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국의 사람 이름이나 땅 이름을 나타내는) 한자 바로 뒤에 붙는, [ ]안의 글자 : 한국식 한자 발음
▣ 5.16 군사정변 이후 급부상한 무궁화 예찬론
그런데 5.16 군사정변(군사반란 – 옮긴이 잉걸. 아래 ‘옮긴이’) 이후 상황이 급전(急轉. 갑자기[急] [형세가] 바뀜[轉] - 옮긴이)했다. 박정희와 유달영 팀은 ‘한반도(코리아[Corea] 반도 – 옮긴이) 전역에 그 많던 무궁화나무들이 일제의 수난으로 없어졌다.’는 허위 사실을 날조 유포했다. 그리고 일본의 무궁화 품종을 도입, 복제하고 품종 명(이름 – 옮긴이)까지 표절해 국내종으로 둔갑시켰다. 예를 들면, 일본 대표 무궁화 ‘히노마루’를 한국 대표 무궁화 ‘신태양’으로 바꾸는 식이다. 그리고 그런 무궁화 보급을 위한 관변단체를 설립, 각 학교마다 관공서 중앙과 입구에 무궁화를 이식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무궁화 부적격론에 대한 반론을 다음처럼 내놓았다.
1. 옛날에는 많았으나, 한반도(코리아[Corea]반도 – 옮긴이) 지각변동으로 희소해졌다.
2. 단군조선(흔히 ‘고조선’으로 불리는 나라 – 옮긴이)의 수도 아사달(하얼빈 또는 백두산 – 지은이의 주석)에도 피었다.
3. 오늘날 홋카이도(한자로는 ‘북해도[北海道]’. 올바른 이름은 ‘인간의 땅’이라는 뜻을 지닌 아이누 말인 ‘아이누 모시리’다 – 옮긴이)나 캐나다 밴쿠버에서도 피므로, 북한(조선 공화국. 수도는 평양 – 옮긴이)에서도 불가능하지 않다.
4. 이미 토착화된 식물로, 원산지를 따질 이유(까닭 – 옮긴이)가 없다.
5. 100일 동안 한 나무에서 수천 송이가 피고 지는 ‘생명력’이 있다.
1.과 2, 무궁화가 단군조선의 수도 아사달인 하얼빈이나 백두산 설산 빙벽에도 만발했다는 둥, 한반도 지각변동으로 없어졌다는 둥. 무궁화를 마치 (멸종한 동물로 알려진 – 옮긴이) 공룡처럼 만들어버린 황당무계한 망상과 ‘소설(여기서는, “꾸며낸 헛소리”라는 뜻으로 쓰였다 – 옮긴이)’에는 더 이상의 논평이 불필요하다.
3. 은 무궁화의 재배 가능 북방 한계선으로 단순하게 위도만 내세우고 있다. (이 반론은 – 옮긴이) 홋카이도(아이누 모시리 – 옮긴이)에는 북태평양 쿠로시오 난류가 흐르고, 캐나다 서남부 밴쿠버에는 태평양 난류가 흘러 냉대 기후여야 할 위도임에도 온대 기후가 형성된 사실을 무시하고 있다.
4. 는 역시 무궁화는 한국에 토착화된 식물이 아니라, 구한말(대한제국 말기 – 옮긴이) 이후 일본에서 이식된 것으로, 인위적인 보급운동으로 겨우 유지되는 식물이다(게다가, 대한제국은 자신을 상징하는 꽃으로 무궁화가 아니라, 오얏꽃 – 오얏나무는 ‘자도[紫桃]’가 바뀐 ‘자두’가 열리는 나무이며, 자두의 옛 말이자 순수한 배달말이 ‘오얏’이다. 그리고 오얏나무는 한자로는 ‘이[李]’인데, 이는 근세조선의 왕성[王姓]이자 대한제국의 황성[皇姓]이기도 하다 –을 골랐다. 그렇다면 그 때문에라도 무궁화를 ‘배달민족을 상징하는 꽃’으로 보는 건 사실과 다른 견해가 아닌가? 그 누구보다도 전통을 따졌던 대한제국 황실이, 무궁화를 나라꽃으로 고르지 않았으니 말이다! - 옮긴이).
더구나 (나라꽃, 그러니까 ‘국화[國花]’는 – 옮긴이) 대한민국 국가 상징을 독점으로 지배하다시피 하는 꽃인데, 원산지를 따질 이유가 없다는 논리가 말이 되는가? 대한민국에는 세계 학회가 인정하는 원산지(가 한국인 – 옮긴이) 식물이 개나리를 비롯해 69개 종이나 된다.
5.(에 대해서 말하자면, - 옮긴이) 또한 그런 생명력은 일본이나 남방(예를 들면, 대만이나 남중국이나 동남아시아나 남아시아 – 옮긴이)에서나 볼 수 있다. 이런 생명력 주장은 무궁화를 예찬한 일본 문헌을 그대로 직역해 도입한, 내선일체식의 세뇌 주입에 불과하다.
