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여름 방학이 되면, 내가 속해 있는 황금회는 명승지를 찾아 여기저기를 여행을 하곤 했다. 하지만 올해만큼은 한곳만 집중적으로 답사를 하기로 하고 그 장소를 영월로 잡았다.
회원들 중에는 영월을 처음 찾는 분도 계시고 동강이 좋다는 말에 한 번쯤 들려 본들도 계셨다. 이 모임도 세월이 흘러 50줄에 들어선 내가 회원들 중 막내가 되었을 정도로 노쇠한 모임이 되었지만 모두들 흥분에 들떠 8월 18일(목) RV(Recreational Vehicle)형 차량에 나누어 타고 대구를 출발한지 3시간 정도 지나 한반도 지형 마을에 도착했다.
떡갈나무와 소나무가 우거진 전망대에 오르니, 한반도 지형이 눈앞에 펼쳐지고 휘돌아 흘러가는 서강의 푸른 물결이 한눈에 들어왔다.
"우와, 동강 물 정말 깨끗하다. 여기에 비하면 대구 금호강은 똥물이 아니겠나?"
"교장 선생님, 이 강은 영월의 서쪽에 있다고 서강이라고 하고, 주천면 사람들은 주천강이라고 합니다"
"???…!!!"
"(우리나라 지형과) 많이 닮았데이. 김대중 정권 이후 서해안 개발에 주력했다더니 서해안이 엄청나구만"
넓게 발달한 서쪽 모래안(岸)을 보고 누군가 볼멘 소리로 한마디 던졌다.
다음에 찾아간 곳이 법흥사였다.
법흥사는 설악산 봉정암, 오대산 상원사, 태백시 정암사, 영축산 통도사와 함께 부처님 진신 사리를 모시고 있는 5대 적멸보궁 중의 하나로 영월의 자랑거리가 아닐 수 없다. 절을 둘러본 후 잠시 계곡으로 내려가 시원한 계곡 물에 발을 담그고 더위를 식힌 후 사찰을 빠져나왔다.
경내를 나와 얼마 달리지 않아 도로나 주변이 흠뻑 젖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살수차가 물을 뿌렸을 리도 없으려니 생각하면서 밖을 내다보니 길가 도랑에 붉은 흙탕물이 요동을 치며 내려가고 있는 게 아닌가? 우리가 법흥사 경내에 있을 때 밖에선 비가 엄청 나게 내린 모양이다. 우리 일행에게 하느님의 은총이 있었나? 아니지, 여긴 절이니까 부처님의 가피를 입은게 틀림없다.
절에서 참배를 한 후 잔돈이 없어 불전함을 그냥 지나친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어리석은 중생아, 욕(慾)은 모든 고(苦)의 원인일진데...
'송구스런 마음이야 이루 말할 순 없지만, 어쨌든 점심 공양은 해야지'
장릉 보리밥 집에 들러 식사를 한 후 장릉으로 들어갔다. 장릉 이곳저곳을 둘러보면서 역사의 애환과 권력의 무상에 대해 저마다 한마디씩 거들던 선생님들, 말씀이 엄흥도에 이르자,
"엄선생님, 조상이 자랑스럽겠습니다."
"아닙니다. 제 직계 조상이 아닌데요."
"하여튼 간에 엄씨들이 영월을 먹여 살리는 구만."
동강다리를 건너 펜션이 있는 삼옥으로 들어서자 갑자기 날이 어두워지면서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었다. 장대비가 자동차 지붕을 거세게 두드려대는 소리에 앞으로 나아갈 염두를 못 내고 결국 길 한 쪽 가에 차를 세웠다. 때는 초저녁이건만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거대한 산이 시커먼 입을 쩍 벌리고 우리를 맞았다. 지옥에나 있다는 철위산 기슭인양 희끄무레한 연무가 사람의 마음을 오그라지게 만들었다. 길 오른 쪽 산이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것만 같다. 두려움에 젖어 모두들 말을 잃었다. 20분 정도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자들던 비가 뜸해지자 누군가 소리쳤다.
"이게 강원도 비인가베. 경상도에선 아무리 비가 많이 와도 이 정돈 아닌데."
"아마 저승이 이럴 지도 몰라"
펜션에 도착해 짐을 풀고, 시내 고기집에서 저녁 겸 술 한잔을 하고 싶었으나 비에 놀란 노인네들이 꼼짝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할 수 없이 차를 몰고 나와 중앙시장에서 술과 안주거리를 장만해 늦도록 술잔을 기울였다.
다음 날 아침, 식사를 한 후 예약해둔 래프팅 회사를 이용해 동강 어라연을 구경하기로 했다. 그러나 원통하게도 약속 시간 30분전까지도 비가 그치지를 않았다. 그러자 어제 오후 비에 놀란 선생님들이 동요되기 시작했다.
"보소, 엄선생, 비가 이렇게 오는데 래프팅을 할 수 있겠나?"
"교감 선생님, 래프팅을 하게 되면 비가와도 젖고 안 와도 젖습니다. 비하곤 관계없답니다."
"아닐세, 놀러 왔다가 감기나 들리면 어떡하겠나? 다음으로 미루세"
어쩔 수 없이 예약을 취소하고 짐을 꾸려 숙소를 나서자 금방 비가 뚝 그쳤다.
'하늘이 야속했다. 비가 오려면 계속 오든지, 취소하고 돌아서자 그칠게 뭐꼬? 그러고 보니 어제 불전함에 돈 안 넣기를 아주 잘 했네.'
