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캘리포니아는 상하의 나라이다.
그러나 지구의 공전에 따른 온도의 변화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금년은 다른 곳 같으면 봄이 지나고 여름에 해당하는 따뜻한 날씨가 다른 해보다도 빨리 왔다는 것이 현지 대중매체들의 보도였다.
그러면서 매체들은 독사와 독충에 주의하여야 한다는 경고를 실었다.
들판이나 숲에 별 생각 없이 발을 들여놓는 사람은 절기보다 일찍 동면에서 깨어난 독을 지닌 동물이나 독충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본래 사막지대였던 이 지역의 수자원 고갈이나 지진 등은 보이지 않으면서도
근본적인 이 지역의 불안 요인이지만, 독을 가진 동물들은 더 단적으로
상하의 나라 이곳이 완전한 낙원은 아니라는 것을 상기하게 한다.
지진은 몰라도 수자원 문제는 날씨가 더운 미국의 서남부 사막지방에
잠재하여 있는 큰 문제의 하나이다.
야생동물의 문제도 두루 존재한다.
애리조나 주에도 방울뱀이라든가 전갈과 같은 독을 가진 동물들이 있다.
또 하나의 그러한 동물인 독도마뱀 힐라몬스터(hilamonster)는 애리조나 서남부의 소노라 사막지대에 많이 서식한다.
-해로운 동물도 공존할 권리-
나는 캘리포니아를 떠나 애리조나 투산에 갔다가 힐라몬스터에 대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한번은 힐라몬스터가 집에 붙어 있는 차고에서 발견되었다.
그리하여 시청에 연락을 하고 시청에서 담당관들이 나와 이놈을 잡았다.
스스로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시에 신고를 하는 것이 정당한 절차이기 때문이다.
거기에도 전문성이 필요한 것이다.
소방대원처럼 차린 덩치 큰 사람들이 손바닥만한 동물을 처리하려고 출동하는
광경을 상상하면 저절로 웃음이 나올만한데, 더 우스운 것은 포획한 동물을
처리하는 방식이었다.
야단이 난 듯 달려온 사람들이 기껏 한 일은
그 놈을 잡아 뒤뜰 밖에 버리는 일이었다.
담장 밖으로 버려진 힐라몬스터가 다시 집안으로 침범해
들어올 수 있을 게 아닌가.
그러나 다른 도리는 없다는 것이다.
나에게 깊은 인상을 준 것은 이 우스꽝스러운 크고도 작은 행동이었다.
힐라몬스터를 담장 밖에 버리는 것으로 그치는 것은 그럴 이유가 있는 것이다.
법에 규정된 절차가 해로운 동물의 자리를 옮기는 경우에도 그 옮기는 범위를
50m 이내로 제한하고 있는 것이다.
동물에게는 익숙한 서식지가 있게 마련인데, 이동 거리의 제한은 이동의 범위를
서식지에 제한하기 위한 것이다.
힐라몬스터는 이빨에 독을 가지고 있는 위험스러운 동물이다.
그러면서도 그것은 애리조나가 보호하고자 하는 동물의 하나이다.
사람이 살고 아이들을 기르고 하는 데서는, 말할 것도 없이
그 피해로부터 사람을 보호하는 조처도 필요하다.
두 가지의 모순된 보호의 필요를 조화시켜보려는 것이 위에서
말한 힐라몬스터의 처리 절차에 표현되어 있는 것이다.
독을 지니고 있는 동물들도 각도를 달리하여 보면, 그 나름으로 창조와 진화의
신비를 나타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내가 본 힐라몬스터는 그 비늘의 정교함이며 비늘들이 교차하면서 이루는 색깔의
문양으로 하여 유기체의 신비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할만한 작은 동물이었다.
그거야 어쨌든 이러한 동물도 살 권리가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일이다.
이것을 인정하면, 물론 그 생존의 조건을 보장해주려는 노력이 필요해진다.
그러나 사람이 살고 아이를 기르는 곳에서, 그것이 사람에게 불편한 일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불편하거나 불쾌한 야생동물과의 공존의 문제를 한번에
속 시원하게 해결하는 방법은 없다.
