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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캄보디아동포간담회 참석중인 이명박 대통령 |
이명박 대통령은 세계 경제위기 속에도 우리나라와 아세안 지역과의 교역량이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등 협력관계가 강화되고 있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이 대통령은 “인구 5천만 명이 넘고, 소득 2만 달러가 넘는 국가에 우리나라가 세계 7번째로 가입하게 됐다. 대한민국이 세계의 중심국가가 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캄보디아는 교민수가 수 백 여명에 지나지 않던 오래 전부터 비즈니스 차 자주 들린 나라이며, 훈센총리의 경제고문을 맡았던 개인적 인연도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이날 동포간담회에는 박광복 한인회장, 김한수 대사, 강남식 한국경제인협의회 회장, 양성모 한인회장 당선자, 서병도 한인교회 목사 등 교민사회 주요인사 40여 명이 참석했다. 청와대에서는 김대기 정책실장, 최금락 홍보수석비서관 등이 배석했다. 또한 전 캄보디아 장호진 대사도 청와대 외교비서관 자격으로 참석했다.
이 대통령은 일본보다 무상원조의 규모가 상대적으로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남미 페루에서 현지국민들로부터 더 열렬한 환대를 받은 사실을 회상하며, “캄보디아 국민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어 우리의 국격이 높아질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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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놈펜공항에 도착한 대통령전용기에서 이대통령을 기다리는 관계자들 |
앞서 박광복 한인회장은 환영사를 통해 “역대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독도방문을 통해 우리의 영토임을 만방에 알린 사실에 750만 재외동포 중에 한사람으로서 가슴 벅차다”며 그동안 현 정부가 이룬 경제적 성과에 대해서도 고마움을 표했다.
한편 질의응답 시간에서 황순정 한글학교후원회장은 한글학교에 대한 열악한 재정지원을, 윤기섭 한인회 부회장은 발전소 건립을, 김성철 NPIC 총장은 현지국민들을 위한 도서관건립을 이 대통령에게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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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4월.
이명박 전 대통령이 캄보디아 훈센 총리의 경제고문이 됐다고 훈센 총리가 19일 밝혔다. 훈센 총리는 이날 전국녹색성장위원회 출범식 도중 "이제 한국의 이명박 전 대통령이 다시 나의 고문이 됐다"면서 "그는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 나의 고문이었다"고 덧붙였다. 이 전 대통령은 2000년부터 2007년 대통령으로 당선되기 전까지 훈센 총리의 경제고문을 지냈다. 훈센 총리는 2007년 12월 이 전 대통령이 경제에 관해 자신에게 많은 조언을 했으며 외국인 투자자들을 캄보디아로 유치하는데 도움을 줬다고 밝힌 바 있다. (프놈펜 신화=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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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월.
캄보디아 군대의 노동자 유혈진압에 한국 정부의 압력 의혹
South Korea pulled strings as Cambodia’s military cracked down on protesters
[글로벌포스트(GlobalPost) 단독보도] 서구 브랜드들을 위해 바느질하는 노동자들이 생계가 가능한 임금을 요구하자, 한국은 캄보디아 군대에 자국 기업의 이익을 보호해달라고 재촉했다. |
(글로벌포스트 편집자의 설명)
대한민국 외교부가 2014년 1월 9일자로 본 <글로벌포스트>에 보내온 본 기사에 대한 해명문서가 기사 말미에 달려 있으니 를 함께 보시기 바랍니다. <글로벌포스트>는 한국 정부의 해명 문서를 전재합니다. (역주) 역자는 한국 정부의 해명 문서를 별도의 게시물로 번역했다. |
기사작성: 저프리 캐인 (Geoffrey Cain)
(서울 / 프놈펜) — 음모론자들은 종종 부유한 국가들이 개발도상국들에서 "꼭두각시 놀음을 조종"(puppeteering)한다고 비난하곤 한다. 즉, 자국의 부유하고 --- 때로는 가학적인 --- 기업들을 보호하기 위해, 해당국 정부들을 소리 없이 조종하여 폭력배들을 동원토록 만든다는 것이다.
