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마원(馬援)의 계형자엄돈서(誡兄子嚴敦書)
마원(馬援)은 후한(後漢)의 장군으로 왕망이 세운 신(新)나라에서 벼슬을 했으나 왕망의 정책에 반대하는 반란이 전국 각지에서 일어나자 왕망의 정적(政敵)들과 손잡고, 결국에는 광무제(光武帝:25~57/58 재위)를 도와 후한(後漢)을 세운 신하가 되었다.(25-220) 화남(華南)지방의 태수(太守)로 임명되어 남쪽으로 지금의 북베트남에 이르는 지역까지 중국의 지배권을 다시 확립했다. 45년에는 북방 국경지대로 파견되어 중앙아시아의 흉노족을 제압하는 데 힘썼다. 마원은 죽은 다음 신(神)으로 받들어졌고 근대에 이르기까지도 중국 남부의 광서(廣西)지방에서는 파도를 잠재우는 해신(海神)으로 받들어졌다.
다음은 그의 조카인 마엄(馬嚴)과 마돈(馬敦)형제를 타이르는 글이다. 평소에 남의 비평을 좋아하고 좋지 않은 친구를 사귀는 것을 보고 다음과 같이 타일렀다.
계형자엄돈서(誡兄子嚴敦書-조카 엄과 돈에게 경계시키는 글)-마원(馬援)
援兄子嚴敦(원형자엄돈) : 마원의 조카 마엄과 마돈이
並喜譏議(병희기의) : 다른 사람을 비평하기를 좋아하고
而通輕俠客(이통경협객) : 항상 경박한 무리들과 친하게 지냈다
援前在交趾(원전재교지) : 마원이 전에 교지에 있을 때
還書誡之曰(환서계지왈) : 그들에게 서신을 보내 다음과 같이 훈계했다
吾欲汝曹聞人過失(오욕여조문인과실) : 너희들이 다른 사람의 잘못을 들으면
如聞父母之名(여문부모지명) : 너희 부모님의 이름을 듣는 것처럼
耳可得聞(이가득문) : 귀로는 듣지만
口不可得言也(구불가득언야) : 입으로는 감히 말할 수 없기를 바란다.
好論議人長短(호논의인장단) : 남의 장단점에 대해 언급하기를 좋아하고
妄是非正法(망시비정법) : 멋대로 당시 정치에 대해 비평하는 것
此吾所大惡也(차오소대오야) : 이것을 가장 싫어한다.
寧死不願(녕사불원) : 차라리 죽을지언정
聞子孫有此行也(문자손유차행야) : 자손들이 이렇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다
汝曹知吾惡之甚矣(여조지오악지심의) : 너희들은 내가 이런 일을 몹시 싫어한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所以復言者(소이부언자) : 그러나 내가 다시 이야기하는 까닭은
施衿結褵(시금결리) : 딸을 시집보낼 때, 노리개를 채워주고 향주머니를 매주면서
申父母之戒(신부모지계) : 거듭 부모로서 훈계하는 것처럼
欲使汝曹不忘之耳(욕사여조불망지이) : 너희들이 평생 잊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龍伯高敦厚周愼(용백고돈후주신) : 용백고와 같은 사람은 돈후하고 신중하여
口無擇言(구무택언) : 입으로 다른 사람의 잘못을 말하지 않았다
謙約節儉(겸약절검) : 겸손하고 검소했으며
廉公有威(렴공유위) : 청렴하고 공평하며 위엄도 있었다.
吾愛之重之(오애지중지) : 내가 그를 존경하고 소중히 여기니,
願汝曹効之(원여조효지) : 너희들도 그를 본받기 바란다.
杜季良豪俠好義(두계량호협호의) : 두계량이라는 사람은 호방하고 의협심이 있다.
憂人之憂(우인지우) : 다른 사람의 근심을 함께 근심하고
樂人之樂(락인지락) : 다른 사람의 기쁨을 함께 기뻐했다
淸濁無所失(청탁무소실) : 선인이나 악인을 두루두루 사귀어
父喪致客(부상치객) : 부친이 돌아가셨을 때
數郡畢至(수군필지) : 여러 지역에서 많은 손님이 왔다
吾愛之重之(오애지중지) : 내가 그를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지만
不願汝曹効也(불원여조효야) : 너희들은 그를 본받기를 바라지 않는다.
效伯高不得(효백고불득) : 용백고를 본받고자 하다가 본받지 못하면
猶爲謹敕之士(유위근칙지사) : 오히려 조심하고 삼가는 선비가 되리니
所謂刻鵠不成(소위각곡불성) : 이는 소위 고니를 깎으려다가 제대로 못하면
尙類鶩者也(상류목자야) : 오히려 비슷한 오리를 깎게 되리라.
效季良不得(효계량불득) : 두계량을 본받지 못하면
陷爲天下輕薄子(함위천하경박자) : 세상에 경박한 무리로 빠져들어
所謂畵虎不成(소위화호불성) : 소위 호랑이를 그리다가
反類狗者也(반류구자야) : 도리어 개를 그리려는 격이 될 것이다
訖今季良尙未可知(흘금계량상미가지) : 지금 두계량이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해서
郡將下車輒切齒(군장하차첩절치) : 그가 부임하자 이를 갈고 그를 미워했다
州郡以爲言(주군이위언) : 고을 사람들이 모두 이를 화제로 삼았는데
吾常爲寒心(오상위한심) : 나는 그 때문에 항상 마음이 섬뜩하였다.
是以不願子孫効也(시이불원자손효야) : 나의 자손들은 그를 본받지 않기를 바란다.
마원(馬援)은 지인용(智仁勇)을 갖춘 덕장(德將)이었다. 형의 두 아들(조카)들의 행실이 사람을 비방하고 행동이 경박한 것을 보고 훈계한 글이다.
첫 번째로 ‘남의 과실(過失)을 듣거든 마치 내 부모의 이름을 들은 것처럼 조심해서 듣기만하고 입으로 말하지 말라.’ 고 경계한 후, 나는 남의 장단점을 입으로 올리는 것을 죽기보다 실어한다. 또한 내 자손들이 그와 같은 경박(輕薄)한 일을 저지르고, 나라 정치에 대하여 왈가왈부하는 일을 경계하니, 마치 자식을 출가시키는 부모가 향주머니를 달아주면서 간곡히 당부하는 마음이다.
에를 들면 용백고(龍伯高)라는 사람은 성품이 돈후(敦厚)하고 매사에 신중(愼重)하였으며, 겸손(謙遜)하고 검소(儉素)하며, 청렴(淸廉)하고 공평(公平)하면서 위엄(威嚴)도 있었고, 남의 허물을 말하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여 그 사람을 본받기를 권고하니, 만일 똑같은 사람이 못되더라도 항상 조심하고 근신(謹愼)하는 선비는 될 것이다. 이는 마치, 고니 새를 조각하려다가 실패하더라도 오리모양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 한사람 두계량(杜季良)이란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은 성품이 호방(豪放)하여, 사람이 근심하면 따라서 근심하고, 사람이 즐거워하면 따라서 즐거워한다. 청탁(淸濁)을 가리지 않고 다 잘해주더니, 그가 부모상을 당했을 때 많은 사람이 찾아와서 문상(問喪)하였다. 나는 너희들에게 두계량을 닮지 않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두계량은 호인(好人)이지만 그를 따라하려다가 닮지 못하면 자칫 경박한 사람으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치 호랑이를 조각하려다가 이루지 못하면 개를 조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두계량이 임지에 부임했을 때, 그 고을 사람들이 그를 이해하지 못하고 이를 갈며 미워하였는데, 내가 그 생각만 하면 마음이 섬뜩 하였었다. 부디 너희들은 두계량을 본받지 말기를 바란다.
매우 절도 있고, 현실적인 충고요 가르침이었다. 맹자(孟子)어머니의 삼천지교(三遷之敎)를 연상시키는 교훈이다. 실패하더라도 가까이 접근해서 근접할 수 있는 도리를 가르치고 있다. 옛날의 장군은 용맹하기 이전에 매사에 달관(達觀)했던 것 같다. 내가 이 교훈을 읽으며 많은 것을 느낀다.
2. 최원(崔瑗)의 좌우명(座右銘)
최원(崔瑗)은 후한(後漢)의 학자로 학문이 높았고 글씨에 일가를 이룬 분으로 호를 자옥(子玉)이라하였다.(78-143) 처음으로 좌우명을 지었는데, 좌우명(座右銘)이란 스스로 지켜서 행할 덕목들을 짓고 그 내용을 쇠붙이에 조각해서 항상 거처하는 자리 좌우에 두고 읽으면서 스스로 일깨우는(自警) 글이다. 최자옥선생은 서예에도 뛰어났고, 특히 초서에 일가를 이루어서 후세에 서법가 들이 그의 세체(書體)와 논지(論旨)에 따랐다. 그의 “초서세(草書勢)”에는 초서를 쓸 때에 다음과 같은 점을 유의하라는 유명한 교훈이 있다. ‘획을 꺾을 때는 붓을 옮기지 않는다.(絶而不移), 올려다보거나 내려다보아도 법도에 맞아야한다.(俯仰有儀), 글씨를 쓰는 세력이 단 한 획이라도 옮기지 말아야(一劃不可移) 글씨가 호방하고 편안해서 생동감이 넘치고 기이하다(放逸生奇)고 하였다. 인생의 이치에 통달하면 모든 사물에 적용할 수 있는가보다.
좌우명(座右銘)-최원(崔瑗)
無道人之短(무도인지단) : 남의 단점을 말하지 말고
莫說己之長(막설기지장) : 자기의 장점도 자랑하지 말라.
施人愼勿念(시인신물념) : 남에게 주었으면 마음에 두지 않도록 조심하고
受施愼勿忘(수시신물망) : 은혜를 받았거든 잊지 말도록 주의하라
世譽不足慕(세예부족모) : 세상이 칭찬하는 것은 부러워 할 일이 아니니
唯仁爲紀綱(유인위기강) : 오로지 어진 마음으로 기강으로 삼으라.
隱心而後動(은심이후동) : 숨긴 마음으로 행동하면 되지,
謗議庸何傷(방의용하상) : 비방하는 말에 어찌 마음을 상하랴
無使名過實(무사명과실) : 명분이 실체에 지나치지 않게 조심하고
守愚聖所藏(수우성소장) : 어리석은 듯 행동하는 일은 성인께서도 행하셨다.
在涅貴不淄(재열귀불치) : 검은 곳에 잠겨 있어도 검게 되지 않아야 귀하니
曖曖內含光(애애내함광) : 여명(黎明)같은 어둠 속에서 광명을 지녀라
柔弱生之徒(유약생지도) : 부드럽고 약한 것은 살아있다는 것이니
老氏誡岡强(노씨계강강) : 노자(老子)도 ‘굳세고 강하지 말라’고 경계하였다
行行鄙夫志(행행비부지) : 그저 용기만 넘치는 평범한 사람은
悠悠故難量(유유고난량) : 도대체 무었을 하려는지 짐작하기 어렵다
愼言節飮食(신언절음식) : 말을 삼가고, 음식을 절제하여
知足勝不祥(지족승불상) : 족함을 알고, 재앙을 이겨라
行之苟有恒(행지구유항) : 이것들을 항상 지켜나가면
久久自芬芬(구구자분분) : 오래되면 저절로 삶이 향기로우리라
세상 사람들이 범하기 쉬운 사항을 조목조목 들어 가르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1,900년 전에 벌써 오늘도 지켜야할 덕목을 일깨워준 선인들의 깨달음은 존경스럽다. 다시 한 번 풀이해 정리하려한다.
“남의 단점을 들춰내어 흉보지 말고, 자신을 내세워 자랑하기를 좋아하면 덕이 없고 경박해 보인다. 작은 것을 베풀면서 생색을 내거나 받은 고마움을 곧 잊고 살면 덕이 되지 못한다. 세상이 나를 칭찬하는 일은 좋아할 일이 아니다. 오히려 잘못을 지적해주어야 고쳐가며 살아가니, 묵묵히 어진 마음으로 살기를 힘쓰라. 마음이 움직여 주관대로 행동하면 되지, 그로 인하여 남의 비방을 받더라도 개의치 말라. 명분만 내세워 허명을 구하지 말라. 옛 성현들도 본색을 감추고 어리석은 듯 행동하였다. 마음이 정결하면 몸이 검정 물에 젖어도 물들지 않으리니, 마치 여명 속에 빛이 숨어 있는 것과 같다. 물처럼 부드럽고 약하게 살아라. ‘그 유약(柔弱)함이 가장 강강(岡强)하다’고 노자(老子)는 가르쳤다. 사려 없이 용기만 넘치면 하는 일이 실수가 많은 법이다. 항상 말과 행동을 삼가고, 먹고 사는 일을 절도 있게 하여, 매사에 분수를 지켜 스스로 만족할 줄 알아라. 이와 같은 것들을 꾸준히 행하면 세월이 지난 뒤에 너의 인생에서 향기가 풍겨나리라.”
3. 중장통(仲長統)의 낙지론(樂志論)
중장통(仲長統)의 자는 공리(公理)며, 후한(後漢)시대의 산양(山陽)사람이다. 학문을 좋아하고 문사(文辭)가 풍부하였다.(179-219) 처음엔 출사(出仕)를 피하고 초야에 은거(隱居)하며 스스로 즐거워(自樂)하는 삶을 즐겼으나 후에 조조(曹操)의 군사(軍事)가 되기도 하였다. 호방하여 거침없이 자기주장을 토(吐)하고 초야에 묻혀 살면서도 재상들과 그 경지를 바꿀 수 없는(不換三公) 경지의 마음으로 살았다. 이때에 지은 아래 글은 유명한 명문(名文)으로 후세에 많은 사람들에 의하여 회자(膾炙)된 글이다.
락지론(樂志論)-중장통(仲長統)
使居有良田廣宅(사거유양전광택) : 내가 사는 곳에 좋은 밭과 넓은 집이 있어
背山臨流(배산임류) : 산을 등지고 시내가 앞으로 흐르며
溝池環匝(구지환잡) : 물도랑과 연못이 집을 둘러 있고
竹木周布(죽목주포) : 대나무 숲이 집을 둘러싸여 울타리가 되었다.
場圃築前(장포축전) : 타작마당과 채소밭이 앞에 펼쳐져 있고
果園樹後(과원수후) : 과수나무들이 뒤에 심어져 있다
舟車足以代步涉之難(주차족이대보섭지난) : 배나 수레가 있어 길을 걷거나 물을 건너는 어려움을 대신하고
使令足以息四體之役(사령족이식사체지역) : 부릴 사람이 있어 몸으로 하는 수고를 대신해 준다.
養親有兼珍之膳(양친유겸진지선) : 부모님을 봉양할 때는 맛있는 음식도 있고
妻孥無苦身之勞(처노무고신지로) : 처자식에게는 몸을 괴롭히는 수고가 없다
良朋萃止則陳酒肴以娛之(양붕췌지칙진주효이오지) : 좋은 친구들이 모여오면 술과 안주를 준비해서 즐기며
嘉時吉日則烹羔豚以奉之(가시길일칙팽고돈이봉지) : 좋은 때 좋은 날이면 양과 돼지를 삶아 제사를 지낸다.
躕躇畦苑(주저휴원) : 밭이랑이나 동산을 거닐고
遊戱平林(유희평림) : 평지의 숲에서 놀며
濯淸水(탁청수) : 맑은 물에 몸을 씻고
追凉風(추량풍) : 시원한 바람을 쏘인다.
釣游鯉(조유리) : 헤엄치는 잉어를 낚시질하고
弋高鴻(익고홍) : 높이 날아가는 기러기를 화살로 잡기도 한다.
風於舞雩之下(풍어무우지하) : 기우제 제단의 아래에서 바람을 쏘이다가
詠歸高堂之上(영귀고당지상) : 나의 정자로 시를 읊으며 돌아온다.
安神閨房(안신규방) : 조용한 방에서 마음을 평안히 하여
思老氏之玄虛(사노씨지현허) : 노자(老子)의 현묘한 사상을 생각해보고
呼吸精和(호흡정화) : 정신의 조화로움을 호흡하여
求至人之彷彿(구지인지방불) : 지인(至人)과 닮아지기를 구해본다
與達者數子(여달자수자) : 학문에 통달한 몇몇 사람과
論道講書(논도강서) : 도를 논하고 책을 강술하며
俯仰二儀(부앙이의) : 하늘과 땅을 내려다보고 올려보며
錯綜人物(착종인물) : 고금의 인물을 종합하여 평가해본다.
彈南風之雅操(탄남풍지아조) : 남풍의 전아한 가락을 타보고
發淸商之妙曲(발청상지묘곡) : 청상(淸商)의 미묘한 가락을 연주한다.
逍遙一世之上(소요일세지상) : 세상을 초월한 그 밖에서 놀며
脾睨天地之間(비예천지지간) : 천지의 사이의 사물을 흘겨보면서
不受當時之責(불수당시지책) : 세상일에 책임을 지지 않고
永保性命之期(영보성명지기) : 타고난 목숨대로 영원히 보존한다.
如是則可以凌霄漢(여시칙가이릉소한) : 이와 같이 하면 은하계의 하늘을 넘어서
出宇宙之外矣(출우주지외의) : 정신이 우주 밖으로 나갈 수 있을 것이니
豈羨夫入帝王之門哉(기선부입제왕지문재) : 어찌 제왕의 문 들어감을 부러워하겠는가?
낙지(樂志)란 말은 ‘자신의 뜻대로 즐거워한다.’는 말이다. 뜻은 곧 마음이니 마음이 즐겁다는 것은 행복하다는 말이다. 사람의 행복은 그 삶이 만족해야하는 데, 사람마다 자족(自足)하는 기준이 달라서 획일적으로 정의하기는 힘들다. 이 낙지 론을 쓴 중장통은 41세에 세상을 떴지만, 그가 젊은 시절에 이미 인생을 일찍 달관해서 보통사람들이 추구하는 부귀공명은 안중에 없었지만, 이 글을 읽어보면 다분(多分)히 이상과 현실을 집합했음을 알 수 있다.
사람이 행복하려면 기본적으로 삶의 조건을 갖춰야하고, 그 것도 이상적으로 갖춰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먼저 사는 집의 좌처(坐處)가 이상적이다. 여기서 ‘집 이 산을 등지고 시내를 앞에 두고(背山臨流)’는 풍수지리(風水地理)학적으로 이상적인 양택(陽宅)의 모습이다. ‘텃밭에 물을 댈 도랑이 흐르고, 대나무 숲은 울타리가 되고, 앞에는 텃밭이 펼쳐지고, 고일나무들은 뒤뜰에 심겨져 있는(溝池環匝 竹木周布 場圃築前 果園樹後)’ 모양은 가장 이상적인 집의 형태다. 우선 내가 살 집이 마음에 드는 모든 조건을 구비하고 있다.
다음은 생활여건이 만족해야한다. ‘ 물길에 이용할 배도 있고, 타고 다닐 수레가 있어 건너고 걸어 다닐 걱정이 없다. 부릴 사람이 있어 어려운 일을 대신해 줄 수도 있으며(舟車足以代步涉之難 使令足以息四體之役), 좋은 음식으로 부모님을 봉양할 수 있고, 처자식들 고생시키지 않으며(養親有兼珍之膳 妻孥無苦身之勞), 좋은 벗들이 모이면 술과 안주를 대접하고, 명절 때면 양과 돼지를 삶아 제사도 지낼 수 있다(良朋萃止則陳酒肴以娛之 嘉時吉日則烹羔豚以奉之)’ 이처럼 물질적인 풍요가 갖추어져야한다는 것이다.
즉, 의식주(衣食住)가 해결된 뒤에는 고상(高尙)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 들이나 정원을 산책하고, 숲속에서 놀이도 해본다. 맑은 시냇물에서 몸을 씻고 언덕에 올라 시원한 바람을 쐬어본다. 연못에서 잉어도 낚아보고 활을 당겨 공중에 나는 기러기도 쏘아본다. 옛날 공자(孔子)가 하셨던 것처럼, 기우제(祈雨祭)를 지내던 무우(舞雩)언덕 아래서 바람을 쐬다가 시를 읊으며 나의 정자로 돌아온다.’
‘조용한 방에서 정신을 편안히 하여 노자의 현묘한 사상을 생각해보고, 숨쉬기를 조절하며 정신을 집중해서 도의경지에 도달한 사람을 닮아본다.(安神閨房 思老氏之玄虛 呼吸精和 求至人之彷彿) 밖에서 돌아와서는 정신적 수양으로 자신을 수련하기도 한다.
다시 일상(日常)으로 돌아와서 ‘학문에 통달한 고상한 벗들과 모여 도에 대한 것과 책에 관한 내용을 의논하고, 천지에 신비한 일들도 따져보며, 옛 사람들의 살아온 일도 이야기해본다. 흥이 나면 시경(詩經)의 남풍(南風)편도 거문고가락에 실어서 타보아 맑고 고상한 상성의 음율(商音)도 발성(發聲)해본다. 세상을 초월한 세계에 놀아보고 자연의 이치를 바라본다. 세상의 잡다한 일에 책임지지 않고(不受當時之責) 주어진 천명대로 스스로 보전한다.(永保性命之期) 이처럼 살면 땅위에 살아도 나의 정신이 하늘 은하계(銀河系)를 넘어 우주(宇宙)밖에서 소요(逍遙)함 같으리니, 나 어찌 제왕의 문을 부러워하겠는가?’ 라고 하였다.
주어진 여건이 열악해도, 열악한 환경을 잊고 스스로 자족(自足)하며 살아간 선인(先人)들도 있었다. 공자의 제자 안회(顔回)나 시인 도연명(陶淵明)같은 분이다. 그러나 부모처자를 굶기면서 정말 마음이 편안했을지는 의문이다. 살아 있는 사람은 최소한의 의식주(衣食住)가 해결된 뒤에 마음의 평정을 얻게 마련이다. 살기 위한 수단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불의(不義)를 자행(恣行)한다면 마음이 편할 수는 없으리라. 순리(順理)로 얻은 재물위에 평안한 마음을 얻어서 자신의 뜯을 즐기는(樂志)의 세계야말로 현실적이고 이상적이지 않을까?
즐거워할 조건이 충족되고도 즐기지 못하는 사람 많고, 비교적 다 갖추지는 못하였어도 그 것으로 만족하며 사는 사람이 더러는 있다. 나의 경우는 선생이 추구하는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있으나 게으르고 부족하여 다 즐길 줄 모르니 항상 부끄러울 뿐이다
. 백거이(白居易)의 속좌우명(續座右銘)
백거이(白居易)는 중당시대(中唐時代)의 시인으로 자는 낙천(樂天), 호는 향산거사(香山居士), 시호는 문(文)이다. 백거이는 800년 29세 때 최연소로 진사에 급제했다. 당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을 노래한 장편 시 〈장한가 長恨歌〉에는 부인에 대한 작자의 사랑이 잘 반영되어 있다.(766~826)
백거이는 문학 창작을 삶의 보람으로 여겼다. 그가 지은 작품의 수는 대략 3,840편이라고 하는데, 그의 작품은 형식이 다양하여 고체시(古體詩)·금체시(今體詩:율시)·악부(樂府)·가행(歌行)·부(賦)의 시가에서부터, 지명(誌銘)·제문(祭文)·찬(贊)·기(記)·게(偈)·서(序)·제고(制誥)·조칙·주장(奏狀)·책(策)·판(判)·서간(書簡)의 산문작품에 이르기까지 모든 문학형식을 망라했다. 또한 그는 훌륭한 친구를 많이 사귀었는데, 친구들과 서로 주고받은 시문에는 친애의 정이 물씬 배어 있다. 특히 원진(元稹) 및 유우석(劉禹錫)과의 사이에 오간 글을 모은 원백창화집(元白唱和集)과 유백창화집 (劉白唱和集)은 중당시대의 문단을 화려하게 장식한 우정의 결실이라 일컬어진다.
4.속좌우명(續座右銘)-백거이(白居易)
勿慕富與貴(물모부여귀) : 부와 귀를 바라지 말고
勿憂賤與貧(물우천여빈) : 빈천을 근심하지 말라
自問道何如(자문도하여) : 도리가 어떠한가를 스스로 물어봐야지
貴賤安足云(귀천안족운) : 어찌 족히 귀천만을 말 하겠는가?
聞毁勿戚戚(문훼물척척) : 비방을 들어도 걱정 말고
聞譽勿欣欣(문예물흔흔) : 칭찬을 들어도 기뻐하지 말라
自顧行何如(자고행하여) : 행실이 어떠한가를 스스로 돌아봐야지
毁譽安足論(훼예안족론) : 어찌 족히 훼방과 칭찬만을 논하는가?
無以意傲物(무이의오물) : 내 생각으로 남에게 오만하지 말아서
以遠辱于人(이원욕우인) : 남으로부터 굴욕 당함을 멀리하라
無以色求事(무이색구사) : 아부하는 낯빛으로 일 하지 말고
以自重其身(이자중기신) : 자신의 몸을 자중하라
游與邪分歧(유여사분기) : 놀 때는 사악함과 멀리하고
居與正爲隣(거여정위린) : 평소 살아감에는 정직함과 이웃하라
於中有取捨(어중유취사) : 매사에 중용에서 취하고 버리며
此外無疏親(차외무소친) : 이것 외에는 친하고 소원함을 없이 하라
修外以及內(수외이급내) : 밖을 닦아서 내면에 미치게 하고
靜養和與眞(정양화여진) : 온화함과 진실 됨을 조용히 길러라
養內不遺外(양내불유외) : 내면을 길음에 외면을 버리지 말고
動率義與仁(동솔의여인) : 의리와 사랑으로 행동하라
千里始足下(천리시족하) : 천릿길도 첫걸음에서 시작하며
高山起微塵(고산기미진) : 높은 산도 미세한 티끌이 모여 높아진다.
吾道亦如此(오도역여차) : 나의 도리도 또한 이와 같아서
行之貴日新(행지귀일신) : 행하여 날마다 새롭게 됨을 귀하게 여긴다.
不敢規他人(불감규타인) : 감히 남을 규제하지 못하여
聊自書諸紳(료자서제신) : 애오라지 스스로 여러 옷 띠에 적어두고
終身且自勖(종신차자욱) : 죽을 때까지 스스로 힘써서
身沒貽後昆(신몰이후곤) : 죽은 뒤에는 후손까지 미치길 바란다.
後昆苟反是(후곤구반시) : 후손 중에서 진실로 이를 어기면
非我之子孫(비아지자손) : 결코 나의 자손이 아니다.
선생의 좌우명은 감명 깊은 내용이다. “사람이 사는 도리(道理)와 그 도리를 제대로 실천하고 있는지를 생각해야지, 빈부(貧富)와 훼예(毁譽)에 집착할 일이 아니다.”라 전제하고,
“사람 앞에서 교만하지 말고 윗사람에게 아부하면서 출세를 꿈꾸지 말라. 잘 못되면 그 욕됨이 자신에게 돌아온다.”고 경계한다.
“놀더라도 사악한 곳에서 하지 말고 정직한 마음으로 이웃과 사귀되, 매사에 중용의 마음을 지키라. 밖으로 실천해서 속마음을 살찌게 하고 항상 온화하고 참된 마음을 길러라.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 시작이고, 높고 큰 태산도 작은 먼지가 쌓여서 된 것임을 명심해서, 비록 작은 일이라도 하나하나 실천하라.”
“나의 이 교훈을 매일 행하여 하루하루 새로운 삶을 살아라. 나는 이 글을 허리에 맨 끈에 써서 한 평생 이를 지키며 살았다. 나의 후손들 중에 만일 나의 가르침을 저버리는 자가 있다면, 그는 나의 자손으로 여기지 않으리니, 모두 명심(銘心)하라.”고 강력히 권고한다.
5. 유우석(劉禹錫)의 누실명(陋室銘)
유우석(劉禹錫)은 중국 당대(唐代)의 문학가며 철학가로 자는 몽득(夢得)이다.(772~842) 유종원(柳宗元)과 교분이 매우 두터워서 '유유'(劉柳)라고 병칭(竝稱)되기도 했으며, 항상 백거이(白居易)와 시문(詩文)을 주고받는 등 사이가 좋았기 때문에 '유백'(劉白)이라고도 병칭(竝稱)되었다. 그의 시는 통속적이면서도 청신하며 그의 대표작으로 죽지사(竹枝詞)가 유명하다.
다음에 소개하는 글 누실명(陋室銘)은 그가 안휘성자사(安徽省刺史)로 있을 때 그가 거처하던 방의 이름을 누실(陋室)이라 짓고 그 이유를 적은 글이다. 그는 자신이 거처하는 방을 ‘비좁고 초라한 방’이라 하여 누실(陋室)이라 이름 지으니, 이 말은 공자(孔子)가 그의 제자인 안회(顔回)의 안빈락도(安貧樂道)를 칭찬해서 말한 “德있는 군자가 그 나라에 있으면 오랑캐의 나라라 하더라도 陋(누)라 말할 수 없다“고 한 말에서 따온 것이다. 본문을 보자.
陋室銘(누실명)-유우석(劉禹錫)
山不在高(산불재고) : 산이 높지 않아도
有仙則名(유선즉명) : 신선이 있으면 유명한 산이고
水不在深(수불재심) : 물이 깊지 않아도
有龍則靈(유용즉령) : 용이 있으면 신령한 물이다.
斯是陋室(사시루실) : 이곳은 비록 누추한 집이나
惟吾德馨(유오덕형) : 오직 나의 덕으로도 향기가 난다
苔痕上階綠(태흔상계록) : 이끼 낀 흔적은 계단을 오르며 푸르고
草色入簾靑(초색입렴청) : 풀빛은 창문의 발을 통해 더욱 파랗다.
談笑有鴻儒(담소유홍유) : 담소하는 덕망이 높은 선비가 있을 뿐
往來無白丁(왕래무백정) : 왕래하는 비속한 사람은 없다.
可以調素琴(가이조소금) : 꾸미지 않은 거문고를 타고
閱金經(열금경) : 경서를 살펴볼 수도 있다.
無絲竹之亂耳(무사죽지란이) : 듣는 음악은 귀를 어지럽히지 않고
無案牘之勞形(무안독지로형) : 관청의 서류로 몸을 수고롭게 하지 않는다.
南陽諸葛廬(남양제갈려) : 남양(南陽) 제갈량(諸葛亮)의 초가집이나
西蜀子雲亭(서촉자운정) : 서촉(西蜀) 양자운(揚子雲)의 정자와 같으니
孔子云(공자운) : 공자께서도 이르시기를
何陋之有(하루지유) : 군자가 거하면 무슨 누추함이 있을까" 라고 하였다.
이 유우석의 누실명(陋室銘)은 단지 81자로 간결(簡潔)하게 누실(陋室)의 정황(情況)을 남김없이 기술하였으며, 내용의 묘사(描寫)는 더 없이 아름답고, 함축(含蓄)된 사상은 매우 전아(典雅)하며, 문장의 격조(格調)는 풍류한정(風流閑靜)한 멋이 넘쳐서 많은 시인 묵객이 음서(吟書)하는 명문(名文)으로 후세(後世)에까지 널리 알려져 있다.
산이 높다 하여 명산(名山)이 아니다, 신선이 살고 있어야 명산이다. 물이 깊다 하여 신령스러운 물이 아니고, 용이 살고 있어야 신령스러운 물이다. 여기 이 방은 누추하기는 하지만, 이곳에 사는 오직 나의 덕성이 향기롭다. (山不在高 有僊則名. 水不在深 有龍則靈. 斯是陋室 惟吾德馨.)
이끼는 섬돌 위에까지 덮어 오르며 푸르고, 풀빛은 문 앞에 드리운 발을 넘어 들어와 방안을 푸르게 물들인다. 이곳에 모여 담소하는 사람들은 모두 덕 높은 선비들뿐, 비속(卑俗)한 사람들은 왕래하지 않는다. 장식이 없는 소금(素琴)의 줄을 고르고, (苔痕上堦綠 艸色入簾靑. 談笑有鴻儒 往來無白丁. 可以調素琴)
옛 성인의 금옥 같은 경서(經書)를 열람하며, 기녀들을 불러서 듣는 어지러운 음악소리도 없고, 세상의 잡다한 일에 시달리지 않아서 좋다. 이곳을, 남양(南陽)의 제갈량(諸葛亮)이 은거(隱居)하던 초려(草廬)나 서촉(西蜀)의 성도(成都)에 살던 양웅(揚雄)의 재주정(載酒亭)에 비교해 볼까? “공자(孔子) 말씀하시길, 군자가 살고 있다면 어찌 누추한 방이라 할 수 있는가?“ 하지 않았는가? (閱金經. 無絲竹之亂耳 無案牘之勞形. 南陽諸葛廬 西蜀子雲亭. 孔子云 何陋之有.)
이상의 문장구성을 보면 용어(用語)와 구법(句法)등에 변화의 묘를 주어서, 문장의 시작(始作)은 사언(四言)의 정중한 체(體)로 기술하였다. “산이 높기만 하거나 물이 깊기만 해서 유명한 것이 아니라 신선이 살고, 용이 산다면 유명하고 신령한 것이, 마치 사람 사는 방이 크고 좁은 것보다는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의 덕향(德香)이 배어 있어야 유명하다.” 고 전제하고, 자신이 사는 방은 비록 누추하지만, 산 속의 신선과 물속의 용처럼 자신의 덕의 향기가 서려 있어서 누추하지 않다고 술회한다.
다음은 자신의 방을 오언시(五言詩)의 형태로 표현하였는데, “사람의 왕래(往來)가 드물어서 오르는 계단에 푸른 이끼가 점점 덮여 오르며 푸르고, 창문에 쳐 놓은 대발 사이로 정원의 녹음이 더욱 푸르게 비쳐서 싱그럽다. 때때로 도량이 넓고 시문에 능한 선비들 찾아와 큰소리로 웃고 즐기며, 세속적인 사람들 찾아오지 않는다. 장식 없는 거문고도 가끔 타보고, 성현들이 남긴 금옥 같은 경전도 펴고 읽는다. 잡다한 술판에서 듣는 가무소리도 없고, 세상에 책임질만한 서류를 대하며 고민할 일도 없다.
