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카페 진짜 짜증나네요. 두시간동안 정성들여 쓴 글을 업로드했더니 갑자기 중간에서 짤려서 복구도 안되고...
2002 월드컵 개최
경쟁국이었던 일본에 비해서 유치경쟁에 늦게 뛰어든 후발주자의 불리함에도 불구하고
범국민적인 성원과 정몽준 회장의 분주한 국제활동에 힘입어
결국 공동개최 제안까지 이끌어 냅니다.
2002 월드컵은 한국축구의 발전에 크나큰 전환점이 되었음은 굳이 말 안 해도 아시겠죠.
상암월드컵경기장 건설
많은 분들이 아시다시피
서울시에서는 월드컵 주경기장을 축구전용구장으로 건설하기를 상당히 꺼려했습니다.
잠실올림픽경기장을 다시 활용하자느니, 야구겸용 가능한 돔구장을 짓자느니
별의별 이야기가 다 나왔죠.
이렇게 이리 빼고 저리 빼는 서울시를 설득하여 상암월드컵경기장 건립 약속을 이끌어내는 과정에서
최전방에 있었던 인물이 바로 조중연입니다.
파주 NFC건설
"제 작품이 아니라 옛날부터 축구인들 모두가 우리도 그런 거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고 다들 그랬죠.
역대 대표팀
감독들이 취임하고 나면 하나같이 하는 소리가 전용 훈련장 좀 있으면 좋겠다였으니까요.
훈련 계획을 잡고 싶어도 운동장을 마음대로 쓸
수 없으니까 계획이 안나오는 거예요.
오죽했으면 크라머 감독 같은 경우 대표팀 소집만 하면 외국에 나가야 한다고 협회에
건의했다고 하더군요."
(조중연 당시 축구협회 전무 인터뷰)
한국축구계의 오랜 숙원인 대표팀 전용훈련장 건설 역시 조중연이 제안하고 구상하고 추진한 겁니다.
파주NFC가 개관하면서, 대표팀이 소집하면 여관방, 호텔방에 투숙하고,
훈련할 경기장 예약하느라 대표팀 주무가 신발에 불이 나도록 뛰어다니던 안습의 역사를 청산하게 됩니다.
(무슨 쌍팔년도 얘기냐고 모르시는 분들은 코웃음치시겠지만, 불과 10년 전만 해도 이게 현실이었습니다.)
축구센터 건립
위에서부터 목포(호남권), 창원(영남권), 천안(충청권) 축구센터입니다.
모두 2002년 월드컵 잉여금을 들여 지은 곳입니다.
(모르시는 분들은 축구협회가 월드컵 하고 남은 돈으로 자기들끼리 회식하고 여자끼고 놀고 띵까먹었다고
아주 '진지하게' 그렇게 믿고 계신 분들도 있더군요.)
월드컵 이후 전국 각지에는 소규모 잔디구장 건설 붐이 일어났죠.
정확한 수치는 나온 바가 없지만, 월드컵 이후 한국에 새로 생긴 잔디구장만 몇백 곳에 달할 겁니다.
지금 현재 조기축구회도 잔디구장 위에서 경기하는 후덜덜한 인프라가 구축된 게 얼마 안 됩니다.
물론 그게 다 축구협회가 주도한 건 아니지만,
잔디구장 건설 붐을 조성했다는 정도의 공은 인정하는 게 마땅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 예가 바로 이 축구센터 건립입니다.
여담으로 축구협회는 축구센터를 지을 지자체를 선정하면서
축구센터를 유치한 지자체는 반드시 실업축구팀을 창단하도록 의무화합니다.
지금 내셔널리그의 목포시청, 창원시청, 천안시청이 바로 이렇게 축구센터 건설의 댓가로 창단된 팀들입니다.
체육특기자 4강제도 폐지 및 전국 권역별 주말리그 실시
소위 말하는 "4강제도"란 대학에서 체육특기자를 선발할 때
전국대회 4강 이상의 성적을 갖고 있는 학생에게 가산점을 주도록 한 제도로서,
학원축구의 오랜 병폐로 지목되어 왔습니다.
이 4강제도 때문에 학원축구 지도자들이나 선수들, 학부모들은
전국대회에서의 성적에만 목매는 성적지상주의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었습니다.
교육부에서는 이 4강제도에 대해 우선 2001년 가산점 부여 기준을 4강에서 8강으로 한층 완화시켰고
이어 2004년 전면 폐지를 결정합니다.
이 4강제도의 폐지 과정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폐지를 요구한 종목이 바로 축구입니다.
그 주체가 축구협회라는 건 두말해봤자 키보드 자판만 닳겠죠.