그러한 주장에는 진실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러한 배후조종이 현장에서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 드러난 경우는 드문 편이다.
본지(=글로벌포스트)가 밝혀낸 바에 따르면, 캄보디아에서 최근에 발생했던 의류 노동자들의 임금 관련 분규에서 그에 해당하는 사례 하나가 발견됐다.
동남아시아의 빈곤국인 캄보디아는 최근 수개월 동안 의류 노동자들이 참가한 일련의 파업사태에 빠져있었다. 이들 봉제 노동자들은 서구의 유명 브랜드들을 위해 옷을 만드는 이들이다. 노동자들은 현재 받고 있는 월 최저임금 80달러로는 생계를 이어갈 수 없다면서, 월 최저임금을 2배(160달러)로 올려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캄보디아 정부는 지난주 폭력적인 진압으로 대응했다. 캄보디아의 정예 부대들이 가두에서 중국제 무기들과 진압봉, 그리고 쇠파이프를 휘두르면서 시위대의 뒤를 쫒았다. 이 사건으로 5명이 사망하고 20여명이 부상했다.
캄보디아에서 생산된 의류는 미국, 유럽, 일본으로 수출되지만, 한국 기업들이 노동자와 서구 브랜드들 사이에서 중간자 역할을 담당하면서 많은 경제적 이익을 얻고 있다. 한국인들이 소유한 공장들은 저임금 노동자 군단을 고용하고, 유행에 민감한 시장들에서 판매될 의류를 대량으로 생산하고 있다. 2012년, 한국은 캄보디아에 2억8,700만 달러를 투자하여, 이웃의 거대국가인 중국을 제치고 대-캄보디아 투자액 1위국 자리를 차지했다.
캄보디아의 지난주 강제진압에 있어서, 이제 한국이 배후 역할자로 떠오르고 있다. '주캄보디아 한국대사관'은 자신들이 한국 기업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최근 몇주 동안 '뒷구멍 캠페인'(backdoor campaign)을 벌였음을 인정하고 있다. 이러한 캠페인에는 경비 조치를 잔혹하고 전투로 단련된 캄보디아 군 병력에 의지하는 일도 포함됐다.
한국 정부와 캄보디아 정부가 유지하고 있는 형제애는 단순한 돈 문제를 넘어서는 수준이다. 한국의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재임 중에도 캄보디아 훈센(Hun Sen) 총리의 경제 자문위원을 동시에 맡고 있었다. 또한 작년(2013) 7월28일 실시된 캄보디아 총선이 끝난 후, 집권 '캄보디아 인민당'(CPP)의 승리를 민주국가등 중 가장 먼저 축하한 국가도 한국이었다. 하지만 이 선거에 관해 인권단체들은 수많은 불법이 자행됐다고 말하고 있고, 그 여파로 지난주까지 노동계의 파업시위와 야당의 정치적 항의시위가 이어지기도 했다.
달리 말하면 "국가적" 이해관계가 걸려 있다는 것이다. 외관상 그러한 이해관계가 한국 기업들의 보호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특히 시위대가 공장들에 대해 시끌벅적한 공격을 하면서 시위를 고조시킬 때는 더욱 그러하다.
지난 목요일(1.2) 한국과 미국의 합작회사인 '약진통상'(Yakjin)이 운영하는 공장 앞에서 시위가 벌어지자, 캄보디아의 최정예 부대인 911 공수여단(Airborne 911 Brigade)이 진압봉과 쇠파이프를 들고 나타나서 십여명의 스님들과 시위참가자들을 구타했다. 이 공장은 '갭'(Gap), '올드 네이비'(Old Navy), '아메리칸 이글'(American Eagle), '월마트'(Walmart) 등에 의류를 생산해 납품하는 업체이다.
