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화과 향기
친구 H와 이른 저녁 술을 마시고 근처 카페에 들렀다. 평소 같았다면 맥주 한 잔을 더 마시러 갔겠지만, 직장인이 된 H와 난 맥주 대신 커피를 택했다. 카페에 도착해 음료를 고르기 전 함께 먹을 디저트를 고르기 위해 계산대 옆 쇼케이스 앞에 섰다. 쇼트 케이크, 블랙 포레스트, 자몽 생크림, 무화과 치즈 케이크… 다양한 종류의 케이크가 각자 만의 이름과 모습으로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나는 5번째 케이크를 보던 참에 아무래도 괜찮을 것 같아 H에게 선택을 미루고 계산할 채비를 했다. 주문을 마치고 구석 자리 테이블에 앉아 1차에서 맺지 못한 이야기를 이어나가던 중 사려 깊은 직원이 음료와 디저트를 가져다주었다. 검은색 테이블 위 음료 두 잔과 케이크를 보다가 이내 케이크 위 과일 조각으로 시선을 옮겼다. 하얀 크림 위 무화과 조각을 보고 내가 말했다.
— 무화과 케이크네?
— 응. 요즘 무화과가 좋더라. 너도 무화과 좋아해?
— 뭐 자주 먹진 않는데 좋아해.
나는 조각 케이크 위에 올려져 있는 무화과 조각을 포크로 들어 입속에 넣었다. 생크림과 크림치즈 향 뒤로 익숙한 풀 향과 산미 없는 단내가 입안을 채웠다. 호불호가 있을 듯한 이 풀 향과 단맛이 나는 언제부터 좋았을까. 무화과를 씹으며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다 어렴풋한 장면 몇 개가 내 마음을 무겁게 눌렀다 떨어 드리기를 반복하고 있음을 느꼈다.
나는 추억하는 게 좋다. 일상 속에서 문득 과거의 시간이 차오를 때 그 순간을 음미하는 시간이 즐거운 기억이든 그렇지 않은 기억이든 상관없이 좋다. 추억의 순간엔 설렘과 긴장, 기쁨과 슬픔 그 사이 어딘가의 모호한 애틋한 감정이 들곤 하는데 그 감정이 느껴질 때면 ‘지금의 나’를 명확하게, 풍성하게 만들어 주는 듯한 기분이 든다. 마치 흑백에서 컬러로 평면에서 입체가 되는 것 같이. ‘떠올림’의 순간은 보통 나와 강력한 과거를 공유하는 어떤 매개를 마주할 때 찾아온다. 마치 법칙이나 공식이라도 있는 것처럼. 류이치 사카모토의 <Merry Christmas Mr. Lawrence>을 들을 때면 피크닉 옥상에서 보았던 남산 타워가, 에단 호크를 볼 때면 <Born to be blue>를 보던 전 연인 J가, 오이를 볼 때면 매일 아침 얼굴에 오이를 붙이는 아빠가 생각난다. 그리고 무화과를 먹을 때면 외할아버지와의 일들이 생각난다. H와 무화과케이크를 먹었던 그날도 난 늦은 저녁 가을의 향기를, 무언가가 불타고 있는 냄새를, 주황색 가로등 불빛을, 내 옆에서 담배를 태우던 외할아버지를 그리고 무화과를 먹던 어린 내 모습을 떠올렸다.
