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 크리크의 결투
원제 : The Duel at Silver Creek
1952년 미국영화
감독 ; 돈 시겔
출연 : 오디 머피, 스티븐 맥널리, 페이스 도머귀
수잔 캐봇, 제랄드 모어, 제임스 앤더슨
리 마빈
50-60년대에 왕성하게 활동한 할리우드 배우 오디 머피는 전쟁영웅 출신의 배우인데 전쟁에서는 많은 활약과 훈장을 받았지만 배우로서는 사실 그저 그런 위상이었습니다. 버트 랭커스터나 제임스 스튜어트 등 대배우와 공연할 때는 조연 배우로, 그렇지 않을 때는 주연 배우로 활동하면서 주로 전쟁영화나 서부극에 특화된 배우였습니다. 작고 다부진 체형이었지만 실제 전쟁영웅이라는 위상이 있어서 그렇게 남성적인 영화에 주로 출연한 것이죠. 다부진 몸집이었지만 굉장히 날쌘 돌이 같은 이미지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할리우드의 위상보다 인기가 높아서 그가 단독 주연한 영화가 제법 개봉되었습니다. 6.25 전쟁을 겪은 우리나라에서 전쟁영웅 배우라는 점은 강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출연한 영화가 수준이 높지는 않아도 오락적인 장르라서 잘 먹힌 부분이 있었죠. 오늘 소개할 영화는 오디 머피가 주연한 영화 중 국내에 개봉했던 작품 중 하나인 '실버 크리크의 결투' 입니다.
1952년 작품으로 오디 머피가 28세에 출연한 영화죠. 1924년생인 그는 몸집도 작고 베이비 페이스의 배우라서 영화에서와 같은 '키드'라는 애칭이 잘 어울렸습니다. 그가 전쟁에서 맹위를 떨치던 2차 대전 당시가 20세 남짓하던 시절이었으니 그는 꽤 일찍 유명해진 셈이죠. 오히려 그런 유명세가 배우로서 크게 성장하는데 오히려 반작용이 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악당들
오디 머피
보안관 역의 스티븐 맥널리
악녀에게 푹 빠져든 보안관
영화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서부극인데 오디 머피 만의 독무대는 아닙니다. 보안관 역의 스티븐 맥널리가 공동 주연이지요. 오히려 등장하는 분량은 스티븐 맥널리가 더 많은데 오디 머피는 영특한 보안관 조수이고 스티븐 맥널리는 사악한 여자에게 푹 빠져 사리 분별을 못하는 답답한 역할입니다. 둘이 비중을 나눠 가졌지만 오디 머피가 나올 때는 속이 시원한데 스티븐 맥널리가 나올 때는 참으로 답답하기 짝이 없습니다.
실버시티라는 마을에 무법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고 보안관 라이트닝(스티븐 맥널리)은 그들을 소탕하려고 애를 쓰고 있었습니다. 무법자들은 소규모 금광 채굴권을 가진 약한 사람들을 협박하여 강제로 채굴권을 빼앗고 살해하는 사악한 짓을 일삼고 있었습니다. 루크(오디 머피) 역시 아버지를 그들에게 잃었는데 추적 끝에 한 명을 사살했는데 그들은 일종의 무법자 표식 같은 목걸이를 하고 있는 게 유일한 단서였습니다. 채굴권을 빼앗고 원 주인을 사살해 버리니 아무도 악당들의 얼굴을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루크는 이후 도박사 총잡이로 떠돌아다니고 있었고 실버 키드라는 별명으로 불리웁니다.
라이트닝 보안관이 무법자들을 추격하다 오른손에 부상을 입고 손가락을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하게 되는데 어느 날 술집에서 놀라운 총솜씨를 가졌지만 살인을 저지르진 않는 실버 키드라 불리는 청년, 루크를 발견하고 그를 보안관 조수로 임명합니다. 그렇게 해서 루크는 떠돌이 도박사 생활을 청산하고 라이트닝은 든든한 오른손을 얻게 됩니다. 이 두 사람이 악당과 맞서는 내용이지요.