이만하면, 옛날 남양(南陽)땅에서 은거(隱居)하던 제갈공명(諸葛孔明)의 초가집이나, 서촉(西蜀)의 현인 양자운(揚子雲)이 유유자적(悠悠自適)하던 재주정(載酒亭)과 비길만하지 아니한가?
성인 공자(孔子)도 제자인 안회(顔回)가 안빈락도(安貧樂道)하는 모습을 보고 “군자가 사는 곳엔 어찌 누추함이 있겠는가?(君子居之 何陋之有)” 라고 하지 않았던가?“ 라고 하였다.
유우석은 고상한 문장가이며, 깊은 통찰력을 지닌 철학자였다. 이는 진실로 선비의 풍모다. 격도 갖추지 못하고 선비인척하거나, 남의 일을 모방해서 단지 흉내를 내며 사는 자칭 은자들은 깊이 자성할 일이다. 자신의 생각이 행동과 일치되지 못하면 이처럼 심금(心襟)을 울리는 글이 나올 수 없으리라. 사물을 관조(觀照)하는 마음도 자신의 수양이 없으면 깊은 통찰력이 발휘될 수 없으리라. 이 명(銘)을 대할 때마다 나는 부끄러움을 느낀다.
. 최충(崔沖)의 계이자시(戒二子詩)
최충(崔沖)의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호연(浩然), 호는 성재(惺齋)·월포(月圃)·방회재(放晦齋)이다. 구재학당(九齋學堂)을 세워 유학을 보급하고 인재를 양성함으로써 문교(文敎)의 진흥과 사학(私學) 발전에 크게 공헌하여 해동공자(海東孔子)로 칭송되었다.
戒二子詩(두 아들을 훈계한 시)
吾今戒二子 나는 이제 두 아들을 경계하며
付與吾家珍 우리 집안의 보물을 주려한다
淸儉銘諸巳 청렴과 검소함을 마음깊이 새겨두고
文章繡一身 문장으로 나의 몸을 장식하라
傳家爲國寶 집안에 전하여 나라의 보물이 될 것이며
繼世作玉臣 대를 이어 임금의 신하가 될 것이다.
莫學紛華子 허영을 숭상하는 사람을 본뜨지 말라
花開一餉春 꽃이 피어도 봄 한철뿐이니라
중국에서 공자(孔子)는 온 천하가 우러르는 성인(聖人)이다. 그 분을 본받아 살았던 고려의 학자 최충(崔沖)선생은 우리나라의 공자(海東孔子)였다. 슬하에 두 아들에게 준 위의 시는 간결(簡潔)하면서 곡진(曲盡)한 뜻을 담고 있다. 다시 한 번 글의 뜻을 풀이해 본다.
“나는 지금 나의 두 아들에게 가보처럼 경계하는 말을 주고자한다. 마음속엔 청렴(淸廉)함과 검소(儉素)함을 간직하고, 하문을 닦아 문장(文章)으로 옷을 입으라. 안으로는 집안에 나의 뜻을 전수하되 국보(國寶)를 다루 듯하고, 밖으로는 대대로 옥같이 귀한 신하가 되도록 하라. 허영심에 날뛰는 주위사람들을 본받지 마라. 너희들도 본 것처럼, 꽃은 아름다워도 봄 한철뿐인 것이다.”
누구나 자식의 부모가 되어서 자식에게 이만한 교훈을 줄 사람 몇이나 있겠는가? 이와 같은 조상의 당부를 듣고 배척할 자손이 있겠는가? 선생의 이 짧은 교훈을 읽으며 나 스스로 부끄럽다.
7. 석개(石介)의 격사홀명(擊蛇笏銘)
석개(石介)는 중국 북송(北宋) 때의 학자로 자는 수도(守道). 연주(兗州) 봉부(奉符) 사람이다. 진사과(進士科)에 급제한 후 지방관으로 있다가 부모가 죽자 추라이 산(徂徠山) 밑에서 농사를 지으며 역(易)을 가르쳤다. 후에 국자감(國子監) 직강(直講)이 되자 따르는 학자들이 많아 이때부터 국자감이 점차 융성하게 되었다. 괴설중국론(怪說中國論)을 지어 불가(佛家)와 노가(老家)의 설(說)을 공격했고, 당감(唐鑑)을 지어 간신·환관·궁녀들의 폐단을 비판했다.(1005~1045)
여기서 홀(笏)이란 조정조회(朝廷朝會)에 입조(入朝)하는 대신들이 손에 드는 조각의 하나로 대나무로 만들어 그날의 회의 순서를 기록하기도하고, 지시하상을 비망록처럼 기록하는 대나무조각이다. 벼슬아치들은 보통 이 홀을 항상 소매 속에 넣어 지니고 다녔다. 여기서 격사홀(擊蛇笏)이란 말은 “뱀을 공격한 홀”이란 뜻이다. 본문을 다 읽은 뒤에 다시 풀이하겠다.
격사홀명(擊蛇笏銘-뱀을 공격한 홀에 대한 명)-석개(石介)
천지란 지극히 큰데, 그 사이에 사악한 기운이 끼어 흉악하고 포악한 짓을 하고 남을 상하게 하고 해치는 짓을 하는데도, 멋대로 행하도록 내버려 두어서 마치 천지가 이들을 양육하며 전혀 막지 않고 있는 것만 같다.
(天地至大 有邪氣干於其間 爲凶暴 爲殘賊 聽其肆行 如天地卵育之而莫禦也)
사람이 가장 영특한 존재인데, 간혹 특이한 물건들이 겉으로 나타나서 이상스럽고 괴이한 짓을 하고 음란하고 미혹된 짓을 하는데도, 그 이상한 단서를 내버려두어서, 마치 사람들이 이것들을 덮어주어 드러나지 않도록 해주는 것만 같다.
(人生最靈 或異類出於其表 爲妖怪 爲淫惑 信其異端 如人蔽覆之而莫露也)
상부(祥符) 연간에 영주의 천경관(天慶觀)에 요망한 뱀이 있었는데 매우 괴이하였다. 고을의 자사(刺史)는 하루에 두 번이나 그 마당으로 찾아가서 절하고, 사람들은 그것을 용이라 생각하여 온 고을 사람들이 안팎과 멀고 가까움을 가릴 것 없이 모두 그 문 앞으로 달려가 절하고, 공경스럽고 엄숙히 절하는 일을 누구도 감히 게을리 하지 않았다.
(祥符年 寧州天慶觀 有蛇妖 極怪異 郡刺史日兩至於其庭朝焉 人以爲龍 擧州人內外遠近 岡不駿奔於門以覲 恭莊肅祗 無敢怠者)
지금 용도대제(龍圖待制)벼슬의 공공(孔公)이 그 때 이 고장 자사의 막료로 일하고 있어서 그 곳 자사를 따라 천경관 마당에까지 따라갔었다. 공공이 말하기를, “밝으면 예악이 있고, 어두우면 귀신이 있다. 이 뱀은 속임수가 아니겠는가? 우리 백성들을 미혹시키고 우리 풍속을 어지럽히고 있으니 용서 않고 죽여야만 하겠다.”고 하면서 손에 들었던 홀로 뱀의 머리를 쳐서 그의 앞에서 죽이고 말았는데, 그 뱀은 아무런 이변도 드러내지 않았다. 고을의 자사와 안팎의 멀고 가까운 백성들이 몽매함으로부터 환하게 깨어나 푸른 하늘을 보고 밝은 해를 보듯 깨달았다. 그래서 뱀은 흉악하고 사람을 헤치는 짓을 멋대로 하지 못하고 요상함으로서 미혹시키는 일을 성공시키지 못하였다. 역경(易經)에 이르기를, “이런 까닭에 귀신의 실상을 알게 된다.” 하였는데, 공공을 두고 한 말인 듯하다.
(今龍圖待制孔公 時佐幕在是邦 亦隨郡刺史於其庭 公曰 明則有禮樂 幽則有鬼神 是蛇不以誣乎 惑吾民 亂吾俗 殺無赦 以手板 擊其首 遂斃於前 則蛇無異焉 郡刺史曁內 遠近庶民 昭然若發蒙 見靑天覩白日 故不能肆其凶殘 而成其妖惑 易曰 是故知鬼神之正裝 公之謂乎)
하늘과 땅 사이에는 순수하며 강직하고 지극하고 바른 기운이 있어서 혹은 물건에 뭉쳐지기도 하고 혹은 사람에게 뭉쳐져 있게도 된다. 사람에겐 죽음이 있고, 물건에는 다하는 때가 있으나, 이 기운만은 타오르듯 열망하지 않고 억만 년에 걸쳐 언제나 존재하는 것이다
(夫天地間 有純剛至正之氣 或鍾於物 或鍾於人 人有死 物有盡 此氣不滅烈烈 彌亘億萬世而長在)
요임금 때에는 간사한 자를 가리키는 풀이 되었었고, 노나라 때에는 공자가 소정묘를 베는 칼날이 되었었고, 진나라와 제나라에 있어서는 동호와 남사의 붓이 되었었고, 한나라 무제 시대에는 동방삭의 창이 되었었고, 성제 때에는 주운의 칼이 되었고, 동한에 있어서는 장강의 수레바퀴가 되었었으며, 당나라에 있어서는 한유의 논불골표(論佛骨表)와 축악어문(逐鰐魚文)이 되었고, 또 단수실이 모반한 주차를 쳤던 홀이 되었는데, 지금 와서는 공공(孔公)의 격사홀(擊蛇笏)이 된 것이다.
(在堯時 爲指佞草 在魯 爲孔子誅少正 在晉在齊 爲董史筆 在漢武帝朝 爲東方朔戟 在成帝朝 爲朱雲劒 在東漢 爲張綱輪 在唐 爲韓愈論佛骨 逐鰐魚文 爲段太尉擊朱泚笏 今爲公擊蛇笏)
故佞人去(고녕인거) : 그래서, 간사한 자들이 떠나가
堯德聰(요덕총) : 요임금의 덕이 밝아졌고,
少正卯戮(소정묘륙) : 소정묘를 죽임으로써
孔法擧(공법거) : 공자의 법도가 드러났으며,
罪趙盾(죄조순) : 임금을 죽인 진나라 조순의 죄를 밝혀서
晉人懼(진인구) : 진나라 사람들을 두려워하게 하고
辟崔子(벽최자) : 제나라 임금을 죽인 최저를 내침으로써
齊刑明(제형명) : 제나라의 형법이 밝아졌었다.
距董偃(거동언) : 한나라에 와서는 동언의 방자함을 막고
折張禹(절장우) : 장우의 간사함을 꺾었으며,
劾梁冀(핵량기) : 양기의 부정을 탄핵하여
漢室乂(한실예) : 한나라가 잘 다스려졌었다.
佛老微(불로미) : 한유로 말미암아 불교와 도교가 쇠약하여지자
聖道行(성도행) : 성인의 도리가 행하여지게 되었고,
鰐魚徙(악어사) : 악어가 도망가자
潮患息(조환식) : 조주의 환난이 없어졌으며,
朱泚傷(주차상) : 반란을 일으키려던 주차가 부상함으로써
唐朝振(당조진) : 당나라는 세력을 떨쳤으며,
怪蛇死(괴사사) : 괴이한 뱀이 죽자
妖氣散(요기산) : 요상한 기운이 흩어졌었다.
아아! 하늘과 땅은 순수하고 강직하고 지극하고 바른 기운을 공공의 홀에 모아 놓았으니, 어찌 한 마리 뱀만을 죽이는데 그치고 말겠는가? 궁전 섬돌 아래 임금을 속이고 백성들 중에서 부모의 뜻을 받들어 효도를 하는 백성을 속이는 자가 있으면 공공은 홀로 그를 지적할 것이다. 묘당 위에 현명함을 가리고 법을 어기고 기강을 어지럽히는 악한 행위를 덮어주는 자가 있다면 공공은 홀로 그를 물리칠 것이다. 조정안에 아첨하는 얼굴에 간사한 빛을 띄우고 사악한 자들에 붙어 올바름을 배반하는 자가 있다면 공공은 홀로 그를 칠 것이다.
(噫天地鍾純剛至正之氣 在公之笏 豈徒斃一蛇而已 軒陛之下 有罔上欺民 先意順旨者公以此笏指之 廟堂之上 有蔽賢蒙惡違法亂紀者 公以此笏麾之 朝廷之內 有諛容佞色附邪背正者 公以此笏擊之)
夫如是(부여시) : 그렇게 하면
則軒陛之下(칙헌폐지하) : 궁전 섬돌 아래
不仁者去(불인자거) : 어질지 못한 자들이 떠나게 될 것이고,
廟堂之上(묘당지상) : 묘당 위에는
無奸臣(무간신) : 간신이 없게 될 것이고,
朝廷之內(조정지내) : 조정안에는
無佞人(무녕인) : 간사한 위인이 없게 될 것이니,
則笏之功也(칙홀지공야) : 그것은 홀의 공로라 할 것이다.
豈止在一蛇(기지재일사) : 어찌 한 마리 뱀을 없애는 데에 그치겠는가?
公以笏爲任(공이홀위임) : 공공은 이 홀로써 책임을 수행하고,
笏得公而用(홀득공이용) : 홀은 공공을 만나 제대로 쓰이게 된 것이다.
公方爲朝廷正人(공방위조정정인) : 공공은 지금 조정의 올바른 사람이 되어있고,
笏方爲公之良器(홀방위공지량기) : 홀은 지금 공공의 훌륭한 연장이 되어 있다.
敢稱德于公(감칭덕우공) : 감히 공공과 덕을 대칭시키며
作笏銘曰(작홀명왈) : 다음과 같은 홀 명을 짓는다.
至正之氣(지정지기) : 지극히 올바른 기운
天地則有(천지칙유) : 하늘과 땅 사이에 있는데,
笏爲靈物(홀위령물) : 홀은 신령스런 물건
笏乃能受(홀내능수) : 홀이 그것을 받았네.
笏之爲物(홀지위물) : 홀이란 물건의 성질은
純剛正直(순강정직) : 순수하고 강직하여 바르고 곧은데
公惟正人(공유정인) : 공공은 올바른 사람이라
公乃能得(공내능득) : 공이 그것을 얻게 되었네.
笏之在公(홀지재공) : 홀은 공소에 있어서
能破淫妖(능파음요) : 음란함과 요사스러움을 깨뜨리고
公之在朝(공지재조) : 공은 조정에 있어서
讒人乃消(참인내소) : 남을 모함하는 자를 없애네.
靈氣未竭(령기미갈) : 신령스런 기운 다하지 않는다면
斯笏不折(사홀불절) : 이 홀 부러지는 일 없을 것
正道未亡(정도미망) : 바른 도리 없어지지 않는다면
斯笏不藏(사홀불장) : 이 홀 감추어지지 않으리라.
惟公寶之(유공보지) : 오직 공이 이를 보배로 간직했으니
烈烈其光(열열기광) : 훨훨 그 불빛 발하게 하리라
석개(石介)선생은 역학(易學)의 대가로 유교이외의 다른 학문을 배척한 분이다. 마음을 다스리고 행동함에 있어 공(公)과 사(私)를 엄격히 구분하고, 반드시 바른 길로 가도록 하라는 것이다.
“하늘과 땅(天地)이 비록 넓고 크지만, 그 안에 간사하고 흉포한 것들이 널려 있는 것은 마치 천지가 그들을 놓아길러서 그대로 놓아두는 것 같고. 만물 중에 사람이 가장 영특하다지만, 요망하고 음란하며 이단을 믿는 것을 보면 사람이 그 것들을 덮어주어서 세상에 드러내지 않는 것 같다.“ 고 전제하고,
영주 땅에 있는 천경관(天慶觀)이란 곳에 요망한 뱀이 살았는데 그 고을 자사(刺史)로부터 모든 백성들이 뱀을 용이라 하고, 하루에 두 번씩 찾아가 절하고 공경하였다. 그 때 공공(孔公)이라는 사람이 자사를 따라가 뱀을 보고 말하기를 “밝은 곳에는 예(禮)가 있고, 어두운 곳에서는 귀신(鬼神)이 있다 했으니, 이 뱀은 용이 아니라 백성을 속이고 풍속을 어지럽히는 요물이다.” 하고 소매 속에서 홀(笏)을 꺼내어 뱀에게 내리쳐서 뱀을 죽였다.
이 이야기를 하면서, 과거 중국에서 당시에 각종폐단을 일으켰을 때, 현자가 나와서 해결했던 예를 들어 그 결과를 하나하나 설명하고, 끝으로 홀에 대한 명(笏銘)을 지었다.
8. 사마온공(司馬溫公)의 독락원기(獨樂園記)
사마온공(司馬溫公)의 이름은 광(光)이고 자는 군실(君實)이며 세상이 그를 속수선생(涑水先生)이라 불렀다. 북송(北宋)때 사람으로 그의 시호(諡號)인 태사온국공(太師溫國公)에서 이름을 따 온공(溫公)이라 불렀다.(1019-1086) 송나라 철종 때에 재상(宰相)의 위에 올랐으며 왕안석이 만든 신법(新法)을 개정하였다. 그의 저작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은 자치통감(資治通鑑) 294권을 저술한 것이었다. 이 자치통감은 편년체(編年體)로 엮어진 중국의 방대한 통사(通史)이며, 한(漢)의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이후 최대의 통사로 매우 중요한 사서(史書)이다.
그가 만년에 향리(鄕里)에 은거(隱居)하며 지은 독락원기(獨樂園記)는 그 뜻이 고상(高尙)하여 후세에 많은 선비들이 따라 살기를 즐거워하는 글이었다. 원래는 이 글의 앞과 뒤에 전사(前辭)와 후사(後辭)가 있었다. 본문(本文)을 읽기 전에 먼저 전사를 읽고, 본문을 다 읽은 뒤에 후사를 읽으면 전체의 대의(大義)가 더욱 명확해진다.
“맹자가 말하기를‘혼자 즐기는 일이 사람들과 더불어 즐거움을 즐기는 것만 못하고, 몇 사람과 즐기는 일이 많은 사람과 즐거움을 즐기는 것만 못하다.’고 하였는데 이런 방식은 왕이나 대인들이 즐기는 방식이고 우리 같이 가난하고 미천한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이다. 또 공자가 말하기를 ‘거친 밥을 먹고 물이나 마시고 팔베개하고 잠을 잘지라도 그 속에 즐거움이 있다.’고 하였으며, 그분의 제자 안회(顔回)는 ‘한 사발의 밥과 한 표주박의 물을 마시면서도 자신의 즐거움을 찾아서 어느 것과도 바꾸지 않았다.’ 고 했으니 이런 즐거움은 성현(聖賢)들이나 할 수 있는 즐거움이지 나 같은 어리석은 자는 할 수 없는 일이다.
(孟子曰 獨樂樂 不如與人樂樂 與少人樂樂 不如與衆樂樂 此王公大人之樂 非貧賤者所及也 孔子曰 飯蔬食飮水 曲肱而枕之 樂亦在其中矣 顔子 一簞食一瓢飮 不改其樂 此聖賢之樂 非愚者所及也)
대개, 뱁새가 숲에 둥지를 만들 때는 작은 나무 한 가지만 있으면 되고, 두더지가 강물을 마신다 해도 배부르면 더 마시지 못하는 것, 모두가 자기 분수(分數)에 안주(安住)하면 되는 것이다. 이것이 이 못난 늙은이의 즐기는 방식이다. 내가 처음으로 고향인 낙양(洛陽)에 내려와 5년 동안 살면서 정원 가운데 집을 짓고 책 5천권을 모아 진열하고 이 집을 부르기를 독서당(讀書堂)이라 했다. 그리고 많은 시간을 이곳에서 책을 읽었다.
(若夫 鷦鷯巢林 不過一枝 偃鼠飮河 不過滿腹 各盡其分而安之 此乃迂叟之所樂也 迂叟始家洛五年 爲園其中爲堂 聚書五千卷 命之曰讀書堂 迂叟平日 多處堂中讀書)“
독락원기(獨樂園記)-사마광(司馬光)
迂叟平日讀書(우수평일독서) : 나는 평소 책을 읽어서
上師聖人(상사성인) : 위로는 성인을 스승삼고
下友群賢(하우군현) : 아래로는 여러 어진 이을 벗하며
窺仁義之原(규인의지원) : 인과 의의 근원을 살피고
探禮樂之緖(탐례악지서) : 예와 악의 실마리를 탐색한다.
自未始有形之前(자미시유형지전) : 만물의 형체가 형성되지 않았을 때부터
曁四達無窮之外(기사달무궁지외) : 사방에 이르는 끝없는 외부 세계까지
事物之理(사물지리) : 사물의 이치가
擧集目前(거집목전) : 온통 눈앞에 모이게 된다.
可者學之未至(가자학지미지) : 가능한 것도 다 배우지 못하는데
夫可何求於人(부가하구어인) : 어찌 남에게 배우기를 구하겠으며
何待於外哉(하대어외재) : 어찌 밖에서 배우기를 기대하겠는가?
志倦體疲(지권체피) : 마음이 권태롭고 몸이 피곤하면
則投竿取魚(즉투간취어) : 낚싯대를 던져 고기를 낚으며
執衽采藥(집임채약) : 옷자락을 걷어쥐고 약초를 캐거나
決渠灌花(결거관화) : 도랑을 내어 꽃나무에 물을 주거나
操斧剖竹(조부부죽) : 도끼를 잡고 대나무를 쪼개거나
濯熱盥水(탁열관수) : 한 대야의 물로 더위를 씻어버리거나
臨高縱目(림고종목) : 높은 곳에서 올라 눈 가는 대로 경치를 바라보고
逍遙徜徉(소요상양) : 이리저리 거닐며
惟意所適(유의소적) : 오직 마음이 내키는 대로 하노라
明月時至(명월시지) : 밝은 달이 때맞추어 떠오르고
淸風自來(청풍자래) : 맑은 바람이 저절로 불어오면
行無所索(행무소색) : 이끄는 것이 없이도 이끌러 가고
止無所柅(지무소니) : 붙잡는 것이 없어도 멈추게 된다.
耳目肺腸(이목폐장) : 귀도 눈도 폐도 장도
卷爲己有(권위기유) : 모두 거두어 내 소유로 하게 되니
踽踽焉洋洋焉(우우언양양언) : 마음대로 걸어 거칠 것 없이 넓다
不知天壤之間(불지천양지간) : 모르겠지만, 하늘과 땅 사이에
復有何樂(복유하락) : 다시 어떤 즐거움이 있어
可以代此也(가이대차야) : 가히 이것과 바꿀 수 있겠는가?
因合而命之曰獨樂(인합이명지왈독락) : 까닭으로 이를 <독락>이라 명명한다.
어떤 이가 나에게 말하기를 “내가 들으니 군자께서 즐기는 것은 많은 사람과 더불어 함께함이 마땅한데, 지금 당신은 혼자만 즐기고 사람에게 나누지 않으니 옳은 일입니까?” 하거늘 내가 사과하며 대답하였다. “어리석은 내가 무슨 덕이 있어 군자와 비교하겠소? 혼자 즐기는 것도 다 못할까 두려운데 어찌 남과 함께 즐긴단 말이오? 하물며 내가 즐기는 일은 천박(淺薄)하고 비루(鄙陋)해서 세상 사람들이 이미 다 버린 것들이라오. 누구에겐가 주려해도사람들이 싫어할 것이 분명한데 어찌 억지로 주겠소? 만약 함께하기를 원하는 사람 있다면 내가 두 번 절하고 드릴 것인데 어찌 나 혼자만 독점한다 하겠습니까?”‘
(或咎迂叟曰 吾聞 君子所樂 必與人共之 今吾子獨取於己 不以及人 其可乎 迂叟謝曰 叟愚 何德比君子 自樂恐不足 安能及人 況叟之所樂者 薄陋鄙野 皆世之所棄也 雖推以及人 人且不取 豈得强之乎 必也有人 肯同此迂 則再拜而獻之矣 安能專之哉)
선생은 말하기를 “나는 독서(讀書)를 통하여 성인들을 스승으로 모시고, 현인들을 벗으로 맞아 사물의 이치를 터득(攄得)한다. 그래도 가끔 마음이 권태롭고 몸이 피로하면 사람과 함께 푸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혼자서 풀어버리는 방법을 깨우쳤다.
몸이 나른하고 마음이 권태로우면 낚시를 던져 고기도 잡고 소매를 걷어붙이고 약초도 캔다. 물길을 만들어 꽃나무에 물도 대주고, 대나무를 토막 내어 도끼로 쪼개본다. 대야에 물을 떠서 더위를 식혀보고, 높은 언덕에 올라가 먼 곳을 바라보기도 한다. 발 가는대로 산책도 하고, 마음이 가리키는 곳을 찾아간다.
때가 되면 밝은 달이 떠오르고, 어디선지 맑은 바람도 불어온다. 거닐어도 잡는 이 없고, 멈추라고 만류하는 이도 없다. 내 몸의 모든 것이 다 나의 소유요 또 뜻대로 해도 거리길 것이 없이 천지에 자유롭다. 이 세상에 어떤 즐거움이 이보다 더할 수 있을 것인가? 이 모든 즐거움을 통틀어서 ‘나 홀로 즐김(獨樂)’이라 명명(命名)한다.“
. 장자후(張子)厚의 동.서명(東.西銘)
장자후(張子厚)는 중국 북송의 유명한 현실주의 철학자로 이름은 재(載), 호는 횡거(橫渠)이다.(1020-1077) 그는 장횡거(張橫渠)라고 알려졌다. 성리학의 형이상학적·인식론의 기초를 세웠다. 관리의 아들로서 불교와 도가철학을 공부했으나 자신의 진정한 영감은 유가경전에서 찾았다. 주요저작인 정몽(正蒙)에서 우주는 여러 가지 측면을 가지고 있으나 결국은 통일되어 있고, 모든 존재는 영원한 통합·분산의 연속이라고 주장했다. '기'(氣)는 궁극적 실재인 태허(太虛)로 정의된다. 기가 양(陽)의 영향을 받으면 표면으로 떠올라 그 기운을 퍼뜨리며, 음(陰)의 요소가 강하면 기는 침잠(沈潛)하여 물질세계의 구체적인 것들을 응축·형성한다. 고 하였다.
그의 사상은 ‘윤리학에서 하나의 기본적인 덕은 '인'(仁)이다. 인은 여러 가지 다양한 인간관계에서 부모에 대한 효도나 형제에 대한 존경으로 나타난다. 인간도 우주의 다른 모든 부분들처럼 천지의 기를 받아 생겨난 것으로, 세상의 모든 것과 함께 하나로 통일되려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인간의 육체적 본질은 기가 퍼져 이루어진 육체적 형태로부터 온다. 도덕적 자기수양은 사회와 우주의 한 구성원으로서 자신의 임무를 스스로 이행하려고 노력할 때 비로소 이루어진다. 인간은 자신의 생명을 연장하려 애쓰지 않는다. 현인(賢人)에게는 인생에서 얻는 것도 없으며, 죽는다고 하여 어떤 것도 잃는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하였는데, 후대에 정명도(程明道), 정이천(程伊川)형제와 주희(朱熹)에 의하여 그의 사상이 더욱 발전되었고, 그는 최근까지도 중국사상에 있어서 주요한 업적을 세운 사람으로 알려졌다.
장횡거(張橫渠)선생은 그의 서재 안쪽 동과서의 두 창문에 스스로 지킬 좌우명을 써서 붙이고 각각 동명(東銘)과 서명(西銘)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동명(東銘)-장재(張載)
戱言出於思也(희언출어사야) : 농담으로 하는 말도 생각에서 나오는 것이고
戱動作於謀也(희동작어모야) : 장난삼아 하는 행동도 계획에 의하여 하는 것이다.
發於聲見乎四肢(발어성견호사지) : 말로 표현하고 몸으로 보이는 것이다.
謂非己心不明也(위비기위비기심불명야) : 본심이 아니라고 말해도 사리에 맞지 않고
欲人無己疑不能也(욕인무기의불능야) : 남들이 자기를 의심하지 않기를 바라더라도 가능한 일이 아니다.
過言非心也(과언비심야) : 잘못된 말은 본심에서 울어난 말이 아니고
過動非誠也(과동비성야) : 잘못된 행동은 진정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失於聲(실어성) : 말을 잘못하거나
繆述其四體(무술기사체) : 잘못 행동하고
謂己當然(위기당연) : 자신을 합리화시키는 일은
自誣也(자무야) : 자신을 속이는 것이며,
欲他人己從(욕타인기종) : 그러고도 사람들이 자신을 따르게 하려는 것은
誣人也(무인야) : 사람들을 속이는 것이다.
或者謂出於心者(혹자위출어심자) : 어떤 사람은 자기의 마음에서 나온 말을
歸咎爲己戱(귀구위기희) : 자기의 농담이었다고 그 허물을 돌리거나
失於思者(실어사자) : 자기의 생각에서 실수한 것을
自誣爲己誠(자무위기성) : 자기의 진실이라고 스스로를 속인다.
不知戒其出汝者(불지계기출여자) : 너에게서 나온 것을 경계할 줄 모르고
反歸咎其不出汝者(반귀구기불출여자) : 도리어 그 허물을 네게서 나오지 않은 것으로 돌리니
長傲且遂非(장오차수비) : 오만을 키우고 또 옳지 않은 것을 이루는 것이다.
不知孰甚焉(불지숙심언) : 무엇이 이보다 더 심할지 알지 못하겠다.
사람의 말과 행동은 모두 그 사람의 마음 안에서 나오고 계획되어서 일어나는 것이다. 자신이 말하고 행동한 것이 비록 잘 못된 일시적인 과실이라 하더라도, 그 책임은 자신에게 있음을 명심해야한다. 그러나 사람의 본성이 선하니, 잘못된 말과 거짓된 행위는 사람의 본심은 아닐지라도, 그 결과 상대에게 어려움을 안겨주고도 억지로 실수였다고 강변하거나, 자기주장에 동조하기를 바란다면, 그 것은 스스로를 속이는 행위다. 다시 말하면 스스로 오만을 키우고 불합리를 키우는 일이니 이보다 더 큰 잘못은 없을 것이다. 하였다.
서명(西銘)-장재(張載)
乾稱父坤稱母(건칭부곤칭모) : 하늘을 아버지라 부르고, 땅을 어머니라 부른다.
予玆藐焉(여자막언) : 나는 이 사이에 미미한 존재로
乃混然中處(내혼연중처) : 그 가운데 혼합되어 살아있다
故天地之塞(고천지지색) : 그러므로, 천지에 막힌 기운을
吾其體(오기체) : 나의 몸통으로 하고
天地之帥吾其性(천지지수오기성) : 천지를 주재하는 이치를 나의 본성으로 한다.
民吾同胞(민오동포) : 모든 백성은 나의 형제이고
物吾與也(물오여야) : 만물은 나와 같이 한다
大君者吾父母宗子(대군자오부모종자) : 임금은 부모님의 맏아들이고
其大臣宗子之家相也(기대신종자지가상야) : 대신은 장자의 가신(家臣)이다.
尊高年所以長其長(존고년소이장기장) : 어른을 공경함은 어른을 어른 대접함이고
慈孤弱所以幼吾幼(자고약소이유오유) : 고아나 어린이를 사랑함은 나의 어린이처럼 여기는 것이다.
聖其合德(성기합덕) : 성인은 천지와 덕이 합치되어야 하고
賢其秀者也(현기수자야) : 현인은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 사람이다
凡天下疲癃殘疾惸獨鰥寡(범천하피륭잔질경독환과) : 천하의 늙고 지친 사람, 병들고 불상한 사람, 외아들, 늙어 자식 없는 사람, 아내 없는 홀아비, 남편이 없는 과부들은
皆吾兄弟之顚連而無告者也(개오형제지전연이무고자야) : 모두다 나의 형제들이면서어려운 처지에 놓여 호소할 곳 없는 사람들이다
于時保之(우시보지) : 이러한 때에 그들을 잘 보살피는 것은
子之翼也(자지익야) : 자식으로서 돕는 것이요
樂且不憂(락차불우) : 즐거워하며 근심을 드러내지 않음은
純乎孝者也(순호효자야) : 순박한 마음의 효심이다.
違曰悖德(위왈패덕) : 도리를 어기는 것을 패덕(悖德)이라 하고
害仁曰賊(해인왈적) : 인을 해치는 것을 적(賊)이라 한다.
濟惡者不才(제악자부재) : 악으로 제도하는 자는 재주 없음이며
其踐形惟肖者也(기천형유초자야) : 몸으로 실천함은 오직 부모를 닮는 사람이다.
知化則善述其事(지화칙선술기사) : 변화의 도리를 알면 사업을 잘 풀어나갈 수 있고
窮神則善繼其志(궁신칙선계기지) : 신명을 추구하면 천지의 뜻을 계승할 수 있다.
不愧屋淚爲無忝(불괴옥루위무첨) : 누가 보지 않아도 부끄러움 없으면 욕됨이 없고
存心養性爲匪懈(존심양성위비해) : 마음을 지키고 본성을 길러야 나태하지 않을 것
惡旨酒(악지주) : 맛있는 술을 싫어함은
崇伯子之顧養(숭백자지고양) : 숭백의 아들이 부모님을 봉양하는 것이고
育英才(육영재) : 영재를 교육함은
潁封人之錫類(영봉인지석류) : 영봉인의 지극한 효심과 같아야 한다.