금요일(1.3) 강제진압은 더욱 암울한 결과를 초래했다. 프놈펜(Phnom Penh)의 또 다른 지역인 '카나디아 산업단지'(Canadia Industrial Park)에서, 일부 훈센 총리의 경호부대를 포함한 전쟁터용 군 병력 수백명이 총기를 발포하여 시위대 5명이 사망한 것이다.
끔찍한가? 하지만 모두가 그렇게 느끼진 않는다.
'주 캄보디아 한국대사관'이 월요일(1.6)에 발표한 길고도 장황한 안내문을 보면, '주캄 한국대사관'은 캄보디아 정부를 설득하여 "금번 상황을 심각히 고려하고, 신속히 대처하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 자신들의 공이라고 자평했다. 이 안내문은 지난 두 주일 동안 고위급 차원에서 이뤄진 협의(로비) 상황을 설명하면서, 자신들이 기업이익 수호 "성공"에 이바지했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주캄 한국대사관'은 금요일 유혈진압이 이뤄진 '카나디아 산업단지' 내에 위치한 한국 공장들이 자신들의 외교적 노력의 결과로 특별한 편애를 받고 있다는 점도 자랑했다. 이 안내문은 캄보디아 군 병력이 특별 보호조치를 취하고 있는 공장 건물들은 한국 공장들이 유일하다고 주장했다.
한국대사관 관계자들은 노동자들의 파업에 대한 해법 모색을 위해, 노동자 파업 문제를 확실한 현안으로 다루지 않고 있던 고위 인사들을 만나 한국의 입장을 압박했다고 밝혔다. 여기에는 훈센 총리에게 일일보고를 하는 '국가 대테러위원회'(Counter-Terrorism Unit) 책임자 및 여타 고위급 군 장교들이 포함된다.
주캄 한국대사관 공식 '페이스북' 계정에 공개되어 널리 유포된 이 안내문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실질적인 조치로는 군 및 경찰당국과 우리 업체보호를 위해 긴밀히 협조해 오고 있는 바, 특히 수경사령부에 우리업체와 동반 방문하여 실상을 전달하였으며 그 결과에 따라 방화나 약탈에 대비하여 군이 카나디아 공단내 기업중 우리 업체에 대해서만 직접 보호조치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캡쳐화면 참조. 이 게시물은 현재 '주캄 한국대사관'의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삭제된 상태이다.) |
하지만 이번 사건과 관련하여 한국대사관의 설명에 모두가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약진통상' 측은 목요일(1.2) 시위대가 폭력을 행사한 상황 때문에 군인들이 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약진통상'은 이번 사태가 계획되지 않은 우발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이 회사의 관리직원인 꽁 소꾼티어(Kong Sokunthea) 씨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람들이 모였는데, 노조 사람들 뿐만이 아니었다. 그들은 말 그대로 공장 안으로 밀고 들어오려 했다. 공장 뒤에 군 부대 하나가 있다. 그래서 [우리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한명이 그 부대 군인 한명을 알아서, 우리가 군대가 출동해주길 요청했다."
"군인들은 공장 정문 앞으로 왔고, 노동자들에게 돌아가라고 설득했다. 하지만 그들은 거부했다. 그래서 군인들이 몇 사람을 붙잡았다. 또한 군 부대가 파업을 그런 격렬한 방식으로 제압할 수 있었던 것은 캄보디아 정부의 명령이 근거였다." |
그녀는 '약진통상'이 한국 정부와 공모를 했다는 것을 부인하면서, 캄보디아 군부와 접촉한 어떤 한국인도 모른다고 말했다.
<글로벌포스트>는 한국 정부의 연루 가능성에 관한 질문을 하기 위해 서울에 있는 '약진통상'의 본사에 전화를 걸었지만, 해당 직원은 전화를 끊어버렸다.
