워! 그리고 모두 같이 죽어라!)
사도유는 발을 구르며 좋아했다.
(갑시다, 사도형!)
무영종은 그의 소매를 잡고 몸을 날렸다. 두 사람은 쾌속한 신법
으로 통로를 달렸다. 약 반 각쯤 달렸을까?
무영종은 문득 신형을 멈추었다. 그가 멈추자 사도유는 어리둥절
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사도형, 잠시만 뒤로 물러나 주시오."
무영종의 요구에 그는 더욱 의아했다.
"아니, 왜 그러시오?"
무영종은 통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가 노려보고 있는 통로의 폭
은 약 삼 장쯤 되었다.
"이 통로를 무너뜨려야겠소."
"뭣!"
사도유는 대경했다.
'이, 이 사람이 제 정신인가? 무슨 힘으로 이 통로를 무너뜨린단
말인가?'
그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것은 통로의 벽과 천정, 바
닥이 모두 암벽으로 이루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곧 무영
종의 엄숙한 말이 들렸다.
"사도형, 위험하니 물러나시오."
사도유는 아연했으나 뒤로 물러났다. 무영종은 우뚝 선 채 두 손
을 가슴 앞으로 끌어올렸다.
"천지 간에 가강 강한 것은 뇌(雷)!"
그의 입에서 단호한 음성이 터졌다. 이어 놀라운 광경이 벌어졌
다.
번--- 쩍!
찬란한 푸른 섬광이 무영종을 뒤덮었고 그가 쌍장을 뻗자 수천수
만 가닥의 푸른 번개로 화해 통로 천정을 강타했다.
꽝--- 꽈르르-- 릉!
믿을 수 없게도 암벽으로 이루어진 통로의 천정이 산산조각나며
와르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삽시간에 통로는 꽉 막히고 만 것
이었다.
"아, 아니......!"
사도유는 그만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그는 인간의 능력으로 그
같은 일을 이루리라고는 상상도 해본 적이 없었다.
"갑시다, 사도형."
무영종의 담담한 음성이 그의 정신을 일깨웠다. 사도유는 고개를
몇 번 흔들더니 곧 신형을 날렸다.
그로부터 약 반 각 후.
그들은 마침내 긴 통로를 빠져 나올 수 있었다. 환한 햇살이 비치
고 있었다. 두 사람은 곧 밖으로 빠져 나갔다.
동굴을 빠져나오자 눈 앞에 펼쳐진 것은 천마봉 정상 부분이었다.
백 오십여 명의 군웅들이 그곳에서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가 환
성을 질렀다.
"오오! 무사히 나왔구려!"
위전풍이 반색을 지었다. 무영종은 담담히 웃으며 군웅들을 둘러
본 다음 말했다.
"자, 여러분. 이제 내려갑시다."
그러나 이때 음침한 웃음이 들려왔다.
"흐흐흐흐... 가겠다고? 어디로 간단 말이냐?"
첫댓글 r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