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담양군(潭陽郡) 죽녹원(竹綠園) 일원 탐방 안내
![](https://t1.daumcdn.net/cfile/cafe/22662A4F56345E2A20)
■전남 담양(潭陽) 메타세쿼이아길-전남 담양군 담양읍 학동리. [대공원역에서 214km, 3시간 00분, 순창고추장민속마을에서 12km, 16분]. 담양 메타세쿼이아 길은 꿈의 드라이브 가로수길 코스이다. 영화 ‘역린’과 ‘협녀’ 촬영세트장이 있고, ‘와니와 준하’에서 와니가 아버지와 함께 차를 타고 지나가는 장면이 촬영된 곳이 바로 순창에서 담양으로 이어지는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이다. 원래는 24번 국도였는데 이 국도 바로 옆으로 새롭게 국도가 뚫리면서 이 길은 산책을 하거나 자전거를 탈 수 있는 도로로 조성되었다.
담양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길의 총 길이는 약 8km로 도로를 사이에 두고 양쪽 길가에 심어져 있다. 이 길이 조성된 시기는 1970년대 초반으로 전국적인 가로수 조성사업 때 담양군이 3~4년생 메타세쿼이아 묘목을 심은 것이 현재는 수령 40년생, 수고 27m, 흉고 85cm 내외의 487본 메타세쿼이아 나무가 아름답고 울창한 가로수 터널길이 되었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로 뽑힌 곳으로 이 길을 가다보면 이국적인 풍경에 심취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남도의 길목으로 빠져들고 만다. 초록빛 동굴을 통과하다보면 이곳을 왜 ‘꿈의 드라이브코스’라 부르는지 실감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아름다움으로 인해 산림청과 ‘생명의 숲 가꾸기운동본부’ 등에서 주관한 ‘2002 아름다운 거리숲’ 대상(大賞)을 수상했고, 2006년 건설교통부 선정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의 최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메타세쿼이아 길 주변에는 메타프로방스 마을을 조성하여 팬션, 가족호텔, 푸드타운, 쿠키월드, 패션아울렛단지, 상가 등이 있고, 장승공원, 기후변화 체험관, 영화 역린과 협녀 촬영세트장, 대나무분재, 테지움테마파크도 조성되어 있어 느림으로 쉬어 갈 수 있고, 고려시대의 문화유산인 담양 남산리 오층석탑(潭陽 南山里 五層石塔, 보물 제506호)과 담양 객사리 석당간(潭陽 客舍里 石幢竿, 보물 제505호)도 만날 수 있다.
★메타세쿼이아(Metasequoia)는 낙우송과의 나무로 은행나무와 함께 화석나무로 유명하다. 북미대륙에 큰 나무로 자라는 세쿼이아(sequoia)를 닮은 나무로 학계에서는 멸종된 나무로 보고됐으나 1941년 중국 후베이성과 쓰촨성의 경계지역을 흐르는 양쯔강 상류 지류인 마타오치(磨刀溪) 옆의 한 마을(지금의 湖北省 利川市)을 순찰하던 왕전(王戰)이라는 산림공무원은 물가 부근에서 자라는 거대한 메타세쿼이아를 처음 발견 하였다. 키 35미터, 직경이 2.3미터나 되는 이 큰 나무는 약 4천여 그루가 마타오치 연안에서 자라고 있었다. 1946년《중국지질학회지》에 ‘살아 있는 메타세쿼이아’로 세상에 확정 보고되었다. 이후 미국의 아놀드식물원에서 본격적인 연구와 번식이 시작 되었으며, 우리나라는 1956년 현신규 박사에 의해 들여와 주로 가로수와 조경수로 식재되었다. 아득한 옛날 공룡과 함께 살아온 ‘화석나무’가 지금은 번화한 도시의 한복판에서 온갖 공해를 이겨가며 우리와 함께 산다고 생각하니 무척 대견스럽다. ‘물가에서 잘 자라는 삼나무’란 의미로 중국 이름은 ‘수삼(水杉)’이며, 북한 이름도 ‘수삼나무’다. 철자도 어려운 메타세쿼이아라는 영어식 긴 이름보다 간편하고 생태도 쉽게 짐작이 가는 수삼나무가 훨씬 마음에 든다. 나무 모양은 자연 그대로 긴 원뿔형을 이루어 깔끔하고 단정하다. 적갈색의 가을 단풍도 매력적이다. 담양 메타스쿼이아 숲길에서 맑고 깨끗한 산소와 피톤치드로 힐링과 삼림욕을 즐기면서 추억을 만들 수 있는 이야기 길이다. (자료출처: 문화재청, 한국관광공사, 담양 문화관광과)
■한국대나무박물관-담양군 담양읍 천변리. [메타세콰이아길에서 4.2km, 8분]. 담양의 대나무 문화를 한 눈에 알 수 있는 한국대나무박물관. 전국유일의 대나무 주산지이며 전통적 죽제민예품의 명산지인 담양에 죽제품을 보존, 전시, 시연, 판매, 체험 등 종합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공간을 갖추어 죽세문화의 전통 계승과 공예진흥을 위해 한국대나무박물관을 건립하였다. 1981년 담양읍 담주리에 개관하여 운영해오다 지난 1998년 3월 12일 이곳 담양읍 천변리에 확장 이전하였다. 이곳에는 죽제품의 전시 뿐만 아니라 죽제품 생산에 관한 기술 정보가 교환되기도 하며, 해마다 5월 대나무축제에 맞춰 전국죽제품 경지대회도 열린다.