(많은 분들이 축구계에서 4강제도의 폐지를 계속해서 요구했는데 축구협회는 미적대기만 했다고 알고 계신데
일이란 게 그렇게 쉽게 돌아가는 게 아닙니다.
4강제도는 축구협회만의 일이 아니라 타 부처끼리인 문화관광부와 교육부가 협의를 거쳐야 되는 사안이었고
더군다나 축구뿐만 아니라 전종목 모든 학원체육인들의 이해관계가 달린 중대한 사안이었습니다.
축구협회가 그래 없애자 해서 없어지는 게 아니었단 거죠.)
그리고 4강제도 폐지를 일구어낸 데 이어 축구협회는 전국 권역별 주말리그를 실시하여 성공적으로 정착시킵니다.
1년 내내 전국대회가 있어서 전국 각지에 불려다니느라 학교 수업을 들을 틈조차 없던 기존 시스템을 타파하고
전국대회는 방학에 집중하여 개최함으로서 학업에 지장이 없도록 하고
학기중에는 주중에는 훈련과 학업을 병행하고, 주말에는 리그 경기를 뛴다는 것이 전국 권역별 주말리그의 기본 골자입니다.
이젠 귀에 익고 익은 단어인 공부하는 축구선수의 양성을 실현하기 위해
축구협회가 오래 전부터 구상하여 꾸준히 준비하고 개최한 정책입니다.
추진 단계에서는 단기적인 실리에만 집착한 학원축구 지도자들이나 학부모들의 반대가 심해서
정책설명회가 파행으로 치닫기도 했지만 축구협회에서 뚝심있게 밀어붙여서 지금은 성공적으로 정착시켰습니다.
권역별 주말리그의 실시로 인해 기존의 전국대회 위주 시스템에서의 한게임 한게임에 죽고살던 실태에서 벗어나
각 경기의 중요성이 비교적 덜한 리그 시스템이기 때문에,
승리 지상주의가 비교적 완화되고, 저학년 선수들도 기회를 더 많이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리그를 권역별로 나누어 실시함으로서 학교 재학생들이나 동문들이 관심을 가질 수도 있고요.
(제주 백호기나 강릉 정기전을 연상하시면 이해가 쉽습니다.)
그리고 간접적인 파급효과도 상당한데,
밑에서 설명한 동원컵 유소년리그, U리그와 더불어 초중고 전국 권역별리그 시행으로 인한 인프라 확충이 그것입니다.
수요가 있으면 공급이 따른다는 것은 불변의 진리입니다.
리그제 실시로 인해 연중 공식경기 수가 많아지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일단 경기를 실시할 경기장이 필요합니다. 이제 초중고 운동장이라고 해서 무조건 흙바닥이 아닙니다.
축구부가 있는 학교는 물론, 심지어 축구부가 없는 학교에도 잔디구장이 깔린 곳이 많습니다.
그리고 경기를 진행할 심판이 필요합니다. 한국 축구계의 고질적 문제 중 하나인 심판인력 부족도 해소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학교 축구부에도 코치뿐만 아니라, 같은 리그에 속한 팀을 분석하는 스카우터를 고용할 수도 있겠죠?
이 외에도 일일이 늘어놓으려면 끝이 없겠죠. 이 파트가 글이 길어져서 이만 생략하겠습니다.
챌린지리그 개최
프로구단이 연고지 내 특정학교를 지정해서 지원해 주고 그 대가로 선수를 수급받는 형태의
소위 "한국형 유스시스템"을 성공적으로 정립시킨 축구협회는
프로유스팀 학교들을 일반 학교와 차별화시키기 위해서 챌린지리그를 창설합니다.
챌린지리그에서 서로 부대끼며 동반해서 기량이 상승한 프로 유스팀들은
지금 현재 학원축구 전국대회를 거의 휩쓸다시피 하고 있습니다.
U리그 개최
초중고 권역별 리그 실시에 이어 대학 축구부 역시 전국 권역별 리그를 창설합니다.
권역별 리그의 이점은 이미 위에서 설명했으니 패스하고
U리그만의 의의를 찾자면 잠재적인 스포츠팬들이 많은 대학교에
대학축구가 밀접히 접근하여 파고들었다는 점을 들 수 있겠네요.
동원컵 전국 유소년리그 및 유소년축구 발전 촉진
보시듯 축구협회는 한 해 예산의 가장 많은 비중을 유소년축구 발전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유소년 육성의 중요성이야 뭐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는 일 아닐까요.
그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어느새 10년을 넘긴 동원컵 전국 유소년리그입니다.
지금은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유소년축구의 산실로 자리잡은 상태입니다.
덧붙이자면 동원컵 유소년리그가 정착되기 시작할 때쯤에
타이밍 좋게 K본부에서 제작한 날아라 슛돌이란 프로그램이 대박을 칩니다.
