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창세기 32:24~32 브니엘 새로운 문
2010년 8월 5일 칠레 북부 산호세 광산의 지하 갱도가 무너져 광부들이 매몰되는 사고가 벌어졌습니다. 이 사고로 매몰된 광부들중 일부는 사고 직후에 충격이 너무 커서 한동안 일어서지 못했던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매몰 직후 처음 17일간은 너무나 의기소침해 있었고, 두려워했으며, 100% 죽었다고 믿었던 사람도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붕괴후 2~3시간 동안 먼지가 자욱할 정도로 너무 깊은곳에서 붕괴가 일어났었고, 큰 돌들이 떨어져서 완전히 길이 막혔었기 때문입니다.
남은 음식을 나눠먹었지만 자고 일어나면 몸무게가 줄고 모두가 하루가 다르게 야위어 갔습니다. 굶어 죽기만을 기다리던 최악의 상황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17일간 12kg이나 빠졌습니다. 식량은 점점 떨어져가고, 점점 구조의 소망은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일부는 자기들끼리 터널을 파서 탈출할 궁리도 했습니다. 광부들은 지하의 누추한 생활공간을 놓고 서로 더 차지하려고 주먹다짐을 하기도 했고, 비명을 지르고 좌절했습니다. 여기서 구조되지 못하고 죽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이 서른세명의 광부를 절망으로 몰아넣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만약 그 속에 있다면 여러분은 어떤 마음일까요?
오늘 본문에는 이 광부들과 조금은 다르지만 어떤 면에서 비슷한 두려움에 직면한 사람이 나옵니다. 바로 야곱입니다. 직전에 31장에서 그는 장인인 라반과 아들들의 추격을 받고 겨우 하나님의 은혜로 위기를 모면했습니다. 하지만 더 크고 두려운 일이 남아있었습니다. 고향에 가려면 에서를 만나야 한다는 겁니다. 아버지를 속이고 형의 장자권을 빼앗은 뒤 자기를 죽여버리겠다는 형이 무서워서 이 머나먼 라반의 집까지 피신을 온지도 어언 20년이 지났습니다.
도둑이 제발 저리는 것처럼 시간이 지나도 야곱의 마음속에 형에 대한 두려움은 여전했습니다. 광부들이 커다란 돌덩이와 지하에 갇힌것처럼 야곱도 두려움에 갇혀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께서 돌아가라고 말씀하셨죠. 상황도 더 이상 장인 집에서 처가살이를 할 수가 없습니다. 여차저차해서 떠나오긴 왔는데, 한편으로는 속이 시원하지만, 그동안 마음속에 깊이 덮어놓고 대면하지 못했던 두려움 ‘에서’를 만나야만 했습니다.
32장 초반 부분을 보면 이 길에서 야곱이 처음에 하나님의 사자 즉 천사들을 만납니다. 그래서 영어로는 이곳이 하나님의 캠프라고 하면서 ‘마하나임’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는 곧이어 에서를 만날 준비를 합니다. 말은 준비지만 만약을 대비합니다. 좋게 말하면 리스크 관리입니다. 조금 나쁘게 말하면 처세술을 사용하기 시작합니다. 이때 야곱이 사자들 메신저들을 먼저 형에게 보냅니다. 말로 형의 마음을 풀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런데 웬일입니까? 6절에 사자들이 돌아와서 전하는 소식이 에서가 군대를 400명이나 이끌고 야곱을 만나러 온대요. 이제 죽었구나 생각됐습니다. 그리고 종과 나귀와 양과 소와 약대, 자신의 모든 재산을 두 떼로 나눕니다. 한쪽이 당하더라도 한쪽은 도망가도록 준비를 시키는 거죠. 8절까지 이런 전략을 세운후에, 9절부터 12절까지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네 사람이 정말 두려운 일을 만나면, 아무리 리스크 관리를 하고 전략을 잘 세워도 두려움이 해결이 안되고 여전히 떨리고 힘들게 됩니다. 야곱이 머리가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이 그전에 인생을 열심히 꾸려온 것과 같은 방법으로 지금의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모든 지혜와 지식과 전략을 짜냈지만, 오히려 형이 군대까지 데려온다고 할 때, 그 와중에서도 절반은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준비했지만, 그래도 두려웠습니다. 안심이 안 됐습니다. 그때서야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32장 1절에 하나님의 천사가 야곱을 만났는데, 그때는 기도했다는 말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를 만났다는 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기뻐서 절로 기도가 나올거 같은데 사람이 그렇지 않습니다. 절박해져야 기도가 나옵니다.
기도할 때 야곱은 벧엘에서 하나님이 약속하셨던 것, 즉 언약을 언급하면서 하나님께서 살려달라고 기도합니다. 이것은 아주 지혜로운 기도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기도할 때 하나님이 하신 약속의 말씀 성경에 쓰여 있는 말씀과 여러분에게 개인적으로 주신 레마를 붙잡고 이 약속대로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신 것을 이루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기도하고 나서 32장 13절부터 24절까지 야곱은 다시 생존의 전략을 짜기 시작합니다. 물론 이건 에서의 마음을 풀기 위한 선물의 측면도 있었지만, 야곱은 선물을 무려 세 때로 나누어 보냅니다. 즉 선물을 세 번이나 보내고, 20절에 나오는 표현처럼 예물로 형의 마음을 풀어볼려고 엄청나게 애를 씁니다. 왜 그랬을까요? 네 전략을 짜고 기도도 했지만 그래도 안심이 안 됐습니다. 그래서 또 머리를 쓴 겁니다.