어렸을 적 외할아버지는 늘 저녁 식사 후 담배를 태우기 위해 마당으로 나갔다. 나는 거실 창문으로 주황빛 할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다가 담배 연기가 잠잠해지면 서둘러 마당으로 향했다. 할아버지는 큰 슬리퍼를 어색하게 신고 나오는 나를 발견하면 화단 맨 첫 번째로 서 있는 나무에 잘 익은 무화과가 있는지를 확인했다. 나무에 달린 무화과 몇 개를 손으로 눌러보고 붉은빛을 띤 잘 익은 열매를 골라 옷 소매로 무심히 닦아 내게 주었다. 제일 단 것을 골라 건네면서도 “무화과는 원체 다니까 다 안 먹어도 된다.”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나는 내 작은 주먹과 비슷한 크기의 무화과를 받고 나면 “껍질째 먹어도 돼?” 물어보곤 했다. 할아버지는 어이 없는듯 “알면서 물어봐~ 무화과는 껍질째 먹는겨~”라며 웃었는데 나는 그 순간이 좋았다. 할아버지를 따라나서다 농기계에 팔을 심하게 다친 적이 있었다. 그 이후에 할아버지는 나랑 같이 무언가를 하는 것에 나를 대하는 것에 어색해했는데 ‘껍질째 먹어도 된다’는 그 말을 할 때는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어이없어하는 그 웃음을 볼 때면 괜스레 기분이 좋았다. 진한 자연의 향과 낯선 달콤함을 느끼며 무화과를 반쯤 먹고 나면 “달아서 못 먹겠다”고 할아버지에게 다시 건넸다. 그럼 할아버지는 거칠고 단단한 손으로 반쯤 남은 무화과를 한입에 해치웠다. 가을밤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는 농사짓느라 까매진 할아버지의 얼굴과 하얀 내 얼굴 모두 따뜻한 주황빛이었다.
외할아버지는 내가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할아버지가 6개월간 항암 치료를 받는 동안 나는 3번 정도 병원에 갔다. 병원이 멀어 혼자 갈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고, 무엇보다 엄마가 나와 내 동생을 자주 병원에 데려가기를 꺼렸다. 항암 치료 초기 병실에서 할아버지를 처음 만나는 날 나는 할아버지 손을 잡고 “빨리 나아서 경운기 운전해서 밤 주우러 가자”, “무화과도 먹고 싶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때 할아버지는 핼쑥한 얼굴이었지만, 거칠고 단단한 손은 그대로였다. 두 번째 병원에 간 날, 나는 할아버지의 손을 쓰다듬으며 “괜찮아, 나을 거야”, “할아버지 절대 포기하지 마 알겠지?” 연신 말했다. 진심을 담아서 밝게 얘기하려고 했는데 코가 자꾸 시큰거려서 그게 잘 안됐다. 마지막으로 병원에 간 날 나는 너무나 달라진 할아버지 모습을 보자마자 고개를 떨구고 울었다. 처음으로 할아버지를 이제 정말 못 볼지 모른다는 생각에 겁이 났다. 처음으로 할아버지가 가여워 보였다.
세번째 병문안 후 엄마가 서둘러 병원에 가는 일이 잦아졌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할머니와 외삼촌 곁에서 갑작스레 생을 마감했다. 장례 첫날밤 친척 동생들과 난 이모부 차를 타고 장례식장에서 가까운 외삼촌 집으로 갔다. 나는 차 뒷자리에서 빠르게 지나가는 주황색 가로등 불빛을 아무 말 없이 바라보았다. 가로등 불빛을 맞으며 마당에 서 있던 모습과 다감하게 소매에 닦아 무화과를 주던 모습, 능숙하게 경운기를 몰던 모습, 거칠고 단단한 손 그런 것이 생각났다. 빨간 불 신호에 맞춰 이모부가 차를 세우고 동생들에게 사탕을 나누어 주었다. 동생이 받은 사탕을 내밀며 “오빠 먹을 거야?”라고 물었지만, 목에 뭐가 걸린 듯 소리 내 답을 하기 힘들었다. 나는 고개를 가로젓다가 더는 나오지 않을 것 같았던 눈물을 다시 흘렸다.
첫댓글 "가로등 불빛을 맞으며 마당에 서 있던 모습과 다감하게 소매에 닦아 무화과를 주던 모습, 능숙하게 경운기를 몰던 모습, 거칠고 단단한 손 그런 것이 생각났다." 는 문장이 먹먹하게 다가오네요. 좋은 글 공유해주셔서 감사해요~
사려 깊은 댓글 감사합니다. 따뜻한 합평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