이 슛돌이 덕분에 한때 꼬맹이들이 축구클럽 다니는 게 엄청나게 유행했죠.
2002 월드컵을 거리에서 경험한 젊은 엄마들이
아들들을 태권도학원, 피아노학원 안 보내고 축구를 먼저 배우게 한 것입니다.
그렇게 초등학교 입학도 하기 전부터 공차는 법을 체계적으로 배우고
초등학교 입학해서는 동원컵을 뛴 수많은 꼬꼬마들 중에
특출난 아이들은 선수가 되고, 그렇지 않은 아이들은 미래의 축구팬이 되는 거죠.
90년대 초반 출생들을 "동원컵 세대"라고 한다면
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 출생들은 "슛돌이 세대"라고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동원컵 세대"가 슬슬 부상하기 시작한 지금 시점에서 과감히 예언하자면
가까운 미래에 "슛돌이 세대"가 한국축구의 전면에 나타날 날이 있을 것입니다.
WK리그 창설
축구협회가 여자축구 발전에 기여한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WK리그를 창설한 것입니다.
이번 U-20 월드컵 3위의 위업도 갑자기 난데없이 튀어나온 게 아닙니다.
혹자는 성인리그인 WK리그와 청소년대표팀은 관련이 없다고 말씀하실지 모르지만,
WK리그의 발전으로 인해서 여자축구를 구성하는 여러 축과 축 사이에 선순환이 일어났다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2종클럽 등록제 및 K3리그 창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유럽 명문팀들도 따지고 보면 그 시작은
다 같은 직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끼리 만든 동네 조기축구회였죠.
이를 감안하신다면 2종클럽 등록제가 갖는 큰 의미를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2종클럽 등록제 이전의 한국축구는 클럽축구와 조기축구가 따로 놀았죠.
하지만 "어차피 조기축구회도 따지면 클럽팀 아닌가?" 하는 발상의 전환에서 시작한 것이 바로 2종클럽 등록제입니다.
이 제도의 시행으로 인해 조기축구회는 클럽축구의 pool 안으로 편입되게 됩니다.
말하자면 종전까진 대기업, 대자본 위주였던 한국의 클럽축구가
"풀뿌리화"할 수 있는 단초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FA컵 권위확보
몇 년 전만 해도 FA컵은 먼 데서만 한다고 far컵(;;;)이라고 불리었었죠.
시즌 끝나고 예선부터 결승까지 몰아서 하니까 관심도 없는 불필요한 대회 취급받고
겨울이라 춥다고 제주, 남해 이런 데서만 해서 팬들도 경기보러 못 가는 그런 대회였습니다.
그랬던 FA컵이 지금은 환골탈태했지요.
그 요인으로는 3월부터 12월까지 연중 실시 및 경기팀 홈경기장에서 개최 두 가지를 들 수 있습니다.
이제 모든 팬들이 시즌 중에 FA컵을 가까운 곳에서 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타이밍 좋게 아챔이 확대개편되면서 FA컵 우승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아챔 출전권의 가치가 상승된 것도
FA컵의 권위상승에 한 몫 했구요.
2007 U-17월드컵 유치
최초로 FIFA주관대회를 단독개최한 사례입니다.
우리 대표팀의 부진 때문에 대부분의 축구팬들에게는 안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겠지만,
한국의 대형축구이벤트 개최역량, 인프라를 증명받고 세계에서의 위상을 확보했습니다.
지도자 라이센스제 실시
유럽 축구선진국들의 제도를 본따 지도자 라이센스제를 시행했습니다.
이젠 더이상 옛날처럼 선수 은퇴하면 고향으로 내려가서 중학교, 고등학교 축구부 몇 년 맡고 있다가
트레이너 몇 년 하면 코치 되고, 코치 몇 년 하면 감독 되는 시대가 아닙니다.
지도자 라이센스제로 인해서 지도자육성도 선수육성처럼 중요하다는 인식이 확립된 것이 중요합니다.
최근 최강희, 황선홍, 홍명보, 박경훈 등 40대 젊은 감독들이 부상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축구협회 법인화
찬반도 많고 갑론을박도 많이 오갔던 사안이었지만, 지금상황에선 법인화해서 잘못된 건 없는 듯 합니다.
투명운영 측면에서도 그렇고, 무엇보다 법인화 추진 자체가 가져오는 이미지 재고 효과도 있구요.
재작년인가 국세청에서 나와 축구협회가 세무조사 받았는데 나중에 모범 납세자상 받았어요.
