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군마현에 있는 강제동원(‘노예노동’이라는 말을 쓰는 것이 더 정확하다 – 옮긴이 잉걸. 아래 ‘옮긴이’) 조선인(한국인. 2차 대전 때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라는 한국인을 위한 정부가 있었기 때문이다 – 옮긴이) 추도비가 철거 위기에 놓였다는 기사도 많이 봤습니다.
일본 군마현 당국이 현립공원인 '군마의 숲'에 있는 조선인 노동자 추도비를 오는 29일부터 철거할 계획이라고 교도통신이 보도했습니다.
이 추도비를 관리해 온 현지 시민 단체는 군마현이 다음 달 11일까지 철거를 마친 뒤 약 2억 7천만 원의 비용을 청구하겠다는 방침을 통보해 왔다고 밝혔습니다.
이 추도비는 현지 주민들이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동원 사실을 후대에 알리고 반성하기 위해 지난 2004년 설치했습니다.
시민단체는 해마다 이곳에서 추도제를 열었는데요.
지난 2012년 행사 참가자가 강제 연행을 언급했다는 점을 극우단체들이 트집 잡으면서 철거 요구를 재기해 왔습니다.
군마현 당국은 2014년 설치 허가 갱신을 거부했고요.
시민 단체가 이에 불복해서 소송을 제기했지만, 일본 최고재판소는 2022년 지자체 처분이 적법하다는 판결을 확정했습니다.
- 서울방송(SBS) 뉴스(서기 2024년 양력 1월 24일)
- 출처 :
https://n.news.naver.com/article/055/0001125175
▶ 옮긴이(잉걸)의 말 :
이 뉴스를 보니, 평범한 한국인인 내가 평소에 “평양은 이른바 ‘일본인 납치’에 사죄하거나 배상할 필요가 없다!”고 외친 일이랑, “소련군이 2차 대전이 끝났을 때 붙잡힌 관동군 60만 ‘마리’를 시베리아와 중앙아시아에 있는 여러 수용소로 끌고 가, 때리고 욕하면서 노예처럼 일을 시킨 일은 오늘날의 로(Ro)시야가 (왜국[倭國]에게) 미안해 할 필요가 없는 일이다. 로시야 정부여, 그리고 로시야 시민들이여, 절대 왜국에게 사죄하지 말고, 절대 배상하지 마라!”하고 말한 일이 절대 잘못된 일이 아님을 알겠다. 앞으로도 계속 이 두 가지를 큰 소리로 말하고 다녀야겠다. 군마현 당국의 결정과 왜국 법원의 판결과 왜국 극우단체의 요구가 내가 이렇게 결정한 까닭이라는 건 분명하게 말하고 싶다.
(사실, 내가 그 두 가지를 주장하기 시작한 까닭도, 먼저 왜국 정부와 우익이 – 나아가 그들을 따르는 대다수 왜국 국민들도 – 근대 왜군의 성[性]노예 성폭행과 살해/2차 대전 때 근대 왜국이 한국인 노동자들에게 노예노동을 강요한 사실을 적극 부정하고, 사죄하거나 배상하기는커녕 오히려 피해자들을 모욕/비난했기 때문이었으니까, 이건 내 탓이 아니며 내 책임도 아니고 내 잘못도 아니다.
덧붙이자면, 이른바 ‘일본인 납치’가 – 왜국 정부의 주장대로 - 그렇게 큰 ‘범죄’라면, 중세 말기의 왜구[倭寇]가 후기 고리[高麗]로 쳐들어와서 후기 고리 사람들을 잡아간 일이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왜군이 서기 1592년부터 서기 1598년까지 수많은 근세조선 사람들을 붙잡아 왜국으로 끌고 가고, 그들 가운데 “10만 명”은 세계 노예 시장에 내다 판 건 뭐라고 불러야 하는가? ‘더 큰 범죄’? 다른 말을 할 수가 없을 텐데?
