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042)-강남 간 제비들아!(180713 연중14주간 금)
“어떤 고을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다른 고을로 피하여라.”(마태 10,23).[1]
비오는 날 처마 밑 빨랫줄에 올망졸망 앉은 제비네 가족이 있었지.
엄마제비, 아빠제비 양끝에 앉자 노래 불러주고 옷맵시도 일러줬지.
依_
제비들아, 차림새가 철 지난 그대로다.
복더위에 연미복이 웬 말이냐!
흰옷 입고 물차다가 흙물 틔면 어쩌려구?
이마 곤지 알겠는데 턱가슴에 찍은 연진 볼만하다.
食_
잠자리와 날며 달리다가 입에 물고 공중제비 한 바퀴....
나비한테 붙달리다 잡아 물고 공중제비 두 바퀴....
아가리 딱딱 크게 벌린 새끼한테 잠자리 한 마리....
밥 달라는 칭얼대는 무녀리한테 나비 한 마리....
住_
지붕개량 새마을표 괭이질에 철거민이 되었다네.
집집마다 놀란 제비 동네방네 “치기~”, “치기~” 울며불며 날뛰었지.
삼짇날에 강남제비 처마 없는 양옥집에 안연실색.
버드나무 잘린 땅에 아파트들 죽죽 서니 갈 곳 없이 되었구나.
강이 불어 넘질 못하느냐, 산이 솟아 넘질 못하느냐?
강남 간 제비들아,[2] 네 소식이 감감쿠나!
[1] 제비는 강남(중국 양쯔강 이남)을 떠난 서해를 건너 우리나라로 와 여름을 지내고, 우리나라를 떠나 다시 강남으로 가 겨울을 지내는 여름철새다. 박해를 피해 고향을 떠난 교우들을 제비에 빗대어 회억한다. 이 땅에서 박해를 피해 떠났던 교우들은 대부분 귀향하지 못했다. 가산을 버리고 떠났으니 집도 절도 없는 유민이 되어 사람이 살지 않는 산골짜기나 바닷가나 섬으로 가족을 끌고 다니다가 병들어 죽고, 굶어 죽고, 얼어 죽고, 산병(産病) 나 죽었다. 자식들은 가르치지 못해 그 무식이 칡넝쿨처럼 번지고, 배우지 못한데다가 가진 것 없고 되는 게 없어 화증머리가 불같았다. 박해 중이나 그 후에 무서운 것은 포도청이 아니라 목구멍이었다. 가장은 술만 먹으면 박해자 귀신이 붙었는지 고함을 치다 뜸베질(화가 난 소가 사람이고 물건이고 닥치는 대로 뿔로 쳐 받아 부수는 난동질)까지 해서 마누라고 자식이고 집 밖으로 내쫓아 숲속이나 볏논 속에서 밤을 지내게 했다. 순교자 후손이나 구교우이라 자부하는 집안사람치고 개고기와 술 못하는 사람 없었다(박해를 피해 급히 도망칠 때 주인을 따라간 가축은 개뿐이었다. 오지산간 피신지에서 명절이나 생일을 맞으면 쉽게 먹을 수 있는 고기는 개고기였다. 어린 자식들도 이때 개고기 식성을 갖게 된다). 피신자 후손들은 배우지 못해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훈련은 안 되어 있으면서도 자신의 신념은 하늘에서 온 것이고, 그래서 옳고 양심적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아 고집이 세고 성질이 난폭하고 억지를 쓰는 고약한 경우도 많았다. 일찍이 에제키엘 예언자가 이르기를 “너희는 어찌하여 이스라엘 땅에서,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는데, 자식들의 이가 시다’는 속담을 말해 대느냐?”(18,2)라며 따져 물었다. 이는 하느님께서는 연좌제를 쓰지 않으신다는 말씀이다. 하지만 가장이 박해로 죽거나 병들거나 가산을 잃으면 그 자식들은 이빨이 시린 정도가 아니라 턱이 덜거덕 대고 사지가 후들거릴 일이었다. 산간에서 겨우 겨우 살아남은 교우들 중에 배고픔을 참지 못해 충청도 내포로 입향(入鄕)해서 머슴살이를 하거나 주인 없는 갯벌에다 둑을 막아 제 논으로 삼았다. 고향을 떠날 때는 잡히면 순교자가 되겠다는 은사와 결기가 보였지만 돌아온 후손들 중에는 냉담, 술주정, 싸움, 노름, 사기, 절도, 방탕 등, 천주교 칠죄종에다 불교 십악을 겹쳐서 지내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특히 충청도 삽교천과 무한천 갯가에 살며 갯둑매기 흙일하던 사람들 중에는 술에 절어 요절단명하거나 사람 구실 못한 이가 어찌 한 둘인가? ‘박해를 피해 떠나다’는 배교도 못하겠고, 고문도 견디지 못할 것 같고, 더구나 죽는 것은 두려워서 떠나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을 버리고 고향을 떠나면 앞길은 이집트와 홍해와 사막 같았다. 전답과 가옥을 버리고 벼슬도 없이 고향을 떠나는 앞길은 불 보듯 뻔한 것이었다. 그래도 떠났던 교우들은 후대로 갈수록 살아남기 위해 부조리한 삶에 엮기면서 자기모순에 빠져 들었다. 잡힌 교우 수에 비해 배교자가 가장 많았던 정사박해(1821)의 부끄러운 발단도 바로 그것이다. 그러니 “어떤 고을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다른 고을로 피하여라.”는 말씀은 살아남으라는 말씀이라기 보다 불확실해질 미래를 하느님의 섭리에 전적으로 맡기고 하느님께 투신하라는 말씀이다. 그것은 ‘나와 후손들의 미래에 대한 조정자가 본인들이 아니라 하느님이시다’라는 것이다. 나와 후손들의 그 미래를 하느님께 대한 신뢰로 여는 것, 곧 목숨을 걸고 순교자 신앙을 실천하라는 가르침이다.
[2] 음력 삼월 삼일 삼짇날 강남에서 온 제비가 음력 구월 구일 중양절에 다시 돌아간다고 여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