觀察使兼巡察使李相公鎬俊淸德善政碑
(관찰사겸순찰사이상공호준청덕선정비)
![](https://t1.daumcdn.net/cfile/cafe/99EDA7375E8B493132)
화순읍에서 화순탄광을 거쳐 국도 22호선을 따라 순천시 주암면을 가다보면 운알재 못미쳐 동복이 위치한다. 지금의 동복은 인구 1,700명의 조그만 농촌 마을이지만, 원래 동복은 현(縣)이 있던 역사 깊은 고을이었다. 1914년 일제 강점기때 행정구역개편으로 화순군에 편입 되었다.
화순 적벽을 처음으로 명명한 신재(新齋) 최산두(崔山斗)선생이 기묘사화(1519년)로 귀양와 18년동안 보내다 생을 마감한 곳으로 유명하며, 방랑시인 김삿갓의 종명지이기도 하다.
이 곳 면사무소 앞의 비석군에 철로 만들어진 철비(鐵碑)가 있다.
순찰사 겸 관찰사 이호준의 선정비이다.
비의 전면에는 觀察使兼巡察使李相公鎬俊淸德善政碑(관찰사겸순찰사이상공호준청덕선정비)라 새겨진 비문이 있고, 更午十月日(경오십월일)이라 새겨져 있다.
비 머리는 과장된 집 모양을 바탕으로 중앙에 연꽃을 표현하였다. 건립은 경오(更午)년 10월(1870 고종 7)로, 크기는 높이 130cm, 넓이 31cm, 두께 2.5cm이며, 사각형 홈 내부에 양각이 되어 있다.
비신이 4부분으로 파손되어 뒷면에 철판을 덧대어 용접하여 수리하였다.
전라도 지역 철비는 타 지역에 비해 비 두께가 얇은 반면 높게 만들어 세장한 모습을 특징으로 한다. 두껍게 주조하는 것에 비해 많은 공력과 기술을 필요로 하였을 것이다.
철비의 주인공 이호준(李鎬俊 1821 순조21 ∼ 1901 광무 5)은 조선 말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우봉(牛峰), 자는 충백(忠伯), 섭(燮)의 아들로 식(埴)에게 입양되었다. 1864년(고종1) 경과증광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며, 1870년에는 전라도관찰사에 임명되었다. 당시 전라도지방의 행정에 진력해 외침에 대비한 성의 보수(補修)와 군사훈련에 주력하였다. 3년여의 전라도관찰사를 지낸 뒤 1872년 11월 규장각 직제학이 되었다.
또한 이호준은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절친이며, 을사오적 중 한사람인 이완용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순찰사(巡察使)는 조선조때 도내의 군무(軍務)를 순찰하는 벼슬로 관찰사가 겸임하였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998103335E8B49AE20)
▲ 동복면사무소 앞의 비석군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코로나19 사태에 답답하시죠? 이 또한 시간이 가면 해결되지 않을까요. 건강 잘 챙기세요.
늘 지나치며 궁금했었는데 곧 찾아보겠습니다.
동복에 오시면 들러 가세요. 주변에 연둔리 숲정이와 임대정도 둘러보시고요.
좋은정보 감사합니다.
여수에도 철비가 있어 더욱 관심이가네요.
숲정이가 어떤곳인지 궁금해집니다~
‘숲정이’란 마을 근처의 숲을 가리키는 순수한 우리 말입니다.우리 화순에는 동복면의 연둔리 숲정이가 유명합니다. 화순8경중에 제7경이랍니다.
@화순 최산두 오~^^그렇군요.
여기서도 감탄이 절로납니다.
방금 야경투어를 마치고 돌아왔는데
반가운 댓글에 기분이 배로 좋아지는듯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