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시집 『고성 가도』3) 후기서 필자는 고성 가도를 중심으로 디카시를 창작했음을 밝혀 놓았다.
지난 4월 초순부터 6월 중순 무렵까지 ‘언어 너머 시’의 노다지를 경험할 수 있었다. 고성 가도를 중심으로 한 출근길이나 퇴근길, 산책길, 혹은 연구실 어디서든지 ‘언어 너머 시’가 노다지처럼 보인 것이다. 그때마다 순간순간 디카로 찍었다.
그렇다. 디카시는 주로 ‘고성 가도’를 오가며 씌어졌던 거다. 2004년 당시 마산 창신대학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하며, 고성에서 출퇴근했다. 그 당시 개인사정으로 창원집을 떠나 고향집에서 어머니와 함께 지냈다.
- 디카시집 『고성 가도』의 표제시 「고성 가도(固城 街道)」
고향 고성 시골집에서 마산으로 출퇴근하던 그 길이 바로 고성가도이다. 이 길을 오가며 디카시를 창작하고 실험적인 디카시론도 구상했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비 오는 2004년 어느 봄날, 구형 프린스를 타고 통영캠퍼스 야간 수업을 위해 가던 중 신호등이 있는 고성 가도가 지금도 눈에 선하다. 당시 타고 다닌 차가 구형 프린스이다. 구형 프린스는 1994년 7월 교사 사직을 하고 94년 가을학기부터 전업 시간강사를 했는데, 95년도에 퇴직금으로 새 차를 산 것이 바로 프린스다. 프린스로 길 위의 삶이 시작됐다. 이 대학에서 저 대학으로 끊임없이 이동하며 전업 시간강사노릇을 했다. 새 차인 프린스는 곧바로 신형 모델이 나오는 바람에 구형 프린스가 돼 버렸다. 구형 프린스를 10년 이상 탔는데, 그 차는 단순한 차가 아니라 몸의 상징이 됐다.
까만 것이 중후해 보이지만 숨결이
고르지 않다
영업용도 아닌 것이 사 년 남짓 십팔만 킬로나 달린 분주한
중년의
자동차
가끔, 도로에서 의식이 마비되었다는 흉흉한 풍문을 뒤로하고
진주로 창원으로 태백까지 달렸었다
도처에 정비공장이 있지만 폐차장도 없지 않은데
돌연 돌연, 수습당할지도 모르는
불안한
자동차
-「구형 프린스」 전문
'구형 프린스'는 당시의 내 시의 주요 모티브였다. 중년기를 보내고 있던 내 존재의 표상이며, 나아가 불온한 시대를 사는 중년의 집단 무의식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당시 고성터널을 막 지나려고 하니 도로에 벚꽃이 만발해 있었다. 만개한 벚꽃을 뒤로 하고 터널을 지나가는데, 신호등을 만났고, 그 신호등이 있는 고성 가도는 시적 형상 그 자체였다. 시는 쓰는 것만이 아니고, 쓴 것보다 더 생생한 날시가 존재한다는 것을 익히 생각하고 있던 터였다. 고성 가도에서 포착한 시적 형상, 시적 감흥 그 자체가 생생한 날시였다.
고성 가도의 신호등을 왜 가등이라고 했을까. 가등은 신호등과는 엄밀히 다른 것이다. 고성 가도의 신호등은 아직 파란 눈을 뜨고 있다고 해야 과학적 진술로 맞지만 신호등이라는 말대신 가등이라고 쓴 것은 결과적으로 과학적 진술을 흩뜨려버린 결과를 유발한다. 여기서 무의식적으로 신호등을 거리의 등불이라는 뜻인 가등으로 읽으며, 단순한 신호등이 아니라 진리의 등불로 인식한 터였을까.
가등이 아직 파란 불을 켜고 있다는 것은 멈추지도, 뒤돌아보지도말고 계속 달려가라는 신호이다. 터널 저편의 애잔한 아름다운 벚꽃을 두고 계속 달려라는 것이다. 머뭇거리다 뒤돌아 보면 롯의 아내처럼 소금기둥이 된다는 무의식적 압박이었다. 롯의 아내는 당시 극도로 타락한 소돔 사람들을 그리워해서 그랬는지 모른다. 롯의 아내는 멸망 받을 성에서 속히 떠나 뒤를 돌아다보지 말라는 천사의 경고에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소돔성에서 나오기는 나왔지마는, 욕망의 성, 그 안에 두고 나온 자기의 소유를 포기하는 일이 그녀에게는 감당이 안 됐던 것일 테다. 뒤를 돌아다보다가 저주를 받아 소금기둥이 됐다는 것은 하나의 원형상징이다.
항상 두 세계 사이에서 갈등하는 존재로서 천사의 경고처럼 흔들리거나 치우치지 말고 가등이 가르키는 길로 가라, 우회하거나 되돌아가지 말라는 신호 앞에서 직면하는 중년의 실존적 무게를 드러낸다.
이 디카시는 디카시집 『고성 가도』의 표제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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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고성 가도(固城 街道)』(문학의 전당, 2004)
첫댓글 고성 가도는 고귀한 길이군요
천사의 경고처럼 흔들리거나 치우치지 말고 가등이 가르키는 길로 가라, 우회하거나 되돌아가지 말라는 신호 앞에서 직면하는 중년의 실존적 무게를 드러낸다.---가슴으로 다가옵니다
항상 두 세계 사이에서 갈등하는 존재로서 천사의 경고처럼 흔들리거나 치우치지 말고 가등이 가르키는 길로 가라, 우회하거나 되돌아가지 말라는 신호 앞에서 직면하는 중년의 실존적 무게를 드러낸다.
중년의 자동차
여전히 잘 구르고 계십니다.
연재로 돌아오셔서 너무나 고맙습니다.
잘 읽고 정확히 공부하여
자리 잡아 가 보겠습니다
어느 문학지인지 기억은 안 나지만 초창기 교수님이 오래된 자동차를 타고 디카시 홍보를 위해 동분서주하시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