不弛勞而底豫(불이노이저예) : 열심히 노력하지 않아도 부모님을 기쁘게 한것은
舜其功也(순기공야) : 순이 이루어 놓은 공일 것이며,
無所逃而待烹(무소도이대팽) : 도망가지 않고 삶겨 죽는 형벌을 기다린 것은
申生其恭也(신생기공야) : 진나라 태사 신생의 공순함이다
體其受而歸全者(체기수이귀전자) : 부모에게 받은 몸을 온전히 되돌려 보낸 사람은
參乎(참호) : 증자(曾子)며
勇於從而順令者(용어종이순령자) : 부모의 뜻을 용감하게 따르고 순종한 사람은
伯奇也(백기야) : 윤길보의 아들 백기이다
富貴福澤(부귀복택) : 부귀와 행복과 윤택함은
將以厚吾之生也(장이후오지생야) : 하늘이 나의 삶을 풍부하게 해주는 것이요
貧賤憂戚(빈천우척) : 빈천과 근심 걱정은
庸玉汝於成也(용옥여어성야) : 너를 옥처럼 갈고 연마해 완성시키려는 것이다.
存吾順事(존오순사) : 나를 잘 보전하며 일을 순리대로 처리해야만
沒吾寧也(몰오녕야) : 죽은 다음에도 내가 편안해질 것이다.
하늘과 땅은 나의 부모님이고 나라는 존재는 그 아들이라고 전제하고, 아들이 된 자의 도리를 설명하였다. 예문을 들어 고사를 인용한 것들은 너무 이야기가 길어서 다 주석을 달 수 없다. 끝부분에 ‘부귀와 행복과 윤택함은 하늘이 나의 삶을 풍부하게 해주는 것이요, 빈천과 근심 걱정은 너를 옥처럼 갈고 연마해 완성시키려는 것이다.(富貴福澤 將以厚吾之生也 貧賤憂戚 庸玉汝於成也)’ 라 한 말은 의미심장하다.
10. 정정숙(程正叔)의 사물잠(四勿箴)
정정숙(程正叔)의 명은 이(頤), 호는 이천(伊川),이며 북송(北宋)의 하남(河南)사람이다. 그의 형 정호(程顥-明道先生)와 함께 북송의 큰 철학가였다.(1033-1107) 이기설(理氣說)을 주창하였고 후에 주희(朱熹)에 의하여 대성(大成)되었다.
이천선생은 사람의 성정(性情)은 사물과 접촉하면서 변화한다. 사람과 사물사이에 접촉하는데 필요한 질서와 규범을 정한 것을 예(禮)라 하였다. 그러므로 예에 맞게 사물과 접함으로써 성품과 감정을 다스릴 수 있다고 가르쳤다.
‘예(禮)가 아니면 보지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 말고,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고, 예가 아니면 행동(行動)하지 말라. 이 네 가지는 이 몸이 항상 쓰고 있는 것이니 가운데(中心)로 말미암아 밖에 응(應)하고 밖을 견제하여 가운데를 기르는 것이다.(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動 四者身之用由乎 中所以應乎 外制乎 外所以養於中也)’ 하였다.
시청언동사물잠(視聽言動四箴勿)-정정숙(程正叔)
시잠(視箴-보는 일에 대한 잠언)
心兮本虛(심혜본허) : 마음이란 본래 비어있어서
應物無迹(응물무적) : 외부 사물에 반응하면서도 흔적이 없는 것이다
操之有要(조지유요) : 마음을 바르게 잡아두는 것에 요령이 있는데
視爲之則(시위지칙) : 보는 것으로 법칙을 삼아라.
蔽交於前(폐교어전) : 눈앞이 여러 가지로 가려지면
其中則遷(기중칙천) : 그 속마음이 곧 옮아가게 된다.
制之於外(제지어외) : 외부에 대하여 제어함으로써
以安其內(이안기내) : 그 내부를 안정시켜야 한다.
克己復禮(극기복례) : 자신을 극복하고 예로 되돌아가게 한다면
久而誠矣(구이성의) : 오래되면 성실하게 될 것이다
청잠(聽箴-듣는 일에 대한 잠언)
人有秉彛(인유병이) : 인간에게는 꼭 지켜야 할 떳떳함이 있는데
本乎天性(본호천성) : 그것은 타고난 천성에 근본을 둔 것이다
知誘物化(지유물화) : 다만 사람의 지각이 사물의 변화에 유인되어
遂亡其正(수망기정) : 그 올바름을 잃게 되는 것이다
卓彼先覺(탁피선각) : 탁월하였던 저 선각자들은
知止有定(지지유정) : 지각을 선의 경지에 머물게 하여 안정시켰다
閑邪存誠(한사존성) : 사악해짐을 막고 성실한 마음을 존속시켜서
非禮勿聽(비례물청) : 예가 아닌 것은 듣지 말라
언잠(言箴-말하는 것에 대한 잠언)
人心之動(인심지동) : 사람 마음의 움직임은
因言以宣(인언이선) : 말을 통하여 밖으로 선포되니
發禁躁妄(발금조망) : 말을 할 때 조급하거나 경망스러워지는 것을 막으면
內斯靜專(내사정전) : 속마음은 고요하고 한결같게 된다.
矧是樞機(신시추기) : 하물며 말이란 사람들의 중요한 계기를 만드는 것
興戎出好(흥융출호) : 전쟁을 일으키기도 하고 우호로 나아가게도 하는 것이다
吉凶榮辱(길흉영욕) : 사람의 길흉과 영욕은
惟其所召(유기소소) : 오직 말이 불러들이는 것들이다
傷易則誕(상이칙탄) : 말을 지나치게 쉽게 하면 불성실하게 되고
傷煩則支(상번칙지) : 지나치게 많이 하면 지리멸렬하게 되고
已肆物忤(이사물오) : 자기 멋대로 말하면 사리에 어긋나게 되고
出悖來違(출패래위) : 도리에 어긋나는 말을 하면 위배된 보답이 돌아오게 된다.
非法不道(비법불도) : 법도에 어긋나는 것은 말하지 말라
欽哉訓辭(흠재훈사) : 공경하여라. 이 교훈의 말들을
동잠(動箴-행동하는 것에 대한 잠언)
哲人知幾(철인지기) : 명철한 사람은 일의 빌미를 알아서
誠之於思(성지어사) : 생각하는 일에 정성을 다하고
志士勵行(지사여행) : 뜻있는 선비는 행동함에 힘써서
守之於爲(수지어위) : 올바른 도리를 지키려고 노력한다.
順理則裕(순리칙유) : 올바른 이치를 따르면 여유가 있게 되나
從欲惟危(종욕유위) : 자기 욕망을 따르면 위태로워지는 것이다
造次克念(조차극념) : 다급한 순간이라도 이것을 잘 생각하여
戰競自持(전경자지) : 두려워 조심하면서 스스로를 지탱하라
習與性成(습여성성) : 습관이 본성을 따라 이룩되면
聖賢同歸(성현동귀) : 성현들의 경지에 함께 귀착하리라.
사람의 마음은 안에 있는 것으로 본래는 고요한 것인데, 밖을 향하여 보고 듣고 말하고 행동한 결과에 따라 마음이 흔들린다. 물은 고요하기를 원하지만 바람이 불거나 누군가 휘저어 놓으면 요동치고, 나무도 고요히 서 있기를 바라지만 바람이 불어서 흔들리듯이, 사람 마음도 외물과 접하면서 흔들려서 본래의 고요함이 깨진다는 것이다.
선생은 이런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살면서 피할 수 없는 외물(外物)과의 접촉에서 지켜야할 네 가지 요체(要諦)를 가르치고 있다. 본문은 더 이상 부연(敷衍)하여 설명할 것이 없다. 마음에 새기고 행해서 조금이라도 바르게 사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11. 여대림(呂大臨)의 극기명(克己銘)
여대림(呂大臨)은 중국 북송의 학자로 자는 여숙(與叔)이다. 산시성(陝西省) 람전(藍田) 출생으로 만년에는 태학박사(太學博士)·비서성정자(秘書省正字)가 되었다. 처음 장재(張載;장횡거)에게 배우다가 스승이 죽은 뒤에는 정호(程顥)·정이(程頤)에게 배웠으나, 장재에게 배운 이론을 좀처럼 바꾸지 않았다고 한다. 사양좌(謝良佐)·유초(游酢)·양시(楊時)와 더불어 정문(程門)의 4선생이라 하였으며, 박학하고 문장에도 뛰어났다. 형 대균(大鈞)과 함께 질서유지와 상호부조를 위해 향리에서 여씨향약(呂氏鄕約)을 조직하기도 하였다. (1046~1092)
극기(克己)란 말은 ‘자기 자신을 이긴다.’ 라는 말이다. 자신의 욕망이나 충동, 감정 따위를 자제(自制)하고 억누른다는 뜻이다. 때로는 신체적인 약점을 극복해서 능력이상의 능력을 발휘하는 행위도 극기라 말하지만, 엄밀한 의미는 육체적 극복이 아니라 정신적 극복을 의미한다. 사람의 본성이 선(善)하다거나 악(惡)하다고 주장하는 극단적 주장을 논외(論外)로 하더라도, 인성(人性)은 살아가면서 외물(外物)에 의하여 점점 변화되어서, 본성(本性)을 망각하고 방황하게마련이다. 처음의 마음을 천성(天性)이라고 말하는데 이는 마음의 뿌리고, 이 천성이 점점 인성(人性)으로 변해가서 마음의 가지를 만든다. 천성과 인성은 점차 멀어져서 다시 만나기가 극히 어려움으로 학문을 닦고 열심히 수양해서 접근시키는 수단을 강구한다. 그 수단중의 하나가 극기(克己)인 것이다.
극기명(克己銘)-여대림(呂大臨)
凡厥有生(범궐유생) : 무릇 생명 있는 것은
均氣同體(균기동체) : 기운도 균일하고 몸체도 같은 것
胡爲不仁(호위불인) : 그런데 어찌하여 어질지 못한가?
我則有已(아칙유이) : 나 곧 자기 자신만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物我旣立(물아기립) : 다른 사물과 내가 이미 대립되어 있는데
私爲町畦(사위정휴) : 남과 나 사이에 사사로이 경계를 만들어
勝心橫發(승심횡발) : 남을 이기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켜서
擾擾不齊(요요불제) : 어지러이 평정을 유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大人存誠(대인존성) : 위대한 사람은 진실한 마음을 지녀서
心見帝則(심견제칙) : 마음으로 하늘의 법칙을 본다.
初無吝驕(초무린교) : 처음부터 인색하고 교만하지 않아서
作我蟊賊(작아모적) : 자아를 좀먹고 해치는 벌레 같은 적을 만들지 않는다.
志以爲師(지이위사) : 뜻을 장수로 삼고
氣爲卒徒(기위졸도) : 기를 졸개로 삼아
奉辭于天(봉사우천) : 하늘의 명령을 받들어 행하니
誰敢侮矛(수감모모) : 누가 감히 업신여기겠는가?
且戰且徠(차전차래) : 싸우고 또 달래어
勝私窒慾(승사질욕) : 사사로움을 이기고 욕망을 억누른다면
昔爲寇讐(석위구수) : 전에는 도둑이나 원수 같던 것도
今則臣僕(금칙신복) : 이제는 신하나 종복과 같이 되리라.
方其未克(방기미극) : 사욕을 이기지 못하면
窘吾室廬(군오실려) : 나의 집안을 궁색하게 하고
婦姑勃磎(부고발계) :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서로 다투는 것처럼 되니
安取厥餘(안취궐여) : 그 나머지는 무엇을 취할 것인가
亦己克之(역기극지) : 또한 사욕을 극복하면
皇皇四達(황황사달) : 마음이 넓고 밝아 사방으로 통할 것이고
洞然八荒(동연팔황) : 팔방의 먼 곳까지도 환해져서
皆在我闥(개재아달) : 그것들이 모두 나의 작은 문안의 일처럼 될 것이다
孰曰天下不歸吾仁(숙왈천하불귀오인) : 누가 이르기를 “온 천하가 모두 나의 인(仁) 으로 귀착되지 않는다.” 고 말하겠는가?
癢痾疾痛(양아질통) : 남의 가려움이나 아픔도
擧切吾身(거절오신) : 내 몸처럼 절실해질 것이다
一日至焉(일일지언) : 어느 날 이런 경지에 이르게 되면
莫非吾事(막비오사) : 만사가 나의 일 아닌 것이 없게 될 것이니
顔何人哉(안하인재) : 공자의 제자 안회(顔回)란 어떤 사람인가
希之則是(희지칙시) : 그와 같이 되기를 바란다면 그런 사람이 되리라.
사람이 어질지 못한 이유는 자기중심사상이 발전하면서 생기는 현상으로, 반드시 상대(사물)를 염두에 두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하늘의 마음을 닮아서 너그러워진 다음에, 자신의 의지를 장군으로 삶고 기질을 졸병으로 삼는다. 사람의 기질은 혈기에 따라 왕성해서 좀처럼 그 강성한 기세를 꺾기가 어렵다. 의지가 기질을 통솔할 수 있다면 비록 원수나 적일지라도 신하나 종처럼 복종한다고 하였다.
만일 스스로 사욕을 이기지 못하면 고부간의 갈등처럼 마음의 집이 황폐해 진다는 것이다. 또 사욕을 이겨나갈 수만 있다면 온 세상이 밝고 빛나서 누구든지 내 품안에 복속(服屬)될 수 있다. 이리 되려면, 남의 고통도 나의 고통인 것처럼 여겨야 가능 할 것이니, 무엇보다 중요한 요체(要諦)는 ‘긍정적으로 그렇게 되리라는 희망을 갖고 노력하는 일’이다
12. 장뢰(張耒)의 약계(藥戒)
장뢰(張耒)는 북송(北宋)시대의 문인이며 청치가로,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인 동파(東坡) 소식(蘇軾)의 문인(門人)이다. 시문에 능했다. 년대는 조사할 수 없다. 장뢰는 국가를 통치하는 수단을 의원이 환자의 병을 고치는 것에 비유하고 이 글을 쓰고 있다.
약계(藥戒-약에 대한 경계)-장뢰(張耒)
손님 중에 속병을 앓는 사람이 있었는데, 배 속에 쌓이는 것들은 체하여 내려가지 않고, 밖으로부터 들어오는 것들은 딱딱해져서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의원에게 찾아가 물어보니, 속의 것들을 내려 보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돌아와서 의원이 준 약을 마셨다. 마시고 나자 갑자기 내려가 버려서, 하루도 안 되어 전에 체했던 것이 흩어져 남아 있는 게 없게 되었고, 전에 딱딱해졌던 것들이 부드러워져서 걸리지 않게 되었다. 내장과 가슴 속이 탁 트이고 호흡이 순조로워져서, 상쾌한 것이 처음부터 병이 없었던 것처럼 되었다. 며칠 안가서 속병이 다시 일어났으나 전의 약을 먹자 깨끗이 낫는 것이 역시 처음이나 같았다.
(客有病痞 積於其中者 伏而不能下 自外至者 捍而不得納 從醫而問之 曰非下之不可 歸而飮其藥 旣飮而暴下 不終日而向之伏者 散而無餘 向之捍者柔而不支 焦鬲導達 呼吸開利 快然若未始有疾者 不數日 痞復作 投以故藥 其快然也亦如初)
이로부터 한 달도 넘지 않은 사이에 속병이 다섯 번 일어났으나 다섯 번 속의 것을 내려 보냈고, 속의 것들을 내려 보낼 때마다 병이 완쾌되었다. 그러나 그 손님의 기운은 한 마디 말을 하는데 세 번이나 말을 끌게 되었고, 몸에서는 일하지 않아도 땀이 났으며, 다리는 걷지 않아도 떨리게 되었다. 살갗과 피부는 전보다 여윈 것이 없으면서도 그 속은 맥이 없이 되었는데,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아아, 속병은 속의 것을 내려버리지 않고는 낫게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나는 그래서 속의 것을 내려 보내었으나, 그 의술이 깨끗하지를 못하여 환자가 힘이 없게 되었으니, 어째서인가
(自是不逾月 而痞五作五下 每下輒愈 然客之氣一語 而三引 體不勞而汗 股不步而慄 膚革無所耗於前 而其中薾然 莫知其所來 嗟夫 心痞非下不可已 予從而下之 術未爽也 薾然獨何歟)
초나라 남쪽에 훌륭한 의원이 있다는 말을 듣고 찾아가서 물으니 의원이 대답하기를, “당신은 몸이 그렇게 된 것을 탄식하지 마시오. 당신이 병을 고친 수법이 본시 그처럼 맥이 없도록 만드는 것이었소. 앉으시오. 내 당신에게 설명해 주리다. 천하의 이치는, 자기 마음에 매우 상쾌함을 주는 것들이란 종말에 가서는 반드시 그를 손상케 하는 것이니, 종말에 가서 손상 받지 않기를 바란다면 곧 처음부터 자기 마음을 상쾌하게 할 것을 바라지 말아야만 할 것이오. 대체로 음이 체하여 걸리고 양이 모이어, 기운과 피가 순환되지 않음으로써 속병이 되어가지고 그대의 가슴 속에 가로놓이게 되는 것이니, 그 쌓인 것이 큰 것이오. 그것을 쳐서 제거해 버려야 하오. 잠깐 사이에 매우 크게 쌓인 것을 제거해 버리려면 부드럽고 평이한 물건으로는 할 수가 없고, 반드시 세게 쳐서 진동을 시킨 연후에야 가능하게 되는 것이오, 사람의 화기란 부드러우면서도 매우 미세하며 조용하면서도 위태로워지기 쉬운 것이니, 세게 쳐서 진동시키는 효과가 이루어지기도 전에 당신의 화기에는 이미 병이 생기게 되는 것이오. 이렇게 볼 것 같으면 곧 당신의 속병은 한 번 완쾌될 때마다 당신의 화기는 한 번 손상을 받았던 것이오. 한 달이 다 가기도 전에 다섯 번이나 완쾌시켰다면 곧 당신의 화평한 기운은 이미 없어져 버리지 않았겠소. 그래서 피부에서는 일하지 않아도 땀이 나고 다리는 걷지 않아도 떨리며 맥이 없어져 하루를 넘기지도 못할 것처럼 된 것이오 당신의 속병을 없애버리면서 화기도 해치고 싶지 않겠는가? 내가 주는 약을 쓰면 될 것이오.” 손은 집으로 돌아가 석 달을 보낸 다음 재계를 하고는 다시 찾아와 의원을 뵈었다. 의원이 말하였다. “당신의 기운이 약간 회복되었소.” 그리고 약을 지어 주면서 말하였다. “이것을 복용하면 석 달 만에 병이 약간 덜해지고, 또 석 달이 지나면 약간 편안해지고, 이 해가 다 갈 무렵이면 원상태로 회복될 것이오. 그러니 약을 마시는데 있어서 너무 자주 마셔도 안 되는 것이오.”
(聞楚之南 有良醫焉 往而問之 醫曰 子無歎是然者也 凡子之術 固爲是薾然也 坐吾語女 天下之理 有甚快於予心者 其末必有傷 求無傷於終者 則初無望於快吾心 夫陰伏而陽蓄 氣與血不運 而爲痞 橫乎子之胸中者 其累大矣 擊而去之 不須臾而除甚大之累 和平之物 不能爲也 必將擊搏震撓 而後可 夫人之和氣 冲然而甚微 泊乎其易危 擊搏震撓之功 未成而子之和 蓋已病矣 由是觀之 則子之痞凡一快者 子之和一傷矣 不終月而快者五 則子之和平之氣 不旣索乎 故膚不勞而汗 股不步而慄 薾然如不可終日也 蓋將去子之痞 而無害於和乎 子歸燕居三月而後 予之藥可爲也 客歸燕居三月 齋戒而復請之 醫曰 子之氣小復矣 取藥而授之曰 服之三月 而病少平 又三月而少康 終是年而復常 且飮藥 不得亟進)
손님은 돌아가 의원의 말대로 실행하였다. 그런데 처음에는 사람이 답답하게 느끼도록 효과가 더디어 세 번 약을 먹으면 세 번 모두 병이 제 자리로 되돌아가는 듯 하였다. 그러나, 하루에는 병이 고쳐지는 효과가 보이지 않는 듯 하였는데, 대략 한 달 만에 보면 달라지고 한 철을 두고 보면 전혀 다르게 나아가서, 한 해가 끝날 무렵에는 병이 완쾌되었다.
(客歸而行其說 然其初 使人懣然遲之 蓋三投藥而三及之也 然日不見其所攻之效 較則月異而時不同 蓋終歲疾平)
손님이 의원을 찾아가 정중히 두 번 절하며 감사를 표시하고는 앉아서 그 까닭을 물었다. 의원이 이렇게 말하였다. “이것은 나라의 병도 고칠 이론이오. 어찌 다만 사람의 병만 고칠 뿐이겠소. 당신은 어찌 진나라의 정치를 보지 못하였소. 그 나라 백성들은 사나워서 명령을 따르지 않고 게을러서 일에 힘쓰지 아니하며 방종해서 법을 두려워하지 않았었소. 그들에게 명령을 내려도 따르지 아니하고, 그들을 다스려도 변화할 줄 몰랐으니, 곧 진나라 백성은 일찍이 속병에 걸렸던 셈이지요. 상앙이 그 속병을 보고서 형벌과 법령으로 엄히 다스리고 목 베고 치고 하는 것으로 위협하면서 사납고 맹렬하게 다루어 터럭 끝만 한 일도 용서치 않으면서 철저히 잘라내고 힘써 뽑아내었소. 이에 진나라의 정치는 높은 곳에서 물병의 물을 쏟듯이 거침없이 흘러 사방으로 통하게 되어 감히 아무도 거역할 수가 없었으니, 진나라의 속병은 일찍이 한 번 쾌유되었었소. 진나라 효공으로 부터 이세에 이르기까지
(客謁醫 再拜而謝之 坐而問其故 醫曰 是醫國之說也 豈特醫之於疾哉 子獨不見夫秦之治乎 民悍而不聽令 惰而不勤事 放而不畏法 令之不聽 治之不變 則秦之民 嘗痞矣 商君見其痞也 厲以刑法 威以斬伐 悍戾猛鷙 不㒃毫髮 痛剗而力鋤之 於是乎秦之政 如建瓴 流蕩四達 無敢或拒 而秦之痞 嘗一快矣 自孝公 以至二世也)
모두 몇 번이나 속병이 났다가 몇 번이나 쾌유 되었던가 완고했던 것은 이미 무너지고 강했던 것은 이미 부드러워졌으나 진나라 백성들에게는 기쁜 마음이 없어졌소. 그러므로 사나운 정치로써 한 번 병을 쾌유시키는 것은 백성들의 기쁜 마음을 한 번 없애버리는 것이 되오. 여러 번 끊임없이 병을 쾌유시키자 진나라의 사지는 맥도 없어져 공연히 그러한 물건이 달려있을 따름이 되었소. 백성들의 마음은 날로 떠나서 임금은 윗자리에 외로이 서있게 되니, 그래서 필부가 나와 크게 한 번 소리치자 하루도 넘기기 않은 사이에 백 가지 병이 한꺼번에 생겨났던 것이오. 진나라는 그의 손발과 어깨 등허리를 움직여 보려 했었지만 까마득히 어느 것도 호응하여 움직여지지 않았었소. 그러므로 진나라가 망했던 것은 바로 병을 쾌유시키기를 좋아했던 잘못 때문이라 할 것이오.
(凡幾痞而幾快矣乎 頑者已圮 强者已柔 而秦之民 無歡心矣 故猛政一快者 懽心一亡 積快而不已 而秦之四支枵然 徒有其物而已 民心日離而君孤立於上 故匹夫大呼 不終日而百病皆起 秦欲運其手足肩膂 而漠然不我應矣 故秦之亡者 是好爲快者之過也)
옛날 훌륭한 임금들의 백성들도 처음에는 역시 모두 속병이 있었소. 훌륭한 임금들이 어지 분연히 그들을 쳐서 쫓아버리는 것이 빠른 방법임을 몰랐겠소? 오직 그들은 종말을 두려워했던 것이오. 그러므로 감히 내 마음을 상쾌하게 해주는 방법을 추구하지 아니하고 부드럽게 그들을 어루만져 주었소. 그들을 인의로서 가르치고 예악으로 인도하여 은연중 그들의 혼란을 해결하고 그들의 체한 것을 제거해줌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유유히 편안하게 스스로 쾌유되는 방향으로 나가면서도 스스로는 잘 알지도 못하게 하였던 것이오. 그들의 병이 쾌유되기 전까지는 옆에서 보는 사람들 중에는 답답하게 여기는 이들도 있었소. 그러나 한 달을 두고 헤아려보고 일 년을 두고 살펴보면, 지난해의 사람들 습속과 금년의 습속이 달라져 있음을 알 수 있었소. 치지도 않고 때리지도 않으며 그들을 거스른 일도 없었으니 그래서 날로 그들의 사나운 기운은 제거되면서도 그들의 기쁜 마음도 다치지 않았던 것이오. 이에 정치가 이루어지고 교화가 통달되어 안락함이 유구해져서 후환이 없게 되었던 것이오. 그러니 하, 은, 주 삼대의 정치도 모두 몇 분의 성인을 거치고 수백 년의 세월을 겪은 뒤에야 그들의 습속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이오. 그러니 내가 준 약이 한 해가 지나야만 병을 완쾌시키는 것도 괴이하다고 여길게 못되는 것이오.
(昔先王之民 其初亦嘗痞矣 先王豈不知砉然擊去之以爲速也 惟其有懼於終也 故不敢求快於吾心 優柔而撫存之 敎以仁義 導以禮樂 陰解其亂而除去其滯 使其悠然自趨於平安 而不自知 方其未也 旁視而懣然者 有之矣 然月計之 前歲之俗 非今歲之俗也 不擊不搏 無所忤逆 是以日去其戾氣 而不嬰其歡心 於是政成敎達 安樂悠久 而無後患矣 是以三代之治皆更數聖人 歷數百年而後俗成 則予之藥 終年而愈疾 蓋無足怪)
그러므로 이르기를 천하의 이치는, 내 마음을 매우 상쾌하게 해주는 것은 그 종말에 가서는 반드시 나를 손상시킨다고 하는 것이오. 그 종말에 가서 손상이 없기를 바란다면 곧 처음에 내 마음을 상쾌하게 해주기를 바라지 않아야 되는 것이오. 그러나 어찌 다만 천하를 다스리는 일만이 그러하겠소.“ 손님은 두 번 절하고 그의 이론을 기록하였다.
(故曰 天下之理 有甚快於吾心者 其末也 必有傷 求無傷於其終 則初無望於快吾心 雖然豈獨於治天下哉 客再拜而記其說)
‘빨리 하려고하면 오히려 이루지 못한다.(欲速不達)’는
이루고자 해야지, 너무 서두르면 실패하기 쉽다.
13. 당자서(唐子西)의 고연명(古硯銘)
당자서(唐子西)의 이름은 경(庚)이고 호는 미산(眉山)이며, 북송(北宋)때 사람이다. 그의 문장이 정밀하고 세무(世務)에 통달하였다.(1068-1118)
그는 조상으로부터 대대로 내려오는 벼루가 있었다. 어느 날 벼루에 먹을 갈면서 보통 선비들이 애용하는 문방사우(文房四友)에 대하여 생각하다가, ‘사람이란 생명체도 이 원리에 따르면, 주어진 명을 잘 보존하여 정양(靜養)할 수 있겠다고 느껴서 이 명문(銘文)을 지었다.
가장고연명(家藏古硯銘-집안에 소장한 옛 벼루에 대한 명문)-당경(唐庚)
硯與筆墨(연여필묵) : 벼루와 붓과 먹은
蓋氣類也(개기류야) : 뜻을 같이하는 종류의 것들이다
出處相近(출처상근) : 나가고 들어앉아 사용되는 것이 서로 비슷하고,
任用寵遇相近也(임용총우상근야) : 쓰이거나 사랑받음도 서로 비슷하다.
獨壽夭不相近也(독수요불상근야) : 다만 오래가고 빨리 없어지는 것이 같지 않다.
筆之壽以日計(필지수이일계) : 붓의 수명은 일수(日數)로 세고,
墨之壽以月計(묵지수이월계) : 먹의 수명은 월수(月數)로 세며,
硯之壽以世計(연지수이세계) : 벼루의 수명은 몇 대로 센다.
其故何也(기고하야) : 그러한 까닭은 무엇인가?
其爲體也筆最銳(기위체야필최예) : 그 몸의 생김새를 보면, 붓은 가장 날카롭고
墨次之(묵차지) : 먹이 그 다음이며
硯鈍者也(연둔자야) : 벼루가 가장 둔하게 생겼다.
豈非鈍者壽(기비둔자수) : 어찌 둔하게 생긴 것은 수명이 길고
而銳者夭乎(이예자요호) :날카로운 것은 수명이 짧은 것이 아닐까?
其爲用也筆最動(기위용야필최동) : 또 쓰임을 보면 붓은 가장 많이 움직이고,
墨次之(묵차지) : 먹이 그 다음이며,
硯靜者也(연정자야) : 벼루는 고요하여 움직이지 않는다.
豈非靜者壽(기비정자수) : 어찌 고요한 것은 수명이 길고
而動者夭乎(이동자요호) :움직이는 것은 수명이 짧은 것이 아닐까?
吾於是(오어시) : 나는 여기에서,
得養生焉(득양생언) : 양생의 법을 터득하였다.
以鈍爲體(이둔위체) : 둔한 것으로써 몸(體)을 삼고
以靜爲用(이정위용) : 고요한 것으로서 쓰임(用)을 삼으면 되는 것이다.
或曰(혹왈) : 어떤 사람이 이르기를,
壽夭數也(수요수야) : “오래 살고 일찍 죽는 것은 운명이다.
非鈍銳動靜所制(비둔예동정소제) : 둔하고 날카롭거나, 움직이고 고요히 있는 것에 매이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借令筆不銳不動(차령필불예불동) : 가령 붓이 둔하고 움직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吾知其不能與硯久遠矣(오지기불능여연구원의) : 나는 그것이 벼루와 같이 오래 갈 수 없다는 것을 안다.
雖然寧爲此(수연녕위차) : 비록 그렇다 해도 벼루처럼 둔하고 고요해야지
勿爲彼也(물위피야) : 붓처럼 날카롭게 움직여서는 안 되는 것이다.
銘曰(명왈) : 다음과 같은 명을 쓴다.
不能銳(불능예) : “날카롭지 못해서
因以鈍爲體(인이둔위체) : 둔한 것을 몸으로 삼고,
不能動(불능동) : 움직이지 못해서
因以靜爲用(인이정위용) : 고요함으로 쓰임을 삼는다.
惟其然(유기연) : 다만 그렇게 함으로써
是以能永年(시이능영년) : 수명을 영원히 할 수 있는 것이다.”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릴 때 반드시 필요한 벼루와 먹과 붓은 언제나 같이 따라다니는 물건이다. 그러나 자세히 관찰하면 용도는 같은데 그 수명이 다르다. 붓은 며칠 쓰고 나면 닳아버리고, 먹은 붓보다는 오래 쓰지만 벼루만 못하고, 벼루는 몇 대를 내려오며 가장 오래 쓴다. 그래서 세 가지 물건을 자세히 관찰하였더니 각기 서로 다른 특성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생김새가 가장 둔하게 생겼고 쓰임새가 고요한 것은 오래가고, 생김새가 뾰족하여 날카롭고 쓰임새가 가장 많이 움직이는 것은 단명하다는 것이다. 여기서 작자는 오래 사는 법(養生)의 대도를 발견했다고 술회하고 있다. 우리가 사는 주위에서도 장수하는 생명체들의 행동이 극히 느리고, 단명한 것들은 매우 빠른 것을 볼 수 있는데 대표적인 예가 거북이와 하루살이다. 마찬가지로 사람도 그러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빨리 뛰는 사람은 오래 뛰지 못하나 천천히 걷는 사람은 하루 종일 걸을 수 있는 것과 같지 않을까?
14. 주희(朱熹)의 독역법(讀易法)
주희(朱熹)는 중국 남송(南宋)의 유학자(儒學者)로 주자학을 집대성하여 중국 사상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자는 원회(元晦)·중회(仲晦), 호는 회암(晦庵)·회옹(晦翁)·운곡노인(雲谷老人)·둔옹(遯翁)이며, 존칭하여 주자(朱子)라고 한다.
주희는 지방 관리의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로부터 유교 교육을 받았다. 18세 때 대과(大科)에 급제했다. 1158년 주희는 이동(李侗)을 방문했고, 1160년에는 수개월 동안 그와 함께 지내면서 가르침을 받았다. 11세기에 성리학자들은 불교와 도교의 철학에 대항하여 새로운 형이상학을 제창하면서 거의 1,000년간에 걸쳐 실추되었던 유학의 학문적·사상적인 우위성을 회복하게 되었는데, 이동은 그 가운데 가장 유능한 후계자의 한 사람이었다. 그의 영향을 받아 주희는 유교에 전념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1130-1200)
주역(周易)은 유고경전 중에서 삼경(三經)에 속하는 책으로 일종의 복술서(卜術書)이다. 경전 중에서 가장 우위에 속하는 책으로, 사람이 신과 소통하는 교량의 매개체라고 할 수 있는데, 공자도 평생 주역을 애송(愛誦)하여서 위편삼절(韋編三絶-가죽으로 맨 끈이 세 번 끊어짐)이란 성어(成語)를 남겼다. 회암(晦庵)선생도 독역(讀易)의 중요함을 인식하고, ‘주역 읽는 법’을 아래와 같이 요약하여 후생에게 남겼다.
독역법(讀易法-주역을 읽는 방법)-朱熹
주역(周易)을 읽는 방법은 우선 마음을 바르게 하고, 엄숙한 얼굴로 단정히 앉는다. 점대를 뽑아서 괘를 얻으면 효(爻)나 괘(卦)가 상징하는 말을 스스로 지켜야 할 법칙으로 삼는다.
(讀易之法, 先正其心, 肅容端席. 有翼其臨, 于卦于爻, 如筮斯得, 假彼象辭, 爲我儀則.)
