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키호테를 만나다>
<靑木>
지난 8월 말, 7박 8일 일정으로 스페인에 다녀왔다.
스페인의 여름 하늘은 구름 한 점 찾아볼 수 없는 파란 하늘이었다. 강수량이 적은 탓에 비교적 주위의 자연 경관이
좀 척박해 보였다. 그래도 차창 밖에는 추수를 마친 넓은 밀밭과 차츰 경작지가 넓어지고 있다는 올리브 농장,
간간이 포도밭과 옥수수 밭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거의 사방이 지평선으로 끝없이 펼쳐진 구릉지와 산야로 그야말로 넓은 땅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첫날 찾아 간곳은 세고비아 마을로 로마 시대에 독특한 건축 양식으로 세워진 ‘수로교水路橋’를 보게 되었는데,
그 놀라운 규모와 과학적인 설계, 2000년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끄떡없이 버티고 서 있는 그 견고함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톨레도에서 본 언덕 위 성곽 마을, 코르도바 메스키토 이슬람 사원은 학창 시절 세계사 교과서에서 사진으로 본
곳이기도 했다. 그때 사진으로 본 이슬람 문화의 사원을 실제로 찾아가 직접 눈으로 보며, 아치 모양으로 받치고
있는 기둥들을 손으로 만져 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반갑고 감회가 새로웠다.
스페인에서 옛 전성시대 지어진 각종 건축물들!
대표적으로 가톨릭 성당들과 내부 모습을 가는 곳마다 수도 없이 올려다보았다. 그 당시 아무리 건축 기술이
발달했다 해도, 요즘 같은 건설장비 없이 어떻게 그처럼 높이, 그처럼 웅장하고 화려하게 지을 수 있었을까?
마찬가지로 유럽 다른 여러 나라의 가톨릭 성당들을 접할 때마다 성당들의 모습과 천장에 그려 놓은 작품의
작가가 다르다는 것 말고, 거의 같은 느낌으로 그 차이를 구별하기가 쉽지 않았다.
바르셀로나에 갔을 때, 특히 가우디가 디자인하고 설계해서 지금도 짓고 있다는 가톨릭 성당의 그 규모와 독특함이
놀랍기만 하다. 과연 한 사람의 머리에서 그와 같이 설계되고 지어질 수 있다는 것에 그저 입이 벌어질 뿐이다.
바르셀로나는 가우디의 건축물로도 유명하지만 그곳은 현대식 건물들이 관광 도시답게 즐비했고, 해변에서
일광욕을 즐기는 관광객들의 자유분방한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또한 스페인 소도시들의 모습에서 참 인상적이었던 것은 변화 없이 근세의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느 소도시를 방문했을 때였다. 한낮 정오쯤 되었을까 일정한 시간에 맞추어진 듯 성당의 종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왔다. 그 종소리가 너무 평화롭게 들려와 마치 내가 옛 어느 한 시대에 그대로 멈춰 서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해질녘 하루 일정을 마치고 저녁 산책을 나갔을 때였다. 멀리 어디쯤에서 비가 내렸는지 이곳에 와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비구름을 볼 수 있었고 거기다 오색 무지개가 하늘 위로 선명하게 솟아올라 있었다. 그것도 먼 이국땅
에서 오랜만에 만난 무지개가 반갑기도 하고 무슨 행운을 약속해 주는 듯 여행객의 마음을 공연히 설레게 했다.
스페인 하면 맨 먼저 ‘투우’를 떠올리기도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실제 투우 장면은 보지 못했다. 대신 7유로를
내고 둥그런 투우장에 안에 들어가 나 혼자 관람석에 앉아 보았다. 나는 멋대로 상상하기를 ‘이제 곧 시작 나팔이
울리고 붉은색 물레타를 흔들며 검은 황소를 유혹하는 투우사의 절묘한 동작이 시작될 것이다. 그리고 그럴 때
마다 관중들의 환호와 안타까운 탄성이 내 귀에 들려올 것이다.’
