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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영상/예술 스크랩 `전통·인간·예술·현실`-한국미술 100년展 2부
심메마니 추천 0 조회 42 06.06.11 13:20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전시기간:2006년 6월 2일~9월 10일

전시장소:국립현대미술관 제 1, 2, 7 전시실 및 중앙홀

경기도 과천시 막계동 산58-1번지
Tel. 02-2188-6000
www.moca.go.kr

 


함대정_가족_캔버스에 유채_64×90cm_1950년대



김환기_달 두개_캔버스에 유채_130×192cm_1961


문신_개미(후루미)_흑단_130×23×50cm_1960년대


김흥수_가을_캔버스에 유채_195×259.7cm_1961

 


박서보_원형질 1-62_캔버스에 유채_163×128cm_1962


김종학_작품 603_캔버스에 유채_97×145.3cm_1963



권진규_영희_테라코타_31×20×35cm_1968


김영원_중력, 무중력_합성수지_실물크기cm_1978



김관수_검정상자_오브제_60x145x43cm_1981


임옥상_들불_캔버스에 먹, 유채_130.2×306cm_1981


홍성담_횃불행진 (5.18 연작- 새벽 중)_종이에 목판화_28.8×45.2cm_1983


오 윤_통일대원도_유채_349×138cm_1985



류인_윤의 변 Ⅱ_브론즈, 무쇠, 철근_73×106×98cm_1988


김천일_월비마을_한지에 수묵_180×360cm_1992-93


권순철_두 얼굴_캔버스에 유채_160×270cm_1996


김홍주_무제_마에 유채_236×460cm_1985



신학철_한국 근현대사_캔버스에 유채_260×130cm_1996


이불_히드라(모뉴먼트)_비닐 위에 사진인화, 공기펌프_600×450cm_1998


이윰_매란국죽_라이트 박스 위에 와이드 칼라 필름_300×120cm_1998


구본주_미스터 리_철판, H빔, 두들기기 및 용접_530×230×60cm_1999

 

≪한국미술 100년≫(2부) “전통·인간·예술·현실”

 

● 전시의 의미_≪한국미술 100년≫(2부)은 지난해 8월부터 10월까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최되었던 제1부에 이은 후속전시이다. 지난 전시가 20세기 초입부터 6.25전쟁까지의 “근대” 시기를 다루었다면, 제2부는 그 이후의 시기 - 전쟁 직후에서 20세기 후반을 가로지르는 “현대” 시기를 중점적으로 다룬다. ≪한국미술 100년≫(2부)은 보다 포괄적인 맥락에서 한국현대미술의 반세기의 발자취를 되짚어 보고자 기획되었다. 우리가 동시대의 미술현장에서 만나는 풍부하고 다양한 - 종종 난해하기까지 한 현대미술을 이해하는 열쇠를 바로 이 시간을 수놓고 있는 미술작품과 자료들 속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전시주제_‘정체성(identity)’의 개념은 ≪한국미술 100년≫(2부)를 포괄하는 하나의 주제이다. 이것만큼 한국현대미술 반세기에 걸쳐 다양한 층위에서 빈번하게 등장하는 개념도 흔치 않다. 때로는 실존적인 존재의 물음의 형태로, 때로는 지역적·문화적·역사적 특수성에 대한 탐구로, 때로는 민족적 자긍심과 주체성의 표현으로, 때로는 현대미술의 존재론적 위상에 관한 질문으로, 실로 다양하게 등장하는 ‘정체성’은 한국현대미술의 현장에서 특수성과 보편성을 동시에 지닌 개념이다. 격동으로 점철된 한국현대사를 몸소 겪어낸 한국인들에게 ‘나는, 아니 우리는 대체 누구인가’라는 ‘정체성’에 대한 질문은 단지 수사학이 아니라 스스로 존재의 당위성을 찾아내려는 눈물겨운 투쟁이었다. 당연히 한국현대미술의 현장에서도 ‘정체성’의 문제는 원죄(原罪)처럼 부담스러우면서도 좀처럼 실마리를 풀기 힘들었던 화두(話頭)였다. 이번 전시에서는 20세기 내내 다양한 층위에서 다양한 각도로 추구되었던 ‘정체성’의 개념을 1.전통 2.인간 3.예술 4.현실 등 4가지 범주로 다시 세분하여 살펴본다.