글자는 그 새김의 뜻을 따르고, 구절은 그 숨은 의미를 헤아리며, 일은 그 밑바닥에 흐르는 이치를 파악하고, 뜻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한다.
( 字從其訓, 句逆其情, 事因其理, 意適其平.)
좋거나 좋지 않다는 말이 있으면 마치 그러한 일이 눈앞에 일어난 듯 살피고, 멈추거나 간다는 말이 있으면 마치 발로 직접 가고 멈추듯이 한다.
(曰否曰臧, 如目斯見. 曰止曰行, 如足斯踐.)
너무 광활하게 생각하여 빠뜨림이 없게 하고, 너무 좁게 생각하여 막힘이 없도록 한다. 섣불리 옳다고 하지 말고 반드시 통하겠다고 얽매이지도 말며 평상심으로 조용히 밖에서 안으로 이치를 궁구하면 만사를 관통하는 이치가 드러나게 된다.
(毋寬以略, 毋密以窮. 毋固而可, 毋必而通. 平易從容, 自表而裏, 及其貫之, 萬事一理.)
이치가 파악되어 확실히 서게 되면 일이 닥쳐와도 마음은 고요히 비게 되어 작용과 응함이 비로소 드러나게 된다. 마음의 본바탕은 원래 텅 비어 있으니, 가득 찬 속에 텅 빔을 기다려 텅 빈 본바탕으로 매사에 응하여 옛 것을 거울삼아 오늘의 일을 다스리고 고요함으로 움직임을 제어한다.
(理定旣實, 事來尙虛, 用應始有. 體該本無, 稽實待虛, 存體應用, 執古御今, 由靜制動.)
역(易)은 원래 청정(淸淨)하고 고요(靜)하고 정미(精微)한 것으로, 그 본바탕을 나에게서 찾아가면 움직임에 항상 길함이 있다.
(潔靜精微, 是之謂易, 體之在我, 動有常吉.)
옛날 주공(周公)이 연구하고 공자(孔子)가 이어받은 이 학문을 정자(程子)가 계승하여 그 깊은 뜻을 파헤치고 체계화시키니, 마치 모든 별이 북극성(北極星)을 중심으로 운행하는 것과 같게 되었다.
(在昔程氏, 繼周紹孔, 奧旨宏網, 星陳極拱.)
아직 다하지 못한 뜻은 뒤에 오는 사람을 기다리며, 어리석은 사람이 외람되게 몇 마디 설명을 곁들인다.
(惟斯未啓, 以俟後人, 小子狂簡, 敢述而申.)
성인(聖人)은 지극한 선(善)을 이루는 분이다. 지선행도(至善行道)의 길이 배우는 자의 최고덕목인데, 그 것을 이루려면 나에게 이르지 않은 것(未來)에 대한 정확한 예견을 필요로 한다.
유교에서의 지상(至上)의 덕목을 추구하는 길은 미래에 대한 예견이 있어야 가능한데, 그 길을 역경(易經)을 통해서 해결하고자 했다. 주자는 역을 읽는 방법을 논하면서, 맨 처음 몸과 마음을 바르게 하고 평안히 하여 고요한 곳에서 사리를 판단하라고 한다.
역의 바탕은 정결하고, 고요하며, 미세한 것이 마치 텅 비어 있는 마음과 같으니, 역을 해득(解得)함에는 먼저 마음가짐이 역의 바탕과 일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느 곳으로도 치우침이 없이 마음의 중심을 잡고, 사심으로 흔들림이 없어야 바른 판단을 할 수 있다. 고하였다.
이 교훈은 반드시 역만을 읽는 방법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다스리는 요체(要諦)가 되기도 하므로 여기 글을 소개한다.
15. 이규보(李奎報)의 잠언(箴言)
이규보(李奎報)는 고려의 문인으로 본관은 황려(黃驪), 자는 춘경(春卿), 초명은 인저(仁低), 호는 백운거사(白雲居士)·지헌(止軒)·삼혹호선생(三酷好先生)이다. 9세 때 이미 신동으로 알려졌으며 14세 때 성명재(誠明齋)의 하과(夏課)에서 시를 지어 기재(奇才)라 불렸다. 소년시절 술을 좋아하며 자유분방하게 지냈는데, 과거지문(科擧之文)을 하찮게 여기고 강좌칠현(姜左七賢)의 시회에 드나들었다. 개성 천마산에 들어가 백운거사를 자처하고 시를 지으며 장자(莊子)사상에 심취했다. 후에 최충헌의 발탁으로 벼슬길에 올랐다. 시문에 능하고 성품이 수일하였다.(1168~1241)
선생이 남긴 잠어(箴言)은 세 가지가 있는데, 마음(心)에 대한 잠언으로 사잠(思箴)이 있고, 얼굴(面)에 대한 면잠(面箴)이 있으며, 몸가짐에 대한 잠언으로 요잠(腰箴)이 있다. 차례로 설명한다.
사잠(思箴)-이규보(李奎報)
我卒作事(아졸작사) : 내가 갑자기 일을 처리하고 나서
悔不思之(회불사지) : 그 일을 생각 못했던 것을 후회한다.
思而後行(사이후행) : 생각한 뒤에 일을 처리했더라면
寧有禍隨(녕유화수) : 어찌 화가 따르는 일이 있었겠는가?
我卒吐言(아졸토언) : 내가 갑자기 말을 해버리고 나서
悔不復思(회불부사) : 다시 생각 못했던 것을 후회한다.
思而後吐(사이후토) : 생각한 뒤에 말을 했더라면
寧有辱追(영유욕추) : 어찌 욕이 따르는 일이 있었겠는가?
思之勿遽(사지물거) : 생각하되 경솔하게 생각 말라
遽則多違(거칙다위) : 경솔히 생각하면 잘못됨이 많다
思之勿深(사지물심) : 생각하되 깊이 생각지 말라
深則多疑(심칙다의) : 깊이 생각하면 의심이 많아진다.
商酌折衷(상작절충) : 참작하고 절충하여서
三思最宜(삼사최의) : 세 번 생각함이 가장 알맞다.
“생강 없이 일을 처리함이 급하고, 말을 토해버리면 반드시 후회하게 된다. 사람이 모든 처신(處身)을 먼저 생각하고 행동하여야한다. 생각하는데 기준을 두어라. 경솔한 생각은 실패하기 십고, 깊은 생각은 의심하여 망설이기 쉽다. 생각을 할 때는 세 번만 하는 것이 좋다.” 라고 하였다. 공자는 두 번만 생각해야지 세 번 생각하면 처음생각으로 되돌아온다.(再思可矣)고 하였는데, 선생은 세 번하라고 가르친다.
처음 생각하고 난 뒤에 두 번째 생각을 일으키면 처음생각에 반대되는 생각이 된다. 두 가지 방안이 도출되었으니 두 가지생각 중에 적절한 생각을 택하기 위하여 세 번째 생각을 필요로 한다. 신중하게 생각하고 적절한 선택을 하라는 뜻이다. 스스로 얻어진 경험과 소신을 살려 합당한 판단 하에 언행을 조심하여서, 재앙과 욕됨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방도를 가르친 것이다.
면잠(面箴)-이규보(李奎報)
有愧于心(유괴우심) : 마음에 부끄러움이 있으면
汝必先色(여필선색) : 반드시 먼저 너의 얼굴빛이 달라진다.
赬若朱泚(정약주차) : 얼굴빛은 주홍빛처럼 붉고
滴如水(적여수) : 땀은 물같이 흐른다.
對人莫擡(대인막대) : 사람을 대하여 고개 들지 못하고
斜回低避(사회저피) : 비스듬히 머리 숙이고 피하게 된다.
以心之爲(이심지위) : 마음의 하는 짓이
迺移於爾(내이어이) : 곧, 너에게 옮겨가기 때문
凡百君子(범백군자) : 무릇 모든 군자는
行義且儀(행의차의) : 의리를 행하고 위의를 가져라
能肆于中(능사우중) : 능히 내심(內心)으로 편안하면
毋使汝愧(무사여괴) : 너로 하여금 부끄럽게 하지 않으리라.
“사람의 마음에 수치심이 일어나면 곧 낯빛으로 나타나고 저도 모르게 얼굴을 들지 못 하게 된다. 마음이 당당한 사람은 곧은 자세로 상대와 눈을 마주치고 대한다. 얼굴에 온화하고 여유로운 화색(和色)이 도는 것은 물론이다. 그래서 올바른 생각에 젖어 있는 군자들은 옳은 일을 행하고 규범에 맞아서 마음이 편안하므로 스스로 하늘과 땅 사이에 수치심을 느끼지 않게 된다.”
요잠(腰箴)-이규보(李奎報)
常直不弓(상직부궁) : 활처럼 되지 않고 항상 곧으면
被人怒嗔(피인노진) : 남에게 노여움을 받게 된다.
能曲如磬(능곡여경) : 경쇠처럼 허리를 굽히면
遠辱於身(원욕어신) : 몸에서 욕을 멀리 하게 된다.
惟人禍福(유인화복) : 오직 사람의 화복은
係爾屈伸(계이굴신) : 너의 굴신에 매여 있는 것이다
“곡식이 익으면 고개를 숙이듯, 사람도 덕이 쌓이면 머리를 숙인다. 가장 천한 마음과 행동은 교만이니, 스스로 배우고 덕을 쌓아서 겸손을 배울 일이다. 허리가 곧으면 사람의 노여움을 산다. 활처럼 굽은 허리는 사람이 오히려 능멸하지 않는다. 스스로 잘난 체하거나, 많이 가진 체하거나, 지위가 높은 체하는 사람을 세상은 가장 천하게 바라본다. 화와 복이 교만하고 겸손한 사이에서 오는 것임을 명심하라.”
16. 이규보(李奎報)의 자계명(自誡銘)
이규보(李奎報)는 고려의 문신으로 본관은 황려(黃驪), 자는 춘경(春卿), 초명은 인저(仁低), 호는 백운거사(白雲居士)·지헌(止軒)·삼혹호선생(三酷好先生)이다. 9세 때 이미 신동으로 알려졌으며 14세 때 성명재(誠明齋)의 하과(夏課)에서 시를 지어 기재(奇才)라 불렸다. 소년시절 술을 좋아하며 자유분방하게 지냈는데, 과거지문(科擧之文)을 하찮게 여기고 강좌칠현(姜左七賢)의 시회에 드나들었다. 개성 천마산에 들어가 백운거사를 자처하고 시를 지으며 장자(莊子)사상에 심취했다. 후에 최충헌의 발탁으로 벼슬길에 올랐다. 시문에 능하고 성품이 수일하였다.(1168~1241)
자계명(自誡銘-스스로 경계할 일에 대한 명)-이규보(李奎報)
친근하다 해서 나의 비밀을 누설하지 말라. 총애하는 처첩(妻妾)은 이불은 같이해도 뜻은 다르다. 부리는 노복(奴僕)이라고 경솔하게 말하지 말라. 겉으로는 순종하나 속에는 엉뚱한 생각을 품고 있다. 더구나 나에게 친근한 사람도 부리는 사람도 아님에랴.
(無曰親眤而漏吾微 寵妻嬖妾兮 同衾異意 無謂傼御兮輕其言 外若無骨兮 苞蓄有地 況吾不媟近不驅使者乎)
사람에게는 누구나 비밀이 있다. 큰일을 도모하는 지위에 있는 사람이거나, 한가롭게 농촌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에게도 반드시 시켜야할 은밀한 것이 있게 마련이다.
옛말에,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말도 있고,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우화도 있는 것은 선생의 경계처럼 이유가 있어서 나온 말들이다. 중요한 일을 도모할 때의 모사(謀事)과정에서 일이 탄로되어 참화를 당했던 역사의 기록들도 많고, 가정 안에서도 서로 알려져서는 안 되는 내용들이 입을 통하여 전해져서 낭패를 당하는 일도 허다하다.
근래에 와서는 국가의 연구기관에서 중요한 자료들이나, 기업의 중심기술이 해외나 남의 나라로 유출되어 큰 낭패를 보는 예를 알고 있다. 이처럼 중요한 기밀의 유출사고는 반드시 믿었던 자들의 소행이었다.
선생의 자계명을 보면, ‘나에게 가장 가까운 처첩(妻妾)일지라도, 조석으로 부리는 비복(婢僕)일지라도, 말 못하는 병(甁)처럼 경계해야 되니, 하물며 타인에게야 말할 필요가 없다.’ 고 스스로 경계하고 있다.
17. 이규보(李奎報)의 심게(心偈)
이규보(李奎報)는 고려의 문신으로 본관은 황려(黃驪), 자는 춘경(春卿), 초명은 인저(仁低), 호는 백운거사(白雲居士)·지헌(止軒)·삼혹호선생(三酷好先生)이다. 9세 때 이미 신동으로 알려졌으며 14세 때 성명재(誠明齋)의 하과(夏課)에서 시를 지어 기재(奇才)라 불렸다. 소년시절 술을 좋아하며 자유분방하게 지냈는데, 과거지문(科擧之文)을 하찮게 여기고 강좌칠현(姜左七賢)의 시회에 드나들었다. 개성 천마산에 들어가 백운거사를 자처하고 시를 지으며 장자(莊子)사상에 심취했다. 후에 최충헌의 발탁으로 벼슬길에 올랐다. 시문에 능하고 성품이 수일하였다.(1168~1241)
심게(心偈)-이규보(李奎報)
蒼天傾兮大地偏(창천경혜대지편) : 창천이 기울고 대지가 구석지며
五岳側兮三山移(오악측혜삼산이) : 오악이 기울고 삼산이 옮겨진다 해도
惟心之正兮不兀不欹(유심지정혜부올부의) : 마음의 바름이여, 움직이고 기울지 않아
石能韋兮鐵能綿(석능위혜철능면) : 돌이 가죽 같고 쇠가 솜처럼 부드러우며
金可朽兮玉可腐(금가후혜옥가부) : 금이 썩을 수 있고 옥이 부패할 수 있지만
惟心之貞兮亘萬古而彌固(유심지정혜긍만고이미고) : 마음의 곧음이여, 만고에 더욱 견고하다
王母之顏易凋(왕모지안역조) : 서왕모의 얼굴은 쇠잔하기 쉽고
彭鏗之壽易耗(팽갱지수역모) : 팽조의 수가 다하기도 쉽다지만
惟心之壯兮日月不能老(유심지장혜일월불능로) : 마음의 장함이여, 일월이 늙지 못
하게 하는구나.
莫云一寸(막운일촌) : 일촌이라 말을 말라
廣或千里(광혹천리) : 넓으면 혹 천리나 되네.
凜焉如氷(름언여빙) : 얼음처럼 차고
澄焉如水(징언여수) : 맑음이 물 같다
心哉心哉異於人(심재심재이어인) : 마음이여, 마음이여, 남과 다르다
孰以此付吾(숙이차부오) : 누가 이것을 나에게 붙였는가?
噫噫誰知夫(희희수지부) : 아, 이 마음을 누가 알리
하늘과 땅이 기울어지고, 오악(五嶽)이 기울고 삼산(三山)이 옮겨질지언정, 바른 마음은 기울거나 옮기지 않으리라.(蒼天傾兮大地偏 五岳側兮三山移 惟心之正兮不兀不欹)
쇠와 돌이 부드러워지고, 금과 옥이 썩을지언정, 곧은 마음은 영원히 견고하리라(石能韋兮鐵能綿 金可朽兮玉可腐 惟心之貞兮亘萬古而彌固)
선녀인 서왕모(西王母)도, 오래 살았다는 팽조(彭祖)도 늙을 수 있지만, 장(壯)한 사람의 마음은 세월이 가도 늙게 하지 못한다.(王母之顏易凋 彭鏗之壽易耗 惟心之壯兮日月不能老)
마음이 한 치쯤 된다고 얕보지 말라. 넓은 마음은 천리를 덮는다. 차기는 얼음 같고 맑기는 물과 같다.(莫云一寸 廣或千里 凜焉如氷 澄焉如水)
마음이여, 마음이여! 보통사람과 다른 마음이여! 누가 이 마음을 나에게 붙여놓았나? 아! 이 나의 마음을 누가 알겠는가?(心哉心哉異於人 孰以此付吾 噫噫誰知夫)
‘
마음이 쇠와 돌 같다(心如鐵石)’란 말은 들었다. 선생이 자기의 마음을 믿는 것은 쇠나 돌보다 더 강하다. 정직한 마음, 곧은 절개, 장엄한 장부의 기상은 변하지도, 부패하지도, 쇠하지도 않는다. 누가 이 마음을 내게 주었는가? 라고 노래하고 있다. 누가 이와 같이 차고 맑은 마음을 지닐 수 있으며, 선생처럼 지녔다고 자부할 수 있을 것인가? 선생의 기상(氣象)이 마치 ‘가을 달이 얼음 항아리에 비친 것(氷壺秋月)’과 같다.
18. 진덕수(眞德秀)의 경의재명(敬義齋銘)
진덕수(眞德秀)는 남송(南宋)의 복건성 출신이다. 자는 경원이며 세상 사람들로부터 서산선생(西山先生)이라 불리었다. 저서로 심경(心經)이 있다. 퇴계는 특히 이 책을 몹시 소중하게 여겼다.(1178-1235)
선생이 거처(居處)하는 방문 위에 경의재(敬義齋)라는 편액(扁額)을 걸어놓고 그 편액을 두고 명(銘)을 지은 것이다. 군자(君子)가 거하는 방의 이름은 ‘공경하고 의로운 곳 이어야한다.‘는 뜻이다.
경의재명(敬義齋銘-공경하고 의로운 집의 명)-眞德秀
역(易)의 곤괘(坤卦) 두 번째 효(爻)는 그 덕이 곧(直)고 방정(方正)함을 뜻한다. 군자는 이를 본받아 도를 행함에 떳떳함이 있다. 안으로 마음을 세움을 세우는 데는 곧음이 중요하니 오직 공경으로써 이를 곧게 행하되, 치우쳐 막히지 않게 하고, 밖으로 행할 때는 방정함이 중요하니 오직 의로써 이를 행한다. (惟坤六二, 其德直方, 君子體之, 爲道有常, 內而立心, 曰直是貴, 維敬則直, 不偏以陂,外而制事, 曰方是宜, 愉義則方, 各當其施.)
공경함이란 어떤 것인가? 오직 하나의 천리(天理)를 받들어 마치 신명(神命)이 옆에 있는 듯 두려운 마음으로 보존해 가는 것을 말한다. ( 曰敬伊何, 惟主乎一, 澟然自指, 神明在側.)
의(義)란 무엇인가? 정당한 이(理)를 따름으로써 이해관계에 빠져드는 사사로움이 그 천진함을 가리지 않게 함이다. (曰義伊何, 惟理是循, 利害之私, 罔汨其眞.)
고요하게 마음의 천리를 보존하고 길러 가면 그 가운데 근본이 바로 서서 사물을 마주함에 도리에 맞지 않음이 없다. 거룩하구나, 공경함이여! 한 마음의 곧음이 되고, 지극하구나, 마땅한 의리여! 만 가지 일의 근본이 된다. (靜而存養, 中則有主, 動而酬酌, 莫不中矩. 大哉敬乎, 一心之方. 至哉義乎 萬事之綱.)
이 경(敬)과 의(義)는 서로 어긋나지 않으므로 둘을 함께 수행해 나가면 안과 밖이 훤히 통하여 마침내 위로 하늘의 덕에 도달하게 된다. 옛날 명철한 왕은 이 경(敬)과 의(義)를 스승으로 삼고 이를 단서(丹書)에 기록하여 소중한 자리에 보관하였다. 경(敬)은 나태함과 대립되고 의(義)는 사사로운 욕심과 대립되는데, 이 중 어느 쪽에 마음을 두느냐에 따라 화와 복이 뒤따른다. (敬義夾持, 不二不忒, 表裏洞然, 上達天德. 昔有哲王, 師保是詢, 丹書有訓, 西面以陳.敬與怠分, 義與欲對, 一長一消, 禍福斯在.)
나태한 마음이 싹트면 용렬하여 어두운 구렁텅이로 떨어지고, 사욕이 불타오르면 이(利)를 쫓아 미친 듯이 날뛴다. 이 나태함과 사욕이야말로 덕을 무너뜨리는 도적이니, 원대한 마음을 내어 마치 전쟁터에서 적을 무찌르듯 물리쳐야 한다. 나태함과 사욕을 극복하고 나면 경과 의가 보존되어, 마음은 곧고 행동은 방정하여 곤괘의 덕에 합치될 수 있는 것이다. 문득 재실(齋室)의 편액(扁額)을 보니 엄한 스승이 서 있는 듯 가르침이 다할 날이 없구나. (怠心之萌, 闒焉沈昏, 欲心之熾, 蕩乎狂奔. 惟此二端, 敗德之賊, 必壯乃猷, 如敵斯克. 怠欲歸泯, 敬義斯存, 直方以大, 協德于坤. 一念小差, 視此齊扁, 嚴師在前, 永詔無倦.)
군자(君子)가 거하는 곳에는 그 덕이 곧고(直), 방정(方正)함으로 근본을 삼아야한다. 의지를 세울 때는 곧음이 중요하니, 공경(敬)하는 마음으로 곧음을 행하고, 밖으로 행동할 때는 바른 행동(方正)이 중요하니, 의로움으로 힘써 행해야한다.
그렇다면 공경함(敬)이란 어떤 것인가? 오직 하늘의 이치에 따라, 내 주위에 ‘신이 항상 지켜본다.“는 마음으로 조심함이요. 오은 일(義)이란 무엇인가? 정당한 이치에 따르고 마음에 사사로움을 버려서 천진(天眞)한 마음으로 행동함이다.
고요한 마음으로 천리(天理)를 생각하면, 마음의 근본이 바로서서 사물을 대함에 다 공경하게 되고, 도리에 맞게 된다. 그러므로 공경하는 마음은 위대하여서 곧은 마음의 방편이 되고, 의로운 행동은 지극하여서 만 가지 일의 벼리(綱)가 된다.
따라서 경(敬)과 의(義)는 상호보완의 관계에 있어 이를 잘 이행하면 하늘의 이치에 순응하게 된다. 공경함은 게으름과 대립되고, 의로움은 사욕과 대립되는데, 어느 곳에 마음을 두는가에 따라 화와 복이 따른다. 옛날 명철한 왕은 이를 잘 지켜서 치국(治國)과 애민(愛民)에 적용하였다.
나태(懶怠)한 마음이 싹트면 용렬해져서 암흑에 떨어지고, 사욕(私慾)에 빠지면 이로움을 쫓아 광분하니, 이 두 가지는 덕을 무너뜨리는 도적이다. 내가 방의 편액(扁額)의 글을 바라보니, 마치 스승이 서 계신 것 같아서 더할 말이 없음을 깨닫는다.
19. 이색(李穡)선생이 자손에게 준 교훈
이색(李穡)의 자는 영숙(潁叔), 호는 목은(牧隱), 본관은 한산(韓山)이다. 아버지는 찬성사 곡(穀)이다. 15세에 부음(父陰)으로 별장(別將)의 직을 얻고, 1341년(충혜왕 복위 2) 진사가 되었다. 고려의 삼은(三隱)중 한분으로 학문과 도학이 높았다. 익재 이제현의 제자로, 선생이 자손에게 준 아래의 시는 사람 살아가는데 좌우명이고 가훈이다.
시자손(示子孫)
形端影豈曲 모양 단정하면 그림자가 어찌 비뚤어질까
源潔流斯淸 근원이 깨끗해야 흐르는 물이 맑은 법
修身可齊家 몸을 닦아야 집안을 다스릴 수 있으며
無物由不誠 사물이 정성에서 나오지 않은 것이 없다
荒淫喪本性 거칠고 음란하면 본성을 잃게 되고
妄動傷元精 망령되게 행동하면 근본 정기를 상한다.
所以戒自斵 그래서 스스로 제 몸 깍지 말도록 경계한다.
斵根木不榮 뿌리 자르면 나무는 번성하지 못하고
寢席燕安地 잠자고 편안히 노는 자리에도
天性赫然明 타고난 성품은 어디서나 나타난다.
奈之何忽諸 어찌하여 소홀히 하랴
吾身所由生 내 몸이 태어난 것을
或褻而玩之 혹시라도 몸을 더럽히면
禽獸其性情 그 성품 금수와 같이 되리라
嗟嗟我子孫 아아, 내 자손들은
眎此座右銘 이 글을 자리 옆에 두고 보아라
선생의 평생 닦아 사신 덕행대로 자손들에게 내려준 소중한 교훈이다. 문장과 도학이 출중하고, 심득(心得)의 경지에 오르신 선생이 아니면 어찌 이와 같은 교훈을 주실 수 있었겠는가? 언제나 읽어도 내 보모님이 해 주시는 말씀 같고, 인자한 스승의 말씀이다. 어떤 물질적 유산이 이보다 더 빛나고 귀할 수 있단 말인가?
20. 정도전(鄭道傳)의 죽창명(竹窓銘)
정도전(鄭道傳)은 조선 개국의 핵심 주역으로서 고려 말기의 사회모순을 해결하고 이를 실천하기 위하여 새로운 왕조를 개창(開創)했다. 각종 제도의 개혁과 정비를 통해 조선왕조 500년의 기틀을 다져놓았다. 본관은 봉화(奉化). 자는 종지(宗之), 호는 삼봉(三峰)이다.(1342-1398) 삼봉(三峰)선생은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 제(齊)나라의 관중(管仲)과 같은 분으로, 학문과 포부가 일세를 풍미(風靡)했다. 선생이 아니었다면 누구도 새로운 나라의 국기(國基)를 만들어내지 못하였을 것이다. 선생은 단양(丹陽)출생으로 도담삼봉(島潭三峰)을 사랑해서 스스로 삼봉(三峰)이라 호를 짓고, 틈만 나면 그 곳에서 소일하였다고 전한다.
죽창명병서(竹窓銘幷序-죽창명, 서문도 함께)-정도전(鄭道傳)
삼봉 은자가 언창의 부친 이 선생을 보고 묻기를, “선생이 아호를 죽창이라고 한다는데 그게 사실입니까? 대개 대나무는 그 속이 비고 그 마디가 곧으며, 그 빛이 차가운 겨울을 지나도 변하지 않기 때문에, 군자들이 그것을 숭상하여 자기의 지조를 가다듬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시경>에서도 ’군자의 본질이 아름다운 것이나, 학문이 스스로 닦여져 진전됨은 그 의탁한 바가 깊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옛 사람이 대나무에서 취한 것이 하나가 아닌데 선생이 편하게 여기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하니 (三峯隱者見彥暢父李先生問曰 子號竹窓 然乎 夫竹 其心虛 其節直 其色經 歲寒而不改 是以君子尙之 以勵其操 至於詩 以興君子生質之美 學問自修之進 則其所托者深矣 古人之取於竹 非一 敢問所安)
선생이 말하기를, “아닙니다. 그러한 고상한 지론은 없습니다. 다만 대나무가 봄에는 새들에게 알맞아 그 울음소리가 드높고, 여름에는 바람 부는 데 알맞아 그 기운이 맑고 상쾌하며, 가을이나 겨울에는 눈과 달에 알맞아 그 모양이 쇄락합니다. 그리하여 아침 이슬, 저녁연기, 낮 그림자, 밤 소리에 이르기까지 무릇 이목에 접하는 것치고는 한 점도 진속(塵俗)의 누(累)가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일찍 일어나서 세수하고, 죽창에 앉아 탁자를 정돈하고 향을 피운 다음 글을 읽기도 하며 거문고를 타기도 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온갖 생각을 떨쳐 버리고 묵묵히 꿇어앉아서 죽창에 자신이 기대고 있는 것조차 잊기도 합니다.” 하였다. (先生曰未也 無甚高論 且竹 春宜鳥 其聲高亮 夏宜風 其氣淸爽 秋冬宜雪月 其容灑落 至於朝露夕煙晝影夜響 凡所以接乎耳目者 無一點塵俗之累 予於是早起 盥瀹坐竹窓淨几焚香 或讀書或彈琴 有時撥置萬慮 默然危坐 不如吾身之寄於竹窓也)
아! 알겠구나. 선생의 즐거움은 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마음에 얻은 것을 대에다가 의탁했을 뿐이다. 청하여 이것으로 명(銘)을 짓는다. (噫 先生之樂不在竹 但得之心而寓之於竹耳 請以是銘之)
有闢其窓(유벽기창) : 활짝 열린 그 창문
有鬱者竹(유울자죽) : 무성한 것 대나무다
君子攸宇(군자유우) : 군자의 사시는 집
其貞如玉(기정여옥) : 그 정조 옥과 같다
左圖右書(좌도우서) : 좌우에 책 싸놓고
閱此朝夕(열차조석) : 아침저녁 펼쳐 보네
不物於物(부물어물) : 사물에 끌림이 아니라
維樂其樂(유락기락) : 오직 그 즐거움을 즐기네.
예로부터 대나무는 군자의 덕을 상징했다. 대나무는 네 가지 덕목이 있다 하였는데, 굳은 뿌리와, 곧은 줄기와, 단단한 마디와, 텅 빈 속이 그 것이다. 삼봉선생은 이선생이 창밖에 대나무를 심어 사랑하는 모습을 보고 묻고 대답한 뒤에, 이 문답의 대의를 살려서 죽창명(竹窓銘)을 지었다.
“언제나 창문을 활짝 열어놓으니 그 곳엔 대나무가 무성하기 때문이다. 군자께서 사시는 집, 대나무마디처럼 정조가 맑기도 하시다. 항상 좌우에 책을 쌓아놓고 아침저녁 쉬지 않고 읽으시네. 외물(外物)의 작용에 끌림이 아니라 마음속에서 울어나는 즐거움을 누리실 뿐이네.”
21. 권근(權近)의 사자명(四字銘)
권근(權近)은 고려 말과 조선초기의 문신이며 학자로, 이성계의 새 왕조 창업에 중심적인 역할을 했으며, 개국 후 각종 제도정비에 힘썼다. 그의 사상은 퇴계 이황의 사단칠정론에 영향을 주었으며, 예기를 중시하여 강상(綱常)의 확립을 통한 왕권 강화에 기여했다.(1352-공민왕 1년~1409-태종 9년) 본관은 안동, 어렸을 때 이름은 진(晉), 자는 가원(可遠), 호는 양촌(陽村)이다.
양촌(陽村)선생은 대 문장가로 문명과 덕행이 뛰어난 분이다. 선생은 두 아들 길천 군규(吉川 君跬)에게 지켜야할 네 글자인 공(公), 근(勤), 관(寬), 신(信)을 풀이해서 명(銘)을 지어 아래와 같이 주었다.
사자명(四字銘)-권근(權近)
公(공)
公則不私(공칙불사) : 공정하면 사가 없고
心淸無欲(심청무욕) : 마음이 맑으면 욕심이 없다.
事出至當(사출지당) : 일이 지당한 데서 나오면
是謂正直(시위정직) : 이것이 정직이다.
“매사에 공평하면 마음에 사사로운 감정이 없어지고, 마음에 사사로운 감정이 없어지면 마음이 맑아서 욕심이 없어지리라. 모든 일이 당연한 곳에서 출발하면 이것을 일러 정직하다고 말할 수 있다.“ 하늘의 도는 지극히 공평해서 사사로움이 없다(至公無私) 하였는데, 사심을 버려야 마음이 맑아진다. 정당한 일에는 부정이 개입할 수 없음을 알게 해 준다.
勤(근)
勤則不怠(근칙불태) : 부지런하면 나태해지지 않는 것이니
孜孜罔愆(자자망건) : 부지런히 노력하여 어기지 마라.
職無廢弛(직무폐이) : 맡은 일을 폐하거나 해이하지 않는 것이
是謂忠賢(시위충현) : 이것을 충현(忠賢)이다.
“부지런해서 매사에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다하라. 내가 맡은 직분에 충실해서 할 일을 엎거나 느슨하게 하지 말라, 이런 행동을 세상은 진실하고 현명하다고 이른다,” 자신이 할 일에 충실하여 부지런히 임하면 충현(忠賢)한 사람이 된다.
寬(관)
寬則不苛(관칙불가) : 너그러우면 가혹하지 않게 되니,
事皆仁厚(사개인후) : 일을 모두 인후하게 하라.
君子之德(군자지덕) : 군자의 덕은
慶流于後(경류우후) : 그 경사가 후세에 전해지느니라.
“성정(性情)이 너그러우면 조급하거나 궁색할 일이 없으리니, 모든 일이 어질고 후한 마음이 생기게 마련이다. 너그러운 마음을 지닌 군자의 덕으로 그 열매가 후세에까지 미치게 된다.” 마음이 너그러우면 오래 산다(心寬則壽)고 하였다. 너그러운 마음은 용서(恕)하는 데서 비롯되고, 용서하는 마음은 측은(惻隱)히 여기는 마음에서 시작되니, 측은히 여기는 마음이 곧 인(仁)이다.
信(신)
信則不妄(신칙불망) : 미더우면 경망하지 않나니
持之以誠(지지이성) : 유지하기를 성심으로 하여,
堅守其意(견수기의) : 굳게 그 뜻을 지키고
毋自變更(무자변갱) : 스스로 변경하지 마라
“믿음이란 사람의 마음과 모든 언행에 기초가 되는 덕목이니, 이를 지키기 위해서는 매사에 경거망동하지 말아야한다. 굳게 지켜서 성심을 다하고, 어떤 경우에도 가볍게 변경시키지 말아야한다.”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 이 다섯 가지 덕목은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것이지만, 그 가운데서도 신(信)이란 매우 중요하다. 믿음을 지키는 요체(要諦)는 지성(至誠)에 있으니 매사에 지성으로 임하면 믿음을 잃지 않으리라.
양촌(陽村)선생은 두 아들에게 준 좌우명에서, 선생의 소신도 있지만, 주는 자식에게 부족한 부분을 골라서 훈계하였을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지켜야할 덕목이 많기는 하지만, 위의 네 가지는 참으로 귀한 가르침이며, 그 것들을 행하기 위한 구체적인 수단과, 지킨 뒤에 받는 효과를 간명하게 표현하였다. 마음 속 깊이 와 닿는 교훈이다.
