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8장 금기의 금서 -6
아침 무렵, 광무군은 비도홍(飛刀紅) 천웅(天雄)과 함께 밀실에
있었다.
광무군은 소책자(小冊子) 두 권을 꺼내 놓았다.
"오늘부터 부지런히 이것을 터득해라!"
"예."
친위대장(親衛隊長)인 비도홍의 깡마른 얼굴 가득 미소가 번진다.
오행마경(五行魔經),
광풍자진전(狂風子眞傳).
두 개의 비급 중 하나만 익혀도 절정의 고수자라 불릴 수 있을 것
이다.
비도홍의 눈빛이 한순간 타올랐다가 이내 담담해진다.
비도홍은 무림의 일급고수였으나, 절정과는 거리가 멀다.
그는 무림사에 하나의 획을 그을 수 있는 고수자로 탈바꿈하는 순
간을 맞이하면서도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얼마 후, 너는 한 사람으로 화신(化身)하게 될 것이다!"
"……."
"바로 천문진인(天門眞人)이 되어야 한다!"
"……."
비도홍은 듣기만 했다. 오랫동안 하수 노릇을 하면서 터득한 습관
이리라.
"너는 싫어할 것이나, 당분간 부소홍(扶昭紅)과 혈천수사(血天秀
士)를 곁에 두어라."
"예?"
"그들은 정도, 마도의 정세에 능숙하다. 천문진인으로 역용한 다
음, 그들의 도움을 받아야 실수가 없을 것이다!"
"명대로 하겠습니다."
"너의 할 일은 꼭 한 가지이다. 언제고 모니망기산에서 연락이 오
거나, 살인멸구자(殺人滅口者)가 올 때… 너의 특유한 감각으로
알아내어 제압하는 것!"
"제가 부주의 신뢰를 얻고 있어 기쁠 뿐입니다. 이런 대임을 맡겨
주시어 송구스러울 뿐입니다."
"너의 누이를 찾아 주지 못해 미안할 뿐이란다."
"그 아이는 제 가슴 속에 살아 있습니다. 그러니… 심려 마십시
오!"
"너를 믿는다, 비도홍!"
광무군은 몸을 일으켰다.
비도홍의 눈길이 그를 뒤따랐다.
"언제 천문진인이 되는지요?"
"너는 나와 함께 무당산으로 가게 될 것이다. 이틀 후!"
"이틀이오? 그 사이 이것을 익힐 수 있을까요, 제가?"
"훗훗… 속성시켜 줄 사람이 올 것이다."
"예?"
"너는 행운아다. 나만 너를 잘 본 것이 아니라, 초적기인께서도
너를 잘 보셨다. 그분은 너를 기명제자(記名弟子)로 삼을 작정이
시다. 그분은 네게 공력을 전수하실 작정이니, 거절하지 말고 받
도록 해라!"
"제가 어찌 그분의 진원지기(眞元之氣)를……?"
비도홍이 자지러질 때.
"거절하면 아니 된다. 너의 그 강인하고 날카로운 점이 좋아 주는
것이니까!"
문이 열리며 초적기인이 불쑥 들어섰다.
한때 광무군을 제자로 만들려 했던 사람. 그는 상대를 비도홍으로
잡고 광무군에게 넌지시 부탁해 오늘, 이러한 자리가 마련된 것이
었다.
광무군은 비도홍이 초적기인에게 배사지례(拜師之禮)를 드리리라
믿고 밖으로 나갔다.
그는 아침의 뜨락으로 나설 수 있었다.
뜨락은 옅은 안개에 잠겨 있었다.
바람이 가볍게 일어나자, 안개의 무리가 갑작스럽게 흐트러진다.
꿈결처럼 몽롱하게 흐느적거리는 안개, 하나 그 모든 것은 타오르
는 아침 햇살과 더불어 사라지리라.
그가 뜨락을 거닐고 있을 때였다.
"맹주!"
현법선사가 뒤뚱거리며 다가서고 있었다.
밤새 잠을 자지 못하고 책을 뒤진 듯, 그의 눈은 아주 시뻘갰다.
"맹, 맹주께 보여 드릴 것이 있소이다."
현법선사는 당장 고꾸라지듯 급하게 다가섰다.
