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국민이라면 4.19혁명을 모르진 않을꺼야
근데 나는 4.19혁명을 제대로 알진 못했거든
이승만 대통령이 초대 대통령이고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만들었다고만 생각했어
근데 그게 아니더라고 화려한휴가 때문에 5.18민주항쟁이 잘알려진것처럼 4.19혁명이
잘알려져야한다고 생각해서
내가 글을남겨봐
이제 3일뒤면 4.19혁명기념일이니까 우리모두 숙연해지는 마음을 가졌으면해
*글이 길어질수도 있는데 사진이랑 사진밑에 있는 설명들만 봐도 될꺼야 그치만
우리나라 역사를 잘알았으면해
우선 처음으로 4.19혁명의 시초라고 할수 있는게 3.15부정선거지
근데 3.15 부정선거를 하기전에 이승만 대통령이 일단 우리나라의 대통령 직위중이였던것은
알고있지? 대통령 선거에 후보가 두명이 나왔는데 이승만 대통령하고 민주당의 조병욱이였어
이승만대통령은 12년동안 대통령을 하면서 실정과 독재를 거듭하고 있었기때문에 민심은
이미 떠나버렸지 그래서 자유당쪽으로 민심이 기울여졌는데
선거를 치르기도 전에 자유당(이승만이 속한 정당)은 부정을 저지르고 있었지
그치만 선거를 치르기전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인 조병욱은 병이 악화되어 미국으로 떠나게 되지
근데 다른대통령후보가 미국에 간 사이 현직 대통령인 이승만대통령이 5월로 예정된
선거를 2개월이나 앞당기게되 미국에 있던 조병욱은 "이것은 페어 플레이 정신을
망각하고 등 뒤에서 총을 쏘는 격"이라고 비난도 했지만 선거일은 조정되지않았어.
그리고 조병욱은 갑작스럽게 선거를 남겨두고 심장마비로 죽게되.
이승만대통령이 다음 대통령이 된다는 것은 뻔한 얘기 였지. 근데 문제는 부통령 선거야.
당시 이승만과 부통령은 이기붕이란 사람이였어. 그래서 이기붕을 부통령으로 만드려고
온 힘을 다했던거지 여기서 부정선거가 나온거야
부정선거가일어나기전
대구에서 민주당(이승만말고 다른 대통령후보 조병욱이 속한당)이 부통령 연설을 하려했는데
일요일임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을 학교로 나오라고해.
이이유는 학생들이 연설식에 참석할까봐 상부에서 학교를 강제등교하라는 지시였지
그때부터 데모가 시작되는거야
이게 그 대구 경북고등학교 학생들이 시위를 하는거야 최초의 자유적 시위였지
이건 당시 시위하던 학생을 잡아가는 경찰을 찍은거야
민중을 지켜야할 경찰이 학생들을 연행해간다는건 크나큰 충격이지. 그리고
경찰한테 연행되가면 정말 갖은 고문을 당했다고해
명심할것은 이 시위가 대학생들.성인들이 아닌 모두 중고등학생들이 일궈낸 시위였던점이지.
이 시위에 경북고.대구고.대구사대부고.경북여고등이 참여했다고해
드디어 3월 15일 대통령 선거는 실시되지
하지만 선거결과는 예상대로 뻔할뻔자였어 이승만과 이기붕이 대통령과 부통령이된거지
어떤식으로 부정선거를 했냐면
↑저기 돈보여?돈가지고 사람들에게 뽑으라한거야
↑이건 5인 1조가 되가지고 이승만대통령을뽑게 한사람이 감시하도록 한거야
이런식으로 부정선거를 했으니 당연히 당선이 될 수밖에없지
심지어는 만약 유권자 수가 천명이라하면 이승만 대통령을뽑은사람은 2천명이나 나왓따는거지
선거에 참여한사람은 천명밖에없는데 표는 이천표가 나왔으니 말이 되는소리겠니?
3.15부정선거가 비리와 폭력부정으로 진행되는걸 보고 사람들은 치를 떨었어
그중 마산 중고등학생들 그리고 사람들이 많은 분노에 떨었지.
학생들은 3월 15일 평화적으로 부정선거를 규탄 하는 시위를 벌였어.
근데 이를 강제해산기키려는 경찰과 싸움을 벌인 끝에 경찰의 무차별적인 발포와
체포 고문 구금 등으로 7명의 사람들이 사망하고 80여명이 부상을 입게되지
심지어 경찰은 최류탄을 쏘고 총도 난사했다고해
데모하는 중고등학생들이야
이사진보면 경찰들이 총을들고 있지? 원래 경찰들은 총을 함부로 쏘면안돼.
하지만 이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총을 쐇다는것은 위 정부에서 총을쏴도 된다고
명령이 떨어져기에 총을난사했을껏이야.
여고 학생들도 데모에 참여했어
마산 시위에 참여한 학생중 중학교 1학년 밖에안된 김주열 학생이 실종됫엇어.