박물관은 4개의 전시실로 구성되어 있다. 제1전시실에서는 대나무의 성장과정과 각종 자료 및 죽순을 이용한 식품, 문헌에 나오는 대나무의 효능에 대하여 소개하고 있다. 제2전시실에서는 조선 말기에 궁중에서 사용했던 부채와 방건통 등 옛 죽제품과 중요무형문화재(낙죽장·죽렴장·채상장·참빗장)의 제품 등을 전시하고 있다.
제3전시실에는 현대와 과거의 실생활에 주로 이용된 대나무 여름용품, 무기류, 장신구 등을 전시한다. 기획전시실(특별실)에는 1982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죽제품경진대회에서 입선한 제품들이 연도별로 전시되어 있다. 무형문화재전수관에서는 죽세공예 기능을 보유한 무형문화재가 기능 전수를 하며, 죽종장에는 한국에 자생하는 대나무 64품종이 식재되어 있다.
■담양 죽녹원(竹綠園)-담양군 담양읍 향교리. [한국대나무박물관에서 2.3 km, 5분]. 전남 담양은 대나무의 고장, 이른바 '죽향(竹鄕)'으로 통한다. 사방천지가 대나무 숲으로 이뤄져 있기 때문이다. 담양에 있는 354개의 마을 중 무려 350개 마을에 대숲이 있을 정도다. 담양에 있는 대숲의 면적을 합하면 축구장 1800여 개를 지을 수 있다고 한다. 과연, 대나무의 고장이라 할 만한 규모다. 담양 곳곳에 분포해 있는 대숲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숲을 꼽으라면 단연 '죽녹원'을 들 수 있다. 담양하면 죽녹원을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 적지 않을 정도로, 이제 죽녹원은 담양을 대표하는 관광 명소다.
☆죽림욕장으로 가는 길
죽녹원 대숲 전경. 높이 15m 이상의 대나무가 시원하게 뻗어 있다.전국적으로 웰빙 열풍이 불면서 산림욕, 삼림욕이라는 말에는 제법 익숙해졌지만, '죽림욕'이라는 말은 다소 낯설게 느껴진다. 죽림욕이란 문자 그대로 대숲의 청정 공기를 쐬는 것. 죽녹원은 죽림욕을 즐기기에 최적의 장소다. 울창한 숲으로 유명한 관방제림과 담양천의 풍광을 감상하며 가다 보면 자그마한 향교 하나가 나타난다. 담양향교다. 죽녹원은 이 향교의 바로 왼편에 자리 잡고 있다. 애써 찾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아도 가보면 금세 안다. 숲이 울창하기 때문이다. 죽녹원은 담양군에서 성인산 일대에 조성한 대숲으로 지난 2003년 처음 개원하였다.
죽녹원으로 들어가기 위한 첫 관문은 돌계단. 본격적으로 대숲을 둘러보기에 앞서 몸풀기를 하듯, 계단을 한 칸 한 칸 따라 오른다. 돌계단을 오를 수록 굳어 있던 몸이 차츰 풀리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마에 송골송골 맺히는 땀방울이 싫지만은 않다. 잠시 숨을 고르고 고개를 들어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마주한다. 척 보아도 10m를 훌쩍 넘는 대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나부끼는 바람과 함께 상쾌한 대나무 향기가 불어온다. 댓잎이 서걱거리는 소리도 함께 들려온다. 몸 풀기가 끝난 다음 단계는 감각 풀기다. 잠자고 있던 모든 감각들이 되살아나는 느낌이 든다.