 

전시구성_0. 도입부 (Prologue) “다큐멘터리 : 한국현대미술, 그 격동의 현장” 본 전시 관람에 앞서 1950년대 중반 이후 20세기말에 이르기까지 한국현대미술의 흐름을 연보, 도록, 문서, 기록사진 등 다큐멘터리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 Ⅰ. 1957~1966 (현대미술작가초대전~) “전후 모더니즘 미술과 실존적 정체성의 모색” 1950년대 중반에서 60년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한국현대미술의 주요 흐름으로 자리 잡은 ‘앵포르멜’ 혹은 ‘추상표현주의’ 미술을 중심으로 모더니즘 미술운동의 양상과 의미를 살펴본다. 이 새로운 미술흐름은 국전을 비롯한 기성미술계의 경직된 관행에 대한 반감에서 비롯되었으며, 당대의 젊은 작가들이 경험한 실존적 정체성의 위기상황에 탈출구를 제공하였으며, 한국현대미술을 본격적으로 발아시키는 토양이 되었다. ● 전통 1950-60년대 한국현대미술의 현장에서 전통에 대한 관심은 다양한 형태로 드러난다. 이는 한편으로 전쟁의 참화와 문화적 토양의 붕괴로 인해 상실되어가는 전통에 대한 안타까움과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의 차원에서 ‘우리 것’의 재해석을 통하여 진정한 현대화를 이루고자 하는 소망이 어우러진 것이었다. 전통의 현대적 계승에 대한 이들의 문제의식은 현재에 이르기까지 여러 세대에 걸쳐 다양한 형태로 이어진다. 1930-40년대부터 개별적으로 발전시켜 온 모더니즘 미술양식과 자연주의적 감수성을 접목시킨 경향과 시골 담벼락이나 가을햇살을 연상시키는 향토적 색채와 질감을 독자적인 양식으로 재해석한 사례들을 살펴본다. 또한, 전통회화의 본질적인 방법론을 유지하면서 모더니즘의 방법론을 수용하고자 했던 작가들, 조각, 공예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전통적인 모티브와 현대적 감성을 결합하고자 했던 시도들을 구체적인 작품으로 만나 본다. ● 인간 50년대 중·후반에서 60년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한국현대미술의 주류를 형성한 소위 앵포르멜 작가들은 주로 ‘나’의 문제를 신체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을 보여준다. 비정형을 내세우면서도 전쟁의 참화에 짓이겨진 신체를 연상시키는 형태, 두텁게 바르고 붙이고 긁어내는 촉감적인 행위, 또는 작가 자신의 신체적 행위를 화면에 직접 투사(投射)하는 방식으로, 이들은 전쟁의 기억과 자유에의 의지, 개별자로서의 인간에 대한 사유를 조형적으로 빚어내고 있다. 이는 결국 비극적인 역사가 초래한 개인적인 정체성의 위기를 극복하려는 작가들의 예술적 의지이기도 하다. 인간 신체를 격렬한 표현주의적 감성으로 왜곡하는 경향과 보다 추상화된 형태를 지향하여 실존적 제스처의 흔적을 부각시키는 경우, 표현적 양식과 태도를 중심으로 구조적인 추상형식을 실험했던 경향 등으로 세분하여 당대의 작가들의 치열한 고민과 창작의 산물을 살펴본다. ● 예술 19050-60년대 한국현대미술 중에서 ‘앵포르멜’과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현대미술의 실험을 진행시켜온 전위그룹에 속한 작품들을 살펴본다. 현대미술의 자율성에 대한 이들의 관심은 단지 ‘예술지상주의’의 차원에서가 아니라 근대에서 현대로 패러다임이 전환되는 시기의 한국현대사에서 예술의 존재론적 당위성과 정체성에 대한 치열한 모색의 차원에서 조명되어야 할 것이다. 화면의 분할과 재구성을 통하여 새로운 표현형식을 모색하거나 대상의 단순화를 통한 구성적 표현을 추구한 경향, 우연성의 도입과 복합적인 화면구성으로 초현실주의적 특성을 보여주거나, 비대상적인 형식실험을 보여주는 작가들 ‘묵림회’(60) 등을 중심으로 전통회화의 현대적 변용의 가능성을 모색한 작가들을 이번 전시를 통하여 만날 수 있다. ● 현실 1950-60년대 한국현대미술 현장에서 동시대의 사회적 현실을 직접적으로 다룬 사례는 그리 쉽게 찾아볼 수 없다. 동족상잔이라는 전대미문의 비극을 체험한 작가들이 그 기억을 애써 외면했다는 점은 매우 이례적이며, 이런 사실은 미술계 외부로부터 한국현대미술이 문화적 리더로서의 사회적 책임을 방기했다는 비판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현실을 직접 묘사하고 기록하는데 익숙한 서구 미술의 전통에만 의존한 시각일 수 있으며, 이 부분은 보다 폭넓은 연구를 필요로 한다.

