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스포츠과학과 18학번 이진혁입니다. 저는 인천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2학년 9살 때까지 거주를 하다가 아버지께서 회사를 옮기셔서 전라남도 목포로 이사를 갔습니다. 제가 태어난 날은 1999년 8월 17일인테 그 때 민방위훈련 시간과 겹쳐서 병원까지 걸어가셨다고 합니다. 어릴 때 부터 아파트 앞에 운동장이 있어 축구와 족구 등 운동을 즐겨하였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때에 축구부에 들어가서 많은 대회에 나간 경험이 있습니다. 대동초등학교 축구부에 들어오라는 스카우트를 받았지만 그 시기에 목포로 이사를 가서 거절을 하였습니다. 목포에서 처음 간 학교는 애향초등학교였습니다. 새로 지은 학교라 그런지 반 개수가 2반까지 밖에 없었습니다. 인천과는 달리 매우 적어서 신기하였습니다. 친구들의 말투도 달라서 적응하기가 조금 어려웠지만 금방 친구들의 말투를 따라하게 되었습니다. 초등학교 졸업을 하기 전에 남악이라는 동네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중학교를 남악중으로 가려면 남악초등학교를 졸업해야해서 초등학교 졸업 직전 어쩔 수 없이 친구들과 담임선생님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남악초등학교로 전학을 갔습니다. 그리고 남악중학교에 입학을 했습니다. 중학교는 초등학교와 다른 점이 많았습니다. 동아리도 직접 선택해서 들어가고 과목마다 선생님이 계시고 벌점 제도로 학교 규칙을 세우고 선도부도 있었습니다. 중학교때 반대항 축구대회를 하였습니다. 골도 직접 넣고 반이 승리를 하게 되어서 기억에 가장 많이 남습니다. 2학년 때에 새로운 운동을 경험하고 싶어서 농구부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마음과는 달리 손가락이 너무 자주 다쳐서 탈퇴하고 다시 축구부를 들어갔습니다. 중학교 3학년 때에는 축구를 자주 즐겨했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자주 축구를 하던 친구들이 같은 중학교에 올라와 팀워크가 정말 좋았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대회에 나가 우승도 하였습닏다. 군 대회에 나가 우승을 해서 군 대표로 도 대회를 나갔습니다. 도 대회에선 아쉽게 8강에서 떨어졌습니다. 아쉽지만 감독님께서 위로를 해주시며 다음을 기약하자고 하셨습니다. 중학교 3학년 때에 같은 반 친구들과는 자주 놀러다니고 운동도 자주 해서 매우 돈독한 사이가 되어 지금까지 연락하며 여행을 다니고 있습니다. 최근 방학엔 일본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첫 해외여행이라 설레기도 하였고 걱정되기도 하였습니다. 다행히도 친구들과 의견들을 잘 조합해가며 틀어짐 없이 잘 다녀왔습니다. 이웃나라 일본은 남에게 피해를 절대 안 주려고 노력하고 매우 체계적인 것 같습니다. 천천히 기다리는 자세도 있습니다. 그런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닮았으면 하는 모습입니다. 남악중학교 옆에 있는 남악고등학교에 입학을 하였습니다. 중학교와 다르게 고등학교 생활은 대학교를 결정해서 분위기가 달랐습니다. 입학을 하자마자 그 날 야간자율학습을 했습니다. 학교에 남아 처음으로 10시까지 공부를 해보았습니다. 적응하기가 매우 힘들었지만 담임선생님께서 잘 지도해주셔서 좋은 습관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에서 체육대회는 유달 경기장에 가서 하였습니다. 다양한 종목을 친구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더 재밌었습니다. 동아리는 축구부에 들어갔습니다. 중학교 때에 함께 운동하던 친구들과 형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팀워크가 더 좋아져서 그런지 1학년 때에 군 대회에서 더 쉽게 우승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또 8강에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2학년 때에 한 번 더 기회가 있기 때문에 더 연습해서 다음엔 더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 것 이라고 다짐했습니다. 1학년 때에 체육선생님께선 수업을 매우 열정적으로 하시고 체계적인 계획을 세워 지도해주셨습니다. 일반적인 체육선생님의 모습은 공 하나 던져주고 자유 시간을 준다는 고정관념이 있지만 그 고정관념을 깨시는 선생님이셨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체육선생님을 하고 싶다는 목표가 생겼습니다. 