28일동안 행방을 찾을수가 없었지
근데 4월 11일 마산 중앙부투 신포동 앞바다에서 김주열학생의 시신이 떠올랏어
근데 그모습은 정말 끔찍했어 왼쪽눈에 최류탄이 박힌채로 마산 앞바다에 떠올랐지
눈에 최류탄이 박혀있는거 보여? 원래 최류탄은 연기때문에 데모를 못하게 사람을
겨냥해서 쏘는게 아닌데 눈에 박혔다고 생각해봐. 얼마나 끔찍하게 진압을한거겟어
이것도 김주열학생의 시신을 건져냈을때 찍은 사진이야. 얼마나 처참하게
죽어갓는지 보여주지. 이사진을보고 난 정말 짠했던것같애
눈에 박힌 최류탄이 보여?...이렇게 김주열학생은 민주주의를
염원하다 저세상으로 갔어
김주열학생의 무덤앞에 김주열학생의 어머니가 울면서 계신거야
한가지 일화로 김주열 학생의 시신이 발견되기전에 어머니의 꿈에 김주열학생이 나타나
"어머니 숨을쉴수가 없어요...어머니 이곳은 너무 깜깜해요" 라고 말했다고해
4월11일 김주열 학생의 시체 발견이후 사람들의 데모는 걷잡을 수없이 커져만가.
전국적으로 시위가 번져나갔지
뒤늦게 대학생들도 시위에 참여하게 되지.
고대생들이 제일 처음 시위에 참여하고 그뒤로 연세대 동국대 할것없이 모두 시위에 참여하게되
4월 18일 고려대생들이 국회의사당앞에서 연좌데모를 해
그뒤 고려대생이 귀가하는길에 당시 정부에서 고려대생을 진압하고 싶었는데 자신들이
직접하면 말이 많아지니까 정부와 손을 잡은 깡패들을 시켜서 고려대생을 정말 죽지않을
정도로만 무차별적으로 때려
연행되는 학생들이야. 저렇게 서로의 머리를 고리삼아 경찰에게
연행되지않으려고 했데. 당시에 경찰에게 연행되면 십중팔구
고문을 당해야했거든
데모하는 고려대생들이야
위아래사진모두 깡패들에게 구타당한 학생들이야 바닥에
널부러져있는 사람들이 학생들이지모두
고대사건후 사람들은 일반인부터 어머님들 학생들 할것없이 모두 데모에 참여했어
4월 19일 혁명이 시작된거지
국회의사당앞에 사람들은 경찰이 있는곳으로 돌진하게 시작했어
그러자 경찰들은 학생들에게 총을 난사했지. 화려한휴가를 본사람들은 알꺼야
분노한 학생들은 서울 시내 곳곳에서 총을 쏘는 경찰들에게 맞서 싸웟어
전국적으로 186명이사망하고 6026 명이 부상을 당했어
정말로 많은 분들이 희생당하신거야.
하지만 저 통계보다 더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다고해
탱크까지동원됬었던 진압이야 이곳은 부산이래
경찰에 강재연행되는 학생들이야
그런데도 이승만 대통령과 이기붕 부통령은 내각 교체 자유당 총재직
사퇴등 물러날려했지만 그럼에도 이승만과 자유당은 학생들의 시위를
공산당의 사주를 받았다고 빨갱이라면서 시위를 막으려 했어
4월 25일
전국에 있는 대학교수들이 "쓰러진 학생들의 피에 보답하라"는 문구를 걸고 행진을하셨어
교수들까지 데모에 참여했다는것은 정말 나라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는 소리야
각분야에서 최고라고 할수 있는 지식인들조차 나라에 대항하고 있으니까말이지
4월26일 데모는 다시 대대적으로 커져갔고
삼만여명의 시위대가 이승만 하야를 외치면서 다녔어
어린아이들보여? 수송국민학교 아이들이야 이런 초등학생들도
데모했다고해. "형님들을 따르자"라는 문구를썻다고해
저위에 플랜카드에 "부모형제에게 총구녕을 겨누지 말라!" 라고 써있어
이아이들모두 우리보다 어린 초등학생들이야
결국 4월 26일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를 성명하고
국민들의 승리로 돌아가
방송을들은 국민들은 서로 감싸안고 기뻐했지
*뒷이야기 이건 봐도 되고 안봐도 되는거야
이승만 대통령은 하야한다음에 하와이로 망명했어 부인이 미국사람이였거든
그래서 하와이에서 남은 여생을 편안하게 보내셨다고 해. 하지만 부통령이엿던
이기붕은 한국에 남아서 이승만 대통령이 받아야할 짐?죄?같은것을 다떠받았지
결국에는 이기붕가족 4명은 모두 권총으로 자살했다고해
그러고도 이승만대통령은 무슨 낯짝인지는 모르겟지만 이기붕부통령의
장례식장에와서 추모를했다고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