 

Ⅱ. 1967~1979 (청년작가연립전~) “실험미술과 단색조미술, 현대미술의 진로를 묻다” 1960-70년대는 사회적으로 서구 추종의 목표지향적인 근대화가 급속도로 진행된 동시에 내부적으로는 민족주의?국가주의적인 이념이 부각되는 시기였다. 미술계에서는 1967년 ≪청년작가연립전≫을 기폭제로 하여, ‘앵포르멜’ 세대의 무절제한 격정에 반발한 젊은 세대의 작가들이 기하학적 추상, 퍼포먼스, 개념미술, 대지미술 등의 다양한 실험에 착수하였다. 이어서 미니멀적인 감수성과 동양적 사유세계를 융합하고자 했던 단색조 회화가 국내외적으로 한국미술의 주류로 등장하여 1980년대 중반까지 이어졌다. ● 전통 1960-70년대는 유난히 국가 주도의 문화사업들이 활발히 추진되었으며, 비록 피상적인 차원에 그칠지언정 ‘주체성’, ‘전통’에 대한 관심이 이념적 차원으로 장려되었던 시기였다. 이런 관심은 현대미술로도 이어져, 심지어 전위미술을 표방했던 기하학적 추상회화에서 단청이나 오방색, 혹은 처마 곡선의 기하학적 형태를 도입했던 사례나 모노크롬 회화가 자신들의 미학적 원천을 한국적 감수성 차원에서 설명하려 했던 노력 등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한편 ‘서정적 추상’의 전통은 현대미술과 전통적 감성을 조화시키는데 여전히 유용한 방법이었으며, 보다 직설적으로 전통적인 소재를 현대적 조형언어로 재현하는 방법을 선택하기도 했다. ● 인간 60년대 후반을 지나 70년대로 접어들면서 인간의 신체에 대한 관심은 전쟁의 끔찍했던 기억으로부터 다소 자유로워지기 시작한다. 인간 존재의 조건과 한계를 조형적으로 재해석하는 사례와 전통적인 조각방법을 충실히 따르면서 인간의 내면적인 표현을 시도했던 예외적 사례가 60-70년대 인간 표현의 사례로서 제시되어 있다. 이들은 기존 미술 장르의 매체적 특성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이를 자신만의 고유한 조형 언어로 승화시키고 있다. 반면, 이 시기는 각종 퍼포먼스와 매체적 실험이 활발히 이루어진 시기이기도 하다. 1958년에는 국내 최초의 누드 퍼포먼스로 기록된 <투명풍선과 누드>, 사회비평의 성격을 은유적으로 드러낸 <한강변의 타살> 등이 공연되어 사회적 관심을 끌었다. ● 예술 1960-70년대는 전위성의 각축장이라 부를 정도로 다양한 양식적 실험과 미학적 선언들이 줄을 이었다. 이들은 한국현대사에서 현대미술의 근거와 정당성을 미술 내적인 질문, 즉 순수한 조형실험이나 미학적 체험을 통하여 확인하고자 했다. 이전 세대의 무절제한 감정표출에 대한 발발로서 엄밀한 기하학적 화면구성을 선택한 “오리진” 계열의 작품들을 살펴보고, 7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단색조 미술의 대표작들을 통하여 이들이 추구했던 정신성과 순수성의 미학이 구체화되는 과정, 이우환과의 상호작용 등을 살펴본다. 마지막으로 1967년 ≪청년작가연립전≫ 이래로 본격화된 실험미술의 다양한 작품들을 살펴본다. 비록 이들의 실험적 시도가 70년대 중반 이후 모노크롬 회화의 절대적 권위에 밀려 잦아들기는 했으나, 그 다양성과 창조성은 80년대 이후 한국현대미술의 양상에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 현실 ‘반공’과 ‘근대화’를 앞세운 개발독재로 집약되는 1960-70년대는 경제의 양적 성장의 이면에 우리 현대사의 암흑기로 불릴 만큼 많은 모순을 배태한 시대이기도 하였다. 미술계에서도 이와 같은 사회적 현실에 대한 자각과 저항의식이 싹트기 시작했다. 1969년 오경환, 오윤, 임세택의 ≪현실동인전≫ 창립시도, 각종 해프닝이나 오브제, 판화작업 등의 사회적 관심, 극사실적인 기법으로 동시대의 사회상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사례 등을 통하여 당대의 작가들이 고민했던 사회적 인식과 실천의 양상을 살펴본다.

