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이젠 아주 자연스럽게 자세가 나와요, 자세가!”
‘구로댁’ 최명길(42)은 몇 달 만에 만난 기자를 보자 반색하며 자연스럽게 포옹했다. 그것도 모자라 두 손을 마주잡았다. “아직도 선거운동 중이냐?”는 농담섞인 질문에 최명길은 “글쎄요. 언제 어디서 누굴 만나든 포옹 내지는 악수 자세가 저절로 나오네요. 아예 몸에 붙었나봐요”라며 봄날처럼 따사롭고 화사한 미소를 지었다.
이처럼 적극적인 자기 표현은 십수년 전부터 알고 지냈던 그에게 최근 들어 새롭게 생긴 가장 큰 변화다. 최명길은 지난 4월 15일 벌어진 제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구로을 지역에 출마한 남편 김한길씨(52)가 국회의원에 당선되는 데 크게 한몫했다. 포옹, 악수, 격의없이 다정한 모습, 겸손한 자세…. 이는 선거운동을 하면서 그에게 필연적으로 몸에 밴 ‘습관’이다. 영화배우, 탤런트, DJ로 명성을 날리던 그의 이름 석 자 앞에 어느 시점에서부터인가 ‘김한길의 아내’라는 타이틀이 자연스럽게 붙게 됐다.
그는 이 호칭을 아주 기쁜 마음으로 반긴다. 한 남자의 아내, 두 아들의 엄마, DJ로서 1인3역을 소화하며 사는 요즘이 무척 행복하다는 최명길이다. 남편에게는 근사하고 멋진 아내로, 아이들에게는 가장 다정다감하고 따뜻한 엄마로, 세상 사람들에게는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는 사람이면 좋겠다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며 산단다. 전쟁과도 같았던 치열한 선거전을 마치고, 이제야 겨우 한숨 돌린 그를 서울 구로구 신도림동 자택에서 만났다.
◇ 정치인의 현명한 아내
“우리 멍길이(아내 최명길에 대한 김 의원의 평소 애칭), 장하다! 그리고 고맙다.” 지난달 15일 밤 당선이 확정되자 김 의원이 자신보다 더 열심히 선거운동에 나서 ‘빛나는 조연’의 임무를 묵묵히 수행해온 아내 최명길에게 감동을 담아서 건넨 첫 마디였다. 김 의원은 열린우리당 총선기획단장 등 5개의 직함을 갖고 당의 선거기획과 공천작업을 도맡아 중앙당에 묶여 있느라 정작 자신의 지역구를 챙기지 못했다.
한 달 전인 3월 중순에야 총선기획본부장(비상임) 명함만 남겨둔 채 모든 상근직을 내놓고 지역구인 구로을로 돌아왔다. 그동안 최명길은 바쁜 남편을 대신해 혼자서 지역구를 누비며 지역주민들을 만나는 등 누구보다 열심히 선거운동을 했다. MBC FM ‘최명길의 가요응접실’ DJ 외에는 모든 활동을 자제하며 지역구 재래시장, 공원, 놀이터 등지를 돌면서 유권자의 지지를 호소하는 등 ‘유세 내조’에 전력을 쏟았다.
선거 당시 ‘당선되면 최명길 덕분’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돌았는데, 남편 못지않은 ‘유명인 아내’ 최명길의 활동이 두드러졌다. 후보 못지않은 인지도로 남편의 당선에 필요한 표를 긁어모았다. 매일 오전 5시, 새벽 운동하는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해 밤 11시까지 남편과 함께 지역구를 누볐다.
지하철역에서 부부가 같이 인사를 하면 유권자들이 당시 김 후보보다 최명길을 반기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하루 3~4시간만 잠을 자며 새벽부터 밤중까지 발로 뛰면서 지역 주민들을 일일이 만나는 등 누구보다 선거운동에 앞장서며 단순한 배우자 이상의 최측근 참모 구실을 했다. 주말이면 지역구 결혼식만 하루 평균 6곳, 경로잔치 등등 참석할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눈물겨운 ‘내조’다.
다만 유권자가 아니라 친구나 선후배들을 만난다는 생각으로 그 분들을 대했다고 털어놓는다. 드라마에서의 중후하고 지적인 배역과는 달리 ‘동네 아줌마’를 자처하며 ‘몸으로 때우는’ 내조방식을 즐겨썼다. 주민들에게 진실하게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많은 사람이 남편의 당선에 ‘아내의 힘’이 컸다고 하더라고 하자 “그렇게 봐주시면 정말 고맙죠”라고 말했다. ‘최명길이 직접 출마하라’는 권유까지 받았던 그는 “정치엔 전혀 관심이 없어요. 다만 아내와 엄마로서의 삶이 내 체질에 더 맞습니다”라는 말로 한발짝 물러섰다. ‘정치인 남편의 내조자’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질문에 한마디로 “쉽지 않은 길”이라는 대답을 내놓았다.