그런건 신문에 크게 안나오더라구요.(웃음)
(조중연 당시 축구협회 전무 인터뷰)
우수선수 해외유학 프로그램 및 우수선수 장학금지원
우수선수 해외유학 프로그램은 지금은 그 폐단이 드러나서 전면중단된 상태이지만
그동안 뛰어난 유망주들에게 선진축구를 경험하고 학습한 기회를 제공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요.
긴 설명 필요없이, 지금껏 이 프로그램 대상자로 선정된 선수 명단만 적고 넘어가겠습니다.
(0기 : 설기현)
1기 : 이용래 양동현 강진욱 어경준 김동민
2기 : 김태연 추정현 박정훈
3기 : 조영철 설재문 조범석
4기 : 진룡 한건희 김신철 정현윤 정대환 김민기
5기 : 지동원 남태희 김원식 이용재 민상기 백성동
6기 : 손흥민 김민혁 김종필 이강 김학찬 김대광
그리고 축협에선 우수선수 해외유학 프로그램의 대안으로
해외에 진출한 우수유망주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습니다.
지금 장학금을 지급받은 1기 멤버가 바로 손흥민, 김우홍, 백승호입니다.
경기인 출신 회장선출 및 경기인출신 행정가 증가
대부분의 언론사에서는 조중연 회장이 사상 최초 경기인 출신 회장이라고 보도했지만
이미 90년대 초반에 이종환 회장이 경기인 출신으로 회장을 역임한 적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사실상 직무대행 형식으로 단기간 재임한 이종환 회장과는 달리
조중연 회장은 다년간의 임기를 보장받고 취임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최초의 경기인 출신 회장이라고 하면 틀린 말은 아닙니다.
"축구계는 축구인들에게"라는 대전제에 반대하는 축구팬은 아마 한 명도 없을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기업인 출신 회장인 정몽준이 자신의 후계로
선수출신, 지도자출신, 해설가출신인 조중연을 지명한 것은 축구팬의 입장에선 환영해 마땅할 일입니다.
단지 회장 한 명만 가지고 호들갑떠는 게 아닙니다.
특히 정몽준 회장 시기에 선수출신 행정가가 늘어나는 뚜렷한 추세가 확인됩니다.
김우중 회장 시설 신문선, 박병주 등이 대거 축구협회에 들어갔다가
말이 안 나올 정도의 최악의 운영으로 축구협회를 빈사 직전까지 몰고 감으로써
경기인 출신 행정가들의 입지가 좁아질 뻔한 것을 생각하면 천만다행입니다.
윗 사진에서 보듯이 김주성, 홍명보 두 인물이 동시에 축구협회에 들어선 것은 하나의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홍명보는 다른 길을 택했지만, 김주성은 행정능력을 인정받아 이미 국장급으로까지 올라섰습니다.
개인적으로 조중연의 뒤를 이을 선수출신 행정가로 주목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렇게 대한축구협회가 한국축구 발전에 기여했다는 것은
각종 대회 성적이 무엇보다 가장 잘 나타내 줍니다.
2002년 월드컵 4강
2003년 U-20 월드컵 16강
2004년 올림픽 지역예선 전승 및 무실점, 본선 8강
2005년 동아시아여자축구선수권 우승
2006년 월드컵 17위
2009년 U-20 월드컵 8강
2009년 U-17 월드컵 8강
2010년 월드컵 16강
2010년 U-20 여자월드컵 3위
이렇게나 한국축구가 전체적으로 발전에 발전을 계속해 왔는데
그 기간 동안 한국축구의 행정적인 측면을 담당해 온 축구협회는 왜 비난의 대상밖에 안 될까요?
한국축구는 계속 발전하는데 축협은 썩었고 부패하고 무능하고 병신이다?
앞뒤가 안 맞지 않습니까?
이젠 더이상 축구협회는 욕먹어야 된다고 낙인부터 찍고
그 낙인에 스스로 가둬져서 무작정 비난부터 날리지만 말고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할 때입니다.
첫댓글 대단한일해주셨는대도 욕만먹으시네...이런점은우리나라국민들도반성해야할점ㅋㅋㅋㅋㅋ솔직히우리나라스포츠는한순간임ㅋㅋㅋㅋㅋㅋ잘할때는우주끝까지치켜세워주다가못하면욕하고...ㅉㅉ국민들도반성해야할듯ㅋ
축협 까지만 했는데 엄청 죄송해지네요. 그런데 이런 대단한 분들 뒤에서 프런트들이나 관계자분들이 관중이랑 서포터즈들 좀만 존중해주시면 더 좋을텐데
유소년 육성이가장 금액비율이 높다...대단하다...
오......... 모르고 깐 내가 부끄러워지넹.. ㅠㅠ 그래도 요즘 잘못 시행되고 있는 부분들은 고쳐주셨음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