어정쩡한 조연으로 등장하는 리 마빈
이런 레벨의 배우가 약 10여년 뒤
주연급 톱스타가 될 줄이야
보안관과 조수
점점 악녀의 유혹에 빠져드는 보안관
용맹한 보안관과 보안관 조수, 둘의 통쾌한 활약을 다룬 콤비플레이가 아니라 답답한 보안관과 그런 보안관을 구해주는 조수의 엇박자의 이야기로 전개가 됩니다. 라이트닝은 우연히 만난 미모의 여인 오팔에게 빠져서 정신을 못 차리는데 사실 오팔은 무법자들의 두목 로드의 여동생 행세를 하는 한패였습니다. 그런 것도 모르고 라이트닝은 로드에게 호의적으로 대하고 오팔의 품 안에서 헤어나질 못하는데 그래서 죽을 뻔한 함정에도 빠지는데 루크의 도움으로 살아납니다. 즉 라이트닝은 용맹한 보안관이지만 답답하고 민폐 캐릭터이고 루크는 민첩하고 영리한 캐릭터죠. 특히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라이트닝을 짝사랑하는 동네 처녀 더스티(수잔 캐봇)의 애타는 마음을 지켜보는 루크는 그걸 안타까워하면서 더스티에게 호감을 갖게 됩니다. 일종의 사각관계 같은 내용도 전개되는 거죠. 라이트닝은 오팔에게 푹 빠졌고, 더스티는 라이트닝에게 빠졌고, 루크는 더스티에게 빠져버린.
결국 영화는 어느 정도 뻔한 결말로 예외 없이 흘러갑니다. 루크의 도움으로 라이트닝은 정신을 차리고 오팔의 사악함이 드러나고 더스티는 악당에게 잡히지만 루크가 구해내고 악당들은 모두 소탕이 된다는 결말이지요. 단 한치도 어긋남이 없는 당연한 서술과 결말이라서 영화의 특징이 좀 부족합니다. 하지만 오락적인 재미는 있지요.
공동 주연인 오디 머피과 스티븐 맥널리
오른손을 다친 보안관을 대신해
결투에 나서는 조수
오디 머피의 영화로만 치부할 수 없는 게 감독이 돈 시겔입니다. 돈 시겔은 1971년 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연의 '더티 해리'로 유명한 감독이지만 이미 한참 전인 50년대부터 제법 이름을 알린 인물입니다. 1956년에 그가 연출한 '신체 강탈자의 습격'은 SF 호러물의 고전으로 높이 평가 받는 걸작이지요. 돈 시겔이 장편 영화 데뷔를 1946년에 했으니 '더티 해리'는 후기 작품에 속하는 셈입니다. '실버 크리크의 결투'는 비교적 소품이고 1시간 17분의 짧은 서부극이지만 돈 시겔의 작품이니 만큼 기본 역량은 갖춘 영화지요. 오디 머피는 1955년 '지옥의 전선'으로 비로소 대흥행작을 남겼고, 돈 시겔은 1956년 '신체 강탈자의 습격'으로 인정받았으니 아직 감독, 배우가 미완이던 시절에 공연한 셈입니다.
워낙 쟁쟁한 서부극이 많아 그다지 평가받는 서부극은 아니고 너무나 천편일률적 내용이라 심심할 수 있는 영화지만 젊은 오디 머피의 다부진 활약을 감상할 수 있고 그가 평생 어떤 이미지와 캐릭터로 등장하게 되는지를 잘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매력 없는 가짜 주인공과 다부지고 날렵한 진짜 주인공의 콤비가 이루어내는 권선징악 서부극이지요. 우리나라에는 9년이자 늦은 1961년에 지각 개봉되었습니다.
평점 : ★★☆ (4개 만점)
ps1 : 오디 머피는 1971년 비행기 사고로 사망하는데 불과 47세의 나이였습니다. 그는 원래 '더티 해리'에서 사이코 패스 살인자 역으로 캐스팅의 물망에 오른 상태였습니다.
ps2 : 공동 주연인 스티븐 맥널리, 그리고 조연으로 출연한 리 마빈, 둘은 3년 뒤 '전율의 토요일'에서도 함께 공연을 하지요. 은행털이 공범으로.
ps3 : 리 마빈이 어정쩡한 배역으로 출연합니다. 60년대 탑급 주연배우였지만 50년대는 정말 이 영화 저 영화에 조연으로 등장하는 위상이지요. 외모를 고려하여 주로 악당이나 마초 같은 역할이 많고. 이 영화에서는 오디 머피에게 까불다가 가볍게(?) 혼이 나는 마을 술집 남자 역할입니다.
[출처] 실버 크리크의 결투 (The Duel at Silver Creek, 52년)|작성자 이규웅