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회 (2011. 9. 25) 정기답사 (충북 청주 일원) 안내
1. 출발일시 : 2011년 9월 25일(일요일) 오전 7시 50분시(시간엄수)
2. 출발장소 및 버스 탑승하는 곳
■ 잠실역 3번 출구 너구리상 앞 (07시50분)
■ 양재역 1번 출구 서초구청 맞은편 농협 앞 (08시10분)
■ 죽전버스 정류장 (08시30분)
■ 신갈고속도로 버스정류장 (08시 40분)
■ 오산 IC 앞(09시00분)
3. 이동경로 : 잠실→양재역→경부고속도로→신갈 간이정류장→오산IC→경부고속도로→청주IC→오송지구→경부고속도로 청주IC→청원분기점→당진상주간고속도로→문의IC→청주한씨 시조 한란 묘→청남대→문의 문화재단지→운보의 집→초정약수→손병희 생가→오산 IC→신갈 간이정류장→양재역→잠실
4. 답사지
1) 오송산업단지, 대농부지의 신영개발현장
2) 청주한씨 시조 한란 묘
충북 창원군 남일면 가산리 산 18번지. 고려의 개국공신인 태위(太尉) 한란(韓蘭, 853~916)의 묘소다. 원래의 묘소는 조선 효종 10년(1659)에 노봉(盧峯)에 의해 파손되었으며, 후손들이 숙종 16년(1690)에 봉분을 복원하였다고 전해진다. 청주한씨(淸州韓氏)의 시조인 한란은 청주지역의 대표적 호족으로 왕건이 후백제를 정벌하기 위해 청주를 지날 때 군량미를 도와 삼중대광태위(三重大匡太尉)에 봉해지고 개국공신이 된 인물이다.
묘소 앞의 신도비는 후손인 한익모(韓翼慕)가 찬하고 한광회(韓光會)가 비문을 썼으며 한덕필(韓德弼)이 전액을 써서 1768년(영조 44)에 세워졌다. 『청주읍지(淸州邑誌)』에 실린 그 비문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우리 동방의 대성에는 반드시 한씨를 칭하게 되는데 기자(箕子)가 동쪽으로 와서 후손으로 성을 얻은 자가 셋인데 한씨가 그 하나이다. 그 후 수백 년을 지나 우리 태위부군에 이르러 비로소 호서의 청주에 일가를 이루어 모든 한씨의 조상이 되니 대개 보고 들은 바로 자연히 알 수 있다.
부원군 한란은 고려 태조(太祖)를 도와 공훈으로 벼슬이 삼중대광에 이르렀다. 청주 동남쪽 10리에 있는 방정리(方井里)는 당시에 복거하신 구지이다. 방정리에서 가산 아래 남록 남쪽 67리에 있는 묘지는 부감(負坎)의 언덕으로 실로 부원군의 옷과 신발이 묻힌 곳이다. 중간에 실전이 되어서 타인들이 모점(冒点)하여 봉분의 형태가 없어지고 묘역을 찾을 길이 없었다.
1605년 후손 한백겸(韓百謙)이 청주목사로 와서 방정리 유허지에 단을 축조하고 해마다 한번씩 제사를 지냈다. 1689년에 참판 성우(聖佑), 장령 영(濚), 군수 숙(塾)이 같이 나서서 관청에 제송하니 조정에서 경조를 파견하여 사중을 파본 즉 부장품 등 확실한 증거물이 나오므로 범인이 사실을 자백하였다.
이제야 투장한 것을 파서 옮기고 여러 자손들이 나가서 봉분을 쌓고 묘역을 깨끗이 정리하였다. 이것이 부군 묘소를 잃었다 찾은 내력이다. 이에 모든 종중이 서로 재물을 거두고 돌을 다듬어서 묘 옆에 세우고 이런 사실을 기록하니 부군의 후손되는 사람들은 이것을 거울삼아 근본에 보답하는 도와 선조의 적덕의 보은을 알지어다.
여러 일가가 돌을 깎아 다듬어서 8척으로 하여 글을 새겨 영원토록 후손에게 밝히노라. 대광보국 숭록대부 의정부좌찬정 세손전 익건(翼謇) 찬.