<글로벌포스트>가 인터뷰한 [캄보디아] 정부 관계자들이나 산업계 인사들 역시 한국 정부와 캄보디아 관리들 사이에 논의가 있었다는 것을 확인해주지 않았다. '왕립 헌병' 대변인 켕 띠또(Kheng Tito) 준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고위급에서 이뤄졌다는 어떤 만남에 관해서도 모른다. 하지만 그곳은 '특별경제구역'이기 때문에, 업체들로부터 요청이나 제안은 있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우리가 안전을 유지하고 그들의 이익과 자산을 보호해주길 요청할 수 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
봉제업체들의 연합체인 '캄보디아 의류생산자 연합회'(GMAC)의 껜 루(Ken Loo) 사무총장은 회견에서, 설령 한국-캄보디아 사이의 관여가 있었다고 할지라도 "민간부문이 군대로 하여금 조치에 나서도록 할 권한이 있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GMAC는 화요일(1.7) 발언에서, 사망한 노동자 5명을 '부수적 피해'(collateral damage)라고 편현했다는 것을 부인했다. <캄보디아 데일리>(Cambodia Daily)의 보도에 따르면, GMAC는 지난 몇주 동안의 노동자 소요로 인해 2억 달러의 피해를 입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한편, <글로벌포스트>는 1월2일 캄보디아 군인들이 시위를 진압하는 장면이 담긴 동영상 속에서, 군복 외쪽 팔에 한국의 국기인 '태극기'를 부착한 개인 1명을 포착했다. 이 개인은 아직 신원이 확인되지 않고 있는데, 당일 '페이스북'에 올라온 동영상 속에서 목격됐다(첨부된 동영상 참조). 이 인물의 신원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캄보디아 정부 관계자들은 이 인물이 캄보디아 군대나 한국 군대와 관련됐을 가능성을 부인했다. 해당 인물은 군복을 착용한 것으로 보였지만, 왕립헌병 대변인 켕 띠또 준장은 <글로벌포스트>와의 회견에서 "그 기업의 경비원일 수도 있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캄보디아 군 부대들은 한국 국기를 부착하지 않는다. 당신이 본 것은 민간인일 수도 있으며, 한국 군 부대원은 아니다." |
하지만 이 말을 확신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캄보디아 연구 한국인 학자에 따르면, 지난 10여년 동안 한국 군에서 전역한 소수의 요원들이 캄보디아 군의 군사 고문들로 활동한 바 있다고 말했다.
또한 지난주 발생한 총격 유혈진압을 포함하여 인권유린 사례들이 보고된 훈센 총리의 '총리 경호부대'(PMBU)와 '70여단'(Brigade 70)에 대해, 한국 정부는 공개적인 후원국가이기도 하다. 가령, 2011년 총리 경호부대가 2800만 달러 상당의 기갑장비를 도입할 때도 한국 정부는 지원을 했다.
하지만 인권단체들은 경호부대의 수많은 인권유린 행위들을 비난해왔다. 여기에는 '1997년의 야당 집회 수류탄 투척 테러사건'도 포함된다. 당시 이 사건으로 미국인 구호활동가 한명이 부상하여,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수사에 착수하기도 했다.
(이 기사를 위해 프놈펜에서 Say Mony가 도와줬고, 서울에서는 Park Jeong-min이 도와줬다.)