☆몸도 마음도 맑게 하는 죽녹원 산책
죽녹원에 조성되어 있는 물레방아와 판다 조형물. 대숲과 어우러져 운치 있는 풍경을 만들어 낸다. 예부터 우리 선인들은 대나무를 각별히 여겨왔다. 모름지기 군자라면 대나무의 곧게 뻗은 모습과 품성을 닮아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실제로 쭉쭉 뻗어 있는 대숲을 마주하면, 우리 선인들이 어떤 연유에서 대나무를 좋아했는지 알 것만 같다. 푸르고 곧게 뻗은 대나무는 그 자체만으로도 깊은 깨우침을 준다. 대숲의 향기로운 공기는 몸 뿐만 아니라 정신도 맑게 해준다. 한편, 대숲에 들어서면 온 몸이 서늘해지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대나무가 뿜어내는 산소 때문이다. 실제로 죽녹원 내부 기온은 외부 기온보다 섭씨 4~5도 가량 낮다. 대숲이 시원한 데에는 음이온 발생량도 한 몫을 한다. 보통 음이온이 700 정도 발생하면 시원함을 느끼게 되는데, 대숲의 경우 1500가량의 음이온이 발생한다.
☆하늘을 향해 시원하게 뻗은 죽녹원의 대나무 숲.
죽녹원 곳곳에는 각기 다른 매력을 지닌 산책로가 자리 잡고 있다. 대숲이 뿜어내는 산소와 음이온을 살짝 맛봤다면 이제는 본격적으로 대숲을 탐방할 차례. 죽녹원에는 모두 8개의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제1길은 1년 좋을 운수를 10년 좋게 만들어준다는 운수대통길(460m), 제2길은 친구와의 우정을 두텁게 만들어준다는 죽마고우길(150m), 제3길은 짤막한 길이의 샛길(100m), 제4길은 까마득히 잊고 지내던 추억을 떠올리게 해준다는 추억의 샛길(210m), 제5길은 영원한 사랑을 약속해준다는 사랑이 변치 않는 길(630m), 제6길은 담양향교 뒤쪽에 자리 잡고 있는 성인산을 오르는 성인산 오름길(150m), 제7길은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주고 맑은 정신을 일깨워준다는 철학자의 길(360m), 제8길은 옛선비가 되어 거닐어 볼 수 있는 선비의 길(370m)이다.
총 길이 2km를 살짝 넘는 이들 산책로를 걷다 보면, 몸이 건강해지는 기분을 느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정화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푸른 대나무와 댓잎 사이로 이따금 스며드는 햇살, 얼굴에 와 닿는 시원한 바람을 만끽하며 걷다 보면, 이것이 바로 '힐링'이구나 싶다. 죽녹원에는 대나무 잎에서 떨어진 이슬을 먹고 자란다는 죽로차와 대나무 아이스크림 등을 맛볼 수 있으므로, 이들을 맛볼 수 있는 기회도 놓치지 말자.
■담양 소쇄원(瀟灑園)-전남 담양군 남면 소쇄원길(지곡리)에 있는 조선 중기의 정원. [죽녹원에서 20km, 32분]. 소쇄원은 양산보(梁山甫: 1503~1557)가 스승인 조광조가 유배되자 세상의 뜻을 버리고 고향으로 내려와 깨끗하고 시원하다는 의미를 담아 조성한 곳으로, 자연과 인공을 조화시킨 조선 중기 정원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다. 힌편, 양산보(梁山甫)의 호가 소쇄옹(瀟灑翁)이었기에 원(園)의 이름을 소쇄원이라 한 것이라고도 한다. 명승 제40호. 지정구역 4,399㎡, 보호구역 11만 7,051㎡.
소쇄원(瀟灑園)은 양산보가 은사 조광조(趙光祖)가 남곤(南袞) 등의 훈구파에게 몰려 전라남도 화순 능주로 유배되자, 세상의 뜻을 버리고 낙향하여 향리인 지석마을에 숨어살면서 계곡을 중심으로 조영한 원림(園林)이다. 양산보(梁山甫)의 은둔생활(隱遁生活) 기간 중인 1520년부터 1557년 사이에 조성된 것이다.
소쇄원의 ‘소쇄’는 본래 공덕장(孔德璋)의 「북산이문(北山移文)」에 나오는 말로서 깨끗하고 시원함을 의미하고 있으며, 양산보는 이러한 명칭을 붙인 정원의 주인이라는 뜻에서 자신의 호를 소쇄옹(瀟灑翁)이라 하였다.