“정치인의 아내로 산다는 게 사랑스럽고 흥미진진하지만 때론 악성 소문에도 시달려야 됩니다. 또 정치인의 아내가 너무 앞장서도 안되고, 잠자코만 있어도 안돼 페이스 조절이 가장 힘듭니다.” 최명길의 사려깊은 속내다. 김 의원은 지난 2001년 10월 재보선 때 지금의 지역구인 구로을에서 낙선한 경험이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서울에서 당선된 열린우리당 의원 가운데 54%라는 최고 득표율 기록까지 남겨 기쁨이 두 배라고 한다.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후회도 없고, 노력한 만큼 그 값어치를 인정받아 더없이 기쁘다는 그는 앞으로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적절히 ‘중도’를 지켜나갈 생각이다.
◇ ‘정 깊은’ 두 아들의 엄마
정치인 남편 김한길, 두 아들 어진(7)과 무진(3). 최명길에게는 특별한 세 남자가 곁에 있어서 행복하고 기쁘다. 어진은 ‘어질게 자라라’, 무진은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져라’라는 뜻으로 소설가 출신의 김 의원이 직접 지은 이름이다. 어진이는 동생 무진이를 ‘내 동생 무진이’라고 부르며 여간 아끼고 귀여워하는 게 아니다. 가끔 다른 엄마들처럼 큰 아들 어진이에게 조기교육을 시키고 싶은 마음도 들지만 “아이는 아이답게 잘 놀게 해주자”며 조기교육에 반대하는 남편의 뜻에 따라 그냥 유치원만 보낸다. 대신 축구, 검도 등 신체수련에 치중한 교육과 자연을 통해 감성을 길러주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
무엇을 하든 결코 ‘1등 하라’는 소리는 하지 않는다. 경쟁의식을 심어주고 싶지 않고, 스트레스도 주고 싶지 않아서다. 다만 무엇이든 즐기면서 스스로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동기 유발을 해줄 뿐이다. ‘귀하다고 버릇 없이 키워서는 안된다’는 생각 때문에 아이들이 잘못했을 때는 엄하게 야단도 치고, 상황에 따라 매도 드는 편이다. 아이에게 해도 되는 행동과 해서는 안되는 행동을 분명하게 알려주고, 어겼을 경우에는 그에 상응하는 벌을 내린다.
지금으로서는 ‘가정’이라는 테두리가 가장 든든하다. ‘가화만사성’이듯 가정이 튼튼해야 내조도 외조도 가능한 것 아니겠느냐고 반문한다. “한쪽만으론 안되고 서로가 노력해서 일궈나가는 게 진정한 가정”이라고 강조한 그는 “가족과 함께 있으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가 된 듯한 기분입니다. 내 집, 내 가족을 지키고 살면서 내가 좋아하는 일도 만나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 ‘열정적’인 연기자 & DJ
“항상 연기자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 내게 맞는 좋은 작품을 기다리고 있습니다”라는 말로 연기에 대한 끊이지 않는 열정을 드러냈다.
남편 일에 자신이 해야 할 부분이 있으면 확실히 내조를 하지만 기본적으로 정치에는 전혀 간여하지 않는다. 김 의원도 아내의 일에 참견하는 법이 없다. 작품을 결정할 때도 ‘알아서 잘하라’는 말 한마디가 전부다. 그러나 막상 작품에 돌입하면 누구보다 냉정하고 정확한 모니터를 해 준다. 대부분은 칭찬과 격려이고, 비판도 서슴지 않는다(단 기분 나쁘지 않을 표현 방법을 쓴다). 또 비디오로 드라마를 녹화해서 보여주는 등 외조를 아끼지 않는 자상한 남편이다.
얼마 전에 출연 제의가 오갔던 MTV 새 주말극 ‘사랑을 할거야’는 출연을 포기했다. 배역이 맞지 않는다고 판단해서다. 언젠가 신문에서 자신의 또래인 ‘사관과 신사’의 여주인공 데보라 윙거의 은퇴 인터뷰 기사를 감명깊게 읽었단다. 그는 ‘내 나이에 마땅히 맡을 배역이 없고, 또 뒷전으로 물러난 느낌 때문’이라고 은퇴 이유를 밝혔는데 가슴에 와닿더라는 것.
앞으로 연예활동 여부에 대해 최명길은 “내 ‘입장’이 어떠어떠해서 활동을 못한다거나 작품을 가리지는 않습니다”라면서 “다만 한 작품을 하더라도 신중하게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배역이나 극중 비중은 그리 상관하지 않지만 자신의 모든 것을 쏟을 수 있는 작품을 선택해야겠다는 의미인데 점점 폭이 좁아지지 않겠느냐는 해석도 곁들였다.
이미연기자 mylee@ 본 기사의 저작권은 스포츠서울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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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남편한테 맨날 매맞고 산다는건 단순히 풍문이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