이것이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여러분 많은 성도들이 성경에서 가장 호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누구일까요? 아브라함, 이삭, 모세, 바울일까요? 놀랍게도 야곱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나랑 참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이 험한 세상에서 어떻게든 살아볼려고 머리를 쓰고 몸을 쓰고 애를 쓰는 삶과 야곱의 이러한 모습들에서 동질감을 느낀다는 겁니다. 내가 내 삶을 주도하고 성취하기 위해서 어떻게든 애를 써 보다가, 힘들 때 하나님께 기도를 합니다. 도움을 요청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다시 전략을 바꿔봅니다. 노력해봅니다. 그러다, 이도 저도 안될 때 낙심하기도 합니다. 야곱도 그랬습니다.
야곱이 예물을 세 번이나 보내놓고도 안심이 안 됐습니다. 그래서 아내와 아이들은 따로 나눕니다. 혹시 예물로 보낸 사람과 가축들을 공격하면 따로 도망가라는 겁니다. 그럼 왜 자기는 같이 안 갔을까요? 조금 해석이 나뉩니다. 어떤 분들은 야곱이 처자식이라도 살리려고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저는 야곱이 자신이라도 살아남으려고 했다 또는 마지막까지도 자신은 강을 건널 용기가 없었다는 해석이 타당한거 같습니다.
24절에서 28절을 보면 그는 가족들을 보내놓고 난후 어떤 사람과 씨름했다고 나옵니다. 그 사람이 야곱을 이길수가 없어서 야곱의 환도뼈를 위골시킵니다. 그랬는데도 야곱은 그를 놓아주지 않고 그에게 기어코 축복을 받습니다. 그 와중에 그는 발꿈치를 잡은 자, 속이는자, 다투는자라는 야곱이라는 이름에서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자 또는 하나님이 싸워주신 자라는 이스라엘로 이름이 바뀝니다. 이름이 바뀌면 인생이 바뀐다는 이야기는 저번에도 말씀드렸죠?
이때 나온 이 사람이 누굴까요? 영어로는 man 이라고 나오는데, 많은 학자들은 하나님의 천사 가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났고도 말합니다. 이 천사가 온 이유는 야곱이 바뀌어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야곱은 늘 자신의 삶을 자신이 좌우하며 살았습니다. 그는 장자권을 얻기 위해 아버지와 형을 속이는 일에 참여했습니다. 원래 하나님이 주실 것이었지만, 그는 자신의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라헬을 사랑해서 7년간 머슴살이 했는데, 속아서 또 7년, 그후에는 자신의 품삯을 위해 6년이나 일했습니다. 무려 20년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 또는 속아서 또는 포기하지 못해서 고생고생했지만, 하나님이 갚아주시지 않았다면 남은 것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만큼 그는 자기애와 자기 중심성이 강했습니다. 목표를 위해 모든 자기의 방법과 자기의 지혜를 사용합니다. 세상적인 입장에서는 이런 사람을 자수성가형 인물이다. 열심히 산다라고 평가할수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시편 1편에서는 이렇게 자기 지혜와 능력으로 사는 사람을 악인이라고 하며, 오만한 자 즉 교만한 사람이라고도 말씀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지혜와 자신의 능력으로만 사는 사람은 하나님이 없어도 살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벧엘에서 그리고 20여년이 지난후 얼마전 라반에게도 하나님이 나타나셨지만, 야곱은 아직 자신을 의지하고 자기의 안위가 가장 중요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래서 두려움이 매우 강했습니다. 사람의 자기중심성이 강할 때 자기 방어가 강해져서 어떨때는 공격적으로 때로는 방어적으로 그것이 표출될때가 있습니다. 평소에는 교양 있고 모든 사람에게 너그러운 것 같은 사람이 공격받거나 모욕을 받을 때 내면이 확 드러날때도 있죠.
네 사람이 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사람을 변화시키는데 전문가이십니다. 20년의 세월동안 라반과 라헬과 레아를 통해, 또 야곱의 상황을 통해서, 야곱의 삶과 마음을 약화시키고 또 약화시켜오신 하나님께서 오늘 결정타를 날리십니다. 그의 환도뼈를 위골시킵니다. 환도뼈는 간단히 말하면 고관절입니다. 고관절이 탈골되니까 똑바로 설수가 없고 다리를 절게 되고 도저히 힘을 쓸수 없었습니다. 에서를 만나도 도망칠수도 없게 됩니다. 비로소 오직 하나님만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고, 그래서 야곱은 하나님의 축복없이는 천사를 놔주지 못하겠다고 한 것입니다. 이게 바로 하나님이 의도하신 겁니다.
우리가 절박해지고 앞이 캄캄해질 때, 하나님의 손길이 그 위에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야곱은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이했다고 생각했는데, 브니엘에서 하나님을 만남으로 에서와의 만남은 부드럽게 넘어갔고, 그는 이스라엘이 되었으며, 그의 자녀들은 열두 지파의 조상이 됩니다. 또 이 사건은 야곱의 인생의 후반기에 중요한 전환점이 되서 얼마 뒤 요셉에게로 이 가족의 유업이 이어지는 과정이 됩니다.
서두에 나온 33명의 광부들은 무려 69일만에 700미터 깊이에서 매몰지에서 전원 구출되었습니다. 그들은 굴착기로 커다란 돌에 구멍을 판후 거기에 넣은 캡슐을 통해 세상에 나왔고 다시 빛을 볼수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 우리 앞에 큰 돌이 떨어지고 앞길이 막혀버린 것 같아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이 막힘과 어려움이 바뀌어 인생의 다음 장과 다음 단계로 가는 문이 될줄 믿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삶에서 지금의 상황과 우리 삶의 터전이 브니엘처럼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