소쇄원의 조성사상을 보면 주자(朱子)가 중국(中國) 숭안현(崇安縣) 무이산(武夷山)계곡의 경승지인 무이구곡(武夷九曲)에 무이정사(武夷精舍)를 짓고 현실(現實)을 도피하여 은둔하는 행동양식이 깔려 있다.
당시의 건물은 임진왜란 때 소실되고 80년쯤 전에 중수하여 현재 2동이 남아 있다.
한편, 소쇄원에는 김인후(金麟厚)가 1548년(명종 3)에 지은 오언절구(五言絶句)의 48영(詠) 시(詩)가 남아 있다. 그리고 고경명(高敬命) 이 1574년 4월 20일부터 24일까지 광주목사(光州牧使) 임훈(林薰)과 함께 광주 무등산(無等山)을 유락(遊樂)하면서 4월 23일소쇄원에 들려서 보았던 계원(溪園)의 사실적 묘사가 「유서석록(遊瑞石錄)」에 남아 있다.
또 소쇄원의 배치를 목판(木板)으로 새긴 「소쇄원도(瀟灑園圖)」가 남아 있다. 이 목판은 가로가 35㎝, 세로가 25㎝로 양각으로 판각되었는데 1755년 4월 하순(숭정기원후 삼을해년청화 하완간(崇禎紀元後 三乙亥年淸和 下浣刊)에 제작했다는 판각기가 새겨있어 소쇄원의 원형(原形)을 상고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이 목판에는 위쪽에 김인후의 소쇄원 48제영(瀟灑園 48題詠)이 새겨있고 오른쪽 외곽에는 「창암촌 고암동 소쇄원 제월당 광풍각 오곡문 애양단 대봉대 옹정봉 황금정 유 우암선생필(蒼巖村 鼓巖洞 瀟灑園 齊月堂 光風閣 五曲門 愛陽壇 待鳳臺 瓮井峰 黃金亭 有 尤菴先生筆)이라 새겨있다. 우암(尤菴)은 송시열(宋時烈)(1607∼1689)의 호이다. 이 소쇄원도(瀟灑園圖)에는 건물의 명칭 식물의 명칭 지당(池塘) 계류의 조담(槽潭)이나 바위 다리 물레방아 등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입구 담벽에는 원래 김인후의 소쇄원 48영(詠) 수제(手題)가 편액으로 걸려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소쇄원은 무등산의 북쪽 기슭에 있는 광주호의 상류에 위치하여 무등산을 정남쪽에 대하고 있으며, 뒤편에는 까치봉과 장원봉(壯元峰)으로 이어지는 산맥이 동서로 병풍처럼 둘러져 있다.
또, 뒷산과 까치봉 사이의 골짜기를 흘러내리는 계류를 중심으로 하여 산기슭에 터를 잡은 소쇄원의 바로 앞에는 증암천이 동서방향으로 흘러 광주호에 들어가고 있다.
정원의 평면적인 모습은 계류를 중심축으로 하는 사다리꼴 형태이며, 흙으로 새 메움을 한 기와지붕의 직선적인 흙돌담이 외부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전체적으로 볼 때, 계곡의 굴곡진 경사면들을 계단상으로 처리한 노단식 정원의 일종이지만, 구성면에서는 비대칭적인 산수원림(山水園林)이다.
소쇄원은 기능과 공간의 특색에 따라 애양단구역(愛陽壇區域)·오곡문구역(五曲門區域)·제월당구역(霽月堂區域)·광풍각구역(光風閣區域)으로 구분할 수 있다.
애양단 구역은 이 원림의 입구임과 동시에 계류쪽의 자연과 인공물을 감상하면서 산책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애양단이란 김인후(金麟厚)가 지은 「소쇄원사팔영(瀟灑園四八詠)」 가운데 있는 ‘양단동오(陽壇冬午)’라는 시제를 따서 송시열(宋時烈)이 붙인 이름이다.
왕대나무숲속에 뚫린 오솔길을 따라서 올라오면, 입구 왼편 계류쪽에 약 18m의 간격을 두고 두 개의 방지(方池)가 만들어져 있고, 과거에는 물레방아가 돌고 있었다.
이것은 장식용으로 오곡문 옆 계곡물이 홈대를 타고 내려와 위쪽 못을 채우고, 그 넘친 물이 도랑을 타고 내려와 물레방아를 돌리게 되어 있어, 이것이 돌 때 물방울을 튀기며 폭포가 되어 떨어지는 물의 약동을 건너편 광풍각에서 감상하도록 설계된 것이었다.
위쪽 옆에는 계류 쪽으로 튀어나온 대봉대(待鳳臺)라는 조그마한 축대 위에 삿갓지붕의 작은 모정(茅亭)이 있는데, 이것은 근래에 복원한 것이다.