3) 청남대(靑南臺)
충청북도 청원군 문의면 신대리 산26-1에 있는 대통령이 전용으로 사용했던 별장이다. 대청댐 부근 약 55만 평에 지은 대통령 전용 별장으로 '남쪽에 있는 청와대'라는 의미이다. 제5공화국 때 지은 것으로 대청댐 일대에 대한 국립공원 훼손 등의 말썽이 있어 1988년 5공비리특별위원회에서 현지조사를 하기도 했다. 대통령의 별장은 이승만 대통령 시절부터 김해를 비롯해 4군데가 있었으나, 김영삼 대통령 시절 모두 폐쇄하고 청남대 한 곳만 남겼다.
그동안 청남대의 전경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지다가 1999년 7월 1일 사진이 처음 공개되었다. 청남대는 김영삼 대통령이 공식휴가나 비공식적인 휴식을 위한 장소로 자주 애용하기 시작해 현재는 대통령이 휴가를 보내는 전용 휴양지로 정착되었다. 이런 이유로 대통령의 청남대에서의 휴가기간이 끝나면 새로운 정국구상이 있을 거라는 의미에서 '청남대 구상'이라는 정치용어가 생기기도 했다.
그밖에 청남대에서 국빈을 영접하기도 한다. 그러나 참여정부가 들어선 뒤인 2003년 4월 18일 청남대는 20여 년간의 베일을 벗고 일반인에게 전면 개방되었다.
[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4) 문의 문화재단지
충북 청원군 문의면 문산리 산 6-1번지. 문의문화재단지는 1980년 대청댐 건설이 계기가 되어 수몰위기에 처한 지역문화재를 보존하고 주민들에게 휴식공간을 제공하자는 취지에 1992년부터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총 4만여평의 대지위에 민가 5동, 관아건물 1동, 성곽 및 성문 1개소, 유물전시관 1개소와 5,000평의 주차장이 조성 되었다. 선사시대 돌무덤의 하나로 특히 청동기시대를 가늠케 하는 고인돌, 다산과 번식을 상징하는 기자석을 돌아서면 충신문과 효자각이 있다.
단지내에는 문의 아득이 고인돌, 미원 수산리 고인돌, 내수 학평리 고인돌이 이전되어 있고 문의현의 관아 객사 건물인 지방유형문화재 제49호인 문산관이 이전 복원되었으며 낭성면 관정리와 문의면 노현리, 부용면 부강리에서 민가가 이전 되었으며, 서길덕 효자각, 김선복 충신각 및 문의지역에 있던 옛 비석도 이전 되어 있다.
옛 조상들의 생활풍습을 알기 위하여 양반가옥, 주막집, 토담집, 대장간, 성곽 등이 고증을 거쳐 건립되었으며 유물전시관에는 낭성면 무성리에 있는 영조대왕태실 조성을 기록한 지방유형문화재 제70호인 영조대왕태실가봉의궤를 비롯하여 군내에서 수집한 유물을 전시한 유물관과 백제부터 근대까지 기와를 시대별로 분류한 기와전시관이 있다.
5) 운보의집
충북 청원군 내수읍 형동리 428-2. 운보 김기창 화백의 사저인 운보의집은 미술관, 공방, 갤러리, 아트숍, 야외수석공원 등이 있는 문화예술 공간이다. 1만원권 지폐에 그려진 세종대왕의 얼굴을 그린 화가이기도 한 운보 김기창 화백은 서울에서 태어나 호방한 화풍을 선보이며 한국화의 새로운 장을 연 인물로 기록되고 있다.
그는 어린 시절에 청각을 잃었지만 끊임없는 열정으로 미술에 정진해 조신미술전람회에서 입선한 후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운보는 지난 1976년 같은 작가의 길을 걸어온 아내 우향 박래현 화백이 세상을 떠나자 어머니의 고향인 청주로 내려왔다. 그러면서 땅을 조금씩 매입한 그는 84년 청원군 내수읍 형동리에 운보의 집을 완성한다. 운보가 살던 한옥에는 방과 주방, 정자, 연못 등이 있다. 정자는 운보 선생이 손님이 오면 앉아 필담을 나누던 곳이고, 비단잉어들이 살고 있는 연못은 운보가 생전에 고기들에게 먹이를 주면서 소일하던 곳이다.