아울러 ‘한 나무에서 오랫동안 피고 지는 생명력’은 일본이 무궁화를 사무라이 지배 엘리트층의 ‘얼’로서 (벚꽃이나 국화 대신 – 옮긴이) 마음 깊이 ‘진짜 나라꽃’으로 숭상하는 이유다(쉽게 말해, 그들은 무궁화 나무인 “한 나무”를 왜국에, 그 “나무”에서 피고 지는 무궁화들을 ‘수많은 왜국 무사들’에 빗대어 생각한다는 이야기다 – 옮긴이).
바로 뒤에서 자세히 보겠지만, 일제는 자신들의 꽃, 그리고 야마구치의 꽃 무궁화를 한반도에 인위적으로 식재하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 앞에서 ‘소다 야쓰마사’가 말했듯, ‘무궁화 나무는 부상(扶桑. 원래는 “해가 뜨는 동쪽 바다 속에 있는 거룩한 나무”와 그 나무가 있는 땅을 일컫는 말이었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왜국을 일컫는 말로도 쓰이게 되었다. 이는 중기 고리[高麗]나 후기신라나 후기 고리[高麗]나 근세조선을 “동국[東國]”/“해동[海東]”/“청구[靑丘]”로도 부른 사실과 같다 – 옮긴이) 나무고, 히노마루 품종의 무궁화는 일본의 국기 히노마루의 원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그다지 신통치 않았다. 한반도에는 어울리지 않는 꽃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본을 대표하는 식물학자인 ‘마쓰바라 마쓰타(松原 益太[송원 익태])’도 『 소학교 식물 교재 연구(小學校 植物 敎材 硏究) 』 ( 서기 1935년 ‘바이후우칸[培風館[배풍관]]’에서 펴냄 – 지은이 주 )에서
‘야마구치 현에서 무궁화를 (조선에) 이식했지만, 잘 자라지 않고 시들어버렸다. 무궁화는 (기르기 – 옮긴이) 간단한 꽃이지만, (그러려면 – 옮긴이) 토양이 맞아야 한다. 무궁화는 (잘 기를 수 있는 곳이 – 옮긴이) 일본에 한한다.’
라고 쓰고 있다. 다른 곳도 아닌 야마구치, 우리에게 원수의 땅 야마구치에서 무궁화를 가져와 이식하려 했다는 것이다.
일제는 제국주의의 기틀을 잡기 위한 상징 조작을 위해 영국이나 프랑스 제국을 따라서 자국(自國. 자기 나라 – 옮긴이)의 나라꽃 무궁화를 식민지 조선에 식수하기 위해 갖은 애를 썼다. 한반도 강점 초기, 조선총독부는 헌병과 일본인(왜인[倭人] - 옮긴이) 관리를 동원해 암암리에 마을 입구마다 무궁화를 심었다.
또한 차령산맥 이남(그러니까, 경기도/강원도 이남이자, 옛 백제권인 충청도/호남 – 옮긴이)에서만 재배 가능했던 무궁화를 황해도 이남까지 생존 가능한 무궁화 북방한계선을 확장하도록 품종 개발에 나섰다(공교롭게도, 내가 열한 해 전에 접한 한 학자의 분석/학설에 따르면, “황해도”는 서기 3세기에는 백제의 땅이었다. 그리고 “차령산맥 이남”과 “황해도” 사이에 끼인 경기도는 이른바 ‘강단사학자[사실은 식민사학자]’들도 서기 1세기부터 서기 5세기 후반까지는 백제의 땅이었음을 인정하는 지역이다. 어쩌면, 근대 왜국 정부와 조선총독부는 옛 백제권이었던 땅들에 억지로 무궁화를 심어 기름으로써, 그곳들에 대한 자신들의 ‘소유권’을 더 강하게 주장하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왜국 사람들이 좋아하고, 왜국에서 자라는 꽃이 많은 곳이라면, 왜국 땅이라고 우기기는 더 쉬울 테니 말이다. - 옮긴이).
이를 위해 조선총독부 식산국을 중심으로 영림청, 권업모범장, 농업시험장(농촌 진흥청의 전신 – 지은이 주), 수원고등농림학교(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의 전신 – 지은이 주) 등 (많은 – 옮긴이) 총독부 산하 기관들이 (무궁화 품종의 – 옮긴이) 연구와 보급에 매달렸다. 서울대 교수들의 무궁화 사랑은 이때의 일본 정책이 최근까지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음을 알려준다(괜히 서울대가 ‘경성제국대학’이겠는가? 도대체 이런 대학교가 <“3.1 운동[3.1 혁명]”과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정통성을 찾는 ‘독립국가’>인 한국[!]에서 왜 ‘훌륭한 학교’로 대접받아야 하며, 왜 아직까지 한국 땅 안에 남아 있어야 하는가? - 옮긴이).