22. 김굉필(金宏弼)의 한빙계(寒氷戒)
조선 전기의 성리학자로서 본관은 서흥(瑞興)이며 자는 대유(大猷)이다. 그리고 호는 사옹(蓑翁) ·한훤당(寒喧堂)으로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아버지는 충좌위사용(忠佐衛司勇) 유(紐)이며, 어머니는 중추부사(中樞副使) 승순의 딸 청주한씨(淸州韓氏)이다. 서흥의 토성(土姓)으로서 고려 후기에 사족(士族)으로 성장한 집안이다. 어려서는 호방하고 거리낌이 없어, 저자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을 매로 치는 일이 많아 그를 보면 모두 피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성장함에 따라 분발하여 점차 학문에 힘쓰게 되었다. 근기지방의 성남(城南)·미원(迷原) 등지에도 상당한 경제적 기반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짐작되나, 주로 영남지방의 현풍 및 합천 성주등지를 내왕하면서 사류(士類)들과 사귀고 학문을 닦았다.
당시 선생이 제자인 정암에게 준 유명한 한빙계(寒冰戒)는 후일 큰 학자들에게도 많은 호감을 얻어 좌우명으로 삼았다고 한다.
한빙계(寒冰戒)
1. 동정유상(動靜有常)움직이거나 머물고 있을 때 항상 떳떳해라.
2. 정심솔성(正心率性)바른 마음으로 타고난 성품을 거느려라.
3. 정관위자(正冠危坐)의관을 갖추고 단정한 모습으로 지내라.
4. 심척선불(深斥仙佛)신선도나 불교를 멀리하라.
5. 통절구습(痛絶舊習)낡은 습관을 철저하게 끊어 버려라.
6. 질욕정분(窒欲懲忿)욕심을 막고 분한 마음을 참아라.
7. 지명돈인(知命敦仁)하늘의 뜻을 알고 어진 일에 힘쓰도록 하라.
8. 안빈수분(安貧守分)가난함도 편안히 여기고, 분수를 지키라.
9. 거사종검(去奢從儉)사치와 허영을 버리고 근검절약하도록 하라.
10. 일신공부(日新工夫)날마다 새로워지는 공부를 하라.
11. 독서궁리(讀書窮理)책을 많이 읽고 깊이 생각하도록 하라.
12. 불망사어(不妄詐語)망령된 말과 거짓말을 하지 않도록 하라.
13. 주일불이(主一不二)마음을 하나로 집중하고, 흩어지지 않도록 하라.
14. 극념극근(克念克勤)잘 생각하고 항상 부지런 하라.
15. 지언(知言)말을 아끼고 말의 의미를 깊이 새기도록 하라.
16. 지기(知幾)일의 기미(幾微)를 알도록 하라.
17. 신종여시(愼終如始)시작할 때와 같이 끝도 신중하게 하라.
18. 지경존성(持敬存誠)공경하는 마음을 지니고 성실함이 있으라.
마음을 다스리고 실천에 옮기는 요체(要諦)를 남긴 교훈으로, 익히고 지키기를 찬 어름처럼 하라는 뜻에서 한빙게(寒冰戒)라고 이름을 붙였을 것이다. 선인(先人)들이 다 이미 해온 말이지만, 행동하기가 쉽지 않다. 학문이란 모름지기 아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아는 것도 실행에 옮기지 못하면 소용없는 것임을 명심해야한다. 그러나 이처럼 요약된 교훈은 아무나 토해놓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23. 박광전(朴光前)의 가훈(家訓)
박광전(朴光前)은 조선중기의 문신으로 김인후(金麟厚), 기대승(奇大升), 이항(李恒), 유희춘(柳希春)과 함께 호남5현(湖南五賢)의 한 사람이다.(1526-중종 21년~1597-선조 30년) 본관은 진원(珍原), 자는 현재(顯哉), 호는 죽천(竹川)이며, 시호는 문강(文康)이다. 그는 퇴계 이황의 문인으로 기호학자(畿湖學者) 중에서 특히 실천에 뛰어났다. 학문에 있어서 지행(知行)의 어느 하나만을 내세울 수는 없으며, 그 둘은 서로 의지하여 함께 나아가야 한다는 지행호진(知行互進)의 관계를 강조했다. 선생의 가훈을 보자.
문강공가훈(文康公家訓)-박광전(朴光前)
淸白節行(청백절행) : 마음은 맑고 깨끗하게 지녀서 행실은 절도 있게 행하고
世濟趾美(세제지미) : 세상을 제도하여 미덕을 남겨야 한다.
事親盡孝(사친진효) : 어버이를 섬김에 효성을 다하고
居喪盡禮(거상진례) : 부모의 장례에는 예를 다해야 한다.
持身有法(지신유법) : 몸가짐에 법도를 지키고
絶義名利(절의명리) : 의로운 일에 명리에 대한 생각을 없애야 한다.
孝友之行(효우지행) :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와 우애하는 행실은
忠厚之德(충후지덕) : 성실하고 너그러운 덕성으로 되니
格致誠正之行(격치성정지행) : 사물을 대하여 성실하고 바르게 행동하면
有所自得(유소자득) : 스스로 얻는 것이 있으리라.
儉素節用(검소절용) : 생활을 검소하고 절약하게 하면서
視民如傷(시민여상) : 백성들을 보살피기를 다칠까 걱정하듯 하라
죽천(竹川)선생은 호남오현(湖南五賢)의 한분으로 퇴계선생(退溪先生)의 문하생이다. 선생의 좌우명은 매우 간명하면서 사람이 지켜야할 도리를 함축하고 있다.
첫 번째 는 뜻을 세우는 일로 입지(立志)를 설하고 있다. 청백절행제세지미(淸白節行世濟趾美) ;먼저 마음을 맑고 깨끗하게 지니고 행동을 절도 있게 하여 자기 수양을 쌓은 다음에, 이와 같은 마음과 행실을 바탕삼아서, 세상을 아름답게 구제하려는 생각을 가지라한다. 다시 말하면 자기 자신을 다스리지 못하면 세상을 바르고 아름답게 제도할 수 없다는 말이다.
두 번째는 사람이 지켜야할 근본 행실인 효도(行孝)를 가르치고 있다. 사친진효거상진예(事親盡孝居喪盡禮) ;나 자신이 부모로부터 태어났으니, 부모님 아니 계시면 나도 없다. 부모가 살아계실 때나 돌아가셨을 때, 모두 극진하게 효와 예절을 다해야한다. 고 가르친다. 사람의 근본을 일깨워주는 교훈이다.
세 번째는 자기관리의 원칙(持身)을 가르치고 있다. 한 마디로 의(義)로운 일을 하려면 명리(名利)를 먼저 버리라고 전제하고, 가정에서는 부모에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하며, 밖으로는 진실 되고 너그러운 덕을 쌓아 사물에 임할 때에 성의를 다하고 바르게 판단한다면 반드시 얻을 것이 있다. 고 하였다.
끝으로 세상 밖으로 나가 자신의 포부를 국민에게 펴서 세상을 제도할 필요가 있다. 이 때 반드시 지켜야할 일은 먼저 검소한 생활과 절제된 소비로 주위에 자신의 청백(淸白)함을 보이면, 그의 명령이 백성에게 전달되어 백성이 복종하게 된다. 또 마음가짐을 측은한 듯한 마음으로 백성을 바라보되, 마치 다친 사람을 바라보는 애틋한 심정으로 대하면 그의 덕망이 높임을 받아서 백성들이 어버이를 바라보는듯하여 따를 것이니 이런 마음이 곧 치민(治民)의 덕이 된다는 것이다.
선생의 가르침은 그분의 소신처럼 지행일치(知行一致)를 전제로 하고 있다. 아는 것만으로 그치는 것은 단지 고루한 학문일 뿐으로 아는 것에 그치고 만다. 알고 또 행하는 일은 학행일치(學行一致)가 되어서 살아 있는 지식으로 자기 자신은 물론 넓은 곳에 그의 교화가 미칠 것이다. 훌륭한 가르침에 감사한다.
24. 이지(李贄)의 동심설(童心說)
이지(李贄)는 중국 명(明)나라의 사상가며 문학가로 호는 탁오(卓吾)·굉보(宏甫). 천주(泉州) 진강(晉江-지금의 푸젠 성(福建省)에 속함) 사람이다. 윈난성(雲南省) 야오안(姚安)의 지부(知府)를 지냈으나 54세에 관직을 떠났으며, 중년 이후에 양명학(陽明學)과 선학(禪學)의 영향을 받았다. 만년의 저서와 가르침에서 당시의 도학(道學)을 비판했기 때문에 여러 차례 박해를 받았다. 결국 장문달(張問達)의 탄핵으로 옥중에서 자살했다. 그의 동심설(童心說)은 어린 아이의 마음 그대로를 존중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스스로 이단으로 자처하면서 유가의 예교를 비판하고, 공자가 세워놓은 기준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에 반대했다. 당시의 도학자들을 "겉으로는 도를 말하나 속으로는 부귀를 바라며, 유학자의 고상한 옷을 걸쳤으나 행동은 개·돼지나 다를 바 없다"고 맹렬히 비난했다. (1527~1602)
동심설(童心說)-이지(李贄)
용동산인(龍洞山人)은 그의 서상기(西廂記) 끝 부분에서 말하기를, "뭔가를 아는 사람이라면 나에게 아직 동심이 남아 있다고 말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대저 동심이란 진실한 마음이다. 만약 동심으로 돌아갈 수 없다면, 이는 진실한 마음을 가질 수 없다는 말이 된다. (龍洞山人 西廂末語云 知者勿謂我尙有童心可也 夫童心者 眞心也 若忍心爲不可 是以眞心爲不可也)
무릇 동심이란 거짓을 끊어버린 순진함으로, 사람이 태어나서 처음 갖게 되는 본심을 말한다. 동심을 잃게 되면 진심이 없어지게 되고, 진심이 없어지면 진실한 인간성도 잃어버리게 된다. 사람이 진실하지 않으면 최초의 본래의 마음을 다시는 회복할 수 없는 것이다.(夫童心者 絶假純眞 最初一念之本心也 若夫失童心便失眞心 失眞心便失眞人 人而非眞全不復有初矣)
어린아이는 사람의 처음 모습이며, 동심은 마음의 처음 모습이다. 대저 최초의 마음이 어찌하여 없어질 수 있는 것이며, 그리고 동심은 왜 느닷없이 사라지고 마는 것일까? 원래 그 시초는 듣고 보는 것이 귀와 눈으로부터 들어와 마음 안에서 사람을 주재하게 되면 동심이 없어지게 된다.(童子者 人之初也 童心者心之初也 夫心之初 曷可失也 然童心胡然而遽失也 蓋方其始也 有聞見從耳目而入 而以爲主于其內 而童心失)
어린 아이가 자라서, 도리(道理)가 견문(見聞)으로부터 들어와 사람의 내면을 주재하게 되면 어느덧 동심도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도리와 견문이 나날이 쌓이니 아는 것과 느끼는 바가 나날이 넓어지게 된다. 또 미명(美名)이 좋은 줄 알고 이름을 드날리려고 애쓰다가 동심을 잃어버리게 되고, 좋지 못한 평판이 추한 줄도 알게 되고도 그것을 가리려고 애쓰다가 동심을 잃게 된다.(其長也 有道理從聞見而入 而以爲主于其內 而童心失 其久也道理聞見 日以益多 則所知所覺 日以益廣于是焉 又知美名之可好也 而務欲以揚之 而童心失 知不美之名之可丑也 而務欲以掩 而童心失)
무릇 도리와 견문은 모두가 많은 책을 읽어 의리가 무엇인지 아는 데서 나오는 것이다. 옛날의 성인이 어찌 글을 읽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그 분들은 공부하지 않아도 동심은 여전히 그대로였고, 설사 많은 책을 읽고 난 다음이라 해도 이 동심을 보호하여 그것이 없어지지 않도록 하였다. 보통 공부하는 자들이 많은 책을 읽고 의리를 깨우침으로써 도리어 동심을 가렸는데, 공부하는 자들이 많은 독서로 의리를 깨우치려다 자신의 동심을 가리게 되었다면, 성인들은 또 어째서 많은 책을 지으시고 말씀을 남기셔서 배우는 자들로 하여금 동심을 가리게 하였을까?(夫道理聞見 皆自多讀書識義理而來也 古之聖人 曷嘗不讀書哉 然縱不讀書 童心固自在也 縱多讀書 亦以護此童心而使之勿失焉耳 非若學者反以多讀書識理而反障之也 夫學者旣以多讀書識義理障其童心矣 聖人又何用多著書立言 以障學人爲耶)
동심이 가려지고 나서 말을 하면 그 말은 가슴속에서 우러나온 말이 아니고, 천거를 받아 정치를 하게 되면 정사에 기초가 없어지며, 저술한답시고 문장을 지으면 뜻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게 된다. 문장의 외적인 아름다움에 비해 내용에 내포된 바가 독실해 빛이 발휘되는 것도 아니니, 한 구절 덕스러운 말이나마 구하려 해도 끝내 얻어지지 않게 될 것이다.(童心旣障于是發而爲言語 則言語不由衷 見而爲政事 則政事無根 著而爲文辭 則文辭不能達 非內含以章美也 非篤實生輝光也 欲求一句有德之言 卒不可得)
그 이유가 무엇일까 동심이 이미 가려저서 외부로부터 들어온 견문과 도리가 마음자리를 다 차지해버렸기 때문이다. 견문과 도리가 마음이 되고 나면 말하는 것이 모두 견문과 도리의 말이요. 동심에서 우러나온 말이 아니다. 언사가 비록 아름다워도 나에게 무엇이겠는가? 어찌 거짓말쟁이가 거짓말을 내뱉으며 거짓 일을 꾸미고 거짓 문장을 지어내는 것이 아니겠는가?(所以者何 忍心旣障 而以從外入者聞見道理爲之心也 夫旣以聞見道理爲心矣 皆聞見道理之言 非童心自出之言也 言雖工 于我何與 豈非以假人言假言 而事假事文假文乎)
원래 그 사람이 거짓되면 모든 것이 거짓되게 마련이다. 이렇게 해서 거짓말을 거짓된 사람에게 말해주니 거짓된 사람이 기뻐하고, 거짓된 일을 거짓된 사람에게 알려주니 거짓된 사람이 기뻐하며, 거짓된 문장을 거짓된 사람과 토론하니 거짓된 사람이 기뻐하게 된다. 거짓되지 않은 것이 없으니 기뻐하지 않을 바도 없는 것이다. 온 장내가 거짓이니 구경하던 난쟁이가 무슨 말을 재잘거릴 것인가 그렇다면 이 세상에 비록 최고로 잘된 문장이 있었다 하더라도 거짓된 사람에 의해 (인멸湮滅)되어 후세에는 볼 수 없게 된 글들이 또 어찌 적다하리. 어찌하여 그러할까?(蓋其人旣假 則無所不假矣 由是而以假言與假人言 則假人喜 以假事與假人道 則假人喜 以假文與假人談 則假人喜 無所不假則無所不喜 滿場是假 矮場阿辯也 雖有天下之至文 其湮滅于假人 而不盡見于后世者 又豈少哉何也)
천하의 명문은 동심에서 나오지 않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 동심을 항상 지닐 수만 있다면 도리가 행해지지 않고, 견문은 행세하지 못하며, 언제 지어도 훌륭한 글이 되고, 어떤 사람이 지어도 좋은 글이 되며, 어떤 체제의 글을 지어도 빼어난 글 아닌 경우가 없게 된다. 시는 왜 꼭 고시(古詩)에서 뽑아야 하고, 문장은 왜 꼭 선진(先秦)의 것이라야 한단 말인가? 후세로 내려와 육조시대(六朝時代)가 되자 시는 바뀌어 근체(近體)가 되었다. 또 변해서 전기(傳奇)가 되고, 변해서 원본(院本-송대에서 원대 잡극이 성숙하기 이전까지 유행했던 희곡 작품)이 되어 잡극이 되었으며, 서상곡(西廂曲)과 수호전(水滸傳)이 되기도 하고, 오늘날의 과거문장이 되기도 하였다.(天下之至文 未有不出于童心焉者也 苟童心常存 則道理不行 聞見不立 無時不文 無人不文 無一樣創制體格而非者 詩何必古選 文何必先秦 降而爲六朝 變而爲近體 又變而爲傳奇 變而爲院本 爲雜劇 爲西廂曲水滸傳 爲今之擧子業大)
현인들의 말과 성인들의 도가 모두 고금의 명문으로 시세의 선후만 갖고는 논할 수 없는 글들이다. 이렇듯 위와 같은 이유 때문에 나는 동심에서 우러나온 명문들에 감격하고 말았으니, 거기에 무슨 육경(六經)을 말할 것이 있으며 논어(論語)와 맹자(孟子)를 말할 것이 있겠는가? 무릇 육경이나 논어 맹자는 사관들이 지나치게 추켜세워 숭상한 말이 아니면, 그 신하와 자식들이 극도로 찬양하고 미화시킨 언어일 뿐이다. 또 그런 것이 아니라면 세상물정 어두운 문도와 제자들이 스승의 말씀을 기억해낼 때 앞뒤는 잘라먹거나 뒤를 얻고 앞을 빠뜨린 채 제멋대로 자신의 견해를 따라 책에다 기록한 것에 불과하다. 후학들은 이를 자세히 살피지도 않고 성인의 입에서 나온 말씀이라 여기고 경전으로 지목해버렸는데, 그 대부분은 성인의 말씀이 아닌 줄 누가 알겠는가?(賢言聖人之道 皆古今至文 不可得而時勢先后論也 故吾因是有感于童心者之自文也 更說什六經 更說什語孟乎 夫六經語孟 非其史官過爲褒崇之詞 則其臣子極爲贊美之語 又不然則其迂腐門徒 弟子記憶師說 有頭無尾 得後遺前 隨其所見 筆之于書 後學不察 便爲出自聖人之口也 決定目之爲經矣 孰知其大半非聖人之言乎)
설사 성인께서 하신 말씀일지라도 요컨대 목적이 있어 나왔으니 병세에 따라 그때그때 적당한 약을 처방하여 이들 제자와 물정 어두운 문도들을 일깨우려 하셨을 따름인 것이다. 거짓된 병을 치료하는 데 드는 처방은 고정불변인 것이 되기 어려우니, 이것들이 어떻게 만세의 지론이 될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육경과 논어 맹자는 도학자가 내세우는 구실이고 거짓된 무리들의 소굴일 뿐이니. 그것들이 결코 동심에서 나온 말이 아님은 너무나 자명해진다. 슬프다! 나는 또 어찌해야 동심을 잃지 않은 진정 위대한 성인을 만나 그와 한 마디 말과 글이나마 나눠볼 수 있을까?(縱出自聖人 要亦有爲而發 不過因病發藥隨時處方 以救此一等弟子迂腐門徒云耳 藥醫假病方難定執 是豈可遽以爲萬世之論乎 然則六經語孟 乃道學之口實 假人之淵藪也 斷斷乎其不可以語于童心之言明矣 嗚呼 吾又安得眞正大聖人之童心未曾失者 而與之一言言哉)
이지(李贄)란 분은 지금으로 말하면 급진적(急進的) 진보주의자(進步主義者)였나 보다. 세상먼지 묻지 않은 사람의 마음을 동심(童心-어린 아이의 마음)이라 말하고, 이 귀한 동심은 자라면서 접하며, 보고 듣는(見聞)일에서부터 상실하기 시작하고, 공부한 뒤에 사람이 써놓은 책을 읽어 도리(道理)를 알기 시작하면서 점점 더 멀어진다고 한다.
만일 사람이 타고난 동심을 지니고 있다면 그가 쓰는 문장은 모두 명문이 될 것이지만, 동심을 상실한 사람은, 겉으로 아무리 미사여구(美辭麗句)로 아름다운 글을 쓴다 해도 그 알맹이는 진부(陳腐)할 수밖에 없는데, 보통 선비들이 애독하는 육경과 논맹이 그 것이라고 꼬집는다. 후미(後尾)에 와서 선인들의 경서를 트집 잡는 말은 수긍(首肯)이 안 가는 부분도 있으나, 동심(童心)의 중요함을 말한 논지(論旨)는 한번 음미할만해서 여기 소개한다.
25. 기대승(奇大升)의 자경설(自敬說)
기대승(奇大升)은 조선중기의 문신이며 학자로 조선 유학의 발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주자학자이며, 지치주의적(至治主義的) 이념으로 왕도정치를 펼치려 했다. 본관은 행주(幸州), 자는 명언(明彦), 호는 고봉(高峯)·존재(存齋)다. 퇴계 이황(李滉)의 문인이며, 김인후(金麟厚)·정지운(鄭之雲)·이항(李恒) 등과 사귀었다. 퇴계와 13년 동안(1558~70) 학문과 처세에 관한 편지를 주고받았다. 그 가운데 1559년에서 1566년까지 8년 동안에 이루어진 사칠논변(四七論辯)은 조선유학사상 깊은 영향을 끼친 논쟁이다.(1527~1572)
고봉선생은 도학에 투철한 학자로, 지난날의 잘잘못을 상기하면서, 스스로 공경(自敬)하는 마음을 묶어서 글로 남긴 것이 자경설(自敬說)이다.
자경설(自敬說)-기대승(奇大升)
고인(古人)들은 모두가 과거의 허물을 자책하여 스스로 경계하였으니, 대체로 과거의 실수를 마음 아프게 여기고 앞으로 잘하려는 생각을 일으키려는 것이다. 이는 모두 성인(聖人)과 현사(賢士)들이 뜻을 붙여 공부하던 것인데, 나만 어찌 유독 그리하지 않겠는가. 가영(歌詠)하던 나머지, 19년 전의 일부터 차근차근 서술하려 한다.(古人莫不訟前咎以自箴 蓋悼前之失 而起後來善思也 是皆聖人賢士之所寓意用功者 吾何爲獨不然 歌詠之餘 丕遠惟十九年前事)
나는 가정, 정해년(1527)에 태어났으니 그해가 곧 대행왕(大行王)-중종대왕 22년이다. 태어난 지 1년 만에 왕모(王母-조모)를 여의었고, 7-8세쯤 되어서는 어머니마져 여의고서 오직 아버지를 의지했는데, 아버지는 나를 고생하시면서 길러주셨다. 나는 어려서 질병이 많아 죽다 살아났는데, 오늘에 이르러 아득히 그 일을 생각하니 슬프기 그지없다. 아! 백성으로서 곤궁하기가 누가 나보다 더했겠는가. 가끔 어릴적 일을 생각해보면 기억나지 않는 것이 많으나 또한 한두 가지 생각나는 것도 있다.(予生於嘉靖丁亥 乃大行王中宗大王之二十二年也 生一年 失王母 及齔而失慈天 惟嚴君是依 劬勞鞠養 少多疾疹 在死而生 至于今日 昧昧思之 懷慟窮天 嗚呼 天民之窮毒者 孰過於予哉 時念少時事 多不復記憶 亦有一二可想者焉)
계사년에 비로소 가정에서 수학하였고, 다음해인 갑오년 7월에 망극의 비통함을 당하여 이로 인해 학업을 그만두기로 결정하고 다시는 학문에 힘쓰지 않았다. 아버지께서도 집안에 큰일을 당하셔서 글을 가르치지 않으셨다. 그러다가 을미년에 효경(孝經)을 읽고 글씨도 배우고 또 소학(小學)을 외기도 하여 거의 자포자기의 지경에는 이르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뜻밖에 하늘이 재앙을 내리고 귀신 역시 무정하여 병신년 겨울에 작은 누이가 역질(疫疾)로 죽었다.(癸巳歲 始受學于家庭 明年甲午之孟秋 丁窮天之慟 因決捨其業 不復以問學爲事 蓋家君亦以新遭大變 未嘗爲誨 歲之乙未 讀孝經學書 又誦小學 庶幾有望於不自棄 何意天未悔禍 鬼亦不弔 於丙申之冬 小妹以疫疾逝焉)
아버지께서는 환난과 재앙이 거듭됨으로 인하여 산사(山寺)로 피해 가 계셨으므로 나도 따라가서 글을 읽고 글씨도 익혀 꽤 진취의 희망이 있었다. 그해 겨울부터 정유년 가을에 이르기까지 아버지께서 절에 계시다가 늦가을에 서울에 가실 일 때문에 집으로 돌아오셨다. 나는 그때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아버지께서 서울에 가신 후로 나는 집에 있는 것이 마음에 맞지 않았다. 그래서 10월 초에는 스스로 분발하여 서당(書堂)으로 가서 대학(大學)을 다 배우고 이어 한서(漢書) 및 한문(한유의 문장)을 읽고 나니 그해가 벌써 저물었다. 인하여 집에 내려와 근친(覲親)하고 또다시 올라가서 맹자(孟子) 및 중용(中庸)을 읽었고 항상 동료들과 더불어 연구(聯句)를 짓고 또한 다른 저술도 하였는데, 사람들이 모두 나에게 학성(學性)이 있다고 칭찬하였다. 고문진보(古文眞寶) 전집(前集)을 읽고 또 고부(古賦)를 읽어 처음부터 끝까지 다 외었는데, 그때가 무술년이었다. (家君以患禍荐臻 避處山寺 予亦隨去 讀書習字 頗有進就之望 自其年冬月 至于丁酉之秋 家君在寺 秋晩 以上洛故還家 予時尙記憶也 家君上洛後 予以居家不愜於心 十月之初 自矜奮 往書堂受大學畢 繼讀漢書及韓文 歲已晩矣 因下家覲親 且復上焉 讀孟予及中庸 常與儕輩聯句 亦不無述 人皆稱有學性焉 讀眞寶前集 又讀舌賦 連誦不已 時則戊戌年也)
이때, 나의 외조모의 외조부의 첩(妾)이 가문의 지위 때문에 항상 여러 손자들을 사랑하여 돌보았다. 나의 어머니께서 어릴 적에 일찍이 그 집에서 자랐고, 나의 형도 그 집에서 자랐는데, 우리들이 어머니 여윈 것을 불쌍히 여겨 매우 극진히 돌보아주었다. 나이 80이 넘었는데도 듣고 보는 것이 조금도 어둡지 않았다. 항상 나를 어루만지며 말하기를 "반드시 대인(大人)이 될 것이니 열심히 글을 읽으라.……." 하였었는데, 그해 봄에 별세하였다. 가화(家禍)가 갑자기 닥치니 어찌 슬프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어 고문진보 후집을 수백 번 읽고 나니 때는 7월이었다. 그대로 다음해 10월까지 읽어 마치고 나니, 그 해가 바로 기해년이었다.(是時 予之外王母之外王父之妾 以家門之位 常愛恤諸孫 予之慈天 少嘗育於其家 舍兄亦育於其家 以予等之失慈 眷顧甚至 年八十有餘 而聽視未嘗少衰 常撫余而言曰 必爲大人 着力讀書云云 其年春逝焉 家禍卒迫 烏得無慟哉 讀後集數百遍 時則七月也 直至明年十月告畢 己亥年也)
이때 선배(先輩)들이 감시(監試-성균관에서 뽑는 생원진사시)를 보기 위해 서당에 모여 글을 읽고 글을 짓는 것을 과업으로 삼았는데, 나도 그것을 따라 배웠더니 또한 어려울 것이 없었다. 가송(歌誦)에 대해서는 시속을 따르지 않았고 시부(詩賦)는 오직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여 비록 법도에는 맞지 못했지만, 글을 잘 짓는다고 칭찬한 사람도 있었다. 10월 그믐께 아버지에게 사략(史略)을 배우기 시작하여 3개월에 걸쳐 끝내고 나니, 해로는 경자 년이요, 달로는 정월이었다. 그 후 점차로 우매함이 트이고 학업이 진취되어 갔다. 이어서 논어(論語)를 수학하여 가을에 이르러 끝마쳤다.(時先輩以監試之望 萃于書堂 讀書著文爲業 余亦從而學之 亦無難者 歌誦不隨乎時 詩賦惟其所欲 雖不能中於法度 人或謂之能焉 當十月之晦 受史略於家君 三閱月而畢 歲則庚子 月乃元也 其後稍稍蒙拔而業長矣 繼受論語 至秋而畢)
그해 봄에 외숙부(外叔父)께서 문과에 급제하고 가을에 이르러 성묘(省墓) 하러 이곳에 오셨다. 외숙부께서는 내가 닦은 학업을 살펴보시고 또 그 당시 배우고 있던 것을 강론하시면서 나에게 성취함이 있을 것이라고 격려해 주셨다. 그러자 서울의 친척들이 내가 장차 성취함이 있을 것이라는 말을 듣고 내가 저술한 글들을 요구하였으므로 나는 즉시 글을 다 모아서 친척들에게 부쳐 주었다. 이로 인하여 나의 상자 속에는 그 전에 지었던 초고(草稿)가 전혀 없게 되었다. (是年春 外叔父擢第 及秋掃墳到此 考其已往之業 而講其當時之學 勉其有成也 於是 京中親戚 聞其將有成也 徵其文 余卽盡以取爲之付與 由是箱笥無昔時稿矣)
그해 겨울에는 서전(書傳)을 읽어 모두 외었다. 다음해 가을에는 시전(詩傳)을 읽고 이어 주역(周易)을 읽었다. 경자 년부터 신축 년까지 사이의 8개월 동안과 신축 년부터 임인 년까지 사이의 10개월 동안을 합해서 계산하면 모두 18개월이요, 햇수로 따지면 1년 반 남짓이 되는데, 그동안 뜻이 해이해지고 성질이 게을러져서 글을 입으로 읊지도 않고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않은 시간이 거의 절반을 차지했다. 비록 수시로 느껴 분발하여 기세를 부려보기도 했지만 역시 할 수가 없었다.
(其冬 讀書傳 皆成誦 明年秋 讀詩傳繼讀周易 自庚子至辛丑凡八月 自辛丑至壬寅之春凡十月 合數之 爲月者十有八 而爲年一度半强 志頹性懶 口不詠心不惟者殆半之 雖時有感奮作氣 勢亦不能矣)
대체로 아버지께서는 내가 조금 아는 것이 있다고 하여 항상 수강(授講)을 엄하게 하지 않으시고, 훈계하고 권장하는 일도 소홀히 하시었으며, 때로 방탕하게 노니는 일이 있어도 심히 책망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나는 안일을 내내 누릴 수 있는 것이라 여겼다. 이 때문에 나이가 장성해질수록 학문은 더욱 떨어지고, 해가 오랠수록 뜻은 더욱 해이해져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아무런 보잘 것 없으니 한심스럽기 그지없다. 신축 년 봄에는 외종조모(外從祖母)가 서거하였다. 외종조모께서는 항상 우리 어머니를 양사(養嗣)로 삼아오시다가,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우리들을 마치 자식처럼 여기시어, 추울까 염려하여 옷을 입히시고 주릴까 염려하여 밥을 먹여주시었다. 소자(小子)가 무엇을 알았겠는가. 오직 외종조모가 내 어머니인 줄로만 알았는데, 이때 이르러 별세하시어 영원히 이 세상을 하직하시니, 이 원통함을 어찌 다 이르겠는가. 하늘이여, 귀신이여! 지난해에는 우리 어머니를 빼앗아가고 이제는 또 우리 외종조모를 빼앗아가니, 하늘이여, 귀신이여! 어찌 나에게 이처럼 모진 고초를 내린단 말인가!(蓋家君以其少有知也 常弛其授講 簡誨而疏勸 時有所遊放 不究切之 余以其安逸爲可恒也 是以年壯而學益頹 歲久而志益弛 以至於今泯泯也 可勝歎哉辛丑之春 哭外從祖母媽常以余慈天爲養嗣 及慈天棄世 視余等猶子 念寒而衣 念饑而食 小子何知 惟媽我母 至是捐世 終天永辭 此怨曷崩 天乎鬼乎 昔年奪吾母 今又奪吾媽 天乎鬼乎一何毒我之極耶)
아버지 봉양하는 일을 비롯하여 많은 식구들과 어머니 여윈 우리 두 형제에 이르기까지 먹을 것이 부족하거나, 옷이 해지거나 하면 어디에 의뢰하여 공급할 것인가? 제쳐 두고 거행하지 않은 뒷일은 누구에게 고(告)할 것이며, 어리석고 용렬한 종아이들은 누구에게서 명령을 받아 일을 해나갈 것인가? 밤낮으로 학문을 계속하여 출세하기를 바라던 것도, 이제는 조부모를 영화롭게 봉양하는 데는 쓸모가 없게 되었다. 아 슬프고 슬프다!(自需給高堂 養以及百口之人 與吾輩二哀之小子 食有所不贍 衣有所不完 奚所資而取焉 後事之擺脫而不擧者 誰與告之 迷僮劣婢 於何聽受而共業焉問學之日 繼夜望顯揚者 無所事於榮養 嗚呼哀哉)
이해 늦은 봄에, 서경부(西京賦)를 지었다. 모두 1백 30구(句)다. 용산(龍山)이 이 글을 보고 평론하기를 그 글을 읽어보면 그 사람을 상상할 수 있는 것이니, 의당 그 성문(聲聞)이 오래도록 사람들에게 전파하겠다. 생각이 멀고 기(氣)가 장대하며, 말이 고상하고 문장이 통창하다. 비록 간간이 설고 껄끄러운 데가 있기는 하나, 다만 이것은 조그만 흠일 뿐이다. 조금만 더 진취하면 문득 옛 작자(作者)의 경지에 이를 것인데, 더구나 그 밖의 과문(科文)이야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축하할 뿐이다……." 하였다. 여름에는 일찍이 서정부(반악이 지은 문장 이름)를 차운(次韻)하여 지으려 했다가 미처 짓지 못하고 그만두었다.(春暮作西京賦 凡百有三十句 龍山評之曰 讀其詞 想其人 宜其聲之久播於人 思遠而氣壯 語高而辭達 雖間有生澁 特是小疵 一蹴便到古作者列 況其外之科乎
其可賀也已云云 於夏 嘗次西征賦 未及就而置焉)
다음해 봄, 이해 가을에 과거(科擧)가 있어서 시험 삼아 시부(詩賦)를 지어보았다. 그러나 학문의 근원이 거칠고 생각이 꽉 막혀서 끝내 편(篇)을 이루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속으로 슬퍼하기를 "나는 다행히 천지 사이에 두 가지 낙(樂)을 얻었으니, 질병과 곤궁의 걱정 없고 농사짓는 괴로움도 없다. 그런데 포기하고 학문을 하지 않는다면 다시는 이 세상에 쓸모가 없게 될 것이다." 하고, 인하여 개탄스러워 말을 하지 못했다. 수일 후에 선배들이 서당에 모였다는 말을 듣고 나도 가서 그들과 함께 있었다. 역시 거기서도 글을 열심히 짓지는 않았으나, 시험 삼아 조정몽주부(吊鄭夢周賦)를 지었는데, 이때는 붓끝이 저절로 막힘이 없었으니, 끝내 무슨 이유인지 알 수가 없었다.