"핫핫… 밤새 책을 보셨나 보죠?"
광무군은 슬쩍 손을 흔들었다.
그의 장심(掌心)에서 한 줄기 맑은 기운이 일어났다.
그 기운은 현법선사의 가슴 속으로 파고들었다.
현법선사는 그 순간, 밤 사이의 모든 피로를 잊을 수 있었다.
하나, 그는 그렇게 된 것도 모르고 광무군 곁으로 다가섰다.
"이, 이것을 보시오!"
현법선사는 소매 속에서 고서 한 권을 꺼냈다.
겉장.
<광마기행록(狂魔奇行綠)>
그런 글씨가 적혀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요?"
"사백조(師伯祖)가 말해 창고에서 찾은 것이오!"
"사백조라니요?"
"헛헛… 광불(狂佛)을 모르시오? 그분은 노납에게 배분상 사백조
(師伯祖)가 되신답니다! 그분이 지난 밤 오시었다가… 이것을 창
고에서 꺼내게 하셨습니다!"
"광… 광불이?"
"헛헛… 저를 소림사 사람으로 만드신 분이 바로 그분이시지요.
금부대불(金斧大佛)과 그분이 소림사를 떠나지 않으셨다면… 헛
헛, 소림사는 지금보다 십 배 강한 문파가 되었을 것입니다! 반갑
게도 그분은 난이 평정되면 소림에서 참회 면벽하실 예정이라고
하십니다!"
광불은 광인도장의 최고고수였다.
사실, 광인도장이 광인령(狂人令)의 금제(禁制)에서 벗어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광불이 대오각성했기 때문이라 할 수 있었다.
그는 과거 장경각주였었다. 그가 지난 밤 장경각에 가서 자신이
잔뼈를 굵힌 곳을 둘러보다가 현법선사와 이야기하게 되었던 것
이다.
제 28장 금기의 금서 -7
- 뭘 그리 열심히 찾느냐, 현법?
- 사백조님, 저는 제마심결이나 청명무곡진결에 관한 것을 찾고
있습니다.
- 녀석, 과거와 마찬가지로 어리석구나. 어이해, 수많은 책을 하
나하나 뒤져 그것을 찾으려 하느냐?
- 그럼, 다른 길이라도?
- 노납을 파계자로 만든 고서 한 권이 있다. 그것을 봐라. 네 녀
석은 서천쌍마에게 무공을 잃었으니, 마성에 빠질 염려도 없을 테
니… 헛헛……!
광불이 웃으며 추천한 책이 바로 광마기행록이었다.
그것은 소림제일금서(少林第一禁書)였는 바, 읽는 것만으로도 계
율을 어기게 되는 금서 중의 금서였다.
책 한 장을 들추면 붉은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다.
<마성(魔性)에 빠지지 않을 자신이 없는 자는 읽어서는 아니 된
다.>
광마기행록은 칠백 년 전에 만들어졌다.
광무군은 그 책을 건네받았다.
"내용은 정말 놀라운 것이오. 이 책 안에는 거마(巨魔)였다가, 스
스로 불성(佛性)을 터득한 전대고승(前代高僧)들 칠십오 명의 심
득(心得)이 적혀 있소이다!"
"…심득?"
"극마지공(剋魔之功)에 관한 것이오. 여기 글을 남긴 일흔다섯의
선대고승들은 하나같이 강호 거마로 행세한 바 있소."
"으으… 음!"
광무군은 천천히 책장을 넘겼다.
죽기 전 참회하며 소림사 사람이 된 일흔다섯 명의 명단이 있었
다.
광혈마제(狂血魔帝).
그는 고아로 자라났다. 그는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자였다.
그는 세상에 원한을 갖고 마공만을 골라 익혔다.
그는 강호 사상 가장 악랄한 자가 되리라 결심하고 무자비한 일을
마음대로 자행했다.
그러하기를 사십 년, 그의 머리가 백두(白頭)로 화할 때 문득 그
는 모든 것이 허전하다는 것을 느끼고 소림사로 들었다.
소림사는 당시만 해도 그리 거대하지 못했다. 하나, 자비스러움은
최근보다 훨씬 더 했다.
광혈마제는 소림사에서 수계(守戒)받을 수 있었다.