 

Ⅲ. 1980~1987 (5.18민주화운동~) “동시대적 상황, 그 인식과 실천의 과제” 1980년의 ‘5.18 민주화운동’은 결과적으로 한국의 사회진보운동이 1970년대의 지식인운동에서 민중운동으로 전환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으며, 한국현대미술 역시 70년대 이전의 문화 전위로서의 미술의 한계를 자각하고 소위 ‘민중미술’운동을 통하여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게 된다. 이는 1987년 ‘6월 항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화적 저항운동을 이어가게 되는 원동력이 되었다. 한편으로, “타라”, “난지도”, “메타복스”, “로고스와 파토스”, “뮤지엄” 등 젊은 미술가들의 소규모 그룹운동들이 활발히 전개되어 미술창작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였으며, 이들이 보여준 미학적 실험의 성과들은 90년대 이후 한국미술의 활발한 국제적 진출로 이어졌다. ● 전통 70년대부터 이어진 전통미술-특히 민화를 비롯한 민속미술에 대한 관심과 연구성과는 80년대 민중미술 진영에서 이를 민중적 형식으로 인식하면서 본격적으로 현대적 조형 방법론의 하나로 도입된다. 또한, 이 미술이 지닌 소박하고 단순하면서도 건강한 미의식은 동시대의 작가들 상당수에게 관객과의 소통불능에 빠진 현대미술이 딜레마를 해결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했다. 오윤을 필두로 하는 민중미술 계열의 목판화 작업이 체화하고 있는 독특한 표현양식의 뿌리 역시 이 전통과 닿아있으며, 박생광이 작고 직전에 제작한 대작 <전봉준>은 그 다양한 시도들 중의 백미라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 인간 5.18 광주민중항쟁의 경험은 6.25전쟁이 60년대 작가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당대의 젊은 작가들에게 인간 존재에 대한 회의와 질문의 계기가 되었다. 한편으로는 민중미술의 직접적인 저항의 형태로 드러났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보다 근원적인 인간의 문제에 집중하는 형태로 나타났다. 재현적인 인체묘사를 바탕으로 현대인들의 인간상을 구현하고자 하거나, 인간이 처해있는 상황의 상징적 재현을 통한 미묘한 심리표현을 추구하거나, 인체의 왜곡을 통한 내면분출, 그리고 상징적인 소재의 해석을 통해 신체성의 문제를 다루는 사례들을 살펴본다. ● 예술 70년대를 대표한 모노크롬 미술이나 80년대 민중미술의 문화적·사회적 거대담론과는 별도로 미학과 미술사적 차원에서 모더니즘의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대안을 찾고자 했던 움직임을 살펴본다. 개인적인 차원의 모색도 존재했었지만, 새로운 세대의 작가들 상당수가 소그룹의 형태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드러내고자 했다. 이들은 미니멀한 표현과 물성(物性)의 강조라는 전형적인 모노크롬 미술의 방법론에 강한 거부감을 표현했으며, 이미지의 회복을 통한 건강한 표현의 성취를 주장하였다. 또한, 오브제나 새로운 매체들을 적극 수용함으로써 표현영역을 확장하고 장르간의 한계를 해체하고 통합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 현실 1980년 등장한 ‘현실과 발언’, ‘광주자유미술인협회’ 등 사회현실에 대한 미술의 역할을 고민하던 자생적 움직임들은 5.16광주민주화운동을 계기로 본격적인 80년대 미술운동으로 진화하였다. 이후 ‘임술년 동인’, ‘두렁’, ‘시대정신’ 등의 여러 소그룹들이 등장하면서 소위 ‘민중미술’의 시대를 이끌어나갔으며 1985년 민족미술협의회의 결성으로 보다 구심점 있는 문화운동으로 발전시켜나갔다. 또한, 민중적 삶 속으로 파고드는 미술의 실천을 지향한 걸개그림, 벽화운동 등의 ‘현장미술’은 미술과 삶의 소통이라는 과제에 대하여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었다.

 

