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근강에서 어부를 보고(35세, 1796년)
한 늙은이, 한 동자, 한 소년은
양근(楊根)강 머리에 한 낚싯배를 탔어라
세 길 뱃길이, 두 길 낚싯대에
수십 벌의 촉고와 수많은 낚시라
소년은 배꼬리에 걸앉아 노를 저으며
동자는 적은 남비에 갈대를 태운다
늙은이는 두 다리를 뱃전에 걸고
하늘을 향해 깊이 잠들었어라
강호에 날 저물고 흰 물결 일며
산뿌리 물에 잠기고 마을 연기 푸르메라
소년이 동자 불러 늙은이를 깨우며
고기 떼 오르고 해는 장차 진다고
중류에 그물 펴고 오르내리는 일엽편주
마치 베틀에 날랜 북(梭)과도 같구나
빼극빼극하는 노소리는 멀리 들리건만
뒤섞인 구름과 물빛은 분변할 줄 없어라
황혼에 그물 걷고 버들 가에 배 대여
그물 코에 벗겨 낸 고기 자못 향기롭다
관솔불에 버들 꾕기를 찬찬히 헤여내니
수면에 비치는 그림자 부질없이 현란하다
촌 사람, 저자 사람이 너도 나도 하며
댕그렁 던지는 돈 소리 요란도 하이
물에서 자고 바람에 밥 먹고도 아무런 탈 없이,
둥길 둥실 뜬 집에 한가히 노니누나
세상의 부귀란 본대 좋은 장사(商業) 아니다
그건 거짓 낙으로 참 고생을 사는고야!
아침에 금관 조복으로 성현(聖賢)을 꾸몄다가
저녁엔 칼과 도마로 오랑캐를 다루듯 한다
항상 멍에를 멘 말처럼 몸을 펴지 못하고
우리에 든 범처럼 우울에 잠겼어라
혹은 통 안의 꿩처럼 주려도 콩을 먹지 않고
혹은 홰에서 꼬구댁거리는 닭처럼 미움만 받는다
이건 저 강호의 어옹이 바람 타고 물 따라
오락가락하는 생애와 기 어떠하뇨?
그는 세상의 이해를 잊은 듯 저버리며
양반들의 패싸움도 귀먹은 듯 듣지 않네
갈대 섬, 마름 개(蘋洲)를 그의 낙원으로 삼고
노화피(蘆花被), 대 봉창(篷窓)으로 장막을 삼는다
내 또한 두 아들을 데리고 소계(苕溪)에 들어가
저 한 소년, 한 동자 같이 부려 볼가 하노라
음미하기)
<기민시>, <고시24수>를 썼던 1795년 이후 정약용은 금정찰방을 지냈다가 다시 갈리고, 1796년 규장각 교서를 맡기 직전에 썼던 듯하다. 선영이 있던 충주 하담에 갔다가 남한강으로 돌아오는 길에 썼다고 보인다. 양근강은 양평 근처(옛날 양근)의 남한강을 가리킨다.
칠언으로 40구, 모두 280자에 달한다. 내용으로 보자면 칠언율시 5수에 해당한다. 1수는 양근강에 낛시배가 떠 있는 모습, 그 속에는 노인과 동자, 소년 세 사람이 탔고, 특히 노인은 두 다리를 뱃전에 올리고 낮잠자고 있다. 2수는 날이 저물자 갑자기 배 안이 바빠진다. 소년과 동자가 노인을 깨우고 그물을 펴고는 열심히 오르내리며 고기를 잡았다. 3수는 이제 작업을 마치고 물가에 배를 대고는 모인 사람들에게 고기를 판다. 4수에서는 여기에 비해 관직에 올랐던 자신을 돌아보면서 조복을 입고 꿈에 부풀었다가 공격을 받고 귀양살이를 하는 현실을 떠올린다. 5수에서는 그래서 자신도 두 아들을 데리고 고향에 돌아가서 앞서 노인과 동자, 소년처럼 살아갈까보다고 포부를 말한다. 일종의 귀거래사라고 하겠다. 물론 그렇게 하지 않았고, 할 수 없었다. 말로서만 그렇게 했던 것이다. 그래서 선비들이 읊은 글은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첫수의 “수십벌의 촉고와 수많은 낚시라”에서 촉고는 그물을 가리키는데. 원문은 “그물은 수십이오 낚시는 3천이라”인데 3천 자체가 과장이므로 최익한은 ‘수많은’으로 번역하였다. “늙은이는 두 다리를 뱃전에 걸고/ 하늘을 향해 깊이 잠들었어라”도 재미있는 번역이다. 원문으로는 “늙은이는 취하여 일 없어 깊은 잠에 들고/ 두 다리 뱃전에 걸고 푸른 하늘 우러러보네.” 정도인데 재조합하여 문장을 만들었다.
