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전쟁 반대로 젊은이들이
이른 바 히피족으로 평화를 추구한
음악이지요.
삶이 원하는 대로, 계획한 대로
이루워지지 않듯,
삶의 대부분이라 할 여행 또한
마찬가지여서,
여행 길엔 여러 에피소드가 생기는 거야
당연지사이고 그게 후일 추억담이 되지요.
허나,
몸이 아프면 정도의 크고 작은 것에
관계없이 그 여행은 고행일 수 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노구를 이끌고 가는 길은 더 말할
것이 없지 않겠는가요?
처음부터 고맙게 읽어주신 분들은 대강
짐작 했으리라 믿습니다만
출발부터 스트레스로 컨디션이
좋지 않았습니다.
7학년 7반, 곧 맴이 시키는 대로 움직여도
어긋남이 없다는 從心 후반에 아무리
옛 제자의 초대다 하드래도 분수 모르고
나댄 결과, 마지막 호치민 여행의 전 계획을
캔슬하고 야간 비상 귀국을 하였습니다.
꽃축제에 다녀온 저녁. 참고 참았던
스트레스가 최고조로 달했는지
입안이 온통 헐어버리고, 잇몸이
내려 앉아 치골이 날카롭게 솟아
입 안에 아무것도 넣을 수 없게 되었고
말하는 것 조차 거역스러웠습니다.
눕기만 싶어서 누웠어도 몸을 좌우로
움직이기도 힘들었습니다.
잠도 오지 않고,,,,,
이번 여행 길에서 앞으로 이틀 간의 월남의
호치민(사이공) 여행이 소생에게 특별한
의미를 둔 것이었는데,,,,,,,
한시라도 빨리 귀국해 병원에 가야겠다고 맴을
다잡았다.
예약한 투어회사, 호텔 등에 카드 지불한
돈이야 이 판국에 무슨 돈! 사람이 살고 봐야지.
이리저리 수배해서 제자네 뿔레이쿠에서
호치민 공항에
도착,
빠르게 연계되는 비행기는 그넘의 비엣제트 야간
1시 반 인천행 항공기 였다.
이 판국에 그넘이 뭐냐 죄석을 확보할 수
있었다는 그 것!
오우! 하느님 감사.
인간 만사가 변두리 할베의 馬이라드니
처음 국내 비향기로
하노이에서 제자네 공항에 올 때 그넘의 비엣제트
멋대로 출발 시간 변경, 공항의 캡슐 포드에서
고생한 것 땜시 베트남 항공으로 예약했는데
이 넘도 그 넘이다. (위 티켓의 윗 쪽 9:10분에
호치민에 도착해 역사공부를 하렸던 것을
아래 쪽 티켓으로 변경 18 : 40분 도착으로 변경)
헌데 이게 야간 비행시간으로 연계되다니,,참
그러닝게 위에서 두 번 째 17:20분 발 베트남 항공에
너덜너덜 해진 몸을 맡기게 됐다.(후에 알았지만 출발
시간 변경은 항공사 권한이라고..해서 자주 변경 시간을
확인할 의무는 승객에 있단다.)
몰골이 많이 구겨졌지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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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소한 호치민
사전 공부한 호치민 자료를 띄워
아쉬운 맴을 달래 보기로 한다.
호치민 공부의 하루는 메콩델타
밀림 수상 투어.
관광이라 별로 의미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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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하루는
우리 젊은 그 시절의 월남전
실체와 베트남의 정체성을
알고 싶었고,
언젠가 KBS 다큐에서
보고 감명받았던
지하 요새 꾸지터널(CUCI)을
진짜 보고 싶었다.
호치민시로부터 약 70km 떨어진 구찌에서
다시 약 30km 떨어진 곳에 구찌터널이 있습니다.