(明年春 以秋有觀光之望 試作詩賦 學源鹵莽 思致泥澁 竟不能成篇 因竊自悲 幸生天地間 得二樂焉 旣無疾病厄窮之患 耒耟耕穫之勤 棄而不學 則無復有所事於一世 仍慷慨不能語 旣數日 聞先輩集于書堂 往從之 亦未嘗勤做 而嘗作吊鄭夢周賦 筆端自爾無澁 竟不知何故也)
5월에는 제생(諸生)들이 모두 돌아갔다. 나도 역시 집에 내려와 하루하루를 부지런히 하여 하루 사이, 한번 읊는 동안에 옛것을 익히고 연구하여 부(賦)를 모두 10여 수 지었다. 시험 삼아 의정부부(議政府賦)와 고소대부(姑蘇臺賦)를 모두 1백여 구(句)씩 지어보았는데, 그제야 비로소 옛날 배웠던 것을 회복하여 거의 학업을 포기하지 않을 기대가 있게 되었다 가을에 이르러 시험에 응시했으나 끝내 이룬 것이 없어 부끄럽기 그지없었다. 그래서 지기(志氣)가 쇠퇴하여 끝내 한 생각도 마음에 가짐이 없이 그럭저럭 그해를 마치면서 보던 것은 오직<대학(大學)>한 책뿐이었다.(夏之仲 諸生皆歸還 僕亦下家 爲一日之勤 一日之間 一哦之頃 而溫故賦凡十餘首矣 嘗作議政府賦姑蘇臺賦 皆百餘句 始復其故所學 庶有不棄之期焉 及秋擧於試 卒無成 莫恥之甚而志氣頹墮 竟無一慨念到胸次 優游卒歲 挾大學一部而已)
그 후 파방(罷榜)되었다는 기별을 듣고는 열흘 동안 산사(山寺)에 올라가 있으면서 원부(元賦)의 초(抄)한 것을 외우곤 하였다. 그러나 하해(河海)로 들어가는 길을 몰라 한갓 근원 없는 두절된 연못가에 머뭇거리며 큰 바다에 나아가지 못하여 소견이 커지지 못했으니, 아무리 속을 태우고 길이 생각을 해도 또한 어쩔 수가 없었다. 어떤 직무에 종사도 해봤지만 역시 남에게 알려진 것이 없었다. 그러나 의의(疑義)를 지은 것이 매우 좋아 사람들이 모두 인정하였으므로, 일득(一得)이 있으리라 생각했었지만 끝내 얻지 못했다. 운명이니 어쩌겠는가?(及聞罷榜之奇 旬日於山寺 誦元賦抄 然未識沿河之步 而徒趦趄於斷潢 海未卽而見未克大 勞思長懷 亦末如之何也已 從事於有司 亦無聞焉 然作疑義甚好 人皆許之 意其一得 而竟不得 命也可如何
내가 책을 싸들고 산재(山齋)로 가 있는 동안, 때는 이미 초여름이 되었다. 목사(牧使) 이공 홍간(李公弘幹)이 제생(諸生)들을 불러 모아 학교에서 강의를 하였으므로, 나도 좇아가서 함께 어울려 지내며 세월을 보내고, 6월 그믐에는 파접(罷接)을 하고 돌아왔다. 그 후 8월 초하루에는 목사가 다시 생도 10여 명을 모아놓고 소학(小學)을 강의하였으므로 나도 거기에 끼었다. 인하여 교적(校籍)에 이름을 올리고 분주히 맡은 직무를 수행하였다. 그러나 길이 또 매우 멀고 험하여 한번 출입하기가 힘들어서, 쉬었다 하면 4-5일씩 쉬어버림으로써 학업이 폐해지고 뜻이 해이해지니, 그 폐단을 이루 다 말할 수 없었다. 가고 오고하는 가운데 언뜻 세모(歲暮)를 만났으니, 옛사람이 이르기를 "세월은 말 위에서 다 보내고, 시서는 상자 속에 챙겨 두었다.“고 했다. 그렇지 않은가?(負級山齋 時已夏孟 牧伯李公弘幹召諸生講于校 余亦從而蹁躚 奄冉日月 六月之晦 罷接而還 越八月初吉 牧伯更集十餘輩講小學 余亦齒焉 仍登名校籍 奔走率所職 路又極遠惡 一出入 息輒四五日 業廢而志弛 其爲弊也可勝言哉 道途之中 忽見歲暮 古人云 日月馬上過 詩書篋中藏 不其然乎)
다음해 갑진 년엔 목사 송공 순(宋公純)이 유생(儒生) 가운데 더 배우기를 청한 자들을 선발하여 글을 강송(講誦)하도록 하고, 반드시 그 강송하기 시작한 때를 기록하여 기간이 오래 되었으면 곧 학업성취도의 여하를 심사하곤 하였다. 나는 이를 인하여 맹자(孟子)를 읽어 3월 그믐에 끝내고 한문(韓文-한유의 글)을 읽다가 4월 보름에는 용산 선생(龍山先生)을 찾아뵈었다. 5월에는 장차 도회(都會)에 가려고 선생을 뵈었더니 선생께서 민암부(民嵒賦)를 지으라고 명하시었다. 부를 다 지으니, 선생께서는 매우 칭찬하였다. 한문(漢文)은 제문(祭文)만을 읽고 돌아오니, 5월도 이미 그믐이 되었다.(明年甲辰 牧伯宋公純 選儒生求益者 俾之講誦 必書其時 時已久 卽考其所就之如何 余因是讀孟子 三月之晦 畢讀韓文 四月之望 祗謁龍山先生函丈焉 午月 將赴都會 見于先生 先生命作民嵓賦 賦成先生亟稱之 讀漢文止祭文而還 月已晦矣)
6월에는 도회에 갔다가 그믐에 집으로 돌아왔다. 초가을에는 재차 용산 선생께 가서 또 한문을 읽다가 보름 뒤에 집으로 돌아왔다. 이달부터 8월 말까지는 더위에 지쳐 마냥 누워서 책상을 마주하고 있을 뿐이었다. 9월 초에는 용산 선생께 가서 문선(文選)을 강독하다가 열흘 경에 집으로 돌아왔다. 10월 초하루에 용산 선생께 가서 상서(商書)의 대문(大文)을 읽다가 1-2권을 못다 읽고 돌아오니 그때가 16일이었다. 세월이 하도 빨라 해는 곧 지려고 하니, 머리 돌려 천지를 돌아보니 또 세모를 만났다. 다시 무슨 말을 하겠는가?(六月 往都會 晦則刀頭 秋初 再往龍山 又讀韓文 望後還家 自是月至入月之終 困暑長臥 對案而已 九月初 往龍山講文選 旬時還家 十月之吉 又往龍山 講商書大文 未畢一二卷而還 月已生魄 烏飛鬼走 又見歲暮 回首天地 日欲晼晩 更何辭哉)
처음에 생각하기를, 수년 이래로 게으르고 방일함이 고질이 되어 학업은 진취되지 못하고 나이만 많아진다고 여겨 마음에 매우 걱정을 하였다. 그래서 겨울철이나마 학업을 부지런히 닦으려니 하였으나 뜻이 견고하지 못하고 그동안의 습관을 고치지 못하여 놀면서 헛되이 세월만 보냈을 뿐이었다. 아, 내가 태어난 날이 정월 초하루 기묘일 이었는데, 지금 벌써 1백 10번째의 기묘 일을 맞게 되었다. 유학(儒學)을 공부한 날도 꽤 오래 되었고 세상에 태어난 햇수도 적은 햇수가 아니건만, 포기해버리고 자립할 것을 미처 꾀하지 못했으니, 심하다, 나의 무지함이여! 역시 좋은 쪽으로 변화하지 못한 것이었다.(初謂自數年來 惰放成痼 學未克就 而年且壯 甚軫于懷 庶冬朔勤修 而立志不固 結習未除 玩愒流光 虛度日月而已矣 嗚呼 余生之歲正月己卯朔 今已百有一十己卯矣 業儒之日 不爲近矣 降生之載 不爲少矣 棄之而未嘗及謀所立 甚矣 余之無知也 其亦不善變矣)
돌이켜 생각하니 참으로 분하고 가슴 아프기 그지없었다. 그리하여 그 후로 슬프고 괴로운 생각에 못 이겨 한밤중에 일어나 앉아 사리를 헤아리고 자신을 헤아려보니, 슬픔이 가슴에 가득하여 그것을 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지나간 일들을 편차하여 행해온 일들이 어떠했는가를 추적해서, 한편으로는 경계를 하고 한편으로는 권면을 하니, 또 스스로 좋지 않은 때에 내가 태어났음을 슬퍼하는 바이다.(追思之 可爲扼腕痛心 故自此以來 慨懷勞思 中夜起坐 度時揣己 悲來塡膺 言之不可已 乃編次往事 跡其所踐之如何 一以爲戒 一以爲勸 而又自悲我生之不辰也)
아마도 이 말은 모두가 지난날의 사소한 일로써 잘못을 경계하고 공부에 진취하지 못했던 일이니, 대체로 기억하여 잊지 않을 뿐이요, 말의 이외에 논할 바가 아니다. 비록 그러하나 그것을 항상 나의 이목(耳目)에 접(接)하게 하여 옛날의 어려웠던 때를 생각하고 지금의 성취 없음을 돌아보면서 개연히 그것을 마음에 두고 잊어버리지 않는다면 감격하고 분발하는 데에 또한 반드시 조금이나마 도움이 없지 않을 것이다. 그 밖의 일의 내용에 대해서는 마음속에 이미 익히 계산되어 있으나, 그것은 쉽게 붓으로 다 쓸 수가 없으므로 마침내 다시 말하지 않는다.(抑是言也 皆前日小小之事 靡有警過失造工夫者 蓋記不忘耳 非所與論於言之外也 雖然 使之常接乎吾之耳目 思昔伊艱 顧今無成 慨乎其存乎心而不舍 則其於感勵激發之效亦未必無少補云耳 其他事意 心計已熟 固未易與泓穎謀也 遂不復言)
대부분의 위인이나 학자들의 초년이 얼마나 어려운 환경에서 시작했음을 우리들은 많은 그들의 전기에서 알 수 있다. 하늘은 한 그루의 큰 나무를 키우려함에 그 주위에 많은 작은 나무를 제거하거나 무시하듯이, 사람에게 있어서도 큰 인물을 배출하려할 때는 심한 매질로 단단한 의지를 키워서 스스로 극복해서 자립하도록 이끌어준다.
고봉(高峰)선생이 그분의 아호처럼, 학문과 인격이 최고봉(最高峰)에 오르기까지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고초가 있었다. 선생의 이 자경설(自敬說)을 읽으면 고마웠던 주위의 모든 분들과 스스로를 지극히 낮춰서 겸손하되, 그 많은 현실적인 역경들에 대하여 조금도 원망하는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 위대한 사람은 세상이 아는 것 밖에 스스로 권면하고 절차탁마하는 심성의 수양이 내심 존재해서 이룩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하리라.
26. 이이(李珥)의 자경문(自警文)
이이(李珥)는 저 유명한 율곡선생(栗谷先生)의 이름이다. 중종(中宗) 31년(1536)에 출생하여 선조(宣祖) 17년(1584)에 세상을 떠난 분으로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학자이다.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숙헌(叔獻), 호는 율곡(栗谷)·석담(石潭)·우재(愚齋)이고 아버지는 사헌부감찰 원수(元秀)이며, 어머니는 사임당(師任堂) 신씨(申氏)이다. 어려서는 주로 어머니의 가르침을 받았으며, 1548년(명종 3) 13세의 나이로 진사시에 합격했다. 16세에 어머니를 여의자 파주 두문리 자운산에서 3년간 시묘(侍墓)했다. 1554년 성혼(成渾)과 교분을 맺었다. 그해에 금강산에 들어가 불교를 공부하다가 다음해 하산하여 스스로 자경문(自警文)을 짓고 다시 유학에 몰두했다. 1558년 23세 되던 해에 예안(禮安)의 도산(陶山)으로 가서 당시 58세였던 이황(李滉)을 방문했다. 1564년 식년문과에 장원급제하기까지 모두 9번에 걸쳐 장원을 하여 세간에서는 그를 '구도장원공'(九度壯元公)이라 일컬었다. 당시 선배였던 퇴계(退溪)선생과 쌍벽을 이루는 성리학의 대가며, 민족의 사표였다.
자경문(自警文)-이이(李珥)
先須大其志(선수대기지) : 먼저 그 뜻을 크게 가져야 한다.
以聖人爲準則(이성인위준칙) : 성인을 본보기로 삼아서,
一毫不及聖人(일호불급성인) : 조금이라도 성인에 미치지 못하면
則吾事未了(칙오사미료) : 나의 할 일이 끝나지 않은 것이다.
心定者言寡(심정자언과) : 마음이 안정된 자는 말 수가 적다.
定心自寡言始(정심자과언시) : 마음을 안정시키려면 말을 줄이는 것에서 시작한다.
時然後言(시연후언) : 때가 된 뒤에 말을 한다면
則言不得不簡(칙언불득불간) : 말이 간략하지 않을 수 없다.
久放之心(구방지심) : 오래도록 방치하였던 마음을
一朝收之(일조수지) : 하루아침에 거두어들이려면
得力豈可容易(득력기가용이) : 이루기가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心是活物(심시활물) : 마음이란 살아있는 물건이다.
定力未成(정력미성) : 안정시키는 힘이 완성되지 않아서는
則搖動難安(칙요동난안) : 마음의 동요를 안정시키기 어렵다.
若思慮紛擾時(약사려분요시) : 마치 생각이 복잡하게 일 때에
作意厭惡(작의염오) : 마음먹기를 싫어하고 미워해서
欲絶之(욕절지) : 그 것을 끊어버리려면
則愈覺紛擾(칙유각분요) : 더욱 복잡해지는 것을 깨닫는다.
夙起忽滅(숙기홀멸) : 잠시 일어났다가 잠시 없어져서
似不由我(사불유아) : 나에게서 일어나지 않는 것 같아진다.
假使斷絶(가사단절) : 가령 잡념을 끊으려 할 때에
只此斷絶之念(지차단절지염) : 다만 이것을 끊어야겠다는 생각이
橫在胸中(횡재흉중) : 가슴 속에 가로걸려 있기만 해도
此亦妄念也(차역망념야) : 이것 또한 망령된 잡념이다.
當於紛擾時(당어분요시) : 마음이 분잡할 때를 당하면
收斂精神(수렴정신) : 정신을 수렴하여
輕輕照管(경경조관) : 가벼운 마음으로 관조하고,
勿與之俱往(물여지구왕) : 그 분잡함에 같이 끌려가지 말아야 한다.
用功之久(용공지구) : 그렇게 공부함이 오래 지나면
必有凝定之時(필유응정지시) : 반드시 고요하게 안정되는 때가 있을 것이다
執事專一(집사전일) : 일을 할 때에는 전일한 마음으로 하면
此亦定心功夫(차역정심공부) : 이것도 또한 마음을 안정시키는 공부이다.
常以戒懼謹獨意思(상이계구근독의사) : 늘 경계하고 두려워하며 홀로 있을 때를 삼간다는 생각을
存諸胸中(존제흉중) : 가슴속에 담고서
念念不怠(념념불태) : 유념하여 게을리 함이 없다면,
則一切邪念(칙일절사념) : 일체의 나쁜 생각들이
自然不起(자연불기) : 자연히 일어나지 않게 될 것이다.
萬惡(만악) : 모든 악은
皆從不謹獨生(개종불근독생) : 다 홀로 있을 때를 삼가지 않음에서 생겨난다.
謹獨然後(근독연후) : 홀로 있을 때를 삼간 뒤에라야
可知浴沂詠歸之意味(가지욕기영귀지의미) : 기수(沂水)에서 목욕하고 시를 읊으며 돌아온다는 말의 의미를 알 수 있다
曉起(효기) : 새벽에 일어나서는
思朝之所爲之事(사조지소위지사) : 아침에 해야 할 일을 생각하고,
食後(식후) : 아침밥을 먹은 뒤에는
思晝之所爲之事(사주지소위지사) : 낮에 해야 할 일을 생각하고,
就寢時(취침시) : 잠자리에 들었을 때에는
思明日所爲之事(사명일소위지사) : 내일 해야 할 일을 생각해야 한다.
無事則放下(무사칙방하) : 일이 없으면 그냥 버려두지만,
有事則必思(유사칙필사) : 일이 있으면 반드시 생각을 해서
得處置合宜之道(득처치합의지도) : 합당하게 처리할 방도를 찾아야 하고,
然後讀書(연후독서) : 그런 뒤에 책을 읽는다.
讀書者(독서자) : 책을 읽는 까닭은
求辨是非(구변시비) : 옳고 그름의 분별을 찾아
施之行事也(시지행사야) : 일을 할 때에 적용하기 위한 것이다
若不省事(약불성사) : 만약에 일을 살피지 아니하고,
兀然讀書(올연독서) : 오뚝이 앉아서 책만 읽는다면,
則爲無用之學(칙위무용지학) : 그것은 쓸모없는 학문을 하는 것이 된다.
財利榮利(재리영리) : 재물과 영화로움을 이롭게 여기는 마음은
雖得掃除其念(수득소제기념) : 비록 그에 대한 생각을 쓸어 없앨 수 있더라도,
若處事時(약처사시) : 만약 일을 처리할 때에
有一毫擇便宜之念(유일호택편의지념) : 일호라도 편하게 처리하려는 생각이 있다면
則此亦利心也(칙차역이심야) : 이것도 또한 이로움을 탐하는 마음이니
尤可省察(우가성찰) : 더욱 살펴야 한다.
凡遇事至(범우사지) : 무릇 일이 이르렀을 때에,
若可爲之事(약가위지사) : 만약 꼭 해야 할 일이라면
則盡誠爲之(칙진성위지) : 정성을 다해서 그 일을 하고
不可有厭倦之心(불가유염권지심) : 싫어하거나 게으름피울 생각을 해서는 안 되며
不可爲之事(불가위지사) : 만약 해서는 안 될 일이라면
則一切截斷(칙일절절단) : 일체를 끊어버려서
不可使是非交戰於胸中(불가사시비교전어흉중) : 가슴속에서 시비를 일으키게 해서는 안 된다.
常以行一不義(상이행일불의) : 항상 한 가지 불의를 행하고
殺一不辜(살일불고) : 한 사람의 무고한 사람을 죽여서
得天下不可爲底意思(득천하불가위저의사) : 천하를 얻더라도 그런 일을 할 생각은 올바르지 않다는 생각을
存諸胸中(존제흉중) : 가슴속에 담고 있어야 한다.
橫逆之來(횡역지래) : 이치에 맞지 않는 악행이 찾아오면,
自反而深省(자반이심성) : 나는 스스로 돌이켜 자신을 깊이 반성해서
以感化爲期(이감화위기) : 그를 감화시키기를 기약해야 한다.
一家之人不化(일가지인불화) : 집안사람들이 교화되지 아니함은
只是誠意未盡(지시성의미진) : 모두 나의 성의가 미진하기 때문이다.
非夜眠及疾病(비야면급질병) : 밤에 잠을 자거나 몸에 질병이 있지 않으면
則不可偃臥(칙불가언와) : 눕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며
不可跛倚(불가파의) : 비스듬히 기대어 서도 안 된다.
雖中夜(수중야) : 한밤중이더라도
無睡思(무수사) : 졸리지 않으면
則不臥(칙불와) : 눕지 않는다.
但不可拘迫(단불가구박) : 다만 밤에는 억지로 잠을 막아서는 안 된다.
晝有睡思(주유수사) : 낮에 졸음이 오면
當喚醒(당환성) : 마땅히 이 마음을 불러 깨워서
此心十分猛醒(此心 십분맹성) : 이 마음을 십분 노력하여 깨어 있도록 해야 한다.
眼皮若重(안피약중) : 눈꺼풀이 무거워지면
起而周步(기이주보) : 일어나 주변을 걸어 다녀서
使之惺惺(사지성성) : 마음을 깨어 있게 해야 한다.
用功不緩不急(용공불완불급) : 공부는 늦추지도 말고 급하게 하지도 말아서
死而後已(사이후이) : 죽은 뒤에야 끝내는 것이다.
若求速其效(약구속기효) : 만약 그 효과를 빨리 구하고자 한다면
則此亦利心(칙차역이심) : 이 또한 이익을 탐하는 마음이다.
若不如此(약불여차) : 만약 이와 같이 하지 않으면
戮辱遺體(육욕유체) : 부모가 물려준 몸을 형벌과 치욕을 당하게 하니
便非人子(변비인자) : 곧 사람의 자식이 아니다
율곡은 도학자(道學者)요 정치가(政治家)였다. 깊은 통찰력(洞察力)으로 미래를 내다보고, 조정에 있을 때에는 왜적(倭賊)의 침입(侵入)을 예견(豫見)하고 십만양병설(十萬養兵說)을 주장하기도 했다. 앞에서 말했듯이, 한때 불문(佛門)에 심취하였다가 유학(儒學)으로 돌아오면서, 이 자경문(自警文)을 지으니, ‘자기스스로 경계하고 깨우치기 위한 요지(要旨)’를 간추린 것이다. 이 자경문은 몇 가지 단락(段落)으로 구별된다.
첫째는 뜻을 세우는 일(立志)이다. 먼저 큰 뜻을 지니되, 반드시 성인을 본받아서 이루라고 하였다. 모든 학행(學行)이 성인에 미치지 못하면 할 일을 다 했다고 볼 수 없다.
둘째는 마음을 다스리는 일(持心)이다. 말을 많이 하면 마음이 안정되지 않는다. 오랫동안 방치해두었던 마음을 거둬들이는 일이 용이한 일이 아니다. 정신을 수렴(收斂)하고 가볍게 바라보아서 마음이 분잡한 곳에 따라가지 않아야한다. 오랫동안 수련하면 반드시 마음이 안정될 수 있다. 어떤 일에 임해서도 마찬가지다.
셋째는 혼자 있기를 삼가는 일(愼獨)이다. 항상 혼자 있을 때는 경계하고 두려워하여 잡된 마음이 생기는 것을 삼가야한다. 이런 마음가짐을 염두에 두고 열심히 지키면 일체의 사념(邪念)이 일어나지 않게 된다. 모든 잘못은 혼자 있을 때 일어난다. 그러므로 혼자 있을 때 삼가고 지킬 줄 알면, 옛 현인들이 ‘기수(沂水)에서 몸을 씻고 시를 읊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기분’ 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넷째는 일상 속에서 몸가짐(持身)을 절도 있게 하라. 는 것이다. 하루의 일도 계획을 세워 그대로 행하고, 잠시도 무절제한 행동으로 마음을 놓아주지 말라는 것이다.
다섯째는 처세(處世)에 있어 사심이나 영리를 멀리하라. 는 것이다. 자기편의에 의하여 조금이라도 사심(邪心)이 작용하지 않도록 살피고, 일에 임해서는 성심(誠心)을 다하여 게으르지 말아야한다. 어떤 사안(事案)을 처리할 때도 반드시 해서는 안 될 일과 꼭 해야 할 일을 판단해서 마음속에 좌왕우왕(左往右往)하는 망설임이 있어서는 안 된다.
여섯 번째는 절대로 눕지 말아야(不臥)야 한다. 밤을 새웠거나 병들지 않았다면 절대로 눕지 말아야한다. 밤잠은 반드시 자되, 깨어 있어야 정신도 깨어 있는 것이다.
일곱 번째 공부는 늦추지도 말고 급히 서두르지도 않게 꾸준히 해서 죽을 때까지 멈추지 말라(不緩不急). 공부하는 일도 급히 서두르면, 이 또한 이익을 탐하는 마음이 된다.
율곡선생은 18세에 하산하여 1년 뒤인 19세 때에 이 자경문(自警文)을 지었으니 참으로 놀랄 만하다. 생각하면 겨우 철부지 소년을 벗어날 나이에 이미 사리를 통달하여 득도의 길에 접어든 것이다. 얼마나 인생이 완숙한 경지였던가? 마음을 다스리는 일과 처세술과 처신술에 이르기까지 고루 다룬 자경문이다. 스스로 해야 할 일을 정하고, 정해놓은 대로 평생 동안 한 치 흐트러짐이 없이 이 다짐대로 실천하며 사셨다. 그래서 이조 500년의 큰 스승이고, 큰 어진 분으로 인격을 이루셨을 것이다. 보통사람들이 사는 방식대로라면, 출세하여 부귀공명을 이루려는 꿈을 꾸었을 것이지만, 큰 스승은 처음부터 지향(指向)하는바 목적이 달랐음을 알 수 있다. 나의 경우는 공명도 이루지 못하면서, 선생과 비슷한 꿈의 조각도 세운바 없으니 부끄럽다.
27. 김성일(金誠一)의 기제질생(寄諸姪甥)
김성일(金誠一)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의성, 자는 사순(士純), 호는 학봉(鶴峰)이며 퇴계 이황의 문인이다. 1590년 통신부사(通信副使)가 되어 정사(正使) 황윤길(黃允吉)과 함께 일본에 건너가 실정을 살피고 이듬해 돌아왔다. 이때 서인인 황윤길은 일본의 침략을 경고했으나, 동인인 그는 일본의 침략 우려가 없다고 보고하여 당시의 동인정권은 그의 견해를 채택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잘못 보고한 책임으로 처벌이 논의되었으나 동인 유성룡의 변호로 경상우도초유사에 임명되었다. 시호는 문충(文忠)이다.(1538~1593)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조정의 관리는 왕을 따라 파천 길에 오르고, 민초들은 난을 피해서 북쪽 산간지방으로 뿔뿔이 피난길에 올랐다. 국가의 운명이 풍전등화(風前燈火)같은 시기에 가족의 생사도 알 길이 없고, 국가의 안위(安危)도 점치기 어려웠다. 다행히 확실하지는 않지만, 조카들이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듣고 이 편지를 보냈다.
기제질생(寄諸姪甥-여러 조카들에게 부치는 편지)-김성일(金誠一)
국사(國事)가 이에 이르렀으니 통곡이나 할 뿐, 무슨 말을 하겠느냐. 너희들은 어버이를 모시고 어느 곳에서 피난하고 있느냐? 청기(靑起) 땅은 아주 깊숙하여 궁벽한 곳이고 또 주변에 일위산(日圍山)이 있으니, 내 생각으로는 온 집안의 친척들이 이곳에 모여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알 길이 없으니 애통한 마음이 어떠하겠느냐.(國事至此 痛哭何言 汝等侍奉 何地避亂 靑杞地最深僻 且有日圍山 一門骨肉 想聚于此 而無從得知 何痛如之)
나는 4월 중에 명을 받들고 이곳으로 왔는데, 다행히도 의병들의 힘에 의지하여 10여 개의 고을을 보전하고 오늘까지 이르렀지만, 왜적들이 사방에 꽉 차 있으므로 지탱하기 어려울 듯하다. 그러나 죽고 사는 것을 이미 결단하였으니 무엇을 걱정하겠느냐. 오직 너희들이 지역을 잘 골라 피난하여 골육을 보전하기를 바랄 뿐이다. (吾則四月中 奉命來此 幸賴義兵之力 得保十餘邑 以至今日 然賊四面充斥 恐難支吾 然死生已決 尙何慮哉 唯願汝等擇地以全骨肉也)
사당(祠堂)의 신주(神主)는 어디에 봉안하였느냐? 통곡하고 통곡할 일이다. 내 처자식들은 서울에서 도망하여 달아난 후로 죽었는지 살았는지 소식이 묘연하여 알 길이 없으니, 애통하고 애통하다. 그곳에서는 의병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하는데, 안집사(安集使)가 불러 모으고 있지 않는가? 열읍에서 도망하여 숨어만 있는 것은 적에게 항복하거나 붙는 것과 같은 것으로, 그러다가는 온 나라가 마침내 오랑캐나라가 되고 말 것이니, 어쩌면 그리도 생각이 얕단 말인가. (祠堂神主 何處奉安 痛哭痛哭 我之妻子 自京奔竄之後 存亡消息 杳莫聞知 痛哉痛哉 其處義兵不起云 安集使不爲之倡耶 列邑竄伏 有同降附 擧國終必爲左袵矣 何不思之甚也)
본도는 의병이 사방에서 일어났으므로 적에게 대항할 수 있는데, 좌도는 그렇지 못하니, 또한 부끄럽지 않은가. 살아서는 열사가 되고 죽어서는 충혼이 될 것이니, 너희들도 의당 힘써야 할 것이다. 편지를 쓰자니 망연하여 할 말을 모르겠으므로 이만 줄인다.(此道則義兵四起 故得以抗賊 左道不亦可羞哉 生爲烈士 死作忠魂 汝等亦宜勉之 臨紙惘然 不知所言 不具)
학봉(鶴峰) 김성일(金誠一)선생은 퇴계문인 중에서도 그 분의 이름대로 성정이 진실한 분이었다. 가족 중에 조카들이 피난 갔을 만한 곳에 인편으로 소식을 전하면서, 혹 전해질 수 있을지 모르는 심정으로 조심하여 편지를 쓰고 있다.
먼저 국란을 당한 현실을 개탄하고, 지금 피란해 있는 장소를 추측하여 설명한 뒤에, 자신이 처해 있는 곳의 의병상황을 전하고, 좌도는 의병이 잘 모이지 않는 다고 들었는데 너희들이라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라고 은근히 권유한다.
막상, 선생의 직계가족의 생사는 알 길이 없다. 사람의 생사는 이미 하늘이 결정해주는 대로 따르는 것이다. 의병모집에 적극 참여하여라. 다만 살아 있다면 열사가 될 것이고, 죽는다면 충성된 혼령(生爲烈士 死作忠魂)이 되지 않겠느냐? 하고 격려하였다.
옛 사람들의 충군애국(忠君愛國)정신은 대단했다. 나라가 어려운 형편에 처해 있을 때 신명(身命)을 다해서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선혈(鮮血)의 충정을 알만하다.
만하다.
28. 류성룡(柳成龍)의 독침불괴금명(獨寢不愧衾銘)
유성룡(柳成龍)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임진왜란 중 민정(民政)·군정(軍政)의 최고관직을 지내면서 전시 조정을 이끌었으며, 임진왜란으로 위기에 빠진 조선왕조를 재정비·강화하기 위한 응급책으로서 각종 시무책(時務策)을 제기했다.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이견(而見), 호는 서애(西厓)·운암(雲巖)이다.(1542~1607)
서애(西厓) 유상공(柳相公)은 퇴계선생의 문인으로 임진왜란 당시에 큰 업적을 남긴 명재상(名宰相)이다. 공의 이 좌우명(座右銘)은 제목부터 심상치 않다. 누구나 잠을 잘 때는 이불을 덮고 자는데, 내 옆에 아무도 없고 이불만 있게 마련이다. ‘내가 혼자서 이불을 덮고 잘 때, 이불에게 마저도 부끄럽지 않을 생각’을 정리해서 스스로 좌우명으로 하였다.
독침불괴금명(獨寢不愧衾銘-혼자 자도 이불에 부끄럽지 않은 명)-유성룡(柳成龍)
暮夜之暗(모야지암) : 깊은 밤 깜깜한 때는
帝其我莅(제기아리) : 하늘이 나에게 임하고
屋漏之幽(옥루지유) : 사람이 보지 않는 곳에는
神其爾伺(신기이사) : 신이 나를 살피고 있다
勿謂無知(물위무지) : 혼자 있으니 아무도 모를 것이라 말을 말라
其機孔彰(기기공창) : 혼자 있어도 그 기미는 드러난다.
勿謂何傷(물위하상) : 혼자 있으니 무슨 상관이냐고 말하지 말라.
其慝將長(기특장장) : 그 사특한 것이 싹이 트고 자란다.
莫見者隱(막견자은) : 숨기려는 것보다 더 잘 보이는 게 없고
莫顯者微(막현자미) : 작은 것보다 더 잘 드러나는 게 없으니
斯須不謹(사수불근) : 잠시라도 조심하지 않으면
衆惡皆歸(중악개귀) : 모든 잘못이 나에게 돌아온다.
我有我心(아유아심) : 내안에 있는 내 마음은
旣明且靈(기명차령) : 이미 밝고도 신령하다
一有爽德(일유상덕) :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中心不寧(중심불녕) : 양심이 편안치 않다네.
豈待人知(기대인지) : 어찌 남이 알아야만
然後爲愧(연후위괴) : 굳이 부끄러워할까?
是以君子(시이군자) : 이러므로 군자는
罔敢或肆(망감혹사) : 행여나 잘못될까 자나 깨나 걱정이라네.
一誠植中(일성식중) : 한결 같은 성심이 마음속에 심어지면
動必以禮(동필이례) : 행동거지가 모두 예의에 맞는다네.
