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불이 났다. 민심의 가슴엔 천불이 난다.
작성: '한국 네티즌본부'
[굿모닝충청 서라백 기자]
밤사이 충남 서천 특화시장에 대형 화재가 발생했다.
인명피해가 안 난 것은 천만다행이다.
자칫 참사로로까지 이어졌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당국의 대처는 재빨랐다.
대통령과 여당 대표도 쏜살같이 현장을 찾았다.
윤 대통령은 "수색 구조에 만전을 기하고 소방대원 안전에도 철저리 하라"고 당부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실의에 빠진 상인들에게 당 차원에서 도울 일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돕겠다"고 약속했다.
등장 처럼 퇴장도 빨랐다.
20여분만에 현장을 떠난 대통령. 사진은 찍을 만큼 찍었다.
어쨌거나 비상지원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으니 그 정성에 성은이 망극할 따름이다.
한파에 폭설까지 겹쳤다.
이 엄동설한에 거리에서 '이태원참사 특별법' 수용을 외치는 유가족들의 모습을 보라.
경우는 다르지만 재앙에 대처하는 저들의 모습은 너무나 다르다.
저 뻔한 수사와 미사여구 속 진정성은 과연 얼마나 될까.
총선은 다가오고 민심은 달래야 하고. 누군가에게는 사람 목숨보다 표가 더 귀하다.
유가족의 가슴에는 천불이 난다.
명품백 받아 먹었다 들통난 '마리 앙투아네트'는 서늘한 찬바람을 일으키고,
그 꼴을 보는 민심은 오늘도 활활 타오른다.
출처 : 굿모닝충청(http://www.goodmorningcc.com)
본 만평은 한국 네티즌본부에
◆【한국일보】배계규 기자
작성: '한국 네티즌본부'
본 만평은 한국 네티즌본부에서 작성합니다. '경고: 변조 절대 금지
◆【조선일보】만물상
[만물상]노점으로 번 51억 기부... ‘충북대 어머니’ 교내에 잠들다
작성: '한국 네티즌본부'
故신언임 여사 영결식
노점상을 해서 번 전 재산 51억원을 충북대에 기부하고 영면한 고(故) 신언임 여사가 2011년 충북대 학생들과 교정에 앉아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 /충북대
“저에게는 사랑하는 또 한 분의 어머니가 계십니다.”
22일 오전 10시쯤 충북대학교 대학본부 대강의실에서 흰머리 희끗한 중년 남성이 눈물을 머금으며 편지를 읽어 내려갔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절절했다. 곳곳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편지 속 어머니는 노점상을 해서 평생 모은 전 재산을 충북대에 장학금으로 기부하고 지난 19일 영면한 고(故) 신언임(91) 여사. 그의 장학금으로 대학을 졸업한 행정학과 90학번 함영규(53·검찰 사무관)씨가 추도사를 낭독했다.
‘충북대의 어머니’로 불린 교육 독지가로 생을 마감한 신 여사의 영결식이 이날 충북대에서 충북대학교장(葬)으로 엄수됐다. 영결식에는 고창섭 총장을 비롯해 유족과 교직원, 졸업생, 재학생 등 100여 명이 모여 신 여사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함 사무관은 “어머니는 안 드시고, 안 쓰시면서 억척같이 모은 돈을 자식같이 여긴 학생들에게 모두 베풀고 떠나셨다”면서 “명절과 생신 같은 기념일마다 인사드리고 때때로 여행도 같이 가며 어머니로 모셨는데 너무 많이 생각이 난다”며 흐느꼈다.
자식도 없이 평생을 홀로 살아온 신 여사가 기부를 통해 충북대와 연을 맺은 건 1993년이다. 당시 신 여사는 청주시 남문로에 있는 30억원 상당의 한 건물을 기탁했다. 충북대는 이 건물을 2008년 33억원에 팔아 어려운 학생을 위한 장학금 등으로 쓰고 있다.
신 여사가 충북대와 별다른 사연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배우지 못하고 고달팠던 삶과 자식 없는 설움 때문에 기부를 시작했다고만 알려져 있다.
충북대 관계자는 “고향을 대표하는 대학이어서 우리 대학을 찾으신 것 같다.
우리 대학 학생들을 늘 자식처럼 생각하셨다”고 했다.
신 여사는 일제강점기인 1932년 충북 청주시 오창에서
빈농의 1남 8녀 중 다섯째 딸로 태어났다.
힘겨운 유년 시절을 보냈다. 부친을 졸라 뒤늦게 입학한 주성초등학교를
열여덟 나이에 졸업했다.
첫 직장 생활은 전매청에서 시작했고, 스물두 살에 결혼했다.
그러나 아이를 갖지 못해 온갖 설움을 받다가 젊은 나이에 혼자가 됐다.
한때 죽으려고까지 했지만, 부모님이 낳아주신 몸값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고 한다.
청주의 한 재래시장 어귀에서 가치담배(낱개 담배) 장사부터 시작했다.
이후 만물상회를 운영하며 억척같이 돈을 모았다.
그러면서도 자신을 위해선 한 푼도 쓰지 않는 ‘구두쇠 할머니’로 불렸다.
신 여사는 충북대에 건물을 기부한 것에 이어 개교 60주년이던
2011년 10억3000만원을, 2018년에는 8억원을 기탁했다.
돈이 모일 때마다 내놓은 것이다.
그가 충북대에 전달한 돈만 모두 51억3000만원에 달한다.
충북대는 고인의 이름을 딴 ‘신언임 장학금’ ‘신언임 충효 장학금’
‘신언임 로스쿨 장학금’을 설립해 연간 10명에게 5000여 만원의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
지금까지 장학금을 받은 학생은 총 103명이다.
신 여사는 충북대에서 행정대학원 여성 지도자 과정을 수료했고,
명예 행정학 박사 학위도 받았다.
충북대는 2015년 새로 지은 평생교육원 강당에 ‘신언임홀’이란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이곳에서 88세 때 미수연(米壽宴), 90세 때 구순(九旬) 잔치를 열었다.
신 여사는 2012년 33회 ‘김만덕상’도 받았다.
제주의 여성 거상(巨商)인 김만덕(1739~1812) 선생은 1794년 제주에
흉년이 들자 재산을 털어 사들인 곡식을 백성에게 풀었고,
이런 선생을 기려 제정한 상이 ‘김만덕상’이다.
신 여사의 1기 장학생인 장병준(54)·이정옥(53)씨 부부는
“어머니와 만남을 이어가다 부부의 연을 맺게 됐다”며
“어머니는 우리를 자식처럼 여기셨고, 이제 세상을 떠나셨지만
고귀한 삶을 희생하며 100명이 넘는 자식들에게 사랑을 전해준
어머니를 평생 기릴 것”이라고 말했다.
신 여사의 장례는 그와 부모 자식의 연을 맺어온 장학생들이
사흘간 머물며 상주 역할을 했다.
그는 이날 캠퍼스 내 교육 독지가 선영에 안장됐고,
평소의 바람처럼 영원히 충북대와 함께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