(동영상) 1월2일(목) 한국기업인 '약진통상' 공장을 지키기 위해 출동한 캄보디아 최정예 911공수여단의 황동모습. 58초 부분에 외쪽 팔에 태극기를 부착한 군인 1명이 잠시 등장한다. 이 동영상으로 인해, 현재 여러 국제언론들이 캄보디아 군대와 한국과의 관련성에 주목하고 있다. |
(바로가기) "캄보디아 시위진압 보도한 글로벌포스트에 대한 한국 외교부의 반박문"(2014-1-9)
* 관련기사 :
- "주 캄보디아 한국대사관, "주재국 군대에 보호요청" - 논란"(오마이뉴스 2014-1-8) - "[갈무리] 주캄 한국대사관 페이스북 글에 달린 노동자 유혈진압 관련 댓글들"(2014-1-8) - "[분석] 주캄 한국대사관의 치안 안전정보 내용과 캄보디아 유혈사태"(크세 2014-1-6) - "[분석] 사람 죽어가는 캄보디아 사태, 돈만 밝히는 한국의 ‘국격’"(미디어오늘 2014-1-6) - "[사설] 캄보디아 노동자 상대 손배소 시도 중단해야"(경향신문 2014-1-6) - "캄보디아 진출 한국업체, 노조 및 야당을 상대로 시위 피해 손배소 추진"(경향신문 2014-1-5) - "한국 공장 입주 캄보디아 공단 시위 '유혈진압'"(경향신문 2014-1-3) - "[속보 홈] 캄보디아 노동자 구타에 참가한 "태극기" 장착 군복 911 공수여단"(2014-1-2 목) - "캄보디아 현 정국 관련 한국대사관의 주재국 활동 설명"(2013-12-30) - "박근혜 대통령, 훈센 총리에 선거승리 축전 - 민주국가 정상들 중 최초"(캄보디아 데일리 2013-9-19) - "[문서] 이명박 전 대통령이 훈센 총리에게 보낸 선거승리 축전"(날짜 2013-7-30) - "[르뽀] 캄보디아 봉제공장 노동자들이 끼니를 때우는 방법"(프놈펜포스트 2013-4-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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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식당을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한국에서 몰려든 사업가들 |
번역/金泌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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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 있는 평양 식당은 기존의 식당과는 전혀 다른 목적으로 사용된다. 우선 이 식당은 북한 정권 소유로 이곳에서 벌어들인 자금은 모두 평양으로 유입되고 있다. 대부분의 프놈펜 고급 식당들처럼 이 식당도 모든 음식값이 릴(riel)화가 아닌 달러로 지불된다. 이유는 캄보디아 화폐의 경우 외부로 나가면 환전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국제사회는 2006년 10월 북한의 핵 실험에 따른 대북경제제재를 단행했다. 그러나 북한이 외국 현지에서 운영하는 작은 규모의 회사 등을 통해 벌어들이는 외화는 모두 김정일의 손아귀로 들어갔다. 캄보디아의 평양 식당도 이처럼 김정일 정권 살리기에 한몫을 했다. 김정일 정권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는 이 같은 북한 식당은 곳곳에서 붐(boom)을 일으키고 있다. 최근에는 베이징과 상하이를 포함한 중국의 여러 대도시에서 북한 사람들이 운영하는 식당들이 생겨나고 있다. 그러나 북한 식당이 가장 먼저 세워진 곳은 2002년 씨엠립(Siem Reap)이 처음이다. ‘앙코르와트’ 유적을 가장 가까이에 두고 있는 이곳은 현재 외국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드나드는 유적도시다. 이곳에 세워진 북한 식당은 큰 성공을 거두었다. 특히 매년 앙코르와트를 보기위해 이곳을 찾는 수천 명의 한국 관광객들이 이곳을 많이 찾았다. 이처럼 장사가 잘 되자 북한은 2003년 프놈펜에 두 번째 북한 식당을 열었다. 