惰慢邪僻(타만사벽) : 게으르고 간사한 나쁜 행동을
寧設于體(녕설우체) : 어찌 나에게 있게 하리
日用造次(일용조차) : 낮에는 분주하다가
嚮晦燕息(향회연식) : 밤이 되면 쉬게 된다.
翼翼兢兢(익익긍긍) : 조심하고 또 조심하여
維帝之則(유제지칙) : 하늘의 법칙대로 따르라.
剔邪去私(척사거사) : 간사하고 사사로운 욕심 멀리하여
是保是守(시보시수) : 타고난 성품을 보존하세
內省不疚(내성불구) : 양심상 허물될 게 없다면
何愧之有(하괴지유) : 이 세상에 무엇이 부끄럽겠나?
推其極致(추기극치) : 지극한 그 경지를 추구하면
浩然天地(호연천지) : 천지와 같이 높고 넓다네.
卓哉西山(탁재서산) : 위대하다 남송(南宋)의 진서산(眞西山)이여!
用力深至(용력심지) : 학문에 힘씀이 지극히 깊었도다.
一言警策(일언경책) : 일깨워 주는 그 한 말씀은
以迪來裔(이적래예) : 후생들의 산 교훈이라
作德日休(작덕일휴) : 덕을 닦으면 날마다 훌륭해지지만
作僞日拙(작위일졸) : 거짓을 행하면 날마다 옹졸해지니
聖狂之別(성광지별) : 성인과 미치광이의 구분이
由此異轍(유차이철) : 여기에서 그 길이 달라진다.
不誠無物(불성무물) : 성실하지 못하면 아무 일도 안 되는 것을
古聞其語(고문기어) : 오래 전부터 듣고 있네. 그러한 말을
臣拜銘之(신배명지) : 신은 삼가 명문(銘文)을 써서
敢告褻御(감고설어) : 감히 가까이 모신 분들께 아룁니다.
옛사람이 근신(勤愼)하는 것을 보면 참으로 존경스럽다. “어두운 밤이라 아무도 보지 않는 것 같지만, 하늘이 보고 귀신이 본다. 아무도 알지 못한다고 믿겠지만, 어두운 곳에서 내 마음에 일어나는 작용이 뚜렷하게 자란다. 그래서 옛 성현들이 말하기를 ‘숨기려하면 드러나고, 작은 것이 더 돋보인다.’ 고 하였다.
그러므로, 잠시라도 삼가지 않으면 모든 잘못이 나에게 돌아온다. 나 안에 거하는 내 마음은 본래 밝고 영특한 것인데, 한 번 더럽히면 마음 바탕이 편안치 않다. 남이 알아서만 부끄러운 것은 아니다.
이런 까닭으로 군자는 자나 깨나 밤낮으로 염려하고 조심해서, 전일한 마음으로 성심(誠心)을 다하여 예의에 맞는 행동을 하니, 마음에 간사함이 머물러 잇지 못한다. 분주한 하루를 보내고 밤이면 쉬면서 조심하고 또 조심하여, 하늘의 법칙대로 따르면 사사로움이 멀어져서 타고 난 성품을 지키며 보존해서 양심에 부끄러움이 없게 된다. 그 상태로 지극한 경지에 도달하면 마음이 천지의 호연지기(浩然之氣)를 얻게 된다.
일찍이 나의 스승 이퇴계선생이 흠모하셨던 남송(南宋)시대의 진덕수(眞德秀-西山)선생은 학문에 힘씀이 높고도 지극하였다. 일깨운 한 말씀은 후생들에게 좋은 교훈이었다. ‘덕을 닦으면 날마다 훌륭해지지만, 거짓을 행하면 옹졸해진다. 성인과 미치광이의 구분이 여기서 갈라지는 것이다. 성실하지 못하면 아무 일도 되지 않는다.’ 고 하였는데, 내가 오래전에 이 말을 듣고 명으로 받들어 적어서 주위 사람들에게 알리려한다.
29. 이항복(李恒福)의 잠언(箴言)
이항복(李恒福)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1556-명종 11년~1618-광해군 10년)임진왜란 때 병조판서를 지내면서 많은 공적을 세웠으며 벼슬이 영의정에 이르렀다. 본관은 경주(慶州), 일명 오성대감(鰲城大監). 자는 자상(子常), 호는 필운(弼雲)·백사(白沙)·동강(東岡)이다.
선생은 고려의 현신 이제현(李齊賢)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참찬 몽량(夢亮)이고, 권율(權慄)의 사위이다. 9세에 아버지를, 16세에는 어머니를 여의었다. 1574년(선조 7) 성균관에 들어갔으며, 1580년 알성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부정자가 되었다. 1583년 대제학 이이(李珥)의 천거로 이덕형(李德馨)과 함께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했으며, 선조의 신임을 받아 직제학·우승지를 거쳐 1590년 호조참의가 되었고, 정여립(鄭汝立)의 모반사건을 처리한 공로로 평난공신(平難功臣) 3등에 녹훈되었다. 좌승지로 재직 중 정철(鄭澈)의 죄를 처리하는 데 태만했다 하여 탄핵을 받고 파면되었으나 곧 복직되어 도승지에 발탁되었고 후에 영상에까지 올랐다.
전해오는 우리나라 역사에, 소년시절부터 뛰어난 기지(奇智)를 발휘한 오성(鰲城)과 한음(漢陰)의 이야기는 많은 사람의 입을 통하여 알려졌다. 그 중에 오성 이항복은 학문에도 뛰어나고 이조의 청백리(淸白吏)로도 유명한데, 만년에 유배되어 유배지의 벽에 이 글을 써 붙이고 스스로 경계한 것이다. 아래 세 가지 잠언은 오늘날 우리들 후학도 모두 귀를 기우릴만한 말씀이다.
1)서상잠(書床箴-서상에서의 잠언)-이항복(李恒福)
進取之難(진취지난) : 나아가 성취하기는 어렵고
退臧之易(퇴장지역) : 물러나 숨기는 쉬운 법
白首無歸(백수무귀) : 나이 든 백발은 돌아갈 데 없어도
黃卷有味(황권유미) : 오래된 책에는 깊은 맛이 있다
俛焉孶孶(면언자자) : 힘써 부지런히 읽어서
人棄我取(인기아취) : 남이 버린 것도 나는 취하리라
往者難追(왕자난추) : 지난 일은 따라가기 어렵고
來或可冀(래혹가기) : 다가오는 일은 기대할 만하다
庶幾夙夜(서기숙야) : 바라기는,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以免大恥(이면대치) : 힘써서 큰 수치를 면했으면
悠爾而安(유이이안) : 마음이 한가하여 편안해지니
別有天地(별유천지) : 또 하나의 세계가 따로 있구나.
“세상에 나가 뜻을 이루기는 어렵고, 물러나서 숨기는 쉬운 법이다. 내 나이 이미 늙었지만, 오래된 책을 읽으니 새로운 맛이 난다. 부지런히 읽어서 사람들이 지나쳐버린 것들을 내가 찾아야지, ‘지난 과거의 회한이야 어찌할 수 없으나 앞으로 닦아올 일은 따라갈 만하다.‘고 옛사람은 말했지, 하루하루 큰 부끄러움 없이 살기를 바랄뿐, 이 마음이 한가하고 편안하니, 신선의 세계와 다를 것 없네.”
2)치욕잠(恥辱箴-치욕에 대한 잠언)-이항복(李恒福)
士之所欲遠者恥辱(사지소욕원자치욕) : 선비가 멀리하고자 하는 것은 치욕이지만
眞知恥辱者鮮矣(진지치욕자선의) : 정말로 치욕을 아는 자는 아주 드물다
居下流爲大辱(거하류위대욕) : 하류에 처한 것이 가장 큰 치욕으로 여기고
不若人爲深恥(불약인위심치) : 남만 같지 못함이 깊은 수치로 여긴다.
置身高遠者(치신고원자) : 고원한 곳에 몸을 둔 사람은
恥辱無自以至(치욕무자이지) : 치욕이 그에게 올 수 없다.
行遠升高(행원승고) : 먼 곳엘 가고 높은 곳을 오르려면
必自卑近(필자비근) : 반드시 낮고 가까운 데서 시작하므로
則盍先慥慥於幽隱(칙합선조조어유은) : 어찌 먼저 은미한 데에 독실하지 않으리.
懷安則易以頹墮(회안칙역이퇴타) : 안락하길 생각하면 쇠퇴해지기 쉽고
同俗則流於鄙吝(동속칙류어비린) : 세속과 동화하면 비루한 곳에 빠진다.
存心養性則德日尊(존심양성칙덕일존) : 심성을 존양하면 덕이 날로 높아지고
人十己百則學日進(인십기백칙학일진) : 남보다 열 배 노력하면 학문이 진보하리라
惟困知而勉行(유곤지이면행) : 오직 열심히 노력하여 알고 힘써 행해야
或庶幾於斯訓(혹서기어사훈) : 혹 이 교훈에 가까워질 수 있으리라
“선비가 가장 멀리하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나, 무엇이 부끄러운 일인지 아는 선비는 드물다. 다른 사람처럼 출세 못하는 일이 부끄러운 줄 알 뿐, 고상하고 원대한 뜻을 지니면 부끄러움이 오지 않는다는 것을 모른다. 먼 길 떠나려면 한 걸음부터 시작하고, 높은데 오르려면 가장 낮은 곳에서부터 올라야하리, 나에게 숨은 마음을 먼저 충실하게 다듬어야지, 편안한 것만 생각하면 타락하기 쉽다. 세속에 따르면 비루한 곳에 흐르리니, 내 마음을 닦아서 덕성을 높이라. 남보다 열배 노력하여 학문을 향상시키라. 열심히 힘써야 이 교훈에 근접할 것이다.”
3)경석잠(警夕箴-저녁시간을 경계하는 잠언)-이항복(李恒福)
夕日入牖(석일입유) : 석양빛이 들창에 들어오니
流光易沈(류광역침) : 하루해가 저물려 하는 구나
年數不足(년수불족) : 남은 생이 넉넉지 못하니
怵然驚心(출연경심) : 두렵게도 마음이 깜짝 놀란다.
開卷對越(개권대월) : 책을 펴고 성현을 대하면
赫若有臨(혁약유림) : 혁연히 곁에 계신 듯하다
敢娛以嬉(감오이희) : 감히 즐기며 놀기나 하면서
虛此分陰(허차분음) : 나누어 받은 세월을 헛되이 보낸다.
披榛覓路(피진멱로) : 잡목 덤불 헤치고 길 찾으려 하나
日暮難尋(일모난심) : 날 저물어 찾기도 어렵다
膏車秣馬(고차말마) : 수레에 기름 치고 말 먹여
疾驅駸駸(질구침침) : 빨리 몰아서 급히 달려야겠다.
養以夜氣(양이야기) : 밤기운으로 수양하고
待朝警戒(대조경계) : 아침이면 경계해도
終日接物(종일접물) : 종일토록 사물을 접하고 나면,
至夕昏氣易乘(지석혼기역승) : 저녁에는 어두운 기운이 타기 쉽다.
又復作意自警(우부작의자경) : 또 다시 마음을 먹고 스스로 경계하면
人之爲人(인지위인) : 사람들 중에 사람다운 사람으로
幾矣(기의) : 거의 가까워질 것이다.
擯逐以後(빈축이후) : 나는 조정으로부터 쫓겨난 이후
閑居無事(한거무사) : 일 없이 한가하게 지내면서
以是自飭(이시자칙) : 이것을 가지고 스스로 경계하여,
尋理舊業(심리구업) : 옛날에 배운 학업을 찾아보니
茫然己失(망연기실) : 아득히 벌써 다 잊어버렸고,
時復思繹(시부사역) : 때로 다시 생각하여 캐내려 하여도
衰懶已甚(쇠라이심) : 이미 매우 쇠하고 나태해졌다.
: 늙음으로 인하여 끝내 폐해질까 두려워 이 세 가지 잠언을 벽에 써 붙여 놓고, 조석으로 보고 반성하며, 스스로 경계하려 한다.(懼其因老而遂廢也 書三箴于壁 庶朝夕觀省而自警也)
“또 하루해가 저물려한다. 세월이 빠르구나, 남은 날 넉넉지 못한 것 알고 깜짝 놀란다. 무료하여 책을 펴고 옛글을 읽으니 그분들 내 곁에 계신 듯, 주어진 세월 헛되이 보내며 숲 속에서 길을 찾으려하나 날이 어둡구나. 말에게 꼴 먹이고 수레에 기름처서 부지런히 달려야겠다. 밤새도록 수양하고 다음날 아침에 경계해도 하루 종일 지내다보면 저녁엔 원점으로 돌아가서 또다시 처음처럼 시작한다. 지금 나는 조정에서 쫓겨나 유배지에 살면서 할 일 없어 옛날 공부한 것을 다시 시작하려해도 이미 다 잊고 말았구나. 그래도 나태해질까 두려워서 위의 세 가지 지켜야할 잠언을 벽에 써서 붙이고 조석으로 읽으며 경계한다."
이조의 청백리로 유명했던 선생은 당대에 문장도 절륜해서 남겨놓은 시문도 방대하다. 옛 사람들은 출사(出仕)하여 벼슬길에 들어가 국민에게 자신의 포부를 펴는 일이 꿈이었는데, 모두 시문(詩文)에 능했다. 지금 정치인들 보면 청렴은 고사하고 청탁과 뇌물받을 일에만 골몰하고 전문적인 식견도 없으면서 권세에 아부하여 끼리끼리 작당만 일삼는다. 시 한점 지을만한 정서도 없고 오직 정략에만 골돌하면서 민생의 어려움을 외면하니 참으로 한심한 생각이 든다.
그들도 과연 자손을 위하여 어떤 잠언을 남겨놓을 수 있을까? "잘 먹고 잘 살려면 부지런히 남을 속이고 빼앗아야한다." 고 가르칠까? 생각하니 격세의 감이 든다.
30 .이덕형(李德馨)의 훈자제첩(訓子弟帖)
한음(漢陰) 아덕형(李德馨)선생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1561~1613)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명보(明甫), 호는 한음(漢陰)·쌍송(雙松)·포옹산인(抱雍散人)이며 아버지는 지중추부사 민성(民聖)이고, 영의정 이산해(李山海)의 사위이다. 어려서부터 재주가 있었고 학문에 통달했다. 특히 이항복(李恒福)과는 죽마고우로 기발한 장난을 잘하여 많은 일화를 남겼다. 벼슬이 영의정에 이르렀다.
이 글은 선생의 문집(文集)인 한음집(漢陰集)나오는 글인데 말미에 다음과 같이 후술(後述)하고 있다.‘우연히 송나라 때 여러 노선생의 언행록을 열람하다가 그 중 요점 되는 것을 뽑아 글로 보내니 바라건대 너희들은 항상 눈앞에 두어 어진 마음을 일으키라. 아! 부모의 정을 너희들은 알아야 된다.(偶閱 宋時 諸老先生 言行錄 拈出其中切要者 書送 願兒輩 常目在之 以感發良心 噫 父母之情 爾其知之)’고 담부하였다.
평소에 좋은 글을 읽다가 자식에게 알려주고 싶어서, 명현(名賢)들의 인품과 언행을 요약하여 차례로 첩(帖)을 만들어 전해준 경계의 글이다.
훈자제첩(訓子弟帖)
훈자제첩(訓子弟帖)에 이르기를,
염계(濂溪) 주선생(周先生)은 어릴 때부터 이름난 절의를 좋아하여 스스로를 갈고 닦아 자기 몸을 매우 절제하였다. 봉록을 다 종족들에게 두루 미치게 나누어 주고 집에 와서 처자와는 죽으로 때웠는데 혹 부족해도 밝은 얼굴로 개의치 않았다. 가슴에 우아한 낭만을 품고 고상한 취미가 있어 더욱 즐거웠다. 아름다운 산수가 있으면 그 곳으로 가서 때로는 종일 노닐었다. 황산곡(黃山谷)이 말하기를 무숙(茂叔-周頓頤)의 인품은 매우 높아서 흉중에 뿌려지는 기운이 마치 ‘비 개인 뒤에 구름 걷고 뜬 달(光風霽月)과 같다.’고 하였다.(漢陰 李文翼公 (德馨) 訓子弟帖曰 濂溪 周先生 自少信古 好以名節 自砥礪 奉己甚約 俸祿悉以周宗族 及分司而歸 妻子餰粥 或不給而亦曠然 不以爲意 襟懷飄灑雅 有高趣尤樂 佳山水遇適意處 或徜徉終日 黃山谷曰 茂叔人品甚高 胸中灑落如光風霽月)
*주돈이(周敦頤):중국 북송(北宋) 사상가. 자는 무숙(茂叔).
*황정견(黃庭堅);자는 노직(魯直), 호는 산곡(山谷)으로 송나라 때의 서화가, 소 동파의 제자
명도 정선생(明道程先生)은 타고남이 이미 남다르고 바른 길로 교육을 받아서 관대하면서도 절제함이 있고, 온화하면서도 가볍게 흐르지 않았다. 사물을 대할 때의 그 기색을 살펴보면 봄날의 따듯함과 같고, 그 말씀을 듣고 있으면 마치 때맞춰 내리는 단비처럼 촉촉하였다. 그 행동의 내면은 공손함을 위주로 하면서도 성내듯 행하였다. 사람들을 가르치면 사람들은 쉽게 따랐고 사람들에게 성내듯 하여도 사람들의 원망이 없었다. 현명하거나 우매하거나 착하거나 악한 사람 모두 그 마음을 얻어 종일 기뻐하며 성내거나 괴로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明道程先生 姿稟旣異 充養有道 寬而有制 和而不流 視其色接物也 如陽春之溫 聽其言入人也 如時雨之潤 其行已內 主於敬而行之以怒 敎人而人易從 怒人而人不怨 賢愚善惡 咸得其心 終日怡悅 未嘗見忿厲之容)
*정호(程顥); 호는 명도(明道), 송나라 주돈이(周頓頤)의 제자로 성리학의 대가이 다.정명도와 정이천(程伊川)은 친형제로 유교에 많은 업적을 남겼다.
이천 정선생(伊川程先生)의 학문은 지극한 정성에 바탕을 두어 그 말과 행동을 보면 일사이의 소통을 쉽고 간단하게 하였다. 다르게 바꾸지도 않았고, 성급히 단정 짓지도 않았다. 관용과 엄함이 합당하여 떳떳하였고 장중함에 체도가 있었다. 선친인 태중(太中)께서 연로하시어 옆에서 봉양하는데 뜻을 거스름이 없었고 집안일도 몸소 돌보며 힘을 다해 경영하고 판단하였다. 비록 보잘 것 없는 일이라도 반드시 친히 넉넉하게 대하며 내외 친족 80여 사람들을 돌보는데 그 사람들을 공경하는 마음과(居敬)과 최선을 다하는 자세(窮理)로 가르쳤다.(伊川程先生 學本於至誠 其見於言動 事爲之間者 疏通簡易 不爲矯異 不爲狷介 寬猛合宜 莊重有體 先大夫 太中 年老 左右致養 無違 以家事 自任 悉力營判 雖細事 必親贍給 內外親族八十餘人 其敎人 以居敬窮理 爲主)
횡거 장선생(橫渠張先生)은 말씀과 행동(言動)에 가르침과 법칙이 있었고, 낮과 밤(晝夜)에 해야 할 것과 얻어야 할 것을 알았고, 순식(瞬息)간에도 길러야 할 것과 보존해야 할 것을 알았다. 일찍이 말하기를 ‘책을 많이 열람하면서도 잘 잊어버리는 것은 다만 의리가 정밀하지 못함이다. 의리에 의심이 있으면 즉 옛 소견을 털어버리고 새로운 뜻이 오도록 하라. 독서하여 암송하고 정밀히 생각함은 밤중에 고요히 앉아서 얻으라. 기억하지 않으면 생각이 일어나지 않으리니 사람들을 가르침에는 예(禮)를 우선으로 해야 한다.’고 하였다.(橫渠張先生 言有敎 動有法 晝有爲 宵有得 瞬有養 息有存 嘗曰 書多閱而好忘者 只爲義理未精耳 義理有疑 卽濯去舊見 以來新意 讀書 須成誦 精思 多在 夜中靜坐得之 不記則思不起矣 敎人以禮爲先)
강절 소선생(康節邵先生)은 백원(百源)에서 처음 공부를 하였는데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겨울에 불 때지 않고, 여름에 부채질 하지 않았으며, 밤에 편한 잠자리를 하지 않았다. 수년이 되자 그 학문이 잡다하지 않고 하나로 순수해져서 평이하고 웅혼하여 모난 구석을 볼 수 없었다. 정명도(程明道)께서 말씀하시길 ‘요부(堯夫)는 사통팔달(四通八達)하여 마치 공중에 뜬 누각과 같다.’고 하였다(康節邵先生 始學於百源 堅苦刻厲 冬不爐 夏不扇 夜不就席者 數年 其學純一 而不雜 平夷渾大 不見圭角 程明道曰 堯夫 四通八達 如空中樓閣)
*요부(堯夫); 소강절(邵康節)의 호
무이 호선생(武夷胡先生)은 평소 취사선택을 할 때 한낱 사소한 일도 반드시 바른 법도에 따랐고, 묵묵하고 조용하게 행동하며 언행을 조심하였다. 매일 자식들에게 아침에는 그날 할 일을 생각하고, 저녁에는 반성케 하는데 반드시 그 결과를 물으면서 ‘선비는 마땅히 성인의 뜻을 따라야 한다.’ 또 태만하거나 공손하지 못한 것을 보면 반드시 꾸중을 하면서 ‘빛살처럼 흐르는 세월이 아깝다면 소인으로 돌아가려 하지 마라.’ 고 하였다. 사람들을 가르침에 ‘먼저 뜻을 세운 다음 충성과 믿음을 근본으로 하여 궁리한 이론을 터득함에 이르게 하고, 점점 공경스런 생활태도로 살아감으로써 그 요체에 접근한다.’고 가르쳤다.(武夷胡先生 凡辭受取舍 一介之微 必度於義 恬靜簡黙 寡於言動 每晨昏 子弟 定省 必問 其所業曰 士當志於聖人 見怠慢不敬 必嚬蹙曰 流光可惜 無爲小人之歸 敎人以立志 爲先 忠信爲本 以致知 爲窮理之 漸以居敬 爲持養之要)
회암 주선생(晦菴朱先生)은 한가로울 때에도 새벽에 일어나 도포까지 입고, 복건을 쓰고, 신발을 바로 신고 집안의 사당에 배례를 한 후 서실로 돌아와 앉았다. 책상은 반드시 바르게 하고, 서적과 문방사보를 반드시 가지런하게 정리하였다. 부모님을 봉양함에 효성이 극진했고 아랫사람들을 대함에 지극히 자애로워서 집안에 은의의 돈독함과 기쁨이 넘쳤다. 제사 때는 크거나 작거나 할 것 없이 정성과 공경을 다했고 작은 것도 여의치 않으면 종일 즐겁지 않았으며 제사가 예의에 어긋남이 없으면 그제야 기뻐하였다. 친하거나 연고가 있는 사람에게 비록 소원함이 있어도 반드시 마음 씀이 지극했고, 마을이나 고을에 비록 보잘 것 없는 천민이라도 반드시 공손하게 대하였다. 스스로를 봉양함에 옷은 몸만 감싸고 음식은 배만 채우고 집은 비바람만 피하면 그것으로 족했다. 사람들은 견디지 못했으나 오히려 처지에 여유가 있았다.(晦菴朱先生 閒居 未明而起 深衣 幅巾 方履 拜於家廟 退坐書室 几案必正 書籍器用必整 奉親極其孝 撫下極其慈 閨庭之內 恩義之篤 怡怡如也 祭祀 無鉅細 必誠必敬 小不如意 終日不樂 祭無違禮 則油然而喜 於親故 雖疎遠 必致其愛 於鄕黨 雖微賤 必致其恭 自奉則衣取蔽體 食取充腹 居止取足以障風雨 人不堪而處之裕如也)
남헌 장선생(南軒張先生)은 사람됨이 너그럽고 호탕하며 밝고 깨끗한데, 겉과 속이 다 그러하였다. 이론의 정수를 이미 터득했고 그 길에 대한 믿음 또한 돈독하였다. 허물 듣기를 좋아하였는데 허물을 고치는 일에는 용감하여 즉 분연히 단숨에 바꾸고 터럭만큼의 아끼는 뜻이 없었다. 질병으로 죽음에 이르러서까지 하늘의 이치와 사람의 욕심 사이에 대한 말이 끊이지 않았는데, 즉 평일에 수양한 바를 알 수가 있었다. 정자명의 편지에 대한 답서에 말하기를 ‘하늘의 이치를 궁구하기도 어렵고 타고난 자질을 믿기도 어렵다. 남의 말을 함에 공을 들이는 사람은 자신을 살핌에 항상 소홀하고, 남의 잘못을 비방하며 고치려는 사람은 병폐가 많이 나타나는 것이다.(南軒張先生 爲人 坦蕩明白 表裏洞然 詣理旣精 而信道又篤 其樂於聞過 而勇於徙義 則又奮厲明決 無毫髮滯吝意 以至疾病垂死 而口不絶吟 於天理人欲之間 則平日所養可知也 答鄭自明書曰 天理難窮 資質難恃 功於論人者 察己常疎 狃於間訐直者 所發多弊病)
* 남헌(南軒); 이름은 장식(張栻), 성리학자로 주자(朱子)의 친구.
한음(漢陰)선생은 자손들에게 준 글로 송대(宋代)의 명인(名人) 여덟 분의 인품과 덕행을 이야기해주는 형식으로 서첩(書帖)을 만들어 전했다. 위의 송대팔현(宋代八賢)은 모두 학문과 덕행이 후대에 알려진 인물들로 출세를 위한 위인이 아니라 모두 스승으로의 자질을 구비한 분들이다. 아마도 한음선생은 자신이 일인지하(一人之下) 만인지상(萬人之上)인 재상의 자리에 있었어도 자식들에겐 학자의 길을 가기를 바란 것 같다.
출세와 영달은 모두가 바라는 꿈이지만, 그 길이 순탄한 길이 아님을 몸으로 체험해서 도학의 길을 가기를 바란 것인지도 모른다. 부모가 자식에게 바라는 일은 바람일 뿐으로 바란다고 그대로 된다는 보장은 없다. 각자 자신에게 맞는바 바른 길을 걸어가되 도리에 어긋나지 않도록 주의할 일이다.
31. 신흠(申欽)의 자찬(自讚)
신흠(申欽)은 조선 중기의 문인이며 정치가로 이정구(李廷龜)·장유(張維)·이식(李植)과 함께 '월상계택'(月象谿澤)이라 통칭되는 조선 중기 한문사대가(漢文四大家)의 한 사람이다.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경숙(敬叔), 호는 상촌(象村), 현헌(玄軒), 방옹(放翁)이며, 시호는 문정(文貞)이다.(1566~1628)
자찬(自讚)-신흠(申欽)
隱几而坐(은궤이좌) : 궤에 기대어 앉아 있으니
頹乎其形(퇴호기형) : 쓰러진 것 같은 형상이고
科頭而臥(과두이와) : 갓을 벗고 누워 있으니
塔乎其情(탑호기정) : 그 뜻이 무념한 것 같아라
與世爲徒(여세위도) : 세속 사람과 한 무리로
軒冕其身(헌면기신) : 몸이야 벼슬을 누려도
游方之外(유방지외) : 세속 밖에서 놀아서
水月其神(수월기신) : 그 정신이 물과 달을 닮았다.
玄之又玄(현지우현) : 현묘하고 또 현묘하니
孰知其眞(숙지기진) : 그 참 뜻을 누가 알리
庶幾近之(서기근지) : 그런 대로 가까이 간 곳은
羲皇上人(희황상인) : 희황(羲皇)시대의 사람이다
사람이 속세를 떠나야만 반드시 청고(淸高)해 지는 것이 아니다. 연꽃은 진 흙속에서 피어도 진흙이 묻지 않는 것(出於汚泥而不染)과 같이, 사람의 본성(本性)을 상실하지 않으면 비록 세속에 산 다해도 염려할 바가 아니다.
상촌(象村)선생은 스스로를 찬미(自讚)하는 글에서, 분명히 자신의 생각을 밝히고 있는데, 보통사람이 이런 글을 썼다면 얼마나 비웃음을 받을 일이겠는가?
“비스듬히 궤에 몸을 의지하고 앉으니 마치 몸뚱이가 무너지는 것 같고, 갓을 벗고 벌렁 누우니 감정이 돌탑처럼 아무생각도 없다. 세상 사람들과 어울려 벼슬길에 살아도, 내 정신세계는 세상 박에서 놀고 있어서 흐르는 맑은 물과 희고 밝은 달을 닮아서 살고 있다. 생각해보면 현묘(玄妙)하고 현묘한 일이다. 누가 내 마음의 참 모습을 알 수 있을까? 아마도 나의 마음이 순수하고 평화스런 복희씨(伏羲氏)시대에 가까이 간 것 같다.”
선생은 초년에 많은 고생을 하면서 학업을 이룬 분이다. 그 과정에서 마음속에 현묘한 평정(平靜)의 도를 터득(攄得)한 것이 틀림없다.
32. 신흠(申欽)의 가훈(家訓)
신흠(申欽)은 조선 중기의 문인이며 정치가로 이정구(李廷龜)·장유(張維)·이식(李植)과 함께 '월상계택'(月象谿澤)이라 통칭되는 조선 중기 한문사대가(漢文四大家)의 한 사람이다.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경숙(敬叔), 호는 상촌(象村), 현헌(玄軒), 방옹(放翁)이며, 시호는 문정(文貞)이다.(1566, 명종 21년~1628, 인조 6년) 평산신씨 가문의 가훈으로 널리 알려진 다음 글을 보자.
문정공가훈(文貞公家訓)-신흠(申欽)
姑婦之相訾(고부지상자) :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서로 비방하고
妯娌之相失(축리지상실) : 동서들이 서로 틀어지고
娣娰之相毁(제사지상훼) : 시누이와 올케가 서로 헐뜯는 일,
恒出於大家世族之富貴者(항출어대가세족지부귀자) : 이런 일은 항상 권세가 높은 집 안이나 대대로 국록을 받아 부귀를 누리는 집안에서 일어나고
乃若貧賤之家(내약빈천지가) : 가난하고 천한 집안에서는
反無此患何也(반무차환하야) : 도리어 이런 근심은 없는데, 무슨 까닭일까?
蓋貴盛之時(개귀성지시) : 대개 집안이 귀하고 풍성할 때에는
習於驕傲慢佚(습어교오만일) : 사람들이 교만하고 방자한데 익숙해져
自尊而不尊人(자존이부존인) : 스스로를 높이고 남을 높이지 않으며
自貴而不貴人(자귀이불귀인) : 스스로를 귀하게 여기고 남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
待人必先尋人之過誤以謫之(대인필선심인지과오이적지) : 남을 대하면 반드시 먼저 남의 과오를 찾아 그를 꾸짖고
雖有所長(수유소장) : 비록 장점이 있어도
不言其長(불언기장) : 그 장점을 말하지 아니하고
而但求其短(이단구기단) : 다만 그 단점만 찾아내어
使不得容(사불득용) : 용납하지 못하게 한다.
又多聽婢僕間言以爲之證(우다청비복간언이위지증) : 또 비복들 사이의 말을 주로 들 어서 이것을 증거로 삼아
終至於恩義不全(종지어은의불전) : 마침내 동기간의 은덕과 의리를 온전하게 하지 않으니
此所當深戒也(차소당심계야) : 이것이 반드시 깊이 경계해야 할 일이다
大抵人家子女多(대저인가자녀다) : 대체로 한 가정에 자녀가 많으면
則其所配合皆是別人(즉기소배합개시별인) : 그 짝지어 합치는 바가 모두 달라서
和協甚難(화협심난) : 서로 마음을 화합시켜 협조시키기 심히 어려
唯在家長主婦忠信以莅之(유재가장주부충신이리지) : 오직 그 가장이나 주부 된 사람 들은 진실과 믿음으로 이에 임하여
敦厚以持之(돈후이지지) : 돈독하고 후한 마음으로 이를 지켜
掩過揚善(엄과양선) : 잘못하는 것은 덮어주고 잘한 것은 드러내고
忍詬去蔽(인후거폐) : 부끄러운 일은 참고 은폐하는 일은 버려두어
使群從子弟(사군종자제) : 여러 자제들로 하여금
各得其所(각득기소) : 각자 자신이 맡은 일을 하게 해야 한다
此尤人家之所先務也(차우인가지소선무야) : 이는 가정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다
友之疎曠者(우지소광자) : 또 벗을 사귈 때, 현명하지 못한 사람이면
足啓庸俗(족계용속) : 그 평범하고 속된 점을 바르게 인도하고
通達者(통달자) : 모든 사리에 통달한 사람이면
足破拘攣(족파구련) : 그 자의대로 하는 점을 못하게 하고
博學者(박학자) : 널리 배워 학식이 많은 사람이면
足開孤陋(족개고루) : 고루한 점을 깨우쳐 계발하게 하고
高逸者(고일자) : 세속을 떠난 뛰어난 사람이면
足振頹惰(족진퇴타) : 뜻이 무너지거나 게으른 점을 떨쳐버리게 하고
鎭靜者(진정자) : 마음이 고요히 가라앉은 사람이면
足制躁妄(족제조망) : 조급하고 절도가 없는 점을 절제하게 하고
恬淡者(념담자) : 마음을 편안히 가져 욕심이 없는 사람이면
足消穠艶(족소농염) : 아름답고 화려한 점을 없애게 하라
身病可醫(신병가의) : 몸에 든 병은 고칠 수 있지만
心病難醫(심병난의) : 마음속에 든 병은 고치기가 어렵고
身過易去(신과이거) : 몸으로 빚어지는 잘못은 버리기 쉽지만
心過難去(심과난거) : 마음으로 빚어지는 잘못은 버리기가 어렵다
才俊人(재준인) : 재주가 뛰어난 사람은
宜學恭謹(의학공근) : 마땅히 공손하고 삼가는 행실을 배우고
聰明人(총명인) : 총명한 사람은
宜學沈厚(의학침후) : 마땅히 침착하고 관후한 행실을 배우도록 하라
少而欲好衣服美食者(소이욕호의복미식자) : 젊어서 좋은 의복을 입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려 하고
長而欲治車馬盛蓄積者(장이욕치거마성축적자) : 자라서 수레를 타고 다니며 재물을 많이 축적하려고 허영을 꿈꾸는 사람은
皆非士也(개비사야) : 모두 다 선비답지 못한 생각이다
有一於是(유일어시) : 한 가지라도 이러한 생각을 가졌으면
雖日誦經傳(수일송경전) : 비록 날마다 경전을 읽고
日談性命(일담성명) : 날마다 성명의 학리를 이야기한다고 하더라도
僞而已(위이이) : 모두 거짓일 뿐이다
싱촌(象村) 신흠(申欽)선생은 이조중엽의 대 문장가로, 정치가며 문장가로 유명한 분이다. 선생이 평산신씨(平山申氏)가문의 어른으로 자손에게 남긴 가훈(家訓)을 보면, 우리가 명심해야할 몇 가지 도리(道理)를 발견하게 된다.
