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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게 써볼까 합니다.
1982년 프로야구가 처음 등장했을 때 현재 김성근 한화이글스 감독이 당시 OB베어스의 투수코치였습니다.
1982년부터 1983년까지 투수코치로 지도자생활을 하다가 1984년부터 초대 김영덕 감독에 이어 OB베어스 2대 감독으로 부임하게 되었지요.
1984년부터 1985년 무렵까지 김성근 감독의 지도력은 나름 신구조화가 잘 이루어졌다고 해야할까요...
기존 투수진이었던 계형철, 장호연, 박상열에다가 고만고만했던 최일언, 김진욱, 윤석환의 능력을 이끌어내며 소위 말하는 벌떼투수진들을 만들어냈고, 타선에서는 기존 윤동균, 양세종, 김우열에다가 김형석, 김광림 등이 가세하며 짜임새가 좋았지요...
포수진에서는 이만수와 같은 박력은 없었지만, 안정적인 수비능력과 지략을 가진 김경문과 조범현이 든든하게 안방을 지켜줬었고요...
OB베어스 1세대 포수들이었던 김경문, 조범현 외에도 김진홍, 정종현이 있었으며, 공격형 포수로서 일발장타 능력을 보유하고 있던 김호근의 도전도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1세대 포수 경쟁은 출전경기로 보나 추후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김경문의 승리로 끝났지만요.
각설하고, 85년이 지나고, 86년 무렵부터는 김성근 감독의 OB가 정체에 빠집니다.
무슨 뜻이냐면, 이무렵부터 될만한 사람만 썼었고요, 주력 투수들인 계형철, 장호연, 박상열, 최일언, 김진욱, 윤석환을 주구장창 굴려댔고, 타선도 박노준 정도를 제외하면 커다란 전력보강이 없었습니다.
김성근 감독이 재임하던 84년 ~ 88년 시절만 해도 OB가 꾸준히 중위권을 유지하던 팀이기는 했습니다만, 위와 같은 보수적인 운용도 한몫핶고요, 또, 타선이 많이 답답했었죠. 이기기는 했지만, 타선에서 점수를 많이 뽑아주지 못하다보니까 재미없다는 평도 많았었고요.
간이 좋지 않아 마음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던 한대화를 의지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많이 힐난하기도 했고, 한대화를 해태로 트레이드 해버립니다.(...) 해태로 트레이드로 되기 위해 당시 김인식 해태타이거즈 수석코치가 많이 뛰어다닌 건 지금도 익히 알려진 일화고요.
(이후 김인식 해태타이거즈 수석코치가 쌍방울레이더스 초대감독을 거쳐 OB베어스 감독이 되었고, 김인식 감독 시절부터 두산의 황금기가 시작됐으니...)
또, 공격형 포수 김호근이 수비가 다소 불안하다는 이유로 대타나 지명타자로만 간간히 내보냈을 뿐이었죠.
88년 시즌을 끝으로 김성근 감독이 사임하고, 89년 시즌 태평양 감독으로 가게 되는데, 이때 일부 OB 프런트들과 신용균, 최주억 코치 등 코치들 대부분을 데리고 나가면서 다른 구단 직원들과 팬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지만...
OB프런트의 뻘짓과 OB 프런트의 이중적인 면모로 OB프런트가 김성근에게 몹쓸 짓을 많이 한 것도 엄연한 사실이기 때문에 차마 김성근을 비난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이것때문이죠.
한편, 두산이 화력을 갖춘 팀으로 거듭나기 시작한 건 본격적으로 타선의 세대교체를 시작한 이광환 - 윤동균 감독 시절때부터였죠.
김성근 이후 이광환 감독이 암흑기의 출발점이 된 감독이기는 했습니다만,
마냥 이광환 감독과 이후 이재우 감독에게만 책임을 물을 수도 없는 게
김성근의 될만한 사람만 주구장창 기용하는 식의 보수적인 경기운용과 더불어 김기범 거르고 이진을 뽑는 등 OB 프런트의 탁월한 뻘짓도 한몫했고요, 그러기엔 투수진 자체가 노쇠화가 될 대로 되버린 투수진을 물려받으면서 이들도 어찌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90시즌 장호연을 제외한 나머지 주력투수들이었던 김진욱, 윤석환, 계형철의 노쇠화가 한꺼번에 찾아오면서 완전히 폭망하게 됩니다. 단일시즌 80패 꼴찌라는 타이틀도 달성했고요.
김성근 이후 3대 감독으로 부임하는 이광환은 원년 타격코치답게 김형석의 장거리 타격능력을 향상시키고, 최일언을 LG에게 내주고, LG의 거포유망주 김상호를 데리고 오면서 김형석-김상호-최동창으로 이어지는 클린업트리오를 만들고, 김형석과 이명수의 타격능력을 끌어올리는 업적을 발휘하여 타선의 세대교체를 이끌지만,
문제는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주력투수들이 속절없이 무너지는 건 타격코치 출신이었던 이광환 감독도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결국, 90년 6월 19일 광주 해태전을 끝으로 이광환 감독이 사임을 하게 되지요.
이후에 타격 인스트럭터 출신이었던 이재우가 감독대행을 거치고, 91년에 정식감독이 됐었는데,
이재우의 경우 90년대 OB 마운드의 버팀목이 되어준 현재 SK와이번스 투수코치인 김상진을 발굴하고, 타선의 힘을 강화시키려고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만, 무너진 마운드도 문제인데다가 타선도 세대교체를 진행할 무렵이라 성적을 기대하는 게 애시당초 무리였지요. 다만, 장호연이 구단과 갈등을 빨리 마무리 짓고 나오고, 주전 타자들의 부상을 일찍 해결되었다면 적어도 꼴지는 하지 않았겠지만요...
이재우 이후로는 91년 8월 윤동균 수석코치가 감독대형을 거쳐 92년 감독이 부임하면서 안경현, 장원진, 김민호, 심정수 이들을 발굴하면서 95년 부임하는 김인식 감독표 뻥야구의 기반을 만들어줍니다. 투수진에서는 강병규, 권명철, 김상진, 김경원을 발굴하는가 하면, 해태타이거즈의 박노준을 내주고, LG킬러였던 이광우를 데려오면서 두산 투수진의 밑거름을 만들기도 했고요.
98년에 김동주가 입단하면서
99년부터 정수근-장원진-우즈-김동주-심정수-홍성흔-최훈재-안경현-김민호로 화룡점정을 찍으면서 롯데자이언츠와 더불어 화력타선을 갖추었죠.
이런 식으로 흘러갑니다.
주절주절한답시고 쭉 써봤는데, 글이 제법 길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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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 인물이 바로 콧수염을 기른 감독이었던 이재우 감독이었죠.(...)
두산팬들에게 이재우하면 박용택과 닮은 이재우를 생각하시겠지만, 제게 이재우하면 콧수염 기른 이재우가 먼저 떠오릅니다.(...)
첫댓글 한화팬으로써 착잡합니다..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