그렇게 ‘일본인 납치’를 비난하고 싶다면, 먼저 왜구와 왜군이 한 짓부터 인정하고, 피해자의 후손들에게 사죄하고, 도이칠란트 수준으로 배상부터 해야 하지 않아? 나는 그 모든 일이 이루어지고 나서야 왜국이 ‘일본인 납치’에 대해 말할 자격이 주어진다고 생각한다!)
나아가 ‘우리는 - 서기 1945년 이후에 만들어진 세력을 포함하는 - 한국 안의 모든 종일(從日 : 왜국[日]을 [종처럼] 따름[從]) 세력을 청소하고, 왜국과 전쟁을 해서 그들을 무릎 꿇린 뒤 대다수 왜인(倭人)들에게 총칼과 몽둥이로 정의(正義)를 강요해야 한다!’는 생각이 다시 한번 강하게 들었음을 털어놓아야겠다.
‘한/일 우호’? ‘미래지향적 관계’? 다 필요 없다. 우리 동족에게 휘두른 폭력(근대 왜국 정부/군대가 한국인 노동자에게 노예노동을 강요한 사실)을 악착같이 부정하는 나라(왜국)가 어떻게 ‘우호 관계를 맺은 우방’이란 말인가?
우리는 제 2의 독립전쟁을 치러야 하며, 필요하다면 서기 1598년(6년 전쟁[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근세조선 침략전쟁]이 끝난 해)과 서기 1945년(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해)에 이루지 못한 일(총을 들고 [앞으로 나타날] 왜군과 맞서 싸운 뒤, 그것들의 본거지인 왜국으로 쳐들어가 왜왕[倭王]의 항복을 받아내는 일)도 해야 한다!
▶ 걱정이 되어서 덧붙이는 글 :
나는 군마현의 “시민단체”, 그러니까 이 뉴스에 나온 일본의 시민단체를 비난하는 게 아니다. 그리고 “추도비”를 세운 군마현 사람들을 비난하는 게 아니다. 그 단체의 말을 듣고 진실을 알게 되어 피해자(2차 대전 때 동원되어 근대 왜국[倭國] 정부와 군대와 기업에게 노예노동을 강요당한 한국인 노동자들)들을 편드는 (아주 적은 수의) 일본인들을 비난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나는 그 세 부류에 속하는 분들은 존경하고 존중하며 경의를 표한다.
내가 화를 내고 비난하는 건 군마현 당국과 (근대 왜국이 2차 대전 때 한국인 노동자들에게 강요한) 노예노동을 적극 부정하고 “추도비”를 없애라고 윽박지르는 왜국의 “극우단체”들과 “추도비 철거는 적법행위다.”하고 판결한 왜국 “최고재판소”와 그 모든 것을 묵인하는 왜국의 중앙정부와 이 일에 대해 어떤 논평도 안 하는 나루히토 왜왕(倭王)이다.
이것이 내가 이 뉴스를 듣고 쓴 글( 「 ▶ 옮긴이(잉걸)의 말 」 )을 읽고 화를 낼 친일국가의 시민/국민들과, 평범한 일본인들과, 한국 안의 종일( 從日. 왜국[日]을 [종처럼] 따름[從]. 이완용 같은 자들의 성향을 평가할 때에는 ‘왜국과 친하다.’는 뜻인 ‘친일’이 아니라, 이 말을 쓰는 편이 더 정확하다고 한다 ) 세력에게 하고 싶은 말이다.
나는 그들뿐 아니라, < 알자지라 > 같은 외신에서 일하는 기자가 나에게 물어봐도, 국제연합(UN) 같은 국제기구에서 일하는 관리가 내게 물어도, 『 산케이 신문 』 같은 왜국 극우 언론사의 기자가 내게 물어도 똑같은 대답을 할 것이다.
- 단기 4356년 음력 12월 18일에, 점점 우경화하는 왜국이 서기 1592년이나 서기 19세기 말이나 서기 1931년에 그랬던 것처럼, 다시 총칼을 들고 동아시아를 침략할지 모른다고 여기는(그리고 그때가 되면 총을 들고 왜국과 맞서 싸우는 일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잉걸이 올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