삼옥에서 나오는 길에 봉래산 천문대를 보러 올라갔다. 올라가는 도중 내내 비가 추적거린다. 썩 내키지 않는 마음이 회원들 얼굴에 스쳐지나 갔다. 대구 근처 영천 보현산 천문대도 별로 볼 게 없는데 여긴들 별 수 있겠냐는 심정일 게다. 정상에 올라 주차장에 차를 주차시키고 주변을 돌아보니 온통 구름과 안개에 가려 여기가 해발 700미터 산 정상인지 평지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지친 다리를 이끌며 천문대 계단을 올라 영월을 내려다보는 순간 갑자기 다른 세상이 눈 아래 펼쳐진다. 그 장대한 절경에 저마다 탄성이 터져 나온다. 이 놀람의 외마디 소리에 뒤쳐져 따라오던 나머지 선생님들 갑자기 잰걸음으로 뛰어 올라오더니 숫제 비명을 지른다.
우와,
원 세상에...
햐∼∼,
내 남은 인생 언제 이런 걸 또 보겠나?
허허허, 말이 안나오네.
어허...
멀리로는 청령포 뒤쪽 산봉우리들이 삐죽삐죽 구름 사이로 솟아올라 동양화의 배경을 깔았다. 왼쪽 계족산 기슭엔 검은 먹장구름이 쏟아대는, 장대비의 강렬한 빗줄기가 선명하게 보였다. 오른 쪽 삼각산엔 한줄기 햇살이 눈부시고 발아래 영월 상공엔 금방 타낸 솜이 바람에 이리 저리 한가롭게 노닐고 있었다. 더할 나위 없이 선명하게 푸른빛을 띄며 동강과 서강이 도도하게 흘려 내렸다. 영월 읍내가 마치 초등학생들이 고만고만한손으로 정성 들여 만든 만들기 작품처럼 앙증맞다. 도대체 어느 쪽으로 눈을 고정시켜야 할지 몰랐다. 유홍준이는 영주 부석사에서 바라다보는 소백산 연봉(連峰)에 넋이 빠졌다고 한다. 그 양반이 이 장면을 본다면 뭐라고 했을까? 아마도 책 개정판을 냈으리라.
예정대로 래프팅을 했더라면 이 순간을 놓쳤을 거야. 이런 장면을 다시 보란 보장이 없다. 아! 돈이 아까워 어제 불전함을 그냥 지나친 경솔한 행동이 다시금 후회되었다. 무릉도원 선경을 보여주고자 하는 배려해준 절대자에게 거듭 감사했다.
한편으론 이 한 폭의 동양화를 제대로 묘사하지 못하는 내 자신이 안타까웠다.
갑자기 신이 났다.
"저게 서강이고 이게 동강입니다. 두 강이 만나는 지점을 영월 사람들은 합수거리라 부릅니다. 다시 말하면 남한강의 시작점이지요. 이 강이 흘러 경기도 양수리에서 북한강과 만나 한강이 됩니다."
"이 곳이 우리나라에서 제일가는 패러글라이당 장소입니다. 누구든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즉시 비행을 할 수 있으며, 저 아래 동강 둔치에 랜딩하게 됩니다. 한 마리 새가 될 수 있지요."
아쉬움을 남기고 봉래산을 내려올 땐 우리 학교 뒤편 속골로 난 길을 이용했다. 청령포를 관광하고 점심 식사를 한 후 김삿갓 계곡을 향했다. 김삿갓 묘역의 아름드리 소나무와 잣나무가 다른 나무와 어우러져 짙푸른 빛을 발했다. 날씨가 추워지고 난 뒤에야 송백의 진가가 드러난다고, 몇 달 뒤면 소나무와 잣나무만이 변함 없이 삿갓을 칭송하고 있겠지.
김삿갓 계곡을 마지막으로 단양을 거쳐 저녁 6시에 대구에 도착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도 봉래산에서 바라본 아름다운 경치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횟집에서 간단히 저녁 식사를 한 후 회원들과 헤어졌다.
"엄선생님, 정말 고맙습니다. 평생 잊지 못할 여행이었습니다. 특히 봉래산 정상에서 일은..."
"고맙습니다. 영월에서 돈을 팍팍 써주셔서... 다른 분들에게도 많은 광고 부탁드립니다."
난 아직도 봉래산 정상에 있는 것 같다.
첫댓글 ◐영월에, 좋은곳은 다 둘러 보았네, ㅎㅎㅎ! 이제 오는가을을 준비 하세나!
엄선생! 영월자랑 다하셨네 ㅋㅋㅋ 다음엔 더 많은 사람들하고 한번들리게나 ,,
◐재완선생! 쏘가리 회 1kg에 보통 10만원선, 매운탕만은 5만원선으로, 회먹으면 매운탕은 그냥 따라오고, 지역따라 주인 맘에따라 가격은 등락 할수있음,^&^*
쏘가리 비싸서 어디 먹어보겠나. 부럽다. 덕재는, 언재나 마음만 먹으면 쏘가리를 잡아서 먹을 수 있을 테니 말이야.
◐재완아! 추석때 올라와! 쏘가리 맛을 한번 보여줄께, 알았지 전화해! ^&^*
재완아!! 고향에 많이 심취해 있구나? 우리가 나이 먹어서 다좋은 일아니냐 나도 동창회 이후로는 자주 거의 주말마다간다. 영월서 언제 한번 만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