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日 간 민간 교류 초기였다.
그러니께
50 년 조금 넘게 흐른
1970년 - 그때의 이야깁니다.
괴등 때부터
꿈이었던 '안경광학'을 배우겠다는
젊은 혈기 하나로 일본에 가고자 했다.
헌데
가장 큰 난관은 유학 비자였다.
양국 소득 격차가 엄청났던 그 시절 ,
극소수 일본정부 국비 유학생이
아니면
일정 수준의 재정 능력이 있는
재일동포 또는 일본인의
법에 준한 공증서류 - 즉
'신원 및 재정 보증서'가 필수였다.
이게 난관 중 가장 높은 허들이었다.
생면부지였던
'이토오 시게루(伊藤 茂)'님!
'전생의 因緣이다.' 싶은 偶然으로
보증인이 되어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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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떠나셨단 걸 바람결에
듣고 15년(?) 여 -
'은혜를 갚진 못 할지언정,
고마운 맴을 표하지 않으면'!
'그렁게!~ 그게! ,,,,?' 하고
마음 한 구석에 무겁게 똬리를
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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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여행 후,
더 이상 몸이
쇠잔해지기 전 최소한의
사람 된 도리는 해야 되겠다고
작심하자 마음이 급해졌다.
아는 일본인들
통해 수소문 끝에 납골묘소가
있는 절(寺)을 찾아 참배한 기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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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 김에
이국에서 맵고 고단했던
그러나
아름답기도 했던
젊은 날 발길 따라 싸드락거리며
그 시절 ,그 세월을 잠시 붙잡아 (?)
추억해 봤습니다.
했더니,
가는 세월을 못 가게
붙잡을 수야 없겠으나,
추억하며 되살려 볼 수 있는
'현재의 삶'이 진정
고마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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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인 '이토오 시게루(伊藤 茂)'님의
고향인- 사도 (佐島)-의 노래
' 佐渡の恋唄 '
- 細川たかし
( 2분 정도 들으시다 중간 멈춤 하시길)
대전발 03시 29분 버스로 시작해서
인천공항을 뒤로하고
일본 나리타 공항에 내려,
쾌속 전차로 달린다.
철로변 주변의 가도 가도 끝이
안 나는 태양열 집열판.
우에노(上野)에 가까운
니시닛포리(西日暮里)역에서
국철, JR로 환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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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 ~ 눈에 익은 저그 저~
높이 싼 옹벽!
예 그대로네 그랴!
아득한 그때.
이토오님의 권유로 가입한
'로터리(ROTARY) 클럽'의
청년 조직 로타렉트(ROTARACT)에서
만나 많은 도움을 받았던
오가타 노부요시(諸方 信義) 군이 애써
찾아 준 납골묘의 절 소지지(總持寺).
요코하마의 JR線 츠루미(鶴見) 역에서
하차해서
엎어지면 코가 닿을 정도로 가깝다고
갈켜줬다..
(알게 모르게 세상이 확 ~ 변했다.
우리 카톡과 같은 ' LINE'이란
SNS 통신 메신저가 없었다면
오가타 군과 리얼 타임 연락이
될 법이나 할 건가?
약 5년 전만 했어도
묘소 참배는 어림도 없는 일!
- 증말 꿈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
역 출구에 절 안내판이...
꽤 큰 절인가 부다.
전통적으로 매장하는 우리와 달리
화장에, 대대로의 가족
납골묘로 절에 모신단
정도는 들어 알고 있었으나
직접 가서 본다는 것은
통과의례 문화 탐방의
의미 또한 있지 않겠는가?
오가타(諸方)로부터
야들 식
간단한 참배 의례를 폰으로 물었다.
먼저 조화인 佛花를...
(절 자체에서도 팔지만 비싸니
역 상가에서 사라고 칼켜주었다.)
相承이 이 종파의 祖師?
-( 묵직한 울림의 祖師 )
발소리가 들리는가? 라는....
여튼 굉장한 대찰이다.
일본의 이미자인
미조라 히바리와 함께
쇼화시대를 풍미한
신성일이 롤모델로 삼은 배우며 가수인,
'이시하라 유지로(石原 裕次郞)'를
비롯
유명 인사의 유골이 이곳에 있단다.
(오가타 군의 말)
보시라! 경내 벚꽃!
눈이 부시도록 찬란하다.
야들의 벗꽃 사랑은 참 각별하다.
물어 물어 종무소에
신발 벗고 조심스레 들어가서
온 자초지종을
떠듬거리며 설명하고 묘소 위치를
알려주십사 했다.
사무僧이 신청서를 내밀더니
기입하라고 해서
각 란을 하나하나 물어가며 썼다.
뒷 쪽 책상의 윗 격인 듯싶은
스님에게 제출하고 컴으로 조사하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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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인 伊藤 茂란 고인의 이름을 가진
동명이인의 묘가
3개 여서 확실한 장소를 알 수 없단다.
헉!
머릿속이 하얘진다.
알 턱이 없는
부인 또는 아들의 이름을
아느냐고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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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에 출발, 산 넘고 물 건너왔건만
눈앞이 깜깜.
망연자실로 있었더니
'혹 고인의 거주지 주소를 아십니까?'
후다닥,
'사가미하라(相模原) ㅡ다음은 모릅니다.'
뒤에 있던 종무승 하나가
'아~ 이토오 병원의 이토오 선생님!'
후유~
묘소 번지를 알려 주고
17열의 7번 묘에 표시한 안내도.
낙심천만의 가슴이 가라앉지 않아
떨린 손으로 셔터질 허니
사진이 요 모양
경건!