오곡문구역은 오곡문 옆의 담밑 구멍으로 흘러 들어오는 계류와 그 주변의 넓은 암반이 있는 공간을 말한다. 계류의 물이 들어오는 수문 구실을 하는 담 아래의 구멍은 돌을 괴어 만든 높이 1.5m, 너비 1.8m와 1.5m의 크기를 가지는 두 개의 구멍으로 되어 있는데, 그 낭만적인 멋은 계류공간의 생김새와 잘 어울린다. 이와 비슷한 기법은 1100년대(숙종연간)의 이실충(李實忠)이 만든 경기도 부천의 척서정(滌暑亭)에서 볼 수 있다.
오곡문의 ‘오곡’이란 주변의 암반 위에 계류가 之자모양으로 다섯 번을 돌아 흘러 내려간다는 뜻에서 얻어진 이름이다. 이 부근의 암반은 반반하고 넓어서 많은 사람들이 물가에 앉아서 즐기기에 넉넉한데, 「소쇄원도」에는 한편에서는 바둑을 두고, 다른 한편에서는 가야금을 타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제월당구역은 오곡문에서 남서방향으로 놓여 있는 직선도로의 위쪽 부분을 말하는데, 주인을 위한 사적(私的) 공간이다. 제월당 앞의 마당은 보통의 농가처럼 비워져 있으며, 오곡문과의 사이에 만들어진 매대(梅臺)에는 여러 가지 꽃과 나무들을 심어 놓았다.
광풍각구역은 제월당구역의 아래쪽에 있는 광풍각을 중심으로 하는 사랑방 기능의 공간이다. 광풍각 옆의 암반에는 석가산(石假山)이 있었는데, 이러한 조경방법은 고려시대의 정원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것이다. 한편, 광풍각의 뒤쪽에 있는 동산을 복사동산이라 하여 도잠(陶潛)의 무릉도원을 재현하려고 하였다.
제월당의 ‘제월’과 광풍각의 ‘광풍’은 송나라의 황정견(黃庭堅)이 유학자 주돈이(周敦頤)의 사람됨을 평하여 “흉회쇄락여광풍제월(胸懷灑落如光風霽月)”이라고 한 데서 유래한 것이다.
소쇄원의 조경식물로는 소나무·단풍나무·버드나무·참등나무·대나무·매화나무·복사나무·살구나무·벽오동나무·배롱나무·회화나무·치자나무·사계화나무·국화·파초·연꽃·철쭉·동백·난·측백나무 등을 심었다.
이들 가운데 소나무·매화나무·대나무는 국화와 함께 사절우(四節友)라 하여 선비들이 즐겨 심었던 것이며, 측백나무는 주나라 때 왕자의 기념식수로, 회화나무는 고관들의 기념식수로 쓰이던 나무들로, 그 풍습에 따라 자손이 성공하기를 비는 뜻으로 심었다. 현재는 당시에 심은 나무들 가운데 소나무·측백나무·배롱나무 몇 그루가 남아 있을 뿐이다.
■한국가사문학관(韓國歌辭文學館)-일면 한국가사문학박물관. 담양군 남면 지곡리. [소쇄원에서 930m, 3분]. 한국가사문학관은 가사문학 관련 문화유산의 전승, 보전과 현대적 계승, 발전을 위하여 기획전시실(갤러리), 자미정, 세심정, 토산품전시장, 전통찻집 등의 부대시설을 갖추고 있다.
주요 전시물은 송순(宋純)의 <면앙집 俛仰集>과 정철의 <송강집 松江集> 및 친필 유묵(遺墨)을 비롯하여 가사문학 관련 서화 및 유물 1만 1,461점, 담양권 가사 18편과 관계문헌, 가사 관련 도서 약 1만 5,000권 등이다.
담양 지역을 일명 한국 가사문학의 고향이라고 말한다. 경치 좋은 자연이 우리 국토 방방곡곡에 자리하였고 멋을 아는 선비가 담양으로만 모여 있지는 않았겠지만, 가사문학의 주요 무대가 된 소쇄원, 식영정, 송강정, 면앙정, 환벽당, 창계천, 자미탄 등 남아 있는 누각과 정자 건물만도 수없이 많고, 끝없이 펼쳐지는 호남의 비옥한 땅을 이루는 계곡과 산천의 아름다움은 권력과 재물의 욕심보다 초야에 묻혀 학문을 연구하고 청정한 삶을 영위하는 것을 가장 큰 소명으로 삼았던 선비들의 은신처로 오랜 시간 사랑받았다. 학문 연마의 사이마다 음율을 가진 노래를 자연을 벗삼아 불렀을 재야 선비들의 모습을 담은 박물관이다.