Ⅳ. 1988~ 현재 (서울올림픽~) 다양성의 시대, 대안적 정체성의 모색_1988년 서울 올림픽과 1995년 광주비엔날레의 성공은 한국현대미술에 대한 국제미술계의 관심을 고조시켰고 한국미술의 국제화를 가속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미술 내적으로도 서구미술 중심의 모더니즘적 사고에서 벗어나 지역적인 역사와 정체성, 개인적인 경험과 감수성에 주목하는 경향이 대폭 강화되었다. 과거의 집단적인 거대담론보다는 소그룹 혹은 개인의 창조적 실천이 중시되었고, 대안공간, 포럼, 클럽문화, 매니아 문화 등이 중요한 문화 키워드로 등장했다. 양식적인 측면에서도 ‘민중미술’의 리얼리즘 전통의 재해석, 모더니즘 미술의 비판적 계승을 통한 새로운 형상화와 복합매체의 도입, 현장성과 장소성의 강조를 통하여 관객과의 소통을 시도한 설치미술의 확대 등 다양한 방법들이 시도되었다. 이 시기에 경험한 문화적 에너지는 새로운 세대의 한국 작가들에게 ‘지금, 여기’가 바로 현대미술의 역사가 만들어지는 현장이라는 자각과 자신감을 심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 전통 1988년 서울 올림픽은 양적으로든 질적으로든 한국현대미술의 국제미술계 진출이 대폭 확대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와 비례하여 우리 고유의 문화적 전통에 대한 관심 역시 다양한 각도로 광범위하게 전개되었다.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구호에 답하듯, 한국 고유의 미술전통을 현대미술의 언어로 번역하려는 시도가 이어졌다. 산수화나 민화 등 전통미술의 본질을 새롭게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는가 하면, 한편으로는 역사와 시간을 은유하는 주제를 설치, 오브제 등의 형식과 접목하여 해석하려는 작가들이 국제적인 주목을 받기도 했다. 또한, 재료를 해석하는 감수성의 차원에서 접근하는 작가들도 존재했고, 필묵의 운용이나 화면의 구성 등에서 전통성과 현대성의 융화를 시도하려는 노력들이 줄을 이었다. ● 인간 사회·문화적 상황과 조건은 끊임없이 변화하더라도 인간의 본질적 조건은 결국 언제나 모든 질문의 출발점에 변함없이 서 있기 마련이다. 특히, 형이상학적 혹은 이성적 가식이 제거된 후 남은 ‘신체’로서의 인간은 5-60년대 앵포르멜 미술 이래 현재에 이르기까지 현대 미술가들의 지속적인 관심의 대상이었다. 인간의 존재론적 현상과 한계를 표현적인 감성으로 표현하거나, 동시대인들의 현상학적, 유형학적 모습에 관심을 기울이는 경향, 작가 자신의 신체를 드러내는 방식을 통해서 개인적인 동시에 사회적인 정체성의 질문을 던지는 유형 등을 확인할 수 있다. ● 예술 순수한 미술 자체의 논리와 근거에 대한 모더니즘적인 탐구는 80-90년대 이후로 접어들면서 보다 다층적인 차원으로 전개된다. 20세기 후반 구상성과 서술성이 본격적으로 부활한 상황에서, 그리고 미술 전반에 대한 거대담론보다 개인의 구체적인 체험이 중시되는 작은 담론의 시대에, 미술의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은 전혀 다른 양상을 띨 수밖에 없다. 