이 터널은 베트남과 프랑스 전쟁 (베트남이 이긴 전쟁)
시절에 처음 건설되기 시작해,
미국 – 베트남 전쟁 (베트남이 이김) 에도 공사를
했다고
구찌지역에 남베트남의 개방전선 거점이 있었고
바로 위 지상에는 미군부대도 있었단다.
(아래 사진과 글들은 인터넷에서)
지하요새 입구.(몸이 큰 미군은 들어갈 수 없다.)
특이한 건 타이어로 만든
슬리퍼식 군화란다.
미군들에게 발자취를 남기지 않으려 한
특이한 형식이라고.
잠입 후 정글 나뭇잎으로 은페.
체격이 작은 미군들로 구성된 특수부대
살상용 위장 입구란다.
미국은 베트남전에서 약 800만톤의 폭탄을 투하합니다.
만일 폭탄 1톤에 1명이 죽거나 다친다면 그 피해는
800만명이란 어림셈이 가능합니다.
이 폭탄양은 2차 세계 대전당시 독일군과
연합군이 사용한 모든 폭탄양의 3.5배 정도 되는
어마어마한 양입니다. 뿐만아니라, 미군은 많은 양의
네이팜탄과 고엽제도 살포했습니다.
그 규모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입니다.
구찌 터널은 규모가 매우 크고,
구조가 복잡합니다.
심지어는 미군부대가 위치한 곳의 지하에도
구찌터널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구찌터널은 매우 잘 설계된 전략적인 터널입니다.
곳곳에 미군의 공격을 대비해서 위장용 통로와
트랩을 만들어 놓았고 많은 인원이 오랫동안 터널 안에서
생활이 가능한 구조를 하고 있었죠.
베트콩들은 이 터널 안에 많은 병력과 무기를
숨겨 둘수 있어,효과적인 게릴라 전술이
가능했고 결국 미국과의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큰 요인이었습니다.
구찌터널을 방문하는 많은 베트남전 참전용사는
구찌 터널의 위치와 규모를 보면서
베트남전은 미국이 승리할 수 없는
전쟁이었다고 말하곤 한답니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했을 때,
전쟁의 결과는 어땠나요?
사담 후세인의 많은 정예 군대가 예상외로
참패하는 결과를 가져 왔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라크의 전쟁터는 엄폐물이
전혀 없는 사막이었습니다.
따라서, 막강한 화력으로 공격하는 미군은
이라크군을 상대로 쉽게 승리를
할 수 있었던 겁니다.
베트남은 서쪽으로는 높은 산악지대와
밀림이 많고 평지는 호수, 강, 늪지대가 많아
정규전 전투에는 불리한 지형이 아주 많습니다.
베트남전에서 미군은 핵무기를 제외하고
당시 갖고 있던 모든 무기를 동원해서
베트남전에 참전 했습니다.
예를 들면, 미국이 보유했던 거의 모든
함공모함이 번갈아 가며 베트남 전에 참전했습니다.
현대 역사상 유래가 없는 대규모의 항공기
폭격작전도 베트남전에서 있었고
미군이 베트남에 투하한 폭탄의 양만도 약800만톤으로
2차세계 대전중 모든 나라 군대가 사용한 폭탄의 양보다
몇배나 더 많은 양을 사용한 겁니다.
고엽제나 네이팜탄의 양도 어마어마할 정도로 많았지만,
미국은 베트남을 효과적으로 제압하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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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주월한국군사령관 고(故) 채명신 장군은 대표적인
야전형 전쟁영웅이다. 그는 6·25전쟁 때 ‘백골병단’이란
한국군 최초 게릴라부대를 이끌고 북한에 침투해 김일성의
오른팔로 불린 북한유격부대 총사령관(길원팔 중장) 일행을
몰살시킨 인물이다.
그런데 채명신 장군 회고록(베트남전쟁과 나)을
보면 1965년 3월 어느 날, 청와대에 불려가
박정희 대통령의 전투부대 파병 의중에
반대하는 장면이 나온다.