첫 번째 가정에서 시어머니와 며느리사이(姑婦), 동서사이(妯娌), 시누이와 올케사이(娣姒)는 당시에도 불목(不睦)해서 서로 헐뜯는 일이 많았던듯하다. 그런데 이런 가정불화가 고관대작이나 부유한 가정에서 더 심하고, 오히려 가정이 어려운 집안에서 그렇지 않았다. 선생은 그 이유를 들어 말하기를, 부유한 집에서는 교만(驕慢)하고 방자(放恣)한 습성에 젖어 있어서, 상대를 높이거나 귀히 여길 줄 모르고 자기 자신만을 제일로 여기기 때문에, 상대의 장점은 내세워주려 하지 않고 단점만 드러내고, 사실을 정확히 판단하거나 이해하려하지 않고 부리는 비복들의 고자질만 믿고 판단하기 때문이니, 이러한 병폐를 가장 경계해야 한다. 고 하였다.
두 번째는, 자녀가 많으면 그들이 서로 다른 가정에서 성장한 사람과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니, 그들의 마음을 화합시키기가 매우 어렵다. 가장이나 주부된 사람들은 항상 진실함과 믿음으로 대하여, 너그러우며 후덕한 마음으로, 상대의 허물을 덮어주고 좋은 점을 드러내주어서 화목하게 서로 상종(相從)하도록 분위기를 조성해 주어야 모두가 자신의 본분대로 다하며 살아갈 수 있으니 가정에서 가장 먼저 할 일이다. 라고 하였다.
세 번째는 벗을 사귐에 있어, 각자 개성이 다른 사람들이 부족하기 쉬운 부분을 서로 보완해 주라고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는데, 누구나 한번쯤 음미해볼 일이다.
네 번째, 사람이 외부로 나타나는 병이나 버릇은 오히려 고칠 수 있지만, 보이지 않는 마음의 병이나 허물은 고치기 어려우니, 만일 재주가 많은 사람은 교만하기 쉬우니 먼저 공손하고 삼가는 행실을 배우고, 총명한 사람은 경박하기 쉬우니 먼저 침착하고 관후한 행실을 배우도록 하라. 고 하였다.
다섯 번째는 공부를 해서 선비가 되려는 젊은이가 행해야할 마음가짐을 가르치고 있다. 만일 ‘ 좋은 옷과 음식을 탐하고, 출세와 부, 명예를 목적으로 한다면’ 이런 젊은이는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한다 해도 모두 위선(僞善)을 배우는 것이 된다.
세월이 지나도 사람사사는 방법도 같고 염려하는 일도 같다. 구구절절 옳은 말씀이다. 사람이 근본을 잊고 행동하면 그 결과가 사상누각(沙上樓閣)처럼 이룬 것이 쉽게 허물어진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헛된 일을 반복하니 명이 다할 때까지 배우고 또 배워야하는 것이다.
33. 허균(許筠)의 수잠(睡箴)
허균(許筠)은 조선조의 학자요 문인으로 자는 단보(端甫), 호는 교산(蛟山)·성수(惺叟)이다. 그의 가문은 대대로 학문에 뛰어난 집안이어서 아버지 엽(曄), 두 형인 성(筬)과 봉(篈), 그리고 누이인 난설헌(蘭雪軒) 등이 모두 시문으로 이름을 날렸다. 21세에 생원시에 급제하고 26세에 정시(庭試)에 합격하여 승문원 사관(史官)으로 벼슬길에 오른 후 삼척부사·공주목사 등 관직을 제수 받았으나 반대자의 탄핵을 받아 파면되거나 유배를 당했다. 그 후 중국 사신의 일행으로 뽑혀 중국에 가서 문명을 날리는 한편 새로운 문물을 접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문인으로서 그는 소설작품·한시·문학비평 등에 걸쳐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문집에 실려 있는 그의 한시는 많지는 않지만 국내외로부터 품격이 높고 시어가 정교하다는 평을 받는다. 그의 작품으로 전하는 홍길동전은 그의 비판정신과 개혁사상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1569~1618)
수잠(睡箴)-허균(許筠)
世人嗜睡(세인기수) : 세상 사람들이 잠을 좋아하여
夜必終夜(야필종야) : 밤이면 으레 밤새도록 자고도
睡晝或睡(수주혹수) : 낮에 또 낮잠을 잔다.
睡而不足(수이불족) : 그리고 잠이 부족하면
則咸以爲病(칙함이위병) : 모두 병으로 여긴다.
故相問訊者(고상문신자) : 그러므로 서로 문안할 때는
至以配於食(지이배어식) : 먹는 것을 붙여
必曰眠食如何(필왈면식여하) : '면식(眠食)이 어떠하냐?'고 한다.
可見人之重睡也(가견인지중수야) : 이것으로 사람이 잠을 대단히 여김을 알 만하다.
余少曰少睡(여소왈소수) : 내가 젊어서는 잠이 적고
亦不病(역불병) : 또 앓지를 않았는데,
年來漸多睡漸衰(년래점다수점쇠) : 요즘 와서는 잠은 많아지고 점점 쇠약해진다.
不自知其故(불자지기고) : 그래도 나는 그 까닭을 알지 못했었다.
熟思之則睡乃病之道也(숙사지칙수내병지도야) : 곰곰이 생각해보니, 잠이란 병(病)으 로 가는 길인 것이다.
人身以魂魄爲二用(인신이혼백위이용) : 사람의 몸은 혼(魂)과 백(魄) 두 길로 용사(用事)를 한다.
魂陽也(혼양야) : 혼은 양(陽)이고,
魄陰也(백음야) : 백은 음(陰)이다.
陰盛則人衰且病(음성칙인쇠차병) : 음이 성해지면 사람이 쇠약해져서 병들게 되고,
陽盛則人康无疾(양성칙인강무질) : 양이 성해지면 사람이 건강하고 무병해진다.
睡則魂出(수칙혼출) : 잠을 자면 혼은 나가고
魄用事于中(백용사우중) : 백이 몸속에서 용사하게 되므로,
故陰以之盛而致衰疾(고음이지성이치쇠질) : 음이 성해져 쇠약해지고 병드는 것은
固也(고야) : 뻔 한 일이다.
不睡則魂得其(불수칙혼득기용) : 잠을 안자면, 혼이 제 구실을 하여
自能制魄(자능제백) : 백을 잘 제어해서,
使不得侵陽也(사불득침양야) : 양을 침범하지 못하게 만든다.
睡宜不過多也(수의불과다야) : 그러므로 잠을 너무 많이 자서는 안 된다.
經云(경운) : 경(經)에 이르기를,
煩惱毒蛇(번뇌독사) : "번뇌(煩惱)는 독사(毒蛇)니,
睡在汝心(수재여심) : 잠이 네 마음에 있는 것이 바로 독사다.
毒蛇已去(독사이거) : 독사가 없어져야만
方可安眠(방가안면) : 편안히 잘 수 있다."하였다.
世之嗜睡者(세지기수자) : 세상의 잠꾸러기들은
皆爲惱蛇所困也(개위뇌사소곤야) : 모두 독사 같은 번뇌로부터 욕을 당하는 셈이니,
豈不可懼歟(기불가구여) : 어찌 두렵지 않겠는가?
仍箴以自警曰(잉잠이자경왈) : 잠(箴)을 지어 다음과 같이 스스로 경계한다.
吁惺惺翁(우성성옹) : 아, 성성옹이여
宜睡眼勿睡心(의수안물수심) : 눈은 자도 마음은 자지 말라
睡眼則可以炤心(수안칙가이소심) : 눈만 자면 마음은 밝힐 수 있지만
睡心則陰魄來侵(수심칙음백래침) : 마음까지 자면 음의 백(魄)이 와서 덤빈다.
魄侵陽剝體化爲陰(백침양박체화위음) : 백이 침노하여 양이 부서지면 몸이 변하여 음이 되니
其與鬼相尋(기여귀상심) : 그러면 귀신과 서로 어울리게 된다.
吁可畏惺翁(우가외성옹) : 아, 두렵다. 성성옹이여
예로부터 우리들의 인사말에는 “진지 드셨습니까?, 혹은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등으로 주고받았다. 이를 면식(眠食)인사법이다. 잘 자고 잘 먹는 일이 참으로 소중한 것이었다. 그러나 잠을 자는 일이 몸의 피로를 풀어주기 위한 기본적인 잠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이지만, 어느 날부터 많은 잠을 잔다거나, 또 잠이 오지 않는다면 모두가 병이 시작된 것이다.
사람의 정신은 두 가지로 분류하는데, 양(陽)의 성질을 가진 혼(魂)과, 음(陰)의 성질을 가진 백(魄)이다. 또 낮은 양이고 밤은 음이며, 건강함은 양이고 병들면 음의 세계라 할 수 있다. 필요이상의 잠을 자는 것은 병의 길로 가는 것이니, 되도록 깨어 있어서 양의 상태로 살아가라고 가르친다. 몸이 자는 것도 두려운데, 마음마저 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반드시 눈을 감고 수면을 취하는 얘기 뿐은 아닌 것이다.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으라는 간접적인 교훈이기도 하다.
. 장유(張維)의 잠언삼제(箴言三題)
장유(張維)는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지국(持國), 호는 계곡(谿谷)·묵소(默所)다. 우의정 김상용(金尙容)의 사위이며, 효종비 인선왕후(仁宣王后)의 아버지이고 김장생(金長生)의 문인이다. 관직이 대사간·대사헌·대사성을 거쳐 우의정에 이르고, 천문·지리·의술·병서 등에 능통했고, 이정구(李廷龜)·신흠(申欽)·이식(李植) 등과 더불어 조선 문학의 4대가로 불린다.(1587-선조 20년~1638-인조 16년)
신독잠(愼獨箴-홀로 있을 때를 삼가자는 잠언)-장유(張維)
有幽其室(유유기실) : 그윽한 그 방
有默其處(유묵기처) : 말 없는 그 공간
人莫聞睹(인막문도) : 듣고 보는 이 없어도
神其臨汝(신기림여) : 귀신이 그대를 살핀다.
警爾惰體(경이타체) : 너의 게으른 몸 삼가고
遏爾邪思(알이사사) : 사심 품지 말라.
濫觴不壅(남상부옹) : 넘치는 물 막지 못하면
滔天自是(도천자시) : 하늘까지 물이 넘친다.
仰戴圓穹(앙대원궁) : 위로는 하늘을 이고
俯履方輿(부리방여) : 아래로는 땅을 밟는다.
謂莫我知(위막아지) : 날 모른다 말하고
將誰欺乎(장수기호) : 그 누구를 기만하나?
人獸之分(인수지분) : 사람과 짐승의 갈림
吉凶之幾(길흉지기) : 행복과 불행의 분기점이다.
屋漏在彼(옥누재피) : 집도 새는 어두운 구석진 곳
吾以爲師(오이위사) : 나는 그것을 스승 삼으리라.
그윽이 깊숙한 방 정적만이 숨 쉬는 공간, 아무도 듣고 보지 않는 듯해도 귀신이 그대를 살핀다. 그대의 나태한 습관을 고치고 못된 사심(私心)을 품지 말라. 작은 습관 작은 마음이라고 방심하지 마라. 둑에 작은 물구멍이 점점 넓어져서 막을 수 없이 크게 뚫리는 것을 보았지? 하늘아래 땅 위에 살며 “누가 나를 알아보는가?‘ 라고 스스로를 속이지 말라. 스스로를 속이는 일이, 곧 사람과 짐승, 길함과 흉함을 가르는 분기점이다. 비가 새는 누추한 집에 사는 일을 자족하며 그 곳이 나의 스승이라고 여겨라.
묵소잠(默所箴-침묵하는 처소에 대한 잠언)-장유(張維)
噤而喙(금이훼) : 그대의 입을 다물어라
泯如昏如(민여혼여) : 멍청하고 바보같이 하라.
衷之閙(충지료) : 마음속이 시끄러워
閧如犇如(홍여분여) : 싸우는 것 같고 치달리는 것 같으니
是謂病(시위병) : 이것을 병통이라 한다.
瘖默之賊(음묵지적) : 침묵 해치는 적이 있으니
斂而靈(렴이령) : 그대 정신을 수습하여
光藏沖漠(광장충막) : 공허한 경지에 가두어 두라.
九淵沈沈外不蕩(구연심심외부탕) : 깊은 연못 속 가라앉아 외물에 흐려 지지 않고
虛而生明涵萬象(허이생명함만상) : 그대의 삶 비우면 밝아져 만물을 포용하리라.
而時出之無窮已(이시출지무궁이) : 때때로 꺼내 써도 다하지 않으리니
嗟吾之默其在是(차오지묵기재시) : 아, 내가 침묵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누가 보면 바보처럼 보이게 네 입을 다물어라. 네 마음속이 시끄러워 싸우고 달리는 소리가 나니, 그 것이 너의 병이다. 그래도 네 마음이 때로 조용해질 때가 있으리니 정신을 수습하여 빈 방에 가두어라. 마치 깊은 연못 밑에 가라앉아 외물에 흐려지지 않는다. 삶에 마음을 비우면 네 마음이 맑아져서 모든 사물을 포용하리라. 가끔 그 마음을 꺼내어 활용해도 다함이 없는데, 내가 평소 침묵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소잠(小箴-작은 잠언)-장유(張維)
鏡垢不明(경구부명) : 거울이 때 묻어 밝지 않아도
未嘗無明(미상무명) : 일찍이 밝지 않은 것 아니니
垢去則明(구거칙명) : 때를 없애면 다시 밝아지리라.
水渾不淸(수혼부청) : 물이 흐려 맑지 않아도
未嘗無淸(미상무청) : 일찍이 맑지 않은 것 아니니
渾澄則淸(혼징칙청) : 흐린 물 정화하면 다시 맑아지리라.
去而之垢(거이지구) : 그대의 때를 제거하고
澄而之渾(징이지혼) : 그대의 흐림을 정화하면
則有明於鏡而淸於水者(칙유명어경이청어수자): 거울보다 밝고 물보다 맑음 있어
復其天而全其眞乎(복기천이전기진호) : 천성을 회복하여 참을 보전하리라.
보름달 뜨는 날 구름이 끼었다고 밝고 둥근 달이 없는 것 아니다. 바람 불어 구름걷어 가면 밝은 달은 그대로 중천에 떠 있다. 거울에 때가 묻었다고 거울 본래의 모습이 더러운 것 아니다. 그 때 씻어내면 거울은 본래대로 밝다. 물이 흐렸다고 물 자체가 흐린 것 아니다. 흐린 물 정화시키면 다시 맑아진다. 너의 마음에 때가 끼고 흐려 있을지라도, 그 때를 씻고 그 흐림을 정화시키면 거울보다 밝고 물보다 맑아지리라. 사람이 천성을 회복함이 이와 같다.
35. 허목(許穆)의 가어(嘉語)-1(기언서(記言序-기언의 서문)
허목(許穆)은 조선중기의 문신이며 학자로 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화보(和甫)·문보(文父), 호는 미수(眉叟)·대령노인(臺嶺老人)이다.(1595-선조 28년~1682-숙종 8년)아버지는 현감 교(喬)이며, 어머니는 임제(林悌)의 딸이다. 1617년 현감으로 부임하는 아버지를 따라 거창으로 가서 정구(鄭逑)의 문인이 되었다. 1624년(인조 2) 경기도 광주의 우천(牛川)에 살면서 자봉산(紫峯山)에 들어가 학문에 전념했다. 청남(淸南)의 수령으로 서인과 대립하여 예송(禮訟)을 주도하였다. 늦게 관작에 나가 벼슬이 이조판서를 거쳐 우의정에 올랐다.
이 글은 선생의 저서인 기언(記言)에 있는 말이다. 선생은 벼슬을 버리고 향리에 내려가 후진양성에 힘썼는데, 사회 환경이나 의술이 극히 빈약한 시대에 88세까지 장수하였고, 선풍도골(仙風道骨)의 초극(超克)한 풍모와 성정을 지닌 어른이었다. 선생의 말씀이나 문장은 하나같이 깊이 통달한 도심에서 울어난 경세(警世)의 지표이다. 몇 번에 걸쳐서 소개하려한다.
1. 기언서(記言序-기언의 서문)-허목(許穆)
나 목(穆)은 독실하게 옛글을 좋아하여 비록 몸이 늙어서도 독서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항상 경계하여 마음에 두고 부처처럼 외워 이에 아래와 같이 명(銘)한다.(穆篤好古書 老而不怠 常戒之在心誦金人之銘曰)
戒之哉(계지재) : “경계하노라.
毋多言(무다언) : 말을 많이 하지 말며,
毋多事(무다사) : 일을 많이 벌이지 말라.
多言多敗(다언다패) : 말이 많으면 실패가 많고,
多事多害(다사다해) : 일이 많으면 피해가 많다.
安樂必戒(안악필계) : 몸이 안락(安樂)하기를 반드시 경계하여,
毋行所悔(무행소회) : 후회할 일을 행하지 말라.
勿謂何傷(물위하상) : 잘 못될 일이 있으랴 하고 말하지 말라.
其禍將長(기화장장) : 그 화(禍)가 자라게 될 것이다.
勿謂何害(물위하해) : 무슨 해(害)가 되랴 하고 말하지 말라.
其禍將大(기화장대) : 그 화가 커질 것이다.
勿謂不聞(물위불문) : 아무도 듣지 않는다고 말하지 말라,
神將伺人(신장사인) : 귀신이 사람을 엿볼 것이다.
焰焰不滅(염염불멸) : 불은 붙기 시작할 때 끄지 않으면,
炎炎若何(염염약하) : 치솟는 화염(火炎)을 어찌 막으랴
涓涓不壅(연연불옹) : 물이 졸졸 흐를 때 막지 않으면,
終爲江河(종위강하) : 끝내는 넓은 강하(江河)가 될 것이다.
綿綿不絶(면면불절) : 실낱같이 가늘 때 끊지 아니하면,
或成網羅(혹성망라) : 그물처럼 헝클어질 것이요,
毫末不扎(호말불찰) : 터럭처럼 작을 때 뽑지 않으면,
將尋斧柯(장심부가) : 장차는 도끼자루를 써야 할 것이니,
誠能愼之(성능신지) : 진실로 삼갈 수 있음이
福之根也(복지근야) : 복(福)의 근원이다.
口是何傷(구시하상) : 그리고 입은 무슨 해가 되는가?
禍之門也(화지문야) : 화(禍)의 문이 된다.
強梁者(강량자) : 힘이 센 자는
不得其死(불득기사) : 제명에 죽지 못하며,
好勝者(호승자) : 이기기를 좋아하는 자는
必遇其敵(필우기적) : 반드시 적(敵)을 만날 것이다.
盜憎主人(도증주인) : 도둑이 주인을 미워하고,
民怨其上(민원기상) : 백성이 그 윗사람을 원망한다.
군자(君子)는 천하에 윗사람 됨이 쉽지 않음을 알아 스스로를 낮추며, 중인(衆人)의 앞에 섬이 쉽지 않음을 알아 자신을 뒤로하는 것이다. (君子知天下之不可上也 故下之 知衆人之不可先也 故後之)
江河雖左(강하수좌) : 강하(江河)가 비록 낮지만
長於百川(장어백천) : 백천(百川)보다 큼은,
以其卑也(이기비야) : 낮기 때문인 것이다.
天道無親(천도무친) : 천도(天道)는 친(親)한 데가 없이
常與善人(상여선인) : 항상 착한 사람 편에 서니,
戒之哉(계지재) : 경계할 일이다.
주역(周易)의 익(翼)에 이르기를, ‘군자가, 집 안에 있으면서 말하는 것이 선(善)하면 천 리 밖에서도 호응하는데, 하물며 가까운데 이겠는가? 집 안에 있으면서 말하는 것이 선하지 않으면, 천 리 밖에서도 어긋나니 하물며 그 가까운 데 서랴. 말은 내게서 나와 백성에게 영향을 미치고, 행동은 가까운 데서 발(發)하여 멀리에까지 드러나나니, 언행(言行)이란 군자의 추기(樞機)인 것이며, 추기의 발동에 영예와 오욕이 주재된다. 언행은 군자가 그 것으로 천지를 움직이는 것이니 삼가지 않아서 되겠는가.’라고 하였다.(易翼曰 君子居其室出其言 善則千里之外應之 況其邇者乎 居其室出其言 不善則千里之外違之 況其邇者乎 言出乎身加乎民 行發乎邇 見乎遠 言行 君子之樞機 樞機之發 榮辱之主也 言行 君子之所以動天地也 可不愼乎)
穆唯是之懼焉(목유시지구언) : ”나 목(穆)은 오직 이것을 두려워하여
言則必書(언칙필서) : 말하면 반드시 글로 써서
日省而勉焉(일성이면언) : 날마다 반성하고 힘써 왔다.
名吾書曰記言(명오서왈기언) : .내가 쓴 글을 기언(記言)이라 하였다.
說讀古人之書(설독고인지서) : 고인(古人)의 글을 읽기 좋아하여
心追古人之緖(심추고인지서) : 마음으로 고인의 실마리를 따라가서
日亹亹焉(일미미언) : 날마다 부지런히 하였다.
記言之書(기언지서) : 기언(記言)의 글은,
本之以六經(본지이륙경) : 육경(六經)으로 근본을 삼고,
參之以禮樂(참지이례악) : 예악(禮樂)을 참정하고,
通百家之辯(통백가지변) : 백가(百家)의 변(辯)을 통하여,
能發憤肆力且五十年(능발분사력차오십년) : 분발하고 힘을 다한 지 50년이 되었다.
故其文簡而備(고기문간이비) : 그 글이 간명하면서도 갖추었고
肆而嚴(사이엄): 늘어놓았으되 엄격하다.
如天地之化育(여천지지화육) : 천지의 화육(化育)과
日月星辰之運行(일월성진지운행) : 일월성신(日月星辰)의 운행(運行)과
風雨寒暑之往來(풍우한서지왕래) : 풍우한서(風雨寒暑)의 왕래(往來)
山川草木鳥獸五穀之資養(산천초목조수오곡지자양) : 산천ㆍ초목ㆍ조수(鳥獸)ㆍ오곡(五穀)의 자라나는 것,
人事之誼(인사지의) : 인사(人事)의 마땅함과
民彝物則(민이물칙) : 사람이 지켜야 할 떳떳한 도리, 사물의 법칙,
詩書六藝之敎(시서륙예지교) : 시ㆍ서ㆍ육예(六藝)의 가르침,
喜怒哀樂愛惡形氣之感(희노애악애악형기지감) : 희로애락애오(喜怒哀樂愛惡) 등 형기(形氣)의 느낌,
禋祀鬼神妖祥物怪之異(인사귀신요상물괴지이) : 제사 지내는 것, 귀신ㆍ요상(妖祥) 괴상한 사물 따위의 이상한 것들,
四方風氣之別(사방풍기지별) : 사방(四方)의 풍속과 기후의 다름,
聲音謠俗之不同(성음요속지불동) : 말과 세간(世間) 풍속의 같지 않음,
記事敍事論事答述道之汚隆(기사서사론사답술도지오륭) : 기사(記事)ㆍ서사(敍事)ㆍ논사(論事)ㆍ답술(答述), 도(道)의 낮고 높음,
世之治亂(세지치란) : 세상의 치란(治亂),
賢人烈士貞婦奸人逆豎愚暗之戒(현인렬사정부간인역수우암지계) : 현인(賢人)ㆍ열사(烈士)ㆍ정부(貞婦)ㆍ간인(奸人)ㆍ역수(逆豎; 도덕에 그러진 일을 하는 고약한 자)ㆍ암우(暗愚)한 자에 대한 경계 따위를
一寓於文(일우어문) : 하나같이 이 글에 포함시켜
以庶幾古人者也(이서기고인자야) : 고인과 같아지기를 바란다.
미수선생의 저서 중 기언(記言)은 93권 25책의 방대한 저술이다. 저자가 직접 편집하였고, 1689년(숙종 15) 왕명으로 간행되었다. 일반적으로 저자의 호를 따서 ‘미수기언(眉叟記言)’이라고 부른다. 원집 ·속집 ·습유(拾遺) ·자서(自序) ·자서속편 ·별집으로 구성되었는데, 크게 나누어 1674년(현종 15) 이전에 쓰인 원집과 그 이후에 지은 속집이 합계 67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따로 기언별집 26권이 있다. ‘기언’이라는 특이한 제목의 뜻은, 말의 중요함과 위험함을 두렵게 여겨, 말하면 반드시 써서 지키기에 힘쓴 한편, 날마다 반성한 데서 나왔다
책머리에 서문으로 전체의 대요를 설명하고 있다. “늙도록 독서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고 전제하고, “말과 일을 많이 하고 벌이면 반드시 화가되어 돌아오기 쉬움”을 경계하고, “항상 자신을 낮춰서 겸손 하라. 강과 하수가 낮아도 모든 시내보다 큰 것은 스스로 낮아지기 때문이다, 하늘의 도는 언제나 선한 사람을 우대하게 마련이다. 또 내가 생각이 나면 글로 써서 좌우에 두고 그대로 행하기를 힘쓴다.“ 라고 하였다.
말씀 중에는 오늘날에도 사람의 입에 회자(膾炙)되는 금언이 많이 포함되어 있는데, 읽으면 스스로 머리가 숙여질 뿐이다. 한 번 읽고 돌아서서 잊고 사는 우리의 삶은 선생의 말씀 앞에 항상 부끄러울 뿐이다.
36. 허목(許穆)의 가어(嘉語)-2-심지지각(心之知覺)
허목(許穆)은 조선중기의 문신이며 학자로 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화보(和甫)·문보(文父), 호는 미수(眉叟)·대령노인(臺嶺老人)이다.(1595-선조 28년~1682-숙종 8년) 이 글은 성리학(性理學)의 이기설(理氣說)을 요약한 것으로, 동양의 철학(哲學)이다. 기본적으로 학문에 조예(造詣)가 없으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심지지각(心之知覺-마음이 지각하는 것)
心之知覺(심지지각) : 마음의 지각(알고 깨달음)함이
感於天理者(감어천리자) : 천리(天理)에 감응한 것을
謂之道心(위지도심) : 도심(道心)이라 이르고,
感於形氣者(감어형기자) : 형기(形氣)에 감응한 것을
謂之人心(위지인심) : 인심(人心)이라 이르는데,
天理者(천리자) : 천리라는 것은
性命至善之本也(성명지선지본야) : 성명(性命)의 지선(至善)한 근본이고,
形氣者(형기자) : 형기라는 것은
飮食男女人(음식남녀인) : 음식(飮食)과 남녀(男女) 관계와 같이
欲之私也(욕지사야) : 즉 인욕(人欲)의 사사로운 것이다.
理與氣(리여기) : 이(理)와 기(氣)는
非爲二本(비위이본) : 근본이 서로 다른 것이 아니다,
形生於氣(형생어기) : 형(形)은 기에서 생겼고,
氣本於理(기본어리) : 기는 이(理)에 근본 하였으니,
理者(이자) : 이(理)라는 것은
氣之性(기지성) : 기(氣)의 성(性)이고
氣者(기자) : 기(氣)라는 것은
理之才(리지재) : 이(理)의 재(才)라 할 수 있다.
才出於性(재출어성) : 그리고 재(才)는 성(性)에서 나오고
理行於氣(리행어기) : 이(理)는 기(氣)에서 행해지니,
惻隱出於性(측은출어성) : 즉 측은(惻隱)한 마음이 성에서 나왔으나
而其相感者氣也(이기상감자기야) : 서로 감응하는 것은 기이며,
愛欲形於氣(애욕형어기) : 애욕(愛欲)이 기로 이루어지나
而其理則性也(이기리칙성야) : 그 근본 이치는 성인 것이다.
循天理則理壹而氣正(순천리칙리일이기정) : 천리를 따르면 이(理)가 전일하여 기가 바르게 되며,
循人欲則氣壹而理變(순인욕칙기일이리변) : 인욕을 따르면 기가 전일하여 이(理)가 변하게 된다.
故曰人心惟危(고왈인심유위) : 그러므로 ‘인심은 위태롭고
道心惟微(도심유미) : 도심은 은미하다’고 한 것이다.
人受天地之中以生(인수천지지중이생) : 사람은 천지의 중정(中正)함을 받고 태어나
以仁爲性者也(이인위성자야) : 인(仁)으로써 성(性)을 삼았는데,
仁而變不仁(인이변불인) : 인이 불인(不仁)으로 변하는 것은
非性之罪也(비성지죄야) : 성(性)의 죄가 아니라
才用過也(재용과야) : 재(才)의 작용이 잘못된 것이다.
人欲肆者(인욕사자) : 인욕(人欲)이 방자하면
天理滅(천리멸) : 천리(天理)가 멸해지므로
故君子懼焉(고군자구언) : 군자는 이를 두려워한다.
擇善去惡(택선거악) : 선함을 택하고 악함을 제거함에는
莫如精(막여정) : 정밀(精密)함보다 더한 것이 없고,
篤信固守(독신고수) : 독실하게 믿고 굳게 지키는 데에는
莫如一(막여일) : 전일함보다 더 한 것이 없으며,
成德敎民(막여일성덕교민) : 덕을 이루어 백성을 가르치는 데에는
莫如中(막여중) : 중용(中庸)의 도를 행함보다 더 한 것이 없다.
堯舜禹之傳法(요순우지전법) : 이것이 요(堯)ㆍ순(舜)ㆍ우(禹)가 전해준 법이니,
而學者之大宗也(이학자지대종야) : 배우는 사람의 대종(大宗)인 것이다.
理者氣之理(리자기지리) : 이(理)는 기(氣)의 이(理)이니,
有是理則有是氣(유시리칙유시기) : 이 이(理)가 있으면 이 기(氣)가 있다.
氣者理之氣(기자리지기) : 기(氣)는 이(理)의 기이니,
有是氣則有是理(유시기칙유시리) : 이 기(氣)가 있으면 이 이(理)가 있다.
사람의 마음이 알고 깨닫는 것이 하늘이치에 일치하는 것을 우리는 도심(道心)이라 말하고, 사람의 마음이 형체와 기운에 따라 감응하는 것을 인심(人心)이라 말한다.
또 천리(天理)라는 것이 있는데, 그 것은 사람이 타고난 본성(本性)의 가장 선(善)한 근본이고, 형기(形氣)라는 것이 있는데, 그 것은 예로 들면 사람이 살면서 본능적으로 요구되는 음식(飮食)과. 남녀(男女) 등 욕망과 같은 것이다.
천리(天理)와 형기(形氣)는 그 근본(根本)이 서로 다른 것이 아니다. 형(形)은 기(氣)에서 생겨낫고 기(氣)는 이(理)에서 근본(根本)하였으니, 다시 말하면 이(理)라는 것은 기(氣)의 성품(性稟)이고, 기(氣)라는 것은 이(理)의 근본(才)이다.
또 재(才)는 성(性)에서 나왔고, 이(理)는 기(氣)를 통하여 행해지니 어진(仁)마음은 본성(本性)에서 울어 나와서 기와 함께 상호 감응하며, 애욕(愛慾)은 기(氣)와 같이 형성되지만 그 근본은 본성(本性)에서 울어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이.기(理.氣)는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늘의 이치(天理)에 따르면 이(理)가 전일하여 기(氣)가 바르게 되고, 사람의 욕망(人欲)을 따르면 기(氣)가 전일하여 이(理)가 변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마음(人心)은 항상 위태롭고, 도의 마음(道心)은 항상 정미(精微)하다 하였다. 사람은 본래 천지의 중정(中正)을 받고 태어나서 어진마음(仁性)을 타고 났으나, 인(仁)이 불인(不仁)으로 변하는 까닭은 성(性)의 잘못이 아니라 재(才)의 허물인 것이다.
인욕(人欲)을 놓아두면 천리(天理)가 없어진다. 그러므로 군자는 이를 가장 두려워한다. 서(善)을 선택하고 악(惡)을 버리는 데는 악(惡 )이 틈타지 못하도록 정밀(精密)한 마음지킴이 요구된다. 독실한 지킴에는 전일(專一)한 마음이 요구되며, 그 일을 모든 사람에게 알리는 데는 중용(中庸)의 길을 행해야한다. 옛 성현들이 가르친 일이니, 배우는 자들의 대종(大宗)이다.
다시 요약하면, 이(理)는 곧 기(氣)의 이(理)니, 이 이(理)가 있으면 이 기(氣)가 있게 되고, 기(氣)는 이(理)의 기(氣)니, 이 기(氣)가 있으면 이 이(理)가 있게 된다.는 것이다.
출처:송운사랑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