마지막 수는 정약용의 심사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만큼 최익한의 의역도 여기에 집중된다. "이건 저 강호의 어옹이 바람 타고 물 따라/ 오락가락하는 생애와 기 어떠하뇨?"는 원문 그대로 해석하자면 "어찌하여 강위의 어옹이 있어 / 바람따라 물결따라 동서도 없다던가" 정도인데 상당히 몇 겹으로 돌린 듯하다. 게다가 '기 어떠하뇨'는 기(其)인데 옛날 시조투로 사용한 듯하다. 그 다음 “그는 세상의 이해를 잊은 듯 저버리며/ 양반들의 패싸움도 귀먹은 듯 듣지 않네” 또한 그의 장기를 담은 번역이다. 원문을 따라 해석한다면 “유주(維州)의 이해도 들리지 않고/ 동림(東林)의 승패도 귀먹은 듯 산다네” 정도이다. 여기서 유주는 장사꾼들이 많은 도시를 가리키고, 동림은 명나라 말기의 당파이다. 정약용은 중국의 사례를 인용하였는데 그 뜻은 경제적 이해관계나 정치적인 싸움에도 모른채 한다는 것이므로 최익한은 세상의 이해, 양반들의 패싸움에 비견하였다. “마지막에 갈대 섬, 마름 개(蘋洲)를 그의 낙원으로 삼고/ 노화피(蘆花被), 대 봉창(篷窓)으로 장막을 삼는다”는 마름개, 노화피, 봉창 등 어려운 용어들이 많이 노출되는데, 사실 한시를 짓는 사람들은 많이 쓰는 단어인 듯하다. 마름개는 물풀있는 섬, 노화피는 갈대이불, 봉창은 쑥대집으로 보면 좋을 듯하다.
탔어라, 낚시라, 잠들었어라, 푸르메라, 없어라, 잠겼어라, 하노라 등 이 시에서는 '라'로 운율을 잡은 듯하다.
노 젓는 소리는 보통 삐걱삐걱일텐데 빼극빼극이라는 표현도 재미있다. 돈던지는 소리는 댕그렁으로 표현하였다.
<楊江遇漁者>
一翁一童一小年 楊根江頭一釣船
船長三丈竿二丈 數罟數十鉤三千
少年搖櫓踞船尾 童子炊菰坐鐺邊
翁醉無爲睡方熟 兩脚挂舷仰靑天
日落江湖浪痕白 山根水浸村煙碧
少年呼童攪翁起 魚兒撥刺天將夕
中流布網去復還 上下刺船如梭擲
伊軋唯聞柔櫓聲 蒼茫不辨雲水色
黃昏收網泊柳浪 摘魚落地聞魚香
松鐙細數柳條貫 鐙光照數銅龍長
野夫估客爭來看 鏗鏗擲錢錢滿筐
水宿風餐了無恙 浮家汎宅聊徜徉
人間富貴非善賈 盡將僞樂沾眞苦
朝將軒冕飾聖賢 暮設刀俎待夷虜
跼蹐常如荷轅駒 鬱悒眞同落圈虎
籠雉耿介不戀豆 塒鷄啁哳生嫌怒
何如江上一漁翁 隨風逐水無西東
維州利害漠不聞 東林勝敗俱成聾
蘋洲蘆港作園圃 葦被篷屋爲帲幪
會攜二兒入苕水 令當一少與一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