구체적으로 북한 식당을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한국에서 몰려든 사업가들, 혹은 오랜 여행을 하면서 외국 음식에 싫증이 나서 한국 음식을 찾는 한국 관광객들이다. 북한은 식량부족에 시달려도 프놈펜의 북한 식당들은 이와는 상관없이 외화 벌이가 짭짤하다. 물론 북한의 자본주의적 실험과 이들을 받아들인 캄보디아의 선택은 우연한 발생한 것이 아니다. 왕자에서 국왕으로 그리고 망명 후 다시금 1993년 9월 권좌에 복귀한 캄보디아의 최고 실력자 노로돔 시아누크 국왕은 그동안 북한과 매우 우호적인 관계를 맺어왔다. 1961년 벨기에서 개최된 비동맹회의에서 시아누크는 김일성을 처음 만났다. 이후 4년 뒤 김일성은 시아누크를 평양으로 초대했다. 이 같은 만남을 통해 두 사람은 각별한 관계를 유지했다. 1970년 시아누크가 군사 쿠데타로 권좌에서 추방되자 김일성은 북한에 망명지를 즉각 제공하기도 했다. 시아누크의 망명정부는 북경에 있었지만 김일성은 1974년까지 평양 북쪽에서 1시간가량 떨어진 곳에 시아누크를 위한 안가를 세울 것을 지시했다. 1개 대대 병력의 북한군들이 이 작업에 투입되어 거의 1년 동안 풀타임으로 일해 궁전 같은 건축물이 세워졌다. 이윽고 특별 경호원들이 건물 주위에 배치됐다. 한국 전통 건축 양식을 따른 시아누크의 안가에는 영화관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위대한 지도자’ 김일성과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처럼 시아누크도 영화광이었기 때문이다. 시아누크는 1975년 4월 론 놀 정권의 전복과 함께 캄보디아로 돌아왔으며, 이후 그의 공산 동맹인 크메르루주가 정권을 잡았다. 그러나 크메르루주는 시아누크를 1979년 1월 베트남이 침공할 때 까지 프놈펜의 왕궁에 가두었다. 이후 시아누크는 비행기를 타고 중국으로 망명해 북한의 안가로 들어갔다. 시아누크는 1991년 캄보디아로 다시 돌아오면서 북한 경호원들의 호위를 받았다. 당시 시아누크와 함께 캄보디아에 들어간 북한 경호원들과 외교관들은 프놈펜의 독립 기념탑 근교에 새로이 거대한 북한 대사관을 신축해 입주했다. 그리고 1991년 시아누크는 캄보디아의 국왕으로 다시금 권좌에 앉자마자 이들 북한 경호원들을 자신의 심복으로 삼았다. 그래서 프놈펜의 평양 식당에는 시아누크와 그의 아내 모니크 그리고 아들 노르돔 시아모니 현 캄보디아 국왕의 사진이 걸려 있을 정도다. 캄보디아에서는 아직까지 외국인들이 사업을 하기에는 아직까지 많은 제한이 있다. 그래서 북한은 지난해 캄보디아와 인접한 태국에 거대한 평양 식당을 개점했다. 이 식당의 개점일은 8월 15일로 이날은 일본이 2차 대전에서 패망한 후 항복한 날이다. 방콕 소재의 평양 식당은 북한 대사관이 위치한 파타나깐(Pattanakarn) 근교에 위치해있다. 식당의 내부에는 김일성의 출생지로 알려진 만경대 그림이 걸려 있으며, 김일성 배제를 단 전통 의상을 입은 북한 여성 밴드가 기타와 드럼 그리고 전자 오르간을 연주한다. 이들 식당의 용도는 관광객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것이 아니다. 북한 외교관들과 상인들은 이 레스토랑의 화려한 배경 뒤에서 정보를 공유하면서 중국과 남한에 이어 태국을 제3의 무역 파트너로 삼기 위한 공작을 하고 있다. 번영과 즐거움으로 가득 찬 동남아의 평양 식당을 보면 국제 사회의 대북 경제 제제가 제대로 실시되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번역/정리 김필재 기자 spooner1@hanmail.net |
첫댓글 저도 금양호 사건이 정말 이해가 안 되더라고요, 그리고 천안함 선수라면서 보도된 저 사진도 아무리 뜯어 맞추어도 안 맞던 것 하며...
이명박이 미국이 동의해주면 추후에도 이 사건을 재조사하기 힘들다는점을 노리고 대놓고 대국민 사기를 친거지요.
그런 것이 한 두건 이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