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2회 대통령배고교야구대회에서는 덕수고 에이스 성영훈이 팀 창단 28년만에 감격의 우승컵을 안기며 초특급 투수의 탄생을 알렸다. 그러나 한국 고교야구의 역사의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스타플레이어들의 활약상은 상상을 뛰어 넘는다. 'SS타임머신'은 현재 각 팀에서 지도자나 구단 관계자로 활동하고 있는 야구인들의 고교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추억 속에 남아있는 그들의 눈부신 활약상을 되돌아 봤다.
▲ 고교 2학년때인 지난 75년 전국우수고교초청대회에서 경북고를 상대로 노히트 노런(17이닝)을 기록하며 경남고를 3관왕으로 이끌었던 초특급 투수 최동원. 최동원은 3학년 때 경남고를 첫 청룡기 우승으로 이끌었고,화랑대기 고교야구 준결승-결승에서 이틀동안 18이닝 1실점을 기록하는 등 믿을 수 없는 호투를 펼치며 '최고'라는 수식어를 동반했다.
▲ 2008베이징올림픽 야구대표팀의 감독이자 두산의 사령탑인 김경문. 77년 5월 대통령배야구대회서 주장으로 공주고를 우승으로 이끌었다.
▲ 77년 32회 청룡기우승팀이었던 대구상구 포수 이만수. 대구 출신인 그는 SK코치로 활동하는 지금도 대구 지역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 안경잡이 에이스 양상문. 78년 부산고는 고교선수 혹사를 막기위해 세 개 이상의 전국대회 출전을 금지시킨 문교부의 조치때문에 대통령배,청룡기,화랑기대회에만 출전해 모두 우승컵을 안았다. 세번의 결승에서 모두 완봉승을 거둔 양상문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 고교야구 얼짱 스타였던 선린상고 박노준. 79년 대통령배야구대회서 1학년임에도 불구하고 최우수선수상을 차지하며 많은 인기를 누렸다.
▲ 야구복 차림이 아니라 교복을 입고 건초가 실린 리어카를 끌고 있는 천안북일고 이상군. 훈련 중에도 틈이 날때마다 농삿일을 도왔던 그는 동네에서는 소문난 효자였고,고교야구에서는 뛰어난 제구력으로 80년 봉황대기와 화랑기에서 팀을 우승으로 이끈 뛰어난 투수였다.
▲ 80년대 초 이미 고교야구계의 스타였던 광주일고 선동열. 지금과는 너무나 다른 체격이 눈길을 끈다. 당시 선동열은 80년 봉황대기에서 경기고를 상대로 노히트 노런을 기록하면서 스카우트들의 표적의 대상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