-오가타(諸方)군 가르침대로-
1. 조화를 좌우에 신중히 꽂고서,
1. 꽃집에서 산 향봉지를 사르고
1. 절에서 준 정화수를
뿌려 묘비를 씻었다.
경건하게 배를 드리고,
두 손 모아 기도를
드리니 님의 환하게
웃는 얼굴이 아련히
아른거린다.
잘 왔다.
잘 했다.
무거웠던 마음이
눈 녹듯 사라진다.
가벼운 걸음으로
찬란하게 개화된 벗꽃을
뒤로 절을 나와 .
오가타(諸方) 군과
저녁 약속 장소로.
마중나온
오가타 노부요시(諸方信義) 군
(7학년 9반이단다.)
참말로 고맙고 고맙다!
저녁 식사 식당으로,
이제 우리에게도 많이 있는
いざかや(居酒屋)。
.
(약주를 엄청 즐겼던 소생.
연식이 그 樂을 빼앗아 가-
술의 유혹에 빠지지 않으려,
여기저기 편의점을 찾아 논알콜
캔맥주(?)를 준비하는 고생을
일본에서는 할 필요가 없었다.
아사히, 기린 등 모든 회사에서
병으로 공급되어 음식점에
어김없이 있으니...
얏호~!
베트남엔 아예
논알콜이 없어 고생했는데,,,,)
밤 늦게 까지 회포를 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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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아침 부터는 50 년 전 그때의
발자취를 밟아 보려
초기 약 3개월 머물렀던
사가미하라(相模原)로,
이름은 그대로되
역 구조는 완존히 바뀌어
역간판이 없었으면 알 수가
없네 그랴!
아~ 옛날이여~!
예약한 역 근처 호텔의 조식 풍경
우리와 같이 마스크 착용은
권장이다. 조그만 호텔인디,
음식을 입에 넣을 때를 제외코 착용,
또,
국과 밥을 뜰 때는 반드시
비닐 장갑 착용.
야들 청결의식과 위생관념은
대를 있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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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봐주셔서 고맙습니다.
다음은 토오쿄(東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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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극히 개인사적인 내용이어서
망서렸습니다만
늘그막 소일꺼리로 썼습니다.
심기 거스렸다면 惶恐之事입니다.
첫댓글 一雲님: 반갑습니다. " 베트남 기행문"에서 아쉽게 헤어진 후, 다시 만나게 되어 너무나 반갑습니다. 이번에는 일본 기행문이군요. 그 특유의 구수한 화법으로 자상하게 소개하시는 옛 은인의 お墓参り의 기사는 감명 그 자체입니다.
기억이 납니다... 옛날에는 해외유학에는 꼭 현지인의 신원재정보증서를 필요로 했지요. 그런데, 누가 알지도 못하는 미개국의 젊은이에게 선듯 이런 보증을 해 줍니까? (소생도 경험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선생께서는 伊藤씨를 만나서 청운의 꿈을 펼 수 있엇으니 참으로 행운아 였습니다. 上野,西日暮里、相模原、... 소생도 옛날에 몇번 다녀 본 懐かしい 지명들입니다. 相模原는 夏目漱石의 소설 "こころ"에도 등장하는 유서깊은 墓園이 있는 곳으로 알고 있습니다. 總持寺 境内 모습, 居酒屋의 이야기 등, 이번에도 자상한 사진을 곁드린 흥미있는 기사 참 좋았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기사를 많이 기대합니다. 건강에 유의하십시요.
안녕하세요?
逸泉 어르신.
소생은 해방둥이로
식민지배를 벗어난
해에 태어났으나
오랫동안
和風의 서민문화
풍속은 있었지요.
선친과 모친이 가끔
일어로 대화할 때는
뭔가 낯설고 혼동스러운
적도 있었고요.
초등 3학년 까지도
반 급우를 다다오(忠雄)
로 부르면서 이상하네는
했습니다.
오랫동안 일본적 사회
에 젖어 살다 보니
자연스러운 현상이겠지요.
항차 어르신은 그 시절의
정서가 진하겠지요.
어쨌거나
졸문과 여행 사진이
옛날 그리움을 일으켜
주고 공감을 하신다니
보람입니다.
내내 강녕하십시요.
一雲남: ' 아~ 옛날이여! 01. <은인 묘소 참배 -お墓まわり>'
우선 이번 여행기를 읽으면서 一雲남:께서는 너무도 대단한 일을
하셨다는 생각을 하게 되며, 아마도 돌아가신 伊藤 茂 선생에게도
그 뜻이 틀림없이 전달 되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1970년 경의
해외 여행은 신원 보증, 재정 보증 등, 난관이 참으로 많았던 시절인
데도, 생명부지의 분이 보증인이 되어 준 점은, 행운의 신과 같은
존재라 하겠습니다. 伊藤 氏의 권유로 가입했던 ROTARY 클러부에서
알게 된 緒方信義의 안내를 받아서 石原裕次郎도 안치되어 있다는
납골묘소, 總持寺를 찾아 참배하고 무거운 짐을 벗었다는 그 기분을
읽으며서 뜻 깊은 여행기,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요.
안녕하세요?
第善 어르신.
성실하고
편한 댓글 고맙게
읽고 있습니다.
逸泉님과 거의 같은
연배이실 것으로 사료되어
어르신의 和風적 애틋한
정서에 대한 소생 느낌은
逸泉님의 댓글에 올린 것과
같습니다.
이번 묘소 참배에
분수에 넘는 격려와
위로를 주신 점
참으로 고맙습니다.
내내 강녕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