소재와 기법의 변주를 통하여 전형적인 모더니즘적 추상미술의 또 다른 가능성을 탐구하는 작가들이 있는가 하면, 재현이라는 렌즈를 통해서 미술의 고유한 특성에 의문을 던지거나, 서술성을 보다 적극적으로 개념적 작업의 도구로 활용하거나, 키치적이거나 냉소적이고 개념적인 방식으로 현대미술의 권위에 도전하는 작가들을 전시를 통해 만날 수 있다. ● 현실 80년대 후반과 90년대를 거쳐 오면서, 상당수의 작가들은 전형적인 80년대 민중미술의 거대담론에서 한 걸음 물러서서 보다 실제적 삶과 그 주변의 이야기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미술의 사회적·정치적 발언에 무게중심을 실으면서 상대적으로 독자적인 미학적·양식적 틀을 정립하는데 한계를 보였던 앞선 세대와는 달리, 이들은 보다 유연하고 폭넓은 시각으로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의 유산을 활용하는 경향을 보인다.

 

맺는 말_반세기에 걸쳐 한국현대미술은 당대의 사회적, 문화적 상황과 직·간접적으로 교감하면서 변모를 거듭해 왔다. 미술현장에서 작가들은 때로는 개인적으로 때로는 예술이념 혹은 미술운동의 차원에서 결집과 해체를 거듭하며 역사를 구성해 나갔다. 그 복합적이고 다층적으로 전개된 한국현대미술의 면면들이 이번 전시를 통하여 종합적으로 제시될 것이다. 한국의 현대미술은 새로운 세기에도 여전히 아니 더욱 활발히 살아 숨쉬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지난 반세기의 경험과도 지속적인 대화를 나누고 있다. 그 진행형의 대상을 다루는 이번 전시는 결국 하나의 질문이며, 그 대답은 바로 이 순간에도 미술현장에서 또는 우리들 각자의 가슴 속에서 만들어져 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미술 100년≫(2부)이 던지는 질문이 그 각각의 다양한 대답을 구하는 하나의 계기가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 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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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6.06.11 22:34

    첫댓글 그냥 보고만 가두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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