실제로 투우하는 모습은 보지 못했지만 대신 정열적인 춤, 플라멩코는 볼 수 있었다. 흔히 스페인을 ‘태양의 나라,
정열의 나라’라고 말하듯 특히 거기 출연했던 남자 무용수들이 이마에 구슬땀이 맺히도록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모습을 관객에게 보여 준다는 생각을 했다. 한편 그들이 다만 보여주기 위함만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
플라멩코를 즐기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체로 외국 여행을 갈 때마다 흔히 느끼는 바이지만, 우선 짧은 기간이기도 하여 정작 그들의 삶의 내면을
들여다보지 못하고, 그저 수박 겉핥기로 지정된 코스를 따라 눈요기만 하고 온다는 반성이 있다. 여기서도
스페인 사람들을 가까이서 그들이 어떻게 생활하는지 그들이 무엇을 먹고, 무엇을 즐겨 하는지 알아볼 수는
없었다. 그들의 선조들이 지어 놓은 옛 건축물들과 거리의 카페에서 술 마시는 그런 겉모습만 보았을 뿐
실제 사람 사는 모습을 들여다 볼 수는 없었다.
오히려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밤늦게 본 어느 TV 방송 다큐 프로를 통해서 그들 삶의 한 단면을
보여주었다. 거기서 스페인 남자와 한국인 여자가 스페인 농촌 마을에서 세 딸을 키우며 살고 있었다.
남자는 자전거 세계 일주를 하던 여행자였고 역시 세계 여행을 즐기던 자유스러운 영혼의 소유자였던 한국
여자가 만나 결혼한 부부였다. 그 남편이 말한다. 스페인에서 태어나면 세 가지 할 일이 있는데
‘아이를 낳아 키우는 일, 책을 한 권 쓰는 일, 그리고 세 그루의 나무를 심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 말과 관련지어 『돈키호테』의 작가 ‘세르반테스’야말로 한 권의 책을 제대로 쓴 스페인 작가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돈키호테』의 배경이 되었던 마드리드 근교의 마을을 방문하게 되었다. 돈키호테가 거인으로 착각하고
돌진했다는 하얀 풍차들이 언덕 위에 줄지어 서 있었다. 마을로 내려왔을 때 관광객을 위해 마련된 듯 하얀
벽으로 된 건물이 있었다. 그리고 2층에는 마치 세르반테스가 『돈키호테』를 집필했던 곳을 재현해 놓은 듯
책상과 집기, 초판본 등이 따로 전시되어 있어 마치 이곳이 세르반테스의 유물 전시관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건물 1층에는 작품 속에 나오는 여주인공 ‘돌씨네아’ 공주의 모습이 저와 같지 않았을까 하는 몸집 좋은 스페인
마담이 카운터를 보는 카페가 있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마치 『돈키호테』에 나오는 인물들처럼 맥주를 주문했다.
올리브 조림의 안주가 곁들여 나왔다. 약간 짭짤하면서 씹을수록 고소한 올리브 안주와 함께 스페인 특유의 맛과
색깔이 진한 맥주로 나그네의 타는 목을 시원하게 적셨다.
『돈키호테』를 처음 만난 것은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아마 ‘학원사’에서 발행한 단행본으로 기억한다.
나로서는 그 책을 끝까지 읽어 내는데 많은 인내심이 필요했다. 그 후, 어느 정도 독서력이 길러졌다고 할까,
대학에 들어가고 휴가철에 우연히 서울 국립도서관을 찾게 되었고, 거기서 『돈키호테』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때 만난 『돈키호테』 책은 상, 하권으로 되어 있었고 실제로 성경책보다도 더 두꺼웠고 내용은 깨알 같은
글씨로 가득 차 있었다. 그 방대함과 서사의 놀라움은 충격 자체였다.
그 가운데 ‘보석과 여자는 소중히 다뤄야 한다.’는 말이 지금도 잊히지 않고 생각난다.
그리고 늘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경구,
이룩할 수 없는 꿈을 꾸고
이룰 수 없는 사랑을 하고
싸워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움을 하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
잡을 수 없는 저 하늘의 별을 잡자!
아마 이 경구는 ‘연극무대’나 ‘오페라’에서 주인공 돈키호테가 모든 준비를 마치고 처음 출정식에서의 다짐이거나,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과연 지금껏 무엇을 추구했는가에 대한 답변이지 않았을까.
또, 아니면 바로 작가 ‘세르반테스’ 본인이 꿈꾸던 꿈은 아니었을까. 어쩌면 인간이 끊임없이 추구해야 할 영원한 꿈,
그 꿈을 이룰 수 있도록 하는 용기와 희망을 불러일으켜 주었던 돈키호테!
지난 2002년 노벨연구위원회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문학 작품으로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꼽았다고
한다. 이번 여행에서 만난 본 로마의 건축 양식도, 화려한 이슬람 사원도, 수백 년 동안 짓고 있다는 가우디의
건축물도 모두 훌륭하지만,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야말로 스페인이 가장 자랑스럽게 여겨야 할 세계적인
문화유산이 아닐까?* (2016. 8.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