운보의 집에서는 운보 선생의 작품 감상뿐 아니라 운보 선생이 직접 그림을 그려 넣은 각종 도지기도 구매할 수 있다. 운보의 집은 전체 2만 7000평 대지에 평소 운보가 살던 한옥, 미술관, 찻집, 도예공방, 운보의 묘 등이 자리 잡고 있고 경치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운보 미술관은 한국 외국어대학교의 설립자인 고(故) 김흥배 박사가 건립 기증한 「운향 미술관」을 증축한 후 일반에 공개 되었다.
고 김기창 화백의 작품세계와 생애를 조명하며 감상할 수 있는 3개의 전시실과 자료실, 영상실, 학예실, 수장고로 구성되어 있으며, 고 운보 김기창 화백의 부인이신 우향 박래현 화백의 작품과 북한에 있는 동생 김기만 화백의 작품도 볼 수 있다. 운보는 지난 2001년 88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으나 그림을 좋아하고 즐기며 지망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힘과 용기, 꿈을 심어 주고 있다.
6) 초정약수
충북 청원군 내수읍 초정리에 있는 초정약수는 세계 광천학회에서 미국의 샤스터, 영국의 나포리나스와 함께 세계 3대 광천수로 꼽고 있다. 지하 100m의 석회암층에서 솟아오르는 매콤하고 차가운 천연탄산수이다. 초정리에서 이 천연탄산수가 발견된 것은 600여년전이라고 하는데 '동국여지승람'이나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세종대왕이 이곳에서 117일을 머물면서 눈병을 고쳤다는 기록이 있다. 초정약수가 이렇듯 효험이 탁월한 것은 물속에 포함된 다량의 라듐성분 때문인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눈병 등 안질환뿐만 아니라 피부질환에도 효과가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 청주목(淸州牧) 산천(山川)에서는 [청주에서 동쪽으로 39리에 매운맛이 나는 물 초수(椒水)이 있는데, 이 물에 목욕을 하면 피부병이 낫는다]고 하였으며, 이수광의 지봉유설(芝蜂類設)에는 [우리나라에 많은 초수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광주와 청주의 초수가 가장 유명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예로부터 7~8월 한여름에는 초수의 약효가 제일 좋다고 하여 복날과 백중날에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찾아와 목욕을 하며 더위를 식혔다. 이 초정약수로 ’천연사이다’, ’맥콜’, ’탑씨’를 비롯한 음료수와 ’초정수’를 제조 판매하고 약수터는 천연탄산수를 음미하고 받아가려는 수많은 인파가 줄을 서고 있다.
[출처 : 청원군 문화관광]
7) 의암 손병희 선생 생가
충북 청원군 금암리 385-2번지. 조선 철종 12년(1861) 4월 8일에 의암 손병희(義菴 遺墟地, 1861~1922) 선생이 출생하여 자란 집이다. 손병희 선생은 일찍이 동학에 입문하여 1894년 동학혁명때 충청도와 경상도에서 10만의 민중을 이끌고 관군과 싸웠다.
그 후 일본을 거쳐 상해로 망명하여1897년에는 동학의 3세 교주(敎主)가 되고, 1904년 진보회(進步會)를 조직하였다. 1907년에 귀국하여 천도교라 개칭하고 교세확장에 힘쓰다가 경술국치 이후 보성전문학교(普成專門學敎)와 보성중학교를 천도교 명의로 인수하여 인재양성에 힘썼으며, 1919년에 3.1운동때는 민족대표 33인의 필두로 조선독립을 선언하였다.
선생이 태어난 생가는 정면 4칸, 측면 1칸반의 초가집으로 1971년에 해체 보수하였고 1961년에 탄신 100주년을 맞아 세운 유허비가 있다. 또한 청원군에서 1991년부터 1999년까지 유적지를 정비하여 영당 및 삼문, 담장과 유물 전시관을 건립하였다.
첫댓글 참좋은일정을 잡으셨습니다. 가을 소풍을 가는 기분으로 가을동화를 만들면 좋겠습니다.
네 교수님 기대하겠읍니다. 답사일에 뵙겠읍니다.
정경연 교수님, 아주 알차고 유익한 일정 잡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기대가 많이 됩니다!!!
정경연 교수님 유익한 자료 정말 감사합니다. 이번 답사도 기대됩니다.
답사때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