(서기 – 옮긴이) 1919년 3.1 운동(3.1 혁명 – 옮긴이) 여파로 시작된 (이른바 – 옮긴이) ‘문화통치’ 이후, 일제는 무궁화 이식 정책 역시 ‘문화적’으로 전환했다. 자신들이 직접 나서서 무궁화를 심는 대신, 한국인의 손으로 무궁화를 심게 해서 무궁화가 자신들의 꽃이라고 인식하게끔 하는 ‘차도살인(借刀殺人. ’남의 칼[刀]을 빌려서[借] 사람[人]을 죽임[殺]‘ → 음험한 수단을 씀 : 옮긴이) 책략’으로 전환한 것이다.
이 책략은 완전히 성공을 거두어 대한제국의 황실화(皇室花. 황실의 꽃 – 옮긴이) 오얏꽃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리고, 지금 우리(한국 – 옮긴이) 국민 대부분이 무궁화를 ‘우리 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왜구(倭寇)의 꽃이 (한국 – 옮긴이) 국민의 마음에 새겨졌다. 너무 참담하고 기가 막힌 일이다(무궁화가 한국 안에 뿌리내린 속사정을 알고 나니, 나 또한 조 선생처럼 “참담”함을 느끼며, ‘속았어! 이건 사기고 배달민족에 대한 모욕이야!’ 하는 생각이 들어 너무나 기분이 안 좋다. 나는 한국 안에 있는 모든 무궁화 나무를 뽑고 태워버려야 화를 풀 수 있으리라 – 옮긴이).
지금(서기 2020년 – 옮긴이)도 산림청은 우리나라 행정 수도 ‘세종’시와 함께 ‘나라꽃 무궁화 세종축제’를, 서울시와 함께 ‘우리의 꽃 무궁화 축제’를 개최한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수도 서울과 행정수도 세종시에서 모두 일본 꽃 무궁화를 기리는 축제를 여는 것이다.
(정말 기가 막힌 일이다. 게다가 이제는 ‘한국인의 몸에 왜국 우익 인사의 머리를 달아놓은 인간’이 선거를 통해 왜국 조선 총독으로 뽑혀 ‘한국 대통령’을 자처하고 다니니, 나중에는 서울특별시와 세종시에서 무궁화뿐 아니라, 벚꽃과 국화[국화는 왜국 왕실을 상징하는 꽃이다]를 추켜세우는 “축제”도 여는 날이 올 것 아닌가?
이미 ‘벚꽃 축제’는 한국 곳곳에서 ‘즐거운 행사’로 인정받은 지 오래니[솔직히 말하라면, 난 이 축제가 싫다. 한국인을 비롯한 배달민족을 진심으로 “혐오”하는 족속이 좋아하는 꽃이 벚꽃이고, 그 꽃이 피는 나무가 벚나무인데, 그런 꽃나무를 보며 즐기는 축제를 한국인이 왜 열어야 하는가?], 이제는 국화를 추켜세우고 떠받드는 행사가 열리는 일만 남은 것 같다.
그렇게 되기 전에 막아야 한다! 우리는 이 세 꽃과 ‘전쟁’을 치를 각오도 해야 한다! 친일국가의 사람들이나 왜인들이 이 세 꽃을 좋아하는 건 비난할 일이 아니라 하더라도, 한국인을 비롯해, 왜국에 짓밟히거나 공격당한 적이 있는 나라 사람들/겨레들이 이 세 꽃을 좋아하거나 즐긴다는 건 갈마[‘역사’를 일컫는, 순수한 배달말]와 선조들에 대한 모욕이니,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된다! - 옮긴이)
뿐만 아니라, 일본에서 해방된 (날인 – 옮긴이) 광복절(한국 독립기념일 – 옮긴이)에도 떡하니 무궁화가 기념 꽃으로 등장한다. 심지어 천안 독립기념관에서도, 서대문 독립공원에서도 무궁화 축제가 열린다. 일본 책략의 완벽한 승리다. 우리는 광복절에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 옮긴이) 일본을 여전히 떠받드는 꼴이다.
무궁화에는 단지 벌레 진딧물만 꼬인 것이 아니었다. 권력층의 입맛과 주문에 따라, 일본 무궁화 품종의 도입과 복제, 얼토당토않은 허위로 (무궁화가 배달민족의 꽃이라고 – 옮긴이) 날조해온 ‘인간 진딧물(어용 학자들 – 옮긴이)’도 지저분하게 꼬여서 ‘학질’과도 같은 허위의식을 퍼뜨려왔다.
그리하여 ‘함석헌(咸錫憲, 서기 1901년 ~서기 1989년. 1919년 3.1 운동에 참여한 후, 평양고등보통학교에서 퇴학당한 후, 사무원과 교사 등을 전전하다 1928년 오산학교의 교사로 들어가 10년간 교직에 있었다. 광복 이후부터 제 5 공화국 시절까지 비폭력 인권운동을 전개하면서 언론인이자 문필가로 활동했다 – 지은이 주)’ 선생은 그의 책 『 씨알의 소리 』 에서 ‘무궁화를 내세우는 것도 근래(近來. 가까운 요즈음. 그러니까 이 글에서는 서기 20세기 중반 – 옮긴이)에 된 일이요, 그나마 정치 기분으로 된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 5편으로 이어집니다)
― 단기 4356년 음력 11월 7일에, 잉걸이 올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