‘게릴라전에 정규군이 승리하려면 많은 희생이 따르며,
상대는 20년 가까운 실전경험으로
세계 최강의 게릴라로 성장했다’는 이유였다.
(한국일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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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호부대로 월남전에 참가한 동기의 말에 의하면
월남군 조차 대부분 호지명을 존경하여
월맹에 협조적이었고 월남의 민중이
혼연일체가 되어 베트콩과
월맹군에 협력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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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참 애국자 호지명을 중심으로 베트남인들의
목숨을 아끼지 않는 독립의지와 생존 본능이
거대 서구 열강 프랑스와 미국을 차례로 물리친
것이다.
어떤 명분으로도 전쟁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지만
명분 없는 전쟁은 상대가 정체성을 치키려는
확고한 의지가 있는 한 힘으로 제압할 수 없다는
소생의 느낌입니다.
야간 비행 끝에 비상 귀국,
바로 치료받고 안정되었습니다.
여행은 내 나라, 내 집이 있어
그 속에 다시 돌아와야 의미를
가지는 것이겠습니다.
-어줍잖은 긴 글과 사진 봐주셔서
참말로 고맙습니다.-
첫댓글 一雲님: " 늙으막 베트남" 에서 비상귀국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놀랐습니다. 해외에서 가장 두려운것이 건강문제인데, 고생이 많았겠습니다. 이젠 좀 회복하셨는지요?
오늘의 베트남 시골의 민 얼굴을 구수한 필법으로 전해주시는 것이 너무나 자미있어 매번 기다렸습니다만 이것으로 끝이군요. 실은 "사이곤" (지금은 호치민 이라하더군요)의 요지움이 몹시 궁굼했는데, 아쉽습니다.
제자분이 계셨기는 하지만 이국만리에서 생소한 체험을 하시느라고 수고가 많았겠습니다. 그러나 一雲님의 이 이색적이라 할 수 있는 체험수기는 필요한 곳에 소중한 문헌자료로 남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동안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몸조리 잘 하시기를 빕니다.
안녕하신지요?
지금까지
졸문과 사진을 또박이 읽어주시고
분에 넘치는
칭찬과 격려- 참말로
고맙습니다.
기행담을 올리고 있으니.
,,,
물론 지금은 말짱하지요.
또 소통거리를 맹글 때까지
내내 강녕하십시요.
一雲님: ' 늘그막 베트남 고행 -12 - <大尾 -비상귀국>' ..
마지막으로 꼭 가 보고 싶었던 호치민 (사이공)의 방문 계획을
심한 피로와 고통으로 취소한 채, 부득이 귀국길에 올랐던 것은
매우 유감스럽지만, 다행히 귀국후 안정을 되찾고 건강을 회복
하게 된 것은, 큰 다행이라 하겠습니다.
호치민에서 약 70Km 떨어진 곳에 설치된 '꾸지터널' 의 규모와
내용에 대한 소개에는 정말 놀랍고,이북의 땅굴이 연상 되기도
합니다. 발전하는 오늘날의 베트남을 상기하면서, 여러 영상들과
히피족들이 베트남 전쟁을 반대하며 평화를 추구한 노래라는
'San Francisco'- Be sure to wear some folwers in your harir' 도
들으면서 베트남에 대한 마지막 여행기,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환절기에 아무쪼록 건강에 유의하시고 안녕히 계십시요
第善 어르신 안녕하시지요?
소생 시리즈로 된 길고 어설픈 글과
사진에 한 회도 빠뜨리지 않으시고
댓글을 주시어 격려해주신 덕에
용기를 내어 끝까지 왔습니다.
참으로 좋은 인연으로 알고
감사드립니다.
천상 여행 매니어인지라
역마살이 시동 걸리면
또 어딘가로 가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때가 오면 소통을 할 수
있겠거니 기대합니다.
내내 강녕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