가사문학은 조선시대 시조와 함께 고전문학의 백미로 불리는 3·4조 또는 4·4조의 율격을 가진 일종의 노래 악보다. 녹음 기술이 전무했던 시대이니만큼 남겨진 기록이 없어 그 노래가 어떤 음율로 불렸는지는 알 길 없지만 풍류를 즐기는 선비들이 불렀을 노래는 자연과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곡조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2000년 세워진 가사문학관은 선비정신을 상징하듯 정자와 연못을 함께있는 건물로 이서의「낙지가」, 송순의「면앙정가」, 정철의「성산별곡」·「관동별곡」·「사미인곡」·「속미인곡」, 정식의「축산별곡」, 남극엽의「향음주례가」·「충효가」, 유도관의「경술가」·「사미인곡」, 남석하의「백발가」·「초당춘수곡」·「사친곡」·「원유가」, 정해정의「석촌별곡」·「민농가」및 작자미상의「효자가」등 이 고장이 전하는 18편의 가사문학을 중심으로 관련 유물들을 전시하는 멋진 공간이다. 영상관에 들려 전체적인 개요를 먼저 듣고, 어려운 한문으로 씌어진 자료들을 읽으려 애쓰기보다는 입구에 마련된 무인안내기를 사용한 자세한 해설을 들을 수 있고 상주하는 문화해설사에게 안내를 부탁하면 전시관을 함께 둘러보며 가사문학의 아름다움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관람시간은 오전 9시~오후 6시이며 연중무휴로 개관한다. (자료출처: 두산백과, 마로니에북스)
■ 식영정(息影亭)-명승 제57호 (2009년 9월 18일). 전남 담양군 남면 지곡리. 소쇄원에서 1.1km, 4분]. 담양 식영정 일원은 무등산 북쪽 사면에 위치한 광주호의 상류에 위치한 정자를 중심으로 하는 원림으로서, 성산(星山)의 한 자락을 이루고 있는 지형의 언덕에 자리 잡고 있다. 단양십경의 하나이며, 2009년 9월 18일에 명승 제57호로 지정되었다.
석천(石川) 임억령(林億齡)이 지은 「식영정기(息影亭記)」에는 장자의 외영오적(畏影惡迹)에 관한 고사로부터 식영정의 이름을 짓게 된 연유를 밝히고 있다. “옛날에 자기의 그림자를 두려워하는 사람이 그림자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을 쳤는데, 빛이 있는 곳에서는 항상 쫓아오던 그림자가 나무 그늘 아래로 달아나자 없어지는 것을 보고, 그림자를 없애는 방법은 그늘에 숨던지 빛이 없는 곳에 머무르는 수밖에 없다.”라고 한 장자의 글에서 인용하여, 임억령이 마치 그림자가 싫어 그늘에 숨는 고사의 주인공처럼 지금까지 자신의 흔적으로부터 벗어나고픈 간절한 소망에서 정자의 이름을 명명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송강(松江) 정철(鄭澈)이 성산별곡(星山別曲), 식영정 20영(詠) 등 한시와 가사 및 단가 등을 남겨 송강 문학의 산실이 된 장소로서, ‘그림자가 쉬어 가는 정자’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명칭이다.
사람들은 석천 임억령, 서하당(棲霞堂) 김성원(金成遠), 제봉(霽峰) 고경명(高敬命), 송강 정철 등을 식영정 사선(四仙)이라 부르며, 그들 문학의 산실인 식영정을 사선정이라 하기도 했다.
식영정은 조선 명종 때 서하당 김성원이 그의 장인 석천 임억령을 위해 지은 정자이다. 아름다운 경치와 좋은 주인을 찾아 수많은 문인과 학자들이 드나들었으며, 이들 중에서 식영정을 가장 유명하게 만든 것은 송강 정철의 성산별곡이다.
담양지방의 정자원림은 우리나라 고전문학 발전의 기반이 된 곳이며, 식영정은 담양지방 정자원림 중에 역사·문화적 의미가 깊은 중요한 하나의 원림이다.
식영정은 정자의 모습이 ‘띠풀로 지붕을 하고 대발로 날개처럼 차양을 달았으니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포장을 친 놀잇배와 같다.’하여 그 모양을 배에 비유하였다고 한다.