망오(忘悟).
그는 그런 법명(法名)으로 불리며, 여생을 마공(魔功)과 불
문정종공(佛門正宗功)의 대비 연마에 바쳤다.
그는 광마기행록의 첫 장을 쓴 사람이었다.
광마기행록은 회고록이고, 동시에 선대고승들이 어떻게 해서 마성
에 빠졌고… 어찌해서 마성에서 벗어났는지 소상히 적고 있었다.
자연 기록되는 것이 바로 마공구결(魔功口訣)이었다.
광인도장의 광불은 구석진 창고를 청소하다가 우연히 그것을 발견
했었다.
그는 호기심에 그것을 익혔고, 그 덕에 광기를 갖게 되었다.
그는 마성에서 쭈욱 벗어나지 못하다가 광인도장 안에서 문득 광
기에서 벗어나 새 사람이 된 것이었다.
광마기행록은 뒤로 갈수록 엄청난 내용을 담고 있었다.
특히 네 사람에 대한 기록은 정말 지독했다.
파천황마제(破天荒魔帝) 단리목(段里木).
흑도대종사(黑道大宗師)였던 사람, 오십사 년 간 흑도종사(黑道宗
師)로 군림(君臨)하며 백도인들의 시체로 산을 쌓았던 사람이다.
인육을 날로 먹는 것을 주저하지 않던 그가 소림사 사람이 된 이
유는 아주 우연한 것이었다.
어느 날 그는 장진동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보물을 찾으러 그 안으로 들어갔다가 비급 세 권을 얻었다.
천옥무심비령(天玉無心秘經),
대해천심보(大海天心譜),
무위상인진전(無爲上人眞傳).
세 권의 상고기서(上古奇書)는 그의 마음을 핏빛으로 물들였던 모
든 마성을 씻어 냈다.
파천황마제는 제 손으로 흑도맹을 파괴하고 두 다리를 자른 다음,
소림사에 들어왔고 면벽굴에서 죽었다.
우주마군(宇宙魔君) 공야호(公冶昊).
그는 관외제일의 거마였다.
그는 우주마경(宇宙魔經) 상중하(上中下) 세 편을 익혀 거마가 되
었고, 한 권의 비급으로 인해 선한 사람이 되었다.
관외청명비급(關外淸溟秘급).
청명비급을 남긴 사람은 무당 출신의 도사였다.
그는 세상을 모두 다 알겠다고 떠돌아다니다가 대사막(大沙漠)에
서 독충(毒蟲)에 물려 죽었다.
그의 품안에 있었던 청명비급은 우연히 그 곳을 지나던 몽고족장
(蒙古族長)의 것이 되었다.
그것은 이십오 년 후 그의 딸을 범하러 온 우주마군의 물건이 되
었고, 먼 훗날 그것은 소림사로 들어오게 되었다.
그것은 귀원토납공(歸元土納功) 중 최상승 단계에 이른 것으로,
현문강기%(玄門강氣)%의 한 부류였다.
절세인마(絶世人魔) 능천기(陵天奇).
그는 천 년 만의 기재라 불린 사람이었다.
그는 열 살이 되기 이전에 백팔 절예를 터득했고, 신공이초를 완
벽하게 익혔었다.
어느 날, 그는 한 뿌리의 독초(毒草)를 먹고 광마로 화신했다.
그는 무자비하게 살륙했고, 결국 절세인마로 불리게 되었다.
칠 년 간 그는 거의 기억을 잃고 미친 듯 행동했었다.
그는 칠 년 후 선한 마음을 되찾았다.
그가 광기에서 벗어나게 된 이유는, 영약을 먹고 청결한 피를 지
닌 한 소녀를 겁탈했기 때문이었다.
그 소녀는 겁탈당한 후, 나무에 목을 맸다.
절세인마는 그 후에야 깨어났고, 그 순간 자신의 머리를 삭발했
다.
훗날 그는 소림사의 고승이 되어 죽었는데, 죽기 전 한 가지 심결
을 소림사에 남겼다.
무극불광결(無極佛狂訣).
그 구결은 너무도 난해해 아무도 익히지 못했다. 그래서 광마기행
록의 말미를 장식하는 한 가지 사연으로 전락해 버리고 만 것이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