경계하고,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그러면서도 그들의 삶의 터를 인정하는-
끊임없는 되풀이를 필요로 하는 이러한 작업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유일하게 합리적인 대처방법인 것이다.
-개혁입법 정교한 검토필요-
법과 제도는 구체적인 삶의 현실을 섬세하게 다루지 못하는 것이 보통이다.
법대로 한다는 말이 무서운 말이 되는 것은 불법 행위자에게만
그러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애리조나 투산 시의 독성 동물에 대한 처리 절차는 법이나 공공제도가
요구하는 획일적 사고의 경직성을 넘어 삶의 구체적인 조건을 섬세하게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한편으로 문제의 근본과 전체를 부여잡고 있으면서,
다른 한편으로 전체의 구성 요소와 그 변화에 섬세한 주의를 기울인다.
새로 구성되는 국회는 개혁 국회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것은 새로운 입법 행위를 통하여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나 그 개혁 입법들은 일시적인 문제의식에 의하여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이면서도 정치한 현실 이해를 담은 것이 되어야만 진정한 사회 발전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우리의 희망이 쉽게 현실이 되지 않을는지도 모른다.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예를 들건대, 가령 국회의원 면책특권을 철폐하자는
주장이 있다.
그런 주장이 나오게 된 경위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지나치게 간단한
면책특권의 제거는 독제체제로부터 민주화 과정으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국회에서나마 유지되었던 최소한도의 비판의 공간을 없애버리는 결과가
될지도 모른다.
근본적이고 정치한 고려의 필요는 정부 정책의 경우에도 요구된다.
최근에 나오는 서울대학 평준화 논의도 그러한 경우이다.
역대 정부는 대학의 문제를 입시제도라는 열쇠를 통하여 풀어보려
시도한 일이 많았다.
사회 평등 또는 특권 배분의 균등을 향하려는 압력이 강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서울대학 평준화의 논의도 같은 맥락에서 일어난다고 할 수 있다.
대학 평준화의 경우 우리가 모범으로 삼을 만한 대표적인 나라는 독일이다.
그러나 최근에 사민당이 그 평등주의 정책의 수정을 시도하면서,
독일의 평준화된 대학제도를 개편하여 대학들을 정예화하여야 한다는 논의가
강하게 대두되고 있다는 점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그 이유의 하나는 지금의 독일 대학들이, 가령 미국이나 유럽의 다른 나라에
비하여, 사회가 필요로 하는 과학과 기술을 창출해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것도 대학의 문제를 지나치게 실용적인 관점에서 접근한 것이라고 하여야
하겠지만, 이러한 요구가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대학 교육기회의 평등화에 대한 요구는 정당한 요구이다.
그러나 대학과 학문은 국가의 어떤 요구에 봉사하고, 개인들의 재능과 기회를
서열화하고, 또는 평등화의 조건하에서 그것을 균등화하는 외에 보다 본질적인
다른 여러 기능들을 가지고 있다.
개혁이 어떤 것이든지 간에 이 여러 기능-서로 모순되기도 하는 여러 기능-을
전체적으로 섬세하게 생각하는 것이라야 할 것이다.
-모순해소보다 균형이 먼저-
위에서 말한 것은 비근한 예를 들어본 것이다.
총체적이고 섬세한 검토는 더 중요한 많은 개혁안들의 발의에서 더욱
절실한 것이 될 것이다.
일시적이고 단편적인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일도양단의 단호함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는 삶의 현실을 쉽게 왜곡할 수 있다.
문제의 총체를 이루는 많은 사항들이 때로는 서로 모순의 관계에 있고,
이 모순을 제거하면 삶의 질서 자체가 깨어질 수도 있다.
낙원이 아닌 인간 사회에서 문제의 해결은 모순의 해소가 아니라 균형에서
찾아지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앞으로 제시될 개혁의 방안들이 근본적이면서 정치한 생각을 거쳐 나오는
것이 되기를 희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