식영정은 정면2칸, 측면 2칸의 단층 팔작집으로서, 1칸의 온돌방과 대청마루가 각각 절반으로 구성되어 있다. 식영정의 뒤로는 소나무림이 울창하게 조성되어 있다. 누각 앞으로는 광주호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며, 그 건너로 무등산이 바라다 보인다.
무등산과 광주호 등의 자연경관은 식영정과 잘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정자와 어우러진 노송, 정자 주위의 송림, 배롱나무 등이 아름다운 경승을 자아내고 있다.
창계천에 댐을 막아 광주호가 형성되면서 식영정 주변의 지형은 많은 변화를 가져 왔다. 광주호의 수면이 현재의 수준으로 높아지고, 새로운 길이 조성되었으며, 식영정 앞의 창계천은 수몰되어 하천이 흘러가는 예전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없게 되었다.
창계천은 하천을 따라 배롱나무가 줄지어 서서 여름내 붉은 꽃이 마치 꽃구름을 이루고 있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었기 때문에 창계천의 옛이름은 배롱나무의 한자명을 따서 자미탄(紫薇灘)이라고 했다.
식영정의 아래에는 김성원의 호를 딴 서하당이라는 정자가 위치하고 있었는데, 집 자리만 남아 있던 것이 최근에 복원되었다. 식영정의 주변에는 송강 정철이 살던 지실마을이 있고, 별뫼[星山]가 있는 자미탄의 양안으로는 식영정, 환벽당, 취가정, 소쇄원 등 누정문학의 산실을 이루었던 누정이 흩어져 있다.
송강정(松江亭)-전남 담양군 고서면 원강리 조선 후기의 누정. 소쇄원에서 10km, 18분].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건물. 전라남도 기념물 제1-2호. 조선시대의 문인 정철(鄭澈)의 행적과 관련된 유적으로, 식영정(息影亭)·환벽당(環碧堂)과 더불어 정송강유적(鄭松江遺蹟)으로 불린다. 정철이 동인(東人)들의 압박에 못이겨 대사헌의 자리를 그만두고 하향하여 초막을 짓고 살던 곳이라고 하여 당시에는 이 초막을 죽록정(竹綠亭)이라 불렀다 한다.
지금의 정자는 후손들이 정철을 기리기 위하여 1770년(영조 46)에 세운 것인데, 그때 이름을 송강정이라 하였다. 정자는 동남향으로 앉았으며 정면 3칸, 측면 2칸의 방이 꾸며져 있다. 지금도 정자의 정면에 ‘松江亭’이라고 새긴 편액이 있고, 측면 처마 밑에는 ‘竹綠亭’이라는 편액이 보인다. 둘레에는 노송과 참대가 무성하고 앞에는 평야, 뒤에는 증암천이 펼쳐져 있으며, 멀리 보이는 무등산의 그림자가 수려하다. 정철은 이곳에서 〈사미인곡 思美人曲〉을 지었다 하며, 현재 정자 옆에는 그 시비(詩碑)가 세워져 있다.
면앙정(俛仰亭)-전남 담양군 봉산면 제월리 조선 중기의 정자. 소쇄원에서 14km, 25분]. 전라남도 기념물 제6호 (1972년 8월 7일) 1533년(중종 28), 1654년(효종 5)(중건)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건물. 전라남도 기념물 제6호.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시신(侍臣)이었던 송순(宋純)이 만년에 벼슬을 떠나 후학들을 가르치며 한가롭게 여생을 지냈던 곳이다.
그는 41세가 되던 1533년(중종 28)에 잠시 벼슬을 버리고 고향인 이곳으로 내려와 이 정자를 짓고, 〈면앙정삼언가 俛仰亭三言歌〉를 지어 정자이름과 자신의 호(號)로 삼았다 한다. 그러나 그 정자는 1597년(선조 30) 임진왜란으로 파괴되고 지금의 정자는 후손들이 1654년(효종 5)에 중건한 것이다.
건물은 동남향하고 있으며, 한가운데에 한 칸 넓이의 방이 꾸며져 있다. 기둥은 방주(方柱)를 사용하였으며 주두(柱頭)조차 생략되고, 처마도 부연(浮椽 : 처마 끝에 덧 얹어진 짤막한 서까래)이 없는 간소한 건물이다. 주위에는 상수리나무·굴참나무·밤나무 등이 숲을 이루고 있으며, 그 속에는 아름드리 나무도 간간이 서 있다. 주된 전망은 후면에 해당하는 서북쪽으로 평야 너머로 연산(連山)이 보이고 서남쪽에는 맑은 냇물이 흐르고 있다.