고2때엔 체육학과에 들어가기 위해 도움을 주는 동아리가 생겨서 그 동아리에 들어갔습니다. 체육학과에 가면 장래에 무슨 직업을 가질 수 있는지 조금 더 다양하게 알게 되어서 꼭 선생님만 고집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입시 학원도 알아보고 하였습니다. 체대에 가기 위해선 운동능력도 중요하지만 성적도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학원은 조금 더 있다가 다니기로 결정을 하였습니다. 고 2때에도 군 대회는 또 우승하였지만 도 대회에선 또 8강에서 떨어졌습니다. 정말 아쉬웠습니다. 하지만 대회가 하나 더 생겨 출전하게 되었는데 그 대회에선 우승을 하여 기분이 매우 좋았습니다. 고 3이 되던 해 초기에 운동능력향상을 위해서 체대입시학원을 다니기 시작하였습니다. 처음 운동하고 난 다음 날엔 온몸이 알이 배기고 힘도 잘 안 들어갔습니다. 공부도 함께 병행해야 해서 더 힘들게 느껴졌습니다. 체대는 운동만 잘하면 되는 줄 알았지만 공부도 함께 해야 해서 들어가기 어려운 곳이라고 느꼈습니다. 체대입시학원에서 첫 테스트때 등수가 하위권이 나왔습니다. 다닌지 별로 안되서라고 생각하였지만 저 자신에게 실망을 하여 운동을 더 열심히 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다음 테스트에선 대부분 향상된 기록이 나왔지만 유연성과 싯업은 향상되지 않고 그대로 유지되었습니다. 그 테스트가 끝나고 원장님과 상담을 하는데 저에게 노력해서 올릴 수 있는 운동인데 하기 싫다고 안하는 건 매우 잘못되었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그 상담이 끝난 후 매일 자기 전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스트레칭을 하였고 시간 날 때마다 스트레칭을 하였고 집에 턱걸이를 설치하여 복근운동도 열심히 하였습니다. 그 결과 싯업의 기록은 매우 향상되었지만 유연성은 아직도 부족하였습니다. 노력을 해도 안되었을때 제 심정을 정말 너무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제 노력이 부족하여 실력이 늘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더 열심히 스트레칭을 하였습니다. 정시 실기 시험치기 2달 전부터 운동의 강도를 더 높게 올렸습니다. 1달동안은 체력훈련을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남은 1달동안 실기 준비를 하였는데 초기에 실기 기록이 조금씩 늘고 있어서 기분이 되게 좋았고 더 열심히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욕심이 과해서 그런지 유연성을 하다가 햄스트링에 무리가 가게 되어 햄스트링이 찢어져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그 땐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습니다. 1년동안 정말 열심히 피곤해도 참고 운동을 해왔는데 한순간에 물거품이 된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병원에서 벌침도 맞고 매우 많은 치료를 하며 빨리 낫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래도 달리면 햄스트링이 아파서 비실기를 알아보기도 하였습니다. 실제로 나 군에는 일반과를 쓰게 되었습니다. 가 군대학교의 실기는 학원 처음 다닐 때의 기록처럼 나와 정말 실망하였습니다. 그래도 다 군은 시간의 여유가 조금 더 있어서 치료도 열심히 하고 복근운동을 조심히 했습니다. 다 군인 순천향대학교의 실기를 치기 전 달리기는 커녕 점프도 안하며 다리를 아끼며 실기장에 들어갔습니다. 정말 마지막 기회라 간절하게 실기를 쳤습니다. 1년동안의 노력은 저를 배신하지 않았습니다. 정말 다행이었습니다. 순천향대에서 본 실기종목 모두 다 학원에서 나온 기록보다 모두 잘 나왔기 때문입니다. 다음날 햄스트링이 다시 아파왔지만 기분은 정말 좋았습니다. 이렇게 힘들게 순천향대에 들어온만큼 대학생활도 열심히 할 것 입니다.
첫댓글 야외교육론 즐겁게 들어보자~
아픈 일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최선을 다해 달리는 모습이 멋지다 ㅎㅎ 그동안 정말 수고많았어 ! 앞으로 잘 지내보자 진혁아 !!
야외교육론 같은조 잘 해보자 화이팅~
즐거운 대학 생활 보내~
힘들게 들어온 대학이니만큼 열심히하여 좋은결과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팠던 일들이 많은걸 보니 동질감이 느껴지더라!! 정말 장하다!! 앞으로도 끝까지 최선을 다하자~!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