면앙정의 풍류운치는 당대에 명사들에게 흠모되었는데, 송순이 지은 잡가(雜歌) 2편에서 그 풍취를 살펴볼 수 있으며, 이 글은 또한 《청구영언》 등 가집(歌集)에 무명작으로 다음과 같이 전해지고 있다. “십년을 경영해야 초당삼간 지어내니 반간은 청풍이요, 반간은 명월이라. 강산은 드릴대 업스니 돌려두고 보리라.” 이 노래는 만년에 이 정자를 두고 읊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 건물은 간소한 양식의 건물이기는 하지만 역사적 의의가 크기에 1972년에 기념물로 지정되었는데 중수 때에 원형이 많이 달라졌을 것으로 보인다
■ 전남 장성(長城) 축령산(鷲靈山) 휴양림-전남 장성군 서삼면 모암리. [대공원역에서 250km, 3시간 22분, 소쇄원에서 50km, 52분]. 전남 장성군과 전북 고창군과 경계를 이루는 명산이며 독림가였던 춘원 임종국은 1956∼1989년까지 34년간 심혈을 기울여 축령산 일대에 삼나무 62㏊, 편백 143㏊, 낙엽송·기타 55㏊를 조림하여 벌거벗었던 산록을 늘 푸르게 한 전국 최대 조림성공지이다. 현재는 수고 20여m, 경급 40여㎝의 임목이 빽빽히 들어서 있어 국민의 보건휴양 및 정서 함양을 위한 야외휴양공간을 제공함과 동시에 쾌적하고 편리한 자연교육장으로 역할을 다하고 있다. 특히 침엽수림에서 방출되는 피톤치드는 심신이 맑아져 안정을 가져오며, 인체의 심폐기능 강화로 기관지천식, 폐결핵 치료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사유림으로 구역 면적은 260ha이라 한다.
이 축령산 휴양림은 장성 제2경이라 하는데, 전북 고창과 경계를 이룬 축령산(621.6m) 일대에는 4~50년생 편백과 삼나무 등 늘푸른 상록수림대 1,148ha가 울창하게 조성되어 있어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편백나무는 스트레스를 확 풀리게 하는 피톤치트라는 특유한 향내음이 있어 삼림욕의 최적의 장소로 널리 홍보되어 특히 국·내외 단체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곳으로 유명하다. 축령산 입구 괴정 마을에는 민박촌과 관광농원이 조성되었고, 산 중턱에 40여명의 동자승들이 수도하는 해인사의 진풍경, 산 아래 모암마을에는 통나무집 4동이 있어 체험하고 체류할 수 있는 관광을 즐길수 있고, 휴양림을 관통하는 임도를 지나가면 태백산맥과 내마음의 풍금을 촬영하던 금곡영화촌이 연결되어 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46D603A5634627821)
![](https://t1.daumcdn.net/cfile/cafe/220A243A5634627918)
![](https://t1.daumcdn.net/cfile/cafe/243C413A5634627A33)
![](https://t1.daumcdn.net/cfile/cafe/2130823A5634627B09)
![](https://t1.daumcdn.net/cfile/cafe/2504463A5634627C1A)
![](https://t1.daumcdn.net/cfile/cafe/273C3C3A5634627C04)
![](https://t1.daumcdn.net/cfile/cafe/272E493A5634627E0A)
![](https://t1.daumcdn.net/cfile/cafe/2663A5335634627F06)
![](https://t1.daumcdn.net/cfile/cafe/256725335634628002)
![](https://t1.daumcdn.net/cfile/cafe/24489E33563462811C)
![](https://t1.daumcdn.net/cfile/cafe/253F48335634628222)
![](https://t1.daumcdn.net/cfile/cafe/234281335634628320)
![](https://t1.daumcdn.net/cfile/cafe/2655EE335634628411)
![](https://t1.daumcdn.net/cfile/cafe/254AFC33563462841B)
![](https://t1.daumcdn.net/cfile/cafe/2741F33A5634628602)
![](https://t1.daumcdn.net/cfile/cafe/2541E23A5634628602)
![](https://t1.daumcdn.net/cfile/cafe/23292F3A563462880C)
![](https://t1.daumcdn.net/cfile/cafe/2127263A563462890D)
![](https://t1.daumcdn.net/cfile/cafe/275FC23A5634628A26)
![](https://t1.daumcdn.net/cfile/cafe/252D223A5634628B3A)
![](https://t1.daumcdn.net/cfile/cafe/2576CB3A5634628C1F)
![](https://t1.daumcdn.net/cfile/cafe/21292A365634628D07)
![](https://t1.daumcdn.net/cfile/cafe/231964365634628E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